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링급 구축함/함정 목록
1. 개요
2. DD-710 기어링
3. DD-711 유진 A. 그린
4. DD-712 기야트
5. DD-713 케네스 D. 베일리
6. DD-714 윌리엄 R. 러시
6.1. DD-922 강원
7. DD-715 윌리엄 M. 우드
8. DD-716 윌치
9. DD-717 시어도어 E. 챈들러
10. DD-718 햄너
11. DD-719 에퍼슨
12. DD-742 프랭크 녹스
13. DD-743 서덜랜드
14. DD-763 윌리엄 C. 로우
15. DD-764 로이드 토머스
16. DD-765 케플러
17. DD-782 로완
18. DD-783 거크
19. DD-785 헨더슨
20. DD-786 리처드 A. 앤더슨
21. DD-787 제임스 E. 카이스
22. DD-788 홀리스터
23. DD-789 에버솔
24. DD-790 셸턴
25. DD-791 시맨
26. DD-805 셔벌리어
26.1. DD-915 충북
27. DD-806 힉비
28. DD-807 베너
29. DD-808 데니스 J. 버클리
30. DD-817 코리
31. DD-818 뉴
31.1. DD-919 대전
32. DD-819 홀더
33. DD-820 리치
35. DD-822 로버트 H. 맥카드
36. DD-823 새뮤얼 B. 로버츠
37. DD-824 바실론
38. DD-825 카펜터
39. DD-826 에이저홈
40. DD-827 로버트 A. 오웬스
41. DD-828 팀머만
42. DD-829 마일즈 C. 폭스
43. DD-830 에버렛 F. 라슨
43.1. DD-916 전북
44. DD-831 굿리치
45. DD-832 핸슨
46. DD-833 허버트 J. 토머스
47. DD-834 터너
48. DD-835 찰스 P. 세실
49. DD-836 조지 K. 맥켄지
50. DD-837 사스필드
51. DD-838 어니스트 G. 스몰
52. DD-839 파워
53. DD-840 글레넌
54. DD-841 노아
55. DD-842 피스크
56. DD-843 워링턴
57. DD-844 페리
58. DD-845 바우셀
59. DD-846 오즈번
60. DD-847 로버트 L. 윌슨
61. DD-848 비텍
62. DD-849 리처드 E. 크라우스
62.1. DD-921 광주
63. DD-850 조셉 P. 케네디 주니어
64. DD-851 루퍼터스
65. DD-852 레너드 F. 메이슨
66. DD-853 찰스 H. 론
67. DD-858 프레드 T. 베리
68. DD-859 노리스
69. DD-860 맥카페리
70. DD-861 하우드
71. DD-862 포겔게상
72. DD-863 슈타이네이커
73. DD-864 해럴드 J. 엘리슨
74. DD-865 찰스 R. 웨어
75. DD-866 콘
76. DD-867 스트리블링
77. DD-868 브라운슨
78. DD-869 아널드 J. 이즈벨
79. DD-870 펙틀러
80. DD-871 다마토
81. DD-872 포레스트 로열
82. DD-873 호킨스
83. DD-874 던컨
84. DD-875 헨리 W. 터커
85. DD-876 로저스
85.1. DD-925 전주
86. DD-877 퍼킨즈
87. DD-878 베솔
88. DD-879 리어리
89. DD-880 다이스
90. DD-881 보델론
91. DD-882 퍼스
92. DD-883 뉴먼 K. 페리
92.1. DD-923 경기
93. DD-884 플로이드 B. 파크스
94. DD-885 존 R. 크레이그
95. DD-886 올렉
96. DD-887 브링클리 배스
97. DD-888 스티켈
98. DD-889 오헤어
99. DD-890 메레디스
1. 개요
기어링급 구축함의 함정들을 소개하는 문서.
