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맨슨

 



'''찰스 맨슨'''
'''Charles Manson'''
'''본명'''
찰스 마일즈 맨슨
Charles Milles Manson
'''출생'''
1934년 11월 12일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사망'''
2017년 11월 19일 (향년 83세)
캘리포니아주 베이커스필드
'''국적'''
미국 [image]
'''신체'''
157cm[1], 70kg
'''죄목'''
모살, 모살음모[2]
'''수감처'''
코르코란 캘리포니아 주립교도소
'''미간에 하켄크로이츠 문신도 하고 있는데, 원래는 그냥 X자를 새겼다고 하나 재판 도중에 덧그렸다고 한다.'''
1. 개요
2. 생애와 행적
2.1. 출생 및 성장
2.2. 맨슨 패밀리
2.3. 폴란스키 가 살인 사건
2.4. 이후
2.5. 사망
3. 음악
4. 기타


1. 개요


미국연쇄살인범.
소위 맨슨 패밀리라고 불리우는 범죄집단을 이끌었으며, 60년대 후반에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아내와 친구들을 살해하도록 사주한 것으로 유명하다.
살인 집단의 리더였지만 자기 손으로 직접 죽인 것도 아니고, 다른 유명 연쇄살인마에 비해 죽인 숫자가 적음에도, 거의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연쇄살인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워낙 유명한 사람을 죽인데다, 당시 희생된 배우의 남편이 아직도 활동하고 있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고, 히피 문화의 몰락이라는 시대적 흐름의 원인이 된 등으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살인마에 꼽히는데다 아직도 엄청난 인지도를 갖고 있다.

2. 생애와 행적



2.1. 출생 및 성장


1934년 11월 12일 오하이오 신시내티 출생으로, 당시 성씨는 매독스(Maddox)였다. 맨슨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흑인 혈통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인종주의자가 알고 보니 유색인종의 자식이더라' 식의 자극적인 내용 탓에 퍼진 소문일 뿐 별 근거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새아버지인 윌리엄 유진 맨슨(William Eugene Manson, 1909 ~ 1961)의 이름을 따라 개명하여 맨슨(Manson)이라는 성을 가지게 되었다.
찰스 맨슨은 어린 시절부터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맨슨의 어머니 캐슬린(Kathleen, 1919 ~ 1973)은 알코올 의존증을 앓고 있었고, 맨슨의 주장에 의하면 창녀였다. 그를 기르던 어머니와 삼촌이 강도질을 벌이다 체포되자 찰스 맨슨은 이모 집에 맡겨졌다. 몇 년 후 출소한 캐슬린은 짧은 기간 동안 이곳 저곳을 전전하며 맨슨을 기르려 노력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되자 위탁 가정에 맡기려 했지만 그것마저 실패했다.
'''찰스 맨슨이 16세였을 때 찍은 사진'''
결국 캐슬린은 그를 엄격한 규율을 가진 한 가톨릭수도원에 맡겼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맨슨은 그곳을 탈출하여 절도를 저지르다가 붙잡혔다. 경찰 당국은 그를 곧바로 감옥에 보내는 대신 청소년 교화 시설에 수용했다. 찰스 맨슨의 주장에 의하면 그는 그런 시설에서 다른 소년들에게 여러 번 성적으로 학대당했다고 한다. 그는 그 곳에서 도망갔다가 다시 붙잡혔고, 이후로도 맨슨은 여러 교화 시설을 거쳤다. 그러나 여러 번의 갱생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맨슨은 끝내 시설에서 탈출해 강도질이나 절도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 결국 맨슨은 소년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맨슨은 그곳에서 모범적인 처신을 하였고, 1954년 가석방되어 이모의 집에서 살다가 1955년 독립했다.
'''찰스 맨슨의 결혼 사진'''[3]
찰스 맨슨은 20세 때 5살 연하의 신부결혼했고, 처음 몇 달 간은 평범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궁해지자 그는 또 절도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찰스 맨슨은 임신한 아내와 함께 자신이 훔친 를 타고 다른 주로 떠났고, 얼마 안 가 덜미를 잡혀 자동차 절도로 기소되었다. 그는 처음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으나, 결국 1956년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의 아내인 로절리 진 윌리스는 그 해에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1957년, 아직 맨슨이 수감되어 있을 때 그녀는 아들을 데리고 트럭 운전사와 함께 도망쳤다. 그러자 찰스 맨슨은 가석방 심사가 2주도 안 남은 시점에서 또 자동차를 훔쳐 빠져나가려다 실패했다. 그는 옥중에서 이혼했고, 1958년 석방되었다. 이후 로절리와 맨슨의 아들인 찰스 맨슨 주니어(1956 ~ 1993)는 아버지의 이러한 끔찍한 범죄행위로 충격을 받아 1993년 37세의 나이로 자살한다.
1958년에 석방된 이후 맨슨은 강도, 강간 등 강력 범죄를 일으키며 교도소를 제 집 드나들 듯 했고, 맨슨 패밀리 사건을 일으키기 전까지 장장 17년을 연방 교도소에서 썩게 된다. 비틀즈의 열렬한 팬이던 그는 교도소 시절 기타를 배워 상당한 수준까지 올랐다고 한다. 하지만 교도소 내에서 다른 수감자들에게 성적으로 학대당했으며, 이후 맨슨 역시도 다른 수감자들을 성적으로 학대한다. 결국 미국의 교도소는 그를 교화시키는 데 완전히 실패했고, 찰스 맨슨은 1967년 석방되었다. 출소한 맨슨은 당시 널리 퍼져 있던 히피문화를 추종하는 패거리와 어울리게 되고, 강한 카리스마로 그들을 휘어잡게 되어 이후 미국 전역을 경악에 빠뜨린 '''맨슨 패밀리'''를 만들었다.

