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1981)/솔로 활동
1. 개요
2. 가수
3. 드라마
3.1. SBS 《오픈드라마 남과 여》
3.3. SBS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3.5. MBC 《진짜 진짜 좋아해》
3.6. KBS2 《아빠 셋 엄마 하나》
3.10. JTBC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
4. 영화
5. 여담
1. 개요
유진의 솔로 활동을 정리한 문서이다.
2. 가수
2.1. 1집 《My True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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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 김조한 작사, 작곡의 발라드곡 《THE BEST》로 솔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원래는 《차차》를 타이틀곡으로 하려고 했으나 모 배우와의 스캔들[2] 여파 때문에 이 곡을 타이틀곡으로 하게 됐다. 계절적으로도 그렇고 곡 자체도 밋밋한 편이라 아무리 봐도 타이틀곡 감은 아니지 않았나 싶다.
유진이 특별하게 가창력을 뽐내는 가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창력이 아쉬운 가수는 아니었는데 라이브 실력에 대해서는 팬들 사이에서도 미묘한 반응이었다.(...) 당시 유진은 라디오 방송에서 1집 녹음할 때 까다로웠던 곡으로 《THE BEST》를 꼽기도 했다. 가수마다 각자 쉽게 부를 수 있는 종류의 곡이 있는데 《THE BEST》는 자기한테 좀 어려운 곡이었다면서, 김조한 곡이 들을 때는 편한데 막상 부르려면 호흡도 그렇고 생각보다 부르기 수월치 않다고.[3]
한창 쪄죽을 것같은 7월 말까지 《THE BEST》로 활동하고 여름 다 끝나가는 8월 초에 댄스곡 《차차》로 후속곡 활동을 시작한다. 일찌감치 후속곡으로 내정되어 있던 곡이라 후속곡 결정에는 이견이 없었으나 의상이나 컨셉 면에서 여러모로 아쉽다는 의견이 다수. 게다가 후속곡 활동을 시작한 지 3주 만에 돌연 활동을 중단하면서 1집 활동이 흐지부지 끝나버리고 만다. 한창 후속곡 반응이 오려던 시점에 사전예고도 없이 MC 멘트로 막방 공지를 듣게 되는 바람에 팬들은 패닉 상태(...) 1집 반응이 생각보다 저조했던 데다 기획사 여건도 좋은 편이 아니었던지라 후딱 활동을 접은 것 같다. 결국 1집 활동을 접고 2주 뒤에 10위권에 진입하는 저력을 발휘한다.
활동 막바지에는 콜라 테러를 당하는 대참사가 있기도 했다. 무대가 끝나고 밴으로 가던 도중 어떤 여학생이 뿌린 콜라에 유진이 맞는 바람에 팬들 사이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기사 상으로는 유진이 콜라를 옴팡 뒤집어쓴 것처럼 나왔지만 실제로는 매니저가 거의 다 맞았다고. 당시 모 그룹 팬이 뿌린 거다 뭐다 해서 말이 많았지만 결국 제대로 밝혀진 건 없었다. 그나마 뺨을 두 대나 후드려 맞고 도망갔다고 하니 그걸로 위안을.
유진의 솔로 실패는 음악적인 부분보다는 그녀 스스로 이미지 관리에 실패한 것이 더 큰 원인이었다. 《THE BEST》는 물론이고 유로 댄스의 뻔한 프로세스를 새롭게 인코딩 해놓은《차차》마저도 시원찮았는데 앨범 수록곡이었던 《Lovely Day》가 알려질 리는 없겠지만 이 노래는 유진이 들려줄 수 있었던 가장 최적의 음악이었다. 만발한 리듬 사이로 발랄한 발걸음을 옮기며 사랑스러운 목소리를 들려주는 유진의 기분 좋은 하루는 이 곡을 듣는 남자 팬들 역시 한 번쯤 꿈꿔볼만한 하루였을 것 같다. 흔히 그룹에서 솔로로 독립할 때에는 변신을 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들기 마련이지만 유진 같은 경우는 마치 박찬호가 좋았던 시절의 투구폼을 되찾듯 본인의 좋았던 때의 이미지를 다시 되살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Lovely Day》는 그런 유진의 화사한 이미지를 다시 환하게 꺼내놓기에 적당한 곡이었다. Lovely Day
- 2003년 8월 한국 MTV의 '이달의 인기 가수(=Artist of the Month)'에 선정됐다.
