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이 고

 

'''나가이 고
(なが)''''''()(ごう) | Gō Nagai'''
'''본명'''
나가이 키요시 (永井 潔(ながい きよし)
'''국적'''
일본 [image]
'''출생'''
1945년 9월 6일 (78세)
이시카와현 와지마시
'''직업'''
만화가, 교수
'''수훈'''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1] (2019년)
'''서명'''
[imag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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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도쿄도립이타바고등학교 (졸업)
와세다세미나[28] (중퇴)
'''혈액형'''
O형
'''형제'''
'''형''' 나가이 야스타카(永井泰宇)
'''데뷔'''
메아카시 포리키치 (1967년)
'''장르'''
소년만화
'''활동 기간'''
1967년 – 현재
'''역임 직위'''
일본 SF작가 클럽 회장 (1996~1999)
오사카예술대학 캐릭터 조형학과 교수 (2005~)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심사 위원 (2009~)

1. 개요
2. 생애
3. 작품 성향
4. 나가이 고의 영향을 받은 것들
5. 화풍
6. 작품
7. 여담
8. 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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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만화가. 일본 만화의 거장이다.

2. 생애


만화가를 지망하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 형이 가져온 데즈카 오사무로스트 월드를 읽고 나서였다고 한다. 그 밖에 이시노모리 쇼타로시라토 산페이의 만화에 영향을 받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주변 친구들에게 만화가가 될 거라고 호언장담하고 다녔으며, 지금도 만화가가 돼서 가장 좋은 점은 '만화를 그릴 수 있다는 것'이라며 천직이라고 여긴다.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만화가가 되기 위한 소재를 얻기 위해, 어떤 날은 하루에 영화관을 3, 4관을 옮겨다니면서 보고, 소설과 라쿠고 등 뭐든지 창작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은 보고 읽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와세다대학 진학을 목표로 재수를 하던 중, 3주 동안 멈추지 않는 설사에 시달렸는데, 형이 "그건 대장암에 걸린 것이다."라고 엉터리로 알려줬다. 나가이 고 본인은 자신이 죽고 난 후 세상에 자신이 살아있었다는 증거로 만화를 그려서 남겨야겠다고 결심한다. 나중에 병원에 갔더니 대장암은 아니고 장염으로 판명 나고 약 먹고 1주일만에 나았지만, 이 때의 결심으로 만화를 그리는 걸 더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해 재수생활은 3개월 만에 그만둔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짬짬이 그린 만화 원고를 들고 출판사의 문을 두들겼지만 제대로 상대해 주지도 않고 번번이 퇴짜를 맞았는데, 그 가운데 학생은 공부나 열심히 하라던 소년 선데이 편집부의 친한 편집자에게 어떡하면 데뷔할 수 있을까 물어보니, 프로의 어시스턴트가 되면 데뷔하기 쉽다는 말을 듣고, 평소 존경하는 데즈카 오사무 프로덕션으로 찾아갔지만 데즈카 선생님은 부재중이었고, 그 자리에서 데즈카의 제자인 이시노모리 쇼타로가 어시스턴트를 구한다는 말을 듣고 소개를 통해 그의 어시스턴트로 일하게 되었다.[3]
어시스턴트로 일하면서 습작을 쌓아가던 나가이 고는 1967년, TVA '꼬마 괴수 야다몽 #'의 만화판 기획을 담당하게 되고, 그 전에 실력을 점검하는 의도로 개그 단편 <메아카시 포리키치(目明しポリ吉)>로 데뷔한다. 본인은 어릴 적부터 SF를 좋아해서 스토리만화, 특히 SF 스토리만화를 그리고 싶었지만, 이시노모리의 어시스턴트 생활이 너무 바빠서 (본인 말로는 바쁠 때는 2주일간 하루 2, 3시간 잠을 자고, 화장실 가고 "가끔" 식사할 시간밖에 없어서 화장실에서 기절한 적도 있었다고) 스토리만화를 그릴 시간이 없어서 그림이 간단하고 배경이 하얗게 없어도 되는 개그만화라면 그릴 수 있겠다 싶어서, 스토리만화 기법으로 개그 만화를 그린다. 개그만화는 3등신이라는 기존의 형식을 벗어난 8등신 캐릭터를 등장시키고. 칸 나누기도 큰 칸을 사용하고, 2페이지 전면 컷을 집어넣는 등 새로운 스타일 개그만화를 선보인다. 물론 나중에는 내용면에서도 파격으로 치달리게 되지만.
