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생
1. 개요
1950년부터 1959년까지 태어난 이들을 말한다. 소위 베이비붐 세대이다.
2. 한국
이들은 65세~75세이다.(생일이 지나지 않은 1959년생~생일이 지난 1950년생) 이들 중 생일이 지난 1956년생부터는 노년의 나이에 접어들었으며(65세), 생일이 지나지 않은 1956년생~1959년생은 중년기의 막간을 보내는 중이다.(60세~64세) 1950년대생은 1957~1966년 사이에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1955~1959년생은 최초로 초등학교부터 3월 입학을 적용받은 세대이기도 하다.
195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1950년 6월 중순 이전에 태어난 생을 제외하면 그 이후에는 '''6.25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 태어난 세대들이었다. 세상을 보자마자 총포탄의 소리를 듣고 피난길에 오르기도 하였으며 휴전 이후에는 가난함의 시련 속에서 성장하며 미군들이 주었던 스팸 햄캔이나 초콜릿 등을 받으며 어려운 유소년시절을 보냈다.
다만 이전 세대인 1930, 1940년대생들과는 다르게 한국전쟁 당시에 이제 태어났거나 혹은 태어나기도 전이었던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전쟁 자체를 직접 경험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정확히는 전쟁 이후의 황폐화된 한국에서 나고 자란 세대. 이 세대의 20~50% 정도가 태어난 뒤 초등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하고 사망했으며 뒷 세대인 1960년대생도 유아사망률이 10% 정도였기에 이들 중 상당수는 유년 시절에 동생의 죽음을 겪은 경우가 있다. 현재 유아사망률은 약 0.5%로 1000명 중 5명이 초등학교 이전에 죽는데 대부분 안전사고와 부모님의 학대가 대부분이다.
유년기때는 4.19 혁명도 겪었지만 10대가 될 무렵에 1963년에 박정희 장기집권 정부가 들어선 후, 대학생 들어 반유신투쟁에 대거 뛰어들어 긴급조치 위반으로 잡혀갔기에 '긴급조치 세대(긴조세대)'라고도 한다. 30대가 된 이후에는 제5공화국인 전두환 정부 시기를 보내며 현실에 순응하며 권위주의적 사고관에 편입됐으나, 1987년 6월 항쟁 때 '넥타이부대'로 투신하며 민주화에 기여했다. 그리고 40대 때 IMF의 희생양으로 명퇴를 당했던 세대들이기도 하다. 반면 1950년대 중후반생들은 '모래시계 세대'로서 20대 때 5.18을 계기로 각성하여 노학연계 투쟁 등에 뛰어들었다.
1950년대생은 대부분 1970년대생 ~ 1990년대생 부모 세대이기도 하며 아주 심한 늦둥이일 경우 2000년대 초반생까지 있다. 현재 유치원생들의 조부모가 대부분 이 세대 출생이다.
아주머니, 아저씨라고 불리는 마지막 세대가 바로 이 60~64세이다. 다만 간혹 노인 남성한테도 아저씨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산가능 인구의 마지막 세대라서 불편함이 좀 없잖아 있다.
학생 시절 도시락 검사, 대변 검사, 쥐잡기 운동 등을 경험하기도 했다. 또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면 '검은색 교복'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3차 교육과정으로 교육받은 세대이기도 하다. 남성들의 경우는 장발 단속, 여성들의 경우는 미니스커트 단속의 주요 피해자가 됐다.
1957년생까지는 중학교 입시를 보고 중학교에 입학하였고 떨어지면 초졸로 만12세에 취업하여 사회생활을 하였으나, 1958년생부터는 중학교 입시 없이 중학교에 들어갔다. 사실상 중학교 무시험 입학의 혜택을 받은 첫 세대. 중학교 무시험 입학 이전에는 우수한 학업성적과 부모의 지원에 힘입어 명문 중학교에 입학하면 초등학교 졸업 후 만12세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대다수의 또래들과 완전히 괴리된 삶을 살았던 것이, 당시 대도시의 명문 중학교-명문 고등학교를 거치면 오늘날 못지 않게 높은 명문대 진학률을 기대할 수 있었으며 서울의 모 고등학교는 전교생의 절반 이상을 서울대학교에 보내기도 하였다. 고졸로 취업하더라도 초졸로 공장 잡부, 자영업 등을 전전하던 다른 또래들과 달리 번듯한 기업에 취업하여 넘사벽의 삶을 살았던 세대였고.... 이들은 고교 시절 수학의 정석과 성문영어로 공부했다고 한다.[1] 이 시기 출생자들은 대학에 가서도 교복을 입었는데, 그마저도 입학식 때 입고, 1학년 때나 많이 입지 3학년을 넘어가면 교복을 입는 경우가 10% 미만으로 급감한다. 교육과정의 경우 이들은 대체로 2차, 3차 교육과정을 밟았다. 대학 학번은 대체로 69~78학번이었다.
