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

 



'''나이키'''
Nike
[image]
<colbgcolor=#000000> '''기업명'''
'''정식''': Nike, Inc.
'''한글''': 나이키 주식회사
'''국가'''
(다국적 기업)
'''업종명'''
의류, 스포츠 장비
'''설립일'''
1964년 1월 25일
'''본사'''
미국 오리건 주 비버튼

'''설립자'''
필 나이트, 빌 바우만
'''대표자'''
존 도나호 (사장 겸 CEO)
'''시가총액'''
'''171조 3,600억원''' (2020.05.03)
'''링크'''
대한민국 홈페이지

세부 정보 [ 펼치기 · 접기 ]

||<|3><width=25%><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91919><bgcolor=#000000> '''상장''' ||
||'''상장여부''': 상장기업 ||
||'''상장시장''': 뉴욕증권거래소 ||
||<bgcolor=#000000> '''기업분류''' ||대기업 ||
||<bgcolor=#000000> '''종목코드''' ||NYSE: NKE ||
||<bgcolor=#000000> '''이전 기업명''' ||블루 리본 스포츠 (1964-1971)[50] ||
||<bgcolor=#000000> '''총매출액''' ||43조 7,771억원 (2018) ||
||<bgcolor=#000000> '''영업이익''' ||5조 3,414억원 (2018) ||
||<bgcolor=#000000> '''순이익''' ||2조 3,372억원 (2018) ||
||<bgcolor=#000000> '''총자산''' ||27조 2,838억원 (2018) ||
||<bgcolor=#000000> '''총자본''' ||11조 8,799억원 (2018) ||
||<bgcolor=#000000> '''직원 수''' ||73,100명 (2018) ||

1. 개요
2. 로고
3. 역사
4. 광고
5. 제품군
7. 논란/사건사고
7.1. 욱일기 논란
7.2. 나이키 재팬 광고 논란
8. 여담
9.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YOU CAN'T STOP USSPORT.[1]


우리스포츠의 힘을 믿어.'''

'''Just Do It.[2]

'''

'''Risk Everything.'''

'''나이키'''(Nike)는 미국스포츠 용품 브랜드이다.
대표 상품인 운동화를 비롯해 의류, 모자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한다. 현재 전세계 스포츠 용품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 기업'''이며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이기도 하다.[3]

2. 로고


[image]
<rowcolor=#ffffff> '''1971~1978년'''[4]
'''1978~1995년'''[5]
흔히 나이키하면 떠올리는 '''스우시(Swoosh)''' 로고는 1971년 포틀랜드 주립대의 그래픽 디자인 전공 대학원생 '''캐롤린 데이비슨(Carolyn Davidson)'''이[6] 필 나이트의 제의를 받고 '''단돈 35달러에 제작'''했다. 이 35달러도 처음부터 단가가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당 2달러여서 17시간 30분을 만들고 만든 시간에 따라 35달러를 받았다고 한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약 211달러 정도라고.
나이트는 데이비슨에게 로고를 의뢰할 때 로고가 단순하고 부드러우며 '''동적인 느낌'''을 전달해야 한다고 주문했고 또한 아디다스의 로고와는 전혀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데이비슨이 로고를 완성하고 나이트와 경영진들에게 보여주자 나이트는 "별로지만 보면 볼수록 좋아질 것 같다. (I don't love it, but I think it will grow on me.)"라고 밝혔다고 한다. 로고가 발탁되고나서 데이비슨은 뭔가 아쉬운지 로고를 개선하고 싶다고 했지만 나이트는 마감 기한을 맞춰야해서 거절했다고 한다.
스우시는 1971년 상호를 나이키로 바꾸면서 공개되었다. 로고가 공개되고 난 후 나이키의 설명에 따르면 이 로고는 니케의 영혼과 날개를 상징한다고 한다. 사모트라케의 니케를 왼쪽으로 눕히면 나이키의 로고가 된다. 이 동상은 나이키의 로고를 만드는 데 큰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1971년부터 자잘한 변화가 있어왔지만 현재는 NIKE 글자가 달린 버전과 안 달린 버전만 있다.
<rowcolor=#ffffff> '''스우시 로고를 만든 캐롤린 데이비슨'''
데이비슨의 말에 따르면 1983년 9월, 나중에 나이키가 로고의 디자이너인 데이비슨에게 감사를 표하며 깜짝파티로 나이키 로고 모양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금반지와 나이키 주식 500주를 선물했다고 한다. 보통 회사가 대성공을 이루고 나서 페이를 적게 받은 디자이너들이 땅을 치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생각하면 도의적으로 후하게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 덕에 캐롤린 데이비슨은 백만장자는 아니어도 편하게 살고 있다고 스스로 말하기도 했다. 한동안 나이키에서 일했으며[7] 2000년 은퇴했다.
특히 현재에 와선 이 로고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로고가 되었으며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마이클 조던부터 타이거 우즈, 로저 페더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세레나 윌리엄스 등 수많은 선수들이 나이키의 협찬을 받아 장비를 입고 홍보를 하면서 이 로고가 자연스레 노출이 많이 됐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운동선수와 브랜드를 연결짓는다는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1988년부터 밀어온 슬로건인 '''Just Do It'''과 함께 나이키의 대명사가 되었다.
<rowcolor=#ffffff> '''나이키 코르테즈 슈독'''
2019년에는 코르테즈 레트로 제품이 출시되었는데, 스우쉬의 디자인이 살짝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초창기 다음의 스우쉬 디자인이었고, 이를 복각시킨 것이라고 한다. 자수로 박을 정도로 얇쌍하고 조금 안정감이 덜 든다. 하지만 지금은 변화를 많이 거쳤고, 조금 더 형태에 있어서 안정적이게 되었다.