이 무렵 데뷔하고 5번째로 발표한 단편을 보고 잡지 모험왕의 편집장 카베무라 타이조(壁村耐三[4])가 찾아와 그의 작품을 칭찬하고 아카츠카 후지오에게 나가이 고를 소개시켜 같이 만난 적이 있는데, 아카츠카는 그의 단편을 보고 '어린이 상대로 이런 잔혹한 만화를 그리면 안된다고'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에 대해 혹평했다. 하지만 나가이 고는 오히려 개그만화의 거물 아카츠카 후지오가 못하는 것, 안하는 것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슬랩스틱, 에로, 그로테스크, 넌센스한 요소를 집어넣은 작품을 계속 추구하기로 마음먹는다.
데뷔한 다음 해인 1968년, 새로 창간된 주간 소년 점프에 몇 편의 단편으로 실렸다가 연재가 된 파렴치 학원은 출세작으로 초기의 소년 점프의 지탱하는 대들보 역할을 하였고, 이후 쏟아지는 개그물의 의뢰로 한동안은 개그만화 작가로 이름을 알린다.
70년대 부터는 <스스무쨩 대충격(ススムちゃん大ショック)>[5] 같은 심각하고 쇼킹한 주제의 단편들을 내놓더니 오니, 마왕 단테, 데빌맨부터는 본격적으로 그가 그리고 싶어하던 스토리만화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1969년에 다이나믹 프로라는 어시스트를 포함한 만화가 창작집단 회사를 설립했다. 다이나믹 프로는 만화가 한 명과 그 밑의 어시스턴트의 모임이 아니라, 개인 개인의 만화가들이 모인 공동체 개념의 회사였다. 이윽고 그의 만화 마왕 단테를 애니메이션화하고 싶어하는 토에이 애니메이션 기획부장과 만나서 데빌맨, 마징가 시리즈 등의 히트 애니메이션을 기획하면서 재능을 마음껏 뽐내기 시작한다. 특히 인간이 로봇에 탑승해서 자동차를 운전하듯이 조종한다는[6] 아이디어는 거대로봇물 장르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일본만화계는 데즈카 오사무에게서 '''꿈'''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면, 나가이 고에게서는 특유의 '''성적 개방성'''과 '''폭력성'''을 배웠다고 흔히 표현한다. 데즈카 오사무 역시 어두우며 폭력적이고 성적인 만화들을 많이 그렸음[7] 에도 유달리 나가이 고에게 이런 수식어가 붙는 것은 일본 만화계의 수위 논란 당시 이미 데즈카 오사무는 상업적인 전성기를 지나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불리는 상황이어서 이러한 논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고 데즈카의 초창기 작품의 상당수는 디즈니의 영향을 받아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것들로 이뤄져 있었던데다 데즈카 자신은 모든 연령대를 생각하고 만화를 그린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에[8], 치마들추기라는 성적인 요소를 만화의 이야기 구조를 강화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만화의 주요 소재로 활용한 나가이 고가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된것. 이 과정에서 나가이 고는 이전까지 자신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개그만화 파렴치 학원을 처절하게 마무리 시키고 더욱 더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만화 데빌맨을 히트시키면서[9] 자신의 이미지를 데즈카 오사무와 완전히 상반되는 이미지로 변모, 독보적인 존재로 부상하게 된다.[10]
2010년에 진 마징가 충격! H편의 연재를 시작하는 동시에 바쿠만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자신의 실제 연재경험을 바탕으로 그리는 (일단 서두에서 픽션이라고 하고 있지만) '게키만' 이라는 작품을 그리고 있다. 주간 만화 고라쿠에서 연재 중. 아무리 봐도 나가이 고 본인으로 보이는 가공의 만화가가 주인공인데 이름도 '''나가이 게키'''. 주로 자신의 작품에서 왜 이런 연출이 들어갔는지 그 의도를 간접적으로 해설해주거나, 연재 중 에피소드 같은 게 나오는데 바쿠만 주인공들을 앞서나가는 그의 발상력과 대담함, 행동력을 보면 역시 나가이 고란 말이 나온다. 물론 과장도 섞였을지도 모르지만.
2005년부터 만화가나 소설가 등을 초빙하여 교수로 삼는 오사카 예술대학의 캐릭터 조형학과의 교수가 되었었다. 또한 2009년에 자신의 고향에 나가이 고 기념관이 개관하였다. 제자 혹은 소중한 동료 로는 겟타로보의 원작자인 이시카와 켄, 그로이저X의 원작자인 오타 고사쿠가 있다.

