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결의

 


'''고사성어'''
'''桃'''
'''園'''
'''結'''
'''義'''
복숭아 '''도'''
동산 '''원'''
맺을 '''결'''
옳을 '''의'''


1. 개요


유비, 관우, 장비복숭아 밭에서 의형제를 맺었다는 이야기를 뜻하는 말. 소설 삼국지연의는 1회에서 도원결의와 황건적의 난을 다루며 시작한다. 아예 몇몇이 의기투합하는 일 자체를 뜻하는 일종의 관용어(사자성어)처럼 쓰이기도 한다. 또한 유비, 관우, 장비가 그랬듯이 복숭아 나무 아래에서 의형제를 맺는 일을 뜻하는 관용어로서도 쓰인다.

1.1. 정사


도원결의는 정사 삼국지에는 직접적으로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실제로 유관장 세 명이 서로 형제처럼 지냈다는 기록은 정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선주(유비)가 평원상이 되자 관우와 장비를 별부사마로 삼고 부곡을 나누어 통솔하게 했다. 선주는 두 사람과 함께 잠자며 같은 침상을 썼고 '''은혜가 형제와 같았다'''. - 촉서 관우전

나(관우)는 조공(조조)께서 후히 대우 해주시는 것을 잘 알고 있으나, 유장군(좌장군 유비)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고 '''함께 죽기로 맹세했으니 이를 저버릴 수는 없소'''. - 촉서 관우전

장비는 자가 익덕이고 탁군 사람이다. '''젊어서부터 관우와 함께 선주를 섬겼는데, 관우가 몇 년 연장이어서 장비는 그를 형으로 섬겼다'''. - 촉서 장비전

지금 한왕(한중왕 유비)은 일시적인 공로에 근거하여 한승을 높은 신분이 되게 했지만, 마음속의 평가가 어찌 군후(관우)와 동등하겠습니까! 게다가 한중왕과 당신은 비유컨대 '''한 몸처럼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고 화와 복도 같이 합니다'''. - 촉서 비시

관우와 유비는 '''도의상으로는 군신 관계지만, 은혜는 마치 부자의 관계'''입니다. - 위서 유엽

당대에도 널리 퍼진 사실이었는지 타국의 인물들도 이 셋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 후세 사람들이 이런 기록들을 보고 "저 3명이 실제로 의형제이지 않았을까?"라고 상상해서 만들어진 것.[1] 게다가 실제로도 이들이 의형제였음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당대의 역사서에서 숱하게 나온다. 그 증거가 바로 위의 기록들.[2]
흔히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의 창작으로 알려져 있으나, 원래는 삼국지평화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그 유명한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날 수는 없었지만,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죽기를 원합니다!' '''도 이미 삼국지평화에 있었던 대사이다. 물론 나관중이 연의를 쓸 때 삼국지평화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은 아니고 일부 대사를 살짝 각색하기는 했다. 즉, 이름을 알 수 없는 삼국지평화의 저자가 지어냈거나 또는 삼국지평화가 만들어지기 전 민간 설화로 전해지고 있던 것을 수록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다른 인물들의 기록으로 보아, 당시에는 친한 사람들끼리 의형제를 맺는 풍습이 흔했던 것으로 보인다.
같은 고향 출신인 유비와 장비는 몰라도 불분명한 일로 탁군으로 망명한 타향인인데다 자존심이 강한 관우가 두 사람과 각별한 사이가 됐다는 점으로 미루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세 사람은 출신과 성격에 관계없이 서로 금방 뜻이 통할만큼 잘 맞는 면이 있었던 걸로 보인다. 그래서 반평생을 함께 하며 서로에 대한 의리를 지켰겠지만.

2. 내용


飛曰:「吾莊後有一桃園,花開正盛;明日當於園中祭告天地,我三人結為兄弟,協力同心,然後可圖大事。」玄德、雲長,齊聲應曰:「如此甚好。」次日,於桃園中,備下烏牛白馬祭禮等項,三人焚香,再拜而設誓曰:「念劉備、關羽、張飛,雖然異姓,既結為兄弟,則同心協力,救困扶危;上報國家,下安黎庶;不求同年同月同日生,但願同年同月同日死。皇天后土,實鑒此心。背義忘恩,天人共戮。」誓畢,拜玄德為兄,關羽次之,張飛為弟。祭罷天地,復宰牛設酒,聚鄉中勇士,得三百餘人,就桃園中痛飲一醉。

장비가 말했다. "내 집 뒤에 복숭아밭이 있는데, 꽃이 한창 성할 때요. 내일 동산에서 천지에 제사를 지내고, 우리 셋이 의형제를 맺어 힘을 합치고 마음을 함께 해야, 큰 일을 도모할 수 있을 테요." 현덕운장이 일제히 대답하였다. "좋은 생각이네." 다음날, 복숭아밭에서 검은 소와 흰말을 갖추어 제물로 삼고, 세 명이 분향한 뒤, 두 번 절하여 맹세하였다. "유비, 관우, 장비는 비록 성씨는 다를 지언정 의형제를 맺은 즉, 마음을 함께하고 힘을 합추어, 어렵고 위험할 때 서로 도울 것이다. 위로는 나라에 갚고, 아래로는 뭇사람을 평안케 할 것이다. 한날한시에 태어나지 않았으나 한날한시에 죽기를 바라며, 하늘과 땅의 왕이 우리 마음을 굽어 살피어, 의와 은혜를 저버리는 자는 하늘과 사람들이 벌하여 죽을 것이다." 맹세를 마치고 절하여 현덕을 맏형으로, 관우를 둘째로, 장비를 막내로 삼았다. 천지에 제사를 다 지내고 다시 소를 죽이고 술을 가져왔으며, 고을 중의 용사들을 모아 300여 명을 이루니, 복숭아밭에서 취할 때까지 마셨다.

