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셈부르크

 


[image] '''룩셈부르크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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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 대공국'''
'''Groussherzogtum Lëtzebuerg
Großherzogtum Luxemburg
Grand-Duché de Luxembourg'''[1]

[image]
[image]
'''국기'''
[image]
'''상선기 겸 민간기'''[2]
'''국장'''
'''Mir wëlle bleiwe wat mir sinn
우리는 여기 남기를 소망한다'''[3]

'''면적'''
2,586㎢
'''전체 인구'''
634,814명(2021년) | 세계 167위
'''인구 밀도'''
228명/㎢(2018년)
'''출산율'''
1.38명(2019년)
'''출생 인구'''
6,000명(2015년)
'''기대 수명'''
81세(2015년)
'''수도'''
룩셈부르크
'''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민주주의 지수'''
167개국 중 '''13위'''(2020년)[완전한민주주의]
'''대공'''
앙리
'''총리'''
그자비에 베텔
'''명목 GDP'''
전체: 694억 달러(2019년)
1인당: 113,196 달러(2019년)
'''GDP(PPP)'''
전체: 658억 달러(2020년)
1인당: 112,045 달러(2019년)
'''국부'''
$1,650억 / 세계 70위(2019년)
'''통화'''
유로
'''공용어'''
룩셈부르크어(국어, 행정, 사법 언어)
프랑스어(입법, 행정, 사법 언어)
독일어(행정, 사법 언어)
'''홈페이지'''
정부, 관광청( )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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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징
2.1. 국호
2.2. 국기
2.2.1. 국기변경에 대한 이야기들
2.3. 국가
3. 정치
5. 인구
6. 언어
8. 군사
9. 사회
10. 문화
11. 외교
11.1. 대한민국과의 관계
12. 관광
12.1. 교통
12.2. 생활

[clearfix]

1. 개요




유럽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대공국(Grand Duchy)이다.[4] 때문에 작은 국가로 저지대의 국가 중 하나다. 화폐 단위는 유로. 수도는 국명과 같은 '룩셈부르크'다. 네덜란드, 벨기에와 함께 베네룩스로 불린다.

2. 상징



2.1. 국호


룩셈부르크어 공식 명칭은 '''러처부어시 대공국 (Groussherzogtum Lëtzebuerg)''' 이다.
정식 국명은 '룩셈부르크 대공국'으로, 대공이 다스리고 있다. 원래 이 땅을 다스리던 룩셈부르크 가문은 한때 신성 로마 제국의 제위까지 차지하고, 헝가리보헤미아까지 차지했지만 결국은 가문이 사라지고 지금은 지명으로만 남게 되었다. 한때 유럽 많은 지역을 지배했던 가문답게 룩셈부르크 혹은 뤽상부르라는 이름은 유럽 여러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프랑스 파리뤽상부르 궁전이 있다. 그리고 룩셈부르크 가문의 사람 중 리니 백작 장 2세는 백년전쟁 당시 잔 다르크를 체포하기도 한다.

2.2. 국기



룩셈부르크 국기의 역사[5]
1972년 국가상징법, 1993년 국가상징법 개정[6], 민간기의 사용례
빨강 - PMS 032C(#EF3340)
하양 #FFFFFF
맑은 청색 - PMS 299C(#00A3E0)
빨강, 파랑, 흰색 가로 줄무늬로 1:2 또는 3:5 비율이다. 비공식적으로는 «rout, wäiß, blo»라고 불린다. 색깔은 룩셈부르크 가문의 색깔이라고 한다. 1845년에 등장하였지만, 1972년이 돼서야 공식 국기로 채택하였다.[7] 같은 해에 7:5 비율의 상선기를 지정하였다. 이 상선기는 선박[8] 뿐만아니라 항공기 등에도 쓰인다.
네덜란드기와의 혼동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1993년 7월 27일 개정 법률에 의해 국기와 상선기에 정확한 색상이 지정되었다. 지정된 색상은 파랑: PMS 299C와 빨강: PMS 032C이며, 상선기는 파랑과 빨강은 국기의 것과 동일하고 사자의 왕관에 지정된 노란색은 PMS 116C이다.

