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모 카츠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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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세계적인 만화가, 애니메이션 감독.
2. 생애
이하 내용은 국내 정발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작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일본 위키피디아를 바탕으로 했다. 아키라는 2013년 소장본으로 정발되었고 동몽은 해적판으로나마 나왔다.
한국에선 작품 정식 발매가 늦어져 잘 알려지지 못한데다 애니메이션 쪽은 스토리보단 영상미 중심인 작품이 많아 스토리 좋은 작품을 선호하는 한국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많이 외면을 받은 편이었다.[3] 그래서 대부분 '이게 누구야?'라고 할 사람이지만 서양쪽으로 나가면 미야자키 하야오 급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인물이다. 오히려 일본보다 서양에서 더 쳐줄 정도다. 만화, 애니메이션 최고의 영예라 뽑히는 아이스너상 명예의 전당에 미야자키 하야오보다 먼저 올라갔을 정도이다.
2.1. 만화가
미야기현 토메군(현 토메시) 하사마쵸 출신[4] 으로 현립 사누마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973년 후타바샤의 <주간 만화액션>에서 데뷔했다.
만화가로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인물로 오토모는 치바 테츠야를 거론했다. 오토모는 치바 테츠야가 데즈카 오사무나 이시노모리 쇼타로보다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도뮤를 그릴 때 즈음, 저는 만화의 '문법'을 알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라고 오토모는 말했다. "어느 날 키치조지의 한 소바 가게에서 빅 코믹 잡지를 뒤적거리다가 치바 테츠야의 난봉꾼 마츠타로를 접했어요. 그리고 나는 '이거다!'라고 생각했어요. 그 페이스가 내가 추구하는 스타일과 꼭 같은 느낌이 들었죠. 감탄하여 그의 작품을 꽤 많이 공부했어요. 무엇보다도 치바의 만화는 구성이 뛰어납니다. 배경과 등장인물 모두 근거가 있다고 느낍니다. 그들을 그리는 방식에서 그런 근거를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요즘 만화를 보면 등장인물들이 무엇을 하는지, 어디서 하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림이 멋있을수도 있겠지만, 독자들이 캐릭터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에 대한 생각은 없습니다. 치바 씨는 독자들의 이해를 이끌어냅니다."#
만화를 처음 그리게 된 계기는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만화가 입문〉이라는 책을 읽고나서다. 중학생 시절까지 만화 습작을 그렸지만, 고등학생이 되면서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이지 라이더》, 《내일을 향해 쏴라》 등을 보고 충격을 받고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가 바뀌었다고 한다. 이후 실사영화에 심취해서 만화를 그리는 것은 그만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일러스트를 그려서 대충 먹고 살고 싶었지만, 어쩌다보니 만화를 그리는 만화가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만화가 생활 초반에는 아무 생각없이 그리고 싶은 거 그려서 잡지에 단편 투고하는 식이었는데,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만화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어릴 적 읽고 좋아하던 만화에 대해 다시 읽어보고 이런 만화를 내 방식과 내 스타일대로 그려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좋아하고 존경하는 만화가의 작품을 오마주한 초능력을 소재로 한 SF만화 3부작을 그렸는데, 〈Fire-ball〉(데즈카 오사무)(1979, 50페이지, 후타바샤), 〈동몽〉(이시노모리 쇼타로)(1980, 134+100페이지. 후타바샤), 〈AKIRA〉(요코야마 미츠테루)(1982-1990, 2천페이지 이상. 코단샤)였다. 파이어볼의 경우는 50페이지로 스토리라고 할 만한 것은 아직 전개도 못한 채 분위기만 잡고 끝난 불연소한 미완성작이었고, 동몽도 마음에 안 들어서 나중에 단행본으로 낼 때 100페이지를 추가했는데, AKIRA의 경우는 중소출판사 후타바샤가 아닌 대기업 코단샤(강담사)의 청년대상 만화 잡지에서는 가장 판매량이 많은 영 매거진 편집부측에서 먼저 SF 액션 만화를 연재해달라고 의뢰가 왔고 원고 분량도 원하는 만큼 그릴 수 있도록 보장을 한다고해서 처음부터 장기 연재작 장편이 되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진 한 편의 실사영화를 보는듯한 구성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이를 위해 만화 전편의 전개를 구상한 스토리 노트를 만들기도 했다. AKIRA가 만화잡지 연재작에서 흔히 발생하는 인기가 있으면 언제 끝날지도 모르게 질질 늘어지지도 않고, 그 때 그 때 클리프행어식으로 어떤 사건의 에피소드의 나열이 아닌 이유는 이 때문이다.
