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슬라프 클로제/선수 경력

 



1. 개요
2. 유소년 시절
3. 클럽 경력
4. 국가대표
5. 플레이 스타일


1. 개요


독일의 前 축구선수였던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선수시절 경력을 설명하는 문서.

2. 유소년 시절


축구선수였던 독일계 아버지와 핸드볼 선수였던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현 실롱스크(독일명 슐레지엔) 지역 오폴레(독일명 오펠른)에서 태어났다.[1][2]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연합국은 슐레지엔 땅을 강제로 독일에서 폴란드로 넘겼다. 슐레지엔에 거주하던 독일인들 다수는 연합국의 독일인 강제 이주 명령에 따라 고향을 떠나 독일 본토로 이주했고, 클로제의 집안과 일가 친척들 역시 대부분 고향을 떠나 서독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클로제의 할아버지는 생업 등의 이유 때문에 다른 일가족들과 떨어져 슐레지엔/실롱스크에 남았다. 하지만 대신 기존 독일 국적은 박탈되었고 폴란드 국적으로 변경해야 했다. 클로제의 부친인 요제프 클로제(Josef Klose)[3]는 축구선수였는데, 커리어 초반에서는 폴란드의 고향팀인 Odra Opole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12년간 여기서 스트라이커로 활약했다. 1977년 오드라 오폴레는 폴란드 리그컵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1977-1978 EUFA Cup에 출전했다. 여기서의 활약을 계기로 1978년 프랑스 리그 AJ 옥세르로 이적하여 1985년 선수생활을 은퇴할 때까지 프랑스 리그에서 뛰었다. 클로제의 어머니는 폴란드 국가대표 핸드볼 선수 출신이었다.
클로제는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프랑스로 이적하면서 폴란드에서 프랑스 부르고뉴로 이주하여 거기서 7년간 유년시절을 보냈다. 아버지 요제프는 1985년 선수생활을 은퇴한 후 공산국가 폴란드로 돌아가지 않고, 가족들을 데리고 예전에 서독으로 먼저 이주한 친척들이 있던 독일 쿠젤에 영구 정착했다. 어릴 때 독일어가 서툴러 고생했던 클로제는 고등학교 진학 이후에야 축구를 시작했고 그나마도 목공일을 병행하며 독일 7부리그인 블라우바흐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탓에 축구 선수로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4][5] 그러나 클로제는 축구 선수로서의 재능이 상당히 탁월한 축에 들었던 덕분에 여기서 두각을 나타게 되고 클로제는 19세인 1998년 FC홈부르크(5부리그)로 이적했고 한시즌 만인 1999년 카이저슬라우테른 2군(3부리그)로 이적했다가 그해 바로 카이저슬라우테른 1군에 콜업되어 분데스리가 무대에 데뷔했다.

3. 클럽 경력


클로제의 커리어가 과소평가받고 있는 이유는, 당시 클로제의 20대 시절의 분데스리가의 상황을 봐야한다. 2000년대 해외축구팬들 입장에서 분데스리가는 지금의 세리에A보다도 평가가 낮을 정도로 유럽클럽대항전에서의 심각한 부진을 겪고 있었다. 이 때의 분데스리가는 UEFA 리그 랭킹이 5위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즉 2000년대 해축팬들에게 분데스리가는 그야말로 동네북취급을 당했던 시절이며 그 최강 바이에른조차, 지금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동네북 신세평가를 받았다.
또한 저 시기에 루드 반 니스텔루이, 티에리 앙리, 안드리 셰브첸코라는 또 다른 괴물 스트라이커들이 득실거렸던 이유도 있었다. 또한 국내 축구팬들이 유럽축구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시기가 바로 유로2004 대회로 볼 수 있는데 이 당시 독일 국대 주전 스트라이커는 케빈 쿠라니와, 마키 힝케, 프레디 보비치가 주를 이루었기에 2002년 월드컵을 본 팬들은 "클로제가 없네? 걍 반짝스타인가 보다." 라는 생각을 가졌고 아시다시피 이 시기는 분데스리가의 암흑기이기 때문에 SV 베르더 브레멘에서 본격적인 괴물 포스를 뿜는 클로제에 아무도 관심을 주질 않았다. 저 당시 SV 베르더 브레멘의 포스는 지금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같은, 혹은 그 이상의 강력한 전력을 갖춘 분데스리가의 강력한 우승후보였고 클로제는 그 팀의 확실한 중추로 활약하고 있었다. 즉 레반도프스키, 오바메양급의 포스를 보였다 봐도 무방하며, 지금의 분데스리가의 평가라면 뤼트 판니스텔로이, 티에리 앙리, 안드리 솁첸코와 충분히 동급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냉정히 말해서 당시 기준으로 분데스는 리그 랭킹이 5위인 리그이다. 현재기준으로 랭킹이 3위인 리그가 분데스고, 5위인 리그가 리그1이다. 분데스리가의 명성을 고려하더라도 현재 분데스 이상의 평가는 하기 힘들다. 지금의 분데스리가 기준으로 잡으면 레반도프스키만이 세계 최고의 공격수라 할 수 있을텐데 클로제는 결코 그 지점까지 이르진 못했다. 그것을 고려하면, 클로제의 클럽 경력은 아쉬운게 명백한 사실이다. 누가봐도 분데스 전성기를 열어젖힌 오바메양과 레반도프스키와의 클럽 경력 비교는 어불성설이다 ( 분데스리가는 12/13 시즌 부터, 14/15 시즌까지 좋은 폼을 보여줬다고 봐야 하는데 이 당시 이 두 명은 바이에른과 BVB의 핵심 스트라이커였다 ). 특히, 클로제의 전성기시절에 발락이 챔스를 우승하고 싶다고 바이에른에서 첼시로 떠난 것은 당시 분데스 수준이 현저히 떨어졌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정리하자면 국대 기록에 반해 클럽 경력이 아쉬운 편이고, 애국자라기엔 클럽에서도 뛰어나긴 했지만 분명히 국대 활약에 비하면 부족했다. 여러가지면에서 당시 분데스리가를 감안하면 월드클래스나 당시 이름을 떨친 공격수들에 비해선 한끗발 모자랐던 편.

