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날 9번의 저주

 



1. 개요


2018년까지 아스날 공격진의 빈공을 심각하게 야기했던 전설의 저주로, 이 저주가 없었다면 아스날은 아르센 벵거 재임 기간 중 최소 2개의 우승 트로피를 더 들어올렸을 것이다.
등번호 9번은 축구에서 스트라이커를 상징하는 번호다. 호나우두, 앨런 시어러, 로비 파울러, 파트릭 클루이베르트, 필리포 인자기, 페르난도 토레스, 루이스 수아레스,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카림 벤제마 등 내로라하는 스트라이커들이 이 등번호를 달고 뛰며 활약했다. 하지만 아스날에서는 알렉상드르 라카제트가 오기 전까지 안습의 절정체였다.
2017-18 시즌 영입된 알렉상드르 라카제트가 9번을 달고 꽤 준수한 활약을 했고, 2018-19 시즌부터는 맹활약을 하면서 현재 이 저주는 '''사실상 종결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2. 원인


첫째로 아르센 벵거의 벵거볼을 들 수 있다. 왜냐하면 벵거볼의 특성 상 전방 스트라이커의 비중이 낮아지므로 당연히 공격수들이 힘을 쓰기 힘들다. 문제는 아스날이 빈약한 공격력 탓에 이를 개선하고자 이름 값 되는 스트라이커를 기용하려 드는데, 문제는 그 이름 값 있는 스트라이커들은 죄다 벵거볼의 특성 상 활약을 하기 힘들고, 간혹 스카우터가 안티인지 먹튀급 선수를 데려 온다는 것. 당연하겠지만 벵거가 옷을 벗거나 실리축구로 방향을 바꾸던가, 9번 자리에 벵거볼에 맞는 선수가 와야 하는데 '''그런 적이 없다'''.
따라서 공격력은 공격력 대로 빈약하고 선수는 선수대로 제 기량을 발휘 못하는 것. 실제로 제이미 바디가 이러한 점 때문에 아스날행을 거부했고, 아스날에 대한 애정을 피력했던 로빈 반 페르시내 안의 작은 아이 운운하며 맨유로 이적한 것도 실은 벵거볼로 인해 애초에 본인의 입지가 불안함을 알고 그런 선택을 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 사실 반 페르시가 월드 클래스니 어쩌니 하는 것도 2010년대 이후 이야기로 최전성기인 11/12시즌 전까지는 부상 등의 이유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적이 많다.
두 번째 원인은 초창기 벵거가 부임했던 시절 있었던 '''주전 공격수 티에리 앙리(14번)와 데니스 베르캄프(10번)[1] 중 그 누구도 9번을 달지 않은 점을 들 수 있다'''. 게다가 이들은 아스날 역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평가받는 사람들이다. 애당초 둘 중 하나가 9번을 달았다면 9번의 저주는 언급되지 않거나 언급되더라도 2006~7년대 이후부터 역사를 썼을 가능성이 높다.
해당 선수들은 주전 공격수로 입지가 워낙에 탄탄했던 탓에 다른 공격수들이 설 자리가 많이 부족했고 당연히 9번을 단 선수는 다른 변수가 아니더라도 필연적으로 이 둘에 치여 입지가 부족했을 것이다. 실제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AFC 아약스가 아닌 아스날에 왔다면 커리어가 꼬였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은데 거기에 만일 입단했다면 9번을 주기로 했다고 하니 ...
그리고 우나이 에메리 감독이 부임하고 9번인 라카제트가 아스날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할 정도로 이 저주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는데, 아스날 팬들은 우나이 에메리 자체를 저주라고 여기고 있다. 에메리가 잘린 이후 미켈 아르테타 부임 이후 시즌 내내 부진하던 라카제트가 막판 다시 부활했다.

3. 희생자 목록



3.1. 폴 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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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약 시기: 1995/96 시즌
'''기나긴 저주의 시작.'''
'''이 저주와 인성 문제로 커리어가 나가리되다.'''

이 저주의 시작은 90년대 중반으로, 원래 1987년 입단해 팀의 주공격수로 활약하던 現 스카이스포츠 해설자 폴 머슨(Paul Merson)이 9번으로 등번호를 바꾸면서[2] 시작된다. 폴 머슨은 원래부터 사생활에 문제가 있던 선수였지만 9번을 단 1995년 이후부터 팀 내 불화와 알코올 중독, 도박 중독 등 온갖 안 좋은 이슈를 터뜨리며 미들스보로로 방출되었다.
이후에도 벵거 감독이 도핑 의혹이 있다는 등의 아스날에 적대적인 반응들을 많이 하며 아스날 팬들의 레전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었지만 에메리 & 아르테타 체제 아스날에게는 매우 좋은 평을 많이 하며 레전드라고 인정하는 팬도 꽤 있다.

3.2. 니콜라스 아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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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약 시기: 1997/98 – 1998/99 시즌
'''라카제트 이전까지 아스날 최고의 9번, 부정할 수 없는 최고의 재능.'''
'''아넬카의 저니맨 여정의 시작. 멘탈 甲 비긴즈'''
그리고 이를 물려받은 선수는 '''니콜라 아넬카'''. 시즌 초반 활약은 준수했고 나이치고 골도 꽤나 넣어줬지만, 이 양반의 멘탈과 이 양반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실질적인 9번의 저주의 기점. 계속 싸우기만 하다 1998년 시즌 종료 후 바람같이 레알 마드리드로 날아갔다.
사실 아스날에서의 아넬카는 저주와 전혀 관련이 없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인데 레알 마드리드에서 아넬카는 전혀 자리잡지 못 하고 그 뒤부터 수많은 팀을 뛰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아넬카는 현재 EPL의 빅6 중 4 팀에서 뛴 바 있는 특이한 커리어를 가지게 되었다.[3]
이후 행적은 아넬카 문서에서 참조할 것. 여담으로 아넬카를 팔고 '''대체자로 사 온 선수가..'''

3.3. 다보르 슈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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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약 시기: 1999/2000 시즌
'''하락세인 선수를 데려온 아스날의 병크.'''
'''월드컵 득점왕 출신도 피해갈 수 없었던 저주와 노쇠화.'''
아넬카가 레알 마드리드로 날라버린 대안으로 레알 마드리드에서 1998년 월드컵 득점왕 크로아티아의 스트라이커 다보르 슈케르를 데려왔지만, 이 선수도 급하게 데려왔던데다 애초에 하향세였고, 9번을 달고 나서 부상과 실력 저하로 먹튀가 되어 완전히 이미지를 구겼다.