- 1집 수록곡 Lovely Day가 문화 평론가 정병기가 선정한 2003 트리플 크라운 올해의 싱글로 선정됐다.
2.2. 2집 《810303》[4]
본인은 대변신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S.E.S. 팬들의 대부분은 섹시 컨셉으로 컴백한 유진이 그리 놀랍지 않았을 것이다. 1집 때부터 조금씩 보였던 조짐들이 현실화됐을 뿐이니. 유진 본인도 좀더 임팩트가 강한 곡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했고, 1집 때도 S.E.S.의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했던 타이틀곡 《THE BEST》보다는 후속곡인 《차차》에 더 애착을 보이고 자신있어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스캔들로 입은 타격이 엄청난 데다 이효리, 바다 등 그룹시절의 동료들도 섹시컨셉으로 등장했었으니 유진에겐 자의, 타의가 겹쳐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예측가능한 변화이고 받아들여야 할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역시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던 건 어쩔 수 없는 듯.
데뷔 앨범에서 보여주었던 유진의 솔로 출발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야말로 스타일리쉬한 여가수의 탄생이었다. 상업적인 성과와는 별개로, 의외로 내실있는 음악을 선보이면서 여타의 여성그룹 출신의 솔로 가수들과는 차별화된 음악성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경쟁자가 있다면 같은 S.E.S. 출신의 바다 정도가 유일했다. 확실히 일본에서 활동해서 그런지 바다나 유진은 새로운 사운드에 대한 귀가 트여있다. 자신이 직접 만들 수는 없어도 무엇이 괜찮은 사운드인지 구별해낼 수 있는 귀는 가지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덕분에 우리나라 실정, 특히 차트 취향과는 동떨어져 조금 어렵게 들리는, 혹은 익숙하지 않은 스타일의 노래들이 많이 수록된 면이 없지 않지만 음악적 완성도를 생각하면 오히려 바람직한 일일 수도 있다.
아쉬운 것은 데뷔 앨범에 비해서 확실한 발전이나 우위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 같은 별 매력없는 발라드 트랙들이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개별적인 곡의 편곡과 구성도 좀 더 치밀하게 다듬어졌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특히 타이틀 곡 《Windy》의 후렴구 멜로디는 좀 더 달랐더라면 훨씬 세련된 노래가 되었을텐데 아쉽다.
2집 앨범 마지막 트랙에 《To Be Continued》라는 의미심장한 트랙이 실려있었을 뿐 아니라, 2005년 초에 3집 앨범을 준비중이라는 기사가 나기도 했었으나 현재까지 소식이 없는 상태(...) 결국 다음 앨범은 13년 후인 [S.E.S.] 20주년 기념 앨범이 됐다.
- 2004년 09월 한국 MTV의 '이달의 인기 가수(=Artist of the Month)'에 선정됐다.
- Windy로 솔로 앨범 활동 이후 최초로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 1위 후보에 올랐다. [5]
3. 드라마
KBS2 《러빙유》를 시작으로 주로 밝고 씩씩한 여주인공 역을 맡으며 연기 활동에 주력해왔다.