2.2.1. 국기변경에 대한 이야기들


[image]
룩셈부르크의 상선기 겸 민간기[9]
네덜란드 깃발과 구분이 어렵다는 이유로 2006년도 당시 CSV소속 의원인 미셸 볼터가 국기 변경을 제안했다.
2007년 7월, 국무회의에서 "삼색기는 국기로서의 지위를 유지해야하지만, 룩셈부르크 대공국 내에서는 붉은사자 깃발이 삼색기와 동등하게 쓰일 것"이라고 결론을 냈다. 1993년에 개정된 국가상징법의 개정을 통한 지위변경이라기보다는 기존 법에 명시된 상선기로 쓰이는 깃발을 삼색기와 동일한 비율을 적용하여 민간기로 쓰도록 인정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국기를 바꾸자는 이야기는 간혹 나오고 있지만, 국기를 바꿀 생각이 없다는 것이 현재 정부의 입장이다.
현재는 사용례와 같이 룩셈부르크에 공적인 행사가 있을 때 삼색기와 함께 민간기를 같이 게양한다. 유럽연합과 같은 국제적인 자리에서는 삼색기를 쓰고 있다.

2.3. 국가




3. 정치




입헌군주제이면서 의원내각제를 운영하고 있다. 의회(D'Chamber)는 60석 단원제으로 구성되고 있으며, 임기는 5년이다. 선거는 4개의 선거구로 나누어져 있다.(중앙: 21석, 동부: 7석, 북부: 9석, 남부: 23석) 개방명부식 비례대표제로 채택하고 있다. 즉, 선거구에 선출한 후보자 수만큼 투표할 수 있으며 여기서 표가 여러 정당으로 투표(분할투표제)를 하거나 한 후보에게 2표까지 투표(누적투표제)한다.
1919년에 의무투표제를 채택하였지만,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이다. 그럼에도 투표율이 민주주의 국가들 중에서 높아서 보통 '''90%'''에서 '''1%''' 위아래로 오가고 있다.

4. 역사




카롤루스 대제가 죽고 프랑크 왕국이 셋으로 분할되었을 때 잠시 장남 로타르의 영지인 중프랑크에 속했다. 중프랑크의 영토 중 알프스 이북 지역은 로타르의 이름을 따서 로타링기아(로트링겐)으로 불린다. 로타르가 죽고 로트링겐을 두고 서프랑크 왕국과 동프랑크 왕국의 분쟁이 벌어졌으나 최종적으로 동프랑크 왕국을 계승한 독일 왕국에 병합되었다.
이후 브라반트 공국(브뤼셀 백국), 림부르크 공국, 룩셈부르크 공국, 플란데런 백국 등이 있던 신성 로마 제국에 속하게 되었다. 아르덴 백작 지크프리트 1세가 트리어의 성 막시민 수도원으로부터 룩셈부르크 일대의 영토를 얻어내어 룩셈부르크 백작이 되어서 다스렸다. 지크프리트 1세가 세운 룩셈부르크 가문은 결혼 동맹 덕분에 14세기 초 보헤미아 왕국을 획득하였고,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에까지 올랐다. 룩셈부르크 가문은 아예 본거지를 보헤미아의 프라하로 옮겨버렸다. 룩셈부르크는 브라반트 공국, 림부르크 공국, 룩셈부르크 공국 등에 합쳐지게 되었다.
1437년 룩셈부르크 가문의 대가 끊겼고, 부르고뉴 공국이 새로 룩셈부르크를 지배했다. 이후 결혼 동맹을 통해 1477년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가 부르고뉴 공국을 상속받아서 합스부르크 네덜란드을 형성했다. 카를 5세가 퇴위하고 합스부르크 가문이 둘로 나눠졌을 때 합스부르크 네덜란드에 있던 룩셈부르크는 저지대의 영토와 함께 스페인 합스부르고 왕조의 스페인령 네덜란드에 상속되었다.
17세기에 루이 14세에 의해 잠시 프랑스에 병합되었다가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1714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결과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에게 귀속되었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후 대프랑스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1794년 프랑스가 벨기에와 함께 룩셈부르크를 점령했다.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열린 빈 회의에서 오스트리아가 북이탈리아를 얻는 대가로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를 포기했다. 룩셈부르크는 대공국으로 승격되었고, 네덜란드 국왕이 룩셈부르크 대공을 겸하게 된다. 또한 같은 해 세워진 독일 연방에 가입했다.
1839년 런던 조약에 의해 서쪽 영토 절반을 벨기에에 할양해야 했다. 1842년 독일 관세 동맹에 가입했다.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 일어나고 나서인 1867년 독일 연방을 탈퇴하고 영세 중립국의 지위를 받았다.
1890년 동군 연합이던 네덜란드에서 빌헬미나 여왕이 즉위하면서 룩셈부르크는 직위 계승 방식에 따라 방계인 나사우-바일부르크 가문의 아돌프 대공에게 상속되어 네덜란드의 지배에서 벗어나 분리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때 독일군에게 점령되었다가 종전 후인 1919년에 샤를로트 여대공이 즉위해서 룩셈부르크는 남편인 부르봉-파르마 가문의 펠릭스 대공의 통치를 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 때도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되었고, 네덜란드나 벨기에와 달리 아예 독일 본토로 합병되고 젊은이들은 독일군으로 징집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인 1945년 영세 중립을 포기하고 NATO에 가입하였다.
1987년에 부르봉-파르마 본가와 귀천 상혼에 대한 분쟁이 벌어져서 공식적으로 부르봉 가문과 결별하고 나사우-바일부르크 가문이라고 칭한다.

