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릭 로즈/선수 경력
1. 개요
데릭 로즈의 커리어를 정리해 놓은 문서이다.
2. NBA에 입성하기까지
로즈는 시카고에서 태어나 자랐고,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 90년대 황금기를 누리던 시카고 불스와 그 분의 팬이 되었다.[1] 중학교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낸 로즈는 시카고 시미언 하이스쿨에서 그는 팀을 전미 고교랭킹 1위로 이끌면서 일약 전국구급 유망주로 떠오르게 되었다.[2]
2.1. NCAA에서의 활약
데릭 로즈의 능력을 주목한 NCAA의 여러 명문대학의 스카웃제의를 받았지만, 데릭 로즈는 현 NCAA최고의 업자로 손 꼽히는 존 칼리파리[3] 의 멤피스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신입생이라 다소 불안한 모습도 보여주었지만 존 칼리파리의 드리블 드라이브 오펜스의 코어인 포인트가드 포지션에서 로즈는 꾸준히 팀내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지며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었고, "March Madness"라 일컬어지는 전미 토너먼트가 시작되면서 로즈는 자신의 능력을 폭발시키기 시작했다. 숱한 NCAA의 팀들과 가드들과의 맞대결에서 로즈는 대활약을 펼쳐 팀을 NCAA Final까지 진출시킨다. 비록 캔자스 대학교에게 결승에서 패배함으로써[4] 준우승에 그쳤지만,[5][6] 로즈의 활약은 NBA의 관계자들 모두의 주목을 이끌어내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이에 로즈는 1학년을 마치고 NBA 드래프트에 참가하게 된다.
2.2. NBA 전체 1위 입단
2000년대 중반에 들어 불스는 리빌딩을 통해 좋은 성적을 올리면서 플레이오프에도 지속적으로 진출하게 된다. 90년대의 황금기에는 비견할 수 없었지만 젊은 팀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고, 더 좋은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젊은 팀에서 노장으로 팀을 이끌어 주던 벤 월러스의 부진과 더불어 겹친 내우외환은 시즌 동안 세 번의 감독 교체에도 불구하고 팀을 수렁으로 이끌었고, 결국 불스는 다시금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게 된다. 팀이 한계를 드러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불스는 변화를 시도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트레이드 카드도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그들이 희망을 걸 수 있는 것은 드래프트만이 유일했지만, 이 또한 전년도 성적이 영 어정쩡한 관계로 드래프트 로터리 추첨에서 그들이 가질 수 있는 희망은 고작 1.7%에 불과했다.[7] 그러나 로터리 추첨을 통해 시카고 불스는 기적적으로 2008년 드래프트 1픽을 거머쥐게 되었다.
당시 드래프트에서는 데릭 로즈와 함께 마이클 비즐리가 1픽으로 주목받고 있었다. 그런데 불스는 커크 하인릭이라는 준수한 포인트가드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많은 이들이 마이클 비즐리의 1픽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드래프트 이전에 마이클 비즐리에 대한 사이즈나 성격적 문제들이 제기되고, 실력과 올바른 태도를 갖춘 홈타운 보이라는 매력은 불스가 데릭 로즈를 1픽으로 선택하게 만들었다.[8] 데릭 로즈는 멤피스라는 생소한 도시로 떠난지 1년만에 시카고로 돌아와 고향이자 자신이 응원하던 팀에서 데뷔하는 기적과도 같은 행운을 안게된 것이다.
3. NBA로의 데뷔
NBA 데뷔하게 된 로즈는 2008~2009 데뷔 시즌부터 팀의 주전 포인트가드로서 입지를 다지며 16.8점 6.3어시스트, 3.9리바운드라는 준수한 성적으로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로즈의 진면목은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드러났다. 동부 7번 시드로 전년도 우승팀인 보스턴 셀틱스와 만나게 된 시카고는 예상을 뒤엎고 시리즈 초반부터 맞불을 놓았으며, 그 중심에는 데릭 로즈가 있었다. 로즈는 플레이오프 첫 데뷔였던 셀틱스와의 첫 경기에서 36점 11어시스트를 퍼부으며 디펜딩 챔피언을 침몰시켰다.[9] 비록 최종전까지 이어지는 접전 끝에 시리즈는 결국 패배로 끝났지만, 로즈에게 있어 루키 시즌의 첫 플레이오프는 단순히 약팀의 주전포인트가드가 아니라 수퍼스타의 재목임을 명실공히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2년차에 들어선 2009~2010 시즌에 로즈는 데뷔 첫 올스타로 선정되고, 다시금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다. 8번시드로 진출해 전년도 준우승팀인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즈와 만나 2라운드 진출에는 실패하면서 한 시즌을 마무리했지만, 전년도에 비해 월등히 나아진 성적과 중거리슛은 또 다른 발전을 예고하고 있었다.