3.1. SBS 《오픈드라마 남과 여》
2002년, 2부작으로 방송된 해피버스데이 편. 단막극이긴 해도 첫 정극이라는 점에서 데뷔작이나 다름없는 작품인데, 의외로 팬들도 잘 기억 못 하는 모양인지 언급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당시 유진은 SBS 《토요일이 온다》의 '리얼 스쿨'이란 코너에서 매주 단막극 형식의 시트콤을 찍고 있었는데, 비교적 진입 장벽이 낮은 시트콤에 출연하면서 연기자로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었다. 단막극을 통해 본격적인 정극 도전에 나섰지만 연기 경력이라고 할만한게 전무했던 관계로 뮤직비디오에서나 볼 법한 수준의 연기를 보여줬다. 그나마 드라마 자체가 아이돌들을 데려다가 만들법한[6] 팬픽 수준의 드라마였던지라 유진 연기력이 흠이 되지 않았던 게 다행이라면 다행. 유진이 맡은 역할은 사채업 사무실의 일수 수금원이라는 설정의 캐릭터였는데, 한마디로 내용은 볼 것도 없으면서 설정만 요란한 드라마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3.2. KBS2 《러빙유》
2002년, 흔히 유진의 데뷔작으로 알려진 작품. 해녀의 딸이자 감귤 농업협동조합 직판장 직원인 다래(유진)와 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 집을 나와 제주 감귤 농장에서 막일꾼으로 살아가는 재벌 2세 혁(박용하)과의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을 다룬 드라마로 이미 설정부터가 제대로 망삘이다. 여자 아이돌을 데려다가 전신 해녀복을 입히질 않나 여러모로 기가 막힌 작품이다.
당시 시청률은 10% 초중반 수준으로 같은 날 첫 방송을 시작한 SBS 《야인시대》에 비해 밀리는 상황이었지만, 방송 후반 들어 시청률이 살짝 반등하면서 그나마 체면치레를 하게 된다. 당시 KBS 월화 드라마가 줄줄이 망해 나가던 걸 생각하면 그래도 이 정도면 상당히 선방한 셈. 높은 시청률은 아니었지만 방영 기간이 여름방학 시즌이라 10대와 20대들에게 화제성이 높았다. 공식 홈페이지 접속자가 많아서 서버가 다운됐을 정도. 종방 이후 드라마 팬미팅도 진행했다. 무릎팍 도사에서 본인이 밝히길, 이때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아이돌 가수가 연기하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에 오히려 안좋은 선입견 없이 배우로 전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원래 이 작품은 '인어공주'라는 제목으로 방송될 예정이었으나, MBC에서 비슷한 제목의 《인어 아가씨》로 선수를 치는 바람에 울며 겨자 먹기로 드라마 제목을 바꾸는 해프닝이 있었다. 당시 MBC에서는 《인어 아가씨》 주인공의 삶이 인어의 비극적인 운명과 비슷해 그 같은 제목을 지었다고 반박했지만, 왠지 억지로 끼워 맞춘듯한 인상이 다분. 《러빙유》 대신 《비바리[7] 와 흑기사》라는 우스꽝스러운 제목도 물망에 올랐다고 한다.
2002년 KBS 연기대상에서 이 드라마로 유진이 인기상을 수상한다.
3.3. SBS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2004년, 2년 만의 드라마 복귀작으로, 기억 상실과 재벌 2세 같은 뻔하디뻔한 소재의 드라마였으나 당시 별다른 경쟁작이 없던 탓에 주간 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 등 나름 인기몰이를 하던 작품이다. S.E.S. 시절부터 워낙 예쁜 이미지로 각인되어있다 보니 S.E.S. 시절부터 드라마와 영화 쪽에서 많은 러브콜을 받았는데 가수 활동에 전념한다는 이유로 한동안 들어오는 시놉시스를 전부 고사하다가 솔로 2집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면서 다시 연기를 시작하게 된다. 연기 제의는 S.E.S. 때부터 계속 들어왔지만 당시만 해도 개인활동 개념이 없었고 혼자 따로 활동하는 게 내키지 않아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특히 S.E.S. 4집 활동 직전 들어왔던 작품 중에는 초대박이 난 한류 드라마도 있었는데 2006년 MBC 《공감토크쇼 놀러와》에 출연해 S.E.S. 활동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사했다고 밝히기도.