5. 인구




6. 언어


[ 1984년 2월 언어규정법 ]

Art. 1er. Langue nationale

La langue nationale des Luxembourgeois est le luxembourgeois.

1조 - 국어

룩셈부르크의 국어는 룩셈부르크어이다.

Art. 2. Langue de la législation

Les actes législatifs et leurs règlements d´exécution sont rédigés en français. Lorsque les actes législatifs et

réglementaires sont accompagnés d´une traduction, seul le texte français fait foi.(...)

2조 - 입법언어

입법활동과 시행령은 프랑스어로 작성한다. 번역이 동반될 때는 프랑스어만 인정한다.(후략)

Art. 3. Langues administratives et judiciaires

En matiére administrative, (...), et en matière judiciaire, il peut être fait usage des langues française, allemande ou luxembourgeoise(...)

3조 행정 및 법률 언어

(전략) 행정과 법률분야에서 프랑스어, 독일어, 룩셈부르크어가 (중략) 쓰일 수 있다.

Art. 4. Requêtes administratives

Lorsqu´une requête est rédigée en luxembourgeois, en français ou en allemand, l´administration doit

se servir, dans la mesure du possible, pour sa réponse de la langue choisie par le requérant.

(...)

4조 - 행정 청원

청원이 룩셈부르크어, 프랑스어, 독일어로 작성된 경우 당국은 가능하면 답변을 위해 청원에 쓰여진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후략)[23]

