전주시/관광
1. 개요
전주시는 지방거점도시의 행정적 기능에 머문 도시가 아니라 전통적인 멋을 지니고 있는 특색있는 도시이다.
2. 덕진구
2.1. 호남제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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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TG를 지나 전주월드컵경기장이 막 보이기 시작할 때 지나게 되는 한옥 양식의 일주문 겸 '''육교'''. 육교 내부에는 전주시와 호남제일문에 관한 짤막한 글들이 써 있다. 현판에 호남제일문(湖南第一門)이라고 크게 써 있는데[1] , 말 그대로 호남의 첫 번째 문이라는 뜻.[2] 참고로 이 현판은 34대, 35대 현직인 송하진 전북도지사의 부친인 강암 송성용 선생의 작품이다. 여기를 지나면 전주시에 온 것을 실감하게 되며, 때문에 많은 대중매체에서 '전주에 왔다'라는 장면을 보여줄 때 자주 등장하는 구조물이기도 하다.
주변에 호남제일문 고속버스 중간 정류장(수도권, 충청권, 전남권방면 한정)이 있어서 전주월드컵경기장, 전북운전면허시험장에 가거나, 북전주 혹은 완주군 삼례읍, 봉동읍 등 지역과의 연계도 편하다.
호남제일문은 본래 1977년 5월 4차선인 도로폭에 맞추어 건립되었다가 1991년 5월 도로 확장으로 철거 후 지역민들의 복원 요구로 1994년 8월 확장된 도로폭에 맞춘 신 호남제일문이 완공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2.2. 전주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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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1978년 6월에 개원했으며, 전주시가 운영/관리하고 있다. 총 106종 7백 여마리가 있으며, 에버랜드와 서울대공원 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동물원은 과거 낙후된 모습으로 동물들이 걱정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으나, 전주시에서 생태동물원으로 대폭 개선하여 현재는 '''상당히 좋은 시설과 동물들의 자유, 생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과거 모습과 상당히 바뀌었다. 늑대사의 경우 나름 넓은 공간에 수풀과 바위를 두고 관람객은 구름다리로 관람하게 하여 접촉을 최대한 줄이는 식으로 동물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게 했다.
동물원 안에 전주드림랜드라는 작은 놀이공원이 하나 있는데, 막상 와 보면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놀이기구 시설이 너무 낡아 [4] 전주 시민들도 가기를 꺼린다.(...) 영화 화려한 휴가의 놀이공원 장면(...)을 이 곳에서 찍었으니 말 다했다. 새로운 놀이기구도 두어 개 정도 들어왔지만, 아직까지는 낡은 분위기다.
또한 꽃놀이 장소로서 인기가 좋다. 특히 벚꽃이 피는 시기에는 야간개장을 했는데 형형색색 조명들이 벚꽃들을 비춰 나름 장관을 연출한다. 전주시민 뿐 아니라 타지에서 온 관광객들에게도 괜찮은 볼거리 중 하나, 지금은 동물들의 스트레스를 고려하여 야간개장이 멈춘 상태이다.
이 기간에는 동물원을 오가는 165번 시내버스 노선들도 연장운행한다. 이 버스는 전주시내에서 가장 교통의 요지이자 번화가인 팔달로를 관통하는 노선이니 참고할 것. 보통 전주시 시내버스 막차 운행시간은 전주시내 번화가[5] 통과 기준 23시 언저리지만, 이 버스는 막차가 동물원 기준으로 22시 35분에서 23시 5분으로 연장운행한다. 다만, 연장운행 시간대에는 평화동사거리까지만 운행하며 거마평로, 신시가지, 혁신도시는 가지 않으니 주의. 또한 22시 35분 막차 또한 전주시 특유의 과속을 자랑하여 23시 즈음에는 양지중 근방을 지나고 있으니 시간을 넉넉히 잡고 미리 나오는 것을 추천한다.
전주시 대표 랜드마크답게, 전주시의 초등학생, 중학생들은 매년 여기로 소풍을 온다. 이 근방이 아니더라도 전주에서 학교를 다닌 이들이라면 절대 피할 수 없는 소풍코스 중 하나. 딱히 갈만한 곳들도 없고. 또한 대학생들도 과나 동아리에서 이 곳으로 꽃놀이를 자주 간다. 특히 바로 앞에 있는 전북대는 더욱.