오토모 카츠히로의 초중반기(1973년에서 1979년까지) 만화는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의 영향을 받은, 비주류 변두리 소외층의 청년들의 삶의 애환을 다루거나, 다소 황당무계하면서 진지한 사회현실의 부조리를 그린 지극히 마이너 감성의 청년 대상의 극화스러운 내용이었다.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은 컬트처럼 숭배하며 찾아보며 좋아했지만, 일반적인 대중 만화의 주소비층인 소년 소녀들의 취향과는 억만 광년 동떨어진 그림체와 스토리라서 아는 사람만 알고 즐기는 비주류 비인기 작가였다.(그리고 2020년까지도 애니메이션 연출과 감독을 한 작품이 대중적으로 흥행에서 히트를 한 적은 거의 없고, 여전히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을 보면 오토모 카츠히로의 작가적 반골정신은 여전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림체에서도 기존의 주류였던 데즈카 오사무의 동글동글 만화체가 데포르메화를 거친 전형적인 만화식 작화였다면 오토모는 미야야 카즈히코(宮谷一彦)의 영향을 받아 만화적 과장을 배제하고 가급적이면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것에 주력하였다. 사실 이러한 방법론은 극화파가 더 먼저지만 극화파도 어디까지나 데즈카식보다 더 세밀하게 그리는 것이었지 오토모처럼 철저하게 묘사하지는 않았다.[5] 여기에 더불어 오토모는 프랑스 만화가 필명 뫼비우스(본명 장 앙리 가스통 지로)의 영향을 받아서 복잡한 화면 구성과 세밀한 배경묘사, 팬터치에 의지하지 않고 균일한 선을 치밀하게 그려넣는 독특한 화풍을 선보였다.
오토모 본인 말로는, 자신이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데즈카나 이시노모리의 동글동글 만화체 시대는 끝났고, 극화 전성기였는데 출판사에서도 극화체를 주문하고 그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연히 프랑스-벨기에 만화 방드 데시네(Bande dessinée)를 접하고는 "눈에서 비늘이 떨어져나가는(目から鱗が落ちる)" 컬쳐쇼크를 받았다고 한다.
오토모의 이러한 작화는 80년대 초반 타카노 후미코(高野文子)[6] 와 함께 '뉴웨이브 망가'의 기수로 불리우며 이후의 만화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일본만화계는 데즈카 전과 데즈카 후, 그리고 오토모 후로 크게 3가지 시기로 나뉜다고 일컬어지기도 할 정도다. 실제로 데즈카도 오토모의 작화를 보고 많은 충격을 받은 것 같다. 데즈카 오사무가 "나는 뎃상이 서툴다.", "자신의 만화는 기호다.[7] " 등의 자조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오토모가 등장하고 부터다. 이는 애초에 데즈카가 만화가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림을 통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사람이라고 보았던 것과도 관련된 문제이다. 그런데 질투가 심한 데즈카 오사무가 오토모 카츠히로와 만난 자리에서 "나도 자네 그림체로 똑같이 그릴 수 있다"고 허세를 떨었다는 에피소드는 일본 만화계에서는 유명한 일화다.
작화 스타일의 모방자/폴로워는 바나나피쉬를 그린 요시다 아키미와 훗날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유명한 콘 사토시가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콘 사토시는 대학생 시절 오토모의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어시스턴트를 한 적도 있다. 그리고 시로 마사무네도 본인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림체 스타일이 닮았다는 말을 듣는다.