2.2. 맨슨 패밀리


'''체포되기 전의 맨슨 패밀리'''
찰스 맨슨은 히피 문화의 화두였던 '사랑'을 적절히 이용하여 자신을 신격화했으며, 머리카락수염을 길러 자기 자신을 예수처럼 보이게 했다. 당시 맨슨 패밀리는 마약인 LSD를 상시 복용하며 난교파티를 했는데, 맨슨은 그들에게 이나 다름없는 존재였기 때문에 남녀 가릴 것 없이 맨슨과의 성교를 원했다고 한다.
이후 맨슨 패밀리는 거리를 떠돌아다니며 살게 되는데, 이때 거처를 제공받는 대가로 맨슨 패밀리 소속의 여자들을 성적 상대로 제공했다고 한다. 맨슨은 비틀즈와 같은 음악인이 되고자 음반을 내는 등의 시도를 했으나, 별 신통한 반응은 없었다고 한다. 이 와중에 비치 보이즈 멤버들하고 안면을 트기도 했다. 당시 비치 보이즈 멤버들은 맨슨 패밀리가 인간 쓰레기들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비치 보이스의 멤버이자 윌슨 가의 차남인 데니스 윌슨이 비치 보이스의 중기 즈음 해서 히피 생활을 하던 중에 맨슨을 만나게 되어 그를 레코드 회사에 소개시켜 주었다. 그러나 그 당시 데니스는 맨슨을 썩 좋게 보지는 않았다고 한다. 비치 보이스의 조력자인 반 다이크 파크스의 회상에 따르면 몇 번의 협업 이후 다툼이 벌어졌다.[4] 맨슨이 데니스의 가족을 상대로 패드립을 치자[5] 데니스가 맨슨을 개패듯이 팼고, 이후 맨슨과의 관계는 끝났다고 한다. 맨슨은 계속 데니스에게 집착했지만 데니스 밑에서 일하던 가정부에게 총알을 건네 보여주는 방식으로 거부했고, 범행 직후 맨슨의 협박 역시 거절했다.
데니스는 이후 인터뷰에서도 맨슨을 비난했으며[6], 일부 전기 작가들은 데니스가 마약과 술에 빠진 계기가 맨슨을 끌여들었다는 죄책감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하필이면 샤론 테이트 지인이었던 테리 멜처가 데니스 지인이기도 했고, 이로 인해 연결고리가 생겼기 때문.
참고로 비치 보이스의 20/20 앨범에 실린 Never Learn Not to Love라는 곡이 바로 찰스 맨슨의 ‘Cease to Exist’라는 곡을 고친 것이다.