그리고, 저렴한 가격 덕에 대전권에서도 10배나 비싼 대전 오월드[6] 가 아닌 여기로 동물 구경하려 온다.
2.3. 한국도로공사 수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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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전주톨게이트 옆에 있으며, 한국도로공사가 호남고속도로를 건설하고 남은 유휴지에 건립했다. 한국도로공사 관계자가 밝힌 바로는 도로를 건설한 후 나무를 심어야 하는데 민간에 구입하기엔 고정 비용이 만만치 않아 유휴 부지에 나무를 심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너무 울창하게 자라 공원화가 되었다고(...) [7]
총 157과 1,410종이 있다. 무료 입장이며 월요일은 휴원이다.
전북대학교 생명과학부에서 1학년생들이 2학기 실험시간 때 오는 장소. 다만, 전주시내에서도 상당히 외곽이라[8] 대중교통으로 가기엔 상당히 불편하다. 시내버스로는 원동 방면으로 가는 400번대 버스를 타면 갈 수 있...긴 한데, 전체적으로 이 번호대는 배차시간이 60분 이상으로 길기 때문에 그냥 동산동우체국에서 내려서 택시를 타거나 걷는 게 나았지만 현재로서는 통합배차를 시행하기 때문에 20~30분 내외로 탈 수 있다.[9]
2.4. 한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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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동 전주페이퍼 공장 내에 있다.
초등학생들이 체험학습으로 많이간다
2.5. 혼불문학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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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 뒤 건지산에 있는 소설가 최명희의 묘역에 있다. 이름은 최명희의 대표작인 혼불에서 가져 왔다. 참고로, 한옥마을에는 최명희 문학관이 있다.
동백나무가 여럿 있으며, 연결된 기린대로를 따라서 벚꽃길이 펼쳐져 있는데, 사람도 드문 편이라 조용한 봄나들이를 즐기기 좋다.
2.6. 덕진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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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진구를 대표하는 공원이며, 안에 덕진호수라는 거대한 호수가 있다. 그 외에는 팔각정과 큰 철교, 전망대도 있다. 연꽃이 피는 시기에는 호수 한쪽이 온통 연꽃으로 뒤덮혀 사진작가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장소.
이 곳은 원래 전북대학교 부지였는데 동부시장 쪽 평생교육원 부지를 받는 조건으로 전주시에 넘겨주었다. 오리보트도 운영하니 커플들은 참고하길. 보트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가격은 50분당 8,000원에서 18,000원 선이다.
특히 이 곳은 겨울을 제외한 계절 평일에 하루 3번 음악분수쇼가 열린다. 30분 음악쇼인데, 음악에 맞추어 분수들이 떠오르는데 굉장히 멋지다. 특히 밤에 하는 쇼에서는 조명까지 곁들여 장관이다.
호수 옆에는 전봉준 장군상이 있으며, 호수 주변에 포켓스탑이 10개가 넘고 체육관도 호수를 한바퀴 도는 사이 4개가 있어서 포켓몬 GO 유저들도 자주 찾는 곳이다.
호수를 건너는 연지교는 2019년 다리의 노후화로 완전히 철거 후 11월 26일을 완공으로 공사중이다.
2.7. 한국소리문화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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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진동에 있으며, 바로 옆에 전주 동물원이 있다. 유명가수들의 콘서트 및 대형공연, 각종 행사 개/폐막식 대부분은 이 곳에서 열린다. 전북대 (신)정문에 있는 삼성문화회관과 함께 전북권 공연메카로 불리기도 한다.