4. MVP!!! MVP!!!
2010년 오프시즌에 들어 NBA는 FA 대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NBA의 간판 스타들인 2003년 드래프티들이 FA로 풀리는 시기에 맞추어 각 팀들은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샐러리를 비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불스 또한 로즈의 파트너로 르브론 제임스나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쉬 등을 맞이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디시전 쇼로 FA대란은 마이애미의 승리로 끝이 나게 되면서 불스는 재빨리 준척급인 카를로스 부저와 계약을 성사시키고, 보스턴 셀틱스의 우승을 이끌었던 당시 디펜스 코치 톰 티보도를 감독으로 선임하고 다음 시즌에 대비하게 되었다. 로즈는 이런 팀내외적 요소들과 별개로 자신의 약점으로 지적되던 외곽슛에 대한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고 있었고, 시즌 개막 전 인터뷰에서 자신이라고 못할 게 뭐 있겠냐면서 MVP를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처음 이 인터뷰를 한 직후 언론이나 팬들의 반응은 뭥미? 하는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로즈는 이제 겨우 NBA 3년차를 맞는 선수였다. 나중은 모르겠으나 아직 MVP 운운하기에는 이르다는 반응이 대다수였으나.....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자 로즈와 불스는 그야말로 엄청난 대활약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불스는 티보도 감독의 조련을 통해 엄청난 수비실력과 리바운드 장악을 선보이며 상대팀들을 질식시켰고, 그 선두에서 로즈는 전년대비 1할 이상 상승한 외곽슛과 업그레이드된 공격력을 통해 경기당 25점대라는 전년대비 5점이상 향상된 득점력을 선보였다.[10] 결국 2010~2011 로즈의 리딩 아래 불스는 초반의 평가와는 전혀 다르게 수퍼팀이라는 마이애미 히트를 상대로 시즌 전승을 이끌어내는 등 대활약을 선보이며 62승 20패의 성적으로 조던 은퇴 이후 최초로 리그 전체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팀의 최선봉에 서 있던 로즈는 시즌 중반을 넘어서면서 어느 구장에 가더라도 MVP!!! MVP!!! 챈트를 듣게 되었고, 결국 역대 최연소(만 22세)에 MVP 수상이라는 업적을 달성하게 되었다.'''
그의 수상은 스탯상으로 다소 부족한 면[11] 이 없지 않다는 평가도 있었으나 고작 3년차에 이르러서 엄청난 발전과 그를 통해 과거의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팀을 리그 최강팀의 면모를 갖추게 했으며, 그를 통해 자신 또한 리그 수퍼스타이자 향후 NBA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수상이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로즈는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플레이오프에서 불스를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진출시켰다. 로즈는 27.7점과 7.7어시스트라는 또 다시 향상된 성적을 보이며 애틀랜타 호크스와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격파하는데 선봉에 섰지만,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수퍼팀으로 거듭난 마이애미 히트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로즈는 이에 대해 패배는 팀을 이끄는 자신의 책임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더 나은 실력을 갈고 닦겠다고 인터뷰했다. 실제로 오프시즌을 통해 미친듯이 훈련을 소화했다고 하니 현재보다 앞날이 기대되는 수퍼스타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로즈에 대해 시카고는 5년간 9400만 달러[12] 라는 엄청난 계약으로 화답하면서 그를 통해 그려나갈 미래에 강한 믿음을 보여주었다.
