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토리 에르제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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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바토리 에르제베트
Báthory Erzsébet
'''출생'''
1560년 8월 7일
트란실바니아 공국 니르바토르[1]
'''사망'''
1614년 8월 21일
헝가리 왕국 체이테[2]
1. 소개
2. 생애
2.1. 명문 귀족의 딸
2.2. 차흐티체 성의 악녀
2.2.1. 대튀르크 전(1591–1606)
2.2.2. 남편의 죽음
2.2.3. 피의 목욕
2.3. 재판
2.3.1. 사망
3. 사후 의혹
4. 대중매체에서
4.1. 영화
4.2. 기타
4.3. 크리퍼스큘의 등장인물들
4.3.1. 어머니 쪽
4.3.2. 딸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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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블라드 체페슈, 질 드 레 등과 함께 흡혈귀의 원형으로 알려져 있다. 세간에는 영어식 표기인 '''엘리자베스 바토리'''로 잘 알려져 있으나, 외래어 표기법에 근거한 올바른 표기는 '''바토리(Báthory) 에르제베트'''이다. 헝가리인들은 동아시아처럼 성이 이름 앞에 위치한다.

2. 생애



2.1. 명문 귀족의 딸


바토리 남작, 또는 바토리 부인이라고 알려진 이 인물은 1560년 트란실바니아 지방의[3]명문가인 바토리 가문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어린시절에 바토리 가문은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공작이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왕국의 왕 바토리 이슈트반(Báthory István)[4]의 치세 아래 동유럽 최고의 명문가로 위세를 떨쳤다. 에르제베트의 어머니 바토리 언너(Báthory Anna)가 바토리 이슈트반의 누나라, 에르제베트는 이슈트반의 3촌 생질녀라는 높은 위치였다.
젊은 시절에는 조신한 데다가 상당한 미인으로 알려졌으며 궁중의 예법을 배워 현모양처에 가까운 이미지였다. 에르제베트는 에체드(Ecsed) 성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1571년 11세에 5살 연상인 나더슈디 가문의 장남 나더슈디 페렌츠(Nádasdy Ferenc) 백작과 약혼했다. 그 후 시어머니가 될 오르쇼여(Orsolya)로부터 무인의 아내가 되려면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해 미리 배우기 위해 시댁인 샤르바르(Sárvár) 성으로 보내졌다. 오르쇼여는 매우 엄하고 잔소리가 많았기 때문에 어린 에르제베트에게 잔소리를 끊임없이 했다고 한다. [5]
1575년 에르제베트는 15세에 약혼자 나더슈디 페렌츠 백작과 결혼했는데, 이때 식장에는 하객 4500명이 참석하는 등 위세를 과시하였다. 그런데 에르제베트는 남편보다 신분이 더 높았다. 나더슈디가 장군이나 재상이 되는 귀족임에 비해 에르제베트는 왕족이었다. 그 덕분에 결혼 후에도 '바토리'라는 성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후 에르제베트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1585년부터 1598년까지 자녀 5명을 낳았다.
  • 나더슈디 언너(Nádasdy Anna, 1585~?) : 즈리니 미클로시 6세(Zrinyi Miklós VI)의 아내가 되었다.
  • 나더슈디 오르쇼여(Nádasdy Orsolya, 1590~?) : 베뇨 이슈트반 2세(Benyó István II)의 아내가 되었다.
  • 나더슈디 커털린(Nádasdy Katalin, 1594~?)
  • 나더슈디 언드라시(Nádasdy András, 1596~1603)
  • 나더슈디 (Nádasdy Pál, 1598~1650)
  • 그 외에 나더슈디 미클로시(Nádasdy Miklós), 나더슈디 죄르지(Nádasdy György), 나더슈디 페테르(Nádasdy Péter)라는 자녀가 있다고는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2.2. 차흐티체 성의 악녀


그러나 남편은 주로 전쟁터에서 지휘하는 임무를 맡았으므로 결혼 생활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남편은 1578년 헝가리 군대의 총사령관을 맡는 등 막중한 임무를 주로 수행하였고 에르제베트는 거대한 차흐티체(Čachtice)성[6]의 여주인으로 남아 성과 주변 마을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2.2.1. 대튀르크 전(1591–1606)