201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조사에서 공연과 전시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10대 문화시설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서울의 4개 문화시설과 부산의 문화시설 다음으로 다양하고 많은 문화행사가 열렸다고 한다. 실제로 문화 콘텐츠가 많고 다양하며 서울로 편중된 문화산업 속에서 홀륭한 성과를 이루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3. 완산구
3.1. 전주 한옥마을 + 경기전
전주 한옥마을과 경기전 문서를 참조. 경기전은 한옥마을 바로 옆에 있고, 전동성당은 경기전 맞은 편에 있어 보통 한 번에 세 곳을 동시에 구경할 수 있다. 대외적으로 '관광지 전주' 하면 가장 유명한 곳.[10]
3.2. 전동성당
천주교 전주교구의 성당. 바로 옆에 전주교구에서 운영하는 천주교 미션스쿨인 전주성심여자중학교와 전주성심여자고등학교가 있다. 한옥마을에 꼭 붙어있다. 자세한 것은 전동성당 항목 참조.
3.3. 남부시장 + 청년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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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산구 전동에 있으며 한옥마을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시장이다. 피순대국밥이 유명하다. 모범시장으로 선정될 정도로 볼거리가 많다. 특히 금요일, 토요일 밤에 열리는 야시장에는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풍성하다.
이 시장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2층에 청년몰이 있다는 것이다.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가면 아래 재래시장과는 완전히 다른 청년몰이 나타난다. 청년들이 창업한 가게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고 시장의 디자인 또한 멋지고 예술성이 돋보인다. 공예품, 골동품, 문방구, 식당들이 모여 있는 훌륭한 청년시장. 공연도 자주 있다. 꼭 가보길.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남부시장은 우수 시장으로 선정되고 청년몰은 모범사례로 뽑혀 다른 시장에도 도입된다고 한다.
3.4. 자만벽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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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 뒤쪽 도로로 나오면 산이 있는데, 그 산 오르막길에 마을이 하나 있다. 평범한 오르막길 주택가가 아니라 벽에 멋진 그림들이 그려진 아름다운 마을.
http://www.s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83400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열차를 그려놓은 벽이 유명하다. 이곳 역시 게스트하우스나 멋진 공예품 가게가 아기자기 모인 곳으로 한옥마을과 함께 꼭 돌아봐야 할 코스.
본래 이곳은 자만동(滋滿洞)이라고 하여 고려 및 조선시대부터 전주에 사는 백성들이 많이 모여 사는 거주촌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간납대[11] 등등 선비들이 모여 살며 후학 앙성 및 학문을 닦던 곳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선조 목조(穆祖) 이안사(李安社)가 살던 곳으로, 자만동 금표(滋滿洞 禁標)라고 하여 구한말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국권피탈시기에 쓰라린 마음을 부여잡고 조상들의 흔적과 나라의 역사를 잊지 않고 기념하고자 잡인들이나 유래없이 떠돌던 백성들이 함부로 들어와 살지 못하게 옆의 이목대와 함께 비표를 세워 성역 비슷하게 취급되던 곳이었다. 아쉬운 것은 이런 역사가 서린 곳을 페인트 벽화만 그려 놓고, 벽화마을이라 하며 마을의 유래나 역사적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재 이곳은 상업화가 진행되어 주택들이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카페 및 유행가만 들려오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는 지적도 있다. 방문해서 주변 경관을 둘러보면 알겠지만, 근처에 완산팔경 중 2개나 있을 정도로 경관이 수려한 곳인데... 근처 마개조된 건물들과의 조화가 상당히 부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공간을 이렇게 페인트 벽화만 그릴게 아니라, 낙후된 주거지역은 적절한 보수 및 개선을 하고, 구한말 국권피탈시기의 역사적상징물로서 근처의 경기전과 오목대와 연계하여 관광객들이나 학생들에게 역사인식이나 역사학습의 지표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방문하는 위키러들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인식하고 ,구한말 고종황제가 어떤 마음이었을지와 나라 잃은 마음이 어떨지 생각하며 자만동 금표를 찾아보자. 더 뜻 깊은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5. 전주 객사
조선 초기 전주부성이 지어질 때 같이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 때 조정의 칙사나 외국에서 온 사신들이 여기 묵었다. 전주가 태조 이성계 가문의 고향이라 하여 '풍패지관'이라는 현판[13] 이 붙어 있는데, 풍패는 중국 전한 고조의 고향. 곧 조선왕조의 발상지로 전주를 우대했음을 알 수 있다.