도원결의는 삼국지연의의 제1장에 등장하는 내용으로, 대략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황건적에 맞설 관군을 모집하는 방을 보고 난세를 탄식하던 돗자리 장수 유비에게 장비가 다가와 "사나이가 되어서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해야지 어찌 탄식하기만 하고 있는가?"라고 물으면서 술집에 들어가서 술자리를 가진다. 여기에 의용군에 지원하려던 관우가 합세, 함께 천하를 평정하자면서 그 날로 바로 복숭아 밭에 가서 의형제를 맺고 황건적과 싸울 의병을 일으킨다. 덤으로 탁군의 청년 수백 명도 함께 도원에서 술을 마시고 의병이 되었다. 이 때 유비가 만 23세, 관우가 만 24~19세,[3] 장비가 만 19~17세[4]로 형제의 서열이 정해진다.
삼국지 관련 매체를 읽다가 이 설명문을 읽으면 뭔가 많이 빠진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런데 원래 삼국지연의의 도원결의는 이렇게 아주 단순한 내용이다. 유비가 부모님께 차를 가져다주려다 도적에 빼앗기고 장비가 찾아주는 에피소드라든지, 후에 장비와 유비가 재회하여 관우까지 함께 유비의 어머님을 뵙고 유비 어머니가 준비한 술로 도원결의를 한다든지, 옛 악연 때문에 서로 치고받던 관우와 장비를 유비가 뜯어 말리며 서로 얼굴도장을 찍었다든지[5] 장비가 바위 밑에 넣어둔 고기를 관우가 바위를 치우고 가져간다든지 하는 에피소드들은 모두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 등의 훗날 작품들에서 첨가된 것이다. 삼국지연의 원본과 원문에 충실한 황석영 삼국지나 다른 정역본으로 읽으면 딱 저 내용만 나온다.
후대에 첨가된 에피소드에 따르면 도원결의 직전, 유비의 집에 세 사람이 모이고 유비 어머니가 좋은 날이니 좋은 술이 필요할 것이라면서 아껴뒀던 술을 꺼내 도원결의를 맺는데, 이 때문에 도원결의의 장소가 유비네 복숭아밭으로 오해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원문에 따르면 도원결의를 맺은 장소는 '''장비 소유의 복숭아밭'''이다. 상식적으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가난한 유비네 집에 복숭아밭이 있었다면 돗자리를 짜면서 생계 유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밭을 일구면서 살았을 것이다.