1593년부터 1606년에 이어진 전쟁에서 에르제베트가 머무는 영지는 오스만 군대의 침략에 노출되었는데, 이 때에 과부, 전쟁포로의 부인, 그리고 강간피해자 여성들을 대표해 사절을 주고받는 일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2.2.2. 남편의 죽음


그러던 중 남편 '나더슈디 페렌츠' 백작이 1604년 49세 나이로 전사하여, 에르제베트는 44세에 차흐티체 성의 유일한 주인이 된다. 성주가 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에게 사사건건 간섭해대던 눈엣가시 시어머니 오르숄야를 바로 쫓아내는 것이었다.
그 뒤 나이를 먹으며 피부가 점점 노화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성격이 신경질적으로 변해간 듯하다. 그러던 어느 날 시녀가 에르제베트의 머리를 빗기다 실수로 머리를 좀 심하게 잡아당기자 화가 나서 시녀의 뺨을 때린 것이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한다. 반지 낀 손으로 시녀의 뺨을 때려서 반지에 긁혀 시녀의 가 튀었다. 나중에 에르제베트는 피를 닦았는데 피가 묻었던 피부가 평소보다 좀 더 하얗게 보여서, 이후 처녀의 생피가 자신의 노화를 막고 젊음을 되찾게 해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첫 희생자는 머리를 잡아당겼던 시녀였다.

2.2.3. 피의 목욕


시녀들을 해치운 에르제베트는 근처 농민들의 딸들에게 일자리를 준다고 속여 성으로 데려온 뒤 피를 짜내기에 이르렀다. 성으로 들어온 처녀를 발가벗기고 강제로 철새장에 가두어 천장에 매단 다음,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가시에 찔리도록 장치해 두었다. 처녀가 깨어나서 몸을 움직이면 새장이 흔들려 자연히 가시에 찔리게 된다. 통증을 못 이겨 몸을 더 심하게 움직이면 다른 가시에 더 찔리게 되다가 결국 기력이 빠져 죽게 만들었고, 에르제베트는 그 밑에서 흘러내리는 피로 목욕을 했다.
처음에는 샤워하고 남은 시체는 신부를 불러 정식으로 장례를 치렀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시체가 점점 많아지고 죽은 사람의 숫자도 많아지다보니 신부도 의심스러워서 장례를 거부하는 등 장례의식마저도 여의찮아지자 아무 데나 버렸다고 한다. 에르제베트가 쓴 일기를 토대로 사망자를 추산하면 사망자는 총 612명이라고.
이런 짓을 하다 보니 주변 마을에서 처녀의 씨가 말랐고, 성으로 들어간 여자아이들이 하나도 돌아오지 않으니 두려워진 주민들이 딸을 성으로 보내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이제는 마차를 내보내 강제로 여자아이들을 납치해 들였고, 그래도 자기가 원하는 만큼 피를 얻을 수 없자 귀족의 딸들에게까지 마수를 뻗친다. 귀족적 소양을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성 안에 귀족 여학교를 설립하고 한 번에 25명씩 입학생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평민들은 귀족들의 입장에서 보면 벌레보다는 좀 낫지만 아끼는 말보다는 좀 못한 존재였기 때문에 에르제베트가 마음껏 죽여도 별다른 후환이 없었지만, 귀족의 딸들에게까지 마수를 뻗치자 화를 초래하였다.

2.3. 재판


에르제베트의 손에 붙잡힌 희생자들 중 한 명이 극적으로 탈출하여 외부에 신고하여 그 마각이 드러났다. 그 뒤 군대가 투입되어 전원이 검거되었다. 에르제베트의 성을 수색하던 귀족 지휘관과 군인들은 그 참혹한 행각에 모두 경악했다고 한다.
연쇄살인범으로 기소되어 1611년 재판을 받았지만 본인은 귀족이라 출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범행에 적극 가담한 에르제베트의 집사 및 하녀들은 전원 사형에 처해진 반면[7], 그 시대 법률로는 귀족을 사형에 처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신 일종의 무기 금고#s-2형에 처해졌는데, 능히 사형의 대안이 될 만큼 가혹한 것이었다. 식사를 넣어 주는 구멍 외에는 모든 것이 밀폐되고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탑 꼭대기의 독방에 갇혀 서서히, 그리고 비참하게 죽어가는 형벌이었다.