2. DD-710 기어링
3. DD-711 유진 A. 그린
4. DD-712 기야트
5. DD-713 케네스 D. 베일리
6. DD-714 윌리엄 R. 러시
6.1. DD-922 강원
7. DD-715 윌리엄 M. 우드
8. DD-716 윌치
9. DD-717 시어도어 E. 챈들러
10. DD-718 햄너
11. DD-719 에퍼슨
12. DD-742 프랭크 녹스
13. DD-743 서덜랜드
14. DD-763 윌리엄 C. 로우
15. DD-764 로이드 토머스
16. DD-765 케플러
17. DD-782 로완
18. DD-783 거크
19. DD-785 헨더슨
20. DD-786 리처드 A. 앤더슨
21. DD-787 제임스 E. 카이스
22. DD-788 홀리스터
23. DD-789 에버솔
24. DD-790 셸턴
25. DD-791 시맨
26. DD-805 셔벌리어
26.1. DD-915 충북
27. DD-806 힉비
28. DD-807 베너
29. DD-808 데니스 J. 버클리
30. DD-817 코리
31. DD-818 뉴
31.1. DD-919 대전
32. DD-819 홀더
33. DD-820 리치
34. DD-821 존스턴
35. DD-822 로버트 H. 맥카드
36. DD-823 새뮤얼 B. 로버츠
37. DD-824 바실론
38. DD-825 카펜터
39. DD-826 에이저홈
40. DD-827 로버트 A. 오웬스
41. DD-828 팀머만
42. DD-829 마일즈 C. 폭스
43. DD-830 에버렛 F. 라슨
43.1. DD-916 전북
44. DD-831 굿리치
45. DD-832 핸슨
46. DD-833 허버트 J. 토머스
47. DD-834 터너
48. DD-835 찰스 P. 세실
49. DD-836 조지 K. 맥켄지
50. DD-837 사스필드
51. DD-838 어니스트 G. 스몰
한국전쟁 도중 흥남 앞바다에서 기뢰를 밟고 함수와 1번 포탑을 잃었지만 항행능력은 잃지 않아 그대로 구레 항으로 복귀, 임시 수리 후 본토로 귀환, 이후 미완성인 자매함 DD-767 세이모어 D. 오언스를 이용하여 수리한 뒤 DDR-838으로 재취역했다. 참조 글
52. DD-839 파워
53. DD-840 글레넌
54. DD-841 노아
55. DD-842 피스크
56. DD-843 워링턴
57. DD-844 페리
58. DD-845 바우셀
59. DD-846 오즈번
60. DD-847 로버트 L. 윌슨
61. DD-848 비텍
62. DD-849 리처드 E. 크라우스
62.1. DD-921 광주
63. DD-850 조셉 P. 케네디 주니어
64. DD-851 루퍼터스
65. DD-852 레너드 F. 메이슨
66. DD-853 찰스 H. 론
67. DD-858 프레드 T. 베리
68. DD-859 노리스
69. DD-860 맥카페리
70. DD-861 하우드
71. DD-862 포겔게상
72. DD-863 슈타이네이커
73. DD-864 해럴드 J. 엘리슨
74. DD-865 찰스 R. 웨어
75. DD-866 콘
76. DD-867 스트리블링
77. DD-868 브라운슨
78. DD-869 아널드 J. 이즈벨
79. DD-870 펙틀러
80. DD-871 다마토
81. DD-872 포레스트 로열
82. DD-873 호킨스
83. DD-874 던컨
84. DD-875 헨리 W. 터커
85. DD-876 로저스
85.1. DD-925 전주
86. DD-877 퍼킨즈
87. DD-878 베솔
88. DD-879 리어리
89. DD-880 다이스
90. DD-881 보델론
91. DD-882 퍼스
92. DD-883 뉴먼 K. 페리
92.1. DD-923 경기
93. DD-884 플로이드 B. 파크스
94. DD-885 존 R. 크레이그
95. DD-886 올렉
96. DD-887 브링클리 배스
97. DD-888 스티켈
98. DD-889 오헤어
99. DD-890 메레디스
[1] 헨리 C. 기어링, 헨리 C. 기어링 주니어, 헨리 C. 기어링 3세 총 3대가 미해군 장교로 복무했다. 이 중 헨리 C. 기어링 3세는 과달카날 해전에서 경순양함 주노(CL-52)가 격침되면서 전사.[2] 미드웨이 해전 당시 제6폭격기대대의 조종사. 해당 전투에서 전사. 사후 해군십자장 수여.[3] 과달카날 전역에 참전한 해병대 병사. 툴라기 섬에서 전사. 사후 은성훈장 수여.[4] 과달카날 전역에 참전한 해병대 장교. 피의 능선 전투에서 벌인 공로로 명예 훈장을 수여받았다. 과달카날에서 전사.[5] 멕시코 혁명 당시 전함 플로리다(BB-30)의 함장. 여단을 이끌고 베라크루스에 직접 상륙해 지휘한 공로로 명예 훈장을 수여받았다.[6] 현 창원해양공원.