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생
1. 개요
1970년부터 1979년 사이에 출생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2. 한국
이들은 1977년[1] ~1997년에 학창시절을 보냈다. 대학 학번으로 치면 88학번[2] ~99학번[3] 이며,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4] 와 첫 수능 세대[5] 가 모두 들어간다. 이 연령대 남자들이 첫 얼룩무늬 전투복 세대이다. 이들 세대부터 서울대학교의 여학생 비율이 20%를 넘어섰다. 1970년대생은 1977~1986년 사이에 국민학교를 입학했다.
1970년대 초반생은 대부분 제3공화국 시절에 태어났었고[6] , 이들이 살면서 처음본 TV 역시 흑백 TV였다고 한다. 그들이 유년시절부터 국민학생 저학년까지인 1970년대는 대한민국이 경제발전을 이룩하기 시작했지만 서민들의 삶은 여전히 나아진것이 없었고, 굶주린 아이들도 꽤 많았던지라 가난했던 시절을 경험했던 마지막 세대이다. 70년대 초반생들의 증언에 의하면 어린시절 동네 거리에는 그냥 아이들의 놀이터였다고 하며 친구들과 재미있는 추억을 쌓으면서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대부분 이들은 즐거운 추억 덕분에 비록 가난했던 유년시절이었지만 불행하지는 않았다고 회고했다. 이들이 국민학교에 들어갈 무렵에는 아이들이 넘쳐나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누었고, 콩나물 교실을 경험했던 세대이다. 이들이 국민학교때는 박정희 정권과 최규하 정권, 그리고 전두환 정권까지 대통령이 2번이나 바뀐 만큼 혼란스러웠던 시대이며 이들이 대부분 국민학교에 재학하던 1979년에 10.26 사건이 발생하여 현직 대통령이 암살당하는 소식을 들어서 많이 놀랬었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사건이고 한국 현대사에 가장 중요한 사건인지라 아직도 기억한다고 한다. 5공 정권시절인 1980년대에 중, 고등학교에 다녔고, 중학생~고등학생이던 1987년에 민주화를 경험했으며 1988년에 서울올림픽 개최, 80년대의 마지막해인 1989년당시 베를린 장벽 붕괴, 20대 청년 시절과 대학생이던 1990년도와 1991년에는 독일 통일, 소련 붕괴를 경험했을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중대한 시기와 세계사에 나와있는 중요한 시대를 경험한 세대이다. 또한 이들은 n86세대와 함께 학력고사를 치뤄 대학에 진학했던 세대이다. 이러한 1970년대 초반생들의 삶을 돌아보았듯이 비록 70년대생이지만 유년기와 학창시절의 시대를 고려하면 70년대생이라 하기 보다는 실질적으로는 기성세대의 상징인 n86세대, 1960년대생에 더 가까운 세대이다. 유년시절이나 학창시절이나 항상 1960년대생들과 함께했기에 이들은 1960년대생의 연장선 혹은 n86세대인 1960년대생에서 X세대인 1970년대생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세대’라고 표현할수 있다. 1970년대 중반생부터는 제4공화국 시대에 태어났고, 국민학교를 1980년대부터 다니기 시작한 세대이며 민주화가 본격화된 1990년대에 중, 고등학교에 다녔다.[7] 70년대 초반생들이 중, 고등학교 다닐때인 1980년대는 삐삐가 없던 시절이라 오직 공중전화 및 집전화기로 통화한것과는 달리 70년대 중반생부터는 중, 고등학생때 대부분 삐삐로 통화했다. 학력고사가 적용된 기성세대와는 달리 수능 첫 세대이다[8] 보니까 기성 세대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하여 진정한 X세대 및 1970년대생이 시작된 세대로 볼수 있다. 결론으로 이런 변화로 인해 1970년대생은 초반생과 후반생의 세대차이가 심하게 나며 경험한 시대가 각각 다르다.
199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에 대학생활 혹은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사교육 자유화가 되면서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사교육으로 길러진 세대이기도 하다. 대치동과 목동 등의 학원가 출현이 바로 1970년대생의 고등학생 때부터다.[9] 아파트 키즈들도 이 세대부터 시작된다. 1972년생들은 중, 고등학교 시절 교복을 단 한 번도 못 입어 봤다. 남학생들이 가정 관련 내용을, 여학생들이 기술 관련 내용을 배운 첫 세대이다.[10] 또한 바른 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을 처음으로 배운 세대가 이 세대이다. 대학 진학 후에는 586 세대 선배들과 달리 자유로운 생활패턴과 개인주의를 고수하며 운동권이 꽉 잡는 상명하복형 대학사회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생은 대부분 1990년대생~2010년대생의 부모 세대이기도 한다.