2.3.1. 사망


그 안에서 지내다가 결국 감금된 지 4년만인 1614년 54세로 사망했다고 한다. 무덤은 자신이 살았던 성 부근의 교회에 있었으나, 어느 시점에서 고향으로 이장되었고 현재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신성로마제국 황제 마티아스는 에르제베트의 친정 바토리 가문을 멸족시키려고 했지만, 재상 투르조[8]가 그렇게 되면 헝가리에서 반란이 일어난다고 경고하여 넘어갔다.

3. 사후 의혹


후대에는 에르제베트의 정적들이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꾸민 모함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더구나 종교개혁 이후로 바토리 가문은 대대로 '''칼뱅교를 믿었기 때문에''' 종교분쟁의 희생양 아니냐는 설도 있다.(참고) 실제로 종교개혁 이전 이탈리아의 발도파 공동체 여자들도 마녀라는 누명을 쓴 적이 있었다. 물론 에르제베트가 살인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 16세기 초부터 귀부인들을 습격-모함하여 마녀로 몰아 죽이는 형식의 일들이 빈번하게 등장한 시기였기에 이 주장도 간단하게 묵살할 수는 없다. 2008년작 영화 바토리가 이 설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아이러니한 건 에르제베트를 마녀로 고발한 사람은 같은 개신교루터파 목사였고, 조사관을 맡았던 루터파 제후는 이후 헝가리 변경백에 올랐다고 한다.[9]
영지는 에르제베트의 자녀들이 물려받았다. 반역이 아닌 단순 연쇄살인이기 때문에 당사자만 처벌하고 끝이라는 것. 이 가문은 남자 계통은 2013년까지 이어졌다가 끊어졌고 수많은 여계 자손들이 아직도 귀족으로 살아간다.
이 부분은 2015년 2월 1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뤘다. 1985년에 헝가리의 역사학자 나기 라즐로는 에르제베트가 연쇄살인마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첫째, 재판 기록에는 보통 구체적 죄명과 범행 내용이 정확히 명시되는데, 에르제베트의 재판 문서에는 오직 마녀이기 때문에 종신 구금형을 선고했다고만 기록되었다.
둘째, 당시 조사관들은 에르제베트가 일기장에 살해 명단을 적었다고 밝혔지만 이를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에르제베트의 시녀들은 범죄에 가담했다는 명목으로 재판 전 화형당했다. 이는 모두 에르제베트의 결백을 증명할 증인을 없애려는 수작이라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에르제베트의 사촌 오빠이자 당시 헝가리 국왕 마티아스가 에르제베트에게 전쟁 자금을 빌려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당하자, 분노하며 재산을 몰수하고자 없는 죄를 꾸며 뒤집어씌웠다고 주장했다.
만약 실제 재판내용과 라즐로가 주장한 재판 내용이 일치하면 희생양설에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 612명이나 죽었다면 그 규모가 전무후무한데, 재판 기록에 없다면 둘 중 하나다. 너무 말도 안 되는 수준이라서 후대에서 안 믿겠다고 생각해서 은폐했거나 진실이 아니거나.
다만, 바토리 가문과 나더슈디 가문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헝가리의 귀족과 지배층으로 남았고, 헝가리의 상류층들에는 상당수 에르제베트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 그것을 감안하여 이런 주장들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어쨌든 이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헝가리와 슬로바키아에서 개신교는 죽었다고 한다. 헝가리에서는 천주교인 수가 개신교인 수의 5배가 넘으며, 특히 에르제베트의 악행이 주로 행해졌다는 슬로바키아에서는, 개신교를 믿으면 나환자 취급을 받았다. 현재 슬로바키아의 개신교 인구가 9%라고 나오지만, 20세기 이전에는 개신교도들은 천주교인들과 거의 교류할 일이 없이 자기들끼리 따로 살았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한 것이고 나머지는 다 천주교이거나 공산통치 시절에 생겨난 무종교인들이다. 아직도 거기서는 개신교도라고 하면 왕따를 당한다.
과학적으로는 굳이 샤워가 아니더라도 피로만 욕조를 채우는 목욕을 하기는 힘들다. 성인 1명의 신체에서 갖은 수단을 동원해 피를 완전히 짜내도 5리터 정도밖에 안 나온다. 욕조의 용적은 대개 300리터 정도이므로 욕조에 피를 채워 목욕을 하려면 한 번에 60명 정도가 필요했을 것이다. 또한 피는 특별한 처치를 하지 않으면(피브린 제거) 금방 굳어버리는데다 피의 악취는 상상을 초월하며 대부분의 사람이 견딜 수 없는 수준의 구역질을 유발한다. 당장 익히지 않은 돼지고기와 소고기의 냄새만 맡아 봐도 역한데 이것도 피냄새 때문에 그런 것이다. 다만 세상에는 별의별 잔혹 범죄자가 다 있으니 단정지을 수 없는 일이지만. 다만 피 몇 방울로도 충분히 물 전체를 붉게 만들 수 있으므로 물에 희석한 상태에서 목욕을 하는 경우는 가능할 수도 있다.