3.1.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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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축구 암흑기 시절 혜성처럼 나타난 독일축구의 또다른 희망'''
클로제가 본래부터 주목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본래 뛰던 리그는 7부리그(…)로, 분데스리가 데뷔를 한건 만 20세이다. 재밌는 사실은 카이저슬라우테른에 입단 전까지 목수직을 축구와 병행했다고 알려져있다. 국내에는 그가 체조선수 출신이라는 얘기가 돌기도 했지만 사실이 아니다.
2000/01 시즌 분데스리가 29경기에 출전해 9골을 기록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01/02 시즌 31경기 16골을 기록하면서 본격적인 스타덤에 오르기 시작한다. 이 시기 루디 푈러 감독의 눈에 띄면서 바로 2002 FIFA 월드컵 최종엔트리에 발탁되었다.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클로제의 주가도 올랐는데 FC 바이에른 뮌헨, AS로마의 러브콜을 받았었다. 하지만 클로제는 팀에 끝까지 남으면서 강등권의 팀을 잔류시켰다. 다만 이 시기 케빈 쿠라니, 게랄드 아사모아, 프레디 보비치, 마키 힝케등 분데스리가의 다른 스트라이커들이 실적이 더 좋으면서 반짝스타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 시기 클로제가 못한건 아니였다. 오히려 열약한 스쿼드를 갖춘 팀에서 시즌당 30경이 이상 출전하여 매년 두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는 등 충분한 활약을 펼쳐주었다.

3.2. SV 베르더 브레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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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당시 분데스리가우승에 DFB 포칼컵까지 확득하면서 더블을 달성한 당시 분데스리가 최강팀인 SV 베르더 브레멘으로 이적하면서 본격적으로 클로제의 클럽 커리어의 최고조 하이를 찍게 된다.
특히 커리어하이는 05/06년 시즌인데 부상을 달면서도 26경기 25득점 14도움 키커 평점 2.38[6]이라는 토나오는 스탯을 찍었다. 그 해에 분데스리가 득점왕은 물론 선수들이 뽑은 최고의 선수 1위를 차지했다.(2위가 반 더 바르트 3위가 베르바토프이다) 유럽 4대리그에서 한 시즌당 15-15(15골 15도움)를 넘게 기록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해에 클로제가 리그에서 7관왕을 차지했다.
26경기 25득점 - 2위는 34경기 21득점의 베르바토프
26경기 14도움 - 2위는 30경기 14도움의 미쿠(사실 공동 1위인데 출장경기 때문에 보통 클로제를 앞에 둔다.)
26경기 39공격포인트 - 2위는 34경기 31개의 베르바토프
평점 2.38 - 공격수 2위는 3.25의 클라스니치
평점 2.38 - 전체 2위는 2.65의 바이덴펠러(독일 평점은 골키퍼에게 매우 후하기 때문에 보통 0.5에서 0.7은 빼주는게 합리적)
엘프 데스 타게스 11회 - 2위는 8회의 루시우
만 데스 타게스 3회
보면 평점에서 2위 클리스니치와 비교도 되지 않는다. 참고로 클로제의 저 2.38은 키커지에서 15년동안 평가한 기록 중에 역대 최고다. [7]모든 면에서 압도적이었고 리그를 완전히 가지고 놀았던 시절. 그 때문인지 그 시즌과 06년 월드컵 득점왕을 하고난 뒤 FM 2007에서 클로제는 괴물로 나온다. 크로스 올리고 헤딩만 하면 전부 골...