3. 작품 성향


'''에로''', '''그로테스크''', '''넌센스'''라고 불리우는 3대요소로 유명하며 본인도 그러한 것을 몹시 즐긴다.
사실 원래는 개그만화 작가였다. 물론 지금보면 이게 과연 개그만화에서 해도 되는 짓인가 싶은 광기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일단은 진지한 작품은 거의 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11] 사실 본인은 원래부터 진지한 만화를 그리고 싶어했다지만 데뷔작이 개그만화였던 것도 있고해서 개그만화 말고는 연재 의뢰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 나가이 고는 "난 평생 개그만화 말고는 그릴 수가 없는 게 아닌가" 하고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파렴치 학원 사건이 터지는데 파렴치 학원은 당시 만화를 사냥하던 PTA(학부모협회)에 의하여 집중공격을 받게 되었으며 그 때문에 PTA의 영향력[12]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당시의 언론에 의해 동정이라 상상이 변태적이라서 작품이 그렇다는 둥, 오카마 바에 출입하는 동성애자라는 둥 언론이 만들어낸 루머에 시달렸다. 당시엔 특히나 동성애자에 대한 인식이 매우 안 좋던 시절이며, 게이로 몰아가는 것은 아예 사회적으로 말살시키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파렴치 학원의 교사진이 당시까지의 권위적인 교사상에 반했기 때문에 교육자층도 앞장서서 나가이 고를 공격했다. 이때의 나가이 고는 그야말로 악마이자 공공의 적이었다. 전국민과 지상파 뉴스가 나가이 고를 심심하면 욕하는 수준이었으며 학교 동창도 나가이 고를 욕하고 밖에 나가면 손가락질을 당하는 등 심한 이지메를 당했다고 한다. 응원해주는 어린이 팬이 아니었으면 접었을 거라고.
이에 대해선 확인이 힘들지만 무시무시한 소리가 있는데 나가이 고가 편집자에게 외로우니 여자 좀 소개시켜 달라고 하자 편집부는 '나가이 고가 여자를 만나서 동정을 버리면 지금과 같은 대박 아이디어는 나오지 못할 것이다!' 라고 당황하면서 무려 슈에이사 편집부 전체와 같은 동료 작가들까지 '나가이 고의 동정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해서 나가이 고는 절대적으로 동정을 지켜야 하니 여자를 소개시켜주지 말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이 모임을 만들 것을 주장한 사람이자 회장은 일본침몰의 작가 코마츠 사쿄였다는 소리도 있다. 코마츠 사쿄도 꽤나 엽기적인 글을 쓰기로 유명한데 자신이 동정을 버리자 그런 글이 안 써졌다며 그런 자신의 경험에 의거해 나가이 고의 동정을 지킬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회원 중 한 명이 츠츠이 야스타카였다고. 이게 사실인지는 세월이 지나 확인이 곤란하지만 업계에선 유명한 소문인지 만화가 니시자와 5mm가 자기 작품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본인은 이 시절을 철저하게 자신의 인격을 부정당했다고 회상하며 이 때의 분노가 담긴 것이 파렴치 학원의 대전쟁편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쟁은 외부세력이 학원에 간섭하여 학원의 자주성을 지키기 위하여 처절한 전쟁을 벌인다는 것이며 이 외부세력은 PTA를 암시한다고 한다.
이러한 분노는 파렴치 학원에서 끝나지 않고 이어졌고 이후로는 흔히 알려진 에로, 그로테스크, 인간 비판 작품을 주로 그리게 된다. '마왕 단테'에서는 초고대문명을 이룩한 고대지구인들이 우주에서 침략해온 에너지 정신체인 신에 의하여 학살당하고 악마가 되어버렸으며 현재의 인류는 신에 의하여 편리한 도구로 인공적인 진화를 마친 유인원이라는 충격적인 전개를 내던졌다. 신에 의하여 악마가 돼버린 초고대인들은 신의 주구인 인간과 대립을 피할 수 없으며 주인공은 악마의 수장으로서 신과 맞선다는 스토리였다. 마왕 단테는 연재하던 잡지의 휴간으로 도중에 끝나버렸지만 후에 이러한 설정은 데빌맨에까지 이어져서 당시의 편집자는 나가이 고가 인간 그 자체를 증오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 의심했고 후에 나가이 고는 선선히 그것을 긍정하기도 했다.