[7] 호위항모 리스컴 베이(CVE-62)의 함장. 1943년 리스컴 베이가 일본군 잠수함 I-175에게 뇌격당하자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이 노력은 실패해 리스컴 베이는 윌치 함장, 헨리 뮬리닉스 제독, 그리고 644명의 승조원과 함께 가라앉았다. 사후 해군십자장 수여.[8] 양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해군 장교. 1944년 제4순양전대(CruDiv 4) 제독으로 복무하던 중 일본군의 카미카제 공격으로 전사.[9] 구축함 혼워스(DD-592)에서 복무하던 해군 장교. 1945년 혼워스가 일본군의 대규모 카미카제 공격을 받을 때 전사하였다.[10]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병대 병사. 사이판 전투 당시 일본군이 던진 수류탄을 자신의 몸으로 덮어 전사하였다.[11] 미드웨이 해전 당시 제8폭격기대대의 조종사. 해당 전투에서 전사. 사후 비행십자장 수여.[12] 미드웨이 해전 당시 제6폭격기대대의 조종사. 해당 전투에서 전사. 사후 해군십자장 수여.[13] 중순양함 샌프란시스코 (CA-38)에서 복무하던 수병. 과달카날 해전에서 치명상을 입고도 불을 끄고 부상자들을 보살피다 과다 출혈로 전사했다. 사후 명예 훈장 수여.[14]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병대 병사. 부건빌 전투 당시 일본군이 던진 수류탄을 자신의 몸으로 덮어 전사하였다.[15]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병대 조종사.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항공모함 히류를 공격하다 전사하였다. 사후 해군십자장 수여됨. 과달카날 전역의 헨더슨 비행장의 이름도 이 사람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이었다.[16]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병대 병사. 콰잘레인 환초 전투 당시 자신이 떨어뜨린 수류탄을 자신의 몸으로 덮어 전사하였다.[17] 대서양 전투에 구축함 리어리(DD-158)의 함장으로 참전한 미해군 장교. 독일 잠수함의 뇌격으로 리어리가 격침되자 배에서 탈출하지 못한 승무원이 있는지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승무원 한 명이 입고있는 구명조끼가 손상된 것을 발견하자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주고 전사하였다. 사후 해군십자장 수여.[18]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해군에서 복무한 삼형제. 장남인 라일 E. 홀리스터는 안치오 전투 당시 타고있던 구축함 플런켓(DD-431)이 폭격당하며 실종되었고 동생들인 리처드 홀리스터와 윌리엄 홀리스터는 호위항모 리스컴 베이(CVE-62)에서 근무하다 리스컴 베이가 격침되며 각각 전사, 실종되었다.[19] 미드웨이 해전 당시 제6폭격기대대의 조종사. 해당 전투에서 전사. 사후 해군십자장 수여.[20] 미드웨이 해전 당시 제6정찰기대대의 조종사. 해당 전투에서 실종. 이후 해군십자장 수여.[21] 태평양 전쟁 당시 해군항공대 조종사. 1944년 뉴기니의 일본군을 폭격하다가 자신의 초계기가 큰 손상을 입자 불시착하였다. 이로 인해 초계기 승무원 상당수를 살렸으나 시맨 본인은 실종되었다. 불시착에 대한 공로로 해군십자장을 수여받았고, 사망 선언이 난 후 능력을 기리며 두번째 해군십자장이 수여되었다.[22] 초창기 미해군항공대 조종사. 항공모함 랭글리(CV-1)의 비행갑판에 최초로 착함했다. 1922년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23]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미해군 간호사. 최초로 살아서 해군십자장을 받은 여성이다.[24] 태평양 전쟁 당시 미해병대 부사관. 과달카날 전역에서 전사. 사후 은성훈장이 수여되었다.[25] 1974년 대한민국에 판매를 시도했으나 거부됨.[26] 구축함 에버를(DD-430)의 수병. 1943년 밀항선에 올라타려다가 밀항선 선원이 설치한 폭발물에 사망하였다. 사후 용기를 기려 은성훈장이 수여되었다.[27]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미해군항공대 장교. 전쟁이 끝난 후에도 군대에 남았으나 1920년에 타고가던 비행기가 추락했다. 당시 소령이었던 코리는 추락 당시에는 생존했지만 조종사를 구하기 위해 불타는 잔해를 뒤지다가 입은 화상으로 사망하였다. 그의 행위를 기리기 위해 사후 명예 훈장이 수여되었다.