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시 FC/등번호 저주

 




1. 개요


아스날 9번의 저주 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첼시는 에이스 번호인 7번과 주 공격수 번호인 9번이 유독 안습한 경우가 많았다.

2. 7번의 저주


첼시의 7번의 저주는 한 때 아스날 9번의 저주와 맞먹는 저주로 유명했다.
7번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같은 팀에서는 '''7번 계보'''라고 해서 에이스 계보를 잇는 번호로 유명한데,[1][2] 첼시에서는 2000년 이후로 제대로 된 7번이 없어서 많은 첼시 팬들이 7번을 다는 선수들에게 불안함을 느끼곤 했다. 다행히 은골로 캉테가 저주를 깼다.

2.1. 윈스턴 보가르데


첼시 팬을 제외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수비수 보가르데는 바르셀로나에서 '''공짜로 영입'''했는데도 여전히 먹튀 소리를 듣는다. 그 이유로 일단 부상이 워낙 많아서 경기를 거의 뛰지 못 했고 이로 인해 첼시는 그를 2군 선수들과 함께 훈련시키게 하면서 이적시키려고 했는데 '''그러면서도 이적을 거부하며 안 나가려고 버텼다'''. 결국 계약 기간을 끝까지 지키고 나갔는데 보가르데는 '''4년 동안 겨우 11경기만 뛰었다.''' 아무리 타 축구팀 팬들이 셰브첸코를 첼시 최악의 7번이라 우겨도 첼시 팬들이 반박하는 이유가 이 선수 때문. 풋볼 매니저 시리즈에서도 첼시 FC가 싫어하는 인물 100을 찍고 있다.

2.2. 아드리안 무투


무투는 제2의 게오르게 하지라 불릴 정도로 루마니아를 대표하는 축구선수로 전임자인 보가르데에 비해 실력도 검증되었고 인지도도 높은 선수였다. 첼시는 사무엘 에투와 무투 중 한 명을 겨우 고를 정도였는데 결국 무투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 이적 후 무투는 첼시 팬들에게 '''약쟁이''' 취급을 당하고 있다. 시즌 초에는 에투 거르고 영입할 만한 모습을 보이는듯 했지만 '''코카인 복용이 적발되어 7개월 선수 자격 정지'''에 걸려버렸다.
이걸로 끝나고 다음 시즌에 잘했으면 그나마 괜찮을 테지만.... '''구단과 상의없이 독단적으로 유벤투스와 계약을 맺었다.''' 그렇게 무투는 첼시 팬들에게 보가르데 못지 않은 최악의 7번이란 인상을 남기고 떠났다. 이 건으로 무투는 재판을 받게 되었고 첼시에서 1700만 유로의 보상금을 내라는 판결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무투는 2010년 또 금지 약물을 복용하며 또 출장 정지를 당했다.
여담으로 당시 무투 때문에 걸러야 했던 사무엘 에투는 이후, 바르셀로나로 이적하여 엄청난 활약을 보이고는 결국 2013-14 시즌에 첼시가 영입했다. 물론, 나이가 나이인지라 폼은 다 죽었지만 경쟁자들이 영 미덥지 않아서 1 시즌 동안 주전을 하고 떠났다.

2.3. 마니셰


디나모 모스크바에서 임대했다. 당시 포르투갈 국대에서는 주전 미드필더였지만 당시 첼시의 미드필더들은... 이러하다 보니 임대온 반 시즌 동안 8 경기 뛰고 임대 복귀했다.