원래부터 가수 활동에 애착이 많기도 했지만, 나름 야심차게 준비한 솔로 1집이 부진했던 상황에서 섣불리 연기에 도전하기 보다는 가수로서 어느 정도 본인이 납득할 수 있는 성과를 낸 후에야 연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듯 싶다. 이 시기에 유진이 거절한 시놉시스로 MBC 《옥탑방 고양이》[8] ,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9] , 영화 《늑대의 유혹》[10] 등이 있다는 건 꽤 유명한 사실.
2년 동안 작품 활동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과연 제대로 된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예상 외로 KBS2 《러빙유》 때보다 훨씬 나아진 연기력을 보여주면서 기대 밖의 호연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연출을 맡은 이승렬 PD는 유진의 연기력에 대해 '왜 이 친구 가수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놀랍다고 말하기도 했다.[11] 2집 후속곡 '폭풍의 언덕'을 발표하고 한창 상승세를 타려던 시점에 드라마를 하게 되는 바람에 2집 활동이 흐지부지 끝나게 돼 버려 아쉬운 감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이 작품을 통해 연기자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으니 다행인 셈. 원래는 연기와 노래를 병행하려 했는데 솔로 2집 활동과 함께 하려다 보니 하나에 몰두하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배우는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다고 출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선택받는 직업이기 때문에 언제 작품이 들어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앨범을 내면 이도저도 못 하게 될 거 같아 결국 어느 순간부터 무대를 포기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도 음악에 대한 그리움이 늘 있고 기회가 된다면 음악 작업도 하고 싶다고 하니 가수 활동에 대한 기대를 해봐도 좋을 듯.
2004년에 SBS 드라마가 줄줄이 망한 탓에 《파리의 연인》과 《발리에서 생긴 일》에 이은 유일한 흥행 드라마였으나, SBS 자체 제작이 아닌 외주 제작이었던 탓에 드라마 인기에 비해 여러모로 푸대접이 심했다. 주간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한창 상승세를 타던 무렵 갑자기 지상파 재방송을 없애버리더니, 연이어 창사특집 드라마다 축구 중계다 해서 별다른 공지 없이 달랑 자막 한 줄로 2화씩이나 결방을 하는 바람에 치명타를 입게 된다. 더욱이 10년 만에 컴백하는 고현정의 복귀작 《봄날》 방영일에 맞추느라 억지로 4회나 연장하는 바람에 이야기의 진행도가 현저히 떨어지고 시간끌기식 장면이 늘어나면서 결국 시청률이 20% 밑으로 주저앉고 만다.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한 마당에 연말 시상식에서까지 홀대를 한 탓에 드라마 팬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기도 했다.[12] 이런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유진은 장장 15년간 SBS 드라마에 일체 출연하지 않았다.
가장 호흡이 잘 맞았던 배우로 지성을 꼽았다. 유진이 이 작품에 워낙 몰두하기도 했고 지성과 연기할 때 죽이 잘 맞았다고 한다. 지성이 연기를 잘 할 뿐 아니라 상대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맞춰줘서 카메라 앞에서 서로 배려하면서 찍었던 기억이 난다고.
3.4. MBC 《원더풀 라이프》
2005년, 김재원, 정다빈과 함께 출연했다. 전작의 기세를 몰아 연기자로서 입지를 굳히려고 했던 모양인지 공백기 없이 2달 만에 출연한 작품. 배낭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만난 남자와 얼떨결에 하룻밤을 보내고 임신까지 하게 되는 바람에 결혼을 하게 되는 해프닝을 그린 드라마다. 혼전 임신과 원나잇 스탠드라는 다소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이미 MBC의 《옥탑방 고양이》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마당에 단물이 빠질대로 빠진 소재라 그런지 그다지 약발이 먹히진 않았다. 다만 트렌디 드라마임에도 출산 후 육아문제라든가 미혼모의 아픔 등 가볍지만은 않은 소재을 다루고 있다는 게 특이할만한 점. 전작이었던 《영웅시대》가 조기종영 당하는 바람에 급하게 촬영에 들어가느라 배우들의 연기력에 비해 극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육아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젊은 엄마들에게는 반응이 좋은 편이었다.