3. 역사


<rowcolor=#ffffff> '''창립자인 필 나이트(Phil Knight)와 빌 바우어만(Bill Bowerman)'''
<rowcolor=#ffffff> '''나이키의 전신인 블루 리본 스포츠'''
<rowcolor=#ffffff> '''당시 오니츠카 타이거 신발'''
1957년 미국 오리건 대학교에서 만난 운동선수 '''필 나이트(Phil Knight)'''와 코치 '''빌 바우어만(Bill Bowerman)'''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에게는 운동화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고 대학을 졸업한 필 나이트는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에 진학하고 빌 바우어만은 여전히 코치로 남아 있었지만 미국의 운동화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독일의 견제와 기록 향상을 위해 고성능 신발의 영향력을 각각 생각하고 있던 그들은 의기투합하여 1964년 블루 리본 스포츠 (Blue Ribbon Sports, BRS)를 설립하였다.
아식스로부터 자신들을 무역회사로 소개하여 아식스의 신발 메이커 중 하나인 오니츠카 타이거 신발 200켤레를 들이면서 사업은 시작되었다. 변변한 상점 하나 없이 창고에 제품을 쌓아두고 트럭으로 대학 운동장을 돌아다니며 제품을 판매하면서 첫 해 8천 달러의 판매로 250달러의 수익밖에 올리지 못했지만 필드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우수한 운동화의 지속적인 연구는 선수들의 성적에 영향을 주었고 1969년도에 30만달러로 매출이 증가하였다.
1971년 블루 리본 스포츠는 더 이상 오니츠카 타이거를 유통하지 않고 자사의 신발 생산 라인을 구축하면서 '''나이키'''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이 때 나이키의 스우시 (Swoosh) 로고가 탄생하게 된다.[8] 초창기에 자국 은행에 대출상담을 받으러 갔으나 거절당하고 한 담당자가 윗층에 일본 상사가 있으니 그곳에 가서 상담해 보라고 하였다. 그곳이 니쇼 이와이(현 소지츠)이다. 니쇼 이와이는 나이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다.[9] 또한 나이키가 당시에 생산거점을 일본에 두고 있었는데 그 위탁생산을 했던 곳이 바로 아사히 슈즈.
이후 나이키는 업계의 선두주자 아디다스를 추월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필 나이트의 의지를 보여주는 일화로서, '''아무 생각 없이 회의에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고 등장한 직원은 양말을 신고 회의에 참석할 수 밖에 없었다든가''', '''백설공주'''(아디다스)'''의 옷을 벗기는 난쟁이가 되겠다'''(...)는 필 나이트의 발언이 있다.
미국에 조깅 붐이 불었을 때, '''조깅은 스포츠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신속하게 나서지 않던 아디다스와 달리 조깅화를 출시하여 미국 내 고객들의 호응을 얻었으며, 마이클 조던을 내세운 캠페인은 마침 노쇠한 아디다스의 경영자 호르스트 다슬러의 병크[10]와 겹쳐 아디다스리즈시절에 마침표를 찍고 만다.
미국 내에 피트니스 열풍이 불었던 당시, 나이키는 조깅 열풍 당시의 아디다스처럼 '''아줌마들이 음악 틀어놓고 춤추는게 피트니스지 스포츠가 아님'''하면서 늑장대응(...)하여 가벼운 피트니스화[11][12]를 출시한 리복의 도전을 받는 듯 했으나... 그래도 미국이 홈 그라운드인지라 아디다스처럼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는 않았다.
이후 1976년 브랜드 광고를 하게 되고 순식간에 성장하여 1980년에는 '''미국 운동화 시장의 절반'''을 집어삼키게 된다. 이때 쯤부터 아디다스는 전세계 시장 지분에서 나이키에게 완전히 밀렸다고 볼 수 있다. 나이키의 매출은 마이클 조던과 협업으로 제작한 에어 조던 시리즈의 성공으로 급상승하게 되었다. 참고로 에어 조던 시리즈는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스토리텔링으로 더해져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게 되었는데, 실제 나이키는 '''조던 브랜드'''를 독자적으로 런칭하여 운영 중이다. 그리고 에어 조던의 성공으로 큰 매출을 올린 나이키는 이후에도 타이거 우즈, 로저 페더러, 호나우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등 각 분야의 스타들과 계약을 맺어 하나의 라인을 런칭하고 스토리텔링을 불어넣는 마케팅 방법을 고수하게 된다.
나이키는 많은 회사들을 인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88년 콜한을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1994년 바우어 하키(나이키 바우어)를 인수하고 2002년에는 헐리를 인수했다. 2004년에는 스타터, 2008년엄브로를 인수했다. 하지만 너무 여기저기 손대는 것 같은지(...) 자신들의 중심 사업에 다시 집중하기 위해 스타터, 바우어 하키, 엄브로, 콜한 순으로 처분되고 현재는 컨버스헐리만 남아있다.
이 블루 리본 스포츠, BRS는 나이키에서 다시 디자인의 소재로 사용하려는 기미가 보인다. 새로운 BRS의 로고를 디자인 한다던지..

4. 광고




<rowcolor=#ffffff> '''2004년 월드 시리즈 이후 나온 광고.'''[13]
'''1인칭 시점인 광고'''[14]


<rowcolor=#ffffff> '''Just Do It: 너를 외쳐봐'''
'''Just Do It: 승리의 룰은 단 하나, 즐기면 된다.'''[15]
나이키의 필 나이트는 광고의 중요성을 굉장히 강조했는데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다. 이는 상품을 광고에 직접 보이거나 선수들에게 협찬을 해주면서 광고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Nike is a marketing-oriented company, and the product is our most important marketing tool.

나이키는 마케팅에 기반한 회사이다. 그리고 상품이 바로 우리의 가장 중요한 마케팅 도구다.