2.4. 안드리 셰브첸코


'''무결점 스트라이커'''로 AC 밀란에서 날아다니던 셰브첸코가 당시 '''EPL 역사상 최고 이적료'''를 기록하며 첼시에 온 것은 수많은 축구 팬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당시 디디에 드록바가 골 결정력과 훌륭한 피지컬을 가졌음에도 그걸 제대로 못 써먹고 다이빙을 수시로 하는 조금 불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였기에 첼시 팬들은 셰브첸코로 업그레이드 된 첼시의 공격을 기대했으나, 현실은 '''무장점 스트라이커, 최악의 먹튀 1탄이었다.'''[3]
초기에는 조 콜이 시즌 아웃당하고 아르옌 로벤도 유리몸이 심하던 때라 433대신 4132로 셰브첸코 - 드록바 투톱을 사용했으나 4132 전술이 딱히 만족스럽지 못 했고 로벤이 다시 뛰기 시작하면서 433으로 리턴 후에는 점차 셰브첸코가 부진하고 드록바가 엄청난 상승세에 이르면서 셰브첸코가 후보로 내려오는 일이 많아졌다. 같은 시기에 영입된 미하엘 발락이 첫 시즌에 조금 부진했어도[4] 두 번째 시즌부터 주전 미드필더가 된 것과 대조되어 셰브첸코는 두 번째 시즌에서도 드록바에게 밀려 전혀 좋은 폼을 보여주지 못 하고 나중에는 니콜라 아넬카에게도 밀리는 굴욕을 당하게 된다. 결국 3번째 시즌에 다시 밀란으로 임대오지만 여기서는 알렉산더 파투에게 밀리며 몇 경기 뛰지도 못 하고 복귀. 이어 밀란의 감독인 카를로 안첼로티가 첼시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그 시즌에 셰브첸코는 첼시를 떠났다.
사실상 첼시 7번의 저주를 많은 축구 팬들에게 널리 알린 계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셰브첸코의 부진은 축구 팬들에게 매우 충격적이었다. 사실 밀란 측에서는 비싼 돈을 받아서라도 셰브첸코를 판 이유가 있었는데 05-06 시즌 후반부부터 셰브첸코의 피지컬이 조금씩 떨어져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밀란은 이 때문에 셰브첸코를 팔고 대신 새로운 공격수로 리빌딩을 하려는 계획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5]

2.5. 하미레스


벤피카에서 영입했다. 애초에 에이스 유형의 선수가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선수라 왜 이 선수에게 7번을 주었는지 의문이 많았고 첫 시즌에는 주전이긴 했지만 '''하미레기'''라는 멸칭이 붙여질 정도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두번째 시즌부터 하미레스는 팀에 완전히 적응하며 상당히 뛰어난 모습을 보였으며 특히 챔스 4강 바르셀로나 2차전에서 보여준 멋진 칩슛은 여전히 많은 팬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이후, 두 시즌 동안에도 주전급 미드필더로 많은 활동량으로 중원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며 괜찮은 활약을 보여줬다.
2014-15 시즌에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영입되면서 로테이션으로 밀리고 중국으로 떠났으나 위의 선수들에 비하면 7번을 달고 꽤 좋은 활약을 보여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2.6. 은골로 캉테


제2의 클로드 마켈렐레라는 별명이 있었지만, 그의 번호인 4번을 달기엔 이미 파브레가스가 있었기 때문에 하미레스의 번호인 7번을 달았다.
첫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파브레가스와 마티치를 제치고 미드필더 첫번째 옵션이 되어 엄청난 활약을 펼쳤으며 특히 이 때는 레스터 시절에 제대로 빛나지 못 한 공격 능력도 전보다 상승하여 '''마켈렐레의 전성기 그 이상의 퍼포먼스'''라는 평가도 나오기도 했다. 그 결과 첫 시즌에 '''FA 선정 올해의 선수상, FWA 선정 올해의 선수상, 사무국 선정 EPL 올해의 선수상''' 3관왕을 달성하며 하미레스에 이어 7번의 저주를 완전히 깨부셨다. 이후, 두번째 시즌에도 팀이 전 시즌보다 못 한 상황에서 캉테는 제 몫을 충분히 다 한 선수로 평가받았고 3번째 시즌에는 마우리치오 사리의 전술 요구로 공격적인 역할까지 맡아 활약이 2% 아쉬운 상황에서도[6] 불만없이 뛰면서 여전히 첼시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2019-20 시즌, 첼시의 최고 에이스 선수인 에덴 아자르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고 수비 에이스로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도 급격한 기량 하락이 오면서 사실상 캉테가 첼시의 에이스로 우뚝 솟아오른 상황이다.
이처럼 엄청난 월드클래스급의 활약을 펼치는 캉테는 결국 첼시의 등번호 7번의 저주를 깨는것으로 판결났다.

3. 9번의 저주


7번과 마찬가지로 9번 역시 주로 팀에서 주전 선수들이 맡는 번호로 유명하다. 특히 공격수들이 많이 다는 번호로 유명한데 첼시는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가 떠난 2003년부터 디디에 드록바디에고 코스타를 제외하고는 공격수들이 대부분 부진하기로 유명했고 그 중에 대부분이 9번을 달고 실패한 선수들이다. 심지어는 '''하셀바잉크가 4년 동안 넣은 골이 2015년까지 9번들이 넣은 선수들의 골보다 많다'''는 말까지 나왔다.

