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진/생애
1. 개요
이 문서는 하승진과 관련된 문서 내용을 다루고 있다.
2. 선수 생활
2.1. 아마 농구 시절
[image]
키가 205cm인 아버지 하동기[1] 도 프로 농구선수였고 , 누나 은주[2] 도 역시 농구 선수인 농구 집안이다.[3] 삼일상고 1학년 때 이미 키가 216m였고, 삼일중 시절부터 그를 본 삼일상고는 온갖 노력 끝에 기어이 그를 같은 재단인 삼일상고에 넣는데 성공했다. 고교 농구에 갑자기 등장한 키 216cm의 거인의 출현의 결과는? 고교농구 정ㅋ벅ㅋ. 창단 이래로 36년 간 전국대회 우승이 없던 삼일상고는 하승진의 효과를 앞세워 고교 농구를 초토화시켰다.[4]
하승진 자신은 우월한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이미 전국적인 주목을 받는 농구 유망주가 되었다. 사실, 지금의 하승진의 키 221cm는 NBA 센터들 중에서도 최상위권이다. 루키 시즌 기준으로 숀 브래들리(228), 야오밍(226), 파벨 포드콜진(226) 다음으로 컸다. 하승진과 같은 키인 221(7ft 3in)로 표기된 선수로는 지드루나스 일거스커스가 있었다. 역대 족적을 남긴 센터들과 비교하면 샤킬 오닐보다 5cm 크고 카림 압둘자바보다는 2cm 클 정도. 다만 [5][6] , 야오밍보다는 5cm 작다. 그랬기 때문에 그 당시부터도 NBA 도전 이야기가 많이 나왔고, 그 자신도 그런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우월한 사이즈를 그냥 둘 수 없던 대한민국 농구계는 고교 3학년 때, 이미 하승진을 국가대표로 발탁하기도 했다.
일단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여 김태술, 양희종과 함께 연대의 전성기를 만들어 낸 후, 연세대 1학년을 마치고 NBA 드래프트에 응시했다. 당초 높은 순번에도 지명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일천한 경험이 문제가 되며, 결국 2라운드에 지명되었다.
1라운드에 뽑힐 수 있다는 소수의 의견도 당시에 있었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토론토 랩터스 스카웃으로 일했던 Gary Boyson이 드래프트 전날에 손대범 기자에게 '우리 팀은 하승진을 '''1라운드 픽 후보'''에 올려놨다'라는 이메일을 보냈고, 손 기자가 이를 토대로 기사를 작성했는데 실제 드래프트 결과는 이와 달랐고 이로인해 아이러브NBA에서 '손대범 이 사람 뭐하는 기레기냐?'라는 글들이 올라왔다고 했다. 보이슨은 MSN에서 손대범 기자에게 자기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며 사과를 했다고 한다(정지욱 기자의 용병닷컴TV 78회 2020.01.03).
그러나, 보이슨이 헛소리를 했다고 볼 순 없는게 어차피 드래프트는 팀들간의 눈치게임이기 때문에 백프로 맞출수는 없다. 폴 피어스만 해도 대학 시절 명성에 비해 낮은 10위에 뽑혔고, 04년 드래프트만 해도 직전까지 대학을 나온 검증된 신인 에메카 오카포와 미완의 대기 드와이트 하워드가 1순위 후보로 엎치락뒤치락하다가 하워드가 뽑혔다. 03년 드래프트에선 톱5 까지 예상되던 마칙 람피에가 2라운드까지 미끄러진 일도 있었다. 드래프트란게 워낙 변수가 많다. 예를 들어 어떤 팀이 A선수를 뽑고 싶었으나 그 전에 뽑힐 줄 알고 포기하고 B를 눈독 들이고 있었는데, A가 예상외로 자기 순서까지 남아있자 B를 포기하고 A를 뽑는 일들이 많이 있다. 혹은 드래프트 당일 전략을 바꿔 신인으로 채우려던 자리에 트래이드로 베테랑으로 채우는 일도 있다. 결국 르브론 제임스나 그렉 오든, 패트릭 유잉, 샤킬 오닐 같이 확실한 픽이 아닌 이상 어느 정도 변수는 있을수 밖에 없다. 특히 하승진처럼 거의 순수하게 가능성만으로 뽑히는 도박성 유망주들은 더욱 지명 범위가 넓다.
이 드래프트에서는 상당히 많은 거인형 센터들이 지명되었다. 야오밍이 성공한 데다 샤킬 오닐이 아직 위력을 발휘하던 시점이라 몸빵형 거인들의 수요가 있었던 것. 1라운드 21순위 파벨 포드콜진(226cm), 후에 서울삼성에서 뛰었던 피터 존 라모스(222cm) 2라운드 3순위, 그리고 하승진(221cm) 2라운드 27순위로 3명. 참고로 이 드래프트의 전체 1순위는 드와이트 하워드이고 후에 KCC에서 같은 팀으로 뛰게 되는 안드레 에밋이 2라운드 6순위로 지명되었다.
2.2. 폭풍 2도움의 시절 - NBA
[image]
2라운드 지명을 받은 선수 치고는 비교적 후한 3년 계약을 맺으면서 NBA에 첫 발을 내딛나 했지만, 개막과 동시에 로스터에 들지 못하고 NBDL에서 기량을 연마해야 했다. 다행히 시즌 중반에 로스터에 합류하는가 싶더니 부상으로 데뷔가 연기되어 결국 데뷔는 2005년에 이르러서야 했는데, 첫 경기에는 별 다른 기록을 내지 못하다가 두 번째 경기에 이르러 뉴욕 닉스와의 경기에서 도움 2개를 기록하며 자신의 첫 기록을 남겼다. 그 때 남긴 전설적인 짤이 바로 위에 나온 폭풍 2도움(...).
첫 시즌에 가비지 타임 위주로 뛰면서 커리어를 이어 갔지만, 부족한 면이 많았다. 애당초 기회를 잡기가 애매한 상황. 그러나 사실 냉정히 말하면 하승진은 실력에 비해서는 기회를 꽤 얻은 편이다. 당시 포틀랜드는 팀성적도 형편없었고 쓸만한 센터는 조엘 프리저빌라 뿐이었다. 백업센터로 블럭의 달인 테오 래틀래프가 있긴 했지만 그는 부상에 허구헌날 시달리는 터라... 결국 2005-06시즌엔 그 직전 시즌 경기당 1.4점 넣은 하승진이 4경기동안 주전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최종 성적은 1년간 0.2점 올라 평균 1.6점(...). 리바운드는 0.8개에서 1.6개로 급등(?)하긴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시즌이 끝나기만 하면 살이 찌는 등 몸관리를 못해 다음 시즌 트레이닝 캠프에서 매 시즌 부상을 입은 것. 포틀랜드가 아무 성과도 못내던 하승진을 2년이나 지켜본 건 맨발 221cm라는 어마어마한 피지컬 때문이었지만 결국 포기한 것은 몸관리가 전혀 안되는데 실망을 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고질적 몸관리 실패는 KBL에서도 이어졌다. 본인은 이게 본인의 거대한 체격 때문이라고 항변한 바 있다. 은퇴 이후 풀고 있는 썰에 의하면 고교농구에서의 혹사+잘못된 트레이닝으로 이미 몸이 망가져 있었고, NBA 진출때는 의욕이 앞서 하드 트레이닝을 하다가 지속적인 부상에 시달렸다고 한다.