3. 비평


치밀한 복선, 소설의 장치, 적합한 개연성 등을 따지는 현대 소설의 관점에서 보면 도원결의는 굉장히 뜬금없는 전개다.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오로지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의기투합"'''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유비, 관우, 장비가 그 전에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조차 언급되지 않는다. 이 장면에 대해 납득하지 못할 이유를 따지자면 끝도 없고, 트집을 걸려고 하면 역시나 끝이 없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도원결의는 고전소설로서 삼국지의 도입부를 장식하는 가장 강렬한 장면이다. 유비, 관우, 장비의 만남이 합리성이나 개연성을 떠나 직선적이고 간결하기 덕분에 도원결의에서 보여주는 의리와 우정이 더욱 빛난다. 유비가 그의 뜻을 함께하는 두 아우를 만나는 '우연성' 때문에 삼형제의 '운명적인 관계' 역시 더욱 돋보인다. 말하자면, '어차피 맺어질 사람들은 맺어지게 마련'인 것이다.
게다가 삼국지연의의 전체 흐름을 보면 유비, 관우, 장비의 과거를 길게 서술할 필요가 없다. 훗날 난세를 헤쳐나가 천하를 다투는 스토리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기에 나관중'''쓸 필요가 없는 내용'''이라고 간주했을 수도 있다. 삼국지에서 중요한 것은 생사를 같이하기로 결의한 삼형제가 대륙을 누비며 그 우정과 결의를 끝까지 지켜나가는 장면이지, 이들의 과거가 어떠했는가는 비교적 그 중요도가 떨어진다. 당초 난세에는 그 인물의 과거가 어땠느냐보다는 지금 나와 함께 할 수 있는가가 중요했을 것이다.[6]
이는 고전소설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삼국지연의는 고전소설인 만큼 현대소설과는 문체와 서술법이 다르다. 당시에는 만담가에 가까운 강사들이 관중을 모아놓고 판을 벌여서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려면 그리 의미가 없어 보이는 과거사를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는 것보다는 강렬하고 멋진 묘사, 그리고 그들의 주요 행적 위주로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고전소설도 이와 마찬가지로, '영웅은 영웅을 알아보고, 대의를 위해 셋이 함께 떨치고 일어났다' 라며 도입부를 정리하고 바로 중요한 내용으로 들어가는 것이 몰입감 넘치고 내용도 깔끔한 것이다. 이런 전개가 현대인에게는 먹히지 않을 뿐.[7]
어찌보자면 정서의 차이라고 할 수 있으며, 도원결의 대목을 읽는 현대인들의 반응이 '뭐 이렇게 뜬금없어' 인 것도 시대가 지나면서 독자들의 정서와 취향이 변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현대 삼국지 관련 매체에서는 도원결의 장면 이전에 짧게라도 삼형제가 엮이는 과정을 묘사한다. 일부 삼국지 판본에서도 이 셋이 어떤 일로 우연히 엮인 후 다시 재회하여 그때부터 의기투합했다는 식의 묘사가 나온다.
한편으로는 현대소설의 관점에서 본다고 해도, 도원결의의 구성을 꼭 부적절하다고 평가할 수만은 없다. 작중의 모든 사건에 대해 독자에게 그럴싸하게 납득시키는 것이 작가의 책임이지만, 소설의 분량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다. 그래서 작가는 작중의 모든 사건에 대해서 일일이 기승전결을 부여할 수가 없다. 삼국지연의는 유관장 세 사람이 만나 의형제가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유관장 삼형제가 한말의 난세를 헤쳐나가는 이야기다. 세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삼형제가 되는 것은 이야기의 발단이며, 분량이 정해진 소설이다보니 "셋이 출발하기 전에 원래부터 이랬었다" 하는 식으로 간단한 배경이야기처럼 서술하는 것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후의 극 전개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부분이라면 현대 소설에서도 굳이 시시콜콜하게 서술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이들이 왜 같이 만나 형제가 되었냐가 아니라, 서로 형제가 된 그들이 어떻게 난세를 헤치며 끝까지 배신하지 않고 맹세를 지켰는지이기 때문이다. 대신 소설 작법은 계속해서 발달해왔으며, 배경이야기에 대해서도 독자가 최대한 납득할 수 있도록 서술하는 것이 권장되고 있다. 그 때문에 현대에 쓰여지는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 삼형제의 과거 이야기를 추가하여 독자가 그럴싸하다고 여기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즉, 작가들이 조금 더 신경을 많이 쓰고, 조금 더 공을 들이게 된 것이다.
관점을 달리하면, 도원결의 장면의 개연성을 위해서는 그 앞부분에 서술이 필요한 내용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도 생각해볼 수 있다. 셋이 의형제가 되는 과정에 대해 충분한 개연성을 확보하려면 한나라 말기의 사회상에 대한 묘사가 필수적이며, 일개 민간 의료사 겸 종교 교주가 휘하 무리들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나라의 존망을 위협하게 된 과정에 대해서도 설명이 필요하다.[8] 또한 한나라 조정이 어떻게 썩어갔으며, 당대 제후들이 어떻게 해서 군벌로 성장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하다보면, 한나라의 정치와 군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언급하게 될 것이다. 이 정도 설명을 써놓은 후 삼형제가 걸어온 과거를 슬쩍 양념으로 곁들이면 충분한 개연성이 확보될 것이며, 도원결의 장면만 가지고 하나의 완결된 시나리오를 만들 수가 있다. 그리고 이쯤 되면 이것은 이미 소설이 아니라 역사 교양서적의 수준에 달해 있다. 고전 소설에서는 분량조절과 재미를 위해 디테일한 배경 설명을 과감히 빼버렸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비교적 최근의 삼국지연의 매체에서는 당시 어지러웠던 한나라 시대상에 대해서도 많이 손을 대고 있긴 하다.[9]
현대 소설에서도 이야기의 발단, 그것도 최초의 도입부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굳이 복선을 설치하고 철저한 개연성을 확보하지는 않는다. 작중 등장하는 모든 요소에 대해 완벽한 인과관계와 기승전결을 제시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10]. 결국 어느 지점에서 생략은 필요해질 수 밖에 없고, 따라서 분량과 재미를 위해 일정한 지점 이상을 생략하는 것은 고전소설만의 특징이 아니다. 다만 고전소설에 비해 현대소설의 독자들은 생략된 부분에서 이질감을 느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고, 이를 솜씨 좋게 감추는 소설의 작법 역시 발전한 것 뿐이다. 이 때문에 현대의 삼국지연의에서는 독자를 배려하는 장치가 추가된 것이다. 과거에는 술집에서 뜻이 맞는 사람끼리 만나 대뜸 의형제를 맺기로 하는 것이 충분히 "있을 법" 한 일이었는데, 의식이 변화한 현대에는 이것이 매우 이상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 독자들이 읽을 때 도원결의를 충분히 "있을 법" 하게 만들어줄 필요가 있었을 뿐이다. 또 이점에서는 독자의 정서와 관점이 변화한 점 역시 생각해야 한다. 중국 고전 전통에서 <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협객>은 아주 전형적인 영웅상 중 하나였고, 이러한 협객들이 사소한 계기로 뜻을 모아 함께하는 것 역시 (실제로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창작물 속에서는 익숙하게 받아들여지던 장면인 것. 하지만 현대인의 기준에서는 이것이 개연성 없는 장면으로 보이는 것.