3.1. 마테야 케즈만


PSV 아인트호벤에서 주전 스트라이커로 뛰었으며 '''4시즌 동안 3번의 득점왕'''을 차지하는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빅 클럽들에게 큰 화제를 얻었다. 그러나 첼시 이적 후에 케즈만의 커리어는 완전히 끝장났다. 1년 만에 첼시에서 실패를 경험하고 여러 팀을 떠돌아다녔으나 그 어디서도 적응하지 못 하고 33살에 은퇴를 했다. 같은 시즌에 첼시로 이적한 아인트호벤 동료였던 아르옌 로벤이 첼시에서 환상적인 모습을 보이며 이후 레알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같은 빅 클럽에서 뛰었던 것과는 대조적. 이 영향인지 첼시는 에레디베시 득점왕을 노리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득점 기록은 41경기 7골.

3.2. 에르난 크레스포


03-04 시즌에 입단해 첼시에서 실패를 경험하고 AC 밀란으로 임대하여 임대의 전설급의 활약을 보여주고 임대 복귀해 다시 첼시에 돌아왔다. 이 때까지는 드록바가 완전히 각성하기 전이고 크레스포도 어느 정도 클래스가 있는 선수였기에 05-06 시즌에는 드록바에게 그렇게까지 꿀리지는 않는 활약을 보여주긴 보여줬다. 다만, 무리뉴의 우선 순위는 언제나 드록바였고 크레스포 본인 역시 영국 생활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적 의사를 밝혔고 결국 남은 계약 기간 동안 인터밀란에서 임대를 가게 되었다.
그렇게 임대를 간 인터밀란에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아드리아누 투 톱이 크레스포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드리아누가 몰락한 틈을 노려 크레스포가 주전을 차지하였고 크레스포는 한 시즌 더 임대를 택하였다. 이번에는 같은 국대 동료인 훌리오 크루스에게 밀렸으나 크레스포는 인터밀란 생활에 만족하고 계약이 끝난 뒤, 인터밀란으로 완전이적했다.
통산 득점 기록은 73경기 25골.

3.3. 칼리드 불라루즈


불라루즈는 9번을 달았지만 공격수도 아닌 '''중앙 수비수다'''.[7] 첼시에 오기 전, 독일 월드컵에서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으로 뛴 적이 있으며 과거 챔스에서는 '''호나우지뉴를 완벽하게 막아내는''' 활약을 보여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첼시에서는 리그 적응해야 할 판에 부상도 많아서 제대로 뛰지를 못 했으며[8] 이기지 못할 경우 첼시의 우승 불가가 확정되는 37라운드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내줌과 함께 퇴장당하는 바람에 1:1로 비겼고 결국 그대로 맨유 우승이 확정되었다. 1시즌 만에 세비야로 임대갔으며. 1년 뒤 슈투트가르트로 완전이적했다.

3.4. 스티브 시드웰


시드웰의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이다. 06-07 시즌 레딩 FC의 돌풍의 주역으로 한 때는 국가대표 이야기도 간간히 나오고 했으나 계약 기간이 끝나고 07-08 시즌, 자유계약으로 첼시로 이적하면서 망해버렸다. 그 자신의 포지션을 까먹고 무작정 이 있는 첼시에 왔으니.... 시즌 종료 후, 풀럼 FC로 이적했다.
이 시즌 첼시는 시드웰 외에도 자유 계약 선수로 탈 벤 하임클라우디오 피사로를 영입했는데 이 두 선수 역시 시드웰과 마찬가지로 첼시에 전혀 자리를 잡지 못 하고 한 시즌 만에 임대 신세 혹은 이적을 택했다. 아무리 부담없는 자유 계약 선수라고는 하나 그 세 명이 전부 실패했다는 점에서 첼시 보드진의 실책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9]

3.5. 프랑코 디 산토


07-08 시즌 겨울 이적시장에 영입되어 시드웰이 떠난 2008년부터 9번을 달았다. 그러나 유망주 선에서 그쳐 디디에 드록바, 니콜라 아넬카에게 밀리고 2009년에는 다니엘 스터리지까지 합류해 완전히 전력에서 배제되었다. 결국 임대만 돌아다니다 첼시를 떠나버렸다.
참고로 디 산토와 같은 시기에 영입된 선수로 '''니콜라 아넬카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가 있다. 이 두 선수가 후에 첼시에서 보여준 활약을 생각하면 디 산토가 얼마나 안습한 지 알 수 있다.