<rowcolor=#ffffff> '''최초의 에어 조던 광고'''[16]
수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나이키 CF를 거쳐갔다. 마이클 조던[17]부터 시작해서 타이거 우즈까지...
2018년 9월 나이키는 "Just Do It" 30주년 광고 캠페인에 전 미식축구 선수 콜린 캐퍼닉(Colin Kaepernick)의 얼굴과 함께 의미심장한 문구를 써서 화제에 올랐다. 광고 영상. 몇몇 구매자들이 이에 나이키에 항의하는 의미로 자신들이 산 나이키 신발을 불태우는 영상을 올렸으나#, 애초에 Kaepernick을 지지할 만한 사람들(진보, 다인종, 도시)이 나이키나 다른 소위 힙한 브랜드들이 노리는 주요 고객층[18]이고, 기대했던 대로 소셜 미디어에서 화제가 되었고[19] 기존 타겟층의 브랜드 충성도가 높아진 게 확연하기 때문에 나이키 측에서는 콧방귀도 안 뀌고 있는 상황이다. 주식은 광고 공개 이후 폭락했다가 다시 회복하고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오히려 나이키 주식을 살 것을 권장하기도 했다. 실제로 광고 후 나이키 온라인 매출이 31% 상승했다.
다만 나이키가 자신들의 신발을 만들고 있는 주로 동남아 지역의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인권침해엔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반응을 보이면서 미국에서만 이런 광고를 하는 것이 위선적이라는 비판도 있긴 하다. 이에 대해 나이키는 초기만 해도 "우리 회사가 공장을 소유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 공장에서 일하는 하청업체 노동자들까지 우리가 신경쓸 여력은 없다", "우리 회사는 제3세계 노동자들에게 빈곤을 탈출할 '기회의 사다리'를 제공한다"고 주장했으나, 1996년 한 잡지의 표지에 12살짜리 파키스탄 소년이 나이키의 로고가 새겨진 축구공을 바느질하는 사진이 실리면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하청업체 관리와 노동통제의 관행을 바꾸는 프로그램도 마련하게 된다.

2020년 7월 30일에 업데이트 된 새로운 광고.