이들은 대학 학번으로 치면 69~78학번[2] 이며, 데모가 엄청나게 많아 대학교 앞에서 탱크와 화염병을 봤다는 증언을 남기기도 했다. 실제로 데모에 참가까지 했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의외로 이 세대의 남성들 중 집시법 관련 전과로 인해 병역면제를 받은 사람이 있을 정도. 또한 대학 시절 교복을 입은 것[3] 은 물론, 강의실 뒤편에 모여서 담배를 피우기도 했으며[4] , 이 세대 남자는 군대 시절 민무늬 전투복을 입었다고 한다. 화폐 가치가 낮았던 시절에 대학을 다녀서 이들은 '내가 대학 다닐 때 한 끼에 100원', '책 한 권에 7000원', '서울에서 고향까지 10000원이면 갔다'와 같은 말을 하기도 했을 정도이며, 대학 시절 교내에서 여학생을 보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5] 는 말을 하기도 한다. 토요일 수업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 대학 출신자들은 한 학기에 22학점까지 수강 가능에 8학기 모두 최대치까지 채우면 170학점 이상도 가능했다. 당시 대학교에는 구두를 신은 남성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이 시기 대학생들 중 남성은 정장을 많이 입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들은 주로 노인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나,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노인 인구가 많아진 요즘은 노년이 아닌 중년으로 취급받는다. 10년여 후인 2030년대에는 그 대상이 60대 전체가 될지도 모른다.
3, 40년대생 만큼은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오늘날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주역들이었다. 1970년대 경제개발화가 되어가는 시절에 대부분 노동을 통해서 산업의 역군으로 기여하였던 마지막 세대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연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대체로 형제수가 전후세대해 비해 많은 5~6명이 대다수이며, 그들의 자녀는 2명을 웃돌고 있는 경우가 다수이다. 근래에는 손주를 본 이들도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심지어 남자 한정으로[6] 아주 극소수는 늦둥이를 본 이들도 있다. 즉, 예순둥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 전직 개그맨 서세원과 전직 건축가 이창하가 있다.
지금은 탄핵된 박근혜(1952년생) 전 대통령과 현 대통령인 문재인(1953년생) 대통령도 이 시기 출생자이다.
연예계에서는 안성기(1952년생), 이덕화(1952년생), 조용필(1950년생), 태진아(1953년생), 이수만(1952년생), 손석희(1956년생)가 이 연대에 태어났으며, 이슈인 중에서도 조양은(1950년생), 서세원(1956년생), 이창하(1956년생), 그리고 최순실(1956년생) 등도 이 연대에 태어났다.
관료들의 경우 박정희 정권이나 전두환 정권 때 고시에 합격하고 노태우 정부 때 관료계에 진출하여 김영삼 정부 때 성장을 시작, 김대중 정부 때는 꽃을 피우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부조력자와 조력자를 거쳐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때 주도세력을 유지하다가 점차 퇴임을 하기 시작하고 문재인 정부 이후에는 50년대생 관료들이 대부분 퇴임을 하는 시기에 이르게 된다.
2.1. 작명 경향
남자의 이름에는 끝에 ‘식’자가 많이 들어갔고,[7] , 여자의 이름에는 보통 끝에 ‘숙’자 ‘옥’자 ‘미’자로 많이 끝났다. 이들의 이름에 쓴 ‘숙’자는 거의 맑을 숙(淑), ‘옥’자는 구슬 옥(玉), ‘미’자는 아름다울 미(美)였다. 중간 글자에는 ‘영’자 ‘정’자 ‘혜’자가 많다.[8] 여성들의 이름 중에는 ‘선아’, ‘인영’, ‘윤선’[9] , ‘윤아’[10] 등 현대에도 위화감 없이 쓰이는 이름들도 있다.