3.4. 프란시스 제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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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약 시기: 2000/01 – 2002/03 시즌
'''9번 저주의 정점.'''
'''아스날 이후의 커리어마저 꼬여 버린 비운의 유망주.'''

수케르가 떠난 2001년부터는 에버튼에서 8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지불하고 영입한 젊은 유망주 스트라이커 프란시스 제퍼스가 9번을 이어받았지만, 이 선수가 9번의 저주 정점을 찍고 만다. 심각한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한 것. 제대로 출전했을 때도 그냥 못했다고 한다. 다시 에버턴으로 임대이적 한 후 찰튼 애슬레틱, 레인저스 FC, 블랙번 로버스, 입스위치 타운, 셰필드 웬즈데이, 뉴캐슬 유나이티드 제츠, 마더웰, 플로리아나 FC, 애크링턴 스탠리 FC를 거치고 현재는 에버턴 U-18 팀 수석 코치를 맡고 있다.
코치를 맡던 도중 2020년 8월에는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3.5.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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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약 시기: 2003/04 – 2005/06 시즌
'''차기 아스날 에이스로 점찍어 놨던 영입이고 무난했지만 향수병 끝에 스페인으로 돌아갔다'''
제퍼스를 에버튼으로 돌려보낸 뒤 9번을 이어받은 선수는 세비야에서 1000만 파운드를 주고 영입한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 다른 9번과 비교해 보면 레예스는 기록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골 결정력이 부족해 보일지 모르지만[4] 원래 레예스의 주 포지션은 윙어이고 아스날에서만 섀도우 스트라이커로 뛰었다. 그나마도 2004/05 시즌까지는 데니스 베르캄프가 건재했던 관계로 확실한 주전도 차지하지 못 했다. 그러나 2005/06 시즌에는 베르캄프를 제치고 앙리와 함께 투톱으로 뛰었는데 이 시즌만큼은 꽤 괜찮은 활약을 보여줬다. 그러나 향수병이 심했는지 틈만 나면 스페인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불평해 팬들에게 어그로를 잔뜩 쌓았다. 2006년 결국 레알 마드리드줄리우 밥티스타와 맞임대 조건으로 떠났고 임대가 끝난 뒤[5],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다만, 레예스가 팀을 떠난데에는 향수병만이 원인이 아니다. 윗짤에도 나와 있지만, 게리 네빌폴 스콜스의 거친 플레이로 인해서 레예스의 폼이 죽은 것 역시 부정을 할 수 없다. 올드한 로컬 아스날팬들이 아직도 저 둘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
또한, 데뷔시즌 5개월동안은 환상적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아쉬운 선수. 하지만 라리가에서는 꽤 오래 활약하고 세비야에서 유로파 3연패의 주역 중 한명으로 아스날을 떠나 만개했다.
2019년 6월 1일, 향년 35세의 나이에 레예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그와 그의 활약상을 기억하는 아스날 팬들은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아스날행을 선택하는 스페인 선수들에게 꽤 영향을 준 선수이기도 하다. 루카스 페레스, 데니스 수아레스, 다니 세바요스 등등.

3.6. 줄리우 밥티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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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약 시기: 2006/07 시즌
'''칼링컵에서만 잘한 반쪽짜리 공격수'''[6]
'''[밥] 비긴즈.'''
그리고 그 9번을 이어받은 밥티스타...그렇다. '''콰밥만훈의 그 밥이다.''' 아스날 유니폼을 입고 35경기 10골을 기록하긴 했지만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선 3골만 기록한 채 레알 마드리드로 되돌아갔다.

3.7. 에두아르도 다 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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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약 시기: 2007/08 – 2009/10 시즌
'''날아오르려던 찰나에 최악의 부상을 당하다.'''
'''아스날 역사상 가장 안타까운 9번.'''
밥티스타가 떠난 뒤 아스날에서 9번을 달았던 선수는 브라질 출신 크로아티아 대표 선수인 에두아르두였다. 2007년 여름 아스날에 입단한 에두아르두는 시즌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주전 입지를 굳혀가는 듯했다. 그러나 이듬해 2월 버밍엄 시티와의 경기에서 지금도 최악의 부상으로 간간히 회자되는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끔찍한 부상을 당했다. 1년 뒤 복귀하긴 했지만 떨어진 경기력을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했다.
이후, 에두아르도는 10/11 시즌에 샤흐타르 도네츠크로 이적했는데 챔스 조별 리그에서 '''바로 아스날과 만나게 되었다.''' 에두아르도는 아스날 원정에서 많은 홈 팬들의 환호를 받았고 득점에도 성공했다. 친정 팀 예우를 위해 세리머니를 하지 않았고 아스날 팬들 역시 실점했음에도 에두아르도에게 자기 팀 선수인 것처럼 환호를 해주었다. 에두아르도가 교체될 때 박수까지 쳐주며 훈훈한 마무리를 보여줬다.[7]

3.8. 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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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약 시기: 2011/12 시즌
'''메트로 선정 아스날 역사상 최악의 스트라이커 1위.'''
'''한국에 아스날 안티가 많이 생긴 이유 중 하나.'''
[8]
그리고 에두아르두 이후 1년간 없던 9번을 이어받은 선수는 이나모토 준이치 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아스날에 입단한 아시아 선수인 박주영. 한 때, 혼다 케이스케와 함께 아스날 입단 루머가 있었는데 이 때, 벵거가 인터뷰로 혼다는 "No"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고 박주영에 대해서는 "Yes"라고 대답한 것이 알려지면서 국내 팬들에게 아주 큰 주목을 받았다.[9] 여담으로, 이 때 나왔던 드립이 '박주영 No.9, 혼다 No'
그러나 그의 아스날에서의 활약은 리그컵에서 1골넣은게 겨우다.. 더이상 자세한 설명은 없다고 보면 된다. 특히 챔피언스리그에서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와의 4차전에서 슈팅을 1개도 날리지 못하고 매우 부진했는데, 사실상 이 경기가 아스날에서 박주영의 운명을 갈라 버렸다.
박주영이 이 저주에 걸린 이유를 들자면, 일단 1공격수인 로빈 반 페르시가 '''이 시즌부터 유리몸을 탈출했다.'''[10] 2공격수는 마루앙 샤막이었는데 샤막은 반 페르시와 타입이 다른 타겟형 공격수로써 전술적 변화를 줄 수 있는 가치라도 있었다. 그런데 박주영은 아스날에 전술적인 변화를 줄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었으며 기량이나 폼에서도 아스날에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리저브 경기에서 샤막보다 득점을 많이 했다고는 하지만 다 주워먹기 식인데다 경기력 자체는 부족하다는 코치의 평이 있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당시 유망주에 불과했던 미야이치 료가 더 낫다고 할 정도.
이후에는 RC 셀타 데 비고로 임대를 갔지만 여기서도 부진했으며, 2013-14 시즌 교체로 리그컵 첼시전을 뛴 것을 마지막으로 2014년 6월 방출되었다. 현재는 FC 서울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
아르센 벵거는 후에 자서전에서 박주영을 언급하면서 "분명 재능이 있음을 의심치 않았던 선수였지만, 자신이 아스날에서 뛰기에 충분한 선수인가를 어필할 수 있던 경기를 찾지 못했다"고 언급하였다. 물론 본인이 박주영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지 못했고, 박주영이 아스날에서 그 능력을 100% 발휘하지 못했다는 걸 덧붙였다.