4. 결론


중요한건 도원결의 이전이 아니라 도원결의 이후 저 유관장 삼형제의 행보다. 삼인방의 험난한 인생경로, 조조손권을 비롯한 여러 적들의 수많은 공격과 유혹에도 불구하고 죽을때까지 서로를 저버리지 않고 오히려 의기투합하여 난세를 헤쳐나간 그들의 행보 덕분에 도원결의는 비록 허구의 이야기일지라도 그들의 우정을 일컫는 대명사가 될 수 있었다. 군신과 형제와 친구 사이의 배반이 밥먹듯이 일어났던 후한 말의 난세였기에 그들의 의(義)는 그런 진흙탕 속에서 더욱 빛날 수 있었다.
난세이던 당시엔 상관양아버지을 죽인 배신의 아이콘도 있었고, 의심이 든다고 자신을 친절히 맞이해주던 옛 친구와 그 일가족을 죽인 군주도 있었으며[11], 형제끼리 못 싸워서 안달이던 사세삼공의 명문가도 있었고 망해가는 황실을 외면한 채 황제놀이를 하던 들도 있었다. 누구보다 사람들 눈을 신경써야 할 군웅들조차 저랬는데 일반 사람들이야 오죽했겠는가.
이런 험난한 시대에 유관장 삼형제는 난세에 몸을 던진 작은 세력으로 수많은 고비를 겪고 아예 적에게 풍비박산나서 부득이하게 서로 떨어지게 된 일도 여러번 있었고 더 크고 강한 세력으로부터의 유혹도 수차례 있었지만[12] '''결국 저 세 명은 죽을 때까지 서로를 배반하지 않았다. 정사에서든 연의에서든'''.[13]
사실 유관장 삼형제를 제하더라도 삼국지에서는 손책주유, 한수마등 같은 경우처럼 의형제를 맺은 다른 이들도 많지만 한수와 마등 같은 경우는 연의 기준으로 마등이 죽을 때까지 한수와 친했지만 아들인 마초 대에서는 조조의 농간으로 한수와 갈라지면서 빛이 바랬고, 정사에선 아예 한수와 마등이 서로 대립했다 뭉쳤다를 반복했기 때문에 의형제라기 보단 서로를 이용하는 쪽에 가까워 보인다. 손책과 주유의 경우는 사이가 좋았지만 그들의 관계가 시험받을 정도로 큰 위기가 없었다. 무엇보다 둘 다 너무 일찍 죽었다.
결국 도원결의는 그 자체보다도 이후에 맹세를 한 그들이 온갖 유혹과 위기에 흔들리지 않고 숱한 역경을 겪었어도 최후에 이르기까지 서로를 배신하지 않으며 결의를 끝까지 지켜냈기에 특히 돋보이는 것이다. 삼형제는 20대에 만나 관우가 패사할 때까지 수십년을 함께 했다. 지금보다 평균 수명이 짧고 혼란했던 천 몇 백년 전 시대에서 수십년을 굳건한 결속력으로 이어진다는 건 좀처럼 볼 수 없는 일이다. 고대까지 갈 것도 없이 현대인들 역시 수십년은 고사하고 단 몇 년이나 몇 개월이라도 굳건한 신뢰가 이어지는 경우는 정말 보기 드물다. 이런 점이 당대 사람들은 물론 후세까지도 사대부들이나 민중들, 삼국연의를 형성한 이야기꾼들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큰 울림과 감동을 줬던 것이다. 중국 뿐 아니라 삼국지가 널리 퍼진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도원결의가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까지도 의리의 상징으로 굳어진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도원결의가 행해졌다고 전해지는 장소에는 현대에 들어와선 호텔이 세워졌는데, 언제나 전세계의 삼국지 팬들 덕분에 즐거운 아우성을 지르고 있다고 한다.
원래 여기에는 나름 오랜시간동안 있던 사당 같은게 있어서 유관장 본인들과 여러 신하들을 모시고 여러 사람들이 글이나 비 등을 만들어 놓았는데 홍위병이 처리했다.
도원결의에서 사소하지만 재미있는 부분으로 나이 문제가 있다. 정사 삼국지의 경우 일단 유관장 3인의 생년월일은 명시되어 있지 않은데, 다른 자료들까지 참고하면 유비는 161년생이고 관우는 160년생 혹은 162년생, 장비는 165년생으로 장비가 확실히 막내인 것은 맞다. 문제는 관우인데, 나관중삼국지연의에서는 민간설화의 162년 관우 출생설을 채택하여 나이순으로도 유비>관우>장비가 되도록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관우가 160년에 태어났다는 설도 있는데, 이를 채택한 것이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다. 여기에서는 실제 나이로 따지면 관우가 유비보다 한 살 많지만 관우가 스스로 맏이가 되는 것을 사양하고, 인덕의 그릇이 큰 유비에게 큰형 자리를 양보한 것으로 나온다.

5. 기타 창작물에서


원작의 도원결의가 현대인들의 시각에서는 매우 뜬금없는 장면이기 때문에, 도원결의 전에 배경이 될만한 뭔가를 끼워넣는 것은 삼국지 각색물에서는 매우 흔한 일이며 중국에서도 도원결의 이전에 유관장 삼인이 유주로 오기 전까지 겪은 사연과 관련된 각종 민담이 매우 많이 전해진다.

5.1. 민담


민담에서는 도원결의의 전후 사정을 추가하는 것이 많다.
  • 한 용이 두 호랑이를 나누다. : 장비가 고기를 팔고 있었는데 그 옆에서 관우가 커다란 항아리를 하나 가져와서는 그 속에 든 고기를 공짜로 나눠줬다. 이 때문에 다혈질인 장비는 참지 못해서 결국 관우와 장비가 맞붙었다.[14] 그리고 유비가 관우와 장비를 힘으로 떼어버린 후 중재해서 셋이 같이 다니게 되었다. 84부작 삼국지에서 약간 비틀어 인용된 민담이다. 여기서 한 용은 훗날 황제가 된 유비, 호랑이는 오호대장군이 된 관우와 장비를 의미한다.
  • 나무타는 세 형제 : 셋이서 서로 형이 되려고 싸우던 도중 장비가 기습적으로 주위의 큰 나무에 먼저 올라가는 사람이 큰형이 되자고 외친 다음 재빨리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관우는 아차 당했다 싶었지만 둘째가 되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나무 중간까지 올라간 것으로 만족. 그런데 유비는 나무 밑둥을 껴안고 "이 나무는 본래 뿌리로부터 나온 것이니 뿌리에 가까이 있는 내가 큰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이 재치에 관우와 장비도 동의하여 결국 올라간 나무 높이의 역순으로 형제 서열을 정했다는 이야기. 중국의 진유동 삼국지, 대만의 채지충 삼국지가 이 민담을 차용했다.
  • 박봉성 삼국지에선 현지 취재 중 들은 민담을 소개하는데 유비, 관우, 장비 셋이 알게 되어 뜻이 잘 맞음을 알게 되자 의형제를 맺으려고 하는데 장비야 어차피 제일 어리니 막내로 자연스럽게 빠졌지만 유비는 황실 후예, 관우는 나이가 제일 많아서 둘 사이는 일단 상호존대하는 식으로 덮어두게 된다. 그러던 중 유비와 장비가 관우의 집에 초대되고 유비는 관우가 권하는 돗자리에 앉는데 그때부터 관우가 안절부절하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여긴 유비가 왜 그러냐고 묻자 관우는 유비를 일어서게 하고 앉아있던 돗자리를 걷는데... 돗자리 아래엔 구덩이가 파졌고 그 안에는 관우가 산채로 잡은 용이 쑤셔박혀 있던 것이다. 즉 유비가 변변찮은 인물이면 용이 날뛸 테고 그렇지 않고 용이 가만 있다면 용을 잡아가둔 자신보다 더 위대한 영웅일 거라고 생각한 것. 감복한 관우가 이제부터 주군으로 모시겠다고 하자 유비는 그럴 거 없이 형제가 되자고 하여 유관장 삼형제가 만들어진다.