2021년 기준으로 70~71년생은 50대로 접어들었고, 79년생이 42세가 되었다.[11] 이들은 현재 자식이 보통 학생이지만 70년대 후반생은 자식이 아기이거나 부모가 아닌 경우도 있고, 70년대 초반생은 자식이 다 커서 사회에 진출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 활동하는 3세대 아이돌 가수들 중에서 해당 세대의 부모를 둔 멤버가 다수이다.
이 세대가 청춘이었던 시절을 다룬 드라마가 바로 응답하라 1988과 응답하라 1994인데, 응8은 1960년대생과 겹치는 반면, 응4는 완벽히 70년대생 이야기다.
SKY 캐슬의 작중 부모들이 70년대생이다. 응답하라 1994의 등장 세대가 나이를 먹어 SKY 캐슬의 작중 부모 세대가 된 것이다. 자기 세대부터 시작된 사교육 열풍을 아이들에게 이어가고 있고, 치맛바람 속에서 성장한 첫 세대인만큼, 작중 강준상처럼 부모가 정해준 길로 쭉 걸어왔지만, 정작 자신이 어디를 향해 가야할지 헤매는 면모도 보인다.
이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은 형제자매 수가 평균 3~4명이었고,[12] 이들 세대의 자녀[13] 들은 1~2명, 아주 가끔 3명 수준이다. 이들 중에는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는 인식이 생겨서인지 2020년대에 들어와서 부모가 된 사람, 40대에 늦장가를 간 사람도 제법 많이 볼 수 있으며, 아직도 미혼인 사람들도 종종 있다.
70년대 후반생의 경우 문화적으로는 <아기공룡 둘리>나 <달려라 하니>, 황미나, 이현세, 허영만 작품 같은 명작에 심취한다든가, 일본만화 해적판에 심취한 이들이기도 하다. 비디오 게임을 처음 접하던 세대이기도 하고 아이돌 문화를 처음 접하던 세대이기도 한다. 이 세대와 그 이전의 세대의 세대차이는 꽤나 심한 편이지만 이 세대와 그 이후의 세대의 세대차이는 기성세대와의 차이만큼 심하지 않다. 이 때문인지 1970년대 초반생들과 1970년대 후반생들과의 세대 차이도 심하다는 사람들도 꽤 있을 정도. PC통신을 청소년 ~ 청년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했던 세대이며 또한 1970년대 후반생들 한정으로 바로 후세대인 1980년대생들과 같이 초창기 인터넷 문화를 이끌었던 세대이기도 하다. 오타쿠 1세대 중에는 이 연대에 태어난 이들도 있는데, 초대 하이텔 애니메이트 시삽을 지낸 박병호 교수와 유명 애니메이션 평론가 송락현, 김준양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만화가 중 이명진, 박상용, 손희준, 이빈 화백 등은 전년대에 태어난 박산하, 이충호 화백과 더불어 이전 세대들과 달리 문하생 코스를 안 거치고 일본만화 해적판 등을 보거나, 동인활동 등으로 실력을 쌓아 공모전을 통해 데뷔하며 동세대들의 공감을 얻었다.
대한민국 주민등록 평균 연령이 41.5세고 1971년생이 가장 많다고 한다.(2021년 기준 49~50세.) 무려 100만명 넘게 태어났었다. # (이 기사는 2018년이고, 이 뉴스 인구는 2017년 기준이다.[14] ) 그리고 전체적으로 1950년생~1971년생들이 다른 세대와는 차원을 달리 할 정도로 많이 태어났다.