3.6. 페르난도 토레스


'''설명이 필요없는 셰브첸코의 뒤를 잇는 최악의 먹튀 2이다.''' 페르난도 토레스/클럽 경력 항목을 참조. 애초에 '''에덴 아자르 - 후안 마타 - 오스카''' 라는 환상적인 2선 라인을 가지고도 그 정도 수준의 득점밖에 못 한 상황에서 토레스의 당시 기량이 얼마나 형편 없었는지 알 수 있다.[10] 게다가 그런 와중에도 개인 팬이 엄청 많아 첼시 팬들 사이에 내분을 일으키기도 할 정도였으니[11] 민폐 수준이 맨 위의 윈스턴 보가르데와 전혀 꿀리지 않을 정도다.

3.7. 라다멜 팔카오


맨유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도 첼시가 굳이 임대해 와서 첼시 팬들이 의문을 가졌고[12] 그 의문은 결국 적중하고 말았다. 그렇게 임대 생활을 허무하게 마치고 모나코로 쓸쓸히 복귀했는데 '''모나코에서는 아예 플레이스타일을 바꾸고 부활했다.'''

3.8. 알바로 모라타


스페인 출신에 키크고 마드리드 출신에 비싼 가격에 영입했고 9번을 다는 공격수에서 일부 첼시 팬들은 토레스가 떠올라 제발 토레스 시즌 2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애초에 원래 노리던 공격수는 로멜루 루카쿠였고 루카쿠를 맨유에 하이재킹당해 차선으로 영입한 것이라 실패할 가능성이 아주 없다고 보기는 어려운 편. 다행인 것은 감독 안토니오 콘테가 유벤투스 시절부터 원했던 선수였다는 것.[13]
아니나 다를까 프리 시즌 동안, 매우 좋지 못 한 경기력을 보여준 탓에 타 축구팀 팬들로부터 "토레스 + 모라타"를 합친 '''토레타'''라는 별명이 굳혀지고 있다. 다만 프리 시즌에는 에덴 아자르페드로 로드리게스의 부상으로 왼쪽 윙으로 뛰느라 제대로 된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 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커뮤니티 쉴드에서 승부차기 실축을 하며 다시 안티들에게 토레타 콜을 듣고 있는 상황. 시즌 개막후의 상황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듯 하다.
개막전 강등권팀인 번리에게 충격적인 3대2 패배속에서도 교체출전해 1골 1어시스트라는 기록을 남기며 홀로 빛났다. 1718시즌 여러가지 고민을 안고 시작하는 첼시에게 아주작은 희망을 주었다.
그 후 걱정과 달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는 등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16R 현재 9골 4도움으로 득점순위 3위를 달리고 있다. 디에고 코스타와는 다른 유형의 골잡이로 전반기까지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 첼시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후반기에 부상 이후로는 거의 미미한 수준에 다다르며 9번의 저주를 탈출시키지 못하는 모습이다.[14] 특히 부족한 피지컬과 골 결정력에 첼시팬도 한숨을 자아낼 정도다. 결국 올리비에 지루가 영입되면서 사실상 서브로 밀리게 되었다. 계속되는 저주 속 첼시팬들 사이에서는 모라타의 방출을 놓고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일단 첫 시즌에는 리그 11골을 기록했는데 '''첼시에서 단 한 번도 리그 골 10골 이상을 넣어보지 못 한''' 토레스보다는 많이 넣었다.
2018-19 시즌 개막을 앞두고 등번호를 29번으로 변경했다. 쌍둥이의 생일인 29일을 기념해서라고 한다. 모라타가 아직 팀을 떠난 상황이 아니라 애매하긴 하지만 모라타가 9번을 단 첫 시즌을 한정해서 보면 클럽레코드를 세운 공격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활약을 해서 9번의 저주가 명맥은 이어간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약 모라타가 등번호를 바꾸고 갑자기 맹활약이라도 한다면 9번의 저주는 굉장히 용하다고 소문이 날 듯. 그러나 하필 9가 들어간 29번을 받아서인지 전 시즌 후반과 달리 지루와 거의 동등한 입지로 뛰었음에도 여전히 폼이 올라오지 못 한 모습을 보이며 이적설이 계속 나오고 있다가, 결국 퍼포먼스에 불만을 가진 본인이 직접 이적 요청을 하면서 첼시를 떠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임대 이적[15]을 가게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두 시즌 만에 토레스보다 많은 리그 골을 넣었다는 것 정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떠난 후에는 첼시 시절보다 나아진 폼을 보이면서 부진에 시달리던 디에고 코스타를 제치고 주전 공격수로 맹활약하고 있다. 그러다 정작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완전히 이적한 2020-21 시즌에는 루이스 수아레스 링크가 나오면서 모라타는 또다른 친정팀인 유벤투스로 임대를 갔다.