5.2. 코에이 테크모 삼국지 시리즈


몇 몇 시리즈에서는 도원결의 이벤트가 존재한다. 없는 시리즈라도 이 셋은 기본적으로 서로에 대한 시스템적 상성이 매우 좋고, 관우와 장비는 웬만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유비를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때문에 유비 세력을 멸망시키고 관우와 장비를 등용하려면 유비를 어떻게든 죽이지 않고 포로로 만들어 등용시켜야만 한다. 인연 시스템이 있는 삼국지 13에서 이 셋은 도원결의라는 전용 인연으로 엮여있다.

5.3.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


요시카와 에이지가 독자적으로 각색한 전개가 여러 작품에서 인용되면서 유명하다.
돗자리 장수인 유비가 몇 년동안 뼈가 빠지게 모은 돈으로 어머니에게 선물하려고 그 당시엔 초레어급 사치품이던 (茶)를 사다가 황건적한테 털릴 뻔하자 장비가 와서 유비를 도와준다. 그 대가로 한나라 왕실에서부터 내려오던 가보였던 자신의 검과[15] 장비의 볼품없는 검을 바꾸는데, 유비의 모친은 그 검이 무슨 검인 줄 알고 그렇게 쉽게 바꿔줬냐며, 고작 차를 지키기 위해 그 검을 남에게 줘 버린 것이라면 자신은 그걸 먹을 필요가 없다면서 차를 강물에 던저버린다. 이후 우연히 장비를 만나게 된 유비는 그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장비는 칼에 어울리는 인물이 되어달라며 돌려준다. 그리고 의형제인 관우를 찾아가 유비에 대해 알려주는데 관우는 처음에는 "그런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어디 있느냐?" 하면서 장비를 나무라지만 사실 그것은 주변에 소문이 새나가지 않기 위함이었고 밤이 되자 무장을 챙겨서 직접 유비를 찾아오고 유비의 모친도 만나게 된다. 유비의 모친은 이런 날이 오길 기다렸다며 비밀리에 준비한 술상을 대접하고 관우와 장비는 유비에게 주군으로 모실테니 받아달라 청한다. 그러나 아직은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는 유비의 말에 관우는 평생 함께 하자는 의미에서 의형제를 맺자고 제안하고 유비도 이를 수락하면서 세 사람은 도원결의를 맺게된다.
이 각색 전개는 원작에서는 등장도 안 하는 유비의 어머니가 상당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오리지널 캐릭터홍부용이 등장한다.
요시카와 에이지를 원작으로 삼은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는 물론이고 곱빼기 삼국지, 고우영 삼국지[16] 등 한일의 많은 삼국지가 이 장면을 넣었기 때문에 이게 원래 삼국지에 있는 내용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5.4. 삼국전투기


삼국전투기의 시작은 반동탁 연합군이기 때문에 초반부에 도원결의는 등장하지 않으나, 삼국전투기에서 유관장 형제가 개그 캐릭터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시점인 적벽대전 편에서 꽤 멋있게 회상 형식으로 그려졌다.
다만 중간에 복숭아 도(桃)를 포도 도(萄)로 패러디한 개그가 나와서 포도밭에서 했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원전은 복숭아밭이 맞다. 복숭아나무 자체가 중국 원산이고 지금도 탁현 지역을 비롯한 중국 북동부 지역은 복숭아의 주 산지로 유명한 데 반해, 포도는 중국에 전래된 시기가 장건이 비단길 개척하던 때였기 때문에 후한 말만 해도 매우 귀한 이국의 과일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17] 결국 최훈의 패러디는 완전히 쓸데없는 개그. 동아시아 문명권에서 도원은 일종의 이상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도원결의는 당시 일종의 관용구처럼 쓰이던 표현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후 유비 사망시에 그려진 편에서는 도원종언이 그려졌다.

5.5. 삼국지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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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동탁연합 24화에서 언급. 유비관우는 맥주를, 장비는 콜라를 마시고 있다.[18]
작품 내외로 유관장 삼형제는 통칭 '피치 보이즈'로 불린다.

5.6. 배한성, 배칠수의 고전열전


2부에서 다뤄진다. 도원결의를 한 후 서열을 다루기 위해 슈퍼스타 도원결의를 한다. 사회자는 배칠수, 심사위원은 슈퍼스타 K의 심사위원이었던 윤종신.
당연히 장비는 윤종신 팬이라고 그에게 아부했지만 심사는 냉정했기에 꼴지. 이 결과에 열받은 장비는 "난 처음부터 윤종신 니가 싫었어!"라며 발끈했다. 1등은 유비가 되었다.

5.7. 정비석 삼국지


유비가 노모를 대접하기 위해 차를 샀다가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보검과 차를 같이 황건적에게 빼앗기고 살해당할 위기에 몰렸는데 이를 장비가 황건적들을 패대기치고 되찾아주며 유비를 구해줬다. 그 이후로 유비와 장비는 친구로 지냈는데 어느 날 장비가 학식이 뛰어나면서도 힘에서 자신에게 전혀 안밀리는 사람을 자기 친구라고 데려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관우였다. 이렇게 세명이 만나자 바로 의형제를 맺었는데 의형제를 맺기에 앞서 서로의 족보를 확인해본 결과 유비가 황실 종친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그렇게 유비를 큰 형님으로, 관우를 둘째, 장비를 막내로 해서 형제가 되기로 맹세를 했다.

