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연구개발특구

 


'''대덕연구개발특구'''
'''大德硏究開發特區'''
'''INNOPOLIS DAEDEOK'''

<colbgcolor=#003764> '''국가'''
대한민국
'''위치'''
대전광역시 유성구대덕구 일대
'''면적'''
67.8 km2
'''종류'''
연구개발특구
'''홈페이지'''
대덕연구개발특구 공식 홈페이지
1. 개요
2. 역사
3. 입주현황
3.1. 정부출연연구기관
3.2. 공공기관
3.3. 민간 연구소/민간기업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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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과학기술원''' '''방면에서 바라본 대덕연구개발특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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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개발특구 배치도'''

대전광역시 유성구 일대에 조성된 과학기술 연구개발특구이자 계획도시. '대덕연구단지'라고도 한다.

2. 역사


1970년대 초반 당시 정부는 이미 포화상태인 서울의 홍릉 연구단지를 대신하여 '제2학원도시' 조성을 계획하고 있었다. 당시 후보로 거론되었던 곳이 현재 경기도 오산시[1], 충청북도 청주시[2], 그리고 지금 대덕연구개발특구 자리인 대전광역시 유성구[3] 일대였다. 그중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풍수지리적으로 대덕군이 좋다'고 하여 대덕군으로 확정되었고, 1973년 1월 ‘제2연구단지 건설기본계획'이 확정되었다. #
당연한 말이지만, 이러한 풍수지리적인 이유 외에도 대덕군이 선정된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수도권과 가깝지도 않아서 당시에도 심화되고 있었던 수도권 과밀화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고, 연구단지 부지 안에 호남고속도로가 지나가는 편리한 교통입지에, 대전시를 지척에 두고 있어 배후도시로 삼기 좋고, 대전에 있는 국립대인 충남대학교를 이전할 수 있어서 교육도시 조성에 필수적인 대학 조성이 유리한 점도 한몫했다.
당시 1973년 최초 계획에는 5대 전략국책연구소를 포함한 12개 연구소의 이전과 함께 캠퍼스가 포화상태에 있던 충남대학교를 이곳으로 이전하는 것이 계획되어 있었다. # 당시 이공계대학 신설은 계획되어 있었으나,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전신인 한국과학원(KAIS)과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의 이전은 가시화되지 않았다.[4] 이후 5년 동안의 기초공사 끝에 1978년부터 연구소들이 이전하기 시작했으며, 마찬가지로 충남대학교 대덕캠퍼스 조성이 시작되어 공과대학을 시작으로 의과대학을 제외한 모든 단과대학들이 이전하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에 들어서 충남대의 대덕캠퍼스 이전이 완료되었으며,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 설립 확대와 동시에 기업연구소들도 대거 대덕연구단지로 이전/설립하기 시작하면서 대덕연구단지는 급속하게 성장하기 시작한다. 또한 이 시기에 한국과학기술대학(KIT)이 노동부 주도로 대덕연구단지에 설립되었고, 얼마 안 가서 KAIST가 1989년에 대전으로 이전과 동시에 공식적으로 KIT와 통합되었다.
이후 1999년부터 '대덕연구단지관리법' 개정을 통해 벤처기업 입주와 재한적인 생산 시설의 입주를 허용하였고, 2005년에는 '대덕연구개발특구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되면서 기존의 대덕연구단지와 유성구, 대덕구 주변 지역을 통합한 '연구개발특구'로 전환되었다. 2011년에는 전국의 연구개발특구를 관리하는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이 대덕특구에 본부를 두고 출범하였다.

3. 입주현황


민간, 공공 가릴 것 없이 국내 대부분의 과학기술 관련 연구시설이 모여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조폐공사,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한전원자력연료 같은 공공기관, 국내 최고 엘리트들이 모이는 한국과학기술원과 대전, 세종, 충남권역의 거점국립대학교충남대학교가 모여있는 사실상 규모와 질 모두 혁신도시, 교육도시의 결정판이라고 볼수 있다.

3.1. 정부출연연구기관



3.2. 공공기관



3.3. 민간 연구소/민간기업



3.4. 고등교육기관



4. 관련 문서



[1] 당시 경기도 화성군 오산읍.[2] 당시 충청북도 청원군 강서면.[3] 당시 충청남도 대덕군 유성읍, 탄동면, 구즉면.[4] 그래서 현재 한국과학기술원 부지는 원래 충남대학교 부지의 일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