- 이 시절의 아디다스 광고. 불스와 로즈의 모든 상징들이 함축된 멋진 광고다.##
5. 부상 또 부상 그리고 부상
이렇듯 새롭게 시작한 11-12 시즌. 역시나 작년과 마찬가지로 로즈는 시카고와 함께 초반 선두로 치고나가며 작년과 같은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2012년 들면서 어째 슬슬 조짐이 좋지 않았다. 갑작스레 등 부상[13] 을 당하거나 교통사고가 나기도 하고, 사타구니 부상도 당하는 등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로 인해 자잘한 부상을 계속 떠안게 된 것. 원체 로즈의 플레이 스타일이 다이나믹하다보니 그간 부상에 대한 NBA 내의 염려가 많았는데[14][15] 이런 로즈의 모습에 NBA 관계자 및 시카고 불스의 팬들은 가슴을 졸이게 되었다. 로즈 개인적으로도 힘든 시기였던 것이, 로즈의 잦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팀은 막상 1위를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에 로즈의 영향력에 대해 의문부호가 붙게 되었기 때문. 그러나 플레이오프가 시작되면서 로즈는 다시 복귀하게 되었고, 드디어 올해는 마이애미 히트와 맞붙어 파이널에 진출할 것인가 팬들과 언론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 2012 플레이오프 1차전 무릎 부상 경기 : ##
- 아디다스가 선보인 광고. 데릭 로즈가 무릎부상으로 실려나가자 시카고 시 전체가 멈춰버린다는 소재가 나름 신선하다. 내용은 간단히 말해 "곧 복귀한다. 조금만 기다려라." : ##
2013-14 프리시즌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시범경기에서 복귀했다. 다만 역동적인 움직임등은 여전함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데, 특히 최고의 강점이었던 돌파 후 메이드 능력이 회복되지 않고 있어서 그로 인해 일어나는 파생 플레이들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돌파를 강요하기에는 그의 무릎이 버텨낼지에 대해 의문부호가 붙기 때문에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 시즌 두 번째 경기인 11월 1일 뉴욕 닉스전에서 위닝 플로터를 작렬시키며 슈퍼스타의 면모를 뽐내기도 했지만, 11월 23일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과의 경기 중 또다시 부상을 당해 아웃되었다. 내용은 오른쪽 무릎 내측 반월상 연골 파열. 단 10경기 뛰고 수술을 요하는 시즌 아웃을 당해버렸다. 시카고 불스 팬들은 단체로 멘붕. 2013년 플레이오프때 다친 러셀 웨스트브룩과 같은 부상이다. 다음 시즌에 다시 복귀한 후 MVP급 실력은 무리더라도 어느 정도 클래스를 보여주지 못하거나 또 부상을 당한다면 확실하게 먹튀로 낙인찍힐듯 하다.
그러나 2014년 11월 14일 토론토 랩터스 전에서 4쿼터 후반쯤에 드리블을 치던 도중 왼쪽 햄스트링이 올라와 왼쪽 햄스트링 부상을 또 당했다. 그것뿐만 아니라 2015년 2월, 아니나 다를까 오른쪽 반월판 연골 손상으로 인하여 수술이 결정되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2015-16 시즌을 앞두고는 안와 골절까지 당했다. 그래도 몇 주 뒤 바로 복귀했으나 최악의 시즌을 보내게 되었다.
5.1. 2014-15 시즌
2014 FIBA 농구 월드컵 스페인에 미국 대표팀으로 참가했다. 애초에 팬들도 몸 관리에나 신경쓰라며 염려를 나타냈으나, 드웨인 웨이드의 경우처럼 국가대표팀에서 감을 살리고 정규리그에서 대폭발하는 경우가 있고, 무엇보다도 대표팀 코치진에 감독인 톰 티보도가 합류했기 때문에 기대반 우려반으로 지켜봤었다. 연습경기를 거르는 등 내구성에 또 문제가 될법한 징후들이 간혹 보이긴 했으나 전형적인 돌파 후 양손 토마호크 덩크를 찍어대는 등 괜찮은 모습들을 보였다.
그리고 2014-15 정규시즌이 들어서자 2시즌만에 좋은 모습을 선보이면서 그동안 기다린 보람을 가지게 했다. 다만 본인이 최근 2시즌동안 당한 부상의 여파인지 통증이 조금만 있어도 경기에서 결장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팀 차원에서도 관리를 해주는 모습을 보여줬으나.. 2014년 11월 14일 토론토 랩터스 전에서 4쿼터 후반쯤에 드리블을 치던 도중 왼쪽 햄스트링이 올라와 왼쪽 햄스트링 부상을 또 당했다. 덕택에 현지에선 부상의 원인에 신발이 문제가 아니냐라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꼭 아디다스 신발이 문제라기보다는 로즈와 아디다스 신발이 맞지 않는다는 주장.[20]
하지만 그 이후 경기당 30분을 넘지않는 지속적인 출장시간 관리로 무리하지 않는 플레이스타일로 선회, 횡방향 크로스오버, 덩크 시도는 전보다 매우 줄어들었고, 플로터와 스텝백 풀업으로 정규시즌을 공략하고 있다. 파우 가솔과 지미 버틀러가 공격롤을 분담하면서 오직 로즈-고였던 과거보다는 매우 플레이부담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서서히 피치를 올려가고 있으며, 몇몇 경기에는 4쿼터에 과거 MVP 시절 포스를 풍기기도 하면서 팬들에게 희망을 주는 중. 다만 플레이스타일을 바꾸기 위해 꼭 필요한 3점슛 성공률이 바닥 수준(28% 이하)이라서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그리고 부활과 고인화를 반복하던 중 2015년 2월, 아니나 다를까 오른쪽 반월판 연골 손상으로 인하여 수술이 결정되었다. 이러다 진짜 브랜든 로이화 돼가는 건 아닌가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지 기준 2월 27일 경으로 수술을 무사히 마쳤으며 재활기간에 4주에서 6주 정도 걸린다고 한다. 시카고 다 죽게 생겼다. 이놈아 다행히 플레이오프 무렵에 복귀에는 성공. 다만 연골을 아예 들어내는 형태의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복귀 시점은 빨라도 전체 커리어의 단축을 야기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여전히 불안한 부분이 있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의 세미파이널 3차전에서 멋진 버저 비터 위닝샷을 꽂아넣었다.