2.3. 폴란스키 가 살인 사건


'''연행되는 찰스 맨슨'''
Tate-LaBianca murders.
맨슨 패밀리가 저지른 범죄는 수없이 많아서 언급조차 힘들 정도지만 가장 유명한 사건은 역시 '''폴란스키 가 살인 사건'''이다. 그가 좋아하던 비틀즈의 유명한 곡 헬터 스켈터의 날이 왔다는 이름 아래, 자신을 열렬히 추종하는 맨슨 패밀리의 일원인 찰리 왓슨, 수전 앳킨스, 패트리샤 크렌빈켈, 린다 카사비앙 등 4인과 함께 LSD에 취한 채로, 로만 폴란스키 감독에 쳐들어가 그의 아내와 집에 찾아온 손님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일이다.
피해자들에 대해 상세히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 샤론 테이트(1943 ~ 1969): 폴란스키의 아내. 배우. 당시 임신 8개월의 임산부였으나 가해자들에겐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었다. 가장 마지막에 살해당했는데 "죽고싶지 않다. 아기를 낳고 싶다."고 빌었지만 맨슨의 열렬한 추종자인 수전 앳킨스는 "이 봐, 썅년아. 난 너한테 관심없어."[7]라면서 16번의 칼질로 잔혹하게 살해했다고 한다.
  • 스티븐 패런트(당시 18세, 1951년생): 당시 대학갈 학비를 벌기 위해 투잡을 뛰는 중이었다. 다른 피해자들과 달리 집의 손님이 아니라, 당시 따로 떨어진 관리인 숙소에 거주하고 있던 윌리엄 개러슨[8]에게 스테레오를 팔러 왔다가 거절당하고 돌아가는 길이었을 뿐인데 운 나쁘게 가해자들에게 걸리고 말았다. 권총 4방과 칼질 1방에 맞아 즉사했다.
  • 아비게일 폴저(당시 26세, 1943년생): 폴저 커피회사의 상속녀. 28차례의 칼 난도질을 당했다.
  • 보이첵 프라이코스키: 폴저의 애인인 영화 제작자라고 소개하긴 하지만 부자집 제트족이었다. 2번의 총탄과 13번의 칼질을 머리에 맞고 51차례의 칼질을 몸에 당해 즉사했다.
  • 제이 세브링(당시 36세, 1933년생): 유명 헤어 디자이너. 가해자들에게 돈을 줄 테니 살려 달라고 빌었으나 1번의 총탄과 칼 7번의 난도질을 당한 후 샤론과 함께 시체가 거실에 목 매달렸다.
여담으로 후일 맥퀸의 전 부인에 의해 밝혀진 이야기인데 원래 이 모임에는 스티브 맥퀸도 참석할 예정이었다고 한다.[9] 하지만 스티브 맥퀸이 이 모임에 참석하기 전 다른 여자를 만났고, 이 여자와 같이 있기로 결정하면서 참극을 피하게 된 것.관련 기사 게다가 조사과정에서 경찰은 찰스 맨슨 일당의 암살 목표 리스트(hit list)를 발견했는데, 여기에 맥퀸의 이름이 있었다고 한다. 우연히 휘말린 것도 아니고 실제 살해 목표 중 하나였던 셈. 아이러니한 건 맥퀸은 당시 유부남이었는데, 바람을 피운 덕분에 살아남은 셈. 전 부인 닐 아담스에 따르면 사건 이후 매그넘 권총을 항상 들고 다녔다고 한다.[10]
범인들은 그들이 죽인 사람들이 유명인인 줄도 모르고 찰스 맨슨의 지시로 보복 살인만을 위하여 들어간 것이었고, 나중에 조사 과정에서 유명인을 죽였다는 것을 알게 되자 '''더 주목받을 수 있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원래 폴란스키가 범행의 표적이 아니라 그 집의 전주인이었던 음반 제작자 테리 맬처[11]가 찰스 맨슨의 데모 테이프를 듣고 혹평했다는 이유로 살해하려 든 것이었는데, 이들은 그 음반 제작자가 이사를 간 사실을 모르고 습격했다.
로만 폴란스키 본인은 일 때문에 잠시 런던에 가있었던 상태였는데,[12] 덕분에 화를 피할 수 있었지만 그가 받았을 충격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는 1년 후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영화로 만드는데, 매우 폭력성 넘치고 잔혹한 씬들이 믾아 그에 대해 "지나친 거 아니냐"는 평론가들의 지적이 들어오자, '''"당신들은 작년 8월의 내 집을 보지 못했다. 난 '유혈이 낭자하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고 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참고로 맨슨 패밀리는 악마의 씨의 엄청난 추종자였다고 한다.
본래 범행 대상이었던 테리 멜처는 사실을 안 뒤 엄청난 충격을 받아 한동안 은둔했다. 그리고 경호원을 고용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심지어 관련 증언대에 서는 것도 두려워했다고.
이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 집은 나중에 나인 인치 네일스의 리더인 트렌트 레즈너가 사들여 스튜디오로 사용했는데, 마릴린 맨슨도 이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레즈너가 앨범 작업 중 흉흉한 경험을 겪고 난 뒤 집을 철거했기 때문에 지금은 없어졌다.