당시 SBS 《발리에서 생긴 일》의 여파 때문인지 해외로케 한답시고 너도나도 외국으로 기어나가는 게 유행처럼 번졌던 적이 있었는데, 이 작품 역시 그런 시류에 맞춰 싱가포르 현지 촬영을 감행했으나 발리 로케 드라마까지 나오는 판국에 고작 싱가포르 로케가 먹힐 리가 없었다. SBS 《불량주부》, KBS 《열여덟 스물아홉》에 밀려 시청률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다시보기 등을 고려하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성적이라는 것이 당시 방송국 관계자의 평.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인데, 유진이 출연한 드라마 대부분이 대만을 비롯한 동남아 지역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S.E.S. 활동 당시 인지도 덕분에 수출도 잘 되는 편이다. 유진이 꾸준히 캐스팅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
원래 정세진 역에는 당초 한지혜의 캐스팅이 유력했으나 극중 캐릭터가 자칫 비정상적(?)으로 보일 수 있어 시청자들에게 좀 더 편한 이미지로 다가갈 수 있다고 판단되는 유진이 최종적으로 캐스팅됐다고 한다. 이 드라마를 통해 유진은 아픔과 모성애, 발랄한 코믹연기 등을 보여주며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유진은 오로지 연기에만 전념하게 되는데, 가수 유진을 좋아했던 입장에서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그래도 간간히 다른 가수의 음반이나 본인이 출연한 O.S.T.에 참여하여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
3.5. MBC 《진짜 진짜 좋아해》
2006년, 강원도 산골 소녀 봉순이의 청와대 입성기를 그린 작품으로, 그동안 잘 그려지지 않았던 청와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과 구수한 강원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유진의 연기로 많은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다. 한때 《주몽》의 소서노 역을 고사하고 이 작품을 선택했다는 얘기가 돌기도 했는데[13] KBS2 《안녕하세요 하느님》과 거의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진짜 진짜 좋아해》의 시놉시스를 읽고 단번에 여봉순 역을 하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시놉시스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처음 기획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바람에 용두사미 꼴로 끝나버린 비운의 작품이다.
원래 김진만 PD와 배유미 작가는 외주에 제작을 맡겨 미니 시리즈로 편성되는 것을 노렸으나, 시놉시스를 받아본 MBC 쪽에서 나름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는지 아예 주말 드라마로 편성하여 자체 제작하기를 강력하게 희망했다고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KBS 주말극과의 경쟁에서 수세를 면치 못했던 MBC가 야심 차게 준비한 드라마였으나[14] 미니 시리즈를 노리고 만든 작품을 억지로 늘리다보니 작품 전반적으로 작가의 역량 부족이 여실히 드러나고 만다. 방영 초만 해도 여주인공 봉순이가 청와대 요리사로 성공하는 과정이 드라마 《대장금》과 유사한 면이 있다고 하여 '현대판 대장금'이라는 식으로 홍보를 하기도 했는데, 정작 드라마 중반이 넘어가도록 요리사로 활약하는 모습은 등장하지 않고 쓸데없는 애정라인에 치중한 나머지 지지부진한 전개만 이어가다 결국 막판 들어 수습도 못 하고 얼렁뚱땅 끝나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나고 만다.
드라마 완성도와는 별개로 유진의 능수능란한 사투리 연기는 드라마 초반부터 호평을 받았다. 이때부터 '유진 연기 좀 한다'는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실제 강원도 출신이자 극중 유진의 고향친구로 등장하기도 했던 개그우먼 김말숙에게 사투리 개인교습을 받았는데, 너무 옛날 사투리가 아니냐는 일부 의견도 있었지만 어찌됐든 유진의 사투리 소화력만큼은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일례로, 드라마에서 대통령 역으로 출연한 최불암이 '처음 본 유진이 대본 연습을 하는데 너무 강원도 사투리를 잘 구사해 강원도 출신이냐고 물었다'는 일화가 있다.