4. 대중매체에서



4.1. 영화


진실이야 어찌됐든 워낙 인류사에 찾아보기 힘든 일화다 보니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졌다.
  • 1956년에 개봉한 이 밤피리는 기본 설정은 동일하되 뒤 그랑 공작부인이라고 이름 붙였다.
  • 1971년에 나온 어둠의 딸들은 본격적으로 바토리 백작부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주인공으로 삼은 첫 영화다.
  • 1971년에 나온 드라큐라 백작부인은 역시 기본적으로 피로 목욕하는 설정은 같고 엘리자베트 노도셴 백작부인라고 이름을 붙였다.
  • 1973년에 개봉한 프랑스 영화 Contes immoraux (영: Immoral Tales)에도 피로 목욕하는 장면이 나온다.
  • 2006년에 개봉한 공포영화 스테이 얼라이브에서 이 이야기를 소재로 사용하였다.
  • 2008년에 개봉한 바토리에서는 다소 색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에르제베트는 살인을 즐겨하던 인물이 아니었고, 재산을 노리던 주변 영주들의 음모에 빠져 피의 마녀라는 누명을 쓰고 감금이 되었다.
  • 2008년에 만들어졌고 2009년에 개봉한 영화 카운테스에서 이 이야기를 소재로 사용하였다.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에서 여주인공 셀린 역을 맡은 줄리 델피가 주인공 엘리자베스 바토리 역을 맡음과 동시에 감독도 맡았다.