전주시내 중심에 가깝고 실제로 전주 시내에서 가장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영화의거리가 바로 이 쪽에 있어서 영화제 기간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객사 주변은 그야말로 인산인해가 된다. 도심속에 나홀로 전통 건축물이 있는 모양새.
이름이 객사라 잘 모르는 타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죽는다는 의미의 '''客死'''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쪽으로 난 길이름이 객사길이라 처음 본 이들은 식겁하기도.
전주에서 '''시내'''라면 대개 객사 부근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세이브존(舊 코아백화점)에서 경기전 부근까지를 시내로 치지만 '시내에서 만나자'라면 열에 아홉은 객사길을 말한다.
시내 한가운데 있는 상징적 문화재이나 전주시 시내버스에 '객사'라 써놓은 버스가 '''별로 없다.''' 고속버스터미널/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렸거나 신도심 쪽에서 객사 부근으로 가려면 '''중앙시장/동부시장과 전동(한옥마을)이 행선지인''' 버스를 타면 된다. 다만 객사 부근의 정류장명도 '북문, 외환은행, 국민은행, 전북은행경원지점, 원불교전주교당, 흥국화재, 팔달로 예술회관 등으로 제각각이니 주의하자. 정 모르겠다면 기사님께 물어보자.
전북대학교 대학로와 함께 전주시에서 가장 번화한 곳. 객사 주변은 전주에서 가장 땅값 비싸기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타지인들의 관점에서는 전북대 근처나 서부신도심 등에 비해 상당히 낙후되어 보이는 편이다. 특히 동문예술거리, 영화거리 쪽은 완전히 침체되어 있으므로 막상 가면 실망할 확률이 높으니 전주시를 여행하려는 관광객들은 참고하길 바란다.
또한 객사 안으로 들어가서 사진도 찍을 수 있으며 여름철이면 전주 시민들이 객사 건물 안에 앉거나 누워서 햇빛을 피하고는 한다. 최근 전주의 여름은 대단히 무더워 한낮이면 학생이고 어른이고 다들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간간히 그 앞마당에서 공연이 벌어지기도 한다.
자세한 것은 전주 객사길 문서를 참조.
3.6. 다가공원
전주신흥고등학교 맞은편에 있는 공원. 예로부터 유서깊은 활터가 있어 사람들이 훈련 장소로 많이 사용했다. 숙종 28년에 전주의 유지들이 뜻을 모아 정자를 세우고 천양정이라 이름붙였으나 9년 뒤 대홍수로 떠내려가버린 뒤 근처에 정자를 다시 세우고 이번에는 이름을 다가정이라 붙였다. 정조 2년에는 정원을 만들고 활터를 넓히는 등 정비가 이뤄졌고, 순조 30년에 다가정 구내에 일사정을 세우고 남쪽에 과녁판을 설치한 뒤 이름을 다시 천양정으로 바꿨다. 일제시대에는 신사가 세워지는 수모를 겪기도 했으며, 일제강점기가 끝난 뒤에는 신사를 허물고 그 자리에 신사가 있었다는 팻말을 세워놓았다.
천양정에서는 1995년부터 풍남제 행사의 일환으로 무과 급제 재현이 이뤄지고 있으며, 공원 정상에는 이병기 시인의 시비(詩碑)가 서 있다.
