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생

 

'''연도별 세대'''
1950년대생
'''1960년대생'''
1970년대생
1. 개요
2. 한국
2.1. 작명 경향
2.2. 학력
2.3. 정치 성향
3. 해외


1. 개요


1960년부터 1969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가리킨다.

2. 한국


일명 586세대라고 불린다.[1] 2021년 기준으로는 모두가 54~64세인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1960년~1961년생이 60대가 되었고 60년대생의 막내인 1969년생은 51[2]~52세[3]가 되었다. 1960년대생은 1967년[4]~1976년 사이에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이들이 어린 시절을 보낸 1960~1970년대는 지금보다 빈곤한 시대였으나, 경제성장으로 보릿고개가 해소되고 중학교 입시 폐지, 대도시 한정으로는 고등학교 평준화 제도의 혜택까지 받으며 대부분이 고등학교까지 쉽게 진학하면서 절반 이상이 초등학교 졸업 이후 만 12세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윗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충분한 영양 섭취를 하되 과식을 하지 않아 비만은 거의 없었고, 컴퓨터의 본격적인 보급 이전이자 중학교 때까지는 학업의 부담이 적어 육체 활동을 마음놓고 즐길 수 있었기에 단군 이래 청소년기 최강 체력을 자랑한 세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시 권위적인 사회 분위기로 인해 체벌과 폭력이 만연한 학교생활을 보냈으며, 이 세대까지는 유아사망률이 10%에 달하기도 하였다.
1965~1966년생이 국민학생 3~4학년 시절인 1974~1976년부터, 한국에 전자오락실이란 것이 생겼고, 중학생 시절에는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즐겼다.
60년대 중후반생의 경우 중, 고등학교 시절에 교복을 입지 않고 사복을 입은 적이 있는 세대이자 옛날 교복을 입은 적이 있는 세대이다.[5] 이들이 공부한 참고서는 수학의 정석 (홍성대 저), 성문영어 (송성문 저), 맨투맨영어 (장재진 저), 고교기본영어 (박종호 저)[6] 등이 있었다.
이들의 대학 학번은 78학번[7]~90학번[8]으로, 대학에서 탱크를 볼 수 있었던, 그리고 대학에서 교련을 받았던 마지막 세대이다. 이 세대까지는 기차나 시내버스에서 담배를 피워 본 사람이 있었다. 데모로 인한 전과자도 상당히 많았고, 심지어는 대학을 졸업할 때 전과 2범(!)인 사람도 있었다.[9]
동시에 귀농귀촌을 하는 세대이기도 한데 일부는 경제발전기 때 도시로의 급격한 유입시절 부모님을 따라 서울 등 도시로 상경하였던 적이 있는 이들도 태어난지 4,50년만에 서울 등 도시를 떠나 농촌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하기도 한다. 이러한 귀농의 영향으로 농촌 인구 중 50대의 비중도 높아지게 된 편.
그리고 여가와 유흥에 있어서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경험을 한 세대이다. 일단 통행금지가 해제되던 시점(1980년대)에 바로 성인이 된지라, 현재 대한민국에서 즐길 수 있는 유흥거리를 성인이 되자마자 최초로 밤새 즐겨본 첫 세대이기도 하다. 3S 정책으로 대표되는 대중매체와 예체능의 부흥 역시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거치며 일찌감치 즐겨본 첫 세대이기도 하다. 그 이전 세대들이 전쟁을 직접 겪거나 혹은 전쟁 이후의 빈곤과 혼란스러운 정국으로 인해 청년 시절 내내 여가라는 것 자체를 제대로 즐겨본 적 없는 부류들이 대부분인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1960년대생 (586세대)는 대부분 1980년대 중반생 ~ 2000년대 초반생의 부모 세대이기도 하다.[10] 게다가 이 세대 역시 1960년~1961년생은 60대에 접어들었다.
이들의 형제자매 수는 4~5명으로 1970년대생 출생자들에 비하자면 많은 편이고, 1950년대생 출생자들보다는 약간 적은 편이다. 하지만 인구통계상으로는 가장 많다. 그 이유는 이 시기에 산아정책을 시작했지만, 1970년대와는 달리 강압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았으며 1950년대 초반생이 태어난 시기가 한창 전쟁통인지라 베이비붐이 시작된 1950년대 중후반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구가 매우 적고 편차가 컸다. 그에 반해 1960년대생은 전반적으로 편차가 없고 태어난 인구수가 꾸준했기에 일어난 현상. '''무려 10년 동안 일년에 백만명씩 태어난 유일한 시대라는 걸로 정리 가능하다.''' 그래도 약간씩 차이는 있는데, 1963년까지는 출생아 수가 살짝 감소하다가 그 이후로는 살짝 증가했다. 그 와중에 1966년생은 적은 편인데, 일본 미신의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 '''한 마디로 실질적인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이다.'''
인구가 많은 세대이기도 한데, 50대와 60대 이상은 대한민국 성인의 44% 정도다. 19세와 20대 15.9%, 30대 17.8%, 40대 20.8%, '''50대 19.9%, 60대 이상 24.1%'''를 차지할 정도로 '''50대 이상이면 성인 인구 44%를 넘는''' 수치에 이르렀다. (TV조선, YTN)
시대가 시대인지라 이들은 결혼도 점차 늦춰져가서 대부분 20대 중반 ~ 후반 혹은 30대 초반에 결혼한 사람들이 상당수이다.[11] 이들의 자녀 수는 평균적으로 2명 수준이다. 2020년대에 와서는 이들도 손주를 본 사람들도 다수 있다. 심지어는 유치원생인 손자가 있는 경우도 있다.
이 시기에 태어난 정치인들도 일부 포진되어있다. 진보 정당에서는 안희정, 이재명, 이인영 등이 있으며, 보수 정당에서는 김진태, 오세훈, 하태경, 나경원 등이 있다.
이들은 대략 14대 국회때 부터 정계에 진출을 시작했고,15대 국회때는 하나,둘씩 출마를 하더니 16대 국회때는 꽃을 피우고 17대 총선때는 학생운동 86세대가 대다수가 출마를 하였고 18대 국회때는 부조력자 19대 국회때는 50년대 생과 함깨조력자로 20대 국회에는 거의 주도권을 잡았고 21대 국회때는 완전히 주도권을 잡았다. 재벌가로는 이재용, 정용진, 최태원이 1960년대에 출생한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아마 이들이 이 연대의 일부 출생자들로 추정된다. [12]
대부분 이들은 과외금지조치의 피해자였는데, 돈 많은 집은 편법과 탈법으로 비밀리에 과외를 하였고, 전두환 정권부터 시작된 일반계 고등학교(인문계 고등학교)의 야자(야간 강제 자율학습)의 최초 피해자이다.
울릉도에서 유치원에 다니던 첫 세대였다.