3.3. FC 바이에른 뮌헨


[image]
'''입단 초엔 훌륭했으나 두 번째 시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클로제가 애국자로 놀림받는 가장 큰 원인.'''[8]
바이에른이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지 못하며 분노의 영입을 시전한 해, 클로제는 루카 토니와 함께 '''토나오제''' 투톱을 결성하며 분데스리가를 정복하고 바이에른에 마이스터 샬레를 가져다 준다. 이 시기 바이에른의 위용은 대단했던 게 리베리필립 람과 더불어 왼쪽 라인을 초토화 시키고 크로스를 올리면 기다리는 건 클로제와 토니. 이타적인 성향의 클로제와 세리에 A에서 무려 31골을 득점하며 득점왕에 올랐던 루카 토니의 조합은 그 위용이 유럽 어디에 놔둬도 꿀리지 않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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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내놓으려고 하니, 다음 시즌이 되기 무섭게 루카 토니의 노쇠화가 시작되고 클로제 본인도 작년처럼 루카 토니가 받아먹어 주지 못하자 꼬이기 시작한다. 부상도 찾아오고. 그래도 제법 괜찮은 활약이긴 했다. 리그를 정복하는 정도가 아니었을 뿐, 팀 내 최다 득점자였고 특히 챔피언스리그에서 쏠쏠한 활약을 펼쳤으나 중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부상을 당하였고 팀도 결국 무관에 그쳤다. 그래도 활약상 자체는 훌륭했기에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했지만 09/10 시즌에는 폼 저하와 부상이 동시에 찾아오면서 팀은 더블과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주로 벤치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았다.
결국 10/11 시즌 초반에는 월드컵에서의 활약상도 있었으니 시즌 초반에는 주전으로 제법 기용되었지만 활약이 좋지 않아 토마스 뮐러마리오 고메스에게 주전이 돌아가며 이후 경기에는 체력안배용 교체 아니면 정말 모 아니면 도 식의 경기에 한 번씩 나오고 있다. 나올 때마다 활약도 별로라 사람들에게 아 로제언니 정말 폼 떨어졌구나...하는 탄식을 내뱉게 하고 있다.
그래도 전기가 찾아오긴 하는데, 본인 인터뷰에 따르면 자신을 관중 취급하던 반 할 감독이 물러간 이후 교체로나마 꾸준히 기용되며 여러 모로 좋은 듯 나쁜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아직 살아는 있는 것 같은데 터지지는 않는. 플레이 자체는 괜찮았지만 감이 많이 죽어서 골이 거의 터지지 않아 시즌이 끝난 시점에서 바이에른과의 결별이 거의 확정되어 가는 분위기이다.[9] 결국 바이에른이 제시한 1년 계약과 본인이 원하는 2년 계약과의 견해차를 끝내 좁히지 못했다.