3.9. 루카스 포돌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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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약 시기: 2012-13 – 2014/15 시즌
'''레예스, 에두아르도와 함께 그나마 저주 해제에 가장 근접했던 선수.'''
'''불안한 중반과 최악의 말년이었으나, 저주를 어느 정도 깼다.'''
그 후에 등장한 No.9는 FC 쾰른의 강등으로 전 시즌 겨울 이적 시장 때 쾰른과 합의를 봐서 자유 계약으로 영입할 수 있었던 루카스 포돌스키. 2012/13 시즌의 프리시즌에는 전 9번인 박주영도 같이 뛰었는데 아스날은 9번을 포돌스키에게 주고 박주영에게 30번을 주었으며 이적 시장 후기에 박주영이 셀타로 임대를 가면서 등번호를 정리했다.
포돌스키는 2012년 10-10을 기록하면서 레예스 이후 가장 뛰어난 아스날의 9번으로 저주를 깨리라는 기대를 모았지만, 2013-14 시즌의 시작인 페네르바체와의 챔피언스리그 3차 예선전에서 햄스트링 부상으로 10주 결장을 찍게 되어 9번의 저주가 다시 열릴 것이라는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부상에서 돌아온 후에도 계속 리그 경기에 교체 멤버로만 활용되며 아스날 9번의 저주가 계속 이어지나 싶었지만, 월콧의 부상 이후 시즌 막판에만 중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13-14 시즌 40경기 12골이라는 준수한 기록을 남겼다.
플레이메이커 성향이 짙은 아스날의 2선에서 결정력이 뛰어난 포돌스키의 존재는 팀 공격전술의 다양화를 이끌어냈고, 램지, 월콧의 부상 이후 부진에 빠진 지루가 다시금 되살아나는 계기가 되었다. 2013-14 시즌 중반까지 이어지던 포돌스키의 이적설은(드락슬러와의 스왑딜, 도르트문트 이적 루머) 시즌 막판 대활약 이후 잠잠해졌지만, 2014-15 시즌에는 벤치만 달구다가 인테르로 임대 이적하면서 저주를 이어갔다. 그러나 이미 아스널에서 폼이 죽은 포돌스키는 인테르에서도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펼쳐 반 년간 임대생활을 끝내고 런던으로 돌아왔어도 팬들에게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았다. 결국 그는 이적을 결심하고 2015년 7월 4일, 갈라타사라이로 둥지를 텄다. 그리고 아스날은 2016시즌이 끝날 때까지 9번은 공석이었다.

3.10. 루카스 페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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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약 시기: 2016/17 시즌
'''17M을 들여놓고, 기회를 많이 받지 못한 채 벵거의 쓸놈쓸 병크로 희생양이 되다.'''
'''부상과 경쟁자들 덕분에 본인의 클래스를 입증할 기회조차 없었던 선수.'''
2016년 8월부로 드디어 이 번호를 쓰게 될 '''새 주인이 나타났다.''' 주인공은 전 시즌 데포르티보에서 17골을 넣으며 대폭발한 '''루카스 페레스'''. 세르지 나브리의 이적으로 27번을 달 수도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36번, 45번 같은 등번호를 받을 수 있었으나, 본인은 존경하는 선배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가 달았던 '''9번'''을 선택했다. 16-17시즌 나올때마다 활약이 준수하여 이번에야말로 저주를 깰수 있나 했는데, 문제는 '''벵거는 이상할 정도로 페레스를 경기에 기용하지 않고 있다'''. 구너들은 후반기 한없이 부진한 알렉스 이워비 등은 고집하면서 나올 때마다 경기력이 좋은 루카스를 선발로 쓰지 않는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에이전트는 선수가 아스날에서 행복하지 않다는 인터뷰를 했고 무수한 이적설이 나도는 상황.
결국 9번을 라카제트에 통보없이 뺏기고 선수의 분노가 폭발, 데포르티보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이유없는 무기용에 아무런 말도 없이 번호까지 빼앗아간건 변명 할 수 없는 벵거의 잘못.
에메리 체제에서는 중용 받나 했으나, 2018년 프리시즌 이후 이적시장 막판 웨스트햄으로 이적한다. 현재는 알라베스에서 다시금 클래스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페레스가 9번을 받은 16/17 시즌에 경쟁자 중 한 명인 시오 월콧은 시즌 19골을 기록하면서, 두 번째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11] 또한, 대니 웰벡알렉시스 산체스와 월콧이 있는 상황에서 전술적으로 페레스를 압도하는 선수이다. 즉, 벵거가 페레스를 우선시 할 이유는 애초에 하등 없었다. 무엇보다, 톱으로 선수를 영입했는데 그 자리에서 매우매우 별로였다.

