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고등학교 야구부

 



[image]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Paichai High School)
'''창단'''
1911년/1971년
'''소속 리그'''
서울권
'''감독'''
권오영[1]
'''연고구단'''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
키움 히어로즈
'''우승 기록'''[2]
1회

'''대회'''
'''우승'''
'''준우승'''
'''4강'''
'''대통령배'''
1회(1995)
-
-
'''청룡기'''
-
-
2회(1971, 73)
'''황금사자기'''
-
1회(1990)
-
'''봉황대기'''
-
2회(1973, 80)
3회(1986, 91, 97)
'''협회장기'''
-
-
1회(2020)
'''전국체전'''
1회(1920)
-
-
'''1995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대전고등학교

'''배재고등학교'''

휘문고등학교
1. 연혁
3. 출신 선수[3]


1. 연혁


[image]
1920년 1회 전조선야구대회 우승깃발을 들고...
1911년 배재고등보통학교에서 야구부를 시작한 것이 팀의 기원으로 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스카웃 대상자로 유명한 이영민의 모교가 바로 배재고 야구부다. 그리고 1920년 제 1회 전조선 야구대회 우승팀이 바로 배재고보인데, 이 전조선 야구대회가 발전한 것이 오늘날의 전국체전이다. 그러니까 '''전국체전 초대 우승팀이다.''' 하지만 해방 후에는 딱히 야구팀에 대한 운영 의지가 없었는지 몰라도 1960년대 무렵에 야구팀이 사라졌으며, 한창 고교야구 붐이 일기 시작하던 1971년에 팀을 재건하여 다시 고교야구계에 뛰어들었고, 오늘날 알고 있는 배재고 야구부의 역사는 여기부터 시작이다.
1970년대 배재고 야구부를 지탱한 선수는 배재고 3총사로 불린 이광은, 하기룡, 신언호로 1973년 고교야구 무대에서 우승후보 중 하나였지만, 청룡기에서 에이스 역할을 해줄 하기룡이 부산고에서 배재고로 전학 과정에서 학적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출장 금지를 먹으면서 이광은이 5일 동안 무려 59이닝을 던지는 기록적인 혹사 끝에 4강에 올랐고, 다시 봉황기에 결승에 올랐지만 당시 막강했던 대구상고에게 패하면서 첫 번째 전성기를 마쳤다.

1980년 북일고와의 봉황기 결승전
그 뒤 1979년 대구에서 열린 대붕기 우승 및 1980년 봉황대기 결승에 올라 천안북일고에게 패하는 것 외에는 어쩌다 한 번 봉황대기 4강 정도로만 만족하는 평범한 팀이 되었다. 1990년 황금사자기 결승에 올랐지만 이 때는 충암고의 화력을 견디지 못하고 0:13의 패배를 당해야 했다.
배재고의 첫 우승은 1995년 대통령배에서 나왔는데, 결승에서 휘문고의 에이스 김선우를 무너뜨리면서 8:7로 휘문고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한 것이 컸다.[4] 그리고 이 때의 기세를 살려 1997년 봉황대기 4강에 오른 것이 2018년 현재까지 배재고 야구부의 마지막 메이저대회 4강 진출이다. 그 뒤로는 쭉 하향곡선을 그리면서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영 좋지 않다. 2010년, 자율형 사립고로 지정된 후에는 투자까지 줄어들면서 최소한도의 인원으로 운영 중이다.[5] 2012년 말에는 감독인 이광은이 전 직장인 연세대 재학 시절의 입학 비리에 연루되어 팀 분위기가 흔들리기도 했다.
야구부 자체 성적은 요즘 들어서는 서울권에서도 약체로 평가되지만, 대학 진학률은 다른 학교들에 비해 높은 편으로, 2016년 기준으로 프로 입단에 성공한 이재용(NC 다이노스, 2차 5라운드)를 제외하면 모두 대학입학했다. 출처.
2019년 첫 대회인 황금사자기에서 모처럼 8강전까지 진출하였으나, 충훈고에게 3:4로패배 4강 진출은 다음으로 미루게 됐다.
2019년 7월 9일, 서울특별시 교육청에서 배재고의 자율형 사립고 지정 취소 결정을 내림에 따라 일부에서는 다시 예전처럼 활발한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과연 그렇게 될지는 미지수다.
2020년 8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기 전국고교야구대회 8강전에 진출했다. 8강에서 물금고등학교를 상대로 6회까지 7-1로 지고 있었지만, 7회말에 대거 8득점 하면서 7-9로 이기고 4강에 진출하였다. 배재고가 메이저 전국대회[6] 4강에 진출한 것은 1997년 이후로 23년 만이다.그러나 아쉽게도 4강전에서 세광고한테 3:8로 패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2. 야구대제전