[28]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병대 병사. 펠렐리우 전투 당시 일본군이 던진 수류탄을 자신의 몸으로 덮어 전사하였다.[29] 미드웨이 해전 당시 제6뇌격기대대의 조종사. 해당 전투에서 전사. 사후 해군십자장 수여.[30]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미해군항공대 비행사. 1942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 사후 미드웨이 전투 당시 보인 리더십을 기리는 의미로 해군십자장이 수여되었다.[31] 남북전쟁에 참전했던 미해군 간부.[32]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미해병대 부사관. 사이판 전투에서 자신의 전차가 일본군 포대의 공격을 받자 응전하였지만 일본군 포대의 상대가 되지 않자 전차 밖으로 몸을 내밀고 수류탄을 던지며 다른 승무원들이 탈출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이후 수류탄이 다 떨어지자 중상을 입은 몸으로 전차 기관총을 떼어내어 16명의 일본군을 사살하고 전사하였다. 이 공로로 사후 명예 훈장이 수여되었다.[33] 두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해군 장교. 1940년 폐렴으로 사망.[34]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병대 병사. 사이판 전투 도중 부상자 구조 임무에 자원했다. 일본군의 총포화를 뚫고 3시간 동안 약 45명의 사상자를 데려오는데는 성공했으나 일본군이 쏜 소총에 맞아 전사하였다. 이 공로로 사후 명예 훈장이 수여되었다.[35]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병대 부사관. 부건빌 전투 당시 아군 상륙정을 공격하는 일본군 75mm 포 진지의 정면으로 돌격해 일본군 병사들을 쫓아냈다. 오웬스는 이 행동을 통해 아군 상륙정에 가해지는 포격을 멈추고 수많은 미군을 살릴 수 있었지만 자신은 일본군의 반격으로 사망하였다. 이 공로로 사후 명예 훈장과 해군십자장이 수여되었다.[36]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병대 부사관. 보직은 전차장으로 사이판 전투에서 일본군이 열린 전차 해치를 노리고 던진 수류탄을 자신의 몸으로 막아 전사하였다. 이 공로로 사후 명예 훈장이 수여되었다.[37]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병대 장교. 툴라기 전투에서 치명상을 입고도 지휘를 계속 하다 전사하였다. 이 공로로 사후 해군십자장이 수여되었다.[38]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병대 병사. 과달카날 전역에서 포화를 뚫고 부상을 입은 전우를 구하려다 전사하였다. 이 공로로 사후 은성훈장이 수여되었다.[39] 미국-스페인 전쟁과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미해군 제독.[40] 카스파 F. 굿리치의 아들. 미해군 장교로 복무하던 중 1907년 발생한 전함 조지아(BB-15)의 포탑 폭발 사고로 사망했다.[41]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병대 조종사. 26기의 일본군 항공기를 격추한 에이스로 26기 중 20기는 6일 동안 격추시킨 것이다. 이 공로로 명예 훈장과 해군십자장, 항공훈장을 수여받았다. 1944년 전투기 추락으로 사망.[42]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병대 부사관. 부건빌 전투에서 자신이 던진 수류탄이 덩굴에 튕겨 되돌아오자 수류탄을 몸으로 덮어서 전사하였다. 이 공로로 사후 명예 훈장이 수여되었다.[43] 미영전쟁에 참전한 미해군 장교.[44]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군 제독. 산타크루즈 해전 당시 제5구축함분대(Destroyer Division 5) 사령관이었으며 경순양함 헬레나(CL-50)의 마지막 함장이었다. 무공을 세워 해군십자장과 금성훈장, 동성훈장을 수여받았지만 1944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45]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군 장교. 잠수함 트리톤(SS-201)의 마지막 함장이었다. 1943년 트리톤이 일본군 구축함들에게 격침되며 전사.