S.E.S.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유진의 얼굴은 잡티 하나 없을 것 같은 맑고 밝은 모습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유진의 얼굴은 똑똑하지만 세상 물정은 모르는, 비현실적으로 착하고 순수한 여자를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똑부러지게 예뻤고, 동시에 그런 캐릭터를 그럴듯하게 보여줄 수 있는 연기력이 있었다. 그래서 유진는 이런 캐릭터가 필요한 트렌디 드라마에 적역이었다. 유진이 아무 이유없이 SBS 《마지막 춤은 나와함께》와 MBC 《원더풀 라이프》 같은 전형적인 트렌디 드라마에 연이어 캐스팅된 게 아니다. 그러나 이런 전형적인 트렌디 드라마들의 시청률은 점점 떨어지고 있었고 주말 드라마로 밀리던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유진은 이런 드라마의 '캐스팅 1순위'는 되지만, 드라마는 큰 반응을 얻지 못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S.E.S.가 누렸던 '요정'의 지위를 점점 잃어가게 된다. 산골처녀가 착해도 모든 사람들이 그를 다 받아줄 수 없듯, 예쁘고 연기 잘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론 안 될 때가 있는 것이다.[15]
3.6. KBS2 《아빠 셋 엄마 하나》
2008년, 미혼모에 이어 이번엔 남편과 사별한 싱글맘 역을 연기했다.
3.7. MBC 《인연 만들기》
2009년,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 드라마 제목처럼 유진과 배우 기태영의 인연을 만들어 준 작품이다. 이 드라마로 기태영이 유진의 반려자가 될 거라고 예상한 팬은 아무도 없을 듯.
3.8. KBS2 《제빵왕 김탁구》
2010년, 이 작품에서 유진은 드디어 '착한 여주인공'이 아닌 캐릭터 신유경을 연기한다. 주인공 김탁구(윤시윤)에 대한 사랑과 현실적인 욕망 사이에서 괴로워하고, 자신을 벌레 보듯 하는 서인숙(전인화)에 눌리지 않고 맞서는 모습은 이전의 유진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배역이었다. 제빵왕 김탁구가 대박나기 전까지는 S.E.S. 시절 명성에 걸맞은 흥행한 영화나 드라마가 없었는데, 본인도 제빵왕 김탁구 전까지 별다른 히트작이 없었던 것이 은근히 심적 부담이 됐는지 2010 KBS 연기대상에서 우수연기자상을 받고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3.9. MBC 《백년의 유산》
2013년을 대표하는 국민 드라마에 주연으로 출연해 주말극의 퀸으로 자리매김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정신병원에 감금시킨다는 충격적인 설정과 정신병원을 탈출하는 유진의 열연이 화제를 모으면서 단번에 인기를 모았는데, 단순히 시청률을 의식한 막장 전개가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지만 드라마 방송 이후 시사 고발 프로그램에서 이와 비슷한 사례에 대해 소개하면서 비난 여론이 잠잠해졌다.
3.10. JTBC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
2014년, 불혹을 앞둔 이혼녀, 노처녀, 전업주부 세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백년의 유산 무렵부터 꾸준히 2세 계획을 언급했기 때문에 바로 임신 준비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으나 드라마가 끝난 지 반년도 되지 않아 새 작품에 들어가게 된다. 컬러 오브 우먼이나 황제를 위하여 때와는 달리 종편 출연에 대한 논란은 거의 없었지만 유진이 맡은 배역의 연령대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다. 아무리 유진이 20대 때부터 애 엄마 역을 맡았다지만 10살짜리 애를 둔 39살 이혼녀 역은 너무 하지 않냐는 반응이 대다수였는데, 초기 시놉시스는 엄태웅이 연하라는 설정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유진이 맡을만한 배역은 아니었다.