이러한 반사회적이라고할 수도 있는 성향은 언론과 각종 시민단체에 의하여 당시 주목되던 만화에 대한 사회적인 탄압에 딱 좋은 표적이 되었지만 반면에 동종업계인들과 만화의 독자층에서는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다. 예술지가 아니라 상업지인 만화잡지에서 계속해서 나가이 고의 만화를 연재하게 한 것도 사회적인 규탄을 받는다는 손해를 상회하는 이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병상련의 기분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만화가로서 시리어스한 측면만이 평가되어 코믹, 개그 만화가로서의 평가는 상대적으로 덜한 감이 있는데 어떤 만화에서도 개그를 잊지 않는 것을 보면 역시 단순히 심각한 만화만을 그리는 작가는 아니다.
작업 스타일도 상당히 특이한 편인데, 처음부터 잘 짜여진 시나리오에 따라 그리는 게 아니라 단지 기본적인 캐릭터와 배경만을 설정한 뒤 스스로 거기에 몰입해서 '캐릭터가 움직이는 대로' 그려낸다고 한다. 덕분에 모 작품에서 주연급 캐릭터가 사망하는 충격적인 전개가 있었는데, 본인 말로는 정작 그려놓고 자기도 엄청나게 놀랐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의 작품에선 삘 받아서 던져놓고 회수하지 않는 떡밥이 매우 많고 스토리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 대표작으로 알려진 바이올런스 잭 조차도 작품내 던져놓고 회수 못한 떡밥들이 넘쳐나서 작가 본인도 아예 놔버렸나 싶을 정도이다.
또한 몹시 질리는 게 빨라서 작품의 연재가 오래가지 않는 것은 특징 겸 단점으로 수십 종이 넘는 만화를 연재했지만 그 중에서 10권을 넘긴 것은 드물다. 그나마 길게 연재한 것은 초기의 대표작인 파렴치 학원과 그 밖에는 바이올런스 잭과[13] 아바시리 일가 정도가 있다. 그나마 그 바이올런스 잭과 아바시리 일가도 후반에 가면 작가 본인이 질린 게 뻔히 느껴지는 게 보일 정도로, 지금까지 해왔던 거하고는 딴 얘기를 한다거나,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진다거나 하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일본에선 데빌맨의 원작판을 제외하면 그가 그린 만화판은 의외로 그렇게 높게 평가받지 못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 틀을 벗어난 천재적인 발상력에서 나오는 캐릭터와 아이디어만큼은 높이 평가받는다. 어찌보면 일본 만화계의 누벨바그 작가라고 봐도 무방하다. 대신에 그의 아이디어를 받아서 만든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중에선 오랜 세월 동안 인기를 끄는 작품이 많다.
그럼에도 그가 만화계에서 큰 입지를 차지하는 건 그 만큼 히트작을 연타석으로 다수 배출한 작가가 일본 내에서도 매우 희귀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 치면 원나블 급의 히트작을 혼자서, 연타석으로 배출한 괴물이다. 이런 작가는 데즈카 오사무, 이시노모리 쇼타로 이후에는 나가이 고를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들다.
여담이지만 작품의 성향과는 달리 실제로 대할 수 있는 그의 성품은 넉살좋은 동네 아저씨라고 한다. 실제로도 굉장히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유머감각도 상당하다고 한다. 2007년 무렵 한국에 방한했을 때 잔인하고 야한 만화를 주로 그리기에 뭔가 꼬인 성격이 드러나는 모습일 줄 알았던 만화팬들이 현장에서 그가 보인 인품에 반했다는 후문이 있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데뷔 이후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인터뷰를 했는데 말실수로 논란을 일으킨 적이 단 한 건도 없다. 얼마나 배려심이 있고 말조심을 하는지 알 수 있는 점. 이런 사람을 그렇게 괴롭혀댄 당시 PTA와 기레기들이 얼마나 파렴치하고 몰지각했는지도 알 수 있다.