오토모의 방식은 손이 많이 가고 상당한 작화 실력과 작업량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의 화풍이 만화계에서 주류로 정착하지는 않았다. 연재를 시작할 때부터 상당한 인기를 얻어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자마자 많이 팔릴 것이라는 보장이 없으면, AKIRA처럼 그 고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어시스턴트를 여러 명이나 고용하면서 연재를 할 수 없다. 그래서 이제 막 잡지 연재를 시작해서 어시스턴트가 1명이나 2명인 신인급 만화가한테는 벅찬 옵션이고, 기존 인기 만화가는 본인 스타일로 그리면 됐으니까 굳이 오토모를 따라 할 이유는 없었다. 혼자서 배경도 인물도 전부 그리는 그림에 자신이 있는 예술성 지향/작가성이 강한 수 많은 만화가 지망생에게는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핑퐁의 마츠모토 타이요나 해수의 아이의 이가라시 다이스케라든가)
만화 출판사의 편집부가 요즘엔 이런 그림체와 이런 내용이 유행하니까 잘 팔릴려면 이런 그림체 이런 내용으로 그리라고 권하는 것은 무시하고, 만화가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 스타일로, 그리고 싶은 내용을 그리는 작가주의 정신으로 그렸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모델 케이스가 오토모 카츠히로였다.
이렇게 일본 만화사에 있어 획기적인 발전과 변화를 이끈 인물로 만화가로서는 데즈카 오사무에 비견될 만큼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만화가는 1996년에 은퇴했다. 본인이 영상에 대한 욕심이 더 많기 때문에 만화가로서 활동하는 것에 큰 관심을 잃었다. 이후로는 장편은 없고 드문드문 단편을 내놓는 정도인데, 2019년엔 '기분은 이미 전쟁' 3편을 내놓기도 했다.
2.2. 애니메이션 감독
환마대전에서 디자인 스태프로 참여하였으며 이때 알게 된 린 타로 감독의 권유로 1984년 미궁 이야기를 만들어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런데 처음인데도[8] 자신이 원하는 영상이 나와서 자신감을 가지고 이후로는 만화가보다는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활동하게 된다. 오토모는 예전부터 독립 영화를 찍으며 영상을 만들려고 하는 욕구가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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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연출을 할 때 그리는 콘티는 그냥 만화책 그대로다.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그릴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인데 그래도 이렇게까지 하기 때문에 그의 애니메이션은 스토리는 몰라도 작화나 연출에서 좋은 평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장면만 이렇게 꼼꼼하게 세밀하게 묘사했고, 나머지 별로 안 중요한 대목은 선화 몇 개로 대충 설렁설렁 그렸으나 그런 장면도 대부분 지시가 정확하다. 애니메이션 AKIRA의 그림콘티는 700페이지가 넘는데, 오토모 카츠히로는 혼자서 다 그려냈다.
완벽주의라 작화감독이 수정을 해도 그걸 또 자신이 직접 수정한다. 이런 점에선 애니메이터에도 재능이 있는 작가이다. AKIRA에 참여했던 이노우에 토시유키는 완성된 영상을 보고 "이게 내가 그린 거라고?" 하고 놀랐다고 한다.
명성이 높아 애니메이터도 잘 따른다. 히구치 신지 말로는 일본에 그림을 제대로 그리는 애니메이터가 50명이 있는데 미야자키 하야오, 오시이 마모루, 호소다 마모루, 오토모 카츠히로가 다 데려가서 쓸 사람이 없다고 하기도 했다.# 같이 활동하는 애니메이터로는 나카무라 타카시, 모리모토 코지, 키타쿠보 히로유키, 아라이 코이치, 나카자와 카즈토, 오키우라 히로유키, 스도 마사토모, 타나카 타츠유키, 카와사키 히로츠구, 나카 모리후미, 오하라 히데이치가 있다.