1984년 2월 언어규정법 중에서

}}}

룩셈부르크의 언어
언어
국어
입법언어
행정언어
사법언어
룩셈부르크어
O
X*
O
O
프랑스어
X
O
O
O
독일어
X
X
O
O
*: 법에 명시되진 않았으나, 의회에서 문서가 아닌 분야(토론 등)에서 사용 중
룩셈부르크는 외국인 주민과 주변 국가에서 매일 국경을 건너 일하러 오는 종업자들이 많기 때문에 언어 사용이 다채롭다. 룩셈부르크 정부의 언어 현황 소개 (영문)
룩셈부르크 헌법 제29조에 근거하여 제정된 1984년 2월 언어규정법에 의하면 룩셈부르크어는 '국어/행정/사법언어'이고, 그 외 프랑스어는 '입법/행정/사법언어', 독일어는 '행정/사법언어'로 규정되어 있다.
프랑스어는 사실상 공용어의 역할을 한다. 우선 입법 활동은 '''프랑스어만을''' 사용한다. 정확히 말하면 법안 작성 등 글로 쓰는 건 프랑스어로, 토론 등 말로 하는 것은 룩셈부르크어로 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프랑스어로 토론했다). 결과적으로 룩셈부르크 법률은 프랑스어로만 되어 있고 기타 공적 영역에서도 프랑스어 위주의 사용이 두드러진다. 룩셈부르크는 프랑코포니 회원국이며 유엔, 유럽연합 등 국제 무대에서도 꾸준히 프랑스어를 사용한다.[10]
룩셈부르크어는 1984년에서야 국어로 지정되었다. 개별 언어로서 정립된 지가 오래 되지 않아서 어휘량이 부족하고 철자법 체계도 통일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토박이들 사이에서 비전문적이고 짧은 일상 대화 위주로만 사용되고 있다. 재밌는 것은 수도가 있는 남쪽에선 프랑스어 어휘를 섞어 쓰고, 북쪽에선 독일어 어휘를 빌려 쓴다.[11] 현지인들과 대화해보면 아직도 자국어를 독일어 사투리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독일어는 행정 언어보단 '''룩셈부르크어의 문어체'''라는 인식이 더 강하다. 예를 들면 경찰서에서 룩셈부르크어로 신고를 하면 독일어로 받아쓰고 진술서를 준다. 사투리를 사용해도 글은 표준어로 쓰는 원칙과 비슷하다. 룩셈부르크인들은 독일어와 미묘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독일어를 너무 못하면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사람으로 여기지만, 또 너무 유창하게 하면 진정한 룩셈부르크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 의해 점령당한 이후 차차 룩셈부르크의 독자적 정체성이 형성되면서 생긴 관념으로 보인다. 룩셈부르크어가 독일어와 같은 뿌리를 두고 있어 친밀도가 높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일어를 아주 반기지도 않는다.[12] 그래서 프랑스어와 달리 독일어는 글을 쓰는 수단일 뿐, 말로써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물론 독일어로 말을 걸면 독일어로 답해준다.
초등교육에서는 독일어와 룩셈부르크어, 중/고등교육은 프랑스어 위주로 사용된다. 룩셈부르크어만의 어휘가 아직은 부족하기에 보완하는 역할도 있다.
결과적으로 룩셈부르크인들은 다국어 화자며,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유창하게 한다.[13] 반면 룩셈부르크 토박이들이 워낙 언어 능력자라서 외국인 근로자들과 이민자들이 룩셈부르크어를 배우려 하지 않는다. 정부는 이민자들에게 국어를 배우라고 권장하지만, 프랑스어만 그럭저럭 할 줄 알면 일상 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기 때문에 필요를 못 느낀다.
룩셈부르크시(市)를 포함한 남쪽에선 '''프랑스어가 주류 언어이다.''' 가게나 식당 등 일상 생활에서는 제일 먼저 프랑스어로 대화를 시도한다. 룩셈부르크어를 못하는 사람들이 과반수이고 어차피 토박이들도 프랑스어로 말을 건네기 때문이다. 특히 수도권은 2차 대전 이후 대거 이주해온 포르투갈계 자손들이 많아서 룩셈부르크어보다 포르투갈어가 자주 들린다. 반면 북쪽으로 갈수록 룩셈부르크어와 독일어가 확실히 더 많이 쓰인다.
영어는 제도적으로 지정된 언어는 아니지만 사실상 제2의 공용어 역할을 한다. 세계적인 회계법인이 많은 나라로서 영어를 구사하는 인력이 중요시되고 있기에 중/고등교육 과정부터 영어를 가르친다. 특히 수도는 4대 회계사, 투자 은행, 유럽 연합 기구들이 밀접된 곳이라서 룩셈부르크어 한마디도 모르면서 영어로 일하고 사는 외지인들이 수두룩하다. 적어도 룩셈부르크 시내에선 대부분의 공공 기관에서도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고 생활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앞서 서술했듯이 기본 언어가 프랑스어라서 직장에선 영어를 사용해도 일상 생활에선 프랑스어 몇마디를 아는 게 필수다.
신문과 방송은 전통적으로 독일어를 사용했지만 점점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추세다. 종류로 따지면 독어 신문이 조금 더 많지만,[14] 배포 또는 구독자 수로 따지면 불어 신문이 더 많다. 방송의 경우 RTL채널의 주 언어는 룩셈부르크어다.[15]

룩셈부르크의 그자비에 베텔 총리 기자 회견.[16] 영어를 제외한 3개 국어 모국어급 구사자이며 영어 실력도 수준급이다.

7. 경제




8.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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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의 E-3는 룩셈부르크에 기지를 두고 있다. 룩셈부르크군이 있다.

9. 사회


룩셈부르크 주민들의 성명은 프랑스식 이름 + 독일식 성 형태가 꽤 자주 보인다.[17]
외국인이 많다. 외국인 인구가 27만 명으로 인구의 46%를 차지한다. 국적만 해도 170개국이 넘는다. 다만 이중 대부분은 포르투갈,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처럼 그리 멀지 않은 국가 출신들이다. 특히 포르투갈인은 외국인 비율의 16%가 넘는다. 그리고 포르투갈의 영향으로 상술했다시피 포르투갈어가 널리 쓰이고 있다.
해외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고려하나 3개 국어를 사용하기에 상당히 가기 힘든 국가다. 보통 룩셈부르크로 이민가면 유학 후 취업 이민을 가장 많이 간다. 룩셈부르크에서 지속적으로 급여 생활자로 지낸 경우 조건에 따라 최대 24개월동안 실업 급여를 80%~85% 비율로 받을 수 있다. 기간이 지남에 따라 급여 비율은 감소하며 조건 충족을 위한 구직 활동을 병행해야 한다.[18]

10. 문화




11. 외교


주변국들과는 대체로 매우 우호적인 편이다. 그리고 문화적으로도 관련이 매우 깊기 때문에 독일어, 프랑스어도 많이 쓰이고 있고 프랑코포니, 유럽 연합에도 가입되어 있다.

