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모리예 지방

 


'''프리모르스키 지방'''
'''Приморский кра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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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문장'''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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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93dd><colcolor=#fff> '''국가'''

'''주도'''
블라디보스토크
'''시간대'''
UTC+10

'''인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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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93dd><colcolor=#fff> '''인구'''
1,895,305명(2020년)
'''인구 밀도'''
11.51명/km²
'''면적'''
164,673km²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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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93dd><colcolor=#fff> '''주지사'''
올렉 코제먀코[10]
'''지방의회'''

'''25석 / 40석'''

'''8석 / 40석'''

'''5석 / 40석'''

'''1석 / 40석'''

'''1석 / 40석'''

<colbgcolor=#0093dd><colcolor=#fff> '''ISO 3166-2'''
'''RU-PRI'''
'''공식 사이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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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리예 지방의 위치(붉은 색)
1. 개요
2. 역사
3. 지정학적 위치
4. 인구 구성과 지역 경제
5. 기타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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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리모르스키 지방(Приморский край)은 러시아 극동 지방에 있는 크라이이며 줄여서 프리모리예(Приморье)라고 한다. 프리모리예는 '바다에 접한'(연해)이라는 뜻이다.
한국일본에서는 한자로 훈역해 '''연해주(沿海州)'''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빈해변강구(濱海邊疆區/滨海边疆区)라 하며, 영어에서도 더러 번역해 Maritime Territory라 하기도 한다. 대한제국 시절에는 러시아령이라는 뜻으로 노령(露領)이라고 했다.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러시아로[1], 남서쪽으로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인접한다. 만주에 속하여 있다. 정확히 말하면 외만주에 속한다.
주도이자 극동 연방관구 대통령 전권 대표부 소재지는 동해에 면한 항구도시블라디보스토크이다. 중심도시는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볼쇼이카멘, 나홋카 등. 어업광업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고 러시아의 제1간선철도인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종점이자 극동 최대의 항구도시로서 무역과 해운업 역시 발달했다. 2010년대 들어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의 개발과 한국인 무비자 같은 규제 완화로 관광업도 차츰 발달하고 있다.
이곳이 여행유의 지역인 이유는 '''북한'''과 가깝기 때문이다. 이곳은 러시아에 체류하는 북한 사람(과 공작원)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지역으로, 납북의 위험이 있다 해 여행유의 지역으로 지정되었다.[2] 그 외의 위험요소는 없다.
2014년부터 크라이 지사는 블라디미르 미클루솁스키(Владимир Миклушевский)였지만 2017년 사임하여, 안드레이 타라센코(Андрей Тарасенко)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임시 지방지사로 임명했다. 2018년 9월 주지사 선거를 치렀는데, 통합 러시아당의 안드레이 타라센코가 49.6%, 공산당의 안드레이 이셴코(Андрей Ищенко)가 48.1%를 득표했으나, 공산당 측에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자 러시아 선관위에 의해 선거가 무효 처리되었다. 공산당 측에서는 이셴코가 승자라며 재선거를 보이콧. 2018년 12월 재선거를 거쳐 前 사할린 지사 올레크 코제먀코(Олег Кожемяко)[3]당선되어 현직 크라이 지사이다.