5. 제품군


많은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헐리, 컨버스 등이 있으며 같은 나이키라도 브랜드가 상당히 많다. 에어 조던, 나이키 골프, 나이키+, 나이키 프로, 나이키 블레이저, 에어 포스 원(신발), 나이키 덩크, 에어맥스, 나이키 스케이트보딩, 나이키 풋볼 등이 있다. 콜한, 엄브로는 이전에 자회사였다.
사실상의 본업과 다름없는 육상은 물론이고 축구, 농구(에어 조던), 수영, 골프, 스케이트보드, 야구 등 굉장히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 용품을 제작 판매 중이다. 전문 트레이닝 라인의 성능도 좋지만, 패션 브랜드로도 나름 위세를 떨친다. 원래는 전문 트레이닝 라인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패션 라인으로 팔리는 것들로는 에어맥스, 에어포스, 덩크 등이 있다. 미국에서도 나이키 신발은 그리 싸지 않은 편이지만,[20]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키의 점유율과 인지도 덕분인지 대중화 되어있다.
주요 제품군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참고로 에어 조던은 나이키 산하이나 자체 브랜드기도 하고 내용도 길어서 항목 참고. 루나는 단종되어 리액트로 대체.
  • 코르테즈 - 나이키 최초의 운동화이자 상징적인 제품이며 오니츠카 타이거의 납품 업체에서 벗어나 비로소 독자노선을 가게 된 계기를 만든 제품.[21] 현재도 상당한 인기를 자랑한다.
  • 데이브레이크 - 1979년 테일윈드와 함께 출시된 신발로 본래는 여성용 런닝화로 출시되었었다. 테일윈드와 마찬가지로 와플모양의 밑창이 특징이며 신발의 디테일과 디자인이 약간 다를뿐 차이는 거의 없다.[22] 복고라인이 인기가 많은 지금은 남성사이즈까지 나오기에 상당한 인기를 자랑한다.
  • 에어 테일윈드 79 - 1979년 데이브레이크와 같이 출시된 신발로 나이키 최초의 에어가 들어간 운동화로 본래는 런닝화로 출시되었었다. 데이브레이크와 비슷한 와플모양의 밑창이 특징이고 차이점이라면 신발 자체의 디테일이 약간 다르다.[23] 처음엔 여성용으로만 나온 데이브레이크와 달리 테일윈드는 처음부터 남녀공용으로 나왔으며 현재도 깔끔한 신발로 인기가 많다.
  • 에어포스 1 - 컨버스 올스타, 아디다스 슈퍼스타와 더불어 오랜 기간 사랑받은 범대중적 제품. 현재는 라이프스타일군으로 분류되어 패션화처럼 취급받지만, 사실 원래는 나사 직원의 아이디어 제안으로 만들어진 에어 달린 기능성 농구화였다. 현재는 세월이 흘러 기능성보단 스트릿 패션의 대명사이며 특히 힙합 패션의 큰 혁명을 가져다준 제품. 래퍼 닥터 드레의 에어포스 사랑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여성들도 애용하는 신발이다.
  • 에어맥스 시리즈 - 에어가 주입된 러닝화 제품. 사실 에어는 70년대 후반 테일윈드가 최초로 에어가 주입되었으나 내장형이었다 비로소 눈에 보이는 에어가 탑재되고 맥스라는 명칭을 붙인건 1987년으로 에어맥스 1을 기점으로 현재까지 시리즈가 나오고 있다. 그 중 에어맥스 역사상 인기가 높았던 시리즈들을 기술하자면 에어맥스 90은 스트릿 패션의 대명사이자 스테디셀러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95와 97에 비해선 인기가 떨어지는편이다.[24] 에어맥스 95는 역대 시리즈중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렸고 매니아층들이 가장 가지고 싶어하는 지금도 그러한 제품이다 특히 네온(OG)은 짝퉁이 판칠 정도로 인기가 어마어마한 색상이다.[25] 지금 현재도 구하기가 매우 어렵고 비싸다. 에어맥스97 같은경우 실버는 당시에는 인기가 없었지만 2017년 20주년부터 당시에 패션트랜드에 부합하여 뜨기시작하였다. 그래서 현재 중고가는 상당히 비싸고 구하기 어려워졌다.[26] 한편 에어맥스 2017제품 이후 베이퍼 맥스 시리즈의 출현으로 차세대 에어맥스는 단종되는 듯 했으나, 2020년 현재 에어맥스 2090이 출시되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 베이퍼 맥스 시리즈 - 차세대 에어맥스 제품으로 미드솔에 에어 주머니가 들어간 일반 에어와는 달리 아웃솔 전체가 에어 주머니로 이루어져있다. 플라이니트라는 가벼운 재질과 새로운 방식의 에어가 맞물려 나이키 기술력이 결집됐다고 볼 수 있는 제품. 에어중 최초로 미드솔이 사용되지않았기 때문에 무게가 에어맥스 시리즈중에서 가장 가볍다.[27] 일각에선 아디다스 부스트 시리즈의 엄청난 성공을 목격한 나이키가 계획보다 앞당겨 출시했다는 루머도 있다.현재는 주력 에어맥스를 라이프스타일군으로 내리고 베이퍼맥스를 2019년부터 시리즈별로 출시할 예정으로 보인다.
  • 덩크 시리즈 - 본래는 나이키 농구화로 80년대 큰 인기를 끌던 미국 대학 농구리그인 NCAA를 겨낭해서 만든 농구화 시리즈다.[28][29] 이 신발의 목적은 조던시리즈의 신기술들을 생략해서 생산비를 절감해 저렴하게 판매하려고 한 보급형 농구화였다.[30] 그러다가 SB 라인 쪽으로 넘어가서 스케이트보더들을 위한 신발이 되었었고 지금에 이르러선 패션화에 가깝게 됐다. 201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진 로우보단 하이가 인기가 더 많았지만 2020년대에 이르러선 로우의 인기가 더 많아졌다.[31][32] 현재는 덩크 로우가 조던 로우보다 더 인기가 많으며 브랜드, 편집샵[33]들 그리고 유명한 패션셀럽들과의 콜라보를 이어나가며 인기도가 엄청나게 높아지고있다.