결국 한 시즌을 뛴 후, 밀워키 벅스로 트레이드됐다가 무릎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바로 방출되었고 결국 허무하게 커리어를 접어야 했다. NBDL에서 두 시즌 두 개의 팀에서 뛰면서 재기를 모색하기도 했지만, 거기서도 업셋을 하지 못했고 주전을 차지하지도 못했다. G리그 두 시즌 평균 득점이 2.6점일 정도로 정말 봐줄만한 성적은 아니었다. NBA시절 보다 열악한 환경과 낮은 연봉 조건등으로 불확실한 미국생활을 접고 국내로 돌아가게 되었다.[7]
NBA에서의 커리어 하이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를 상대로 기록한 13득점 5리바운드 1스틸.
어쨌든 하승진의 미국행은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었다. 한국인도 어떻게든 하면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동시에 NBA가 결코 우월한 키만 가지고도 살아남을 수 없는 괴수들의 천국임을 다시금 보여 주기도 했다. 사실 숀 브래들리(229cm), 게오르그 뮤레산(231cm) 등 백인 빅맨들과 매뉴트 볼(231cm), 랄프 샘슨(225cm)같은 흑인 빅맨들도 230 가까이되면 오히려 피지컬과 기량면에서 그다지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하거나 부상으로 롱런하지 못했다. 그나마 눈에 띄는 활약을 한 선수가 동양인인 야오밍(226cm)이라는 것이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지만 그도 위에 나온 랄프 샘슨처럼 기량은 출중했으나 계속되는 부상으로 인해 롱런하진 못했다. 윌트 체임벌린부터 패트릭 유잉, 데이비드 로빈슨, 하킴 올라주원, 아티스 길모어, 샤킬 오닐, 카림 압둘자바, 디켐베 무톰보까지 대부분의 전설급 센터들의 키는 213~220 사이.
참고로 레지 밀러와 함께 페이서스를 강팀으로 만든 네덜란드 센터 릭 스미츠도 220이 넘었다. 물론 전설급 센터는 아니었어도 올스타에도 뽑혔고 파이널에도 이끈 강팀 센터 역할은 충분히 했다. 위 선수들은 NBA 역사 70년 동안 나온 그야말로 레전드급 센터들이고 그 많은 센터들 가운데 0.1%미만 극소수 초엘리트 레전드들이다. 야오밍, 릭 스미츠 같은 센터들은 220이 넘었지만 야오밍은 국제대회, 미국과 중국의 물리적 거리 등 으로 관리적인 측면에서 아쉬움으로 선수 생명이 짧아진 것이다. 반면 스미츠는 페이서스의 출장시간 관리(평균 30분 내외, 당시 NBA 주전선수는 대부분 30분대 후반 40분 초반 기록)로 비교적 건강하게 커리어를 마무리 했다. 물론 너무 큰 키는 기동력, 관리에서 큰 약점이 있지만 그에 앞서서 하승진이 아직은 NBA 레벨이 아닌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하승진이 너무 키가 커서 관리가 힘들었다고 하지만, 애초에 그가 NBA에서도 한 손가락에 꼽힐 정도의 초장신이 아니라 213cm 정도의 평범한 센터키였으면 NBA에 입성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7풋 전후에 뛰어난 운동능력과 기술적 완성도를 겸비한 센터들은 NBA에 넘쳐나기 때문.
사실 하승진이 NBA에서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기본기 부족이다. 빅맨의 득점이 얼핏 보면 우월한 키를 이용해 골밑에서 자리를 잡고 그냥 올려놓으면 되는 것 같지만 이 또한 기술이 필요하다. 모든 프로레벨의 빅맨들은 수준높은 스크린 플레이가 필요한데, 하승진은 기동력이 느리고 덩치가 거대한데 센스가 부족해서 스크린을 잘 못 걸고 자주 걸지도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로우포스트에서 자리를 잡는 것은 의외로 괜찮았다는 것인데, 덩치가 워낙 크고 힘이 셌기 때문에 웬만큼 자리를 잘 잡으면 밀어내기가 거의 불가능했고, 이 부분의 센스는 분명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위치선정을 잘 해놓고도 패스를 잘 받아서 훅슛이나 골밑슛으로 마무리 하는 능력이 썩 좋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기름손까진 아닐지언정 글루핸드와는 거리가 먼 선수이다. 그럼에도 워낙 덩치가 거대했기에 외국인선수들도 그의 피지컬은 버거워했기에 KBL에선 자신의 장점을 살려 수위급 센터로써 활약할 수 있었던 것.
여기서 문제는, NBA 기준으로도 하승진은 손꼽히는 거구지만 저 힘과 덩치를 버텨내는 선수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NBA선수들은 기본적으로 덩치가 크고 무엇보다 운동능력이 넘사벽이기 때문. 예를 들어 하승진의 포스트 플레이는 기술적 완성도는 떨어질지언정 아시아권에선 그 체격과 파워만으로 충분히 써봄직한 옵션이다. 그러나 NBA에서는 그가 포스트에서 자리를 잡는 것까진 가능할지 몰라도, 백다운을 해서 득점기회를 창출하는 건 거의 힘들었다. 그가 한 것은 포스트업하다가 패스를 빼주는 것 정도. 득점도 거의 받아먹기 레이업/덩크/골밑슛 뿐이었다. 골밑 득점력이 빈약하기로 유명한 롱리도 그나마 사이즈의 우위를 이용해 훅슛이나 레이업으로 가끔 신들릴때가 있었는데 (샤킬 오닐을 상대로 연속으로 훅슛을 먹인 적도 있다) 하승진은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애초에 롱리는 주전급 센터는 아닐지언정(다만 센터뎁스가 치명적으로 부족했던 2차 쓰리핏 기간의 불스에서는 주전으로 뛸 수 있었다), 일반적인 백업센터 수준의 기량은 충분히 갖춘 선수였다. 즉 '''NBA 제외 어느 리그를 가든 최정상급 빅맨으로 통할 선수'''이기에 가비지타임에 주로 출전하던 하승진과는 거리가 있다.
그리고 하승진 자신도 잦은 부상으로 인해 팀의 신뢰를 받지 못한 것 역시 사실. 하승진의 진출에 자극을 받은 방성윤의 미국 진출 시도나 최진수의 농구 유학은 부수적인 효과이기도 했다.
어쨌든 귀국을 결심하고 2008년 드래프트에 신청하면서 하승진의 미국 생활은 막을 내렸다.
2.2.1. 하승진의 커리어하이 경기
하승진의 커리어하이이자 실제로 좋은 활약을 펼친 경기는 바로 루키 시즌 마지막, LA 레이커스를 상대로 나왔다. 당시 양팀은 플레이오프 탈락이 확정되었지만, 마지막 경기답게 나름 치열한 경기가 펼쳐졌다. 하승진이 본인의 유튜브에서 "레이커스는 마지막 경기에서 선수들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주전들을 빼기 시작했는데, 포틀랜드도 자존심 때문에 주전을 기용할 수가 없어 후보로 이뤄진 돌격조를 이뤘고, 그 중 하나가 저였다"고 했지만, 사실 레이커스는 주전들을 꽤 오랫동안 기용했다. LA의 주전들은 크리스 밈을 제외하면 전원이 35분 이상 뛰었으며, 에이스 코비 브라이언트도 37분이나 뛰고 경기 종료 직전까지 계속 뛰었다.[8]
어쨌거나 전국구 인기팀인 레이커스를 맞아 포틀랜드의 홈관중들은 열광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는데, 하승진은 1쿼터부터 투입된다.[9] 하승진은 1쿼터 4분8초를 남겨두고 루벤 패턴슨의 패스를 받아 원핸드 덩크로 첫 득점을 했는데. 해설자에 따르면 이번 시즌 두번째 덩크로, 휴스턴과의 경기 가비지 타임 도중 첫 덩크를 선보였다고 한다. 이 덩크가 꽤 인상적이었는지, 방송사에서도 1쿼터 끝나고 광고로 넘어가는 장면 전환에서 이 덩크장면을 보여준다.