한국에서는 사회적으로 결혼, 출산을 해야 하는 분위기가 더 강했으며 경제적으로 고도성장기였던 시대에 결혼적령기를 맞은 586세대는 장애인, 범죄자, 성직자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부 결혼과 출산을 한 반면 IMF 외환위기를 겪기도 했고 급속도로 서구식 개인주의, 페미니즘도 퍼진 1970년대생은 만혼하고 자녀를 늦게 낳은 경우도 많다. 거의 이때부터 대한민국/출산율이 망하고 저출산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박정희가 대통령이었던 제3공화국, 제4공화국 시절에 태어났던 세대들이라는 점이다. 2020년 현재는 1972년 12월생 ~ 1980년 3월 15일생들이 대부분 여기에 속하는데, 유신성향의 제4공화국 시절부터 태어났던 1972년 12월생 ~ 74년생이 여기에 속한다.[15] 이들은 어려서 미니스커트 단속을 보고 자랐으며, 교복을 못 입어 본 분들은 대개 1970 ~ 72년생들이다. 특히 이들 중 비수도권 군 지역+수도권 신도시 출생자들은 아예 유치원에도 다녀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소위 좀 놀았다고 하는 불량한 사람들은 오렌지족, 야타족, 폭주족등이 유명했다. (대표적으로 주유소 습격사건, 비트(영화), 노랑머리)
아마 1970년대생의 일부로 가장 근접되는 모습으로 이들임에 틀림없다. [16]
대표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의 박주민, 이재정, 전재수, 박용진, 김해영 등이 1970년대생 출신이다. 하지만 변희재, 김용남[17] , 김세연, 문대성, 오신환, 김희정, 홍정욱 같은 보수정당 정치인들도 제법 있다. 이들은 2020년 기준으로 정계에서는 거의 어린 축에 속하는 이들이다.
2.1. 작명 경향
고도 성장 시기에 태어난 이들은 성공에 대한 열망을 담아 이름에 '이룰 성', '공 훈'자가 많이 들어갔고 여자는 '은 은'자가 많이 들어가 인기 이름은 남자의 경우 정훈, 성훈, 성호, 성진 등이, 여자는 은주, 은정, 은희 등이었다.
2.2. 학력
2015년 인구총조사 기준 해당 세대의 학력은 다음과 같다.
대졸이 고졸 이하보다 많다. 여성들의 대학 진학률도 이 시기에 증가했는데, 기존에 남초과이던 경영학과, 행정학과, 법학과에서 여학생 비율이 10%를 넘은 것도 이 세대부터다.
2.3. 정치 성향
40대는 어느 정도의 자산을 확보하고 나이도 드는, 즉 기성세대로 진입하기 시작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보수색이 강해지기 시작하는 세대로 흔히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는 40대였던 1960년대생들 주축을 차지했던 시절까지의 이야기이며 40대이던 1970년대생들이 주축을 이루는 현재는[19] 는 1980년대생인 30대를 넘어서는 가장 강성 '''민주당 지지''' 세대이다.
현재의 4세대들은 1세대 운동권이 아닌, 민주화 이후 90년대의 운동권을 이끈 세대이다. 민족주의 열풍을 타고 한총련 등을 이끌며, 현재까지도 진보단체,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 혹은 민족주의 단체의 간부 및 조직원들 중 다수가 이 세대이다.[20]
무엇보다도 이들은 독재에서 민주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삶의 전반에서 모두 겪었으면서도, 과거 노무현의 파격적이고 개혁적인 치정에 호응했던 세대이다. 한편으로는 직후 보수정당이 집권했던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각종 비리와 파동을 경험하며 여러모로 부정하고 무능하다는 인식을 받았다. 때문에 여전히 운동권, 친노 세력이 주축인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호감도가 높고[21][22] , 과거 독재정을 이끈 세력이 잔존하고 이명박근혜를 배출한 보수정당인 현 국민의힘을 굉장히 증오하는 성향이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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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창간 32주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40대는 다른 세대들과 달리 한국사회의 갈등 원인에 대해 유독 이견을 보인다.''' 다른 세대와 마찬가지로 한국사회에서 가장 심한 갈등은 이념 갈등이라고 응답하면서도, 그 심각성에 대해서는 모든 세대들 중 가장 낮게 응답했다. 다른 모든 세대들이 그 원인에 대해 입을 모아 진영논리를 거론한 반면, 유독 40대만큼은 미디어의 선정적 보도 행태가 갈등을 괜히 조장한다면서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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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층 간 갈등에 대해서도 이들은 다른 세대들과 달라지는 독특한 입장을 보였다. 물론 다른 세대들과 마찬가지로 자산의 양극화 확대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꼽기는 했지만 그 비율은 모든 세대들 중 가장 낮았으며, 다른 모든 세대들이 2순위의 갈등 원인으로서 불경기로 인한 일자리 감소를 거론한 반면, 유독 40대만큼은 2순위로 불공정한 경쟁 시스템에 책임을 물으며 경기변동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모순이 계층 간 갈등을 초래한다'''고 생각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뉴스기사를 참고.