3.4. SS 라치오


[image]
'''나이를 잊은듯한 화려한 마무리.'''
공짜상품이 되고 나서 토트넘, 발렌시아, 세비야, 도르트문트 등등 클로제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한 구단은 많았지만 사실 대단히 뛰어나지는 않은 피지컬, 알 수 없는 폼, 생애 첫 해외진출, 나이, 고연봉, 최소 2년 계약은 제시 등등 어느 정도 도박성이 있어서 결단이 쉽지 않아 보였다.
[image] [image]
결국 이탈리아 세리에 ASS 라치오로 이적하였다. 이적설 초기 및 이적확정 시기 연봉이 좀 강했기 때문에 라치오 팬들은 으악 그딴 늙다리! 고연봉! 아나 애국자! 어린 애들 놔두고! 등등의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영입된 시세와 투톱을 결성한 클로제는 프리시즌 경기 중 골과 어시의 폭풍을 몰아치면서 팬들의 기대감을 상승시켰다. 결국 시즌 첫 경기 유로파 플레이오프에서 폭풍 1골 3어시...그리고 정규 리그에서도 AC 밀란과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집어넣었다.
시즌 초반 AS 로마와의 더비 경기에서 경기 종료직전 결승골을 뽑아냈다. 바로 전 라운드였던 레체와의 경기에선 혼전 상황에서 흘러온 공을 방향만 바꾸는 골,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에서 순간적인 키핑 후 킬패스로 어시, 골대 구석으로 방향 바꿔 꽂아버리는 헤딩을 성공시키며 팀이 경기력에서 처발렸음에도 불구하고 2골 1어시를 작렬, 개인능력으로 3:2 역전을 이끌었다. 현재 pk를 제외할 경우 세리에 득점 선두, 라치오 팬들은 과연 클래스가 다르네요 클로제님 영입할 때 헛돈이라고 의심해서 죄송했습니다 하고 사죄중...이 경기력을 계속 유지한다면 클로제의 첫 해외진출은 성공으로 평가받을듯 하다. 아틀란타전에서 골을 성공시키고 공중제비까지 돌아주시는 등 고군분투하였으나 그 후 같이 투톱으로 활약하라고 영입한 시세의 세리에 적응 실패, 베테랑 로키의 부상과 더불어 코파 이탈리아, 유로파리그, 리그를 돌아가며 뛰는 강행군을 지속하다 끝내 시즌 아웃을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라치오는 공격진이 골을 넣지 못하는 끝없는 부진 속에 챔스 존을 끝내 수성하지 못했다.
2012/13시즌에도 계속해서 골을 뽑아내며 팀의 상위권 수성에 큰 힘이 되었다. 라치오는 덕분에 시즌 초중반 나폴리, 유벤투스와 선두권을 형성하며 챔스권을 넘어 우승까지 노렸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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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2월 클로제가 무릎 인대부상으로 8주동안 빠졌고, 2012/13시즌 라치오는 끝내 10/11,11/12시즌에 이어서 3연속 DTD를 하며 '''DTD'''의 상징이 되었다. 10위 밖으로 추락했던 AC 밀란을 보면서 비웃다가 인터 밀란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그나마 코파 이탈리아컵을 가져가며 유로파리그 출전권을 따냈다. 인테르는 그냥 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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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와의 경기에서 '''5골'''을 성공시켰다. 팀은 6-0 대승, 클로제는 해당 라운드 종료 기준으로 득점순위 '''5위'''에 랭크되기도 하는 기염을 토했다.
현재 안토니오 디 나탈레와 노망주 더비중이다. 클로제의 경우에 노망주는 아니지만 넘어가자. 암튼 둘의 나이는 13년 기준 한국나이로 36, 37살이다.[10] 잘하는게 신기하다. 안타깝게도 세월을 견디지 못한 디 나탈레가 은퇴선언을 하면서 노망주 더비는 한때에 바이에른 듀오였던 루카 토니와 벌이게 될 줄 았았는데...페이크다 이 병신들아! 디 나탈레가 후반기에 급 살아나며 은퇴를 번복하였다.
현재 라치오를 대표하는 공격수라 라이벌인 AS 로마의 상징 프란체스코 토티와 함께 로마더비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한동안은 선발 출장을 못하다 2016년 3월 13일 8시 45분(현지기준)에 진행된 아탈란타와의 경기에서 풀타임 출전, 2골(!)을 기록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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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에는 팔레르모와의 경기에서 2골 1도움을 기록하면서 3-0 대승을 이끈 주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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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 클로제는 이번 시즌 피오렌티나와의 최종전을 끝으로 라치오를 떠나기로 했다. 라치오 팬들은 피오렌티나와의 경기 날을 '''클로제 데이'''로 정하고 그의 미래를 축복하기로 했다. 이 정도면 소속팀과의 정말 아름다운 이별.
그리고 11월 1일, '''현역 은퇴''' 소식이 발표되었다.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스태프로 합류할 예정이라고 한다.

4.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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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제의 월드컵 골모음'''
2001년 독일 국가대표팀에 처음 발탁된 클로제가 세계 무대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2002년 월드컵. 이 대회에서 헤딩으로만 5골을 넣으면서 대회 득점 공동 2위를 기록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UEFA 유로 2004에서는 부상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팀도 조기탈락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다시 5골을 기록하여 대회 득점왕에 올랐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4골을 기록하여 월드컵 통산 기록에서 게르트 뮐러와 동률을 이루었다. 그리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월드컵 역대 최다 득점자에 등극했다.
Saison
Verein
Position
Spiele
Tore
Vorl.
Gelb
G/R
Rot
2001
Deutschland
Angriff
7
2
0
1
0
0
2002
Deutschland
Angriff
17
12
0
1
0
0
2003
Deutschland
Angriff
10
1
5
2
0
0
2004
Deutschland
Angriff
11
5
1
0
0
0
2005
Deutschland
Angriff
5
0
2
0
0
0
2006
Deutschland
Angriff
17
13
6
2
0
0
2007
Deutschland
Angriff
5
3
1
0
0
0
2008
Deutschland
Angriff
15
8
3
1
0
0
2009
Deutschland
Angriff
6
4
2
0
0
0
2010
Deutschland
Angriff
12
10
1
0
1
0
2011
Deutschland
Angriff
8
5
3
2
0
0
2012
Deutschland
Angriff
13
4
1
0
0
0
2013
Deutschland
Angriff
3
1
0
1
0
0
2014
Deutschland
Angriff
5
3
0
0
0
0
Summe