이후 3쿼터까지 8점을 했고, 3쿼터 도중 무려 코비의 공을 스틸하기도 한다. 유튜브에서 하승진은 "정신이 없어 누구 걸 스틸했는지도 몰랐다"고 했는데, 사실 그럴만도 한 것이 이때 코비를 마크하던 리치 프람이란 선수가 스틸을 시도했고, 코비가 이걸 피하려다가 혼자 실책을 저지른 것을 하승진이 주은 것이었다. 프람의 수비 성공이었지만 실제 볼에 손이 닿지 않았기 때문에 하승진의 스틸로 기록된 것.
하승진 본인이 기억하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4쿼터에 나왔는데, 드래프트 동기인 포인트가드 세바스찬 텔페어가 돌파하면서 킬패스를 해준 것을 덩크로 연결한 것.
가장 결정적인 플레이는 4쿼터 1분 50초 정도를 남겨두고 있을 때 나왔는데, 102대 101로 앞서고 있는 상태에서 포틀랜드의 3점이 미스가 난 것을 하승진이 그대로 오펜스 리바운드 한 후 꽤 먼거리에서 크리스 밈 위로 훅슛을 던져 넣은 것이다. 최종스코어가 106대 103으로 끝났기 때문에 이 득점이 사실상 경기를 결정지은 위닝샷이 되었다.
이 날 하승진의 필드골 6개 중 받아먹기 덩크가 2개, 오펜스 리바운드 후 덩크 한개로 덩크가 총 3개, 받아먹기 골밑슛 하나, 데빈 조지와 미스매치된 후 골밑슛 한개, 오펜스 리바운드 후 크리스 밈 위로 풋백 1개가 있다.
하승진의 맹활약이 돋보였지만 그만큼 약점도 보이는 경기였다. 빠르게 돌아가는 로테이션을 쫓아가지 못하고 매치업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주 매치업인 크리스 밈이 딱히 슛거리가 긴 편은 아니라 부각되지 않았지만, 슛거리가 긴 브라이언 그랜트와 매치업되었을때 계속 중거리슛을 허용했다. 실제로 하승진은 느린 발로 수비범위가 상당히 좁은 편인데, NBA 선수들이 워낙 빠르기 때문에 NBA에선 더 치명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약점이다.
파울관리 능력도 좋은 편은 아닌데, 코비 브라이언트에게만 파울을 세개나 했다. 또한 수비나 공격에서 자리를 잘 못 잡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치명적인 것은 볼핸들링. 패스를 받을 때나 리바운드를 잡을 때 볼을 자주 흘리는 모습이 보이는데, 소위 말해 "기름손"이라 불리는 센터들의 공통점이다. 이런 모습은 주로 손이 작은 빅맨들(예를 들어 콰미 브라운)이 보이는데, 하승진의 손은 23.5cm로 일반인에 비하면 굉장히 큰 손이지만 NBA빅맨치고 그리 큰 편이 아니다. 공을 핸드볼 잡듯 잡는 마이클 조던의 손 길이는 24.76cm인데, 사실 길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손 너비로 조던은 손 너비가 28.9cm나 되지만 하승진은 (수치는 불명이지만) 너비보다 길이가 더 긴 편. 손 길이에서 또한 손가락보다 손바닥 면적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큰데 이 점 역시 농구선수에겐 불리하다. 공을 잡을 때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는데 그 손가락이 더 짧기 때문.[10]
또한 로우포스트에서 1대1로 득점을 스스로 만들어낸 것은 거의 없고 주로 패스를 받아 마무리하거나 풋백 득점이었다. 아직 NBA 레벨에서 통용되기는 기본기가 부족했기 때문인데, 한번은 브라이언 그랜트를 상대로 포스트업 후 훅슛, 성공했으나 그 과정에서 트레블링을 범했다. 골밑에서 부드럽게 득점을 만들어낼 기술이 부족한 것.
그러나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분명 가능성을 보이긴 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골밑존재감. 하승진이 두 손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상대 공격수들이 골밑공격을 포기하거나 밖으로 패스를 빼주는 장면이 여러번 나온다. 코비의 경우에도 비록 자유투를 많이 얻어내긴 했지만, 하승진의 높이에 막혀 레이업을 포기하거나 터프샷을 쏴야했다. 하승진 위로 넣은 레이업은 후반의 더블 클러치 하나인데, 상대 공격수들이 골밑으로 들어오기 힘들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의가 있다.
또한 공격에서도 일단 볼을 확실히 잡고 나면 골밑 마무리 능력은 확실히 괜찮았는데, (리바운드건 패스건) 공을 높이 잡고 (공을 내리지 않고) 바로 득점으로 연결하는 능력은 장신들에게 상당히 유용한 능력인데 이것도 괜찮게 하는 모습을 보인다.[11] 덩치가 워낙 크다보니 좋은 자리에서 공을 잡으면 확실히 마무리시키는 능력은 NBA무대에서도 확실히 통하는 편이었다. 위에서 "받아먹기"라고 서술했지만, 사실 이는 이건 폄훼하는 표현이 아니라 그만큼 마무리가 확실하다는 의미이다. 패스를 받건, 리바운드 후 풋백이건 NBA 무대에서 필드골 7개 던져 6개 넣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다만 위에서 언급된대로 기름손 기질이 있어 볼을 잡는 과정에서 놓칠때가 많았다.
당시 경기는 암울한 시즌을 보내던 포틀랜드 팬들에겐 여러모로 신나는 경기였는데, 세바스찬 텔페어를 포함한 블레이저스의 영건들이 맹활약하며 접전 끝에 레이커스를 홈에서 꺾었기 때문이다. 물론 하승진도 별다른 기술 없이 받아먹기 득점만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덩크를 포함해 득점 몇번을 하며 분위기를 확실히 띄웠다. 당시 경기 중계를 보면 마치 플레이오프 경기인 것처럼 환호하는 홈관중들을 볼 수 있다.
사실 이 경기에서 모습 그대로 성장했다면 주전까진 힘들어도 백업 센터로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수도 있었다. 하승진의 덩치가 NBA 기준으로도 워낙 크기 때문에 제한된 시간동안 득점을 뽑아내거나 상대팀의 골밑공략을 힘들게 할 수도 있고, 거구 센터들의 대항마로도 가능성이 있었다.[12]
그러나 계속되는 부상으로 장기간 결장->경기 감각을 잃으며 그동안 성장한게 리셋되는 과정을 여러번 겪으며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2.2.2. NBA 역대 성적
2.3. 전주 KCC 시절
[image]
하승진의 드래프트 참가 선언으로 그렇지 않아도 인재들이 많다고 소문난 2008년 드래프트는 더욱 치열해졌다. 행운의 1순위를 가져간 팀은 바로 전주 KCC 이지스. 허재 감독의 복코가 또 한 번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정작 시즌 초반에는 KCC는 엄청 헤맸다. 하승진도 공백 때문에 기량 발휘가 잘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서장훈과 롤이 겹치면서 출전 시간 문제가 생기게 된 것.