11.1. 대한민국과의 관계




12. 관광


프랑스 파리[19]에서 출발하는 TGV를 타거나 벨기에 브뤼셀 남역[20]에서 출발하는 IC나 EC를 타면 갈 수 있다. 독일에서는 트리어 중앙역에서 레기오날익스프레스(Regional-Express)를 타거나 자르브뤼켄이나 프랑크푸르트에서 버스를 이용해서 갈 수 있다. 또한 스위스 취리히바젤에서도 인터시티 편으로 입국할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FlixBus 와 같은 교통편을 미리 예매하면 5유로~15유로 사이로 이용이 가능하다.
중앙 마을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의 핀델(Findel) 근처에 공항이 있어서 주변국에서 항공편으로 오는 것도 가능하다. 다소 가격이 비싼 룩스에어가 메인 항공사로 운항하고 있으나, 유럽의 저가 항공사인 이지젯이 2015년부터, 2016년부터는 라이언에어가 취항을 시작해서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룩셈부르크는 크게 세 개의 구로 나뉘고, 작게는 12개의 주로 나뉜다. 더 작게는 116개의 지방 자치체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수도인 룩셈부르크 주(Ville de Luxembourg, 빌 드 뤽상부르)만 간다. 여유를 두면 비안덴(Vianden) 고성까지도 가지만. 수도인 룩셈부르크는 크게 중앙 마을, 중앙 아랫 마을, 유럽 광장 방향 신시가지, 기차역 방향 신시가지로 구분된다. 마스코트는 노란 왕관을 쓴 사자 옆모습.
중앙 마을은 걷기에 아주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절한 규모고 가장 구경거리가 많은 지역이다. 그래도 성채 외곽을 돌아보거나 시내를 걸어보거나 공원에서 쉬어보거나 하는 정도가 전부. 뤽상부르 도시 박물관이나 공궁도 자리하고 있는데 뤽상부르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안 봐도 무방할 정도다.
중앙 아랫 마을은 중앙 마을을 덮어주는 형태로 길쭉하게 들어서 있고, 99%가 거주 구역인데, 아랫 마을과 중앙 마을 간의 고도차가 등산 수준으로 높다. 중앙 시내와 아랫마을[21]을 연결하는 길은 여러 군데로 나뉘어 있다. 출퇴근 하는 시민들을 위해 만들어둔 엘리베이터가 두 곳이 있는데 걸어서 오르내릴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이용해볼법하다. 특히 북쪽에 위치한 Pfaffenthal Lift는 투명 엘리베이터로 고소공포증만 없다면 전망을 보기에 안성 맞춤이다. 그 외에는 오솔길 비슷한 길은 약간 빙빙 돌아가는 코스에 일반 가정집들이 길 사이에 드문드문 있는 코스가 있다. 하지만 차로 옆에도 인도가 있고 그 차로를 따라가면 바로 Clausen이라는 곳으로 내려갈 수 있고, 옆에 다리 통해서도 내려가는 길이 있다. 아랫 마을에는 오래된 수도원이 있고, 그 근처에는 양조장도 있다. 특별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굉장히 차분하고 조용하며 Alzette라는 작은 강이 흐르고 있고 예뻐서 강을 따라 작은 길도 있으니 걸으면서 위에 마을도 한번씩 올려다보는것도 좋다. 그래도 위(중앙 마을)에서 바라본 아랫 마을들이 룩셈부르크의 주요 구경거리기도 하다. 중앙 마을 반대편 언덕으로 올라가면 유럽 연합 건물이 있고 그 근처에 룩셈부르크 박물관이 있다. 아랫 마을에는 클럽도 있고 호스텔도 있어서 젊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게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강남 스타일이 한참 인기있었을 때 싸이가 이 아랫 마을에 있는 클럽에 와서 잠깐 공연하고 간 적도 있다. 시간이 여유롭다면 아랫 마을과 윗 마을을 연결해주는 작은 길들을 오가는 것도 나름 재미다. 시내 중심부에서 아랫 마을로 가는 길은 여러 곳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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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광장 쪽은 현대적인 마천루가 들어서 있지만 지금도 개발 중에 있다보니 세 기둥 성채나 높은 건물들을 구경하고 찍고 오는 정도며, 기차역 방향의 신시가지도 룩셈부르크 사람들의 일상을 볼 것이 아닌 이상 이렇다 할 구경거리는 없는 편이다.
룩셈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1889년 착공, 1903년 준공, 2017년 5월 마침내 기나긴 보수 공사를 마쳤다.) 아돌프 다리(아래 사진)는 건설 당시 통치자인 아돌프 대공의 이름을 땄으며, 당시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아치교였다. 기차역 방향 신시가지와 중앙 마을 사이에 있으며, 아돌프 다리 근방에 인포메이션 센터와 무료로 개방된 박물관과 자연 공원이 있으니 룩셈부르크에 왔다면 들러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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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교통