4.2. 기타


  • 게게게의 키타로 6기에선 카밀라라는 이름의 여성 흡혈귀가 등장할 예정인데 컨셉이나 이름으로보나 이쪽을 모티브로 한 요괴.
  • 다크에덴 - 에르체베르 바토리 - 보스 몬스터이자 중요 NPC로 등장하는데, 처음 보스로 등장했을 당시에는 매우 강한 공격력과 30분의 제한시간, 그리고 미칠 듯한 맷집으로 게임 내에서도 상위 랭커에 속하는 유저들이 파티를 모아 겨우 클리어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갓 승직한 슬레이어 하나가 녹여버린다. 지못미.
  • 데빌메이커의 5성, 6성 악마 카드로 등장하며 5성의 경우 '바토리'로 6성의 경우 '피의 여왕 바토리'로 등장하는데, 5성은 교복을 입고있다(...).
  • 데스티니 차일드에서는 여기에서 모티브를 따온 에르제베트라는 차일드와 바토리라는 악마(게임 분류상으로는 차일드)가 등장한다. 차이점이라면 에르제베트는 실존인물의 '아름다움의 영원함'에 집착하는 면을 따왔고, 바토리는 실존인물이 그 집착으로 인해 가졌던 '젊은 처녀의 피'에 집착하는 면을 따왔다는게 다르다.
  • 디아블로 2 - 카운테스(Countess, 여백작) - 액트 1에 등장하는 퀘몹.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잊힌 탑에 들어가기 전에 읽을 수 있는 책에서 나오는 배경설정에 수백 명 처녀들의 피로 회춘을 위해 목욕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보면 확실히 바토리가 모티프다. 설정 상으로는 원래 여백작 소유였던 수많은 보물 중의 일부(나머지는 성직자들이 분배했다고) 및 희생자들의 썩어가는 시신과 함께 함께 탑 아래 감금당했다고 한다.
  • 바토리의 아들은 이 인물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웹툰으로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목요 웹툰으로 연재되고 있다.
  • 베르사이유의 장미 외전 - 몽테클레르 백작부인
  • 붕괴3rd에서 엘리자베스 바토리라는 이름의 성흔으로 등장한다. 참고로 컨셉은 흡혈귀.
    • 블러디 로어 시리즈제니 버토리. 수화 시 피를 빨아먹는 기술이 있고, 이름부터 "바토리"이다. 하지만 작중에서 피를 직접 먹는 모습이 나오진 않았고, 캐릭터의 모티브만 따온 듯.
  • 소년탐정 김전일 - 밀랍인형성 살인사건 : 엘리자벳 프리드리히
  • 악마성 시리즈 Vampire Killer - 에르체베트 바토리 - 흡혈귀의 원형이 된 사람 중 하나인 만큼 메인 적 캐릭터로서 등장한다. 여기서는 드라큘라의 조카라는 설정으로 등장한다. 거기다가 정작 성은 영국에 있다. 스토리 상에서 흑마법사에 의해 부활했고, 소설판 드라큘라와 연결하기 위한 것. 보스전은 재밌게도 괴물 형태로 먼저 싸우고 인간형으로 변한다.[10] 때문에 일본판에서는 바토리로 나오지만, 영미판에서는 덕분에 메두사로 나오게 되었다. 인간형에서는 체력 게이지가 구슬 형태로 나오며, 구슬이 소모되면 체력이 깎이는 방식이다. 공격은 일직선 공격이 전부지만, 체력이 낮아질수록 공격 속도가 빨라진다.
  • 악튜러스 - 엘리자베스 바소리
  • 이웃집 흡혈귀 씨의 등장인물 흡혈귀 에리의 모티브로 추정된다. 생년월일이 바토리와 같은 1560년 8월이고 일본어가 어렵다고 헝가리어로 해도 되겠냐고 물었는데, 평소에 피로 목욕을 하는 데다 출신지가 헝가리 근처인 트란실바니아다.
  • 종말의 세라프 - 페리드 바토리 (남성 시조 7위 뱀파이어)
  • 세븐나이츠 - 바토리 <학살의 흡혈귀>
  • 초인동맹에 어서 오세요에 등장. 이쪽 역시 한밀아 콜라보레이션 카드로 등장했다. 에르체베트 바토리(오라전대 피스메이커) 참조.
  • 카멜롯#s-2(미국의 파워 메탈 밴드)의 노래 Elizabeth 3부작이 바토리 부인을 컨셉으로 잡았다. 2부에서는 딸까지 살해하는 등 어느정도 각색이 가해졌다.
  • 크래들 오브 필쓰(Cradle of Filth)는 영국의 블랙 메탈 밴드로 정규 3집앨범 Cruelty and the Beast (1998)는 앨범 전체가 바토리 부인을 주제로 한 콘셉트 앨범이다. 유혈이 낭자하는 폭력성에 이후 CoF의 특징인 레즈비언적 에로티시즘이 가미되어있다.
  • 크리퍼스큘의 등장인물로 바토리 에르제베트와 바토리 슈피첸이 있다.
  • 킹스레이드 - 에르제 (끝없는 갈증, 뱀파이어) '바토리 에르제베트'
  • 패스 오브 엑자일 - 중간보스로 등장하는 움브라의 샤브론이 살아 생전에는 처녀들의 피로 목욕을 하면서까지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는 설정이 있다.
  • 확산성 밀리언 아서의 한국서버 오리지널 요정 바토리. 후속작 괴리성 밀리언아서에서는 일본서버에서 엘리자베스 바토리라는 이름의 한정가챠카드로 등장한다. 이 쪽 바토리는 피 대신 와인으로 목욕을 한다.
  • Bathory(밴드) - 스웨덴블랙 메탈, 바이킹 메탈 밴드.
  • The Black Heart에서 ANIMUS의 어머니가 이사람으로 추정된다. 기술도 이사람을 모티브에서 따온 것 같고.
  • DJMAX 시리즈Heart of Witch 또한 이 인물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곡이며, BGA까지 이 인물이 모티브가 되었다.
  • Fate 시리즈에서는 서번트로 등장. (본인이 생각하는) 전성기인 어린 시절의 면모와 카밀라의 모티브가 된 성인의 면모 두 가지로 따로 등장한다. 전자는 밝고 명랑하고, 순수하게 잔인한 개그 캐릭터 랜서(바토리 에르제베트)로 소환, 후자는 음습하고 광기에 빠진 악역 어새신(카밀라)로 소환된다. 전자가 지닌 보구를 마개조한 것의 이름도 바토리 에르제베트.
  • X JAPANBLUE BLOOD앨범. 수록곡 Rose of pain은 바토리 에르제베트를 다룬 곡이다.

