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올림픽

 



TEAM KOREA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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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대표팀
올림픽 대표팀
프리미어 12 대표팀
아시안 게임 대표팀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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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올림픽에 야구가 시범경기로 채택된 것은 오래되었으나 대한민국 대표팀이 올림픽에 참가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본선에 진출조차 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으나 2000 시드니 올림픽,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2번의 메달을 획득하는데 성공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보면 알겠지만 의외로 본선에서 성적을 낸 것은 2000년, 2008년 대회뿐이며 나머지는 광탈 혹은 본선에서 부진한 모습을 연이어 보여주었다. 거기다 2000년의 경우에도 미국의 오심이 있었지만 예선에서는 부진의 부진을 거듭하며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2. 상세



2.1. 1984 LA 올림픽


국제대회가 축구, 농구, 배구에 비해 거의 없는 야구에서 올림픽이 가지는 위상은 상당히 높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나 WBSC 프리미어 12가 출범하기 이전인 2005년까지 그나마 야구 국제대회라고 쳐주는 것은 아마추어들이 참가하는 아시안게임 혹은 IBAF 야구 월드컵이 전부였던 상황이었다. 또한 스포츠에서 국위선양이라는 이름으로 밀어주는 국제대회가 올림픽이었던 만큼 한국 야구계도 올림픽에 대한 열망이 강렬했다.
단판토너먼트로 이벤트전에 가까웠던 1964년까지 올림픽에는 참가하지 않았던, 아니 정확히는 하지 못했던 대한민국 대표팀은 1984 로스앤젤러스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토너먼트 제도를 도입하게 되자 처음으로 참가를 신청했고 대표팀을 구성해 올림픽 무대를 밟게 되었다.
대한야구협회는 한미대학야구 선수권대회 및 LA올림픽 대표팀에 포함될 예비엔트리 32명중 20명을 1984년 5월 19일에 개최하는 백호기선수권대회[1]를 통해서 발탁할 것이라 밝혔다. 대회를 마친후인 5월 27일, 대한야구협회가 발표한 한미대학야구 선수권대회에 참가한 코치진과 25인 엔트리는 다음과 같다.
감독
김청옥
코치
김충, 배성서, 오지섭, 주성노
투수
선동열, 박노준, 박동수, 오명록, 이상군, 한희민, 차동철, 김용수, 윤학길
포수
김영신, 서효인, 장호익
내야수
김형석, 강기웅, 김건우, 김용국, 류중일, 백인호, 안언학, 이재성
외야수
강기문, 이순철, 이강돈, 최계영, 박흥식, 이종두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은 1982년 야구 월드컵 MVP였던 선동열(고려대학교)을 비롯해 김용수(한일은행), 류중일(한양대학교), 이순철(연세대학교)등 당대 아마최강 선수들로 꾸려져 참가했다.
하지만 대한야구협회는 갈팡질팡 하며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6월 23일부터 열릴 한미대학야구 경기를 통해 20명을 뽑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대한야구협회의 이런 발표가 있고 단 이틀만인 6월 2일에 최종 발표한 올림픽 명단에 포함되있던 오명록, 최계영을 빼고 이상군, 이종두로 교체된 것이다.이를 비판하는 기사 미국에서 미국대학팀과 일본대학팀과 평가전을 가지며 전술을 다듬었지만 실력 차이로 인해 1승 5패 1무를 기록하며 처참하게 깨졌다.
그리고 시작도니 본선에서 대회전 예상을 깨고 준결승까지 진출했지만 미국을 맞이한 4강전에서 5:2로 패배,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대만에게 3:0으로 패배하며 빈손으로 귀국해야 했다.
  • 코칭스태프
'''이름'''
'''보직'''
'''소속팀'''
김청옥
감독
농협 야구단 감독
김충
코치
상업은행 감독
배성서
코치
한양대학교 감독
  • 선수
'''이름'''
'''포지션'''
'''투타'''
'''소속팀'''
김용수
투수
우투우타
한일은행
박노준
투수
좌투좌타
고려대학교(3학년)
박동수
투수
우투우타
동아대학교(4학년)
선동열
투수
우투우타
고려대학교(4학년)
오명록
투수
우투우타
동아대학교(3학년)
윤학길
투수
우투우타
상무
김영신
포수
우투우타
동국대학교(4학년)
장호익
포수
우투우타
연세대학교(1학년)
강기웅
내야수
우투우타
영남대학교(2학년)
김용국
내야수
우투우타
한양대학교(4학년)
김형석
내야수
좌투좌타
중앙대학교(4학년)
류중일
내야수
우투우타
한양대학교(2학년)
백인호
내야수
우투우타
동국대학교(3학년)
안언학
내야수
우투우타
고려대학교(4학년)
강기문
외야수
우투우타
한국전력
김성수
외야수
좌투좌타
농협
박흥식
외야수
좌투좌타
한양대학교(4학년)
이강돈
외야수
좌투좌타
건국대학교(4학년)
이순철
외야수
우투우타
연세대학교(4학년)
최계영
외야수
우투우타
건국대학교(3학년)