3.9. 곤살로 이과인


2019년, 본디 AC 밀란에 임대를 갔던 이과인이 밀란의 태도 변화 문제로[16] 첼시에 반 시즌 간 임대되었다. 이후, 팀과 선수의 성적에 따라 임대 기간을 1년 연장할 수 있다고 한다.
반쪽짜리 월클로 판명이 난 모라타와 달리 이과인은 레알 마드리드, 나폴리, 유벤투스 등 세 팀에서[17] 모두 월클로 활약한 바 있기 때문에 첼시 팬들의 기대가 더욱 크다. 등번호는 나폴리 입단 시절부터 계속 달고 있던 9번을 달았다. 만약에 이과인마저 부진하게 되면 9번의 저주는 지독히도 안 풀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실 이과인에게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이과인의 나이가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밀란에서도 노쇠화로 폼이 떨어진 상태였지만 당시에는 팀의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가려져 있었고 아예 다른 리그이며 밀란보다 기대치가 더 높은 첼시에서 떨어진 폼이 제대로 드러난 것이다. 더 느려진 스피드와 동료들과의 부족한 팀 케미, 적극적이지도 않는 점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는 모라타보다 나은 게 뭐냐며 이과인의 부진에 분노하고 있다. 결국 시즌이 끝나고 첼시는 이과인의 임대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유벤투스로 다시 보냈다.[18]
얼핏보면 진정한 안드리 셰브첸코의 재림이라고 볼 수도 있다. 셰브첸코와 마찬가지로 밀란에서 뛰다가 첼시로 넘어와 많은 팬들의 기대를 받았으며 사실 밀란에서 이미 폼이 하락되고 있어 밀란이 그들을 포기한 것임에도 첼시가 굳이 그들을 영입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차이점도 확실히 있는데 셰브첸코를 팔 당시 밀란은 그를 제대로 대체하지 못 했지만[19] 이과인 때는 대체자인 크시슈토프 피옹테크가 상당히 좋은 활약을 해주면서 결과적으로 이번에는 밀란은 이득인 셈이 되었다.[20] 그러나 다음 시즌에 피옹텍마저 무너졌고 결국 AC 밀란을 떠났다는 게 아이러니하다.[21]