유진의 안정적인 연기력은 호평에 가까웠지만, 누가 봐도 언니뻘인 배우들이랑 동갑내기 연기를 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몰입도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었는데, 유진 본인도 나이를 의식해서인지 잔뜩 부풀린 파마머리에 1990년대스러운 색조 화장을 하고 나왔다. 작품이 화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시청률 면에서는 호조를 보여 최종화에서는 종편 방송 최초로 동시간대 지상파 드라마를 앞서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3.11. KBS2 《부탁해요, 엄마》
여주인공 이진애 역을 맡았다. 작중 자신의 어머니 역을 맡은 고두심과 좋은 연기를 보였으나 작품 전개의 혹평, 캐릭터들의 막장성, 이를 덮을 수 없는 작가의 집필 능력 부족이 합쳐져 안 좋은 시너지를 내는 바람에 그녀의 연기가 빛이 바랜 감이 있다. 하지만 그 해 연기대상에서 아버지 역의 김갑수와 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3.12. SBS 《펜트하우스》
16년만의 SBS 드라마에 출연이며, 주인공을 맡았다. 학창시절 성악가를 꿈꿨으나 가난하여 금수저이자 자신의 칠천지원수인 천서진(김소연)의 계략으로 모든 걸 잃고 살아가는 엄마 오윤희로 등장. 딸을 가해자로 몰아가는 학교 교장한테 날아차기를 시전해가면서까지 딸만큼은 최고로 만들고자 헤라팰리스라는 귀족 같은 건물에 입성. 청아예고에 진학시킨다.
처음에는 자신의 원수이자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린 천서진에게 복수하고자 심수련(이지아)과 손을 잡았으나, 본인이 심수련의 친딸인 민설아(조수민) 추락사의 '''진범'''임을 알게된후 심수련을 배신하고 그녀의 남편인 주단태(엄기준)에게 붙으면서 점차 괴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20년 12월 31일에 열린 SBS 창사 30주년 기념 연기대상에서 이 드라마로 중장편드라마 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하며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이로써, 연기인생 18년 동안 지상파 연말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인기상부터 시작해 신인상, 우수 연기상, 단막극상, 최우수 연기상까지 모두 석권하였다. 창사 30주년을 기념하는 시상식답게 다른 연도 트로피와는 다르게 2020년도 수상자들에게 수여되는 트로피에는 창사 30주년을 상징하는 특별한 숫자 30이 함께 박혀있는 트로피를 받았다.
4. 영화
4.1. 《그 남자의 책 198쪽》
2008년, 흥행 결과와 별개로 지금까지 유진의 연기 중 베스트를 보여줬다고 할 만한 작품. 유진은 반듯한 미녀 대신 반복적인 생활과 넉넉지 않은 살림에 찌든 도서관 사서를 연기한다. 모르는 사람에게 약간은 까칠하고, 상황 파악을 잘 못하는 이동욱에게 “아, 장사 한두 번해?”라며 역정 내는 유진의 모습은 새로운 것이었다. 특히 조금은 툴툴 거리는 말투로 어떤 상황이든 조금은 시니컬한 초반의 일상 연기는 이렇다 할 설명 없이 작품 속 캐릭터를 금세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좋았다. 남들에게 크게 보이지는 않지만, 연기와 배역 모두 조금씩 변화를 시도한 셈. 참고로 제작자가, S.E.S. 시절 라이벌이었던 핑클의 소속사 사장인 이호연(DSP미디어)이다.[16]
4.2. 《종이꽃》
결혼 후 처음으로 출연한 영화.
5. 여담
2005년에 연기자로 미국 데뷔를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으나 무산되었다. 이에 대해 2008년 인터뷰로 미국 활동을 병행하면 생활이 너무 바빠질 것 같았고 큰 욕심이 없었다고 밝혔다.
2007년에 뮤지컬 《댄서의 순정》주연으로 무대 데뷔를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뮤지컬 출연.