고도차가 심하고 국가가 좁기 때문에, 룩셈부르크 시내에서는 주로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배차 간격은 15~30분 가량이며, 티켓은 버스 안에서 2시간권 티켓 형태로 판매하고 있다. 주요 정류장에서는 자동 판매기를 쓸 수도 있다. 2020년 전까지 가격은 2유로였으며 종일권은 4유로였다. 특별히 무언가를 찍는 게 아니라 아주 조그만 종이가 티켓이다보니 별달리 검사하는 시스템과 검표원은 없다. 그 대신 불시 검문이 있었고 무임 승차로 걸리면 35유로부터 벌금이 나왔다. Monthly Pass가 없다면 15유로부터 벌금이 매겨진다. 2017년 1월 기준으로 Monthly Pass의 경우 시내 전용은 25유로, 룩셈부르크 전체 패스는 50유로인데 이걸로는 기차도 이용 가능하다. 2015년 7월부터 시 정책으로 매주 토요일은 시내를 운행하는 버스가 무료가 되었다.
2020년 3월 1일부터 대중교통을 전면 무료화하였다.#
시외로는 기차도 운행되고 있으며, 2017년 12월 10일부터 룩셈부르크 시내에서 노면전차(트램)가 운행되고 있다. 1차로 오픈된 구간은 Luxexpo 에서 Rout Bréck-Pafendall 까지 8개역이었다가 2018년에는 Stäreplaz/Etoile까지 11개역이 되었다. 자세한 정보는 이곳에 있다. 홈페이지
별도로 공용 자전거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데, 단기간(7일) 대여와 장기간(1년) 대여로 나뉜다. 단기간의 경우 신용 카드로 1유로를 먼저 지불하면 대여 권리가 생기는데 이후 1회 30분은 무료, 5시간 30분까지 1시간 추가시 1유로가 추가 청구된다. 5시간 30분부터 24시간까지는 추가 요금 없이 5유로로 고정되며, 24시간이 지나면 분실로 간주된다. 룩셈부르크 내부 지도를 샅샅이 외우고 있다면 매우 편리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사실상 최대 하루 6유로를 주고 타는 셈이다. 이 자전거로 파리까지 간 사람도 있다.
자동차로 이동할 경우 대체로 양보를 잘 해 주는 운전 문화가 있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유럽 전체적으로 공사 구간이 많은 것을 감안해도 너무 공사를 많이 한다. 일단 시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만 하더라도 노면전차(트램)로 건설, 시내 중심가의 신규 백화점 건축, 아돌프 다리 보수 공사 등 엄청 많다. 그 외에도 고속 도로 전체를 막는다든가, 양방향을 일방 통행으로 만든다든가, 지역 전체를 막아버리는 경우도 상당히 자주 있을 정도. 차라리 공사 구간이 아닌 곳을 찾는 게 더 낫다. 그렇기 때문에 네비게이션에 의존하다가는 난감해지기 딱 좋은 운전 환경이기도 하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는 늘어난 인구에 따른 차량 증가와 어디나 존재하는 공사 구간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 그래서 유럽치고는 자동변속기의 비중이 매우 높은 국가다.