3.11. 알렉상드르 라카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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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약 시기 : 2017/18 시즌 – 현재
'''18-19 시즌 아스날 올해의 선수'''
'''20-21 시즌 아스날의 에이스 중 한 명'''
부상과 적응 등의 문제로 아스날에서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던 루카스 페레스가 이적이 유력한 상황에서 새로 영입된 라카제트가 페레스의 뒤를 이어 저주받은 번호를 물려받았다. 아스날 구단 이적료 기록을 세우며 영입된만큼 저주를 깰 수 있을지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초반에는 EPL 스타일에 적응을 못하며 고전했으나, 11월부터 아스날 공격진을 캐리하며 맹활약하기 시작하며[12] 9번 저주의 종결을 만천하에 알리는 줄 알았다.
그러나 중반에 부진이 찾아왔고 겨울 이적시장에서 경쟁자로 보였던 피에르 오바메양이 영입되며 9번의 저주가 발동된 거 아니냐는 소리가 돌았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오바메양과 경쟁이 아닌, 조화를 이루면서 시즌 막판 팀을 캐리했다. 저주를 깨부수고도 남을 활약상이었지만, 아직 첫 시즌이다 보니 지켜봐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13]
하지만 2018-19 시즌의 라카제트는 10월 현재, 리그 4득점 2도움을 기록하고 아스날 9월의 선수상도 수상하며 9번의 저주를 깨줄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다.
11월과 12월에 들어서면서 부상으로 인해폼이 떨어지며 대부분 경기를 교체 출전하고 있고 공격포인트를 쌓지 못했고 팀이 연패를 당하긴 했지만 그런 것 상관없이 본인의 경기력은 좋았고 1월 들어 다시 득점포를 가동했다. 애초에 라카제트는 앞의 9번 저주 해당자들보다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나은 폼을 보여주고 있다.
2월 10일 26R 허더즈필드 원정에서 리그 10호 골을 기록, 저주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점차 보여주고 있다. 4월 기준으로 리그 13골로 잘 하면 득점왕 경쟁까지 할 수 있는 폼을 보여주고 있다. 17골을 넣고 있는 오바메양보다 폼이 좋다는 이야기도 생길 정도다.
2018-19 시즌 팬들이 선정한 아스날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며 9번 저주의 종결을 만천하에 알리는 듯 했다.
그러나 2019-20 시즌에는 주전에 밀려나는 등, 다시 저주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다만 골만 못 넣고 연계는 준수하게 하는 중이다. 그러나 시즌이 후반으로 달려가는 현재 폼은 역대 9번들에 밀리지 않는 최악의 수준이다.
그리고 리그가 중단되어 있는 시점에서 해피 벌룬을 흡입한 것이 기사화되며 더욱 논란을 일으켰다. 18개월 전에도[14] 라카제트는 팀 동료들과[15] 함께 해피 벌룬을 흡입해 논란이 있었는데도 또 일어난 것이라 비난 여론이 늘어나는 중이다.[16]
하지만 리그 재개 이후 매우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으며, 울버햄튼-레스터-토트넘-리버풀로 이어지는 빅 매치 4연전에서 3득점을 하는 등 다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간 라카제트의 무득점은 전술적인 이유였다고 일부 팬들은 보고 있다.[17]
그리고 20/21시즌 3라운드 동안 3경기 연속 골을 기록하며 진짜로 저주가 끝났음을 선언한 듯 했지만... 다시 아쉬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그마저도 '''현재 아스날의 공격수 중 그나마 나은 선수가 라카제트다...'''[18]
15라운드를 기점으로 팀이 살아나고 라카제트는 3경기에서 4골을 넣으며 다시 득점 페이스를 찾았다. 특히 스미스 로우와의 호흡이 발군. 이대로만 해 주면 저주 소리는 안 나올 것으로 보인다.

4. 9번은 아니었지만 최악이었던 공격수들


22번의 야야 사노고, 29번의 마루앙 샤막, 11번의 카를로스 벨라, 52번이었던 니클라스 벤트너[19] 역시 여기 등재된 9번 선수들과 별 다를 바 없이 활약을 하지 못하고 쓸쓸히 아스날을 떠났다.
다만 벨라는 꽤나 아쉬운 케이스. 애초에 포텐 자체가 벤트너나 다른 선수보다 우위에 있었지만, 당시에 벵거는 벨라가 오직 세컨톱에서만 잘 뛰는 선수라고 판단을 하고 소시에다드에 넘겼다. 그리고 소시에다드에서 벨라는 6년 동안이나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윙포워드와 세컨톱 자리에서 뛰게 한 벵거의 선택이 완벽한 실패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아마 벤트너 팔고 벨라를 잡아서 기회를 더 부여했다면 아스날이 우승 트로피를 하나쯤은 더 가져갔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꽤 활약한 스트라이커는 이제는 금지어가 되어버린 , 시오 월콧[20], 대니 웰벡, 올리비에 지루가 있으며, 2019-20시즌만해도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이 활약했으나, 재계약 이후로 거짓말같이 극심한 부진을 겪고 있다.

5. 아스날과 관련된 또 다른 저주



5.1.


램지가 비로소 밥값을 시작한 2012년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골을 넣을 때마다 '''유명인사가 한 명씩 사망하는(!!!)''' 섬뜩한 저주이다. 아론 램지 본인은 이 저주를 매우 싫어한다. 다만, 이 저주는 헛소리인게... 이 넓은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은 많고, 죽을 나이가 된 유명한 인사가 많다. 다만, 램지가 과거에 골을 넣었을때 빈 라덴이 사망한게 워낙 이슈가 되었던지라...
다만, 현지나 램지 본인은 이 저주를 아주 싫어한다. 아스날팬이라면 이제 언급을 말아야... 하루에도 수천명의 사람들이 죽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아론 램지 문서에 자세히 나와 있다.
램지가 2019년을 마지막으로 아스날을 떠나게 되면서 이 저주 언급은 더 이상 없을 것으로 보였는데, 유벤투스 이적 이후에도 종종 언급되고 있다.

5.2.