[46]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미해군 장교. 구축함 매독스(DD-622)의 마지막 함장으로 1943년 매독스가 독일군 폭격기에 의해 격침되며 실종되었다. 이 공로로 사후 해군십자장이 수여되었다.[47]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미해군 제독. 에스페란스 곶 해전 당시 솔트레이크시티(CA-25)의 함장으로 무공을 세워 해군십자장을 수여받았으며 1943년에는 태평양 함대 작전장교로, 1944년에는 제5순양함분대 지휘관으로 복무했다. 1944년 브루클린에서 사망.[48]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미해병대 장교. 콰잘레인 환초 전투에서 일본군 특화점에 폭약을 설치하다가 배에 총을 맞았지만 굴하지 않고 폭약을 터뜨리고 M1 카빈을 사격하다가 한 발 더 맞고 전사하였다. 이 공로로 사후 명예 훈장이 수여되었다.[49] 미국-스페인 전쟁과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미해군 제독. 아직 일개 장교였던 미국-스페인 전쟁 당시에는 전함 메사추세츠(BB-2)의 전방 포탑 지휘 장교로 스페인군 순양함 레이나 메르세데스를 격침시키는데 참가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제5전함분대의 지휘관으로 복무하며 해군십자장을 수여받았다. 1940년 워싱턴 D.C.에서 사망.[50] 19세기 말~20세기 초의 미해군 장교. 1901년 미국령 필리핀에서 밀수 조직을 찾다가 필리핀인들에게 살해되었다.[51] 19세기 말~20세기 초의 미해군 제독 겸 발명가. 전기로 회전하는 군함 포탑, 전기 거리측정기, 뇌격기 등을 구상하였다.[52] 미영전쟁에 참전한 미해군 장교. 슬루프 오브 워 피콕을 지휘해 영국군 브릭 에페르비에를 나포하는 등의 무공을 세웠다.[53] 1차 바르바리 전쟁과 미영전쟁에 참전한 미해군 장교. 이리호 해전 당시 기함이었던 브릭 로렌스가 격침되자 브릭 나이아가라로 옮겨탄 이후 전투를 계속 지휘해 승리하였다.[54]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병대 병사. 펠렐리우 전투에서 일본군이 던진 수류탄을 몸으로 덮어 입은 부상으로 3일 후 전사하였다. 이 공로로 사후 명예 훈장이 수여되었다.[55]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병대 병사. 티니안 전투에서 일본군이 던진 수류탄을 몸으로 덮어 전사하였다. 이 공로로 사후 명예 훈장이 수여되었다.[56]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병대 병사. 티니안 전투에서 일본군이 던진 수류탄을 몸으로 덮어 전사하였다. 이 공로로 사후 명예 훈장이 수여되었다.[57]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병대 병사. 제2차 괌 전투에서 분대가 위장하던 일본군 초소의 기습 사격을 받자 M1918 브라우닝을 사격해 8명을 사살하고 분대원들이 엄폐할 시간을 줬다. 이후 분대가 후퇴하자 들것을 든 병사들이 와서 중상을 입은 전우를 데려갈 때 까지 그 자리에 남아 일본군을 막았다. 같은 날 소대가 일본군 기관총에 제압되자 그대로 뛰쳐나가 기관총을 파괴하고 8명의 일본군을 사살했지만 운이 다 했는지 소총에 맞아 전사하였다. 이 공로로 사후 명예 훈장이 수여되었다.[58]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병대 병사. 펠렐리우 전투에서 일본군이 던진 수류탄을 몸으로 덮어 전사하였다. 이 공로로 사후 명예 훈장이 수여되었다.[59]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미해군항공대 조종사. 아프로디테 계획에 참가했다가 1944년 사고로 사망했다. 이 공로로 사후 해군십자장이 수여되었다. 참고로 존 F. 케네디의 형이다.[60]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병대 장군. 제1해병사단의 부사단장으로 복무하면서 툴라기, 가부투, 타남보고에 대한 공격을 성공적으로 계획하고 이끌어 해군십자장을 수여받았다. 1943년 7월부터는 제1해병사단의 사단장이 되어 뉴브리튼과 팔라우에서 사단을 지휘했다. 미해병대의 복무신조인 소총수의 신조를 쓴 인물이기도 하다. 1945년 심장마비로 사망.[61]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병대 병사. 제2차 괌 전투에서 일본군 기관총 두 정에 의해 치명상을 입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적 초소를 처리하고서 전사했다. 