정치적으로는 진보성향이 강하지만, 사안에 따라 보수정당을 지지했던 세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는 진보성향이 아주 강해졌는데 주요 정치인들도 진보성향의 들이 아주 많다. 냉전이 종식되면서 남북 간의 화해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고, 북한에 대해서도 강경론보다는 화해 같이 온건론을 주요 중요시하며 반미, 반일 감정 역시 많고 민주화 이후의 운동권 세대로 한총련을 이끌며 학생운동을 하면서 보수정권에도 제법 저항한 세대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회의 안정을 중요시한다.
다만 한국 특유의 정치적 변화 때문에 이 세대는 정치적으로 진보정당에 강한 호의를 보이지만 정작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는 진보적이기보단 오히려 보수적인 모습이 보인다. 이전의 노년세대나 베이비부머들에 비해선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국수주의, 마초이즘, 성소수자 배척이 적잖게 남아있는 세대이며 타 문화에 대한 관용적 의식이 동 세대의 서구권 국민들에 비하면 부족한 편이기도 하다. 유년기 및 청소년기까지는 개발도상국에 머문 한국에서 자란지라 태생적으로 다른 국가의 70년대생들 보다는 리버럴함이 덜한 편.
3. 해외
영미권에선 1991년 더글러스 쿠플랜드가 쓴 동명의 소설에서 따와 'X세대'란 명칭이 붙었으며, 일본에선 단카이 세대가 이 때 2세를 낳음으로서 '단카이 주니어'라고 별칭이 붙었다. 해당 세대는 출생율 저하 추세 속에서 예외적으로 인구가 많은 계층이다.
이들이 청소년이 된 1980년대 일본 사회는 평균사회에서 경쟁사회로 돌입된 터라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가 배출되는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다만 1980년대에 10대 청소년이면서 1960년대생들과 함께 혜택을 많이 본 세대이다. 다만 버블 붕괴 이후의 20대 시절에는 30대이던 60년대생들과 함께 가장 피해를 많이 본 세대이다.
[1] 빠른 1970년생은 1976년부터.[2] 조기입학, 조기졸업 포함.[3] N수생 포함.[4] 1974년생[5] 1975년생[6] 1970년생~1972년 12월 26일생 한정. 1972년 12월 27일생~1973년생은 제4공화국 시절에 태어났다.[7] 1974년생은 고등학교 한정.[8] 1974년생 제외.[9] 서울 3대 학원가로 불리는 대치동, 목동, 중계동 중 대치동과 목동이 90년대에 생겼고, 중계동은 그보다 조금 늦은 2000년대에 학원가가 형성되었다.[10] 그 이전에 남학생들만 기술을, 여학생들만 가정을 배웠다.[11] 생일이 지나지 않은 79년생은 41세.[12] 1970년대 초반생중에서는 형제수가 5명 이상인 집안도 있고, 서울 등 도시권에서는 특히 후반 한정으로 형제수가 2명인 사람들도 있다.[13] 주로 2000년대생, 2010년대생.[14] 2017년 12월 기준 1971년생은 46세[15] 4공의 존속 기간은 1972년 12월부터 최규하가 물러나고 전두환이 앉는 1981년까지.[16] 이 연대 말년엔 분명 생일이 빠른 1980년생까지 일부 포함되었을 것이다. 1990년~1999년 기준으로 모든 1970년대생이 완전한, 온전한 성인이 되었다. 물론 후반 말년대에 극초반인 빠른 1980년생 역시 일부 포함되겠지만서도. 조기졸업 그리고 몇 년 이상 휴학-재학한 경우 등등의 일부 역시도 포함되었을 것이다.[17] 1970년생이지만 빠른이라 1969년생과 학교를 다녔다. 어떻게 보면 1960년대생이라고도 속할 수 있겠다.[18] 학사, 석사, 박사.[19] 이제는 1980년대생이 40대에 접어들기 시작했다.[20] 1990년대에 운동권을 한 이 세대는 민주화 이후에 운동권을 한 것임에도 전두환 정권에 맞섰던 386세대보다도 더욱 강한 진보 성향을 보이는 이유는 노동법 파동, 한총련 진압, 안기부법 개정, 경제 국제화 정책 등에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21] 현 민주당의 검찰개혁 기조도 물론 지지한다.[22] 동일맥락으로 검찰에 대한 반감이 높다. 노무현 시절 검찰이 보여준 태도도 문제시하며, 이명박 정부시절 검찰의 수사가 노무현만을 타겟해 결국은 자살을 불러왔다고 비추어지기 때문. 이어 현 사법체계에서의 검찰의 권력이 구조적으로 지나치게 비대하다는 의견이 다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