영미권에서는 남자는 Donald, George, Richard등의 이름이, 여자는 Mary, Patricia, Elizabeth 등의 이름이 많이 쓰였다.
일본에서 남자는 다로(太郎), 지로(次郎) 등의 이름을 많이 썼고 여자는 이름 끝에 거의 '코'자가 들어갔다.
2.2. 학력
이승만 정부의 초등학교 의무교육 정책의 수혜를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한 세대라서 남녀불문 대부분 기본적으로 초등학교 이상은 나왔다. 2015년 인구총조사를 기준으로 초졸이나 중졸 비율이 꽤 높은 세대이며, 동시에 학력이 확 낮은 세대이다. 5년이 지난 2020년 현재는 무학력자들이 큰 유입 없이 사망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고, 동시에 노인 인구에 학사 학위 이상 취득자들이 유입되면서 해당 세대의 평균 학력이 올라가 해당 세대 인구 중 학사 이상 취득자의 비율은 더 높아졌을 것이다. 고졸 이하의 비율도 같이 낮아졌는데, 고졸 이후 뒤늦게 대학에 들어가 학사 학위를 취득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심지어 학번이 2개인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는 대학을 중퇴하고 뒤늦게 다시 들어간 경우. 이런 사람들은 컴맹인 경우가 많아 아들, 손자뻘 동기들에게 컴퓨터를 배워서 리포트를 써 내기도 한다. 심지어는 교수가 아들뻘인 경우도 있다.
다만 지적 수준은 얘기가 좀 다른데 이 연령대 사람들의 젊은 시절 당시에는 장교 임관 기준이 지금의 대졸이 아닌 고졸이며 이 당시 장교로 군복무했던 사람들 상당수가 이 고졸 갑종장교 출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당시에도 대졸인 사람들은 지금의 명문대와 대등한 수준이라 보면 되고 이 당시의 고졸이 현재의 지거국 수준이라고 보면 거의 비슷하다. 실제로 비율상으로도 지금의 명문대 졸업자와 당시의 대졸자가 비슷하다. 그나마도 성별로 치면 남성이 여성에 비해 매우 높았다.
2.3. 정치 성향
본래 1950년대생들은 반공성향이 강하지만 젊은시절에는 유신정권과 5공화국의 독재에 저항한 경향도 있었다.
그러나 3당합당을 거치며 보수성향으로 돌아서서 김영삼에게 표를 주었으며 이후에도 이회창에게도 많이 표를 주었다. 하지만 15대 대선에서 김대중이 DJP연합을 할 때는 50년대생 역시 김대중에게 표를 상당히 던졌고 16대 대선에서도 노무현이 40대에서 48.1% 대 47.9%로 이회창과 비겼을 정도로 50년대생들이 노무현에게 상당한 표를 던졌다. 이 때만 해도 50년대생들의 보수성향이 확고하지는 않았으나 민주정부가 친북 정책을 펴고 경제정책에서 실패하자 완전히 보수성향으로 돌아서서 17대 대선과 18대 대선에서는 이명박과 박근혜에게 상당한 몰표를 주었고 19대 대선에서도 홍준표가 1위를 하는 등 결국 보수성향이 확고해졌다.
미국에 대한 존경심도 높은 편인데 반공의 영향 및 유년기 및 10대 시절 전쟁의 피폐 속에서 주한미군 병사들이 나눠주었던 미국산 과자나 사탕, 햄이나 통조림 등을 받아가면서 미국과 미국인에 대한 은혜로움을 잊지 못하기 때문도 있다.
박사모, 엄마부대 등에서도 이들은 회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젊은 시절인 10대, 20대 대부분[12] 박정희 시절에서 보내고 자랐던 영향으로 이들 일부는 젊은 시절 박정희의 개발화에 영감을 받아 박정희에 대한 충성심과 존경심도 많다. 10대 때 미군들이 주었던 햄캔이나 과자, 사탕 등을 받으며 먹어야 했고 헐벗고 굶주렸던 시절을 경험하였다가 20대에 가서야 박정희의 개발정책에 변화를 느끼며 어린 시절 가난을 해소해준 분이 박정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박정희에 대한 존경심과 애착이 높은 편이다.
그 악명높은 태극기부대 회원들도 주로 이 연대에 가장 많이 쏠려 있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전광훈 목사도 이 연대에 태어났다.