'''90년대에 촬영된 찰스 맨슨의 인터뷰'''
시작부터 기자가 스스로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하자 여러 기괴한 표정들을 지으며[13] '나는 아무도 아니야'라고 대답한다.

기자: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대답해 줄 수 있나요?"

찰스 맨슨: '''"아무도 아니야. 난 그 누구도 아니야. 부랑자, 거지, 떠돌이 일꾼, 박스 카,[14]

와인 통. 네가 나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온다면 날카로운 면도칼이 될 수도 있지.(Nobody. I am Nobody. I'm a tramp, a bum, a hobo. I'm a boxcar, I'm a jug of wine. And a straight razor if you get too close to me.)"'''[15]


2.4. 이후


결국 맨슨 패밀리는 폴란스키 가 살인사건을 포함한 여러 차례의 연쇄 살인으로 체포되었다. 린다 카사비앙은 증언을 조건으로 기소가 면제되는 사법거래를 통해서 살아남았다. 찰스 맨슨, 찰리 왓슨, 수전 앳킨스, 패트리샤 크렌빈켈은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1972년 사형이 전격 폐지되면서 무기징역으로 형이 감형되었다. 사회 영구 격리가 필요한 흉악범을 생명줄만 붙여 놓은 것이므로 최근 2012년 78세의 나이로 신청한 가석방도 실패했고, 다음 가석방 심사는 2027년 93세가 되는 해에 열릴 예정이었지만 2017년 11월 19일 그가 사망하면서 영원히 열릴 수 없게 되었다.
2012년까지 13번의 가석방을 신청했으며[16] 매번 기각되었다.
수십 년째 가석방이 거부되는 중인 패트리샤 크렌빈켈과 찰리 왓슨의 경우를 봐도 주동자가 살아서 사회로 돌아갈 수는 없으리라는 것을 본인도 잘 알고 있기에 가석방 신청은 하되 심사위에 출석조차 하지 않는 등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휴대폰을 소지하다가 적발당하기도 했다. 부하들은 최소한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며 교정 당국의 교화 프로그램에도 제대로 참여 중인데 반해, '''맨슨은 결국 교화되지 않았다.''' 그가 저질렀던 범죄의 잔혹성만이 가석방 거절의 유일한 이유는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위도식하며 가만히 지낸 것은 아니며, 팬(...)들에게 지원을 받아 교도소 내에서 음반 작업을 하고 도 출판하는 등 외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또 다른 논란을 일으켰다. 교도소 재소자가 책을 쓰거나 음반을 만든다고 해서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범죄와 관련된 서적을 출판했다면 그 수익은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돌아가는 식으로 실질적인 이익은 보지 못하게 막을 뿐인데, 어차피 교도소 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특히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하는 사람들에게 돈은 큰 의미가 없으니 이런 데 크게 신경 쓰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12년 9월 5일, '''팬들의 지원에 힘입어''' 곧 앨범이 발매될 것이란 뉴스가 나왔다. 제작비 모금이 진행된 웹사이트에 따르면 27명의 지지자가 미화 4099달러(2015년 기준으로 약 461만 원)를 기부했으며, 게다가 1000명 가까운 인원페이스북좋아요를 찍었다고 한다.