5.2. 2015-16 시즌
시즌을 앞두고 안와 골절을 당했다. 그래도 몇 주 뒤 바로 복귀. 2015-16 시즌에는 영 힘을 못 쓰고 있다. 이미 팀 내 1옵션도 버틀러로 넘어간 상황이다. 안와 골절의 영향으로 잘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고 완전히 회복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 여파인지, 형편없는 슛 성공률을 자랑하고 각종 기록에서 팀에 끼치는 영향이 오히려 마이너스인 상황. 슛 성공률이 낮은 이유가 안와골절의 여파로 인해 사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고 한다. 2015년 12월 말부터 컨디션이 올라오기 시작하고 1월 무렵에는 20점 이상 득점하는 경기가 많아지고 있다. 특유의 돌파력 역시 살아나고 있는 중. 점점 재기의 기미가 보이고 있다.
시즌 중에도 크게 활약한 적이 별로 없었고 잔부상으로 결장하는 경기수도 많았다. 그래도 전과는 다르게 66경기를 소화했다. 하지만 로즈의 평균득점은 MVP 시절 25점을 기록하던 득점이 16.4로 떨어졌고, 어시스트 갯수도 4.7개로 떨어졌다. 필드골 성공률은 42.7%, 3점슛 성공률은 29.7%, eFG%는 44.8%, TS%는 47.9%, PER은 13.4, ORtg는 96, Drtg는 110을 기록했다. 심각한 수치는 WS인데 0.4이며 이다. 이말은 즉 로즈는 2015-16 시즌 팀 승리에 단 1승도 기여하지 못했다는 걸 보여주는 수치이다. 물론 절대적인 수치는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보여지는 수치가 빠르게 추락하고 있다. 또 ESPN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RPM(Real Plus Minus) 스탯에서는 -4.26을 기록했는데, 이 수치는 NBA 포인트 가드 85명 중 81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결국 시즌 종료후 트레이드로 뉴욕 닉스행이 확정되었다. 불스가 닉스에게 로즈, 저스틴 홀리데이, 2017년 드래프트 2라운드 픽을 내주고 호세 칼데론, 제리안 그랜트, 로빈 로페즈를 받아왔다.
6. Good Bye Chicago Bulls
2015-16 시즌 종료 후 트레이드로 뉴욕 닉스행이 확정되었다. 불스가 닉스에게 로즈, 저스틴 홀리데이, 2017년 드래프트 2라운드 픽을 내주고 호세 칼데론, 제리안 그랜트, 로빈 로페즈를 받아왔다. 그리고 뉴욕은 포르징기스를 도와줄 보디가드 겸 로즈와 호흡을 맞출 조아킴 노아와 4년 7200만 달러의 계약을 맺는다.
다큐멘터리 촬영 도중 뉴욕으로 트레이드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흐느끼는 로즈
그리고 2016년 11월 15일 뉴욕 닉스의 유니폼을 입고 돌아온 한때의 시카고 불스의 '''두''' 영웅을 위해 시카고 불스는 헌정영상을 바쳤다.
이날 경기에서 로즈는 15득점 7리바운드 11어시스트를 거두며 뉴욕의 승리로 돌아가게 되었고, 이렇게 한때 시카고 영웅들의 완전한 퇴장을 하게 된다.
7. 뉴욕 닉스 1기
"아마도 로즈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로즈는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여전히 훌륭한 레벨을 유지하고 있다" -. 카멜로 앤서니
2015-16시즌 32승 50패, ORtg 102.0(26위), DRtg 104.8(18위)의 성적으로 마친, 뉴욕은 팀의 가장 큰 약점인 팀에서 돌파로 수비를 흐트려놓을 가드가 절실했고, 필 잭슨 사장의 선택은 로즈였다. 그리고 로즈는 등번호를 불스시절 사용한 1번이 아닌, 고교시절 사용한 25번을 사용하게 된다.
일단 뉴욕에는 에이스인 카멜로 앤서니와 팀의 기대주인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가 있는 상황이라, 데릭 로즈는 뉴욕에서는 더 이상 시카고 불스시절처럼 1옵션이 될 수가 없다. 어차피 뉴욕에서도 로즈에게 시카고 시절 만큼 기대도 하지 않았겠지만...