4. 나가이 고의 영향을 받은 것들


  • 마징가Z는 당시까지 원격조종형인 철인 28호와 자율형인 아톰에 대하여 탑승형이라는 3번째의 형태를 제시했으며 사실상 일본에서 인간이 로봇에 탑승하는 모든 작품의 선조가 되었다. 물론 마징가Z가 최초의 탑승형 로봇은 아니지만 비주류였던 탑승형 로봇을 주류로 끌어올리고 로봇의 한 가지 형태라고 인지시킨 것은 마징가Z이다. 또한 마징가Z는 로봇물의 기본적인 틀을 제시하였으며 그것은 수십 년이 지나도록 지켜졌고 계속해서 지켜지고 있다.

5. 화풍


화풍에 고유한 몇가지 특징이 있다.
스크린톤의 비중이 적고 대신 검은 먹선 위주로 채색하며 그라데이션 표현이 거의 없어 음영이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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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빌맨 시리즈의 캐릭터들
마징가 Z 코믹스
큐티하니 코믹스
주요 등장인물들의 경우 눈 위아래 폭이 넓고 눈꼬리부분이 위로 치솟아 매서워보이는 눈매를 가졌으며, 눈 밑에 아이라이너를 바른 듯 미간부터 눈꼬리까지 이어지는 선이 강하다 .눈동자는 작아 흰자의 비중이 큰 삼백안이나 사백안이다. 쉽게말해 윗쪽을 잡아늘인 사다리꼴 스타일. 대표작인 데빌맨 시리즈의 등장인물들은 거의 다 이런 눈매를 가지고 있다. 미키처럼 눈동자가 크고 정사각형에 가까운 순정만화풍 눈매를 지닌 여캐는 매우 드물다. 나가이 고는 작품과 캐릭터에 따라서 눈모양에 확연한 차이를 두는 스타일로 눈모양만으로도 캐릭터의 성격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캐릭터를 두드러지게 그리는 편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화가 되면 그림체가 좀 더 소년만화처럼 변하게 되는데, 그래서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이가 원작 만화를 보면 강한 개성에 이질감을 느끼게 될 정도이다. 이는 나가이 고도 그렇고, 나가이 고에게 영향을 받은 이시카와 켄도 마찬가지이다.
헤어스타일도 둥글기보다는 끝부분이 뾰족하게 빠지며, 단발머리의 경우 머리끝이 안쪽으로 뾰족하게 뻗혀있다. 바보털과는 다른데, 꽁지나 뿔처럼 날카로운 실루엣이다.
남녀 주연급중에는 갸냘픈 캐릭터는 별로 없고, 근육질의 굵은 체형을 가진 경우가 많다. 남녀 공통으로 역삼각형 근육질이 많으며, 특히 대흉근, 광배근, 삼각근이 두드러진다. 대신 상대적으로 하체근육은 크게 그리지 않아서 다리는 굵지 않은 편. 삼각근이 자기 머리통만한 바이올런스 잭도 다리근육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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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이 고의 바이올런스 잭
하라 테츠오의 북두의 권
미우라 켄타로의 베르세르크
비슷하게 상체근육이 큰 스타일인 하라 테츠오미우라 켄타로와도 차이가 있는데, 하라나 미우라는 바지를 입은 하체를 그릴 때에도 무릎과 대퇴사두근의 굴곡이 표현하는 편이지만 나가이 고는 그러는 경우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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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캐의 경우에도 삼각근, 대흉근은 상당히 발달된 형태로 그리는데, 여성의 유방을 엎어놓은 밥공기 형태로 그리는 특유의 그림체와 겹쳐서 의젖같은 형태다. 큐티하니시레누, 데빌맨 레이디가 대표적 케이스.
나가이 고는 자신의 만화에 나오는 인물들의 체형이 일본인의 체형이 아님을 인정하고 있다. 어린 시절 봤던 프랑스나 헐리우드 영화에 나온 배우들의 체형이 기본이 되었다고하며 # 일본인의 체형은 그리기 싫었다고. 프랑스 여배우 마틴 캐롤 (Martine Carol)을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마틴 캐롤을 검색해보면 나가이 고가 왜 여체를 저렇게 그리는지 알 수 있다. 나가이 고는 자신의 작품이 아시아보단 서양에서 더 쉽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도 이런 것에 있지 않을까하고 추측했다.

6. 작품


  • 강철 지그
  • 게키만[14]
  • 겟코가면
  • 겟타로보[15]
  • 그레이트 마징가
  • 그로이저X[16]
  • 데빌맨
  • 데빌맨 사가
  • 레전드 오브 다이나믹 호상전 붕계의 윤무곡
  • 마법소녀 티클
  • 마왕 단테
  • 마징가Z -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명실상부한 그의 대표작.
  • 몽차원헌터 판도라[17]
  • 바이올런스 잭
  • 배틀호크
  • 사이코아머 고바리안
  • 수신 라이거
  • 신데렐라 기사
  • 수천동자
  • 아바시리 일가
  • 아이언 머슬
  • 철전사 무사시
  • 큐티하니
  • 파렴치 학원
  • 프로레슬링 스타 아즈텍카이저
  • 하낫페 바주카(花平バズーカ)[18]
  • 환상팬티
  • Dororon 엔마군 메라메라
  • UFO로보 그렌다이저
  • X 봄버