2.2. 1988 서울 올림픽


1984 LA 올림픽 이후, 한국야구계는 홈에서 열리는 1988 서울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고 거기에 당대 아마 최강 쿠바도 참가를 거부하자 우승의 적기라 판단한 대한야구협회는 당시 아마야구 슈퍼스타들을 강제로 프로야구단이 아닌 실업야구단에 입단 시켰다. 올림픽에는 프로선수가 참가하지 못한다는 규정 때문이었는데, 이 규정으로 인해 당대 최고의 아마추어 투수였던 송진우(세일통상)와 조계현(농협), 강기웅(한국화장품)등이 대학 졸업후 각자 실업야구단에서 강제로 1년을 뛰고 참가해야 했다. 그나마도 송진우는 4개월만에 구단이 날라가면서(...) 무소속으로 대표팀에 참가했다.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미국전 5:3 패배, 호주전 1:2 승리, 캐나다전 3:5 승리로 3전 전승의 미국에 이어 조별 예선 2위를 기록했고 4강에서 후루타 아츠야(팀 도요타), 노모 히데오(신일본제철 사카이)등 내노라는 사회인야구선수들이 참가한 일본을 상대로 2:1 패배를 기록하며 동메달 결정전으로 내려갔고, 푸에르토리코를 상대로 7:0 완패를 당하며 빈손으로 대회를 마무리 지었다
  • 코칭스태프
'''이름'''
'''보직'''
'''소속팀'''
김병우
감독
제일은행 감독
강문길
코치
단국대학교 감독
황동훈
코치
중앙대학교 감독
  • 선수
'''이름'''
'''포지션'''
'''투타'''
'''소속팀'''
김기범
투수
좌투좌타
한국화장품
박동희
투수
우투우타
고려대학교(3학년)
(롯데 자이언츠 기지명)[2]
송진우
투수
좌투좌타
무소속(前 세일통상)[3]
(빙그레 이글스 기지명)
이강철
투수
우투우타
동국대학교(4학년)
이광우
투수
우투우타
원광대학교(4학년)
조계현
투수
우투우타
농협
(해태 타이거즈 기지명)
김동수
포수
우투우타
한양대학교(3학년)
김태형
포수
우투우타
단국대학교(3학년)
강기웅
내야수
우투우타
한국화장품
(삼성 라이온즈 기지명)
강영수
내야수
우투우타
한국화장품
권택재
내야수
좌투좌타
상무 야구단[4]
김경기
내야수
우투우타
고려대학교(3학년)
송구홍
내야수
우투우타
건국대학교(2학년)
최해명
내야수
우투우타
무소속(前 세일통상)
황대연
내야수
우투우타
고려대학교(4학년)
노찬엽
외야수
좌투좌타
농협
(MBC 청룡 기지명)
백재우
외야수
좌투좌타
상무 야구단[5]
윤혁
외야수
좌투좌타
고려대학교(3학년)
이석재
외야수
우투우타
제일은행
최훈재
외야수
좌투좌타
단국대학교(4학년)