당사자인 로즈 역시 자신을 위해서 팀을 만들어준 시카고와 달리 뉴욕에서의 피닉스 감독 시절(2013~16시즌) 공격부문에 중점을 둔 "업-템포 농구"를 주로 구사했던 제프 호너섹 감독의 새로운 스타일에 적응을 해야하며, 브랜든 제닝스, 코트니 리, 저스틴 홀리데이 등으로 구성된 뉴욕의 백코트 로테이션에 적응을 하는 것, 그리고 시카고 불스 시절 언제나 호의적이였던 시카고의 언론과 달리 미국 전체에서도 극성스럽기로는 손에 꼽히는 뉴욕의 언론에도 적응을 해야한다.
로즈의 뉴욕 닉스에서의 1년은 전혀 나쁘지 않았다. 원래 미들레인지와 3P가 약했던 것이 올해는 너무 떨어져서 문제가 되었지만, 분명히 MVP시절만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쓸만한 돌파능력을 보여주었고, 지난시즌 커리어 전체에서 최악의 시즌을 보내야 했던 걸 감안하면, 이번 시즌은 확실히 좋은 모습이였다. 하지만 결국 로즈는 4월 반월상연골판이 손상되는 부상을 입어, 관절경 수술이 필요하단 소식을 전해야만 했다.
이번시즌 뉴욕은 부상을 발표한 4월 3일까지 로즈가 출전한 64경기중에 26승 36패를 기록했고, 로즈가 출전하지 않은 경기에서는 3승 9패를 기록했다.
그리고 데릭 로즈는 뉴욕 닉스와 1년만에 작별을 고하고,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7.1. 2016-17시즌
첫 번째 부상 이후 가장 좋은 시즌을 보내고 있다. 당장 팀에서 에이스가 되어줘야 하는 카멜로 앤서니가 부상 이후 기량이 떨어졌고, 팀의 신성인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는 나이가 어린만큼 기복이 있어 2옵션 이상으로 활약하고 있는 중.
이러한 부활의 이유는 로즈 특유의 아크로바틱한 돌파력이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즈는 11월 24일 『ESPN』과의 인터뷰에서, "전성기는 지났다. 지금 나는 농구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행복하다. 따라서 과거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기 위해 애쓰지는 않고 있다"고 밝혔다.해당 기사 이미 전방십자인대, 오른 무릎 반월판, 연골파열까지 당하며, 과거와 같은 운동능력을 잃은 스스로를 인정하며 어느정도 변화를 선택한 듯하다. 지금까지는 새로운 팀에서 연착륙 단계라면 나쁘지는 않은 정도지만, 보다 긴 선수생활을 위해서라면 슛 없이 돌파에 의존하는 플레이스타일에 변화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8.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지난 시즌 뉴욕에서 운동능력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던 것은 분명하며, 기대 이상의 플레이로 멜로와 포르징기스를 뒷받침할 선수 이상으로 활약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로즈는 현 리그의 트렌드인 3&D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그 결과 FA 시장에서 로즈는 주변의 예상대로 냉정한 평가를 받았다. 당초 언론에서는 샌안토니오 스퍼스,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밀워키 벅스등 현실적으로 PG가 필요한 팀에서 로즈를 원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져 나왔지만, 현실적인 계약을 제시한 팀은 식스맨으로 젊은 선수들에게 조언을 해주길 바랬던 LA 레이커스와 카이리 어빙을 놓친 이후, PG 포지션이 급했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뿐이었다. 그리고 로즈는 캐벌리어스가 제시한 베테랑 미니멈인 210만 불을 선택하며 계약을 맺게 된다.
픽앤롤 플레이에 익숙한 로즈에게는 지난 시즌 내내 트라이앵글 오펜스에 갇혀있었던 것에 비하면, 타이론 루가 추구하는 플레이와 궁합이 맞는 편이라 확실히 지난 시즌보다는 편한 환경에서 플레이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이 된다. 지난 시즌 뉴욕의 언론과도 약간의 마찰음이 있었던 로즈에게 클리블랜드는 경기 외적으로도 환경이 좋은 편이다.[21]
클리블랜드에서 프리시즌에 기대이상의 모습을 보여주며, 팬들에게 기대를 모았지만 시즌 단 두 번째 경기 만에 '''발목부상'''을 당하고, IT가 부상으로 빠진 틈에 주전 PG를 맡아줄 거라 기대했던 팬들에게는 매우 좋지 않은 소식, 계속된 부상으로 은퇴를 고려하던 데릭 로즈는 2월이 되어서야 코트에 다시 복귀했지만, 폼은 시즌 초에 비해 상당히 떨어졌으며, 무엇보다 온볼 모드가 되어야만 하는 플레이 특성상 르브론과의 공존도 실패했다. 식스맨으로 나서는 경기에서 간간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아무래도 3점이 없는 가드가 살아남기에는 한계점이 여실히 드러났고, 설상가상 "화장실 사건" 이후, 타이론 루 감독과도 상당히 멀어졌으며, 결국 클리블랜드에서 유타로 트레이드된 후, 바로 방출이 되어버렸다. 로즈 팬들에게는 부디 그가 3점을 장착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그 기회마저도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커졌다.