'''애프턴 일레인 버튼과 찰스 맨슨'''
2014년 11월, 위 사진 속의 애프턴 일레인 버튼(Afton Elaine Burton)이라는 26세의 여성과 '''옥중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버튼은 찰스 맨슨의 열렬한 추종자였으며 오직 그를 위해 살던 주까지 옮겨가면서 통화와 면회 등의 옥바라지를 하였다고 한다. 이번 결혼의 목적이 단지 애정을 넘어서 '''맨슨의 결백을 입증할 만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라고'''. 결혼으로 가족 관계를 맺은 후 가족만이 열람할 수 있는 자료를 분석하여 무죄를 입증할 생각이란다. 캘리포니아 주(州) 킹스카운티가 지난 7일 맨슨과 예비 신부 애프턴 일레인 버튼의 결혼 허가증을 발급했으며, 이들은 90일 이내에 결혼식을 올려야한다. 당시 피해자인 샤론 테이트의 여동생 데브라 테이트는 이 소식을 듣고 '말도 안 된다'며 충격을 금치 못했다.
흉악범에게 이성적인 매력을 느껴 구애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일은 딱히 드문 현상은 아니다. hybristophilia 이런 현상을 정신적 증후군으로 정의내리는 용어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일레인 버튼의 진짜 목적은 맨슨과의 사랑을 이루기 위함이 아닌 단순히 돈을 노린 것으로 밝혀졌다.''' 맨슨이 길어도 5~10년 내에는 교도소에서 병사할 텐데, 그때는 그의 시신이 배우자가 된 버튼에게 넘겨질 예정이었다고 한다. 일레인 버튼은 그 시신을 방부 처리한 뒤 전시해서 돈을 벌려는 속셈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비슷한 선례가 있는데, 살인범이라는 걸 알고 행한 것은 아니고 인형이라고 생각했던 거라 이번 건과는 다르다. 젊은 여성이 찰스 맨슨과 굳이 결혼까지 하는 이유를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의 조사로 결국 들통났고, 이를 알게 된 맨슨은 파혼한 후에 자신이 "불사신"이라며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례는 2015년 3월 20일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소개되었다. 결국 결혼 허가 기간이 만료되어 일레인 버튼의 돈벌이는 수포로 돌아갔는데, 그 뒤로 정확히 3년 뒤 맨슨이 죽어버렸기 때문에 내심 아쉬워하고 있을지도.

2.5. 사망


샤론 테이트의 자매인 데브라 테이트[17]는 맨슨이 복역한 교도소로부터 그가 현지시각 2017년 11월 19일 일요일 오후 8시 13분에 인근 병원에서 사망했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언론사 TMZ에 전했다.#
사인은 다름아닌 노환으로 인한 자연사였으며, 이에 전국 대중들은 추악한 연쇄 살인범이 오래 살다가 편안한 죽음을 맞이한 것과 죄 없이 죽은 피해자들만 더 억울해졌다며 분노를 표출하였다.
그리고 이 인간이 죽기 전 내뱉은 유언이 전국 대중들의 분노에 더욱 더 불을 붙였는데...

'''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이쯤되면 가히 최악의 인간말종이자 아사하라 쇼코와 맞먹는 추악한 사이비 교주인 셈.