  • 역대전적 : 1승 3패
  • 최고기록 : 16강(제1회 야구대제전)
제1회 야구대제전에 참가한 26개팀 중하나. 박철순, 이광은, 하기룡 등을 앞세워 동산고등학교를 꺾고 16강에 진출했지만 이길환, 김우열, 이해창을 앞세운 선린상업고등학교에 11:0, 7회 콜드게임을 당하며 16강 탈락을 기록했다.
제2회 야구대제전에 참가했을 당시의 전력은 박철순이 빠지긴 했지만 이광은, 하기룡이 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별예선에서 만난 중앙고등학교와의 맞대결에서 중앙고 윤몽룡이 쓰리런 두방을 몰아치며 10:1로 콜드게임패를 당하며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다.
이후 제3회 야구대제전과 2013 야구대제전에서는 불참했고 2014 야구대제전에 참가를 했지만 휘문고등학교에게 패배하며 조별예선에서 탈락했다.

3. 출신 선수[7]


'''이름'''
'''포지션'''
'''프로입단'''
'''경력'''
'''이영민'''
투수,외야수
-
연희전문대-식산은행
'''이광은'''
외야수
1982년 원년멤버
연세대-포항제철-성무-MBC/LG(1982~1991)
신언호
외야수[8]
1982년 원년멤버
연세대-MBC/LG(1982~1990)
하기룡
투수
1982년 원년멤버
상업은행-MBC(1982~1989)
'''김태원'''
투수
1986년 1차 2순위
성균관대-MBC/LG(1986~1998)
'''노찬엽'''
외야수
1987년 1차지명
고려대-농협-MBC/LG(1989~1997)
곽현희
투수
1996년 2차 4라운드
영남대-상무-해태/KIA(1998~2004)
이정길
투수
1996년 1차지명
연세대-LG(1996~2000)
안재만
내야수
1997년 2차 3순위
건국대-LG(1997~2000)-SK(2001~2004)-LG(2005~2007)-KIA(2008)
최승환
포수
1996년 고졸우선지명
연세대-LG(2000~2008)-두산(2008~2011)-한화(2012~2013)
최길성
내야수
1996년 2차 7순위
연세대-해태(2000)-LG(2001~2007)-롯데(2007~2008)-SK(2009)
이인구
외야수
2003년 2차 8라운드
동아대-롯데(2003~2013)
박기남
내야수
2004년 2차 1라운드
단국대-LG(2004~2009)-KIA(2009~2015)
박정현
내야수
2002년 2차 10라운드
단국대-삼성(2006)
김종호
외야수
2007년 2차 4라운드
건국대-삼성(2007~2012)-NC(2013~2017)
강동호
투수
2017년 2차 3라운드
원광대-롯데(2017~)
이병규
내야수
2017년 2차 7라운드
송원대-넥센/키움(2017~)
장운호
외야수
2013년 6라운드
한화(2013~)
김민혁
외야수
2014년 2차 6라운드
kt(2014~)
이재용
포수
2017년 2차 5라운드
NC(2017~)
문장은
내야수
2018년 2차 8라운드
KIA(2018~2019)
안창호
외야수
2021년 육성선수 입단
세계사이버대-강릉영동대-한화(2021~)
김한별
내야수
2020년 2차 7라운드
NC(2020~)


[1] 배재고등학교 시절 투수와 유격수를 겸했으며 연세대학교 야구부(체육교육과 1989학번)에서는 포수까지 맡아 199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빙그레 이글스에 2라운드 4순위로 지명됐다. 연세대 후배인 임선동과는 대학 시절 룸메이트였다.[2] 4대 메이저 + 협회장기[3] 나무위키 등록 선수만. 졸업 연도 순.[4] 최우수선수로 선정된 투수 박재형, 박재형과 배터리를 짠 포수 최승환, 내야수 최길성이 활약했다. 이 셋은 모두 연세대 - LG 트윈스코스를 거쳐 은퇴했다.[5] 2020년 기준 등록 선수 수가 28명으로 서울에서 이보다 선수 수가 적은 팀은 대안학교인 성지고, 창단한지 얼마 안 된 세현고, 서울컨벤션고 뿐이다.[6] 메이저 전국대회라고 하면 대통령배, 청룡기, 황금사자기, 봉황대기 이렇게 4개를 일컫었으나 최근에는 협회장기도 포함시키는 추세다.[7] 나무위키 등록 선수만. 졸업 연도 순.[8] 고교 시절에는 포수였으나 프로에 입단하면서 외야수로 전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