이번 시즌 클리블랜드에서 16경기에 출전, 평균 9.8점을 넣고 1.8리바운드, 1.6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부상에 절망한 데릭 로즈, 소속팀 이탈... 미래 고민중 ESPN 은 로즈가 소속팀 클리블랜드 캐빌리어스를 이탈했으며, 자신의 앞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중이라고 전했다. 소속팀 복귀 여부도 지금으로서는 불투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로즈가 갑자기 팀을 이탈한 것은 잦은 부상으로 인한 정신적 피로 때문이다. 한 소식통은 ESPN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계속되는 부상에 지쳤으며, 정신적으로 부담이 큰 상태"라고 전했다.
이후 2018년 1월 다시 리그에 복귀를 하게 되었으며, 아이재아 토마스의 백업으로 잠시 경기에 나섰다. 하지만 1월 30일 인디애나 페이서스 전에서 타이론 루 감독이 그를 4쿼터에 출전시키려고 했을 때 그는 화장실에 있었고, 이후 타이론 루와는 완벽하게 결별상태가 되었으며 출전시간 역시 매우 감소해버리게 된다.
9.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결국 2018년 2월 8일 클리블랜드 팀동료였던 제이 크라우더와 함께 유타 재즈로 트레이드되었다.
트레이드 직후, 이미 리키 루비오와 도노반 미첼을 필두로 좋은 가드들을 보유하고 있는 유타 재즈 프런트는 로즈에게 본인이 원하는 새로운 팀을 찾아주도록 도와주겠다고 했고, 2월 10일 유타에서 방출되었다.
3월초 로즈에게는 미니멈 계약이 아닌 10일 계약의 건만 오고 갔다는 상황의 뉴스만 들릴 뿐 오랫동안 FA 상태로 있었으나, 잠잠하던 때 데릭 로즈가 드디어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와 계약하며 지미 버틀러, 타지 깁슨, 톰 티보도와 재회했다. 당시 미네소타에는 데릭 로즈가 자신의 전성기를 보내던 시절 시카고 불스의 사령탑이었던 톰 티보도 감독이 있었다. 또한 지미 버틀러, 타지 깁슨 등 로즈의 옛 동료선수들이 포진해있어 데릭 로즈가 편안한 마음으로 새출발하기에 좋은 환경이 마련됐다. 또한 제프 티그라는 주전 PG가 핸들링이 워낙 불안한 경우가 많아 로즈를 식스맨, 백업 가드로 돌릴 것으로 보인다.
9.1. 2017-18 시즌
로즈가 누구도 찾지 않는 최저 연봉의 저니맨이 되었다는 사실에 더 이상 기대가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특히 1번 시드 휴스턴 로케츠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 때 보여준 활약은 강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아군의 칼 앤서니 타운스와 지미 버틀러가 각각 플레이오프 울렁증과 부상 후유증으로 부진을 면치 못했던 상황에서 팀 내 최다 득점자 노릇을 했고, 클리퍼스 시절에도 플레이오프에 나름 강했던 자말 크로포드가 합세해 벤치 싸움에서 휴스턴을 이겨버리면서 적군의 크리스 폴의 엄청난 부진까지 겹쳐 예상 외의 접전 승부를 보여주었다. 제임스 하든과 클린트 카펠라가 68점을 합작하지 못했다면 휴스턴도 위험했던 상황이었다.
3차전에서도 17득점을 기록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이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으나, 결국 시리즈는 휴스턴의 4-1 승리로 끝이 났다, 이전과 달리 3점과 점퍼를 탑재하여 다시 한번 팬들에게 기대를 걸게 만드는 시즌으로 마무리.
9.2. 2018-19 시즌
시즌을 앞두고 미네소타와 1년 계약에 합의하며 울브스에서 한 시즌을 더 보내게 되었다. 자말 크로포드를 떠나보내면서 팀의 식스맨으로 낙점을 받은 상황이지만, 미네소타는 지미 버틀러와 칼 앤서니 타운스와의 불화로 인하여 버틀러가 트레이드를 요청하게 되며 격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로즈는 페이스업과 페이스 다운, 미드 레인지 점퍼, 3점을 장착하며 버틀러 트레이드 이후 현재 미네소타의 클러치 타임을 책임지고 있는 중이다.
10.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10.1. 2019-20 시즌
반등의 기회를 줬던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를 떠나 디트로이트와 2년 1,500 만 달러에 계약을 하면서 동부로 다시 팀을 옮기게 되었다.