이렇게 뛰어난 연출력이 있고 따르는 애니메이터가 많아 그의 작품은 작화와 영상미는 거의 최고 수준을 찍는다. 서양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보다 영상 면에서는 더 뛰어나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반면 스토리에 있어서는 만화만큼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다. 서사가 거의 없고 현학적인 영상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아방가르드 형식의 단편 작품이 많다. 명확한 결말이 있는 것이 싫다는 인터뷰도 있다. 그래서 스토리를 중시하고 모든 떡밥이 다 풀리는 딱 떨어지는 작품을 원하는 한국에서는 2010년대까지 마이너 감독을 면치 못했다. 과거의 리뷰를 찾아보면 그의 작품을 두고 망작이라고 욕을 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한국의 애니메이션 소비자층이 얕고 편중되어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도 2020년에 도쿄 올림픽 예언이 한국 뉴스에도 나올 정도로 화제가 되자 한 번 살펴본 사람들이 그 실력에 감탄해 인지도가 늘어나고 있다.
2.3. 영화 감독
예전부터 실사 영화에도 욕심이 있어 영화 감독을 도전하기도 했으나 이쪽에선 영 평가가 좋지 않다. 이쪽도 콘티는 애니메이션과 마찬가지로 대단히 세세하게 작성했으나 애니메이션과 다르게 배우의 연기와 촬영이라는 변수가 많아 그게 자신의 의도대로 표현되지 못한 탓이다. 영화는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영상을 집어내는 임기응변 능력이 중요한데 이 능력이 부족했다.
실사 영화 데뷔작이었던 월드 아파트먼트 호러에서 주연을 맡았던 SABU와 친한 사이인지, SABU가 감독을 맡은 하늘의 차스케에 참여하기도 했다. 연이은 혹평 때문에 현재는 실사 영화에는 거의 흥미를 잃은 상태이다.
3. 작품 목록
3.1. 만화
보다 자세한 자료는 일본어 위키피디아의 오토모 카츠히로의 만화작품일람(大友克洋の漫画作品一覧) 항목을 참고할 것.
3.1.1. 사요나라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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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나라 닛뽄(さよならニッポン). 1981년 출판된 단편 만화 모음집.
■ 수록작
- East of The Sun, West of The Moon(1979年)
- さよならにっぽんⅠ(1977年)- 미국 뉴욕에서 가라테와 유도 도장을 차린 일본인이 주변 인물들과 얽히는 일상 이야기
- さよならにっぽんⅡ(1977年)
- さよならにっぽんⅢ(1977年)
- さよならにっぽんⅣ(1978年)
- さよならにっぽんⅤ(1979年)
- 聖者が街にやってくる(성자가 거리에 온다)(1980年)
- A荘殺人事件(A장 살인사건)
3.1.2. 동몽(童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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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1981년에 후타바샤의 [액션 디럭스]에 4회(136 페이지)에 걸쳐 연재한 초능력 배틀 미스터리물. 1983년 8월에 100페이지 정도를 대폭 추가해서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일본만화가협회상 우수상. 성운상 코믹부문 수상, 제4회 '일본 SF 대상' 수상작으로 소설 이외의 작품으로는 최초 수상이었다.
어느 날, 대규모 아파트 주택단지에서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에도 불구하고 범인에 대한 조그마한 단서 하나도 잡히지 않고 오히려 형사 반장까지 범인에게 살해당한다. 사건이 점점 미궁속으로 빠지고 있을 무렵, 주택 단지로 이사온 초능력을 지닌 소녀 에츠코(悦子, 애칭 엣짱)[9] 는 단지내에 거주하고 있는 치매에 걸린 노인 우치다 쵸우지로(内田 長二郎, 통칭 '쵸우'상)가 초능력을 이용해 살인을 하는 것을 알게 되고, 그와 맞서게 된다.