3.10. 태미 에이브러햄


이과인이 첼시와의 계약이 끝난 후, 영입 금지 징계를 받은 첼시의 남은 공격수는 올리비에 지루, 미키 바추아이, 태미 에이브러햄이었고 이 중에 지루와 바추아이는 18번과 23번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에이브러햄은 18-19 시즌, 아스톤 빌라로 임대 가기 전에 19번을 잠시 달았는데 2019-20 시즌에 다시 첼시로 돌아온 뒤, 감독 프랭크 램파드와 상담한 끝에 에이브러햄이 9번을 달게 되었다. 2020년 1월에 램파드가 이 부분에 대해 인터뷰를 했는데 에이브러햄에게 9번을 주겠다는 램파드의 결정에 그 번호는 느낌이 좋지 않다며 주변에서 걱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램파드는 프리 시즌의 에이브러햄의 활약을 보고 9번을 주기로 결심했고 에이브러햄 역시 9번을 달기를 원하면서 9번을 주었다고 밝혔다.
에이브러햄은 위에 적힌 9번을 단 여러 선수와 달리 첼시 유스에서 직접 키운 유망주이다. 에이브러햄의 성장을 믿고 첼시가 키워주려는 듯 하다.[22]
2019 리버풀과의 슈퍼컵 경기에서 승부차기 5번 키커로 나섰으나 실축하며 다소 불안하게 시즌을 시작했으나 3R 노리치와의 경기에서 멀티골을, 4R 셰필드와의 경기에서 또 다시 멀티골을 터뜨리면서 9번의 저주를 떨쳐낼지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5R 울버햄튼 전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했는데 이는 '''첼시 역사상 최연소 해트트릭[23], 잉글랜드 선수 역사상 최연소 해트트릭, 21세 이하 3경기 멀티골 이상 기록한 최연소 선수[24] 기록을 달성했다.''' 이후에도 꾸준한 득점력을 선보이며 리그 내에서 세르히오 아게로, 제이미 바디와 득점왕 경쟁을 치를 정도의 훌륭한 득점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12R 크리스탈 팰리스 전에서 한 골을 넣고 리그 10골을 기록하면서 '''첼시 역사상 두 번째로 어린[25] 리그 두 자리수 이상 득점한 선수'''라는 기록을 또 만들어냈다. 만약 다음 시즌에도 이런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면, 9번의 저주도 마침내 깨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2020년 들어서 조금 안습해진 상황인데 부상을 참고 뛴 것 때문에 센세이셔널했던 전반기에 비해 폼이 좀 떨어졌고 부상으로 아웃된 상황에서 고주급 재계약을 요구했다는 뉴스가 나오며 팬들을 답답하게 만들었고[26][27] 결정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축구 리그가 일시 정지된 상황'''이라 자칫하면 리그가 취소될 수도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천재지변으로 인해 9번을 달고 보여준 활약상이 묻힐 수도 있다. 그러나 리그 앙처럼 조기 종료가 되면 기록이 유지된 상태에서 종료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에이브러햄의 스탯은 남아있게 되므로 19-20 시즌의 에이브러햄의 활약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일단 리그는 재개되었고 쉬는 기간 동안 피지컬을 키웠다. 그러나 리그 재개 후, 폼은 여전히 전반기에 비해 아쉬운 편이었고 결국 올리비에 지루와 치열한 경쟁 구도를 유지하게 되었다.
게다가 20-21 시즌에는 분데스리가에서 맹활약하며 한 때 리버풀도 적극적으로 원했던 티모 베르너가 합류하기 때문에 더더욱 주전 경쟁이 힘들어졌다. 다만 그와는 별개로 지루에게 연계 능력 등에서 튜터링을 제대로 받고 있는 것인지, 7R 번리전에서 골만 기록하지 못했을 뿐 연계능력이 많이 개선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공수 양면에서 전 시즌에 비해 많이 좋아지긴 했다. 그리고 8R 셰필드 유나이티드 FC전에서도 동점골과 함께 준수한 연계 능력과 포스트 플레이 등으로 올리비에 지루의 플레이 스타일을 점점 흡수하면서 다시 19-20 시즌 초기만큼 확연히 폼이 올라온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직 기복이 있다는 것이 문제이나 윙어들의 부상으로 베르너가 윙 포워드로 뛰고 있으며 베르너가 완전히 자리잡지 못 한 모습을 보이면서 여전히 에이브러햄의 입지는 안전한 편이다.

4. 다른 팀의 사례


  • 아스날 FC - 아스날 9번의 저주
  • 레알 마드리드 CF - 레알 마드리드 10번의 저주 : 루카 모드리치가 깼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맨유 7번의 저주[28]