  • 바우어만 시리즈 - 현재는 대부분 줌에어와 줌이라는 수식어를 달고나오는 시리즈로 나이키의 대표적인 러닝화 제품군이다. 흔히 러닝하면 에어맥스를 떠올리기 좋지만 에어맥스 제품들은 대부분 무게가 무겁기에 운동으로서 러닝을 선택한다면 줌 시리즈를 선택하는게 좋다.
  • 리액트 시리즈 - 2017년에 시작된 러닝화 제품군. 경쟁사인 아디다스아디다스 부스트 시리즈의 폭발적인 흥행을 견제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나이키는 이 제품의 밑창, 통칭 '리액트 폼'이 자사의 루나론보다 에너지 회수율이 13% 높으며, 아디다스 부스트보다 30% 가볍고, 수만시간동안의 연구와 전문 농구선수를 기용해 이루어진 2,000시간 이상의 점프 실험으로 개발되었다고 아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2019년 기준 플라이니트 갑피로 만든 에픽 리액트(Epic React)[34]를 하이엔드급으로 두며 나이키의 얼굴마담 상품으로 밀어주려고 하는 듯. 그러나 2018년판 모델이 서양인 기준으로 만든 칼발이나 뒷꿈치의 딱딱한 지지대, 설포가 없는 발등 접합부를 그냥 덧대서 신발끈으로 이어버린 것이 개인의 걸음걸이에 따라 상처를 낸다는 이슈도 있었다. 미들엔드 제품으로는 오디세이 리액트(Odyssey React)[35]등이 있는데, 보급형이 에픽보다 편했다는 등의 개인차가 갈리는 편이다. 착화감은 마치 탱탱볼 같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탄성이 강하며, 반응이 나쁘지 않아서인지 이후에도 나이키의 주력 쿠셔닝으로 러닝은 물론, 라이프스타일 라인업에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미드솔에는 특유의 물결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에볼루션 같은 리액트 폼을 사용하지 않는 보급형 라인업에도 유사한 패턴을 넣기 시작했다.
  • 조이라이드 시리즈 - 2019년 8월 중순 즈음에 출시가 될 새 쿠셔닝이다. 이번에는 부스트 시리즈에 대항하고자 하는 모습이 뚜렷하게 보이는데, 바로 '비즈' 기술이다. 마치 에어맥스 270부터 시작된 대용량 에어 쿠셔닝을 보는듯 한 튜브 안에 나이키에서 새로 개발하였다고 하는 작은 구슬같은 비즈가 들어 있다. 구슬 형태의 입자를 수없이 붙여 만든 아디다스의 부스트 폼과 다른 점은, 바로 유동성이다. 완전히 고정되어 있는 부스트폼의 알갱이들과는 달리, 튜브 안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이며 필요한 부분에 쿠셔닝을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외형적인 차이점으로는 색상이 있을 수 있겠다. 아직 조이라이드의 색상이 한가지 밖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주로 단색으로 출시되던 리약트폼과는 다르게 형광 색상의 비즈를 삽입하는 등 색감에 신경을 쓴 듯하다. 하나의 밑창 기술로써 개발되었으므로 농구화에 들어가거나, 에어맥스처럼 라이프스타일 슈즈에 들어갈 수도 있을 듯하다.
  • 어댑트 시리즈 - 백 투 더 퓨처에 등장한 가상의 나이키 신발처럼 자동으로 끈이 조여지는 기능을 가지고 출시된다. 2011년에는 해당 영화에 등장한 제품의 외형만 똑같이 따라하여 에어 맥이라는 이름으로 발매했었으며, 이때는 기술 부족으로 자동으로 신발끈을 조이는 기능은 없었다. 그 후 2016년에 자동 조절 기능을 추가하여 89족 한정판으로 발매했으며 엄청난 희소성, 상징성, 특이성 때문에 시세가 천만원이 넘어갔다. 그 뒤 2017년에 좀 더 넉넉한 수량과 평상시에도 신을 수 있도록 덜 영화스러운 디자인으로 하이퍼어댑트 1.0을 발매했으며 기본적인 기능은 에어 맥과 같지만 앱과의 연동 기능이 추가되었다. 단, 가끔 페어링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정발가는 720달러, 한국에선 79만 9천원으로 역시 나이키 운동화치고 매우 비싸게 출시되었다. 그리고 2020년에 어댑트 BB 2.0 시리즈를 350달러, 한국에선 43만 9천원으로 전작의 반값으로 출시하였으며 페어링 이슈가 대부분 해결되고 펌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신발 옆면의 버튼에 들어오는 불빛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등 기능이 좀 더 개선되었다. 여러 리뷰에 따르면 농구화로써의 기능도 제법 괜찮다는듯. 다만 가격 대비 성능은 많이 떨어지며 내장 배터리 때문에 세탁이 불가능하고 비가 올 땐 왠만하면 신으면 안되고 약 2주에 한번씩 충전을 해줘야 하며 무게도 한짝당 400g대로 좀 나간다. 무엇보다 반값으로 줄어도 40만원대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이 발목을 잡아서[36] 디자인도 여러모로 호평을 받고 농구화로써의 기능도 충분하며 매우 편리한 기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다른 농구화에 비해 인지도나 인기는 적다. 대신 신발끈이 풀릴 걱정도 없고 언제든 균일하게 원하는 강도로 조절할 수 있다는 편리함 하나만은 끝장나기 때문에 앞으로 기술이 더 발전하면 다양한 라인업에 적용될 여지가 있다. 여담으로 시리즈 공통으로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꽤 크다.
  • 프리 시리즈 - 나이키의 미니멀, 최소주의형 신발. 항목 참고.