2.1. 작명 경향


남성의 이름은 뒤에 ‘수’, ‘호’가 많이 들어갔고 여자는 ‘숙’, ‘순’ 등이 많이 들어갔다. 이 세대 남성의 이름 1위는 영수, 여성의 이름 1위는 미숙이었다.

2.2. 학력


2015년 인구총조사 기준 해당 세대의 학력은 다음과 같다.
연령
무학
초졸
중졸
고졸
학사 이상[13]
45~49세
11,139 (0.3%)
65,181 (1.5%)
211,364 (5%)
2,147,283 (50.4%)
1,824,440 (42.8%)
50~54세
21,517 (0.5%)
220,520 (5.3%)
482,979 (11.7%)
2,027,427 (49%)
1,386,711 (33.5%)
이 때까지만 해도 고졸이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대졸, 중졸, 초졸, 무학 순이다. 대졸자 대부분은 남성이었다.

2.3. 정치 성향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50대에 속하는 이들 1960년대 출생자들은 여당과 보수야당의 지지율이 엇비슷하면서도 여당의 지지율이 좀더 높은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20년 기준으로 50대는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운동권의 시작 세대이다.[14] 그 후로 지금까지 50대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여러 현실을 거치며 정치 성향도 그에 따라 다양해졌고 지금은 민주당 지지 비율도 상당히 높기는 하나 40대와 60대 이상 세대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중립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 즉, '''민주당계 정당대한민국 보수정당의 지지율이 절반으로 갈리는 중도성향'''의 세대다.
이 세대는 젊은 시절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며 1987년 마침내 6월 항쟁으로 대한민국이 민주화를 이루는데 가장 크게 공헌한 세대이다. 또한 김대중, 김영삼에게 큰 지지를 보내 그들이 정치권에서 힘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 세대이기도 하다. 이들은 정치에 2000년대 초반부터 대거 참여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386세대로 불리기 시작했다.[15] 이들은 15대 대선16대 대선에서는 김대중, 노무현에게 다수의 표를 주며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탄생의 주역이 되었다. 특히 노무현 정부 시절엔 정부 요직에도 많이 진출하며 본격적으로 정치권의 주요 세대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 세대는 한편으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이전보다 보수화되는 경향을 보인 세대이기도 하다.[16] 이러한 영향은 17대 대선에서 이명박에게 더 많은 표를 주면서 표출되었다. 또한 18대 대선에서도 박근혜에게 50%에 가까운 표를 주며 젊은 시절에 비해 보수화 된 성향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이는 시간이 흘러도 보수화 되는 경향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70년대생과의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50대 세대가 30-40대로서 가정을 책임져야 하던 때에[17] 진보 정권 하의 양극화 심화, 부동산 가격 급등 등을 겪었고 이것이 이명박에 대한 투표라는 '실망'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 후 이명박 정부박근혜 정부에 대하여도 실망을 하게 되면서 민주당 지지 비율이 다시 높아졌다.
실제로 19대 대선에서도 문재인이 50대에서 1위를 하긴 했지만 36.9%의 득표율로 평균 득표율에는 못 미쳤고 홍준표의 득표율은 26.8%로 40대 이하와는 비교되지 않는 상당한 득표율을 올리며 전체 세대 중 가장 균형된 득표율을 보였다. 21대 총선에서도 더불어민주당 49.1% : 미래통합당 41.9%로 전국 득표율과 유사한 득표율을 보이면서 캐스팅보트로서의 역할을 했다. 이들을 완전히 진보성향이라 보기는 힘들다는 것.
21대 총선 출구 조사에 의하면, 50대 여성은 50대 남성보다 미래통합당 지지율이 조금 더 높은것으로 나타났다.[18] 이런 현상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50대 여성이 주로 가정경제를 맡으면서 실물경제에서 느끼는 부담이 더 클 수 있으며, 자사고를 비롯한 교육 정책 문제와 부동산 정책,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인해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출처 링크
그 외 대다수가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많은 연령대이기도 하다. 1998년 일본문화 개방 등으로 일본문화를 친근하게 받아들이는 국내의 20대 이하의 젊은층과는 달리 이들의 부모 세대라 할 수 있는 50대로 갈수록 반일감정혐일 성향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에 태어났던 세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반일성향이 높은 이유는 그들의 부모들이 대부분 일제강점기를 몸소 겪었던 분들이 많았고 그들의 실화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들었던 세대였기 때문에 정치적, 사회적으로 반일감정이 짙은 세대이기도 하다. 여론조사에 있어서도 50대 이상이 대부분 반일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정도. 일부 50대들은 일본문화를 친근히 받아들이는 젊은 세대를 아니꼽게 보거나 왜놈한테 정신 팔아버린게 아니냐는 비아냥을 내놓기도 한다. 국내 연령대 중에서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반감과 혐오가 높은 세대라 일본문화에 철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부모들이 일본 문화를 좋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3. 해외