2.3.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앞두고는 대한야구협회에서 다시금 의욕을 불태웠고 정민태(한양대학교), 구대성(한양대학교), 위재영(인하대학교), 문동환(연세대학교), 강성우(단국대학교), 임수혁(고려대학교), 양준혁(영남대학교), 안경현(연세대학교), 이종범(건국대학교), 심재학(고려대학교)등 지금으로 보면 프로야구 올스타가 되는 초유망주들을 대거 투입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 올림픽 아시아 예선이던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일본대만에 이은 3위에 그치며 진출에 실패했다. 참고로 당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정식 종목 25개 종목 중 대한민국 선수단은 야구를 제외한 24개 종목에 참가했다.

2.4.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올림픽 본선도 밟지 못한 충격으로 인해 이번 대표팀에는 대학야구 선수뿐 아니라 실업야구의 최강팀이던 현대 피닉스 선수들로 꾸려졌다. 이번엔 다르다!를 외치며 출진한 1996 애틀란타 올림픽에서는 본선 역대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고 만다.
일본 사회인 야구 대표팀에게 14:4라는 점수로 콜드게임 패배를 당하는가 하면 이탈리아, 호주등에게도 패배하며 1승 6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고 복귀해야 했다.
  • 코칭스태프
'''이름'''
'''보직'''
'''소속팀'''
김충남
감독
연세대학교 감독
장순조
코치
경성대학교 감독
조두복
코치
고려대학교 감독
최한익
코치
현대 피닉스 감독
  • 선수
'''이름'''
'''포지션'''
'''투타'''
'''소속팀'''
김선우
투수
우투우타
고려대학교(1학년)
(OB 베어스 기지명)
김영수
투수
좌투좌타
인하대학교(4학년)
문동환
투수
우투우타
현대 피닉스
(롯데 자이언츠 기지명)
손민한
투수
우투우타
고려대학교(4학년)
오철민
투수
좌투좌타
영남대학교(4학년)
임선동
투수
우투우타
없음[6]
(LG 트윈스 기지명)
전승남
투수
우투우타
중앙대학교(4학년)
조진호
투수
우투우타
원광대학교(3학년)
조인성
포수
우투우타
연세대학교(3학년)
진갑용
포수
우투우타
고려대학교(4학년)
강필선
내야수
우투우타
현대 피닉스
(쌍방울 레이더스 기지명)[7]
강혁
내야수
좌투좌타
한양대학교(4학년)
(OB 베어스 소유권 보유)
김수관
내야수
우투우타
한양대학교(3학년)
백재호
내야수
우투우타
동국대학교(4학년)
안희봉
내야수
우투우타
상무 야구단
(태평양 돌핀스 기지명)
이동욱
내야수
우투우타
동아대학교(4학년)
채종국
내야수
우투우타
연세대학교(3학년)
이병규
외야수
좌투좌타
단국대학교(4학년)
조경환
외야수
우투우타
상무 야구단
(롯데 자이언츠 기지명)
최만호
외야수
우투우타
단국대학교(4학년)