6. 스폰서 목록




7. 논란/사건사고



7.1. 욱일기 논란


2009년 나이키에서 욱일기로 디자인된 에어 조던 12 시리즈를 발매하면서 이후 국내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37] 라이징 선은 깔창에 욱일기를 그대로 갖다붙여놓은데다 2013년에는 홈페이지에서 대놓고 욱일기가 컨셉이라 밝혔다.[38] 결국 2016년 2월 27일부터 욱일기로 논란이 된 '에어 조던 12 레트로 더 마스터' 농구화를 국내외 정발을 했다. 욱일기 깔창, #[39] 동년 3월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는데, 논란이 일면서 나이키 코리아는 이후 발매되는 12 시리즈를 한국에서는 발매하지 않고 있는 중이다.

7.2. 나이키 재팬 광고 논란



2020년 11월 28일에 나이키 재팬에서 광고를 내놨는데 그 내용이 일본 내 이지메와 인종차별 등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어서 일본 내에서 큰 논란이 되었다.# 불과 업로드 4일 만에 900만뷰를 넘었고 초기 며칠간은 싫어요 수가 압도적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며 좋아요 수가 싫어요 수를 앞지르게 되었다. 한 일본 공과대 교수의 분석에 의하면 일본 트위터 상에서 부정적인 반응이 압도적이라고 한다.#
광고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본인, 흑인 혼혈, 재일 조선인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일본인 소녀는 학교에서 이지메를 당하고 집에서도 학교문제로 부모님과 갈등을 겪고 있다. 흑인 혼혈 소녀는 남들과 다른 피부색과 외모로 인해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고 잘 어울리지 못한다. 그리고 '넌 미국인이야? 일본인이야?'라는 소리를 들으며 정체성 혼란도 겪으며 좀 더 남들과 비슷하게 되고 싶어한다. 재일 조선인 소녀는 조선학교 교복인 치마저고리를 입고 거리를 다닐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고[40] 집에서 자이니치 문제에 대한 언론 기사를 읽으며 정체성 고민을 겪기도 하며 일반학교로 전학을 간 후에도 뭔가 자신만 붕 떠있는 기분을 느낀다. 일반학교에서는 자신의 성도 야마모토라는 일본식 성을 쓰고 있다. 이 3명의 학생들은 그냥 참거나, 신경쓰지 않는 척하며 이런 현실을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고 자신들이 먼저 미래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재일 조선인 학생은 새 학교의 유니폼 이름을 야마모토 대신 김이라는 자신의 원래 성으로 바꿨다. 3명의 학생 모두 자신을 받아들이고 스포츠를 통해 하나가 되는 걸로 광고는 끝난다.
이 광고에 대한 일본내 반발이 상당히 크다. 심지어 나이키 광고가 반일이다라는 비난들도 나오며 일각에서는 불매운동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 광고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나이키가 중국 위구르의 강제노동에 침묵하고 있으며 심지어 이를 제재하는 법안에 로비까지한 나이키가 과연 차별에 대해서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을 표하고 있다. 또한 조총련은 각종 범죄와 북한의 일본인 납치에 연관되어 있어 일본 내 사회적인 시선이 매우 좋지 못하기 때문에 이 광고에 재일조선인이 나오는 것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광고에서는 한복을 입은 재일조선인 학생과 일반 학교를 교묘히 교차시켜 마치 일반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것처럼 오해하게 할 여지를 주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광고에서 일본인 학생, 흑인 혼혈 학생과는 다르게 재일조선인 학생은 새 학교에서 직접적으로 이지메를 당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조선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치마저고리를 입고 지나가면 쳐다보는 시선들과 전학 간 일반학교에서 재일조선인인 것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야마모토라는 이름을 쓰는 장면만 나올 뿐이다.[41]
이 광고가 나온 후 산케이신문에서는 나이키가 위구르인 강제 노동 방지 법안에 반대 로비를 하고 있다는 기사를 12월 4일에 내보냈다.#
광고안에는 흑인 혼혈 소녀가 폰으로 오사카 나오미의 영상을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오사카 나오미 또한 일본인과 흑인 혼혈 선수다. 그리고 오사카 나오미는 어렸을 때 미국으로 건너가서 일본어를 거의 할 줄 모르는데 일본 매체들은 이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인터뷰를 할 때 나오미에게 "일본어로 대답하십시오"라는 요구를 자주 해왔고 나이키는 이것을 풍자한 광고를 2019년에 만들기도 하였다.# 그리고 일본 식품 회사인 닛신의 광고에서 흑인인 나오미를 흰 피부로 그려서 논란이 되어 닛신이 사과를 하고 해당 광고를 내린적도 있으며, 일본의 코미디 듀오가 나오미에 대해 "표백이 필요하다"라는 농담을 쳐서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그외에도 나오미는 일본내 차별에 대한 목소리를 자주 내고 있으므로 이번 광고에 작게나마 등장한 것도 같은 맥락인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소수이지만 일본 내에서도 이 광고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다. PPAP로 유명한 고사카 다이마오는 이 광고를 보고 "이래서 NIKE 신발이랑 옷이 멋있구나"라며 이런 광고를 만들수 있는 것이 멋지다는 트윗을 했다.# 원래 넷우익이었다가 돌아선 후루야 츠네히라는 칼럼에서 이 나이키 광고에 대한 반발의 근원이 일본 특유의 "숭고한 일본인"[42]이라는 거짓된 사고방식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 광고를 좋게보는 사람들은 일본 사회가 나아가야 할 목표를 제시해 주었다고 평가한다. 광고에서 다루는 내용은 사회적 소수 계층이 일본 사회에서 마주하는 장벽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반발과 비판에 대해서는 ‘광고에서 이야기 하는 바를 의논하지 않고 논점을 이탈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서구 사회에서 동양인이나 흑인의 차별 문제에서 갑자기 동양인이나 흑인들도 차별한다, 중국 인권 문제, 서구 사회에 대한 음해 같은 이야기가 나오면 적절하지 못한 것처럼 위와 같은 반발은 상황을 곡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BBC에서도 일본에서의 이러한 논란에 대해 다뤘다. "일본 주류 사회, 즉 자신들이 내부의 문제를 제기하고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었다면 이렇게 반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핵심은 외국 브랜드인 나이키가 함부로 자국 사회를 지적한 것"이라는 요지의 내용이다.영어원문한국어판