[1] 유진의 생일인 1981년 3월 3일을 음반 제목으로 지었다. 독립과 새출발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2] 류시원 집들이 때 찍은 사진이 유출되었는데 구글에 찾아보면 알겠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진이었다... 유진의 첫 주연 드라마에서 실제 연인 사이로 발전, 1년 여 연애 끝에 2003년 결별했으며 이후 2010년 전 연인의 사망에 '너무 충격적이라 눈물조차 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고 조문하러 왔고, 사망 다음 날 새벽 1시에 인터넷에 우회적으로 소감을 올린 것으로 볼 때 나쁘게 헤어진 것은 아닌 것 같다.[3] 《THE BEST》가 어려운 곡은 아니지만 부르기 까다로운 곡이긴 하다. 호흡 신경쓰면서 한음 한음 지그시 짚어가며 불러야 불러야 하는데다 가창력을 뽐낼 수 있는 곡도 아니니 부르는 입장에서는 골치아플 듯.[4] 유진의 생일인 1981년 3월 3일을 음반 제목으로 지었다. 독립과 새출발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5] 2004년 9월 11일, 2004년 9월 18일 2주 연속 MBC 음악캠프에서 이승철의 '긴 하루'와 함께 1위 후보에 올랐다. 순위는 아쉽게 2주 연속 2위를 기록. 유진과 이승철 둘다 솔로 앨범 활동 이후 처음으로 1위 후보에 올랐다는 인연이 있기도 하다. 이후 같은 라디오 방송에 게스트로 함께 나온적도 있고 2004년 9월 24일 KBS2 뮤직뱅크에서 함께 Endless Love를 듀엣으로 열창해 좋은 무대를 보여주기도 했다.[6] 실제로 H.O.T. 출신의 강타, 신화의 김동완이 함께 출연했다.[7] 제주 방언으로 해녀라는 뜻이라고 한다. 극중 유진이 해녀의 딸이라는 것에서 착안한 듯.[8] 애초부터 원작자 김유리가 정다빈 역에 유진을 강하게 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솔로 1집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어 난색을 표했고, 후에 최정윤이 맡았던 배역으로 다시 한번 캐스팅을 시도했으나 솔로 앨범 활동을 이유로 거절함.[9] 영화 기획 당시부터 올리비아 핫세를 닮은 역할로 불리던 유진을 염두해뒀다고 한다. 하지만 유진이 솔로 가수로서 기반을 확실하게 다지고 싶다며 제작진의 끈질긴 러브콜을 뿌리치면서 한가인에게 역할이 돌아갔고 한가인은 이 작품을 발판삼아 톱스타로 거듭나게 된다. 유진의 소속사 관계자는 캐스팅 제안이 들어왔을 당시 유진이 음반과 연기 활동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에 많은 부담을 느끼는 눈치여서 어쩔 수 없이 거절했다고 밝혔다.[10] 계속 출연 얘기가 오갔지만 귀여니 작품의 압박 때문인지 결국 포기.[11] 이승렬 PD는 유진에 대해 '가수의 섹시한 이미지와 드라마의 캐릭터가 크게 달라 캐스팅을 고민했지만 실제 연기를 보니 왜 가수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또한, 유진을 '초창기의 최진실을 연상케 할 정도로 가능성 있는 배우'라고 평하기도.[12] 시상식 재방송에서는 유일하게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장면만 편집된 채 방송되기까지 했다.[13] 장편 드라마를 맡기에는 아직 역량이 부족한 거 같다고 고사함. 과욕을 부리지 않은 점에서는 현명했다고 보지만 왠지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14] 당시 경쟁작은 KBS 《소문난 칠공주》. 게다가 《소문난 칠공주》의 주제가를 부른 가수는 다름아닌 S.E.S. 출신의 바다.[15] 대중문화평론가 강명석이 작성한 '진짜진짜 좋아해 - 유진의 연기'에서 발췌.[16] DSP의 핑클과 희대의 라이벌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조금 의아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