2.5. 2000 시드니 올림픽


[image]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주성노 당시 인하대 감독이 차기 올림픽 대표팀 진출을 이끌 감독으로 낙점 되었다. 서울에서 열린 1999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일본, 중국, 대만을 격파하며 2000 시드니 올림픽 본선 티켓을 획득하는데 성공했고 주성노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고 본선을 지휘할 선장으로 김응룡해태 타이거즈 감독이 선임되었다.
사상 처음으로 프로가 참가한 올림픽 대표팀으로 정대현(경희대학교), 박한이(동국대학교)를 제외하면 모두 프로선수들로 채워져 방콕아시안 게임 대표팀에 이어 드림팀2로 명명되기도 했다.
전통의 아마야구 강국 쿠바뿐 아니라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최고 유망주였던 로이 오스왈트, 밀워키 브루어스의 초유망주 벤 시츠가 원투펀치로 참가한 미국, 그리고 헤이세이의 괴물(平成の怪物)이라 불리던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일본 야구 역사상 역대 최고의 포수로 꼽히는 후루타 아쓰야등이 참가한 일본등 대회수준이 역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던 대회에서 초반 호주, 쿠바, 미국에게 연달아 패배하며 탈락 위기에 놓여지기도 했으나 가까스로 3연승을 달성하며 준결승에 진출, 이후 일본을 잡아내며 동메달을 따내는데 성공,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주성노호/1999년, 김응룡호/2000년 항목 참조.
  • 코칭스태프
'''이름'''
'''보직'''
'''소속팀'''
김응용
감독
해태 타이거즈 감독
강병철
코치
SK 와이번스 감독
김인식
코치
두산 베어스 감독
주성노
코치
인하대학교 감독
  • 선수
'''이름'''
'''포지션'''
'''투타'''
'''소속팀'''
구대성
투수
좌투좌타
한화 이글스
김수경
투수
우투우타
현대 유니콘스
박석진
투수
우투우타
롯데 자이언츠
손민한
투수
우투우타
롯데 자이언츠
송진우
투수
좌투좌타
한화 이글스
이승호
투수
좌투좌타
SK 와이번스
임선동
투수
우투우타
현대 유니콘스
임창용
투수
우투우타
삼성 라이온즈
정대현
투수
우투우타
경희대학교(4학년)
(쌍방울 레이더스 기지명)[8]
정민태
투수
우투우타
현대 유니콘스
진필중
투수
우투우타
두산 베어스
박경완
포수
우투우타
현대 유니콘스
홍성흔
포수
우투우타
두산 베어스
김동주
내야수
우투우타
두산 베어스
김태균
내야수
우투우타
삼성 라이온즈
김한수
내야수
우투우타
삼성 라이온즈
박종호
내야수
우투양타
현대 유니콘스
박진만
내야수
우투우타
현대 유니콘스
이승엽
내야수
좌투좌타
삼성 라이온즈
김기태
외야수
좌투좌타
삼성 라이온즈
박재홍
외야수
우투우타
현대 유니콘스
이병규
외야수
좌투좌타
LG 트윈스
장성호
외야수
좌투좌타
해태 타이거즈
정수근
외야수
좌투좌타
두산 베어스

2.6. 2004 아테네 올림픽


[image]
2003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가 아시아 예선을 겸임한 대회로 아시아에서는 이 대회 상위 2개팀이 올림픽에 참가할수 있게 되었다. 당시 메이저리거였던 박찬호를 제외한 정민철, 이종범, 이승엽등 프로야구 정예 멤버로 꾸려졌으나 대만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며 1승 2패로 광탈하며 올림픽 진출에 실패했다.
자세한 내용은 삿포로 참사(야구) 항목 참조.