주로 벤치에서 선발 출장하지만 평균 26분 정도의 적지 않은 출전 시간을 보장받으며 전성기 시절 버금가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1월 21일 기준으로 50%가 넘는 아투율을 보이며 평균 18.3득점 5.9어시스트를 기록하며 PER 22.46을 기록하고 있다. 다만 팀 성적이 매우 부진한 탓에 미네소타 시절에 비해 활약이 많이 언급되지는 않는 편.
이런 활약 덕분인지 LA 레이커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등 플레이오프 진출 및 우승을 노리는 팀들에게 트레이드 자원으로 관심받고 있지만 본인은 플레이 타임을 보장받을 수 있는 디트로이트에서 행복한듯 보인다.
최근 들어 종종 선발로 출장하기도 하고, 30분 이상 출장하는 경기 역시 늘어나고 있다. 비록 예전과 같은 폭발적인 운동능력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팬들은 건강한 데릭 로즈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동부 컨퍼런스 13위로 디트로이트의 시즌이 일찍 종료되었지만 50경기 출전 평균 18.1득점 5.6어시스트 2.4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나쁘지 않은 시즌을 보냈고 덕분에 PER도 21.13을 기록하며 전성기였던 11-12 시즌 이후 처음으로 20을 넘겼다.
10.2. 2020-21 시즌
11. 뉴욕 닉스 2기
11.1. 2020-21 시즌
2021년 2월 9일에 닉스 이적 오피셜이 떴다. 이로서 톰 티보도 감독과의 3번째 만남을 가지게 됬다.
닉스 복귀 이후 2월 9일, 마이애미 히트와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출전했는데 식스맨으로 20분 20초를 소화하며 3점슛 2방을 포함해 14득점을 기록, 팀은 2점차로 아쉽게 패했지만 좋은 모습을 보였다. 다음 경기였던 워싱턴 위저즈와의 경기에서도 19분 58초를 소화하며 14득점 6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준수한 모습을 보였다. 이번에는 팀도 18점차 승리.
[1] 여담이지만 NBA에서 홈팀 선수를 소개할때는 보통 "From~(~출신)"이라며 출신 대학을 소개한다. 그러나 불스 시절 로즈는 시카고 출신임을 강조하기 위해 "From Chicago!"라고 소개됐다. 야오밍처럼 출신 대학이 없는 경우 From China라고 소개되지만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경우 외국인들도 대학으로 소개된다는 걸 (룩 롱리의 경우 From New Mexico) 생각하면 로즈가 상당히 특별 대접을 받은 셈이다.[2] 재미 는 것은 고교시절 당시 로즈는 이미 일리노이주 리그를 통해 유나이티드 센터를 방문하기도 했다는 사실.[3] 듀크의 코치K나 캔자스의 빌 셀프같은 전통의 대학농구 명장보단 리쿠르팅, 즉 고교선수 스카웃의 대마왕으로 손꼽히는 인물. 2015년 현재 켄터키 대학교의 감독이다.[4] 이 때 캔자스 대학을 우승으로 이끈 것은 바로 NBA 마이애미 히트에서 뛰고 있는 탑텐 포가인(?) 마리오 찰머스의 동점 3점슛이다.. 60-63으로 뒤지고 있던 캔자스 대학은 찰머스가 3점슛을 성공시킴으로써 접어든 연장전에서 75-68로 승리를 거둔다.[5] 이후 로즈는 성적 및 특혜 논란에 휘말렸는데, 대학입시시험인 SAT 대리의혹 및 그의 형 레지 로즈의 팀 동행 등으로 홍역을 앓았다. 이는 감독인 존 칼리파리와 로즈가 10만불짜리 합의금을 지불하고, 로즈의 대학기록을 자체적으로 파기하면서 일단락되었다.[6] 팀의 구성원 - 선수든, 감독이든 - 중에 NCAA룰에 위반되는 행동을 한 사람이 존재할 경우 해당 시즌 대학팀의 기록 자체가 무효화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미시간 대학교 시절의 크리스 웨버.[7] NBA는 드래프트를 이용한 전력강화를 위해 고의로 패배하는 경우를 막기위해 꼴찌에게 자동적인 우선권을 주지 않는다. 대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한 팀들 전부에게 1000개의 구슬을 차등적으로 분배해줘서 나쁜 성적의 팀이 좋은 순위를 가져갈 수 있도록 어느 정도의 보장을 해주는 편. 