5. 관련 문서



[1] 호날두 이후에는 마이클 오웬, 안토니오 발렌시아, 앙헬 디 마리아, 멤피스 데파이, 알렉시스 산체스 등이 좀 망치긴 했지만 여전히 맨유에서 엄청난 상징을 가진 번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선수들의 부진에 더더욱 비판이 가해졌던 것이다 현재는 에딘손 카바니가 7번을 받았는데 노쇠화가 진행 중인 공격수라는 점과 그 동안의 7번이 워낙 부진한 것 때문에 오히려 기대치가 엄청 떨어져 있다.[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외에 7번 계보로 유명한 팀은 레알 마드리드가 있다. 그리고 이쪽도 라울 곤살레스를 시작으로 이 번호를 계승하면서 팀 내 최고 에이스 활약을 펼친 호날두가 이적하고 리옹에서 바이백으로 데려온 마리아노 디아스와 첼시에서 데려온 에당 아자르가 망하면서 저주가 될 조짐이 생기고 있다.[3] 오죽하면 셰브첸코의 활약은 존 테리가 기절했을때 혀가 말려들어가지 않게 해준 것이라고 할 정도.[4] 심지어 발락은 셰브첸코와 달리 자유계약이었기 때문에 먹튀 논란이 생길 이유도 없었다. 물론 위 항목의 보가르데만큼의 민폐급 모습을 보였다면 먹튀 논란이 있었겠지만 다행이 발락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5] 다만, 이 시즌 밀란은 셰브첸코의 후계자로 영입한 히카르두 올리베이라가 크게 망해버리면서 결국 겨울 이적 시장에 호나우두를 급히 데려오고 그 다음 시즌에는 알렉산드르 파투를 영입하게 된다.[6] 그런데 팬들이 아쉬워하는 것과는 별개로 캉테는 2017-18 시즌 지금의 캉테의 역할을 맡은 알랑 마르케스의 한 시즌 공격 포인트를 전반기만에 따라잡았다. 캉테의 축구 지능이 얼마나 뛰어난 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인터셉트나 태클 수가 하락한 것은 전 시즌 대비 활동 범위를 늘리고 압박이 덜한 측면에서만 주로 뛴 영향과 관련이 있고, 이 또한 조르지뉴가 후반기에 리그 적응에 성공하면서 이 당시 캉테가 중앙에서 따지 못한 인터셉트나 태클을 따주면서 결국에는 한 경기 팀내 최다 태클이나 최다 인터셉트까지 차지하기도 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2019-20 시즌에 캉테가 에이스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 공격적인 전술에 녹아드는 데에 성공한 영향도 있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그 뒤로는 알다시피 이 당시 포지션 논란의 중심이었던 조르지뉴와 오히려 영혼의 듀오를 형성하고 위치를 지속적으로 스위칭하며 첼시를 먹여살리는 중이다.[7] 참고로 같은 시즌에 아스날에서는 윌리엄 갈라스가 10번을 달았다.[8] 그나마 파울루 페레이라가 부상당할 때, 그 대체자로 잠시 뛴 적도 있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였다.[9] 이 시즌 첼시의 이적생 중 성공한 선수는 원래 임대 신분이긴 했으나 PSV 에인트호벤과의 사전 계약에 따라 단 1유로로 이적하여 준주전급 센터백으로 활약한 알렉스, 겨울 이적 시장에 영입된 니콜라 아넬카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 정도이다. 그 외에 플로랑 말루다도 어떻게 보면 성공한 이적생이긴 한데 실패한 기간도 꽤 길다보니 성공 여부는 애매한 편이다.[10] 저 세 명이 주전 라인을 꾸리던 12-13 시즌에도 리그 두 자리수 득점에 실패했다. 그나마 이 때가 '''입단 후 제일 잘한 시즌이긴 했다.''' 디에고 코스타가 크게 부진하던 15-16 시즌의 리그 득점보다 골 기록은 적지만.[11] 가장 대표적인 의견으로 토레스는 좋은 위치 선정을 보이는데 상술한 세 명이 이기적인 플레이를 해서 토레스에게 기회를 안 준다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당시 세 사람이 엄청나게 많은 찬스를 만들어줬음에도 토레스가 엄청 못 받아 먹었다.[12] 이 시즌에 잠깐 첼시에 돌아온 디디에 드록바가 팀을 떠나긴 했으나 주전 공격수는 디에고 코스타, 2옵션으로 로익 레미가 자리를 잡은 상황에서 굳이 팔카오를 또 데려온 것이다.[13] 다만, 모라타를 영입해놓고 그 시즌에 사임해 실제적으로 모라타를 다룬 적은 없다.[14] 2018년 첫골이 4월달이다.[15] 2019/20 시즌까지 임대이며 2020/21 시즌부터 완전이적이다.