2012/13 시즌 슈체스니가 호러쇼를 보이면서 시작된 저주이다. 옌스 레만의 폼이 떨어지던 시기인 2007년부터 다비드 오스피나의 등장 시기였던 2015년까지 이어진 저주로, 비록 시기는 짧았지만, 제대로 된 골키퍼가 한 명도 없었던 이 시기가 아스날의 암흑기이기도 했기에 어느 정도 영향은 있었다.
사실 이 골키퍼 저주는 아스날의 골키퍼 코치였던 게리 페이튼의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저주의 희생자였던 우카시 파비안스키, 보이치에흐 슈쳉스니가 최근 페이튼을 비판하였는데, 패널티킥 코칭을 할 때 "아자르는 너가 다이빙한 반대 방향으로 슈팅을 할 거야", "아자르는 이쪽 방향 또는 저쪽 방향으로 찰 거야, 제일 좋은 건 너의 느낌대로 가는 거야"라며 엉터리 코칭을 했다고 밝혔고, 비디오 분석 때도 본인들의 실수 영상을 보여주며 "봐, 너는 완벽하지 않아(...)"라며 이상한 코칭을 해 주었다. 이런 식으로 코칭을 하니 옌스 레만, 페트르 체흐, 다비드 오스피나 등 엉터리 코칭 없이도 잘 하는 클래스 있는 키퍼들이 오기 전 아스날이 폭망하는 이유가 되기에는 충분하다. 참고로 파비안스키와 슈쳉스니 둘 다 스완지와 로마에서 포텐을 터트려 지금도 클래스 있는 키퍼로 인정받는다. 특히 슈쳉스니는 아예 유벤투스의 주전 키퍼로 자리매김했다. 참고로 이 사단을 만든 페이튼은 벵거의 사임과 동시에 짤렸다고 한다. 현재는 페이튼이 잘린 이후 아르테타를 따라 아스날로 합류한 이나키 카나 파본 코치가 레노, 마르티네스를 정상급 키퍼로 성장시켜 주목을 받고 있다.

5.2.1. 마누엘 알무니아


'''개그맨.'''
옌스 레만의 폼이 떨어질 때 즈음 주전으로 올라왔고, 레만이 이적하자 1번 등번호를 달게 된다.
'''그리고 귀신같이 폭망.''' 개그맨이라는 오명과 불안정한 경기력으로 우카시 파비안스키에게 밀린 끝에 결국 2012년 왓포드로 방출된다.

5.2.2. 우카시 파비안스키


'''너무 늦게 터진 비운의 골키퍼.'''
알무니아의 부진을 틈타 2010-2011 시즌 주전으로 발돋움한다. 개그맨 알무니아보다는 나았지만, 얘도 영... 결국 이후에 등장한 골키퍼 유망주, 비토 마노네보이치에흐 슈체스니에게 밀려 버린다. 하지만 마노네는 결국 밀어내는 데 성공했고, 2013-14 시즌 슈체츠니의 서브 골리이자 컵대회 골리를 맡아 '''아스날이 9년 만에 메이져 우승을 차지하는 데 일조한다.''' 하지만 더 많은 출장 시간을 원했던 파비안스키는 2014년 스완지 시티로 이적한다. 그리고 알다시피 '''스완지 시티에서 꽃을 피우며 아스날 시절 경쟁자였던 수체스니를 밀어내고 폴란드 골키퍼 주전 자리까지 차지하게 된다.''' 아스날 입장에서는 늦게 터져 안타까운 선수, 한편 아스날은 파비안스키의 이적 이후 서브 골리로 '''이 선수'''를 데려오게 되고 결과는...

5.2.3. 비토 마노네


'''반짝 활약, 이후 잠수'''
사실 원래 서브 골리였으나 2012/13 시즌 반짝 좋은 활약을 보여 기용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초반에는 준수한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보이치에흐 슈쳉스니가 부상에서 복귀함에 따라 다시 밀리게 되고 시즌이 끝나자마자 선덜랜드 AFC로 이적했다.

5.2.4. 보이치에흐 슈쳉스니


'''2013/14 시즌 골든 글러브 수상자[21]였으나 흡연과 사우스햄튼전 폼 저하로 버려진 선수.'''
'''하지만 세리에 A에서 기량을 만개하다'''
위 4명보다는 확실히 나은 활약을 보였으나 불안불안했던 경기가 더 많았으며, 14/15 시즌 20라운드 사우스햄튼전 대형 사고를 친 데 이어 락커룸 흡연까지 적발되어 벵거 눈 밖에 났다. 그리고 서브 골리였던 다비드 오스피나가 연일 맹활약을 한 데 이어 다음 시즌에는 페트르 체흐까지 가세. 결국 AS 로마를 거쳐 유벤투스로 이적하게 된다. 세리에 A에서는 정상급 골리로 대활약중이며 잔루이지 부폰과의 경쟁에서도 이기고 주전 골리로 활동하고 있다.

5.2.5. 2015년 이후 (저주 끝)


2015년 겨울, 슈체스니의 호러쇼에 보다 못한 벵거 감독은 서브였던 다비드 오스피나를 남은 시즌 주전으로 기용하였고, 이 때를 기점으로 아스날이 상승세를 타며 리그 3위까지 뛰어올라 막판 첼시의 리그 우승을 저지할 대항마로 꼽힐 정도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15/16 시즌부터 17/18 시즌까지 아스날에서는 설명이 필요 없는 월드 클래스 골키퍼 페트르 체흐가 합류하며 리그에서 활약했으며, 남미에서 탑 클래스로 인정받는 다비드 오스피나도 유럽대항전 & 컵 대회에서 주전으로 나왔다. 이때를 기점으로 사실 이미 저주는 확실히 끝났다고 봐도 된다.
허나, 페트르 체흐는 나이때문인지 17/18 시즌들어서 급격한 부진으로 무너지고 말았고, 결국 마지막 시즌에는 베른트 레노가 리그에서 주전을 맡았고 체흐는 컵대회에서만 나왔다. 오스피나의 경우는 늘 평타는 치고 있지만, 신장의 한계때문에 주전으로 나서지는 못했다. 우나이 에메리 감독 부임 이후에는 SSC 나폴리로 임대 후 이적해 클래스에 맞는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체흐의 노쇠화와 오스피나의 신장을 대체할 선수로 베른트 레노를 영입하였고, 레노도 좋은 폼을 보여주고 있다.
체흐와 오스피나가 모두 떠난 2019-20 시즌에도 레노가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다 닐 모페에게 어께 부상을 당하면서 다시금 골키퍼에 대한 불안감이 제기되었으나, 아스날 짬밥 원탑 선수인 서브키퍼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22]가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며 팀 상승세에 기여하였고 FA컵 우승 & 커뮤니티 쉴드 우승까지 이끌어 낸 이후 2000만 파운드라는 거액을 안겨주며 아스톤 빌라로 이적했다.
사실상 슈체스니를 마지막으로 2015년 이후 아스날은 골키퍼 저주의 팀에서 '''골키퍼 명가'''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5.3. 아시아 징크스