사건을 추적하는 두 주인공은 단편 "내일의 약속"에도 등장한다. 초능력 살인의 진범인 노인이 쓰고있는 모자는, 닥터 슬럼프에서 아라레가 쓰고있는 모자로 오마쥬되었다.[10]
만화의 표현 방법에서 초능력(염동력)을 원형(球體)의 형태로 그려낸 아마도 최초의 작품이라고 한다.(BS NHK 망가 야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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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모 가츠히로의 초능력 묘사의 특징은 오라나 빔 같은 눈에 보이는 뭔가가 없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데 갑자기 주변의 사물이 깨지고, 일그러지면서 이 공간엔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이런 연출은 초능력을 오라와 광선의 형태로 표현한 린 타로 방식과 함께 초능력 묘사의 양대 축을 담당하고 있다.[11]
한 작품 내에서 캐릭터의 얼굴 묘사가 바뀐다. 이는 초능력 배틀물이라는 장르에서 아무래도 소년만화적인 얼굴이 읽는 이들이 감정이입하기 쉽다는 것을 알게 된 오토모의 의도적인 변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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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온 날 쵸우 상이 어린 아기를 아파트 고층에서 떨어뜨리는 것을 초능력으로 막아낸 에츠코(44p)와 본격적으로 초능력 배틀이 펼쳐지기 전(105p)
이전에는 일부 매니아와 평론가 사이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얻던 오토모가 본격적으로 일반 독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된 작품으로, 절정에 다다른 치밀하고 뛰어난 그림 실력과 화면 구성에 대중이 좋아할 만한 스토리 전개와 연출을 선보이며, 일본 만화계에 충격을 주었다. 어떤 평론가는 대표작인 아키라 보다 이 작품이야 말로 오토모의 최고 걸작이라고 손꼽기도 했다.
그의 만화를 좋아한다는 길예르모 델 토로가 영화화한다고 씨네21에서 보도(여기에선 제목을 일어발음인 도무로 나왔다.)한 적도 있지만 원작자인 오토모 카츠히로가 자신의 작품에 대한 해외판권을 모조리 회수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오토모는 훗날 원화 원본 사이즈 크기의 단행본을 발간하기도 했다. 일반적인 만화책 사이즈로는 이 만화의 스케일감을 제대로 즐길 수 없기 때문에 원화 크기로 읽어달라는 의도로 한 페이지가 스케치북 도화지 한 장(8절지) 크기다. 스토리의 결말부분에 여주인공 소녀 에츠코와 대결하던 쵸우상이 본인보다 초능력이 훨씬 센 상대인 에츠코한테 초능력 싸움에서 질 것을 예상하고 본인이 죽을 거라는 공포를 느끼고 절망하는 2페이지를 사용한 얼굴 클로즈업은 원화 원본크기로 보면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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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 기분은 벌써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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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후타바샤에서 단행본으로 발매되었다.
198X년 중국과 소련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는 가상 설정의 전쟁이야기. 전쟁하는데 일본도를 들고 나오는 주인공 같은 비현실적인 소재와 밀리터리 지식을 바탕으로한 현실적인 군사고증이 융합된 작품이다. 1979년에 발생하는 가상의 박정희 암살사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작중에 나오는 한글이 좀 당황스럽다. 군사고증 하나는 세밀하다.
2019년 3편이 공개되었다.
3.1.4. AKIRA
그의 대표작이다. 항목 참고.
3.2. 애니메이션, 영화
3.2.1. 환마대전
카도카와 쇼텐이 한창 물량공세로 영화를 제작할 때인 1983년에 나온 애니메이션이다. 원작은 히라이 카즈마사와 이시노모리 쇼타로. 오토모도 예전부터 좋아하던 작품이었다.
오토모 카츠히로는 린 타로감독이 꼬셔서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했다. 덕분에 당시 연재중이던 AKIRA는 장기간 연재를 중단했다. 오토모는 환마대전 제작에 참여하면서 애니메이션에 매력을 느꼈고, 그 결과 애니메이션 제작에 매달리게 된다. 만화와는 달리 집단작업으로 그림을 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즐거웠다고 한다.
데이터 이스트에서 영화가 개봉한 동년에 LD 아케이드 게임이 발매되었다.
3.2.2. 로봇 카니발
프로젝트 A코의 제작사 A.P.P.P의 세번째 작품이자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작가주의 OVA. 1987년 7월 21일에 발매되었다.
이 작품에서 오토모는 오프닝/엔딩 애니메이션을 담당했는데[12] 감독, 각본, 콘티를 모조리 혼자 해치우는 기염을 토했다. 캐릭터 디자인과 원화는 후쿠시마 아츠코(福島敦子)[13] , 미술은 야마모토 니조(山本二三)가 맡았다.