세계적으로는 1965년생부터 출생율이 감소하는 세대이기에 '베이비 버스터'라고 불리며 1968년생부터는 'X세대'이다. 이 시기 출생자 중 도시 전문직 종사자는 '여피족'이라 불리고, 무자녀 맞벌이 젊은이들은 '딩크족', 개인주의자는 '님비족' 등으로 각각 불린다.
일본에선 이때 출생자를 '오타쿠 세대'라고 한다. 이들은 선배 신인류 세대보다 더 자유분방하고 탈권위적인 발상을 가지기도 하기에 일본 애니업계의 현업자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청소년 시절부터 다수의 공감보다는 소수 집단의 공감에 집중하기도 한다. 20대 들어선 일본 버블경제도 경험했다. 다만 1992년에 버블 붕괴 이후에 1970년대 생들과 함께 피해를 가장 많이 본 세대.[19]


[1] 물론 대학을 나온 사람 한정이다. 당시 대입 비율이 현재보다 적은 걸 감안하면 꽤 적은 수치이다.[2] 생일 이전[3] 생일 이후[4] 빠른 1960년생은 1966년[5] 빠른 1970년생도 포함.[6] 당시 군 장교들이 진급심사를 준비할 때 가장 많이 썼던 책인데, 영어가 진급심사 필수 요소였기 때문.[7] 조기입학, 조기졸업 포함.[8] N수생 포함.[9] 일부 대학에는 전과 3범으로 졸업한 졸업생도 있었고, 전과 1범, 2범도 상당히 많았다.[10] 아주 심한 늦둥이이면 자녀가 2010년대생들도 소수 있다. 대표적으로 이주노, 백종원, 주영훈, 정준호, 신현준, 박준형(god) 등이 있다.[11] 여담이지만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자식들의 80%(특히 90~95년생의 경우는 95% 이상)가 이 연대의 부모를 두었다. 왜냐하면 90년대 당시 남성 평균 결혼연령이 28세였기 때문이기도 해서 딱 들어맞는다.[12] 것도 극초반으로 추정. 이 연대 말년엔 분명 빠른 70까지 일부 포함되었을 것이다. 현시점의 만나이 성인 기준으로도 1979년 ~ 1988년에 모든 60년대생이 완전한, 온전한 성인이 되었다. 물론 후반 말년대에 극초반인 빠른 70 역시 일부 포함되겠지만서도. 조기졸업 그리고 몇 년 이상 휴학-재학한 경우 등등의 일부 역시도 포함되었을 것이다.[13] 학사, 석사, 박사.[14] 당시의 대학진학률은 높지 않았기 때문에 이 세대의 다수가 운동권이었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 하지만 전두환 정부의 여러 부조리한 모습을 목도한 젊은이로서, 대학생이 아니더라도 시위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15] 지금은 시간이 흘러 586으로 불린다.[16] 2020년 현재의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50대는 문재인 정부 지지율이 40%대에 머물러 있다.[17] 현재의 40대는 민주당 집권기에 보다 젊었기 때문에 이때의 경제 정책으로 인한 부담을 별로 지지 않았고 이는 이들의 민주당에 대한 지지가 50대보다 높은 이유 중 하나로 볼 수 있다.[18] 21대 총선 남성 50.8% : 40.1%, 여성 47.5% : 43.8%로 여성의 미래통합당 득표율이 남성보다 조금 높았다.[19] 그래도 70~71년 생들을 제외한 70년대생들 보단 버블 경제의 수혜를 가장 많이 본 세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