[image]
두 빅맨을 동시에 기용해 더블 포스트 체제를 구축하면 하프코트 오펜스에서는 확실한 효과를 보일 수 있다. 두 선수는 KBL에서 가장 거대하고 힘좋은 선수들이고, 특히 하승진은 상대 외국인 선수조차 1대1로는 쉽게 상대하기 어려운 체격이다. 공격범위로 따져도 하승진은 골밑, 서장훈은 중거리슛 위주라 겹치지 않는다. 즉, 그냥 정공법으로 뚜벅뚜벅 걸어서 상대를 대놓고 밀어버리는 상황에서는 최강의 조합이라 할 수 있는 셈.
그러나 뒤집어 말하면 이 두 선수가 함께 기용되는 한 KCC는 KBL에서 가장 둔하고 느린 선수 두 명을 안고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 되고, 이러면 속공 및 얼리 오펜스[13] 상황에서는 당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두 사람이 상대 진영까지 넘어올 시간이면 상대 선수들은 모조리 복귀해서 수비 진영을 갖추고 있을 테니까. 실제로 농구에서 더블포스트를 할때는 한 명이 느리면 다른 한 명은 기동력이 있는 선수로 하는게 보통이다. 예전에 삼성이 했던 서장훈-올루미데 오예데지의 경우 오예데지의 기동력이 어느 정도는 있어서 가능했던 것.
그렇다면 수비에서는 어떤고 하니, 두 선수 모두 힘은 좋지만 발이 느려서 반드시 골밑에서나 활동해야 하는 타입이다. 외곽은 비는데 덩치 두 명이 골밑에서 부대끼는 최악의 상황... 이러면 결국 둘이 로테이션으로 나와야 하는데 국내 빅맨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선수들을 이렇게 기용하는 건 비효율의 끝이고, 팀 차원의 효율을 따지지 않는다 해도 선수 개개인의 불만이 폭발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하승진은 시즌 중반에 허재 감독에게 항명으로 비춰지는 행동을 하며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다행히 이는 허재 감독이 잘 참고, 하승진을 달래면서 일단 수습. 하승진 자신도 그 뒤로는 수그러드는 행동을 보이면서 역시 자제했다. 그리고 서장훈을 트레이드시키면서 하승진의 입지를 살려주는 방향으로 나갔다.
그 뒤로는 KCC가 연승을 달리면서 항명 파동은 잊혀졌고, 정규시즌 3위로 시즌을 마친 KCC는 업셋을 거듭하며 2008-09 시즌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성공했다. 하승진의 가세는 무엇보다 KBL에서 별다른 적수를 찾기 힘든 우월한 신체조건 때문에 KCC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고, 이를 반증하듯이 KCC는 하승진 합류 이후, 3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기록했다. 다만 2009-10 시즌에는 부상으로 인해 챔프전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모비스에게 패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다만 이 시즌에서 하승진은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거의 매 경기 20득점 10리바운드를 기록했고, 수준급 용병인 레더와 아이반 존슨까지 가세하여 이 때의 KCC는 이길 팀이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 놈의 부상만 아니었어도.
사실 하승진은 정규 시즌에 부상이 잦은 편이라서 정규 시즌에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선배인 서장훈과 김주성이 정규 시즌 MVP를 2회씩 수상한 것과 비교해 볼 때, 특히 이 두 선수가 2년 만에 첫 MVP를 수상한 것과 비춰볼 때는 분명 정규 시즌 활약은 기대만큼은 아닌 모습. 다른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사실 그렇게 잦은 편은 아니다. 다만 워낙 신체조건이 남들과는 달라 한 번 다치면 회복 속도가 늦은 편이고, 다시 코트에 복귀했을 때는 기량이 리셋되어 나온다는 것 때문에 그렇게 인식되는 것. 하승진 본인도 이에 대해 속상하다는 심경의 글을 남긴 적이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르고 나왔을 때는 분명 그 키와 높이를 감당할 KBL 선수들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에서 용병과 1:1로 매치업이 가능한 몇 안되는 선수이며, KCC가 플레이오프에서 항상 괴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1등 공신이다. 덕분에 KCC는 2010-11 시즌에 다시금 우승을 차지했고, 이 때 챔프전 MVP는 하승진의 몫이었다.
KBL에서의 본인의 커리어 하이는 2011-12 시즌에 안양 KGC인삼공사를 상대로 기록한 33득점 19리바운드.
그러나 그는 2010년 아시안 게임에 참가했으나 은메달에 그쳐 병역 특례를 받지 못했다. 2011-12 시즌을 마치고 2012년 7월경 결혼한 후 같은 해 7월 26일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였다.[14] 개인 훈련을 안 하다가 리셋되는 게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와는 달리, 결혼한 후 느낀 게 있었는지 복무하면서 훈련은 물론 체중 감량에도 적극적으로 임하였다. 허재 감독도 기대하는 듯하다. 2014년 7월 25일에 소집해제되었다. 공백기 때문에 팬들은 기량에 대해 우려했지만 개막전에서 17득점 13리바운드를 기록하며 골밑에서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 날은 3점 슛도 꽂아넣어 팬들을 충격으로 몰고갔다.
그러나 그 후 점점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는데 3초룰 폐지가 하승진에게 오히려 독이 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상대의 더블팀에 맥을 못추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고 전보다 체중을 감량해서 그런지 골밑에서 압도하는 모습도 사라졌다. 그리고 수비에서는 여전히 발이 느려 상대의 중거리슛에 맥없이 당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득보단 실이 더 많은 상황.. 설상가상으로 부상까지 당했다. 2015년 1월 1일 새해에 부상에서 복귀를 했으나 리오 라이온스의 팔꿈치에 맞아 코뼈 골절이 의심되는 부상을 입었다. 그렇게 피를 흘리며 퇴장하는데 한 관중이 모욕하자 흥분하여 달려들었지만 주위 경호원들이 말렸다. 관련 기사에 따르면 하승진은 이후 라커룸에서 울었다고. 관람객이 했던 말은 욕은 아니었다고 관람객 스스로 밝혔으나 아프지도 않은데 엄살부린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또한 바로 사과하려고 했지만 하승진 관계자들이 하승진 선수가 심경적으로 진정되지 않은 점 때문에 만류했다고 주장.
[image]
12.9 SK와의 경기에서 동료 김지후한테 머리에 공을 맞는 굴욕을 당했다(...).
2015-16 시즌, 포웰과 에밋, 그리고 꼬꼬마 투가드를 내세우는 라인업에서 홀로 골밑에서 고군분투했으나 역부족이였고, 리카르도 포웰과 허버트 힐의 트레이드 이후에 부담을 덜고 안정된 경기력을 보여주며 KCC의 정규시즌 우승에 공헌한다. 2월 21일 마지막 경기에서 KGC의 오세근과 찰스로드를 상대로 27분간 24득점(자유투 8/9) 21리바운드를 달성하는 괴력을 선보이며 팀의 우승을 확정지었다. 참고로 이날 기록한 20득점-20리바운드는 국내선수로는 최초의 기록이다. 한참 20-10을 밥먹듯이 하던 전성기 서장훈도 못해봤고, 이승준도 29리바운드 기록 당시 득점이 모잘라서 실패한적이 있다. 국내선수 부문 리바운드, 블록, 야투율 1위 달성은 덤. 15-16시즌에 줄였던 체중을 다시 늘리고,[15] 2인 출장으로 바뀐 외국인 제도, 안드레 에밋이라는 역대급의 외국인 선수가 활약하며 하승진은 반사이익을 누린 것. 안양 KGC와의 플레이오프 4경기에서 15.8득점 14.8리바운드를 기록하며 골밑을 장악하며 활약했다.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1차전 괜찮은 활약을 펼쳤지만 그 뒤로 이승현의 압박으로 좋은 활약을 못 보여 주고 있다. 3차전에서는 그 큰 키로 덩크를 실패하기도...