당시 불스는 플레이오프 진출 못한 팀 중 성적이 좋은 편이었던지라 드래프트에서 좋은 순위를 받기가 어려웠다.[8] 거기에 에이전트인 b.j암스트롱의 힘도 있었다. 암스트롱은 시카고 첫 쓰리핏 당시 주전 포인트가드였다.[9] 카림 압둘 자바가 지닌 플레이오프 데뷔전 최다득점 기록과 타이기록.[10] 참고로 로즈는 2010~2011 시즌 리그에서 득점과 어시스트 랭킹 10위에 안착하는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11] 존 홀린저같은 stathead들의 경우 데릭 로즈의 수상은 팀 성적과, 빅3를 결성한 르브론 제임스와 드웨인 웨이드가 포제션 을 나눠먹은 효과라고 보기도 한다. 무엇보다 시카고 불스는 티보도가 만든 강력한 수비가 리그 1위의 원동력이었는데, 거기에 대한 데릭 로즈의 지분이 없다는 약점도 있었다.[12] 원래 로즈는 연차상 한도액이 정해지는 NBA 계약상 저 금액을 받을 수 없었지만 CBA 개정과 시카고의 통큰 지름 덕에 특별규정인 '''데릭 로즈 룰'''이 생겨나면서 거액을 받을 수 있었다. 이는 루키계약 기간내 1)MVP를 타거나 2)All-NBA팀에 들거나 3)올스타에 팬투표로 2번 선정되는 세 조건 중 하나를 충족시킬 경우, 루키계약 종료후 첫 FA계약때 팀 샐러리캡의 30%에 해당하는 금액을 최대치까지 받을 수 있었는데(종전엔 최대 25%였다.) 로즈는 이 모두를 가볍게 충족시키며 새로운 룰 제정에 자신의 이름을 걸게 되었다. 이후 이 조항이 명문화 되면서 케빈 듀란트,블레이크 그리핀이 로즈와 같은 5년 94M을 따냈다. 러셀 웨스트브룩의 경우는 조건을 충족했지만 본인이 25%로 낮춰서 계약했으며, 폴 조지의 경우 2013~14시즌 종료때 올NBA 팀에 들 경우 로즈 룰 적용이 가능하다.[13] 슬램덩크(만화)의 강백호가 보여주듯이 운동선수에게 등 부상은 정말 위험한 일이다. 물론 이후에 더 큰 부상이...[14] 부상으로 스타 플레이어를 잃으면 단순히 그 팀만이 아니라, NBA라는 회사에게도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실제로 마이클 조던 이후 세대를 이끌어나갈 초신성으로 기대된 그랜트 힐이나 앤퍼니 하더웨이의 부상은 한창 붐을 일으켰던 NBA에 파업과 더불어 상당한 치명타를 안겼고, 그걸 회복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15] 98-99시즌은 파업이 아니라 구단들이 치솟는 선수들의 몸값에 대한 대비책으로 직장페쇄로 50경기만 치루어진 것 이다. 또한 조던 은퇴이후 빈스 카터, 제이슨 윌리엄스가 각 각 화려한 덩크 및 앨리업, 화려한 패스로 급격스런 인기하락은 없었다. 오히려 2000년대 중반 스퍼스, 피스톤즈 및 원맨팀 르브론의 캐벌리어스 등 원맨팀, 조직력중심팀이 파이널무대에 오르고 원사이드게임이 되자 파이널시청률에서 엄청난 데미지를 입었다. 조던 은퇴 직후 몇 년간 코비, 티맥, 아이버슨, 카터 등 SG/SF 포지션 선수들의 전성기진입 및 르브론, 웨이드, 멜로의 데뷔로 조던 빈자리는 빠르게 충당할 수 있었다.[16] 불스가 12점 리드중이었다[17] 공교롭게도 이 부상은 로즈의 대학선배이자 비운의 슈퍼스타였던 앤퍼니 하더웨이가 몰락하게 된 부상과 일치한다...[18] 12점이나 리드중이었는데도 로즈를 계속 내보냈던 감독도 비판을 받고있다[19] 로즈가 이기도록 뒷받침 해준게 뭐냐, 우승전력이 안되면 로즈가 뛸 이유가 없다, 불스는 플옵 우승할 팀을 만들지 못했다 등등...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20] 일례로 단축시즌 동안 부상을 달고 지내던 NBA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선수인 스테판 커리가 기존의 나이키 신발에서 언더아머 신발로 갈아 타면서부터는 MVP급의 활약을 보여줌과 동시에 부상에서도 자유로워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21] 로즈는 불스 시절에는 시카고의 아들로 시카고의 언론으로부터 늘 기대와 위로를 받았지만, 지난 시즌 뉴욕에서는 트라이앵글 오펜스 하나로 사사건건 극성이었으며, 한 경기 한 경기마다 비판도 부지기수였다. 다행히 클리블랜드는 뉴욕만큼 극성 언론이 설치는 곳은 아니며, 무엇보다 르브론이 워낙 클리블랜드 지역 언론과도 잘 지내는 편이라 웬만한 일은 커버가 되는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