3.2.3. 미궁 이야기
1987년에 이벤트 상영후 OVA로 발매. 1989년에는 극장 개봉도 했다.
린타로의 <라비린스 * 라비린토스(ラビリンス*ラビリントス>, 카와지리 요시아키의 <달리는 사내(走る男)>, 오토모 카츠히로의 <공사 중지 명령(工事中止命令)>의 3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애니메이션.
3.2.4. AKIRA(1988)
1988년 개봉한 AKIRA의 애니메이션 판. 직접 감독했다.
3.2.5. 노인 Z
1991년에 극장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오토모 카츠히로가 원안을 제시하고 각본과 메카닉 디자인을 담당하였다.
3.2.6. 메모리즈
1995년에 개봉한 세 편의 단편이 모인 옴니버스 애니메이션. 오토모 카츠히로는 제작자이자 세번째 단편인 '대포의 거리'의 감독을 맡기도 했다. 항목 참고.
3.2.7. 스프리건
AKIRA를 같이 작업했던 카와사키 히로츠구 감독을 돕기 위해 총감수로 참여.
3.2.8. 메트로폴리스
린 타로 감독 작품. 각본으로 참여.
3.2.9. 스팀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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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개봉한 스팀펑크 애니메이션. 하지만 날카롭고 파괴적인 시기를 지나서 만들어서 그런지 의외로 부드럽다.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의 특성상 80년대 후반에 나왔다면 애니업계에 피폭풍을 몰고 올 수 있었으나, 이미 아키라 개봉 이후 일본 애니업계와 만화업계는 전부 오토모 카츠히로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막상 개봉후엔 그냥 흔한 작품취급 받고 총제작비 약24억엔에 흥행수익 11.6억엔으로 대차게 말아먹었다.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산업혁명 시기 런던을 무대로 펼쳐지는 후반부 액션씬 의 스케일은 역대급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3.2.10. 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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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기리 죠, 아오이 유우 주연의 2006년작 실사 영화. 감독 특유의 재해석이 돋보인다. 개봉전에는 원래 만화가니 만화를 영화화하는데 뛰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높았으나 사람에게는 각자 자신의 영역이 있는 것인지 그다지 좋은 비평은 못 받았고 흥행도 실패했다.
오토모 명성으로 일본 만화 실사 영화판 중에서는 드물게 베니스 영화제 경쟁까지 갔으나 평은 그냥 그랬다. 한국에서는 무시시로 개봉했으나 별 반향없이 묻혔다.
3.2.11. FREEDOM-PROJECT (프리덤 프로젝트)
공식 사이트(어도비 플래시 지원.)
원래는 닛신식품의 컵누들의 광고를 위해 선라이즈에서 제작한 10편짜리의 짤막한 TV광고 애니메이션으로 오모토는 기획 단계에서 캐릭터와 메카닉 디자인, 그리고 세계관 설정을 맡았다.
이후 이 광고 애니메이션은 2007년에 장편 OVA화 되었고, 주제가는 우타다 히카루가 맡았다. 내용은 23세기에 달에 이주한 인류가 세운 공화국 '''에덴'''에서 자유를 찾는 소년 '타케루'가 지구로 탈주하는 이야기로 SF 분위기나 오토바이 레이싱이 등장하는게 AKIRA를 연상시킨다.
3.2.12. 쇼트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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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작. 4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애니메이션 영화.
<무기여 잘 있어라(武器よさらば)>는 그의 만화가 원작이고 오토모 카츠히로는 <火要鎮>의 원작과 각본, 감독을 맡았다.
이 가운데 <쯔쿠모(九十九>)는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상에도 노미네이트 되는 등, 4편 다 대단히 잘 만들어진 수작이다.
森田修平監督「九十九」
大友克洋監督「火要鎮」
安藤裕章監督「GAMBO」
カトキハジメ監督「武器よさらば」
大友克洋監督「火要鎮」
安藤裕章監督「GAMBO」
カトキハジメ監督「武器よさらば」
3.2.13. 오비탈 에라 ORBITAL ERA
2019년 제작 중이라고 밝혔다. 제작사는 선라이즈로 스팀보이 이후 16년만의 장편 극장판 애니메이션.