3. 음악


맨슨은 음악 활동도 해 왔으며, 그가 만든 노래들은 노래 자체보다는 작자인 찰스 맨슨의 유명세에 따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Look At Your Game Girl''''
찰스 맨슨의 'Look At Your Game Girl'. 이 곡은 유명 록 밴드 건즈 앤 로지스에 의해 커버되기도 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주로 "노래는 좋다"는 의견이다. 유튜브 등지에 찰스 맨슨의 다른 노래들도 많이 업로드되어 있는 상태이다. 역으로 보면 이런 재능을 갖고도 본인의 인성 자체가 바닥까지 썩어 문드러진 나머지 어리석게도 자신의 삶도 사회에 도움이 될 음악적 재능도 감옥에 묻어버린 셈.[18]

4. 기타


  • 미야자키 츠토무와 비교되기도 한다. 둘 다 어두운 성장과정과 특정 문화에 빠졌다는 점, 추악한 연쇄살인마라는 점, 그리고 전후사정은 조금 다르지만 각각 히피 문화와 오타쿠 문화에 대한 인식을 매우 악화시켰다는 점이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다른점은 오타쿠 문화는 오타쿠라는 단어가 비하어가 된다는 걸 빼면 살아있고 히피 문화는 80년대에 완전히 몰락했다
  • 아사하라 쇼코와도 매우 흡사한데,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히피 문화를 이용한 맨슨과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오컬트 문화를 이용한 아사하라, 스스로를 신격화해 자신들의 패거리를 만들고 난교를 즐겼다는 점, 각각 노래와 애니메이션으로 자신들을 홍보했다는 점, LSD 등의 환각제로 사람들을 세뇌했다는 점, 그리고 모살 및 모살음모 죄로 기소되었다는 점 등에서 매우 흡사하다. 둘 다 예수를 벤치마킹한 것인지 서로 비슷하게 머리와 수염을 길게 기르고 활동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 가수 마릴린 맨슨의 이름은 배우 마릴린 먼로와 이 사람에게서 따온 것이다. 마릴린 맨슨의 유명곡 중 하나인 The Beautiful People은 전주 부분에 맨슨 패밀리의 일원이었던 텍스 왓슨(Charles "Tex" Watson)의 발언[19]을 녹음한 것을 음성변조해 집어넣었다. 샘플링을 워낙 심하게 변조해놔서 얼핏 들으면 사람 말을 녹음한 것인지도 모르고 넘어갈 수 있다.
  • 건즈 앤 로지스는 'The Spaghetti Incident?' 앨범히든 트랙으로 이들의 노래커버해 물의를 일으켰다. (저작권 위반으로 삭제됨) 리플을 보면 죄다 악플 일색이다. 액슬 로즈에 대한 욕설이 베스트 리플에 올라있다. 찰스 맨슨이 그동안 녹음했던 음반은 소규모로 풀리긴 했다. 2009년에 'Manson My Name Is Evil'이란 이름의 DVD를, 2010년에 'Air'란 이름의 앨범을 낸 것 같다. 음악적 재능 자체는 상당한 듯하며, 교도소 내에서 이익이 안 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작업을 하는 걸 보면 나름 이 분야에 자부심이 있는 모양.
  • 사우스 파크 시즌2 16화에서도 등장했는데, 여기서는 맨슨이 탈옥하고 나서 정상적으로 사회에 교화된다. 그리고 오히려 맨슨이 스탠 마시에게 교훈을 준다(...) 이 에피소드는 꽤 오래전의 에피소드이며 당시 제작진들은 자유의지주의에 근거하여 맨슨이 사회에 교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 것 같다. 물론 현실의 맨슨은 죽기 직전까지 추호도 갱생 안한 인간 말종이었다.
  •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가 이 사람에 대한 영화라고 알려져 논란이 있었던 적 있다. 그 시대의 영화계를 다룬 영화로서 맨슨 사건이 나오기는 하지만 영화의 중심 내용은 아니다.[스포일러]