2. 역사


오랫동안 동아시아 지역의 변방으로서 북방 이민족들의 영토였다. 상고시절의 연해주는 북쪽은 숙신인들 같은 퉁구스계 종족, 남쪽은 옥저와 같은 예맥계 종족의 땅이었고, 일부 북시베리아 계통의 종족들이 남하해서 주거하기도 했다. 서기 5세기 경에 고구려가 전성기를 맞이하며 고구려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되었고[4] 고구려 멸망 후에도 당나라가 연해주 지역을 장악하지 못하고 새로히 들어선 발해의 통치를 받다가 발해가 멸망하고 요나라와 발해의 부흥국들 , 금나라, 원나라의 지배를 차례대로 받았다. 이후 명나라 시기 초기에는 여진족 치하에서 명목상 명나라에 속해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명나라의 통치영역에서 벗어나있었으며 여러 종족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했는데 이후 중만주 일대의 여진족이 주도권을 잡게 되어 후금이 건국되었고, 후금이 세를 떨치게 되면서 연해주도 후금의 통치아래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 쪽의 원주민은 만주 일대에 걸쳐 사는 여진족-만주족이다. 나나이족등의 소수민족도있다.
한편 동유럽에서 모스크바 대공국을 중심으로 작은 소공국들을 통합하여 성립된 루스 차르국은 점점 세력을 넓혀 시베리아를 넘어 결국 동아시아의 끝자락인 이 지역까지 다다랐고 청나라 역시 자신들의 원류인 만주의 배후지인 이 지역을 쉬이 넘겨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청나라에겐 러시아의 우수한 무기가 버거웠고, 러시아 역시 소수의 탐험대와 변방인들로 청나라의 대군과 싸우는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결국 청과의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게 되었고[5] 그 끝에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으로 청나라의 영유권을 인정했다.
그러나 200여년이 지나 청나라의 국력이 쇠한 가운데 제2차 아편전쟁의 중재를 하는 와중에 러시아 제국은 중재의 대가로 연해주를 요구, 결국 1860년 베이징 조약을 체결하여 청나라가 연해주의 영유권을 포기하면서 러시아의 영토가 되었다. 더 나아가 러시아는 의화단의 난에서 20만의 병력을 진주시켜 만주를 점령하여 극동총독부를 설치하였으며, 또 동만철도가 있는 북만주와 하얼빈을 차지하고 송화강(하바롭스크)과 고비 사막을 러시아-청의 경계로 삼으려 하였다. 그러나 러일전쟁에서 일본에게 패배하여 팽창이 정지되었으며, 국공내전에서 동청철도 및 다롄하얼빈 조차지에서도 물러나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적백내전기에는 한때 백군의 근거지였다가[6], 극동 공화국을 거쳐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에 편입되었다. 1972년에는 중국어/만주어에서 유래된 지명을 대대적으로 개정했다.

3. 지정학적 위치


러시아소련 시절보다 아무리 약화되었다고는 해도 절대 중국이 쉽게 누를 수 있는 상대는 아니고, 또한 연해주는 자원, 부동항 등으로 인해 러시아에 꽤 중요한 지역이다.
일단 연해주가 러시아의 영토로 편입되면서 한반도는 러시아와 직접 연결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러일전쟁 직전까지 한반도의 부동항을 노리는 러시아의 영향력이 상당했다.
반면 중국은 고작 수 km 차로 '''동해로 나가는 유일한 출구'''를 잃어버렸고, 이제 라선(청진)항을 빌려 발판으로 삼고 있는 실정이다. '''전략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거점'''이다.
만약 러시아가 베이징 조약에 참여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중국이 동해, 즉 태평양으로 진격하는 교두보가 됐을 거라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동해에도 일부 중국 선박이나 어선이 있긴 하지만 자국 앞바다인 서남해처럼 많지는 않은데,[7] 연해주에 중국 어항이 있었다면 동해도 황해와 마찬가지 신세였을 것이고 중국 해군의 군사적 진출도 보다 손쉬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은 연해주를 통과하는 두만강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북한러시아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황해의 자국 근해에서 어족자원을 고갈시킨 중국이지만 동해는 이렇게 진출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자정이 되고 있다. 최근 울릉도는 이렇게 두만강에서 출항해 동해상으로 나온 중국 어선의 피항지로 애용된다. 현재 우호적인 중러관계 덕에 중국은 두만강과 연해주, 러시아는 요동을 통해 각자 동해황해로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4. 인구 구성과 지역 경제