챔피언 결정전 평균 8.7득점 8.7리바운드(4.8 공격리바운드) 필드골 48.9%를 기록했다. 크게 나쁜기록은 아니지만 4강과 비교해 크게 떨어진 기록이기도 하고, 이승현에게 공수 모두 고전한데다 오리온스의 스피드를 전혀 따라잡지 못하는 등 패배의 원흉이 되었다. 이는 상대팀 감독이었던 추일승 감독을 칭찬해야 마땅하다. 하승진의 유일한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골밑 내의 파괴력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이승현을 필두로 헤인즈, 장재석, 최진수와 같은 장신 포워드들을 포진시켜 슛을 방해하거나, 공격/수비 리바운드를 내주지 않기 위한 적극적인 리바운드 및 도움수비 가담을 통해 KCC의 장점이었던 리바운드를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KCC에도 송교창, 정희재, 김태홍 등 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선수들이 있긴 하지만 오리온의 장신 포워드진에 비해 출장시간과 특장점이 적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감독, 선수들의 경험이 부족했다는 점이 관측되어 이는 비시즌 동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게 되었다.
2016-17 시즌 시작 전에 부상을 당했고 몇 차례 부상을 참고 뛰었지만 오히려 팀에 마이너스만 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알고보니 왼쪽 발목 인대부상을 당했고 결국 시즌 아웃을 당했다. 그리고 본인의 향후 선수 생활을 위해 그동안 좋지 않았던 왼쪽 발목 뼛조각 수술을 했다.
2017-18 시즌에서는 이정현 영입으로 5억 5천만원에서 2억원으로 연봉이 크게 삭감되었다. 시즌 전부터 본인의 몸 상태가 괜찮다며 간만에 건승진을 볼 수 있다는 기대를 부풀렸으나... 팀이 2연패에 빠졌고 안드레 에밋의 독단적인 플레이와 감독의 무능, 팀원들이 살지 못하는 모래알 조직력으로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곧바로 팀은 2연승을 달성, 하승진 본인도 안드레 에밋과 함께 공수에서 핵심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특히 모비스전에서는 16득점 18리바로 국대 후배인 이종현을 압살하는 모습을 보이며 건강한 하킬 모드가 얼마나 위력적일 수 있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줬다.
2018년 2월 3일 원주 DB와 경기 때 몸싸움 과정에서 팔꿈치로 한정원을 가격해 쓰러지게 했고, 7일 제재금 100만원을 부과받았다. 로드 벤슨이 '''유니폼을 찢고 제재금을 500만원을 부과받은 것'''에 비교하면 어처구니없는 일.
6강 플레이오프에선 전자랜드를 만나 5경기 19분 출장, 9.6득점, 6.6리바운드를 기록했다. 16득점 - 13리바운드 - 3블록로 활약한 1차전도 있었지만 하승진이 코트에 있을 때 지역방어를 쓰다가 상대팀의 3점과 컷인이 자주 터지고 생각보다 리바운드 단속도 되지 않으며 갈수록 출전 시간이 줄었다. 최종전인 5차전에서는 외국인 선수가 2명 뛰는 2,3쿼터에 아예 출전하지 못했지만 출전할 때는 맨투맨으로 브라운을 막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서울 SK가 기다리고 있던 4강 플레이오프에서는 주로 김민수를 상대로 9.25득점, 10.75리바운드를 기록했으나 상대의 외곽과 속공에 고생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1차전에서는 마지막에 이정현의 3점슛이 불발된 것을 잡아 곧바로 덩크를 시도했지만 림 옆을 때리는 해프닝이 있었고, 2차전에서는 마지막 작전타임 때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시리즈 내내 두자릿수 득점 / 리바운드 중 둘 중 하나는 해주었고 이정현과 2:2 공격을 펼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4차전에서는 김선형의 돌파를 두 번이나 블록하고 야투 6개 중 5개를 성공시키며 손쉽게 10득점을 올리긴 했으나 양팀 모두 100점을 넘긴 빠른 템포의 경기에서 하승진의 존재가 +가 더 많기는 어려웠다. 단적으로 4차전 SK 속공 득점 19점, KCC는 4점에 불과했듯 한계도 명확했다.
3. 은퇴 및 유튜버 데뷔
KCC의 황금기 이끌었던 하승진, 개인 SNS 통해 은퇴 선언'''Big HA![16]
렛츠기린~'''- 현재 하승진 채널에서 인사말
2019년 5월 14일, KCC와의 1차 FA협상 때 구단에서 재계약 의사가 없으니 구단에서 나가라고 했다며 이에 감정이 상했는지 자신의 SNS에 갑작스럽게 타 팀에서 뛸 의사가 없다며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한달이 지나 6월 30일에 개인 유튜브를 통해 유튜버로 활동할 것이라고 영상을 올렸다.
은퇴 후 외모 관리에 신경을 쓰는지 선수 시절 때보다 나름 핸섬해지고 있다. 특히 은퇴 이후에는 안경을 쓰고 있는데 이게 매우 잘 어울린다는 평.
농구 선수였던 만큼 농구와 관련된 영상을 자주 올리며 특히 NBA에 진출한 유일한 한국인이다 보니 이와 관련된 썰을 자주 푼다. 그 외에도 221cm의 키와 관련된 영상을 올리기도 해서 농구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도 쉽게 볼 수가 있는 편이다.
쿠로코의 농구를 보고 캐릭터들과 걸맞을만한 선수들을 거론했는데, 아카시 세이주로의 호크 아이에 버금가는 판단력과 스틸에 뛰어난 선수를 신명호로 뽑았으며, 아카시의 앵클 브레이커에 따라올 사람을 전태풍으로 뽑았다.
3.1. NBA 2K 플레이
하승진 채널의 백미라고 할수 있는 컨텐츠. 구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컨텐츠라면 대부분의 NBA 2K를 플레이하는 영상을 꼽을듯 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NBA 2K20 커리어 모드를 자신의 현역시절 프로필[17][18] 그대로 만들어 하는 영상을 올렸는데 현역 당시 자신을 디스하고 여러 nba썰을 풀면서 즐겼으나 벤치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마지막 경기에서 4쿼터 3초가 남을때 까지 교체시켜 주지 않자, 급기야 자기팀을 상대로 악담을(...)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실제 선수 시절 처럼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서 데뷔를 하였는데, 감독인 테리 스토츠[19][20] 를 신랄하게 깐다.[21] 여기에 데미안 릴라드는 패스를 안 주고 릴라드만 슛을 쏴대는대다 하승진이 릴라드에게 패스를 주면 슛실패나 다시 패스하여 어시스트를 날려 릴라드를 엄청 까댔다(...). 결국 1시즌 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22] 로 이적하여 스테판 커리, 블레이크 그리핀 등과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골스에서 뛰면서 라이징스타 올스타 게임에 초청되는 쾌거를 누렸고, 최근엔 드디어 선발 라인업에 들게 되었다는 영상이 업데이트 되었다. 실제 NBA에서도 저렇게 성장했으면 어땠을까 하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실제 NBA 출신의 경험담에 하승진 특유의 예능감 넘치는 입담이 더해져, 그가 올리는 NBA 2K20 관련 컨텐츠는 평이 좋은 편이다. 이후, 2K20 커리어 모드 시즌2도 시작. 이번에는 하승진과 정반대로 아주 작은 체격의 슈팅 가드를 하고 있으며 역시 전 소속팀인 밀워키 벅스에서 뛰고 있다. 이후 NBA 2K21이 발매되면서 20은 중단을 선언하고 21로 새 게임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유튜브에서 인기를 얻어가면서 트위치에서도 방송을 올리고 있다. 트위치에서는 NBA 2K외의 다른 게임들도 많이 라이브로 스트리밍한다.