135
71
25
10
1
0
클로제를 영웅으로 만들어준 국가대표 출장 기록. 137경기 71득점으로 현재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평범한 대회들이 아닌 월드컵에서 넣은 골이 16골을 차지한다. 24경기 16골로 경기당 0.66골. 게다가 그 16골이 6개 대륙의 국가를 상대로 모두 득점에 성공한 것이다[11].
#
선수명
활동년도
출장경기
득점
1
로타어 마테우스
1980-2000
'''150'''
23
2
미로슬라프 클로제
2001-2014
137
71
3
루카스 포돌스키
2004-2017
130
49
4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2004-2016
121
24
5
필립 람
2004-2014
113
5
6
위르겐 클린스만
1987-1998
108
47
7
위르겐 콜러
1986-1998
105
2
8
페어 메르테사커
2004-2014
104
4
9
프란츠 베켄바워
1965-1977
103
14
10
토마스 헤슬러
1988-2000
101
11
이미 국가대표로서 역대 2위이다. 월드컵에 무려 5번이나 나온 마테우스에만 뒤질 뿐. 슈바인슈타이거와 람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기록 경신 중이라 금새 깨질 거라 생각했지만, 람이 브라질 월드컵 우승 이후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고 슈바인슈타이거는 월드컵 이후 잦은 부상으로 인한 노쇠화로 인해 유로 2016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곧이어 클로제의 기록에 가장 근접했던 포돌스키마저 국가대표에서 은퇴하면서 클로제의 기록은 당분간 오래 이어나가게 되었다.
#
선수명
득점
출장경기
경기당 득점률
1
미로슬라프 클로제
'''71'''
137
0.52
2
게르트 뮐러
68
62
'''1.10'''
3
루카스 포돌스키
48
129
0.37
4
루디 푈러
47
90
0.52
=
위르겐 클린스만
47
108
0.45
6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45
95
0.49
7
우베 젤러
43
72
0.66
8
미하엘 발락
42
98
0.44
9
'''토마스 뮐러'''
38
94
0.42
10
올리버 비어호프
37
70
0.53
넣은 골도 골이고 경기당 득점률도 굉장하다. 보면 알겠지만 정신나간 득점률의 게르트 뮐러를 빼면 클린스만, 푈러, 루메니게 같은 쟁쟁한 선배들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는다. 그야말로 독일 축구 역사상 정상급의 애국자. 2012년 10월 17일 스웨덴과의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두 골을 득점하며 전설 게르트 뮐러의 통산 득점 타이에 한 골만 남겨두고 있다...가 2013년 9월 6일 오스트리아와의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득점하며 드디어 통산 득점 타이를 기록했다. 이후 브라질 월드컵까지 출전하여 득점을 기록하면서 통산 득점을 71골으로 마감했다.
'''골 수'''
'''선수명 (국적)'''
16
미로슬라프 클로제 (독일)
15
호나우두 (브라질)
14
게르트 뮐러 (독일)
13
쥐스트 퐁텐 (프랑스)
12
펠레 (브라질)
11
위르겐 클린스만 (독일)
산도르 코츠시스 (헝가리)
10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아르헨티나)
게리 리네커 (잉글랜드)
헬무트 란 (독일)
테오필로 쿠비야스 (페루)
그제고시 라토 (폴란드)
'''토마스 뮐러''' (독일)
그 유명한 FIFA 월드컵 득점 순위. 단순히 한 월드컵에 몰아 넣은게 아니라 분산해서 넣었기 때문에, 이렇게 월드컵에서 꾸준한 선수도 드물다. 그리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때 그의 나이는 37살이지만, 워낙 자기 관리가 철저한데다 그의 대체자로 손꼽히는 마리오 고메스보다도 국제대회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고 있으므로 몸상태만 유지한다면 월드컵 무대에서 다시 주전을 차지할지도 모를 상황이다.
사실 2010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클로제도 이젠 끝났다는 세평이 많았다. 사실 몇 년간 하락세긴 했고, 특히 09-10 시즌은 바이에른 뮌헨에서 거의 경기에서도 못 나오며 헤매던 것. 그러나 국대에서는 다르다! 포돌스키가 쾰른에서 부활하면서 애국자 타이틀을 벗어던지던가 했더니 클로제가 애국자를 계승했다.