8. 여담


  • 공식적인 읽는 방법은 "나이키"지만 의외로 "나이크"로 읽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한다. 대체로 유럽에서 나이크로 읽는 경향이 있고 특히 영국은 영어의 종주국 이라는 자존심 때문인지 나이크로 읽는 사람들이 상당수이며 오히려 이에 의문을 표하면 Bike도 바이키라고 읽을 거냐고 묻는 식으로 반박한다고...
  • 미국 공홈에도 온라인 스토어가 있으며, 델타 항공스카이마일스 쇼핑이나 아메리칸 항공의 어드밴티지 e-쇼핑 사이트를 경유하여 마일리지도 적립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이 온라인 스토어가 한국 카드를 거의 안 받아 준다는 것이다. 대개 나이키 공홈의 온라인 스토어에서 구매하려면 카드를 직접 이용하기 어려워서 페이팔을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아니면 피니시라인 같은 사이트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43] 한국 온라인스토어는 결재가 잘만 되므로 한국 위키러들은 걱정 안해도 된다.
  • 한국의 나이키는1981년 (주)화승그룹 계열사인 (주)풍영과의 기술제휴로 국내에 첫선을 보였다. 기사 1986년 화승과 결별하고 (주) 삼양통상과 50대 50의 자본제휴로 한국나이키를 설립한다.기사 1989년 삼나스포츠로 사명을 변경한다. 1994년 전체 지분을 나이키가 인수하고 나이키스포츠 코리아로 재출범한다.
  • 여느 글로벌 신발기업과 마찬가지로 생산은 OEM 업체들에게 하청을 주고 있는데 한국의 태광실업이 전체 물량의 10%를 책임지며 나이키 내 OEM 3위 안에 든다고 한다.
  • 시그니처 제품들은 스포츠 스타와 손을 잡고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비스포츠 스타와도 협업을 하는 경우가 있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에미넴과 콜라보하였고, 2010년대 초반에는 칸예 웨스트가 직접 디자인한 콜라보 스니커의 레전드 AIR YEEZY를 남겼다. AIR YEEZY는 그동안 나이키에서 해온 방식[44]과는 다르게 칸예웨스트가 직접 디자인한 스니커라는 점이다.[45] 이는 당연히 성공할 수 밖에 없었고, 신발의 가치마저 바꿔놓았다. AIR YEEZY의 성공 이후 칸예 웨스트는 마이클 조던처럼 지분의 일부를 달라고 요구했으나 나이키에서 거절당했고, 이후 경쟁사 아디다스와 2조가 넘는 금액에 손을 잡았다. 그가 떠나고 여러 스타들과 협업 했으나 칸예 만큼의 파급력이 없었는데... 마침내 2018년 래퍼 트래비스 스캇과 내놓은 신발들이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스니커 시장을 다시 한 번 불태우기 시작했다. 이후 비정기적으로 그의 레이블인 CACTUS JACK의 이름으로 스니커를 출시하고 있다.
  • 2015년 아디다스가 전세계 6개 도시(뉴욕, LA, 런던, 파리, 상하이, 도쿄) 공략에 집중하겠다는 구상을 밝히자, 이에 자극받았는지 2017년 나이키는 상기된 6개 도시에 추가로 6개 도시(서울, 베이징, 베를린, 바르셀로나, 밀라노, 멕시코시티)를 더해 도합 12개 도시를 중점 판매 거점 도시로 선정하기도 했다.
  • 한국의 래퍼 Beenzino다이나믹 듀오와 함께 나이키 찬양가인 를 만들었다.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여자를 찬양하는 내용이며, 평소 빈지노는 나이키 마니아로 잘 알려져 있다. 이후 빈지노는 영향력 있는 인물로서 나이키의 협찬을 받고 있는 듯하다. 또한 빈지노의 의류기업인 IAB STUDIO와 나이키와 종종 협업하고 있다.
  • 애플 CEO 팀 쿡이 나이키의 사외이사를 겸임하고 있는데 이 영향인지 나이키와 애플의 합작라인인 'Nike+iPod'도 있다. 아이팟 없이 Nike+ 기능을 쓸 수 있는 제품도 나왔다고 한다. 아이팟이 시들해진 지금은 애플 워치 시리즈에 나이키 에디션을 추가해 판매 중이다.
  • 의외로 일본의 레이싱 시뮬레이션 게임인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와 연관이 꽤 있다. 2004년 그란투리스모 4 시절에서는 나이키와 그란투리스모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한정판 패키지가 출시되기도 했었으며,[46] 게임 내에서도 나이키가 직접 디자인한 Nike One 2022라는 미래지향적 컨셉트카를 수록. 그란투리스모 6에서는 글로벌 브랜드들이 그란투리스모를 위한 차를 디자인해주는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 Vision Gran Turismo에 자동차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메이커로는 유일하게 컨셉트카 발표 예정.[47]
  • 창립자 필 나이트의 아들 트래비스 나이트는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대표작으로는 쿠보와 전설의 악기범블비가 있다.
  • 2019년 2월 20일에 미국 농구선수 자이언 윌리엄슨의 PG 시리즈 농구화 [48]가 경기 시작하자마자 찢어지는 바람에 넘어져서 경미한 무릎 부상을 입었다. 게다가 해당 선수가 속한 팀이 라이벌전에 져서 나이키는 전방위적으로 욕을 엄청 먹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자이언 윌리엄슨 본인이 같은 신발을 오래, 자주 착용하여 생겨서 일어났다고 밝혀졌다. 이후 자이언은 카이리 어빙 시그니처 농구화를 신었고, NBA뉴올리언스 펠리컨스 입성 후, 에어 조던과의 신인 역대 최대 계약을 맺었다. 정리글 영상
  • Nike Run Club이라는 러닝 보조 어플리케이션[49]과 Nike Training이라는 운동 보조 어플리케이션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나이키라는 명칭과 나이키 로고를 붙인 것만으로 광고 효과가 충분하다 판단했는지 무료 앱임에도 한 달에 한두 번 꼴로 오는 신상품 안내를 제외하면 추가 광고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 과거 한국 TV 방송에서 출연자가 '나이키'를 외치는 것은 해당 장면을 편집해달라는 은어였다. 방송법 상 직접적인 상표를 노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발음이 짧고 편한 상표명인 나이키를 주로 외쳐서 해당 장면이 일부러 편집되도록 만들었다. #