12.2. 생활


물가가 비싼 유럽에서도 인건비가 최고 수준이다. 음료수나 가공 전 식품 같은 건 그다지 비싸다고 느낄 수준은 아닌데 좀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나 상점에만 들어가면 지금껏 체험하지 못한 엄청난 가격을 볼 수 있다. 근처 독일/프랑스/벨기에의 도시들과 비교했을 때도 물가 차이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레스토랑은 인건비가 높은 만큼 정말 비싸지만, 마트 물가는 그래도 훨씬 싸다. 장보는 가격은 진짜 저렴한 편.(특히 술 종류) Aldi같은 마트 같은 경우는 싼 물건들이 많다(물론 품질이 안 좋은 경우도 많지만). 보통 마트 가격은 Aldi<Delhaize<Cactus 정도인데 마트 프로모션에 따라 어떨 때는 Cactus 에서 사는 게 싼 경우도 있다.
소득 대비 물가는 스위스와 비교하면 그리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앞서 언급한 근처 독일/프랑스/벨기에의 도시 중 각각 트리어(독일)/메스(프랑스)/아를롱(벨기에)은 각각의 국가들에서도 물가가 비교적 저렴한 편인 도시들이다. 룩셈부르크가 금융업으로 새롭게 부상한 소규모 국가긴 하지만 스위스 같은 국가가 아닌 조세 피난처 성격이 강하고 주변 국가들에 상당히 종속적인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국가다. 괜히 이 작은 국가 안에서 4개 국어(프랑스어/독일어/영어/룩셈부르크어)를 다 써가면서 사는 게 아니다.
비싼 지역에도 저렴한 집은 존재하므로 포기하지 말고 잘 찾아다니면 금방 적응이 가능하다. 서로 말없는 경쟁이나 견제가 심하기 때문이다. 프랑스/독일/벨기에 세 국가에서 룩셈부르크로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룩셈부르크인들도 이 주변 국가들로 나와서 거주하는 경우가 꽤 있는 편이다. 스위스와 국경을 맞댄 지역들은 해당 국가들에서 물가가 최소 평균 이상인 곳들이 대부분이지만, 룩셈부르크 주변 지역들은 물가나 집세가 비교적 싼 지역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주변 국가에서 기를 쓰고 룩셈부르크에 가서 일하려는 경우가 많지만, 룩셈부르크는 인구가 적은 국가라서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는 스위스와 비교하면 일자리수에 한계가 있다.
커피, 담배, 기름값은 다른 주변 국가들에 비교해 꽤 싸다. 그래서 국경쪽에는 유럽에 나와있는 전세계 거의 모든 정제 회사들의 주유소를 볼 수 있다. 많이 들러서 기름 넣고 커피와 담배를 엄청 사간다. 룩스에서 트럭들이 고속 도로 끝차선에서 줄을 서고 있다면 막히는게 아니라 주유하려고 기다리는 줄이다. 이걸 반영했는지 유로 트럭 시뮬레이터 2에서도 (모드 등을 설치하지 않은 경우) 가장 기름값이 싼 국가다. 그래서 특히 벨기에 방향 고속 도로의 경우 룩셈부르크 국경을 몇십 킬로미터나 지나서야 주유소가 존재한다. 프랑스인들도 술 사러 넘어오기도 한다.
룩셈부르크는 여러 국가의 경계에 있다보니 특별히 가리는 것 없이 다양함을 즐긴다.[22] 어딜가나 상점에 술이 넘쳐난다. 전통 맥주인 '바틴'과 '보퍼딩'을 많이 추천한다. 룩셈부르크의 와인맥주 구비량은 프랑스나 독일에 비할 바가 아닐 정도.
룩셈부르크는 내륙에 있는 것 치고 교통이 매우 좋다. 과거에는 철광업이 발달한 지역이었으며 지금은 금융업으로 산업 전환을 하여 세계 1위 수준의 소득을 얻는 국가다. 그만큼 주변국과의 교통 인프라는 매우 좋으며(특히 스위스 취리히부터 시작해서 브뤼셀까지 이어지는 인터시티 라인) 날마다 출퇴근하는 프랑스/독일/벨기에 출신 사람들의 인원 수송과 들어오는 운반 화물들의 물량은 활발한 수준이다. 시내 교통 체증 때문에 짜증이 나려고 해도 시내가 워낙 작아서 잠깐만 있으면 이미 교통 체증 구간을 지나가 있는 상태다. 룩셈부르크 시내에서 핀델 공항으로 가는 방향이라면 물량이 좀 되지만, 이 도로는 넓은 편이라 크게 문제가 안된다.