인구의 92.5%가 러시아인이며, 우크라이나인(2.8%)이 그 뒤를 잇는다. 고려인 강제이주가 없었다면 고려인 인구는 약 20% 정도였겠지만 현재 고려인 비중은 1%에 불과하고, 극소수의 중국인(0.2%)이 있다. 그 외 우데게족이나 나나이족, 오로치족 등의 원주민들의 비중은 거의 없다. 다만 중앙아시아에 강제이주당했던 고려인들이, 구소련 붕괴 후 독립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자국민 우대정책으로 인해 탄압을 받아서 도로 연해주로 이주해 오기도 한다. 러시아 정부에서도 보상금을 지급하는 등, 고려인들의 재이주를 어느 정도 지원하고 있다.
일단 2010년 인구통계에서는 아직 러시아계가 92.5%로 압도적 우위에 있다. 그러나 1989년 2,258,391명이던 인구는 2010년 1,956,497명로 대폭 줄어든 상태이고, 중국인 혹은 중국의 이 지역에 대한 경제진출은 대단히 활발하다. 연해주에 직접 거주하지 않지만 연해주에서 활동하는 중국인은 아주 많다. 연해주 자체가 이렇다 할 산업기반이 없고 주로 일본, 한국, 중국 등에서 소비재를 수입하는 사업으로 먹고 사는 상황이라 연해주 전체에 외제품이 넘실거린다. 연해주 어디를 가도 일본제 승용차, 한국제 버스, 중국제 식료품(특히 과자)은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식료품 부분에서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한 연해주 지역은 대단히 불리한 상황에 놓여있다. 사회주의 시절 설계된 중앙집중적인 경제시스템의 잔재가 아직 남아있어서 대부분의 소비재가 생산 → 모스크바 → 각 지역 순으로 이동하는데, 이렇다보니 유럽 지역에서 생산된 물품은 말 할 것도 없고 심지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잡는 각종 해산물들도 항구에서 바로 판매하는 것이 아닌 이상 일단 모스크바에 올려보냈다가 다시 내려오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블라디보스토크 대부분의 지역에서 러시아제 과자는 투명한 플라스틱 용기에 라벨 하나 붙여놓은 쿠키비스킷 정도가 대부분이고 소도시에만 가도 가게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죄다 알록달록한 포장지의 중국제 과자 아니면 음료수들이다. 2010년대 들어서는 한국제, 미국제, 일본제 식료품들도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2014년 루블화 가치 하락 이후 수입품의 가격이 수십% 이상 상승하는 바람에 자국산 식품이 더 저렴해지고 보기 쉬워진 상태이다.
러시아의 유명 박물관 등 문화·교육 시설들이 연해주 지역에 잇따라 지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연해주에서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가 발생되고 있지만, 기반시설들이 낡아 문제가 생기고 있어서 러시아 정부에서도 연해주의 기반시설들을 개선하려고 하는 중이다.#

5. 기타


2012년 6월, 러시아 정부는 블라디보스토크와 루스키 섬 사이의 연륙교 건설을 '경제성이 전무함에도'[8] 밀어붙이고[9], '극동발전 장관'직을 신설하고, 중앙아시아 지역에 살던 러시아계 주민들을 보조금과 직업을 주며 이주시키고, 최신예 핵잠수함을 태평양 함대 배치 계획을 발표하는 등, 이 지역 내에서 급증하는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2012년 9월 블라디보스토크 APEC 정상회의는 러시아의 '동진'을 상징하는 이벤트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소련 해체 이후에는 돌아오는 고려인이나 남한에서 진출하는 한국인 등이 있어 한국계가 약간 거주하고 있으며,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사할린과 함께 한국어가 비교적 통용되는 지역이다. 취업 등의 이유로 한국어를 배우는 러시아인도 타 지역에 비해서는 많은 편.
면적은 넓은데 인구는 희박해서 생태계가 잘 보존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시호테알린 산맥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지정한 곳이다. 남한에서 절멸한 호랑이를 비롯한 대형 육식 포유류를 비롯하여 온갖 야생동물들의 천국.
블라디보스토크와 나홋카 근처에는 포키노라는 비밀도시가 있다.
간혹 멀티플레이어 게임의 아시아 서버에서 러시아인이 보이기도 하는데, 이 경우는 해당 게이머들이 연해주 주민이기 때문이다.

6. 관련 문서



[1] 직선거리로 보면 서울에서 오사카보다 블라디보스토크가 가깝다.[2] 중국지린성랴오닝성도 같은 이유로 여행유의 지역이 되었다.[3] 무소속이나 여권의 지지를 받고 있음.[4] 2009년 연해주 크라스키노 지방에서 530년경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고구려 석성이 발굴되었다.[5] 군과 루스 차르군이 충돌한 나선정벌도 이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다.[6] 소련 군가 계곡과 언덕을 넘어에서 백군의 요새 연해주 운운하는 대목이 이 시절의 상황이다.[7] 대한민국 해양경찰의 서해와 동해 단속업무량 자체가 차원이 다르다.[8] 2010년 기준 루스키 섬의 인구는 5천 명 남짓이었다.[9] 건설에 한국자본이 들어가고 삼성그룹이 건설에 참여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