[1] 본인은 170cm라고 했다. [2] 찰스 맨슨의 죄목은 수도 없이 많은데 그중에서 <폴란스키 가 살인 사건>의 모살이 유명하다.[3] 좌측은 20세의 맨슨, 우측은 15세의 로절리(1939 ~ 2009).[4] 하술할 Never Learn Not to Love 녹음 도중 작곡자 명의 가지고 싸웠다고 한다. 데니스 본인의 증언에 따르면 충분한 돈을 줬는데도 더 원했다고 한다.[5] 총알을 꺼내서 니 애들 (데니스의 가족)이 안전하다는걸 다행이라고 여겨라라고 협박했다.[6] 다만 증언대에 서는건 거부했는데, 어떤 식으로도 얽히기 싫다는 뜻일 가능성이 높다.[7] Look, bitch, I don’t care about you[8] 초동수사에서 중요 용의자로 몰리지만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통과했고 중요 동기와 증거가 없고 맨슨패밀리가 용의선상에 오르면서 용의자에서 제외된다. 당시 음반을 들으면서 밤새 편지를 쓰고 있느라고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진술했다[9] 제이 세브링과 샤론 테이트와도 친분이 있었다.[10] 정확히 어떤 구경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매그넘 권총이란게 워낙 위력이 강하기 때문에 호신용으로 들고다닐만한 물건은 아니다. 맥퀸 본인이 성깔이 워낙 대단한 인물이라 더욱 그랬는데, 한번은 맥퀸의 바람끼를 두고 아담스와 부부싸움 도중에 아내에게 총을 겨눈 적도 있다고 한다. 결국 둘은 사건 3년 뒤인 72년에 이혼.[11] 버즈(미국 밴드) 프로듀서로 유명했던 인물. 비치 보이스 멤버들하고 친분이 있고 프로듀싱해주기도 했다. 도리스 데이의 아들이기도 한데, 어머니보다 단명했다. 항년 62세.[12] <돌고래 알파>란 영화의 각본을 적는 것 때문에 런던에 잠시 갔던 거였다고 하던데, 마이크 니콜스 감독한테 넘어갔다.[13] 기괴하다기 보다는 좀 '''많이''' 과장된 표정을 짓는다.[14] 컨테이너용 화물차. 한국어로는 '유개차'라는 용어로 번역된다.[15] 이 말의 의미는 해석이 분분하지만, 대부분은 맨슨이 대략 다음과 같은 의도로 자신을 낭만화하기 위해 궤변을 늘어놓은 것으로 해석한다. '가만히만 내버려둔다면,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 존재감 없는 배경이자 떠돌이일 뿐이다. 하지만 나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온다면, 나는 너를 죽일 수도 있다.'[16] 찰스 맨슨이 사형 선고를 받을 당시 미국의 형벌 제도는 지나친 장기형이 드물고, 사형과 수십 년 정도를 복역한 뒤 가석방이 가능한 일반적인 무기징역, 다소 긴 유기징역형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수백 년, 수천 년 등의 장기형이 일반화된 것은 1970년대 이후 엄벌주의 여론에 의한 것이다.[17] 1952년생으로 샤론보다 9년 늦게 태어났으며, 2017년 유방암 판정을 받아 투병중이다.[18] 이 영상의 유튜브 댓글 중 에서 가장 압권인 것은 '''''어느 세상에서는 찰스 맨슨이 비틀즈 뺨치는 음악인일 것이고 존 레논이 맨슨에 버금가는 연쇄 살인범일 것이고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의 평범한 화가로서 먹고살고 있을것이며 이오시프 스탈린조지아의 평범한 수도사로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라는 댓글이 있다.[19] "...swoop down on the town... ...kill everyone that wasn't beautiful(마을을 덮쳐서...(중략)...아름답지 않은 자는 모조리 죽인다)"[스포일러] 영화에선 맨슨 패밀리가 폴란스키 가를 덮치려 했으나 노선을 바꿔 주인공 일행을 죽이려다 오히려 클리프(브래드 피트)와 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역관광 당하여 맨슨 패밀리 전원이 몰살당하고 샤론 테이트가 살아남는 대체역사가 되었다. 실행범 3명 중 두 명은 LSD에 취해있던 클리프에게 끔살당하고, 그나마 살아있던 나머지 한 명도 개에게 물린 고통으로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 발악하다 릭에게 화염방사기로 태워지며 확인사살을 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