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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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이 고(왼쪽)와 시노자키 아이[19]
  • 나가이 고는 일본에 존재하는 5개의 소년 주간 만화잡지에 5개 작품을 동시에 연재한 신화를 가지고 있다. 소년 점프에 파렴치 학원, 소년 선데이에 애니멀 캐다군, 소년 매거진에 오모라이군, 소년 킹에 파이팅 스포콘군, 소년 챔피언에 아바시리 일가. 그러나 역시 너무 무리가 따랐는지 소년 킹에 연재되던 파이팅 스포콘군은 연재 5주만에 종료되었다. 소년 킹은 폐간되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20] 또한 데빌맨을 연재하게 되면서 여기에 집중하기위해 당시 최고 인기작이었던 파렴치 학원을 그만두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는데 얼마 안 가서 소년 점프에 마징가Z를 연재하게 되면서 이 일정조율은 헛고생이 되었다. 다만 파렴치 학원을 더 그릴 모티베이션이 없는 상태라 그만둔 것이기 때문에 결정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 먼저 연재를 타진했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는데 잡지사 측에서 "나가이 선생님의 만화를 연재해주시겠다는 것은 고맙지만 도저히 연재료를 지불할 수 없으니 포기하겠다"는 말을 들고 놀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가이 고의 작품의 권리 등을 다루는 다이나믹 프로가 나가이 고의 인기를 빌미로 사기적인 액수의 연재료를 요구한 것이었다.
  • 나가이 고는 데즈카 오사무를 매우 존경하였으며, 데즈카 오사무가 죽었을 때는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데즈카 오사무의 딸 데즈카 루미코가 트위터에 올려서 화제가 되었는데, 나가이 고는 "신이 죽었다는 기분이었다."라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데즈카 오사무에 대해서는 항상 미래를 보는 사람이었다. 과거의 이 작품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것은 됐고 앞으로 연재 할 차기 작품의 구상을 들려주었다고 한다. 그 밖에 거대로봇만화의 방법론을 제시한 요코야마 미츠테루이시노모리 쇼타로도 만화의 선구자로서 무척 존경했다고 전해진다. 2004년 요코야마가 화재사고로 별세하자 언론사에 자신의 비통한 심정을 토로하며 "철인28호가 없었으면, 나의 마징가도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술회했고, 이시노모리 쇼타로 원작인 사이보그 009과의 콜라보 작인 "사이보그 009 VS 데빌맨"의 제작이 결정 되었을 때에도 감회가 새롭다고 밝혔다.
  • 미국 성우들 몇몇과도 친분이 있는 것 같다.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신 큐티 하니 북미판 더빙 성우는 나가이 고 자신이 직접 추천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 초기작 파렴치 학원의 1부 결말에서 정부 측 대표가 학원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몰살시키기 위해 출전하면서 "히히히 대동아 전쟁 이후로 오랜만에 사람을 죽일 수 있다! 대의명분이 있으면 얼마든지 사람을 죽일 수 있지!"라고 언급하는 광기스런 대사와 게키만에서 밝힌 데빌맨의 배경 설정[21]으로 보면 역사적 인식이 꽤 올바른 사람이다. 나가이 고는 자신이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피난선이 어뢰를 맞아 침몰할 뻔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전쟁을 매우 싫어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스승인 이시노모리 쇼타로부터가 전쟁고발 만화를 그린 사람이었고 같은 사상을 가진 만화가 선배인 데즈카 오사무, 아카츠카 후지오, 미즈키 시게루 소설가인 코마츠 사쿄, 츠츠이 야스타카 [22] 하고도 교류를 가졌다. 이런 환경에서 그가 우익사상을 가지게 된다면 그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 한국에 대한 인상이 꽤 좋은 것 같다. 단순한 립서비스일 수도 있지만 여행 갔던 제주도의 제주도민들에게서 선물도 받는 등 따듯한 대접을 받은 모양이다. 실제로 용비불패문정후 작가에게 자신의 대표작인 데빌맨의 리메이크를 맡기는 등 한국 만화계에도 관심이 있는 모양.