2.7. 2008 베이징 올림픽


[image]
2007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기록한 김경문 당시 두산 베어스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올림픽 지역 예선을 겸한 대회인 2007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 참여했으나 일본에게 발목이 잡히며 대륙간 최종예선에 진출, 가까스로 올림픽 본선에 진출했다. 이때만해도 큰 기대가 적었으나 신구조화가 완벽했고 김경문 감독의 용병술도 빛을 발하며 9전 9승으로 금메달을 획득, 본격적으로 프로야구 전성시대를 열어젖혔다.
자세한 내용은 김경문호/2007년, 김경문호/2008년 항목 참조.
  • 코칭스태프
'''이름'''
'''보직'''
'''소속팀'''
김경문
감독
두산 베어스 감독
김광수
수석코치
두산 베어스 코치
김기태
타격코치
요미우리 자이언츠 코치
김민호
수비코치
두산 베어스 코치
김용일
트레이닝코치
삼성 라이온즈 2군 코치
김태형
불펜코치
두산 베어스 코치
유승안
벤치코치
한화 이글스 감독 (KBO 기술위원)
조계현
투수코치
삼성 라이온즈 코치
  • 선수
'''등번호'''
'''이름'''
'''포지션'''
'''투타'''
'''소속팀'''
11
오승환
투수
우투우타
삼성 라이온즈
13
장원삼
투수
좌투좌타
우리 히어로즈
17
김광현
투수
좌투좌타
SK 와이번스
21
정대현
투수
우투우타
SK 와이번스
22
한기주
투수
우투우타
KIA 타이거즈
28
윤석민
투수
우투우타
KIA 타이거즈
47
권혁
투수
좌투좌타
삼성 라이온즈
51
봉중근
투수
좌투좌타
LG 트윈스
91
송승준
투수
우투우타
롯데 자이언츠
99
류현진
투수
좌투우타
한화 이글스
20
진갑용
포수
우투우타
삼성 라이온즈
37
강민호
포수
우투우타
롯데 자이언츠
3
고영민
내야수
우투우타
두산 베어스
7
박진만
내야수
우투우타
삼성 라이온즈
8
정근우
내야수
우투우타
SK 와이번스
10
이대호
내야수
우투우타
롯데 자이언츠
14
김민재
내야수
우투우타
한화 이글스
18
김동주
내야수
우투우타
두산 베어스
25
이승엽
내야수
좌투좌타
요미우리 자이언츠
15
이용규
외야수
좌투좌타
KIA 타이거즈
29
이택근
외야수
우투우타
우리 히어로즈
35
이진영
외야수
좌투좌타
SK 와이번스
39
이종욱
외야수
좌투좌타
두산 베어스
50
김현수
외야수
우투좌타
두산 베어스

2.8. 2020 도쿄 올림픽


제2대 전임감독으로 김경문NC 다이노스 감독이 선임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김경문호/2020년, 김경문호/2021년 항목 참조.

3. 역대 성적


'''연도'''
'''결과'''
'''순위'''
'''경기'''
''''''
''''''
'''득점'''
'''실점'''
1984[시범종목]
4강
4위
5
2
3
12
17
1988[시범종목]
4강
4위
5
2
3
11
19

1992
예선 탈락으로 인한 불참[9]
1996
조별예선
8위
7
1
6
40
59
2000
4강
동메달
9
5
4
45
30
2004
예선 탈락으로 인한 불참
2008
'''우승'''
금메달
9
9
0
50
26
2020
???
???





'''합계'''
출전 3회 / '''우승 1회'''
23
14
9
145
115

4. 관련항목



[1] 대학야구, 실업야구 선수들이 총 출동해 우승팀을 가리던 토너먼트대회였다.[2] 고교 졸업 당시에 이미 1차지명을 받은 상태였다. 당시 1차지명은 팀당 10명.[3] 세일통상은 1988년 1월에 창단해 5월에 해체된 팀이었다. 송진우를 올림픽에 출전시키기 위해 강제로 프로데뷔를 늦추게 했다.[4] 원 소속은 제일은행. 경북고 야구부의 마지막 전성기였던 1981년도의 주요 멤버 중 1명으로 연고 구단 삼성의 콜을 거절하고 실업야구에 남았다.[5] 원 소속은 한국전력. 실업야구의 마지막 해인 2002년까지 선수생활을 했다.[6] 3중계약 파동으로 한편으로는 법정 공방 중이었으며 엄밀히 말해 아직 연세대 소속이었다. 졸업 이수 학점 미달로 졸업을 하지 못했기 때문.[7] 현대 피닉스에서 2년을 보내고 상무에 입대. 전역 무렵 쌍방울이 지명권을 현대 유니콘스에 양도하면서 프로 입단은 현대로 했다.[8] 쌍방울이 해체되면서 지명권이 SK 와이번스로 넘어왔다. SK는 쌍방울과는 별도의 신생팀이었지만 선수단 대부분을 승계했고 지명을 받고 대학에 진학한 선수들의 지명권까지 모두 얻었다. 또한 이 때 병역특례를 받은 것이 아니라 이미 군 면제 상태였다.[시범종목] A B [9] 당시 양준혁, 이종범을 비롯해 초화 라인업을 구성했지만 일본과 대만에게 패배하며 본선 진출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