[16] 본래 시즌 종료 후, 완전 영입을 약속했는데 밀란이 갑자기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지 못 하면 이과인을 영입하지 않겠다'''로 태도를 바꿔서 유벤투스와 이과인 측이 첼시와 협상을 맺은 것이다.[17] 참고로 모라타는 나폴리를 제외한 모든 팀을 뛰었으며 레알 마드리드에선 2012-13 시즌, 한 시즌 동안 같이 뛰기도 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유벤투스와 첼시 모두 모라타가 떠나니까 그의 공백을 채우려고 이과인을 데려왔다는 것이다.[18] 앞서 말했듯이 이과인의 임대 계약은 성적에 관련된 3가지 옵션 중 하나라도 달성하면 임대 기간을 연장할 수 있었다. 그 3가지는 리그 3위 + 리그 1골 이상 / 유로파 리그 우승 + 유로파 리그 8골 이상 / 리그 15골 이상으로 이 시즌 첼시는 리그 3위와 유로파 리그 우승을 기록하였고 이과인은 리그 1골 이상을 넣으면서 1번째 옵션을 달성해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으나 첼시가 이를 포기한 것이다.[19] 노장인 필리포 인자기가 제 몫을 하긴 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알베르토 질라르디노는 셰브첸코와 같이 뛸 때는 잘 해서 월드컵 멤버에도 들어갈 정도였지만 셰브첸코가 떠나자 귀신같이 폼이 떨어지고 주전 경쟁에서도 밀리게 된다. 그리고 당시 밀란이 셰브첸코의 번호였던 7번까지 주며 레알 베티스에서 데려온 브라질 출신의 공격수 히카르두 올리베이라는 심각한 부진 끝에 한 시즌만에 밀란을 떠났다. 결국 밀란은 호나우두를 데려왔고 호나우두가 잔여 기간 동안 꽤 잘 해주었지만 다음 시즌에 유리몸이 재발하여 거의 뛰지 못 했고 결국 밀란은 미리 영입해놓은 알렉산드르 파투가 나이가 차서 선수 등록이 될 때까지 공격수 재난에 시달려야했다. [20] 밀란이 챔스에 올라가지 못 한 것은 피옹테크와는 크게 연관이 없다. 애초에 밀란은 공격수만이 문제가 아닌 팀이었기 때문이다. 피옹테크는 세리에A 득점 랭킹 3위로 상당히 좋은 시즌을 보냈고, 그 결과 피옹테크에게 완전히 자리를 내준 패트릭 쿠트로네울버햄튼 원더러스 FC로 이적을 해야했다.[21]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피옹텍은 새 시즌을 앞두고 19번에서 '''9번으로 등번호를 바꾸었고''' 급격히 기량이 떨어졌다. 새로 이적한 헤르타 베를린에서는 9번의 주인이 있기 때문에 일단 7번을 받았다.[22] 이 시즌, 초짜 감독인 프랭크 램파드를 선임한 것도 에이브러햄같은 유스 선수들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서이다. 램파드는 더비 시절에 피카요 토모리메이슨 마운트를 임대하여 아주 잘 써먹은 바 있다.[23] 이 기록은 같은 시즌에 번리 전에서 크리스천 풀리식이 번리 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면서 넘겨줬다.[24] 이 기록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델레 알리와 동률의 기록이다.[25] 최연소 기록은 아르옌 로벤이 갖고 있다.[26] 사실 이건 캘럼 허드슨오도이의 재계약 때부터 예견되어온 문제였다. 잠재력이 있지만 아직 그걸 완전히 터뜨리지 않은 오도이를 무작정 주급을 올리고 재계약했는데 오도이보다 더 많은 걸 보여준 에이브러햄이 오도이만큼 주급을 높게 원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문제다.[27] 그러나 후에 이와 다른 뉴스가 나오자 에이브러햄이 이제야 진짜 뉴스가 나왔다고 하는 걸 보면 루머였는 듯 하다.[28] 공교롭게도 맨유와 레알의 7번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이후로 저주에 걸리기 시작했다. 맨유 7번은 마이클 오웬, 안토니오 발렌시아가 이어 받았는데 이들은 기대치에 못 미치는 성적을 받거나 혹은 7번이 가지는 부담감(데이비드 베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이 상당해 내려놓거나 했다. 문제는 그 이후의 7번은 하나같이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에 하나같이 저주에 걸린 듯 하였다. 레알 마드리드 역시 호날두가 남기고 간 7번에 저주가 걸렸다. 후임인 마리아노 디아스에덴 아자르가 예상보다 못 미치는 성적 부진을 겪고 있다. 정작 레알 10번을 간신히 극복했는데 이번엔 7번이 말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