5.8. 김경한 삼국지


죄를 짓고 도망치는 관우유비가 자신의 식구로 받아들여서 관우를 보호하며 같이 살게 되었고 나이가 어려서 아직 자(字)가 없었던 장비에게 유비가 직접 관우의 휘가 우(羽)라는 것을 이용해 "너희들은 나의 날개나 다름없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은 언제나 사이가 좋아야 하고 그래서 내가 나의 자와 이 친구의 휘를 조합해서 장비 너의 자를 지었노라." 라면서 장비에게 익덕(翼德)이라는 자를 지어주었다. 이렇게 장비의 자를 지어 준 이후 유비는 관우와 장비 외에도 동네 친구인 간옹까지 불러들여서 '''4명'''이서 의형제를 맺었다. 이 과정에서 유비는 자신이 황건적을 토벌하겠다고 했는데 이 때 의용군을 모집하기 위해서 탁현 누상촌 곳곳에 방을 붙였고 이에 응한 젊은이들이 벌떼같이 모여들어서 다같이 도원결의에 참여했다. 그리고 이 도원결의는 '''황건적 토벌 출정식도 겸했다.'''

5.9. 이문열 평역 삼국지


이문열 평역 삼국지의 도원결의는 꽤 독자적인 창작으로 나간다. 유비는 탁군 저잣거리의 유협 집단을 이끄는 두목이고, 장비는 그의 부하다. 그리고 장세평소쌍의 갈등이 도원결의의 시발점이 된다. 장세평이 탁군의 말 시장을 독점하려고 자신과 친한 장비를 내세워 소쌍을 훼방 놓는데, 소쌍의 부탁을 받은 관우가 장비와 한판 벌이게 된다. 그러다 유비가 말리면서 셋이 만난다. 이후 유비는 장세평과 소쌍을 불러 중재를 한 후, 관우와도 친분을 쌓는다. 그러다 몇 년 후 황건적의 난이 일자 유관장 삼형제는 도원결의를 하고 의형제를 맺은 뒤 의병을 거병한다. 병사들은 그들이 이끌던 유협 집단을 기초로 하고, 말과 자금은 장세평과 소쌍으로부터 지원받는다.
이문열 삼국지가 퍼지기 이전에는 위의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에 나오는 도원결의 버전이 널리 알려졌기에 이야기가 생판 달라진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문열도 이 스토리가 창작이라고 서문에 밝혔지만, 두 이야기가 모두 창작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인터넷이 대중화되고 온라인에서 삼국지 관련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원문을 충실하게 번역한 정역본이 많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19]

5.10. 84부작 삼국지


연의의 내용과 약간 불일치하게 관우와 장비가 싸우는 걸 유비가 말렸다는 민담을 차용했다. 그렇게 의기투합한 뒤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부터 원작에 맞게 진행된다. 도원결의와 유비군의 거병을 삽입곡에 맞춰 함축적으로 담아낸 것이 큰 특징. 유비의 쌍고검, 관우의 청룡언월도와 장비의 장팔사모도 동네 대장간에서 이때 만들어지며, 유비의 의병군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의병이 아니라 정예군을 훈련하는듯 박력이 넘친다[20].
다만 이후에 이어진 유비 삼형제가 황건적을 토벌하던 이야기를 너무 간단히 다루어져 허전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황건적의 난 자체가 통생략되고 도원결의 장면부터 간단하게만 나오던 유비 삼형제가 달랑 셋이서 18로 제후에 합류하는 신삼국보단 나은 편이지만. 이 토벌 장면이 바로 황건적에게 패배해 쫒기던 동탁을 구해주는 대목. 그러나 동탁이 유비를 무시하는 장면이 좀 허무한 관계로 오히려 동탁이 나쁘다기 보다는 불쌍해 보이고, 특히 이 장면과 대비되는 조조가 유비를 높게 평가하는 대목이 빠져서 원작의 의도와는 많이 달라보인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다 보니 자막만 살짝 바꿔 내용을 코믹하게 바꾼 짤방도 있는데, 맏형을 정하자면서 재산이 많은 순으로 순번을 정하자는 장비, 수염이 긴 순서대로 하자는 관우, 이 둘을 타이르는 척..하다 귀 큰 순서대로 정하자는 유비가 나오는 짤방이 바로 그것이다.

5.11. 삼국


조조가 동탁을 암살할려다 실패하고 도주하고 있을때 짤막하게 등장한다(2화).
그 외 서주성 전투후 유관장 3형제와 조운이 다시만나는 장소도 도원인지라 제 2의 도원결의 같은 모습을 보인다. 차이점이 있다면 3형제가 아닌 4형제(공손찬의 진영에서 만난 조운과 함께 출진하며 유비가 "이제 자네까지 4형제"라고 언급하는 장면이 있다)이고, 그 전에 장비가 관우에 대한 오해 때문에 술마시고 깽판친지라 도원이 망가져 있다는 것. 이 때 유비는 망가진 도원을 흩어졌다 다시 뭉친 4형제에 비교했다.

5.12. 진삼국무쌍 시리즈


2편과 3편 인트로 영상, 4편에서 유비나 관우 등의 스토리 모드 이벤트 영상에서 도원결의가 나와준다. 4편 맹장전의 누상촌 구출전이란 외전 시나리오에서는 황건적의 깽판을 정리하다 만난 셋이 의를 맺는 것으로 창작했다. 5편에선 이 세명의 무쌍난무 스토리 역시 황건의 난 이후로 결의를 옮긴 것. 즉, 연의 원작처럼 뜬금없이 결의 후 싸운 것이 아니라 함께 싸운 뒤 그 속에서 각자의 신념을 확인하여 의형제가 된다는 내용. 코에이 창작이지만 의외로 개연성이 생기고 드라마성이 확보되는 연출과 흐름이었다. 다만 전투가 주요한 게임인 만큼 이외의 작품에선 결의 장면 자체를 안넣는 경향이 많아졌다. 위에 있는 7편에선 결의를 오마주한 장면이 촉군 첫 시나리오 시작 컷신이 나오거나 DLC 월페이퍼를 구입해서 갤러리에서 감상이 가능한 정도가 끝. 8편에서는 시리즈 제대로 도원결의를 촉 스토리 모드 인트로 영상에 넣어준다.