9. 관련 문서



[1] 2020년에 들어서 부터는 아래의 Just Do It 보다도 많이 쓰이는 회사의 슬로건이다. 해당 슬로건은 전 세계가 스포츠로 하나되어 사회적인 차별에 저항하자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2] 한국어로는 "그냥 해." 로 해석된다.[3] 단순히 스포츠 용품 브랜드 중 1위가 아니라 전세계 어패럴 브랜드 1위의 가치를 지녔다. 2019년 브랜드 파이낸스가 조사한 어패럴 브랜드 가치 조사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출처. 2019년 포브스가 선정한 기업 가치 순위에도 패션브랜드 중 루이비통과 함께 20위 안에 들었다. 출처.[4] 이 로고와 특유의 필기체 글꼴도 매우 가끔씩 빈티지 나이키 슈즈에 각인되어 나오는 경우가 있으나, 드물다.[5] 현재는 주로 NIKE 로고가 안 달린 버전으로 쓰지만 이 버전도 간간이 쓰인다.[6] 심지어 처음부터 그래픽 디자인을 지망한 게 아니라 저널리즘 공부 도중 학점 채우기용으로 디자인 수업을 듣다가 전과했다고 한다.[7] 회사가 작았을땐 전담이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70년대 중반부터 나이키가 외주를 주면서 데이비슨 역시 나이키 일 말고 다른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고.[8] 오니츠카 타이거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신발이 바로 코르테즈이다. 자동차 업계로 본다면 아식스는 미쓰비시, 나이키는 현대자동차 쯤 되겠다.[9] 이후 나이키와 니쇼 이와이의 합작인 나이키재팬이 설립된다.[10] 아디다스의 미국 내 총판을 맡고 있던 미국인들로부터 판매권을 인수하는데 자금을 무리하게 동원하였다.[11] 아시아의 모 국가에서 실수로 장갑용의 가죽으로 신발을 생산하여 납품한 것이었다. 참고로 그 모 국가는 한국일 가능성이 높다. 화승산업에서 리복의 운동화를 생산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그 시절 세계 최대의 스포츠화 생산기지는 한국이였다. 산업발전시절 가발과 신발은 전세계 공급의 60% 정도를 차지했다고 한다.. 전세계인들이 쓴 신발이나 가발의 절반은 한국에서 제작된 제품이었던것 물론 그 단가를 맞추려고 엄청난 노동착취가 있긴했다.[12] 화승은 1970~1980년대 나이키에 스포츠화를 공급했고 국내에도 나이키 브랜드를 들여왔지만 1986년 나이키와의 계약 종료로 르까프 브랜드를 런칭했다. 여기에는 나이키 뿐만 아니라 리복을 위시한 타 브랜드에도 신발을 납품하려는 화승의 계획과 자사에만 독점 납품하기를 원했던 나이키와의 의견 대립이 원인이였다는 설이 있다.[13] 별다른 문구 없이 흘러가는 시간만을 표시했음에도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던 광고로,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광고계에서 엄청난 주목도를 받았다.[14] 크리스티아노 호날두, 웨인 루니, 카를로스 테베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호나우지뉴, 세스크 파브레가스, 로빈 반페르시, 보얀 키르키치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아르센 벵거등 당대 최정상 축구스타와 감독들이 참여하였다.[15] 빅뱅태양, 2NE1산다라 박, 축구선수 박지성, 테니스 선수 정현이 카메오 출연.[16] 후에 에어 조던 29에 프린트되어 나왔다.[17] 마이클 조던이 아디다스의 팬이었고, 계약을 맺을 당시 나이키보다 아디다스와 계약하기를 고대했던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984년 당시 나이키의 주식은 폭락을 거듭했었지만 조던과의 계약 후 최초의 시그니쳐 개념을 가진 Air Jordan이란 메이커가 대박을 친 후 아디다스와 나이키의 상황이 역전됐다. 또 1990년대 초반, 즉 마이클 조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당시에는 몇몇 사람들이 Air Jordan을 나이키에서 독립시켜 독자적 브랜드로 만들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고 한다. 만약 그랬다면, Air Jordan은 세계 3위의 신발 제조 회사가 되었을 것이다.[18] 즉, 나이키는 보수주의자나 시골 공화당원, 트럼프 지지자는 필요없다는 것. 또한 사회적 이슈로 광고를 시도했지만 실패한 펩시스타벅스와 달리 예전부터 나이키는 '반항아'적인 광고를 해왔으며, 이러한 광고가 나이키의 브랜드 정체성을 강화시켜 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19] 실제로 4천 3백만 달러 가치의 SNS 버즈량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20] 다만 소득의 규모를 따져보면 한국인들보다 체감적으로는 덜 비싸게 느껴질 것이다.[21] 디자인은 본래 멕시코66과 비슷했으나 세월이 갈수록 디자인이 아식스의 코르세어와 비슷해지는데 사실 코르세어의 독자적 디자인은 블루 리본 스포츠(현 나이키)의 창립자 빌 바워만이 디자인했고 후에 BRS가 오니츠카타이거와 결별할때 벌인 디자인과 상표모델 소송재판에서 승소하여 그대로 가지고왔고 결국 아식스는 약간 변형해서 만들수밖에 없었다.[22] 쉐잎이 테일윈드보단 여유가 있고 신발혀가 좀 더 짧다.[23] 데이브레이크와의 차이점이라면 쉐잎이 더 날렵하고 신발혀 윗부분 마감이 덜 되있으며 더 긴편이다.[24] 외국에선 95와 97과 동급으로 인기가 많다.[25] 2020년 12월 17일 네온 컬러가 리스탁이 되서 국내판매도 했었다.[26] 리스탁이 많이 되는 화이트와 달리 첫 출시때 메인컬러(OG)였던 실버이다 보니까 리스탁도 잘 안되는편이다. 짭도 판치고 진품들도 상당히 비싼편이다.[27] 미드솔 자체가 없고 에어와 신발간의 간격을 최소화했기에 엄청 가볍고 본래의 에어맥스와는 달리 꽤 푹신하다.[28] 같은 나이키의 농구화 라인인 조던 시리즈보다 조금 더 일찍 출시됐다.[29] 1985년 진행한 프로젝트인 'Be True In Your School'에서 12개의 대학교 농구팀의 유니폼 컬러를 적용한 의류, 신발, 가방 등을 출시했는데 이들 중 시라큐스와 켄터키가 인기가 가장 많았고 현재도 이 두 컬러는 덩크시리즈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상징적인 색깔이다.[30] 당시 조던 시리즈의 농구화가 출시됐을때 고급형 라인이 조던이였는데 그때 당시의 신기술들이 결집한 신발은 상당히 가격대가 있었으니 평범한 대학생들이 사긴 어려웠다. 그래서 보급형 라인으로 덩크 시리즈를 만들어 투입된 기술력에 비해 저렴한 가격대로 어필했었다.[31] 조던 미드와는 달리 덩크 미드는 그다지 인기가 많지는 않다.[32] 조던 시리즈와의 공통점이 많아서 유행이 비슷하다. 조던과 덩크의 디자인을 맡았던건 피터 무어였는데 이 사람은 사실 아디다스가 보낸 산업스파이로 조던과 덩크 둘 다 망하게하려고 그때 당시론 상당히 파격적인 디자인을 내세웠다. 근데 이게 대성공을 거뒀고 후에 피터 무어는 아디다스로 돌아갔기에 나이키 입장에선 되려 도움만 받은 입장이 됐다.[33] 한국에 있는 스트릿 편집샵인 '카시나'와도 협업을 했다. 80년대 발전하는 한국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신발혀에 한글로 카시나라고 써있고 색깔이 다른 2가지 버전이 있다. 또 다른 구성품으로는 반팔도 있다.[34] 루나 시리즈 기준 루나에픽과 같은 가격.[35] 요것은 루나글라이드급.[36] 2020년 기준 나이키에서 판매되는 신발 중 가장 비싸며, 두번째로 비싼 선수용 축구화와 비교해도 10만원정도의 큰 차이가 난다.[37] 사실 욱일기 항목에도 있지만, 서구권에선 욱일기 자체에 대한 인식 자체가 미비한 편이다. 사실 한국에서도 크게 논란이 된건 2010년대 들어서부터다.[38] Rising Sun flag=욱일기[39] 여담으로 해당 기사 제목은 '나이키의 도발…3·1절에 日전범기 신발 판매'인데, 누가 보면 나이키가 의도적으로 한국을 도발하기 위해 미친 짓을 하는 것 같지만 기사를 읽어보면 알다시피 2월 말부터 판매해 '3월 1일에도' 판매중인 것이었다. 정말 3월 1일에 맞춰 발매한 것이었다면 국내에서 소송이 쏟아졌어도 이상하지 않다.[40] 실제로 1990년대에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는 학생들의 옷을 지하철 등에서 몰래 칼로 찢는 테러들이 빈번하여 학생들의 안전을 염려한 각 조선학교들이 교복을 치마저고리에서 일반 교복으로 바꾸기도 했다.[41] 한국이 일반 학교에서 조선족을 보기 힘든 것처럼 일본도 일반학교에서 자이니치 자체를 볼 일이 거의 없다며 쉴드치는 경우도 있는데, 실제로는 대부분의 자이니치들은 과거부터 조총련계 조선학교나 민단계 한국학교가 아닌 일반 일본학교에 다녀왔으며 이들이 일상적으로 받아온 차별들은 일본내에서 거론이 금기시 될 뿐 엄연한 사실이다. 단지 그런 차별로 인해 보통 일본식 성과 이름을 쓰며 자이니치인걸 숨기고 다니기 때문에 자이니치인걸 잘 모를 뿐인걸 가지고 일반 학교에서는 자이니치를 볼 일이 없다고 주장하는건 뭘 잘 모르는 소리다.[42] 일본인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예의바르고 도덕적인 숭고한 민족이라서, 야만적이지 않으며 차별, 무질서, 범죄 등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세계관. 2018년에 어느 가족이라는 일본 영화가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자 일본 사회 일각에서 '일본엔 저런 가족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부정했던 것도 이것으로 설명이 가능하다.[43] 그러나 피니시라인은 서로 치수가 안 맞는 신발을 보내는 경우가 있어 "막장 라인"으로 불린다. 실제로는 물건을 직구로 구매하고 받아놓고선 못 받았다고 카드 결제를 취소해버리고 물건도 보내지 않는 블랙컨슈머가 많아서 안 받는다는 말이 있다. 다른 풋 계열은 잘 받는 중이고 변팔만 잘되면 미국 공홈에서 충분히 한국카드 사용 가능하다.[44] 나이키의 베스트셀러 제품을 여러 컬러웨이나 소재를 바꿔 재창조[45] 실제로 칸예웨스트는 패션계 입문 전부터 펜디의 인턴사원으로 일하며 디자인을 배웠다.[46] 나이키 디자인의 드라이빙 슈즈와 티셔츠가 들어있는 알루미늄 케이스의 패키지. 국내에는 들어오지 않았다.[47] 사실 에어 조던 역시 예정하고 있지만 나이키 산하의 조직이다.[48] 폴 조지 시그니처[49] 상술한 애플 워치 나이키 에디션에 나이키 페이스와 기본적으로 설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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