이 공로로 사후 명예 훈장이 수여되었다.[62]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병대 병사. 펠렐리우 전투에서 일본군이 던진 수류탄을 몸으로 덮어 전사하였다. 이 공로로 사후 명예 훈장이 수여되었다.[63]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미해군 장교. 구축함 맥콜(DD-28)의 함장으로 복무하면서 보인 업적으로 해군십자장을 수여받았다. 이후 비행선 장교로 전속, 비행선 로스앤젤레스(ZR-3)의 함장을 맡았다. 이후 공중항모 비행선인 아크론(ZRS-4)의 함장을 맡았으나 1933년 아크론이 추락하며 사망했다.[64]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병항공대 조종사. 미드웨이 해전에서 전사했다. 이 공로로 사후 해군십자장이 수여되었다.[65]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병대 장교. 부건빌 전투에서 전사했다. 이 공로로 사후 해군십자장이 수여되었다.[66]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군항공대 조종사.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 보인 무공으로 해군십자장을 수여받았으며 이후 과달카날 전역에서 편대장으로써 보인 용맹함으로 금성훈장을 수여받는다. 레이테 만 해전에서 경항모 프린스턴(CVL-23)이 일본군의 공습으로 격침되며 전사한다.[67] 조종사가 그리스군 함선으로 오해하고 폭격했다.[68]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미해군 제독.[69]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병대 병사. 과달카날 전투에서 밀려오는 일본군을 상대로 끝까지 항전하다가 전사했다. 이 공로로 사후 해군십자장이 수여되었다.[70]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군항공대 조종사. 미드웨이 해전 당시 제8뇌격기대대의 조종사로 싸우다가 실종되었다. 이 공로로 사후 해군십자장이 수여되었다.[71]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군항공대 조종사. 미드웨이 해전 당시 제5정찰기대대의 조종사로 싸우다가 실종되었다. 이 공로로 사후 해군십자장이 수여되었다.[72]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미해군 제독. 해외 미해군항공대 지휘를 담당했다.[73] 미국-멕시코 전쟁과 남북전쟁에 참전한 미해군 제독.[74] 초기 아시아함대를 지휘했던 미해군 제독.[75]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군 장교. 조종사 출신으로 호위항모 카드(CVE-11)의 함장으로 복무했다. 1945년 항공모함 요크타운(CV-10)의 함장으로 임명되었지만 승객으로 타고있던 항공모함 프랭클린(CV-13)이 일본군의 공습을 받을 때 실종되었다.[76]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미해군 제독. 전쟁 당시 제6분대와 노퍽 조선소를 잘 관리한 공로로 해군십자장을 수여받았다.[77] 어거스투스 F. 펙틀러의 아들로 미해군 장교.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조종사로 보직을 바꾸었다. 1922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78]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병대 병사. 에니웨톡 환초 전투 당시 일본군이 던진 수류탄을 자신의 몸으로 덮어 전사하였다. 이 공로로 사후 명예 훈장이 수여되었다.[79]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군 제독. 상륙작전의 달인으로 레이테, 루존, 민다나오, 보르네오에서 상륙전단을 지휘해 공로 훈장을 수여받았다. 1945년 심장마비로 사망한 이후 그의 능력을 기리며 금성훈장이 수여되었다.[80]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병대 장교. 타라와 전투 당시 휘하 병사들을 이끌고 6개 이상의 일본군 특화점을 격파하였다. 이 과정에서 가슴에 부상을 입었지만 물러나기를 거부하고 계속하여 특화점을 파괴하다가 전사한다. 이 공로로 사후 명예 훈장이 수여되었다.