5.13. 레전드히어로 삼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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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씽크빅 돋는 형태의 도원결의. 4화에서 미축을 쓰러뜨린 유비가 '관우 영웅패'의 조언으로 소멸 직전의 '장비 영웅패'와도 새로운 군신계약을 체결해서 장비패를 되살린 뒤, 자신의 거처인 도원관의 이름을 따 냉장고에 있던 '''황도복숭아 통조림'''으로 의형제를 맺으며 '''"도원결의!!"'''라고 외친다.

5.14. 유비 패왕설


유비가 강하다고 유비와 맞짱을 뜨러온 관우와 장비가 유비에게 두들겨 맞고 아우가 되었다는 개드립. 뜬금없이 찾아와서 의형제를 맺는 중간부분이 생략되어 있다는 것.

5.15. 연희 시리즈


삼국지에서 소재를 따온 미연시답게 시리즈 첫 번째 작 연희무쌍에서 나오지 못한 유비진 연희무쌍에는 나오면서 도원결의를 맺는데 특이하게도 한명이 더 끼어들어 같이 도원결의를 맺는다. 단, 애니메이션에서는 도원결의가 나오지 않는다

5.16. 창천항로


처음 유비, 관우, 장비 셋이 만날 때는 묘사되지 않았으나 35권에서 형주 공방전에 출진한 관우가 꾸는 꿈으로 보여준다. 작품 초반에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관우가 '''귀중한 꿈'''이라고 언급하는 것을 보아 도원결의를 했던 것으로 보이며, 관우가 이 꿈을 꾸면서 미소를 짓는데 작중 관우가 유비, 장비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는지를 보여주는 장면. 이는 마지막권의 작중 관우 최후의 대사인 "행복한 꿈을 살았다. 이제 우리 형제들의 꿈은 불멸로 남으리라"라는 대사와도 이어진다.
다른 작품들에선 유관장 삼형제만이 형제 결의를 맺는 장면으로 연출되지만, 여기선 유관장 세 명 뿐만 아니라 유비가 이끌던 협객조직인 '귀낭'과 관우의 조직인 '미염단'의 조직원들도 형제로서 도원결의에 함께 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5.17.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유비 관우 자아아앙비~ 아~ 아~
복숭아나무 아래서
형제가 되기로 맹세를 했네'''

1권 전체를 도원결의 자체도 아니고 도원결의의 '''계기'''가 되는 창작 사건에 할애하고 있다. 본래 이 만화가 내용 분할이 좀 심하게 들쭉날쭉하긴 하다. 내용은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의 그것과 같다.

5.18. 트러블 삼국지


1화에서 각각 돗자리, 정력제, 돼지고기등을 팔다 의기투합하게 된 유비, 관우, 장비는 술자리에서 누가 맏형이 되느냐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지만, 술은 안 마시고 안주만 축내던 장비가 가장 먼저 나가리 되고, 관우는 자신이 술계산을 해서 기선을 제압하려 했지만, 이미 계산은 유비가 끝낸 뒤라 자연스럽게(?) 유비가 삼형제 중 맏형으로 추대된다. 이후 이들은 '''도원장 여관'''에서 날이 샐 때까지 에로비디오를 보면서 올나잇을 했다더라..가 트러블 삼국지에서의 도원'장'결의의 전말.

5.19. 토탈 워: 삼국


홍보 트레일러에서 도원결의를 묘사한 영상이 나오며, 인게임에서 삼형제로 편성해 전투를 하면 로딩화면에서 간혹 도원결의의 구절을 언급한다. 전투에서는 적장들이 관우에게 '가서 복숭아나 먹어라' 도발을 하면 관우가 발끈하여 '감히 우리 형제들의 결의를 모욕하느냐' 분노하는 모습이 나온다. 관우가 강력한 용장이기에 어지간한 네임드가 아니고서야 관우에게 복숭아 타령하는 것은 사망플래그 취급받는다.
DLC인 천명에선 유비로 진행할 경우,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는 턴에 도원결의를 맺는 이벤트가 일어나며 유비 휘하에 형제들이 들어오며, 그 다음턴에 말장수가 군자금을 지원해주어 무장을 갖추게 된다.

5.20. 짤국지




6. 기타


  • 이들이 도원에서 결의를 맺었기에 이들이 죽는 부분은 도원종언이라 불리기도 한다.
  • 탁군 누상촌은 지금의 베이징 근처 하북성 탁주시인데 베이징 근방은 대대로 풍부한 일조량과 적은 강수량 때문에 좋은 복숭아가 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도원결의가 묘사되던 시기 전후로 이 일대 복숭아가 유명했다는 의미도 담겨있다는 주장이 있다. 다만 역사서도 아니고 그저 민담 형식의 소설에서 그런 세세한 것까지 고려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으며, 무릉도원이라는 말처럼 옛부터 중국인들은 신비롭고 영험한 장소를 복숭아 나무가 잔뜩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고 후세 사람들 또한 이 세명의 맹세를 소설적으로 신비롭게 꾸미기 위해서 도원이란 명칭을 사용한 것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 고시학원 강사 박도원의 도원결의는 도원결의 스파르타의 줄임말이다.
  • 카카오톡의 '프로도 네오 튜브 유닛 - 애증과 우정 사이' 이모티콘 중에는, 도원결의를 패러디하여, 복숭아 밭에서 프로도, 네오, 튜브가 건배하는 이모티콘이 있다.
  • 청두 유비혜릉 사당 안에는 유비만 아니라 관우와 장비, 제갈량의 상까지 모셔져있다. 장비와 제갈량이야 그렇다쳐도 한번도 익주에 오지 않은 관우의 상까지 모셔졌다는 걸 보아 이 셋이 생전에 누구보다도 굳건한 사이였음을 알리는 목적으로 셋의 상을 유비의 무덤에 놓은 모양이다.
  • 토탈 워: 삼국에선 삼형제가 한 군단으로 활동하는 경우, 전투 전 도입 대화로 도원결의를 맺는 회화가 나온다. 그 외에도 적군의 경우엔 형제들에게 '가서 복숭아나 먹어라!'란 말로 형제들의 결의를 모욕하는 전투 대사도 있다.
  • 맥주 칭다오의 광고: 유비, 관우, ㅈ...[21]
  • 연의 내에서는 도원결의가 상당히 유명하다는 설정인지 하비성에서 장료가 관우를 항복시키려고 설득할 때 도원결의를 어길 거냐고 들먹인다.
  • 만화 원피스에서도 주인공 루피와 에이스, 사보가 의형제를 맺을 때 이 도원결의를 오마주한다.