3.7. 풍남문
전동에 있는 전주성의 4대문 중 유일하게 남은 문으로 전주성의 남문이다. 보물 308호. 정유재란 당시 훼손된 것을 영조 때 복원했다가 한번 불탄 적이 있고, 영조 때 다시 복구하면서 풍남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15] 일제강점기 당시 크게 훼손된 것을 1978년부터 3년간 보수를 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풍남문은 전주 남부시장쪽에 파묻혀 있는 모습이라 과거엔 전주에 처음 놀러온 사람이라면 경기전과 전동성당만 보고 가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풍남문을 둘러싼 길가에는 전부 상점들이 들어차있어 일반적인 문화재를 생각하고 찾는다면 구경하기도 불편하고 답답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었는데, 최근들어 주변 건물을 전주시가 매입해 허무는 사업이 시작돼 앞으로는 사정이 좋아질 듯 하다. 실제로 한옥마을과 경기전, 전동성당까지 한 곳에 모여있어 이 4곳이 연계돼 전주의 대표적인 관광코스가 된 지 오래. 현재 그 쪽 상가들 중 하나가 헐렸기 때문에, 경기전이나 전동성당에서 사거리로 나오면 바로 풍남문이 보인다.[16]
문루 옆에는 종루가 있다. 원래 전주성에는 고려시대 때부터 성곽 사대문에 종을 걸어 놓고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고 알려졌지만 일제강점기 때 여지없이 종이 뜯겨져 나갔다고 한다. 현재 걸려 있는 종의 이름 전주의 옛 명칭인 '완산'을 따서 '완산종'으로 불리고 있으며 1977년부터 진행된 전주시민들의 모금을 통해 만들어졌다. 풍남문 옆 종루에 종이 걸린 것은 1980년으로 전국체육대회의 전주 개최를 기념해 타종한 이후 현재까지 전주시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행사 때마다 타종이 진행되고 있다. 매년 12월 31일 밤 제야의 종 전북 타종 행사도 이곳에서 열린다.
여담이지만, 경기전 뒷담길 가까운 곳에 '동문사거리'가 있다. 여기는 말그대로 전주성 동문이 있던 자리인데, 도로를 개설하면서 허물어진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만든 직사각형 모양의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다. 舊 한일서점, 現 세븐일레븐 한옥마을점 자리 바로 앞이다. 풍남문 관광을 온 위키러라면,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니 한번 쯤 방문해 봐서 예전 전주부성 사대문이 어떻게 있었는지 가늠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3.8. 전라감영
완산구 중앙동 전주완산경찰서 앞 옛 전라북도청 부지에 옛 전라감영을 복원하였다.
3.9. 치명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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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교동에 있는 해발 306m 높이의 산으로 가톨릭 성지로 꾸며진 곳이다. 원래 이름은 우리말로는 중바우이고, 한자(이자 공식 명칭)으로는 승암산이라고 불리운다. '치명자'란 천주교 전래 초기 순교자를 가리키던 옛 말이다. 쉽게 말해 '천주교 순교자가 묻혀 있는 산'이라는 뜻.
이곳에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동정부부[17]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 부부를 포함해 유중철의 아버지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가족의 무덤이 있다.[18]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가족의 무덤 아래에는 성당이 있으며, 치명자산 입구에는 주차장 및 기도,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산에 올라가는 길목에 십자가를 세워 만든 십자가의 길이 있어서 매년 사순 시기에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기 위해 전국의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으로 많이 온다. 산의 중턱에는 사목 활동을 하다 선종하신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신부님들을 모신 '사제들을 위한 묘지'가 있다.
후삼국 시대 견훤의 거점이었던 옛 전주성의 흔적인 동고산성이 남아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마을버스인 동서학 14번을 타고 갈 수 있다.
3.10. 국립전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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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 삼천동에 있으며, 전주 역사박물관이 같이 있다. 김제 금구로 가는 방향에 있다. 자세한 것은 국립전주박물관 문서 참조.
3.11. 한국전통문화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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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청 인근 경원동에 있는 건물로 국비와 시비를 들여 건립하고 2015년 4월에 개관한 문화전당이다. 전통문화산업의 발전과 거점 센터로서의 역할을 하며 규모가 상당히 크다. 전주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전주문화관과 한지나 국악 등 우리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볼 수 있는 전시관이 있는데 상당히 잘 되어 있다. 또한 문화행사와 축제가 자주 열리고 있으며 최근 전주에 새로 생긴 새로운 문화 시설로 자리잡고 있다. 한지산업지원센터 등 전통산업을 육성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여담으로 이 건물 터에는 전북대학교병원이 있었으나 1987년 병원이 금암동 현 위치로 옮겨졌다. 옛 병원 건물은 철거됐고 남쪽의 치과대학 건물은 평생교육원으로 쓰이고 있다.