월드컵에서의 활약은 그냥 원래 능력 있던 선수고 바이에른에서는 단지 부상 이후에 트레블을 위태위태하게 노리는 팀 사정상 제대로 뛰지 못해 폼을 회복하지 못했지만 감독의 무한 신뢰를 바탕으로 국가대표 평가전에서 꾸준히 출장하며 폼을 회복했다는 설명이 가능했지만,[12] 2010 월드컵 이후에서도 소속팀에서 전혀 경기를 뛰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국대는 그냥 붙박이로, 평가전이건 유로 예선이건 미친 듯 골을 꽂아넣는 그 모습을 볼작시면 어쩌면 이러다 정말 다음 월드컵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소속팀에선 한 경기도 주전 출장 못하지만 독일 국대에선 주전 스트라이커... 그렇지만 소속팀을 라치오로 옮긴 뒤에는 클럽에서도 다시 날아다닌다!
그리고 UEFA 유로 2012, 조별리그 전에서 고메스가 맹활약하며 클로제는 제 2의 공격 옵션이 되었다. 하지만 후반 마다 고메스 대신 투입되었는데 고메스가 플레이할 때와는 달리 공격 작업에서의 연계플레이나 조직력이 더 좋아지는 모습을 보이며 8강전에서는 선발 출장한다. 그 결과는 남아공 월드컵 때처럼 4골을 퍼부으며 4:2로 그리스를 발라버렸다. 독일 팬들도 고메스보다는 클로제가 더 낫다는 의견이 지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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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도 선발되면서 월드컵 최다 득점 기록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고, 조별예선 2차전 가나전에서 교체 투입되어 골을 기록함으로서 역대 득점 공동 1위로 동률이 되었다.[13] 그리고 8강 프랑스전부터는 주전으로 출전하기 시작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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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브라질전에서 선발 출전하여 골을 기록함으로써 호나우두를 제치며 역대 월드컵 통산 득점 1위 자리에 올라섰다! 게다가 후반에 안드레 쉬를레와 교체될 때까지 나이를 잊은 듯한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어 노익장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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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전에서도 원톱으로 출전, 비록 골은 넣지 못했으나 후반 43분까지 열심히 뛰었고, 마리오 괴체와 교체되었다. 교체되면서 괴체에게 '''오늘 경기는 네가 끝낸다'''라고 격려하는 국대 선배로서의 믿음직한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괴체는 정말로 연장전에서 '''결승골'''을 넣어 승부를 끝냈다!!! 월드컵 최다골을 경신하고 우승의 한까지 풀면서 독일 축구의 암흑기를 이겨내고 새로운 부활을 이끈 노익장의 마지막 월드컵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2014년 8월 12일(한국시간) 독일축구협회는 클로제가 독일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마지막 A매치 경기가 월드컵 결승전, 그리고 우승은 덤.
DANKE, M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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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우승이 확정되자 슈바이니와 눈물의 포옹을 나누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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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게리 리네커는 2018년에 러시아에서 보자는 트윗을 남겼다. 그 땐 40살인데... 그런데 하필 2018년에는 영 좋지 못한 광경제롬 보아텡[14]과 함께 보고 말았다.
총 12년간 4번의 월드컵에 출전하여 '''우승 1회, 준우승 1회, 3위 2회'''라는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클로제의 독일을 이긴 팀은 모두 해당 대회 우승) 물론 저 성적들이 클로제가 혼자서 쓴 기록은 아니라 해도 실력 면에서도 정신적인 면에서도 그의 공헌도가 높은 것이 분명하다. 4번의 월드컵에 개근하고 팀의 성적과 자신의 성적 모두 하이 랭킹을 꾸준히 유지했다는 점은 정말 대단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메이저급 대회 (월드컵, 유로) 에서 클로제가 골을 넣은 날은 독일은 무패 였다.[15] 진정한 애국자 끝판왕.....