3. 해외
일본에서는 이때부터 '정치에 둔감한 세대'로 불리기 시작하며, 이들이 청소년기 될 즈음인 1968년 도쿄대 야스다 강당 사태나 1972년 아사마 산장 사건까지 운동권이 쇠퇴했고, 관심사도 서브컬처 등 내성적인 쪽으로 변해갔기 때문이다. 1954년생까지를 '시라케 세대', 1955년생부터를 '신인류'라 칭한다. 시라케 세대는 후대에 무언가를 의탁하지 않으려고 하며, 오토모 카츠히로와 오시이 마모루 같은 애니 제작자의 경우 자신만의 세계관에 구애받으려는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1955년생 이후 신인류 세대는 '피터팬 세대'라 불릴 정도로 어린이와 같은 사고방식을 유지하며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1970년대 초 아이돌 그룹 '캔디즈'의 주 팬층이 바로 이 세대였다. 1980년대 버블경제 당시에 이들은 30대였으며 20대이던 60년대생, 10대이던 70년대생들에 비해 버블경제의 헤택을 많이 받았던 세대이다.
전세계적으로는 2차 대전 이후로 출생율이 급증하면서 동시에 이 시기에 많은 아이들이 태어났다. 현대의 전후세대가 대부분 이 시기 출생자들이며 20세기 중반 이후 전세계 인구 폭증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2020년대 현재로써는 칠순에 접어들고 하나둘씩 은퇴하면서 동시에 본격적으로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폐해의 중심이자 화두에 설 전망이다. 이들 세대의 자녀세대인 1980년대생들 부터는 본격적으로 세계적인 저출산으로 인해 이전 세대에 비해 낮은 출생율을 보였기에 더더욱 경제인구의 노년인구 부양 문제로 인한 갈등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2021년 기준 한반도 주변국 지도자들인 시진핑(1953), 블라디미르 푸틴(1952)도 이 시기 출생자다.
[1] 영어의 경우는 안현필의 영어실력기초, 영어기초오력일체 등으로 공부한 사람도 있었지만.[2] 재수생 포함. N수생은 79학번 이후도 가능.[3] 당시의 대학교 교복은 대체로 입학식 등에 한두 번 입고 마는 수준이었고 3학년 이후로는 한 학과에 한두 명 정도만 교복을 입었다. 남학생 교복과 여학생 교복의 디자인에 관해서는 불명.[4] 당시 대학교는 도서관 정도만 빼면 흡연이 허용돼 있었고, 교내 곳곳에 재떨이가 있었다. 당시 대학생들의 주요 흡연 장소는 화장실, 복도, 강의실(!!!)이었다. 게다가 그 시절이면 기차와 시내버스에서 담배 피우는 정도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당시 흡연자들은 '담배는 인류의 적이니 모두 피워서 없애야 한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5] 가정교육과, 유아교육과, 간호학과 등은 제외. 심지어 당시에는 현재 여초과의 대명사인 영어영문학과와 사범대학의 대부분의 학과조차 남초였으며 (때문에 그 시절 영어영문학과 출신인 병들이 진급심사를 앞둔 장교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는데, 당시에는 영어가 진급심사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경영학과, 행정학과 등은 여학생이 한 학번에 3명만 있어도 '여학생 많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공과대학은 여학생이 1명 들어오면 '대박'이었다.[6] 여자는 50대가 되면 폐경으로 인해 임신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7] 다만 남자 이름의 경우 세대를 거의 안 타기 때문에 2030 세대에서도 '식'자가 들어가는 이름은 많이 볼 수 있다. 심지어 그들의 아빠 동년배에게 붙여도 별로 위화감 없다. 이들의 이름에 쓰이는 한자 중 '식'자는 거의 植(심을 식)이나 湜(물맑을 식)이었다. 1940년대에서 이어진 장수를 기원하는 '길 영'자 선호 경향으로 '영식(永植)'이 상당히 많았다.[8] 당시 여성들의 이름을 잘 보면 '정숙', '영숙', '영옥', '영미' 등 이러한 이름들이 많다.[9] 칠곡 가시나들 출연자 중 안윤선 씨가 이 이름을 쓴다. 그녀는 한글을 떼고 영어도 공부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시를 썼다.[10] 제주도 최고령이었던 오윤아 씨가 이 이름을 쓴다.[11] 학사, 석사, 박사.[12] 60년대~7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