[1] Luxembourg가 남성명사라서 Grand-Duché du Luxembourg라고 적는 사람도 있지만 Grand-Duché de Luxembourg가 맞다.[2] 룩셈부르크의 민간기는 다른 국가의 민간기와 용도가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국기 문단을 참고.[3] 룩셈부르크어 발음은 [miːə̯ ˈvələ ˈblɑɪ̯və vɑt miːə̯ ˈzin\]. 프랑스어로는 'Nous voulons rester ce que nous sommes(누 불롱 레스테 스 크 누 솜)', 독일어로는 'Wir wollen bleiben, was wir sind(비어 볼렌 블라이벤 바스 비어 진트)'로 옮긴다.[완전한민주주의] 8.68점[4] 간혹 모나코 역시 대공국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정확한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공작위 문서와 공국 문서 참조.[5] 깃발 자체는 1830년에 등장했고, 1845년에 확정되었다고 한다. 삼색기를 채택한 이유는 네덜란드와 마찬가지로 딱 떨어지진 않는다.[6] 각 법의 pdf열람을 누르면 대략적인 도안과 지정된 색상을 볼 수 있다.[7] 정확히는 1972년에 삼색기가 정해진 것은 맞는데 푸른색의 색상을 연한 파랑으로 채택한 시점이 1993년이다. 이전에는 푸른색이라고만 적혀있었다.[8] 내륙국이기 때문에 주로 호수나 강가에만 쓰인다.[9] 민간기 비율은 국기와 같은 1:2 혹은 3:5, 상선기 비율은 5:7. 법을 개정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국기의 지위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국무회의를 통해 룩셈부르크 내에서 국기와 동등한 지위를 갖도록 했다.[10] 룩셈부르크 대공작이 유엔에서 연설하는 영상 (프랑스어 연설. 영어 통역 있음)[11] 예를 들면 기본 인사말이 독일어 '(Guten) Morgen'에서 비롯한 'Moien'과 프랑스어에서 가져온 'Bonjour'가 있다, 후자는 특히 수도권에서 많이 사용한다.[12] 참고. 토박이 입장에선 전반적으로 독일어가 훨씬 이해하기 쉽고 말할 때도 룩셈부르크어 다음으로 자연스럽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프랑스어가 상류층의 언어, 공용어 역할을 하기 때문에 독일어는 상대적으로 낮게 비춰진다.[13] 2018년도 통계에 의하면 '''전체 인구의 98%가 프랑스어'''를, 78%가 독일어를, '''72%가 룩셈부르크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한다. 일단 자국어보다 행정 언어인 프랑스어와 독일어가 더 많이 사용된다는 점이 특징인데, 인구의 거의 절반이 외국인 주민들이라서 그렇다. 룩셈부르크 국민에 한해서 보면 한마디로 거의 모두 3개 국어가 가능한 수준. 다만 3개 국어를 한다 해도 모두 유창하게 하는 건 아니다. 서술한듯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만 완벽한 프랑스어나 독일어를 하지, 일반 룩셈부르크인과 프랑스어로 대화하면 약간 어눌한 게 바로 들리고 문법적 오류나 어색한 표현들을 알아차릴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프랑스어를 외국어로 배운 사람들에 비하면 월등히 잘한다.[14] 룩셈부르크 언론은 다국어로 배포하는 경우가 많아 프랑스어독일어 중 어느 언어가 더 많은지 따지기가 애매하다. 룩셈부르크의 최대 신문인 Luxemburger Wort는 기본적으로 독일어 신문이지만 프랑스어 기사도 자주 올리고 가끔씩 룩셈부르크어로 쓴 글도 실린다. 요즘엔 인구 특성상 포르투갈어판도 있다.[15] TV방송 1번인 RTL Télé Lëtzebuerg는 룩셈부르크어와 불어를, 2번 방송국 Den 2. RTL에서는 룩셈부르크어, 불어, 독어를 섞어서 방송한다. 룩셈부르크어로 나오는 뉴스에 불어 자막은 있어도 독어 자막은 볼 수 없다. 앞서 서술한 대로 독일어는 룩셈부르크인을 위한 보조어로 보기 때문에 자국어로 방영할 땐 굳이 자막을 넣을 필요가 없다. 라디오는 RTL라디오를 제외하고는 별도의 독일어 라디오가 존재하지 않는다. 룩셈부르크 RTL 홈페이지에 있는 라디오는 룩셈부르크어 라디오 방송이지만 음악을 선곡할 때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가리지 않고 틀어주는 등 선곡의 폭이 넓다.[16] 독일어(41초), 프랑스어(2분 27초), 영어(3분 24초), 룩셈부르크어(7분 09초)[17] 물론 부계 조상이 프랑스인이라서 아예 성까지 프랑스식인 경우도 있으며, 룩셈부르크 북부 지역은 반대로 이름과 성 모두 독일식인 경우가 존재한다.[18] 출처는 룩셈부르크 생활가이드.[19] 엄밀히는 파리 동역에서 출발한 TGV 열차가 샹파뉴-아르, 메스(Metz)를 경유하여 룩셈부르크에 도착한다. 빠른 노선은 2시간 5분밖에 걸리지 않으며 미리 예약하면 25유로에 탑승할 수도 있다(2017년 기준). 같은 방향이면서 위쪽 랭스(Reims)로 통과하는 열차편도 있으나 동부의 스트라스부르 쪽으로 가는 열차편이다. 하지만 랭스에서도 샹파뉴-아르덴 떼제베 연결편으로 갈 수 있다.[20] CFL 운행편만 아니면 어지간한 기차편이 브뤼셀 센트럴 역에도 정차하므로 센트럴 역에서 타도 무관하다.[21] 룩셈부르크 시내 영역도 포함되긴 하지만 그 경계를 넘어가면 Clausen 이라는 지명을 가진 지역이 있다.[22] 심지어 내륙 국가라서 생선값이 비싼데도 불구하고 초밥집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