워낙 유럽에서 아시아인이 성공하기 몹시 힘들긴 하나, 맨유의 박지성, 토트넘의 이영표손흥민, 스완지의 기성용, 레스터의 오카자키 신지, 사우스햄튼의 요시다 마야, 맨시티의 쑨지하이, 위건의 알리 알 합시 등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한 아시아 선수는 존재한다. 허나 아스날의 경우, 아시아 선수들의 성적은 늘 처참했다.
아시아인이 유럽에서 성공하는 경우, 특히 EPL에서 성공하는 것 자체가 몹시 드문 일이지만, 이게 아스날에서 징크스로 작용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아스날이 아시아 시장(특히 일본)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아시아 선수들을 많이 데려온 영향이 제일 크다.''' 여기에 아르센 벵거의 영입 전략도 한 몫을 했다. 물론 이나모토, 미야이치, 아사노의 경우 유망주로써의 가능성을 보고 데려왔기에 성공 확률이 극히 낮을 수밖에 없다. 이 선수들 말고도 니클라스 벤트너, 베닉 아포베, 이그나시 미켈, 존 토랄, 토마스 아이스펠트 등 유럽 출신임에도 프로에서 시원찮은 모습을 보여준 아스날의 유망주들이 매우 많다. 다만 아시아인의 왕래가 잦았던 클럽이기에 징크스로 간주되는 것.
특히 한국에서 이 징크스가 많이 부각되는데, 2000년대 초반 아스날과 우승을 다투는 팀으로 라이벌리가 있었던 맨유에는 박지성, 최고 지역 라이벌인 북런던 더비의 토트넘에는 손흥민이라는 매우 훌륭한 성공 사례가 있기 때문에 크게 부각된다. 마침 아스날을 거친 대부분의 아시아 선수들이 일본 출신이라는 점도 있고.
이 때문에 구너이건 구너가 아니건 한국 축구팬들은 한국 선수의 아스날 이적설에 대해 반기지 않는 편이다. 구너가 아닌 경우는 박주영을 비롯하여 아스날에서 실패한 아시아 선수들의 사례를 언급하며 거부감을 드러내는 편이고, 구너인 사람들은 상기한 이유 + 악성 팬덤들의 유입으로 팬 커뮤니티의 질이 떨어지게 될까봐 더욱 거부하는 분위기이다.

5.3.1. 이나모토 준이치


현재 일본 J3리그 SC 사가미하라 소속. 아스날에서는 01-02 시즌 임대로 뛰었다. 박주영과 함께 이 징크스 해당자들 중 축구선수로 가장 성공한 케이스지만 하필 실패해도 아스날에서 실패하는 바람에 약간 억울하게 되었다.
1999 청소년 월드컵 준우승의 주역이었고,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으로도 선발되는 일본 최고의 유망주였다. 이와 같은 활약으로 유망주 수집가 아르센 벵거 감독의 눈에 들어 감바 오사카에서 아스날로 임대를 오게 된다. 하지만 '''파트리크 비에라, 레이 팔러, 에두 가스파르''' 등 쟁쟁한 경쟁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출전을 하지 못했고, 감바 오사카로 복귀한다.
허나 시즌 직후 열린 월드컵에서 2골을 뽑아내는 등 일본을 사상 첫 16강에 올리는 데 공헌했고, 바로 다은 시즌 임대를 간 풀럼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 유럽 무대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매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에도 잉글랜드, 터키, 독일, 프랑스 등 유럽에서 활약하다 일본에서 선수 생활 마지막을 보내고 있다.

5.3.2. 미야이치 료


현재 독일 2. 분데스리가 장크트 파울리 소속.
아스날이 최초로 완전 영입한 아시아 선수로, 2011년 겨울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아스날과 프로계약을 맺었고, 워크퍼밋 문제로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에 반년 임대를 다녀오게 되었다. 이후 11-12 시즌부터 아스날에 합류하여 간간이 기회를 받고 있었다. 시즌 후반기에 티에리 앙리의 임대 영입 등 자리를 잡기 어려운 상황이라 볼턴으로 임대를 다녀왔고, 초반에는 잘 하나 싶더니 후반에는 팀과 함께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못하며 볼턴은 강등된다. 아스날 복귀 후 이번에는 위건으로 임대를 다녀오고, 부상에 시달리다가 시즌 아웃, 위건 역시 강등되고 만다.
13-14 시즌에는 아스날에서 뛰고 있고, 비슷한 시기에 온 박주영보다는 나으나 그래도 몇 경기밖에 출장을 못하며 밀린 상태. 14-15 시즌은 에레디비시의 FC 트벤테로 임대되었으나 여기서도 거의 2군에서 뛰는 등 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결국 2015년 방출된다.
이후에도 선수 생활이 참 기구한데, 독일 2부의 장크트 파울리에 입단했으나 오자마자 십자인대 부상으로 시즌 아웃, 이후에도 부상으로 별 출장을 못하면서 그렇게 잊혀지는가 했지만, 18-19 시즌부터 중용 받고 있고 나름 활약 중이다.

5.3.3. 박주영


위의 박주영 항목과 박주영 문서 참고.

5.3.4. 아사노 타쿠마


현재 세르비아 FK 파르티잔 소속.
도하 참사의 주역으로 한국을 꺾는 주역이었다. 이 활약과 산프레체 히로시마에서의 활약으로 벵거 감독이 영입했고, 손흥민과 치열한 한일전이 예상되었으나 워크 퍼밋이 나오지 않아 최종적으로 아스날 소속으로 뛴 경기가 전무하다.
슈투트가르트 2시즌 임대를 갔는데 첫 시즌은 준수했으나 두 번째 시즌에는 기회를 많이 가지지 못했고 하노버 임대시절에는 13경기에 출전해 경기력은 무난했으나 공격포인트를 하나도 기록하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하노버가 바이아웃을 아스널에 지불하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아사노를 배제시킬 예정인데 이유가 하노버가 한 경기만 더 아사노를 출전시킬 경우 260만 파운드(약 37억 원)의 바이아웃을 아스널에 지불하며 완전 영입해야 하는 강제 조항이 있어서 하노버는 이 조항을 발동시키지 않기 위해 이후 후반기에는 아사노를 아예 출전명단에서 제외시켰다. 결국 하노버에서 임대복귀한 후에는 우나이 에메리 감독은 그를 전력 외로 판단하고 파르티잔으로 이적시킨다.