[81] 미영전쟁에 참전한 미해군 장교. 플래츠버그 해전 당시 기함인 초계함 새러토가의 승무원이었는데, 영국군의 집중포화로 오른팔을 잃으면서도 건보트들에게 퇴각 명령을 전달하였다.[82]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군 수병. 산호해 해전에서 자신이 복무하던 유조선 네오쇼(AO-23)가 격침되자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물에 빠진 승무원들을 구명보트 위로 올려보냈다. 하지만 자신은 구명보트에 오르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이 공로로 사후 해군십자장이 수여되었다.[83] 잭 E. 로저스 주니어, 찰스 E. 로저스, 에드윈 K. 로저스로 이루어진 삼형제로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다. 이들이 복무하던 중순양함 뉴올리언스(CA-32)가 타사파롱가 해전에서 어뢰에 맞아 큰 피해를 입을 때 세 명 모두 전사하였다.[84] 남북전쟁에 참전한 미해군 장교.[85]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미해군 장교. 1943년 자신이 복무하던 수송선 존 배스컴이 독일군 공습으로 격침되자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다른 승무원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 공로로 사후 해군십자장이 수여되었다.[86]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미해군 장교. 1918년 자신이 복무하던 수송선 찰턴 홀에 화재가 발생하자 이를 진압하려다가 사망하였다. 이 공로로 사후 해군십자장이 수여되었다.[87]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병대 장교. 콰잘레인 환초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사후 명예 훈장이 수여되었다.[88]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병대 부사관. 타라와 전투에서 네 개의 일본군 특화점을 폭파하고 전사하였다. 사후 명예 훈장이 수여되었다.[89] 20세기 초의 미 해군 장교. 전함 일리노이(BB-7)에서 복무하던 중 폭풍으로 인해 사망하였다.[90] 20세기 초의 미 해군 장교. 건보트 베닝턴(PG-4)에서 복무하던 중 보일러 폭발로 인해 사망하였다.[91] 미드웨이 해전 당시 제221해병전투기대대의 대대장. 해당 전투에서 전사. 사후 해군십자장 수여.[92] 탬버급 잠수함 그램퍼스(SS-207)의 마지막 함장. 1943년 그램퍼스가 격침되며 휘하 승무원 전원과 함께 전사했다. 사후 해군십자장 수여.[93] 예인선 너셋(AT-89)의 마지막 함장. 너셋이 1943년 살레르노 만에서 독일 폭격기에게 격침될 때 전사하였다. 카사블랑카 침공작전 당시 수행한 구조 작전으로 해군해병대훈장(Navy and Marine Corps Medal)을 수여받았으며 너셋이 격침될 때 승무원들을 살리기 위해 분투한 것을 인정받아 사후 해군 십자장이 수여되었다.[94] 동해안 철도를 따라 달리는 북한군 열차를 파괴한 구축함에게 붙는 호칭.[95]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미해군항공대 조종사. 1944년 격추되어 전사. 사후 비행십자장과 퍼플 하트가 수여되었다.[96]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조종사. 미국이 참전하기도 전부터 캐나다 공군에 입대, 독일 본토 폭격 임무를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영국군에게 비행십자장과 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1943년부터는 미해군예비대의 요청을 받아들여 미해군항공대로 전속하였다. 이후 태평양에서 벌인 전과로 미해군 비행십자장과 항공훈장을 수여받았지만 1943년 12월 마셜 제도의 일본군 지하 연료탱크를 공습하다가 대공포화로 치명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폭탄 한 발을 명중시키는데 성공하지만 6일 후 사망하였다. 사후 해군십자장이 수여되었다.[97] 1차 바르바리 전쟁에 참전한 미해병대 부사관. 함상 백병전 도중 중상을 입은 아군 장교를 보호하였다. 그로부터 5일 후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