NBA 2K에서 보여준 재밌는 모습 덕분에 앰버서더로 임명되었다. 21 시즌부터는 2K에서 제공을 해주어 유료광고 포함으로 전환된다고 언급했다. 이 시리즈에서는 얼굴인식을 한것이 해괴한 얼굴로 인식되어 2K를 까는 모습도 초반에는 보였다(...).[23] 이 시즌에는 슈팅형 센터로 댈러스 매버릭스를 선택하여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와 보반 마르야노비치와 공존을 해보겠다고 했다.[24] 하지만 곧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로 팀을 옮겼다. 여기서는 르브론 제임스와 앤써니 데이비스가 워낙에 잘 넣다보니 어시스트를 종전보다 많이 기록하여 트리플 더블을 노리며 실패시 캐릭터 삭제, 뉴욕 닉스로 트레이드 등을 거는 등 무리수(?)를 남발하기도 했다(...).[25] 이후 파이널 우승을 차지하며 파이널MVP의 타이틀을 가져갔고[26][27] 이 우승을 끝으로 캐릭터를 은퇴시키고 PS5판으로 새로 시작할것을 예고했다.
2K21 PS4판의 초기에는 GM모드를 조금 하기도 했는데 이때 선택한 팀은 다름아닌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였다. 이때 단장이 되자마자 한 일은 상술한 악연이 있는 감독 테리 스토츠와 자신의 어시스트를 날려먹은 1등 공신(?)인 데미안 릴라드를 방출시켰다(...).[28]
2K21 PS5판에서는 전태풍으로 포인트가드를 키워달라는 요청이 많이 들어와 전태풍의 얼굴을 스캔하여 전태풍의 실제 신체스펙[29] 과 둘의 회의하에 만들어진 능력치(+오버롤에 맞춰 최대치까지 배분)를 설정하여 플레이하게된다. 캐릭터가 하승진이 아닌 전태풍인 만큼 첫 플레이는 전태풍에게 양보를 했다.
직접적인 플레이가 아닌 컨텐츠로 얼굴스캔만 한 적도 있는데 이 당시는 아버지, 누나, 아내, 아들까지 스캔을 한 적도 있다.
3.2. KBL 비판
2019년 7월 21일에는 자신의 유튜브 계정에 '''한국 농구가 망해가는 이유'''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동영상을 올렸는데, 이것이 조회수 200만회를 넘길 정도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영상에서 하승진은 지금의 한국 농구는 선수가 봐도 재미가 없다면서 그 원인으로 권위적인 지도자와 강압적인 훈련문화를 들었는데, 선수들이 지나치게 많은 훈련 때문에 피곤에 지친 상태로 경기에 나서는데 재미있는 플레이를 펼칠 수 있겠냐는 것이다. [30][31] 또 야간 훈련 때 팀 숙소에서 체육관 가는 길목에 서서 누가 훈련을 하는지 안 하는지 제대로 감시하듯이 지켜본다고 털어 놓았다. 거기다 일정도 지나치게 빡빡하여[32][33] 선수들이 몸을 회복할 시간도 부족하다고 한다.
게다가 KBL과 똑같이 매년마다 규정이 바뀌는 리그가 없어 오죽하면 선수들도 헷갈린다며 일관성 없는 리그 운영 요소에도 재미를 떨어뜨린다는 팬들의 생각도 지적했다. 연고지가 거의 수도권에 밀착되어 있어서 그런지 많은 농구 팬들을 끌어모으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팬이 없으면 프로 스포츠는 존재할 수 없으니 팬 서비스를 무시하지 말고, 팬들에 대한 고마움과 소중함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며 위기에 처해진 한국 농구를 재밌게 펼치기 위한 주변 환경을 만들어 서비스로 보답할 수 있도록 현역 선수들에게 당부를 전했다.[34]
농구팬들에게는 사이다 발언이라고 수많은 지지를 받았다. 가뜩이나 KBL이 퇴보하면서 리그 수준도 떨어지고 불만도 많은 차에 하승진이 팩트로 크블을 후드려패니 호평 일색. 하승진이 이렇게 논리적이고 조리있게 말을 잘 하는 사람이었냐고 놀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만 자율 훈련의 효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는 편. 대부분의 NBA 선수들은 자율 훈련을 알아서 척척 하면서 성실히 경기를 준비하는데[35] KBL은 자율훈련을 주면 훈련 참여 비율이 현저히 낮다는 게 현직 농구인들이나 현장 관계자들의 말이다.
이후 2019년 7월 29일 KBS 스포츠뉴스에서 대표팀 선수들도 하승진의 말에 공감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비슷한 시기에 창원 LG 세이커스 현주엽 감독이 KBS2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 고정으로 출연하면서 훈련을 지도하는 모습이 많이 나왔는데, 하승진이 말하는 지나친 훈련과 더불어 선수들을 갈구는 장면이 그대로 방송을 타며 순식간에 구시대 감독으로 낙인찍혔다.
이후 전태풍이 은퇴 이후 그의 의견에 옹호해 은퇴 이후 각종 매체에서 한국 농구를 비판했다. 이미 한국으로 올 때부터 한국의 산악 훈련부터 시작해서 한국 농구에 대해 비판했던 선수라서 놀랍지 않다는 평.
현역인 이관희는 이 영상을 저격하며 아직 망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영상을 자기 채널에 게시했는데 이관희의 영상은 그것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는데 급급하여 망하지 않았다는 내용에 대해 오히려 반박을 당하여 입방아에 올랐다. 하승진도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며 덧글로 사과의 뜻을 밝혔다.
3.3. 사건사고
최근 누나 하은주에게 달린 악플과 관련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분노의 글을 남겼다. 누나는 하승진 채널에 함께 출연해 자신이 초등학교 시절 농구 지도자들에게 혹사당하고 좌절해 농구를 그만두고, 농구를 다시 하기 위해 일본 국적을 취득할 수 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사연을 밝혔는데, 대다수 유저들은 안타까움과 협회와 해당 지도자에 대해 분노했으나 일부 악플러들이 하은주에 대한 수준 이하 비난 댓글을 남겼던 것.
- 하은주 항목에 나와있지만 이건 도저히 누나를 비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 동영상에서 하은주가 밝힌 바에 따르면 학교에서 어린 시절부터 무리하게 농구를 시켜 경기 중 절뚝거릴 정도여서 보는 관중들이 쟤 장애인 아니냐고 수근거릴 정도였지만, 어린 하은주는 이게 잘못됐다는 것도 인지못하고 그냥 뛰었다고 한다. 학교 측에서 아무 조치가 없었고 6학년 시절에 경기를 보러왔던 아버지 하동기 씨가 병원에 데려간 결과 무릎 연골이 거의 닳아 없어졌다는 충격적인 진단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이 쓰레기 감독은 어린 하은주에게 그럼에도 마지막 대회를 뛰어달라고 했고 하은주는 경기를 뛰었다고 한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하은주는 무릎이 엉망이 되어도 자랑스럽다고 유니폼을 입고 병원에 있었는데, 입원기간동안 학교에서 그 누구도, 심지어 동료들도 병문안을 오지 않자[36] 유니폼을 벗고 농구 안하겠다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고 한다.