4. 완주군
4.1. 모악산
5. 관련 문서
[1] 위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썼기 때문에 문일제남호(門一第南湖)처럼 보인다.[2] 영남제일문도 있다. 이쪽은 경상북도 김천시에 위치해 있다. 다만 호남제일문과 달리 딱히 그 곳을 기점으로 뭔가 분위기가 변하진 않는다(...). [3] 동물원 정문에 걸린 한자 현판은 '기린원(麒麟苑)'으로 전주동물원을 통칭하는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 여기에 언급된 기린은 전주시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중 하나이자 풍수지리 상 백호의 위치인 기린봉에서 따온 말이다. 물론 이 동물원에도 진짜 기린이 살기는 한다. 이 현판 역시 송하진 전북도지사의 선친인 강암 송성용 선생이 썼는데 2018년 여름 떼어버렸다고 한다. 간체자로 써있는데다 '기린'이라는 한자 또한 제대로 알려진 글자나 단어가 아니다보니 관광객은 물론 이 곳을 종종 오는 전주시민들도 무슨 글자인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결국 전주동물원 측에서 떼어서 보관 중이라고 한다. 이 자리에는 '전주동물원'이라는 한글 현판이 붙을 예정이다.[4] 바이킹은 들어온지 10년도 안되었다. [5] 팔달로 및 전주객사 부근[6] '''공영'''(지방공기업) 주제에 '''민영''' 수준의 엄청나게 비싼 입장료를 받는 것으로 악명 높다.[7]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 2020년 5월 9일 방송 발췌[8] 소재지인 동산동/조촌동의 중심가에서도 살짝 벗어나 있다.[9] 425번은 수목원이 아닌 용신마을로 간다.[10] 실제로 방문해보면 '남부시장-풍남문 로터리-전동성당-경기전-한옥마을'로 이어지는 코스이기 때문에 관광하기 아주 좋은 지역이다.[11] 現 천주교 전주교구청 자리. 舊 전주공전 및 전주영생고등학교, 舊 영생여상(현 전주대사대부고) 자리다. 한산 이씨 이기발, 이흥발, 이생발 3형제가 살았다고 한다. 한산 이씨는 고려 말 삼은 중 하나였던 목은 이색의 집안으로, 이기발이 사간원 헌납이라는 벼슬에 올랐는데, 병자호란 이후 벼슬을 하지 아니하고 이곳에 내려와 살았다 하여 사간(司諫)의 간(諫) 자와 헌납(獻納)의 납(納) 자를 따서 (諫納臺)라 했다고 한다. 원래는 정자형식의 건물이 있었다 하나, 현재는 오래전에 소실되고 없다.[12] 지금은 익산 왕궁면[13] 현판에 글씨를 쓴 사람은 1606년에 명나라에서 파견한 사절단의 정사인 주지번인데, 이 사람이 1593년 조선 사신단의 서장관으로 명에 간 표옹 송영구의 도움을 받아 과거에 합격한 사람이다. 정사로 파견된 후 전주[12] 에 기거하던 스승의 행방을 찾으러 내려오면서 객사에서 하룻밤을 잔 김에 써 준 것. 당시 주지번은 명나라 3대 문장가로 손꼽혔다고 한다.[14] 사진 속 왼편에 볼록 튀어나온 둥근 고딕양식의 돔형 지붕이 전동성당의 가운데 종탑이다.[15] 객사의 현판이 풍패지관이 된 것과 같이, 여기도 풍패에서 앞의 풍 자를 따서 붙인 것이다.(...) 지금의 서문교회 부근에 있던 서문도 이때 패서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도시계획에 의헤 철거되어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16] 전주신협 광장이 만들어진 이후 풍남문이 바로 보인다. 광장에서 보드, BMX 등을 즐기는 인원도 상당히 늘었다.[17] 말 그대로 부부의 연을 맺었지만 서로가 동정을 유지했다는 뜻.[18] 유항검 아우구스티노는 호남지역 최초의 가톨릭 신자였으며 그를 비롯해 그의 아들들인 유중철 요한-유문석 요한 형제, 유중철의 아내 이순이 루갈다, 유항검의 조카인 유중성 마태오 등이 지난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한민국을 방문했을 때 일제히 복자로 시복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