4.3. 크리퍼스큘의 등장인물들



4.3.1. 어머니 쪽


크리퍼스큘의 창시자인 두 몽마 자매 중 동생쪽으로 안젤라 에르제베트언니이자 카르밀라 에르제베트의 첫째 동생. 즉, 에르제베트 삼 자매 중 둘째에 해당된다.
세계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희생한 카르밀라완 달리, 남아서 세계를 지키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발푸르기스의 밤 축제때 크로퍼드의 폭주로 인해서 결국 사망했기에 고인으로서 작중에 등장한 적은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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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바토리 오른쪽이 카르밀라'''.
작중에서 에르제베트 삼 자매중 가장 작중 비중이 없으나(...) 떡밥은 크다. 밑 문단의 '''바토리 슈피첸의 어머니''' ...라고 딸 바토리가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 안젤라는 "언니에게 딸이 있다는 소리는 듣도 보고도 못했다" 라면서 전혀 믿지 못했다. 또한 딸 바토리의 기억에는 딸에게 미안해하면서도 '나에겐 너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며 버리고 갔다는데.... 게다가 딸 바토리의 전체적인 모습은 진한 머리색의 안젤라나 바토리 본인보다 오히려 카르밀라와 흡사하다. 물론 현실적으로 드물게도 부모보다 더 먼 혈육지간(이모나 사촌)끼리 더 닮게 되는 형상도 있긴 하나, 이런 2차 창작에서는 관계성을 더 쉽게 부각시키기 위해서 부모자식은 90% 확률로 머리색과 홍채색이 매우 비슷하게 나오는 점을 상기하면 쉽사리 지나갈만한 점은 아니기는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바토리 슈피첸은 상술한 바토리 에르제베트 1세의 딸이 아니라 카르밀라가 버리고자 한 원념의 집합체였다. 네르갈(크리퍼스큘)이 딸 바토리를 "에르제베트의 타버린 잿더미"라고 부른 것이 바로 이 이유였다. 제 기능을 못 하는 에르제베트이며 카르밀라가 전면 부정하고 내버린 자신의 잔류물이기 때문에 그토록 천시한 것이었다.
카르밀라는 작중행적이라도 어느정도 나와있지만 어머니쪽 바토리는 여전히 정보가 부족해서 어떤 의미로는 카르밀라보다 더욱 떡밥 투성이의 인물이다.

4.3.2. 딸 쪽


바토리 슈피첸 문서 참조.
[1] 오랫동안 바토리 가문의 영지였던 곳으로 현재도 바토리 가문과 관련된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2]슬로바키아 차흐티체.[3] 우연의 일치겠지만, 블라드 3세와 그를 모티브로 한 드라큘라 백작의 고향이기도 하다. 뭐 바토리 에르제베트는 오늘날의 헝가리 영토에서 태어난 헝가리인, 드라큘라는 루마니아 영토의 헝가리인인 세케이족, 그리고 블라드 3세는 몸만 트란실바니아에서 태어난 라틴계 왈라키아인이라는 세세한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4] 폴란드어로는 스테판 바토리(Stefan Batory). 루마니아어로는 슈테판 바토리(Ştefan Báthory).[5] 이 시기에 사생아를 낳았다는 소문이 있었다. 에르제베트가 하인의 아이를 임신했고, 1574년에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는 약속을 하며 하인의 아내에게 보냈다고 한다. 아이의 이름은 어너스타지어(Anasztázia)였다고.[6] 영어로는 체히테 성이라 불리며 현재는 폐허가 되었다.[7] 다만 범행의 주동자는 아니라는 이유로 일반적인 사형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그 일반적인 사형이란 게 참수형 아니면 교수형 후에 이뤄지는 화형이기는 하지만.[8] 당시 헝가리 제일의 귀족이었고 바토리 가문과도 인척관계가 있었다.[9] 다만 착각하면 안 되는 것이 칼뱅교와 루터교는 성만찬이나 성상에 대한 관점 등 여러 가지가 달랐기 때문에 생각보다 매우 적대적이었다. 아예 루터교가 칼뱅교의 성상 파괴 운동을 이슬람 놈들 같다고 디스했을 정도.[10] 바토리를 죽이면 다음 탑에서 드라큘라와의 최종전투를 벌이게 된다.

[분류:크리퍼스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