점입가경으로 평범한 여중생이 된 하은주가 엄청난 장신이 되자 (중3때 195CM) 학교 측에서 농구를 하라고 압박을 했고, 잠시 다시 농구를 했으나 이건 아니라고 여겨 전학을 가려고 했다. 그랬더니 농구를 다시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요구했고, 이 학교 측에선 이 각서를 들고 선수 등록 말소를 요구, 협회에선 LTE속도로 말소시켰다는 것. 이것에 대해 하승진은 협회도 똑같은 놈들이라 분노했다. 결국 재활과 농구를 함께 할 수 있는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 것. 법적 조치 소식에 대다수 시청자들은 악플러에게 정의구현을 해주면 좋겠다는 댓글을 달았다.
[1] 1959년생[2] 1983년생[3] 키 188cm인 어머니 권용숙은 사이클선수였다.[4] 당시 삼일상고 경기를 직접 보지 못한 분들은 삼일상고가 하승진의 압도적인 피지컬만을 앞세워 우승했다고 여기나, 3학년 시즌에도 출전시간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당시 삼일상고는 하승진이 빠졌을 때 슈터 유희선을 중심으로 빠른 농구를 지향하던 팀으로, 경기 초반 하승진으로 상대의 힘을 빼놓은 다음 트렌지션 게임으로 압살하는 방식이었다.[5] 그러나 랄프 샘슨은 키 논란이 있는 대표적인 선수 중 한 명이며 (참조) 실제로 그가 221cm (7피트3인치)로 표기되기도 한 만큼 '''맨발신장이 221cm를 넘는''' 하승진보다 그가 클 확률은 적다. 맨발 키가 223cm인 마크 이튼같은 경우 (팔도 길어서 점프안한 상태에서 백보드에 손이 닿는 괴물) 위 사이트에 나온 링크에서도 나오지만 인터뷰에서 샘슨이 자기보다 2인치 작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당시에는 프로필 측정이 정확히 이뤄진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부정확한 게 많았다. 샘슨과 트윈타워를 이룬 하킴 올라주원도 7피트로 표기되지만 본인은 6피트10인치라고 밝혔고, 반대 케이스인 빌 월튼은 6피트11인치로 표기되지만 누구나 7피트 2인치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둘이 86파이널에서 붙었을 때 더 작아야할 월튼이 '''훨씬 커서''' 기자들을 당황시킨 적이 있다.[6] 하승진은 은퇴 후 30대 중반 나이에도 키가 222이 약간 안되게 나왔다. 또한 KBL입단 당시 독일제 신장 측정계로 잰 맨발 신장이 221.6cm이었다. 농구화의 굽이 3cm 이상이란 것을 감안하면 착화신장은 보수적으로 잡아도 225cm 언저리이며, 이 정도 키면 그냥 7피트5인치 (226cm)로 표기되어도 별 무리가 없다. 초장신 선수들은 그냥 맨발 키를 표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하승진 역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진출 당시 만 19세이던 그가 키가 더 큰 것인지는 불명.[7] NBA에 있을 때에는 전세기나 비즈니스 좌석을 이용하면서 원정 경기를 뛰었지만, G리그는 원정 이동 시간이 20시간 넘는 경우에나 비행기를 타고 이동한다. 그마저도 비즈니스 좌석은 고사하고 이코노미 좌석에 큰 덩치의 선수들이 서로 낑겨대면서 붙어 앉아 이동하는 것이다. 월급도 100만원 수준의 박봉에 밥값도 1주일간 20달러 밖에 지원을 안해준다. 20시간 이동거리를 큰 전세 버스도 아니고 25인승 작은 버스에 선수들이 타고 가니 그거 또한 불편한 일이라고 한다. 버스에서 내리면 체감상 3일 밤을 세운 컨디션이 된다고한다.[8] 사실 당시 레이커스는 샤킬 오닐 이적, 전 시즌에 합류했던 칼 말론과 게리 페이튼까지 모두 잃어 리빌딩 중이었으므로 승부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주전을 빼는 여유를 부릴 수 있는 팀이 아니었다. 실제로 이 경기의 주전은 코비 외에 밈, 주메언 존스, 처키 앳킨스, 사샤 부야치치로 코비만 빼고 커리어 내내 주로 롤플레이어로 뛰던 선수들이었다. 이때 레이커스에서 코비 다음으로 좋은 커리어를 보낸 선수는 카론 버틀러, 블라디 디박, 브라이언 그랜트였는데, 버틀러는 아직 기량을 만개하기 전이었고 디박과 그랜트는 은퇴가 가까운 선수들이었다. 심지어 버틀러와 디박은 경기에 뛰지도 못했다.[9] 해설자들이 하승진이 투입될때 "7피트3인치의 19살짜리죠. 우리가 월요일에 그의 첫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여주러 데려갔는데요."라고 썰을 풀고, 사람들을 존중한다며 칭찬했다.[10] 극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모제스 말론의 경우 손이 작기로 악명이 높은데, 빠른 기동력으로 누구보다 전투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잡고 한번 놓친 공도 집요하게 쫓아 다시 잡는 근성으로 극복을 했다. 물론 말론과 달리 키가 센터치고도 엄청 크고 운동능력이 쳐지는 하승진이 이렇게 할 순 없지만, 박스아웃을 하고 리바운드도 양손으로 확실히 잡아내거나 한손으로 공을 여러번 쳐내고 나서 잡는 식의 플레이는 할 수 있다.[11] 이걸 특히나 잘하던게 바로 파우 가솔과 야오밍이었다. 볼을 잡았다 내렸다하면 중간에 옆에서 쳐낼 수 있기 때문에 볼을 높이 올리는 것만으로 림 근처까지 닿는 장신들은 그냥 바로 올려넣는게 낫다. 샤킬 오닐의 경우 이런 플레이를 자주 하지 않고 공을 잡고 내렸다가 페이크를 몇번 하고 다시 올라가서 득점을 하는 적이 많았는데, 오닐은 손이 무지막지하게 크고 힘이 세다보니 양손으로 공을 잡고 있을때 수비수가 쳐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12] 실제로 포틀랜드는 05-06시즌 당시 하승진을 야오밍의 대항마로 시험해보는 듯, 로켓츠 전에서 의도적으로 야오밍과 매치업시켰다. 결과는 처참했지만. (야오밍 상대로 무득점. 이 시즌 로케츠전 통틀어 총 3점) 또한 잘 성장했다면 샤킬 오닐 상대로도 활용도가 있을 수 있는데, 로우포스트에 극단적으로 치중하는 오닐 특성상 자신보다 월등히 큰 센터들 상대로 평상시보다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물론 평상시보다 조금 더 힘들었다는 거지 웬만한 센터들은 다 박살냈다).[13] 상대 수비진이 짜여지기 전에 공격하는 것.[14] 하승진의 키면 1990년대 중반까지는 5급 판정이 나왔지만 이 분의 아들 덕(?)에 병역판정기준이 강화되면서......[15] 체중을 줄여도 기동력의 문제는 나아지지않고, 되려 파워가 떨어졌다고[16] 현역시절 프로필상 별명이 빅하였다.[17] nba 2k20은 키를 221cm까지만 늘릴수가 있는데 마침 하승진의 키가 221cm이다. 이때 한 말이 야오밍(맨발 229cm)은 못 만든다고...