4. 기타
- 2005년, 2014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화훈장을 받았다.
- 아들인 오토모 쇼헤이(大友昇平)도 일러스트레이터이다. 대부분의 일러스트들은 볼펜 한개로 그렸다.
- 뱀발로 안수길 화백이 그린 왕중왕이란 만화에서 식인 범을 잡으려다가 되려 역습을 당해 도륙당하는 일본군 병사 이름이 오토모 카츠히로...
- AKIRA를 통해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의 붕괴, 2020 도쿄 올림픽 폭망을 예언했고[14] 노인 Z로 미래 사회의 고령화 문제를 예견한 것 때문에 SNS에서 예언가로 불리기도 한다. 그만큼 시대를 바라보는 통찰력이 뛰어난 작가이다.
- 만화가 에구치 히사시와 집이 같은 동네라서 술 친구라고 한다. 에구치 히사시는 오토모의 그림을 보며 공부하기도 했다고 한다.
[1] 2등급에 해당. 2005년에는 3등급 슈발리에 수훈.[2] 테츠오 밑에 있는것이 서명.[3] 만화책으로 보면 스토리를 못 짜는 사람은 절대 아니다. 애니메이션 쪽에선 영상 연출에 치중해서 설명을 안 하거나, 분량 조절을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서 문제다. 연출은 잘하지만 구성을 못한다고 보면 된다.[4] 사이보그 009, 가면라이더로 유명한 이시노모리 쇼타로는 같은 고등학교의 선후배 사이고, 죠죠의 기묘한 모험의 아라키 히로히코도 미야기현 출신이다.[5] 오토모는 ‘실제 일본인은 일본 만화에 그려지는 것처럼 눈이 크고 다리가 길고 몸매가 좋은 것이 아니잖아?’라는 식으로 리얼리즘에 입각하여 기존의 일본 만화 스타일에 대한 비판을 제기했다. 그래서 AKIRA 이전의 마이너리그 시절 작품에서 오토모는 작은 눈에 평평한 얼굴, 다리가 짧은 하반신의 일본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렸다. 만화의 주인공이라면 서양인의 얼굴을 하는 것이 당연시 되던, 그리고 지금도 그런 얼굴이 인기가 있는 것에 대한 철저한 안티테제를 제시했다.[6] 1979년 단편 절대안전 면도칼로 데뷔한 여성 만화가. 오토모와 반대로 간단하지만 미려하게 그려낸 그림체와 서정적이면서도 독창적인 내용과 연출로 인기를 끌었다. 마스다 미리, 나나난 키리코 같은 일본 여성 만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애니메이터 안도 마사시가 열렬한 팬으로 유명하다.[7] 데즈카 오사무를 비롯한 기존 만화가들은 얼굴 표정이라든가 감정 표현이 마치 미리 정해져 있는 여러 스탬프 도장에서 골라서 눌러 찍듯이 이모티콘같은 그림으로 진행한다는 비판을 들었다.[8] 미궁 이야기는 아키라보다 나중에 개봉되었으나 제작은 아키라보다 먼저 완성되어 있었으므로 오토모의 첫 제작 애니메이션은 미궁 이야기이다.[9] 존경하는 만화가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초능력 마법소녀물 만화 〈사루토비 엣짱 (さるとびエッちゃん)〉에서 따온 이름이다.[10] 토리야마 아키라는 오토모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11] 환마대전의 경우 오토모와 린 타로 둘이 동시에 참여해서 이런 연출이 공존한다.[12] 에피소드가 여러 개가 있으며 에피소드마다 감독이 다르다. 오토모 카츠히로는 오프닝/엔딩만 담당한 것.[13] 첫번째 에피소드인 프랑켄의 톱니바퀴의 감독 모리모토 코지의 부인이다.[14] 다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자료는 왜곡 및 과장되어서 곧이 믿을 것이 못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