5. 플레이 스타일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클로제는 정통파 타겟맨이 아니다. 뛰어난 공간침투와 뒷공간을 돌아가는 능력, 몸 전체로 골을 넣는 능력, 확실한 찬스 한방에 갑자기 나타나 득점하는 포쳐 스타일에 가까운 편이다.[16] 게다가 저 뛰어난 공간침투의 밑바탕이 되어 주는 빠른 스피드가 아주 일품이다. 클로제가 세계적으로 인지도를 높인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에는 '공간'과 '패스'라는 화두가 최신 조류로 서서히 부상하고 있었고, 클로제는 전술한 본인의 장점들을 살려서 그 흐름을 주도해나가는 스트라이커 중 하나로 떠올랐다. 그런데 한국의 해외축구 전문가, 팬들은 오히려 그 2002년 월드컵에서 클로제가 넣은 무수한 헤딩골을 근거로 구시대적인 타겟맨으로 낙인을 찍었고, 그래서 90년대에 나왔다면 일류였겠지만 21세기에는 뒤쳐진 선수라는 평가가 한국 팬덤에서의 일반적인 평가이기도 하였다.(...)[17] 반면 미하엘 발락은 그 조류에 적합해보였고, 그래서 2002년에 독일이 거둔 성과의 지분을 상당 부분 저평가받는 경향이 있었다. 덧붙여서 2000년대 초의 독일 분데스리가는 해외축구 팬들에게 유럽 3대 리그에 비해 한 수 아래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고, 그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클로제의 평가는 더 나빴다. [18]
클라우디오 로페즈와 스타일이 거의 판박이인데 둘 다 그 특유의 빠른 주력으로 상대 수비수들을 요리조리 싹싹 피해다니면서 슈팅을 날리는 그런 스타일의 선수이다. 실제로도 공격수임에도 공을 갖고 도망치는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포지션이 에르난 크레스포와 같다고는 하지만 어마무지한 피지컬을 이용해 몸싸움으로 우겨넣는 크레스포와는 달리 클로제는 빠른 발로 이리저리 움직여 상대 수비수를 따돌리는 데에 특화되어 있다. 실제로도 주력이 후달려서 클로제를 놓치는 바람에 실점하는 팀들도 꽤 있다. 예를 들면 2002년의 사우디아라비아나 2006년의 코스타리카와 에콰도르이다. 클로제는 세 팀에게서 각각 3골, 2골, 2골을 갈취해갔다.
또한, 어시스트에도 소질이 있다. 클로제가 단순한 골게터에 불과했다면 베르더 시절 그와 함께 한 클라스니치가 공격수 평점 2위를 차지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바이에른에서 토니와 짝을 이뤄서 득점은 다소 줄은 반면, 뛰어난 패스로 토니의 득점을 도왔다. 연계 플레이도 상당한 수준이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그를 섀도우 스트라이커로 보는게 더 적합하다고 하는 평가도 있다.
또한 '''압도적인 뚝배기'''를 이용한 헤딩 능력과 그를 뒷받침해 주는 준수한 피지컬 또한 그의 장점이다. 포스트 플레이란 무릇 헤딩의 정밀함 + 피지컬 + 공간 침투 능력 + 동료를 이용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이 모두를 일류급으로 갖춘 스트라이커는 정말 찾기 어려우며 2000년대의 클로제는 이 부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수 있다..[19]
카이저슬라우텐에서 뛴 2000년부터 2004년 까지의 동영상을 봐도 클로제가 전형적인 타겟맨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 수 있다.