[18] 커리어 모드에서 안면 인식을 통해 캐릭터를 만들어주는데, 실제 하승진과 굉장히 흡사하게 나왔다. [19] 하승진이 밀워키 벅스로 트레이드 되었을 때, 벅스에서 그에게 방출 통보를 한 감독이 바로 테리 스토츠(당시 밀워키 / 현 포틀랜드 감독)이다.[20] 이전에는 스토츠가 하승진을 방출한 것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NBA에서 감독은 그런 권한이 없다. 선수단 구성은 단장, 사장 등 프런트의 고유 업무이며 필 잭슨, 조지 칼 등과 같이 경력과 짬이 많은 감독 정도 되어야 단장에게 요구할 수 있는 위치가 된다. 유명한 감독을 선임할 떄 사장, 단장 등의 직책 겸임을 제안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당시 스토츠는 애틀란타에서 첫 감독직을 2시즌 하다 잘리고 밀워키에 다시 부임한, 경력이 일천한 감독이라 선수단 구성에 개입할 수 있는 위치가 전혀 아니었다.[21] 게임상에서도 출전시간을 많이 안주는지라...[22] 골든스테이트 단장인 밥 마이어스는 실제로 하승진이 미국에 있을 당시 그의 에이전트였다고 한다. [23] 해괴하다 못해 무섭다는 반응도 있었을 정도(...). 하승진 본인도 무서워해서 결국 수염과 장발로 가렸다. 그나마 녹화중이 아닐때 다시 따와서 나중에는 실제와 흡사하게 나오기는 했다.[24] 다만 공존에는 실패했다. 애초에 2K21의 하승진은 포르징기스와 비슷한 슈팅형 센터로 키우려고 하여 롤이 완전히 겹쳤고 실제의 보반과 포르징기스도 같이 나오는 일이 거의 없다. 게임에서의 포지션도 포르징기스는 센터/파포, 보반은 센터라서 하승진까지 셋 중 하나는 못 나온다. 여기에 21의 라이벌 캐릭터는 주인공의 메인포지션과 같은 포지션이고, 이미 매버릭스에는 센터가 윌리 컬리-스테인, 드와이트 포웰이 또 있었다. 결국 후술하는대로 레이커스로 트레이드를 요청했다.[25] 닉스 트레이드도 없던일이 되었는데 트레이드 요청이 시즌당 1번이라서 불가능했다. 일각에서는 이것을 노리고 레이커스로 먼저 트레이드를 요청했다는 카더라도 있다(...).[26] 헌데 팬들에게는 졸렬하다(?)는 말도 듣는데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상대팀 덴버가 시리즈스코어를 3점을 선취한 상황에서 크게 이기고 있자 전원버튼을 꺼서 강제종료를 시켜 경기를 초기화하고 결국 시리즈스코어를 역전하였기 때문이다(...). 깨알같이 자막으로 7전 3승 3패라고 한것은 덤. 하승진은 6전이랬지만 모자란 1강종을 편집자가 비꼰(?)것이다(...).[27] 다만 진지한 비난은 아니고 하승진 자체가 게임을 진지하게 잘하는 유튜버가 아니라 본인의 실력이 딸린다는 걸 알고 셀프디스를 하기도 하고, 시청자들도 반장난으로 까는 것이다. 저 강종도 조용히 넘어가면 될 것을 티나게 끄고, 변명하는 하승진 옆에서 아내가 껐다고 까발리는 등 개그에 가깝게 이뤄졌다. 사실 하승진이 티나게 나대다가 주변에서 태클을 받고 깨갱하는 컨셉의 개그를 자주 선보이는데, 재밌게도 이 점은 선배 농구선수 서장훈과 씨름 레전드 강호동이 즐겨하는 컨셉이기도 하다. 세 선수의 공통점은 거대하고 강한 이미지가 강했으나 저런 컨셉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허당, 혹은 친근함을 어필했다는 것. 두 선배와 마찬가지로 하승진 역시 상당히 영리하다는 걸 알 수 있다.[28] 이 때문에 대부분의 팬들은 하승진이 정말로 릴라드를 싫어하는가 하는 의문까지 갖고있다. 다만 21년 2월 17일자 방송 중 채팅에서 릴라드에 대한 말이 나오자 멋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등 실제로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29] 여담으로 전태풍의 프로필상 키는 180cm, 지인들사이에서는 178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줄자로 키를 재보니 양말신은 맨발키가 179cm로 결론이 났다. 설정이 야드파운드법으로 되었는지라 근사값인 5피트 11인치로 정했다.[30] 그리고 영상을 올린지 1주일 후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그 당시 창원 LG 세이커스 감독이었던 현주엽이 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서 현주엽은 죽도록 까이고 있다.[31] 운동의 기본만 알아도 알 수 있는 어처구니없는 짓인데, 일정 이상의 강도를 넘어선 운동은 그대로 노동이 된다. NBA에서 백투백 경기가 문제시되는 건 단순히 힘들다를 떠나서 경기에서 겪은 극심한 피로도와 근손실 등이 회복될 시간이 없기 때문. 이 때문에 탈진할 때까지 운동을 하면 '''몸이 상한다.''' 이를 막기 위해 NBA에서는 경기장에 마사지사와 hot tub이 있고, 많은 선수들은 경기 직전에 낮잠을 자며, 팀 훈련도 저녁 경기시 오전에 끝내고 휴식시간을 주는 등 절대 지친 상태로 경기에 나서게 하지 않는다. 일반인들도 아는 이런 내용을 프로가 모를리는 없고, 단순히 "전통"이란 이름으로 내려온 악습일 가능성이 높다. 혹은 샤킬 오닐을 보고 "저런 선수는 KBL에서 안 통한다"(...)고 한 모 단장처럼 윗대가리들은 진짜 당연한 이치조차 모르는 농알못 꼰대들이라 안 바뀌는 것일수도...[32] KBL의 한 시즌 경기수는 54경기이다. 한 시즌 82경기를 뛰는 NBA에 비하면 적은 수 아닌가 싶을 수 있겠지만 그거야 NBA가 세계 최고의 리그이고 선수풀도 빵빵하기 때문이다. KBL은 NBA 외 전 세계 리그 중 거의 가장 많은 경기 수이다. 세계 제2의 농구 리그인 라리가 ACB만 해도 34경기다. [33] 다만 현실적으로 금전적인 부분이 큰 걸림돌이다. 상식적으로 한 시즌 경기 수가 줄어들면 그만큼 구단에서는 선수들에게 주는 연봉을 줄일려고 할텐데 과연 이 부분을 선수들이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또한 KBL과 WKBL은 스포츠토토로부터 지원금을 받고 있는데, 만약 경기 수가 줄어들면 스포츠토토에서 배팅할 수 있는 경기 항목이 줄어들게 되고 그만큼 스포츠토토에서 KBL에 주는 지원 금액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34] 팬 서비스 언급은 영상을 올린지 4개월 후 자신이 몸담았던 KCC 선수들이 64:90으로 대패한 후 한 꼬마팬의 하이파이브를 무시하고 그냥 락카로 들어가는 장면이 포착되면서 이 발언도 재평가를 받고 있다. 이 논란 당시에도 본인 역시 과거 어쩔수 없이 요청을 응하지 못했던 일까지 사과하며 이에 대한 비판영상을 올리기도 했다.[35] NBA는 기량이 저하되면 주저없이 퇴출되거나 D리그로 내려간다.[36] 동료들의 경우 학교 측에서 가지 말라고 압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