  • 젊었을 때 연애 경험은 거의 없고, 만화 2차원 캐릭터에 빠졌는데, 데즈카 오사무리본의 기사에서 남장 여인 주인공 사파이어 공주가 여성으로 드레스를 입었을 때 젖가슴이 보였을 때 심쿵했다고.
  • 이시카와 켄은 절친이자 술 친구[23]로, 해외 여행도 같이 갔고, 함께 술 마시면서 "만화가는 마감이 없다면 이보다 좋은 직업은 없을 텐데"라며 푸념을 늘어놓는 사이였다.
  • 아내는 인형극단원 겸 점술가였는데 당시 잘 안 되던 연애문제로 점을 보던 도중에 오히려 정이 들어서 결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내가 영능력이 너무 세서 무슨 생각을 해도 간파해버리기 때문에 단 한 번도 바람을 피운 적이 없다고 한다..연애할 적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는데 아내가 먼저 전화해서 "불렀어?" 라고 한 적도 있다고. # 아내가 영어도 잘해서 해외에 갈 때 통역을 해주기도 한다고.
  • 소년 점프에서 많은 히트작을 연재했음에도 소년 점프에서 자신들 잡지의 대표 작가들을 언급할 때 나가이 고나 그의 작품인 파렴치 학원, 마징가 Z는 보통 생략된다. 마징가 Z 연재 당시 소년 매거진에서 마징가 Z를 연재하기로 하고 점프판 마징가 Z는 대충 연재종료를 해버린 사건이 있기 때문에 괘씸죄로 언급을 안 한다는 얘기도 있다.
  • 제대로 완결난 작품이 몇 없다. 파렴치 학원도 상술한 파렴치 전쟁 에피소드 이후 급 완결났고 마징가 시리즈는 사실상 40년 넘게 완결이 되지 않고 있다.[24][25]
  • 나가이 고의 선정성으로 여성 캐릭터 작화가 주로 언급되지만, 사실 남성 캐릭터를 에로틱하게 그리는 솜씨도 뛰어나다. 기본적으로 상체탈의 상태인 데빌맨을 비롯, 스쳐지나가는 남성 단역들도 노출씬이 드물지 않은데다 육체의 남성미를 잘 살리는 편. 특히 많은 작가들이 생략해버리는 늑골에서 골반으로 이어지는 남성 특유의 라인을 잘 살린다. 장미물 작가들 중에서는 나가이 고의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한 작풍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
  • 일본 SF작가 클럽 회원이며 9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만화가로선 2번째로 들어간 이례적 사례인데[26] 츠츠이 야스타카일본침몰의 코마츠 사쿄가 "이 놈은 천재다." 라면서 회원에 넣어버렸다고 한다.
  • 아카츠카 후지오는 나가이 고가 어린애들이 토막난 사람 시체를 가지고 노는 개그만화를 그리자 "개그 만화엔 잔혹신이나 키스신이 나오면 안 된다. 편집부에 이런 만화 싣지 말라고 말하고 왔다." 라고 하면서 혼냈다고 한다.(#) 결국 이 만화는 인기는 좋았으나 조기 중단. 그러나 다른 잡지사에서 "아카츠카 후지오 선생이 욕한 만화는 성공한다." 라면서 나가이 고를 불러냈고 나가이 고의 바이올런스함은 불이 붙게 된다. 훗날 아카츠카 후지오는 그때 미안했다며 나가이 고에게 사과를 했다고 한다.[27]
  • 영화광이며 헐리우드 영화 뿐만 아니고 상당한 유럽 영화 전문가로도 알려져 있다.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 영화를 좋아한다. 위에 언급된대로 캐릭터의 체형과 외모도 거기서 따온 것이며 파렴치 학원, 마왕 단테 등 그의 작품 상당 수는 유럽 영화에서 모티브를 따 왔다. 그쪽 인터뷰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자주 언급해서 "저 작가는 어떻게 저렇게 우리 문화를 잘 알고 있냐" 라면서 감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 훗날 대표작이 된 데빌맨이나 마왕 단테에 나오는 기독교적인 종말론/세계관은, 그 실상은 나가이 고 본인은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고 기독교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다만 어릴 적에 단테신곡를 아동용으로 요약한 책을 읽은 기억과 서양영화를보고 영감을 얻은 어렴풋한 이미지로 만화로 그렸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일본 전체 인구의 1%도 안 되는 마이너 종교라서, 나가이 고가 만화에서 그린 기독교적인 세계관과 종말론적 이미지는 당시 일본인한테는 대중적이지 않고 특이한 경우에 속했다고 한다. 한국으로 치면 에반게리온에 나오는 유태교밀교 카발라와 비슷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8. 바깥 고리