5.4. 주장 잔혹사


티에리 앙리 이후로 아스날의 주장들은 통수를 치거나, 부상과 부진에 시달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 윌리엄 갈라스(2007) - 팀 동료가 자신에게 선수단에 대한 욕을 한 사실을 구단의 허락도 없이 언론에 공개하여 구단 관계자들을 분노시키고 주장에서 잘렸다. 그 뒤에도 같은 국가대표팀 동료이기도 한 사미르 나스리와 싸우는 등 멘탈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고 계약이 만료되자마자 라이벌 토트넘 핫스퍼로 이적. 그래도 이적과 관련된 잡음은 없었다.[23]
  • 세스크 파브레가스(2008~2011) - 통수 1.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는 과정은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으나 첼시행 이후 아스날 팬들을 안티로 돌아서게 만들었다. 사실 본인이 아스날행을 희망하기는 했으나 어쨌거나 입은 유니폼이 지역 라이벌 첼시이기에 아스날 팬들은 분노했다. 심지어 세스크는 모나코 이적 이후에는 첼시를 비하하는 글을 올려 첼시 팬들에게도 평가는 안 좋다.
  • 로빈 반 페르시(2011~2012) - 통수 2이자 희대의 악질. 아스날에서 8년 가까이 잦은 부상으로 인해 좋은 폼을 오랫동안 보여준 적이 한 번도 없으나[24] 주장 완장을 단 11-12 시즌 철강왕의 모습을 보여주며 득점왕에 올랐다. 허나 이후에는 우승하고 싶다는 이유로 반 페르시의 부상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본 벵거와 팬들을 기만하고 경쟁팀인 맨유로 이적했다.
  • 토마스 베르마엘렌(2012~2014) - 주장이 된 이후 큰 부상에 시달렸다. 사실 아스날에서는 주장 완장을 달기 전까지는 부상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철강왕에 가까웠는데, 안드레 산토스, 키어런 깁스, 바카리 사냐 등 풀백의 전멸로 베르마엘렌이 좌측 풀백으로 뛰기도 했다. 다만 12-13 시즌부터 잔부상이 늘어나 기량이 다소 저하되었는데, 그럼에도 멘탈 자체는 매우 훌륭하였고 당시에는 코시엘니가 치고 올라오며 주전에서 밀린 상태였다. 또한 바르셀로나로 갈 때 많은 이적료를 주고 갔다.
  • 미켈 아르테타(2014~2016) - 베르마엘렌과 마찬가지로, 주장이 되자 큰 부상에 시달려 주장 완장을 달고 경기를 뛴 적이 거의 없다.[25] 다만 아르테타의 경우 주장을 단 시기가 선수 생활 말년임을 감안해야 하고, 경기 출전과는 별도로 라커룸에서 팀의 통솔력을 이끄는 등 주장으로서의 역할을 매우 잘 수행했고, 토니 아담스 이후 오랜만에 아스날에서 은퇴한 주장이 되어 팬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은퇴 후 3년 6개월 뒤 아스날의 감독으로 부임하여[26] 다시 위기의 아스날을 이끌어 가고 있다.
  • 페어 메르테사커(2016~2018) - 베르마엘렌, 아르테타와 마찬가지로 주장이 되자 큰 부상을 당했다. 메르테사커 역시 주장을 단 시기가 선수 생활 말년임을 감안해야 한다. 아르테타와 똑같이 부주장 시절에 주장 완장을 차고 뛴 경기도 많다. 이 와중에 2016-17 시즌 FA컵 우승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아르테타와 마찬가지로 아스날에서 선수 생활을 은퇴했고 은퇴 이후 아스날에서 유스 선수들을 감독하고 있다.
  • 로랑 코시엘니(2018~2019) - 통수 3. 2019년 여름까지는 아스날의 레전드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었으나 아스날 보드진의 재계약 제의에 불만을 가지고 계약 해지 요청에, 팀의 프리시즌 투어에도 무단 불참하며 팬들에게 어그로를 끌다가 주장을 박탈당하고 보르도로 이적했으며 입단식 영상에서는 아스날 유니폼을 입고 있다 벗어서 보르도 유니폼을 입은 모습을 보여주는 등, 아스날 팬에게 반 페르시급 통수로 찍혔다.
  • 그라니트 자카(2019) - 주장 완장을 찬 이후 경기력에서 형편없는 모습을 보이고[27] 10라운드 크리스탈 팰리스전에서 팬들에게 욕설을 시전하고[28] 주장 완장을 바닥에 내팽겨치는 등 사건 사고가 있었고 결국 주장직을 박탈당했다. 다만 이와 별개로 리더쉽 자체는 상당히 있는 편이고 아르테타 부임 이후 폼이 매우 좋아져서 2020년 아스날 올해의 선수 후보 5위까지 오르는 등 오히려 주장직 박탈이 약이 된 케이스. 아르테타 체제에서는 오바메양이 교체될 때 1순위로 주장완장을 받는 것으로 보아 비공식적으로 4주장 정도로는 다시 복귀한 듯 하다. 여담으로, 스위스 국가대표팀에서는 주장이다.
  •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2019~) - 한때는 자카나 다비드 루이스에 비해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으나, 2020년 아르테타 감독 부임 이후 득점 뿐 아니라 경기력 면에서도 전성기의 모습을 보이며 FA컵 우승의 주역이 되었고, 아스날의 영웅으로 자리매김했다. 숱한 이적설 끝에 2020년 재계약을 채결하며 이 징크스도 결국 종결될 것으로 보였는데... 재계약 이후 갑자기 폼이 떡락해 버리며 주장 잔혹사는 끝나지 않게 됐다.

6. 다른 팀의 비슷한 사례


  • 레알 마드리드 - , 7번의 저주 : 10번의 저주는 루카 모드리치가 깨부쉈다.
  • 첼시 FC - , 9번의 저주: 7번의 저주는 하미레스, 은골로 캉테가 깨부쉈다.
  • AC 밀란 - 9번의 저주 : 밀란도 필리포 인자기 이래로 9번들이 영 맥을 못추고 있다. 심지어 첼시 9번의 저주의 주인공중 한명인 페르난도 토레스는 AC 밀란에서도 똑같은 대활약을 하게되었다. 다만 이쪽은 9번 선수들만 문제가 아니었고 팀 자체가 인자기 은퇴 이후에 박살난지라...[29]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맨유 7번의 저주[30]: 현재 7번을 달고 있는 에딘손 카바니가 저주를 깨부술 조짐이 보이고 있다.