이 시기로만 보면 헤딩에 뛰어난 포쳐스타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하지만 베르더 브레멘[20]와 바이에른 뮌헨을 거치면서 팀 공격수를 살리는 플레이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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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출전한 월드컵, 아일랜드전에서 선제골을 넣은후.'''
클로제하면 떠오르는, 골을 넣은 뒤의 공중제비 세리머니는 일품이지만 부상 위험 때문에 어느 정도 나이를 잡수신 이후부터는 잘 하지 않았다.[21][22] 2014 브라질 월드컵 가나 전에서도 나왔는데, 한 바퀴를 완전히 다 돌지는 못하고 엉덩이로 착지했다. 엄청나게 가벼운 몸 을 자랑하는 위의 움짤과 비교해보자. 세월의 흐름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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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일의 상실영토 오버슐레지엔 주의 주도였던 곳이고, 현재 폴란드에 잔류한 독일인 다수가 사는 곳이기도 하다. 2차대전 이후 독일 국경은 오데르-나이세 선으로 귀결되어 폴란드 영토가 되었다. 클로제는 독일계 아버지에게 태어났으며 8살 때까지 독일어는 두 단어 정도만 알았다고 한다.[2] 참고로 폴란드에서의 현지 이름은 미로스와프 마리안 클로제(Mirosław Marian Klose)였다.[3] 폴란드에서 축구선수로 뛸 때는 Józef Klose라는 폴란드화된 철자를 사용했다. 하지만 프랑스로 이적하면서 독일어 철자인 Josef Klose를 등록명으로 사용했다.[4] 이러한 이유에는 어머니의 반대도 있다. 클로제의 어머니가 축구선수가 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5] 이는 클로제가 더 상처받을까 봐서이다. 예전에 축구선수를 꿈꾸며 아카데미에 지원했던 클로제였지만, 너무 기술이 없다고 일주일만에 퇴짜를 맞았다. 이와 비슷한 일을 또 겪어 클로제가 상처받을 것이 어머니는 두려웠기 때문.[6] 독일의 평점은 타 국가와는 달리 낮을수록 좋다. '''키커의 평점은 1점이 최고 6점이 최하'''이다. 8은 절대 안 된다. 이를 제대로 환산해보면 10점 만점에 7.7이다.[7] 이후 2012/13 시즌에 프랑크 리베리가 2.10, 2014/15시즌에 아르옌 로벤이 2.16을 찍으며 경신한다.[8] 상술했듯이 당시 분데스리가는 그리 높은 수준의 리그로 평가받지 않았는데 그 리그의 최상위권 팀에서 출전도 제대로 못 하고 실제 성적도 별로였다는 점이 클로제의 클럽 커리어에 대한 평가를 상당히 떨어지게 한 원인이다. 적어도 국가대표 때 만큼의 활약을 바이에른 시절에도 꾸준히 보여줄 수 있었다면 클로제에 대한 평가는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었다.[9] 클로제의 경우 막바지에 폼이 상당히 좋았음에도 골을 제대로 넣는 것에 실패해 많은 바이에른 뮌헨 팬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이는 클로제의 폼이 잠시 죽었던 이유도 있으나 본질적으로 클로제의 플레이스타일이 볼 순환이 바른 팀에 최적화되어있음에 원인이 있다. 물론 분데스리가 마지막 라운드 슈튜트가르트전 처럼 말 그대로 발만 갖다대면 넣을 수 있는 찬스도 날려먹는 등 클로제의 결정력 자체도 심각하게 떨어져있긴 했다.[10] 13년 은퇴한 베컴이 한국나이로 39살이다.[11] 이전 최다 득점자인 호나우두오세아니아를 상대로 득점하지 못하였는데, 오세아니아를 상대로 아예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고 2006년에 호주와의 조별리그에 나서긴 했었다. 다만 클로제가 호주를 상대로 득점했던 2010년에는 호주가 아시아 소속으로 편입된 이후이긴 하다.[12] 팬들 사이에서는 은근히 일을 낼 것 같다는 얘기도 있었다. 평가전의 경과를 보면 그야말로 서서히 폼을 회복해 나가는 게 눈에 보였기 때문에.[13] 참고로 말 그대로 '들어가자마자' 골을 넣었다. 골 넣고 나오는 선수 스탯 화면에 '뛴 거리 0.08km, 슈팅1, 유효슛1, 득점1'이라고...[14]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했다.[15] 49경기 40승 9무, 비슷한 기록의 소유자로는 이니에스타가 있다.[16] 실제로 클로제의 월드컵 득점을 보면 대부분이 공간 침투를 통해 가장 좋은 위치에 들어가서 득점하는 장면이다. 피지컬을 이용해 찍어누른 골은 2002년 사우디전을 제외하면 별로 없다.[17] 물론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클로제는 동시대의 디디에 드록바와 같이 득점력뿐만 아니라 2선과의 연계플레이에 있어서도 뛰어난 상당히 현대적인 타입의 공격수였다. 이는 당시 국내에서 분데스리가의 인기가 전혀 없었던 이유로 생긴 편견이다.[18] 심지어 2001년에 바이에른 뮌헨은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이였고 2002년 월드컵 직전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독일 팀인 레버쿠젠이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19] 이전 서술에서는 게르트 뮐러를 공간 창출에만 뛰어나고 연계나 피지컬 등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공격수처럼 묘사되어 클로제와 비교하는 식으로 서술이 되어 있지만, 게르트 뮐러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세간에 잘못 알려진 이미지대로 평가한 것이다. 필리포 인자기라면 모를까, 게르트 뮐러는 오히려 스트라이커로써 리그에서 453경기 동안 398골을 기록하는 동안 118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할 정도로 연계도 뛰어났고 강력한 슈팅 능력을 가졌으면 기술과 피지컬으로도 완벽한, 요즘으로 비교하자면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상위 호환에 가까운 완성형 공격수이다. 자세한 것은 게르트 뮐러 항목 참조.[20] 클로제가 뛰던 시절 베르더의 공격수 넬슨 발데스,클라스니치, 아론헌트, 모하메드 지단은 커리어하이의 득점을 이뤘다.[21] 남아공 월드컵 8강 아르헨티나전 때도 득점 후 이 세리머니를 선보였다.[22] 실제로 2012-13 시즌부터 브라질 월드컵에 나가기 위해 세리머니를 자제하고 있다고 했었고 다행히 월드컵에 나가서 기록 경신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