[1] 3등급에 해당한다.[2] 카부토 코우지 옆에 있는 것이 서명.[3] 출전: 週刊少年 「永井豪」 インタビュー. [4] 나중에 소년 챔피언의 2대 편집장이 되어 발행부수 25만부였던 꼴찌 잡지를 250만부까지 끌어올려 업계 선두자리를 차지한 소년 챔피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명물' 편집장. 마감을 넘긴 전성기의 데즈카 오사무를 찾아 가 멱살을 잡고 항의를 한 적도 있는 야쿠자같은 무뢰배로 유명했다. 한물 갔다고 평가받던 데즈카 오사무에게 블랙잭의 연재를 의뢰한 사람이기도 하다. 나가이 고에게는 처음으로 월간 잡지의 연재를 맡기고 최초의 어시스턴트도 데려와 주기도 했다. 나가이 고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5] 어느날 갑자기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이유도 없이 무자비하게 살해한다는 내용. 경찰이 어린이를 총으로 쏴 죽이고, 주인공인 스즈무쨩은 엄마한테 식칼로 목이 잘려 죽는다.[6] 애니메이션으로는 프랑스 애니메이션 왕과 새(1952)가 훨씬 더 빨랐다.[7] 사실 데즈카 오사무는 이런 선정적인 부분은 어느정도 순화시키는 선에 묘사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 적극적인 나가이 고와는 대조적인 편이다.[8] 만화가의 길 참조[9] 데빌맨 연재 당시, 소년지에서 강간 장면을 처음으로 그리겠다면서 "사람이 아니라 악마가 악마를 범하는 거니 괜찮다"라고 이야기했던 게 바로 나가이 고다. 당연히 이는 기각되었고, 결국 후배 만화가들이 그린 앤솔로지에서야 비로소 구현된다. 그리고 데빌맨 Crybaby에선 영상화까지 되었다.[10] 하지만 데즈카 오사무가 사망했을 때 나가이 고는 어린애가 울듯이 통곡했다고 전해진다. 서로 지향하는 바는 달랐어도 데즈카에 대한 존경심은 높았던 듯.[11] 자전적 만화 게키만에 따르면 데빌맨을 그릴 당시의 어시스트들은 모두 개그만화 지망생이라 리얼한 배경을 그릴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배경대신 적 캐릭터를 많이 넣거나 숲에서 싸우는 걸로 해서 배경을 아꼈다고.[12] PTA의 조직내에서의 서열은 남편의 사회적인 직위에 의하여 결정되며 그런 탓에 PTA 회원들의 남편 중에서는 사회적인 영향력을 가진 인물들이 적지 않았다.[13] 단 바이올런스 잭은 연재를 몇 번 중단했다가 성인잡지로 옮겨서 완결했다.[14] 데빌맨의 장, 마징가Z의 장, 큐티하니의 장 이후 마징가 Z&그레이트의 편 연재 개시[15] 실제로는 이시가와 켄 작품. 자세한 사정은 항목을 참조하자.[16] 이름값만 빌려준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는 오타 고사쿠가 작업했고 나가이 고는 손도 안 댔다고.[17] 원안 담당.[18] 1970년대 말, 80년대 초까지 주간 영 점프에 연재했던 에로 만화. 한국에는 1980년대 말, 90년대 초에 해적판 성인만화 '사랑의 박격포'로 소개된 적이 있다. 주인공 하나헤이. 통칭 '하낫페'가 악마로부터 자신이 손가락(남자 거시기처럼 변한)으로 가리키는 모든 여성과 성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내용이 2010년대 지금 기준으로도 수위가 높다. 만화 원작자가 코이케 카즈오다.[19] 시노자키 아이는 2015년 신형 초합금 그레이트 마징가 발표회장에서 활약한 마징가풍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20] 소년 킹이 그저그런 잡지였던 것은 아니었고 1963년부터 출간된 유서깊은 잡지였는데 은하철도 999초인 로크 등이 연재되었을 만큼 나름 저력도 있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못 이기고 메이저 주간만화 잡지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폐간되었다. 여담인데 초인 로크는 가히 국내만화가 김진의 저주를 능가할만한 수준으로 소년 킹 이후에 지면을 바꿔 연재되는 잡지나 사이트마다 죄다 망한 전설의 작품이다.[21] 데빌맨의 모티브와 극중의 아키라의 행동은 애국심과 순수함을 국가에 이용당한 젊은이의 절규라고 한다. 그리고 미래에 전쟁의 아픔이 잊혀졌을 때 우익들이 군비증강을 노리게 되고 젊은이의 사상을 침식해갈 것이며 데몬은 이를 상징한다고 한다. # 정치인들에 의해 극우화되어가는 현 일본의 상황을 생각하면 소름끼칠 정도로 예리한 통찰이 아닐 수 없다.[22] 한국에선 소녀상 망언으로 완전히 찍혔지만 원래는 역사인식이 올바른 사람이다.[23] 그리고 그에게 만화를 가르친 스승이기도 하다.[24] 어둠의 제왕의 정체가 뭔지 아직도 공개되지 않았다.[25] 이러한 점은 마징가 시리즈가 끊임없이 리부트만 진행되는데 정작 리부트 작품들도 완결이 되지 않으면서 더욱 악순환되고 있다[26] 첫번째는 데즈카 오사무다.[27] 사실 아카츠카 후지오 만화도 시체 가지고 노는 장면이 꽤 나온다. 오히려 나가이 고가 아카츠카 후지오에게 영향을 준 거 아니냔 추측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