7. 여담


  •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당초 아스날 입단이 계획되어 있었는데 즐라탄이 아스날의 입단 테스트 요청을 거부해 무산되었다. 이때 즐라탄이 입기로 한 셔츠의 등번호는 9번이었다. 만약 즐라탄이 아스날로 갔으면...
  • 올리비에 지루가 포돌스키의 이적으로 이 번호를 달 기회가 있었으나 12번이 마킹된 유니폼을 산 팬들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거절한 일화도 있다. 올리비에 지루는 프랑스 국대에서는 9번을 사용한다.

8. 관련 문서





[1] 그나마 10번은 스트라이커의 등번호이기도 하기 때문에 베르캄프는 상대적으로 책임(?)이 적다. [2] 원래 10번이었다가, '''얼마 후 아스날의 레전드가 되는 선수'''가 오면서 9번으로 바꾸게 된다.[3] 아스날, 리버풀, 맨체스터 시티, 첼시. 물론 이 당시 맨시티는 이후처럼 높은 위상을 가진 팀이 아니었다.[4] 리그에서 10골 이상 넣은 시즌이 없다. 아스날은 물론 다른 팀에서도.[5] 전체적인 활약이 썩 좋은 것은 아니었으나 마지막 경기에서 극적인 두 골을 기록하면서 레알 마드리드의 리그 우승에 나름 공헌을 했다.[6] 오죽하면 아스날 시절 별명이 '''컵티스타'''였다.[7] 이후, 샤흐타르는 아스날과의 홈 경기에서 2:1로 승리하는데 이 때도 에두아르도가 득점했다.[8] 본래, 릴 OSC로 이적이 확정되는 듯 했는데 아스날이 오퍼를 걸자 릴과 계약을 끊어버렸다.[9] 당시,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있었기 때문에 맨유와 아스날의 경기에 대한 주목도가 아주 커졌었다. 그러나 둘 다 교체 명단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둘이 제대로 붙은 적은 없었다.[10] 반 페르시는 훌륭한 실력과 지독한 유리몸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고 이름도 이름인지라 시즌을 풀로 뛰는 "풀 페르시" 모드가 될 경우 리그 득점왕이 될 가능성이 높은 선수로 평가 받았다. 이는 팬들만이 아니라 전문가들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11-12 시즌에 완벽히 해냈다.[11] 사실 후반기에 폼이 떨어져 다시 후보가 되었지만 시즌 중반까지 활약이 상당히 좋았다.[12] 위의 9번 선수 중 아넬카를 제외하면 어느 누구도 이 정도의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13] 사실, 중반에 부진을 한 것도 무릎부상을 달고 뛴게 더 큰 이유였다.[14] 심지어 이 때는 18-19 시즌, '''프리미어리그 개막을 며칠 앞두고''' 일어났기 때문에 더욱 논란이 컸다.[15] 외질, 오바메양, 콜라시나츠, 귀엥두지 등.[16] 벌룬을 보유한 것 자체는 영국 내에서 불법은 아니다. 그러나 이를 흡입하는 것은 자칫하면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잉글랜드, 웨일스 내에서는 18세 미만에게는 팔지 않을 정도로 위험한 물질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원래 불법이 아니었지만 이 때문에 사망자가 발생하자 불법이 되었다. 아스날 구단 내에서는 18-19 당시 선수들에게 경고를 주어 그 행동을 하지 말 것을 경고했음에도 라카제트는 또 일으킨 것이다.[17] 실제로 아르테타의 343에서 라카제트는 2선으로 내려와 연계를 돕는 딥라잉 포워드 역할을 부여받았다.[18] 오바메양, 은케티아는 커리어 최악의 폼을 보여주고 있고, 페페도 그닥이다. 그나마 사카랑 마르티넬리가 유일한 빛. [19] 원래 26번이었으나 52번으로 바꾸었다가 아르샤빈이 팀을 떠나면서 공번인 23번으로 바꾸기도 했다.[20] 월콧의 경우에는 이후 윙어로 포지션을 변경한다.[21] 본인이 기여한 점은 딱히 없고 코시엘니-메르테사커 라인이 큰 역할을 했다.[22] 12-13 시즌 리그컵 레딩전 7-5 대역전극 당시 골키퍼였다. 이 때는 슈쳉스니, 파비안스키, 마노네에 이은 4옵션 골키퍼. 이후 3옵션 골키퍼와 수차례 임대를 거치며 19-20 시즌 세컨드까지 올라왔다.[23] 무엇보다 이 쪽에서는 갈라스는 잽도 안 될 정도로 최악의 통수를 친 선수가 한 명 있었기 때문에 갈라스의 토트넘 이적은 아주 충격적인 소식은 아니었다.[24] 오죽하면 반 페르시가 풀 페르시가 되면 리그를 제패할 것이란 드립이 축구 팬들에게 널리 퍼질 정도였다.[25] 아르테타는 베르마엘렌이 주장일 적에 부주장이었다 보니 그 시기에 주장 완장을 달고 경기를 뛴 적이 많다.[26] 2019-20 시즌 당시, EPL 내에서 최연소 감독이다.[27] 사실 이건 우나이 에메리의 형편없는 전술이 문제였다.[28] 자카가 교체 아웃될 때 이때 일부 팬들이 먼저 패드립을 시전했다.[29] 최근에 단 선수는 곤살로 이과인크시슈토프 피옹테크인데, 이과인은 급격히 노쇠화가 온 것이었고 피옹테크는 초반에 19번을 달고 맹활약을 하다가 이과인 이적 이후 9번으로 변경하고 저번시즌 세리에 득점왕 3위가 맞나 싶을정도의 폼 하락을 보여주며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 헤르타 베를린으로 이적한다.[30] 공교롭게도 맨유와 레알의 7번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이후로 저주에 걸리기 시작했다. 맨유 7번은 마이클 오웬, 안토니오 발렌시아가 이어 받았는데 이들은 기대치에 못 미치는 성적을 받거나 혹은 7번이 가지는 부담감(데이비드 베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이 상당해 내려놓거나 했다. 문제는 그 이후의 7번은 하나같이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에 하나같이 저주에 걸린 듯 하였다. 레알 마드리드 역시 호날두가 남기고 간 7번에 저주가 걸렸다. 후임인 마리아노 디아스에덴 아자르가 예상보다 못 미치는 성적 부진을 겪고 있다. 정작 레알 10번을 간신히 극복했는데 이번엔 7번이 말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