7. 관련 문서



[1] 이런 장면이 만들어지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중국의 민중적 영웅상인 호협(豪俠)의 모습이 대강 이런 식이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의 민담에서는 평범하게 지내던 영웅이 뜻밖의 일을 만나서 오로지 대의를 위해서 떨치고 일어난다는 구조가 많다.[2] 주유의 경우 유관장의 신의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유비의 능력을 경계하면서도 유비를 죽이려는 시도보다 유비를 볼모로 삼아 관우와 장비가 오나라를 따르게 만들어 주유 자신이 그들을 부리면 대업을 이룰 수 있다고 손권에게 진언한다. 이는 주유 역시 유비를 죽이면 관우와 장비가 절대 따를 리 없다는 걸 안다는 의미다.[3] 관우는 생년이 불분명하다. 160~165년 사이에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4] 장비는 165~167년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5] 이것도 판본에 따라 묘사가 달라져서, 단순한 주먹다짐으로 그리는 버전도 있고 집에서 무기까지 들고 와 제대로 맞붙는 골때리는 상황으로 연출되는 버전도 있다. 싸움이 붙은 원인도 예전에 두 사람이 장사를 하면서 갈등이 있었다든지, 지인 문제로 어그로가 끌렸다든지 하는 등 다양한 버전이 있다.[6] 실제로 이 시대는 금수저부터 흙수저까지 온갖 사회 계층에서 별의별 인물들이 다 판치고 다니던 시대였다. 삼국의 세 군주들만 봐도 유비는 말이 좋아 황실 후손이지 평민이나 다름없었고, 조조는 환관의 손자(조조의 아버지가 환관 조등의 양자였다), 손권은 지방 호족 출신으로 하자가 하나씩 있는 출신이었다.[7] 현대 매체에서는 사건의 개연성을 중시하므로 이런 전개가 거의 쓰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로맨스 소설을 쓰더라도 주인공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서로를 사랑하게 됐는지 그 과정을 재미있고 설득력 있게 그려 내야지, 갑자기 눈이 마주치고 운명의 이끌림을 느껴 평생 사랑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이런 전개를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토르: 천둥의 신에서 고전적인 느낌을 줘 보겠다고 토르제인 포스터의 관계를 그런 식으로 묘사했다가, 고전미는커녕 뜬금없는 로맨스라고 까였다.[8] 디테일하게 가자면 여기서 더 가야 된다. 왜 하필 노란색을 상징으로 삼았느냐에 대해 오행도참설을 가져와서 해설해 줘야 하고, 그러면 오행 이론과 도교 사상의 발달 과정 및 변천사까지 짚고 넘어가게 된다.[9] 이것은 매너리즘 탈피 혹은 여타 삼국지 관련 작품과의 차별화를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유비 삼형제가 출발한 이후에 대해서는 많이 다루었지만, 그 이전에 대해서도 다루는 작품들은 드물기 때문.[10] 어떤 요소의 인과관계를 완벽하게 설명하려면 또 '''새로운 요소'''가 등장하게 됨을 생각해보자. 결국 모든 요소에 대한 기승전결을 완벽히 제시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요소는 무한히 증가하고 따라서 소설의 분량은 무한히 늘어난다.[11] 정사에도 삼국지 위서 무제기에 배송지 주로 등장한다. 다만 연의에선 아버지 친구로 나온다.[12] 관우만 하더라도 조조에게 항복 후, 엄청난 호의를 받았지만 모두 저버린 채 결국 빈털터리에 객장 신세인 유비를 찾아갔고 손권에게 사로잡혀 죽기 직전까지 결코 의리를 저버리지 않았다.[13] 관우의 일화를 필두로 해서 유비 세력 자체가 의리남들의 모임이다. 유비가 여포의 배반으로 서주에서 탈출해 조조의 객장으로 머물 당시 조조는 관우는 물론 장비, 미축, 손건, 간옹 등 유비의 핵심 인재들에게 관직을 주면서 은근슬쩍 유비의 세력과 인재를 와해시켜 자기가 흡수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특히 장비에게는 중랑장 벼슬까지 내렸고, 장비의 아내 하후씨는 위략에서는 납치당했다고 언급하나 포섭하려고 정략혼례로 장비를 하후씨 집안 사위로 끌어들이려다 실패한 것을 납치로 언플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오나라의 주유는 적벽에서 관우와 장비를 직접 다루어본 사람인데, 관우와 장비는 천하의 용장이지만 오직 유비에게만 충성하니, 일단 유비를 잡아놓고 온갖 부귀영화를 줘서 무능한 인간으로 만든 뒤에 내가 저 둘을 다루면 천하통일도 꿈은 아니라며 손권에게 구체적인 플랜까지 제안했다. 손권이 위나라와 오나라 사이에 완충지역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유비를 놓아주는 바람에 이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지만. 여기서조차 주유는 유비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를 무력화해놓고 관우와 장비를 수하에 두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유비를 죽인다면 저 둘을 따르게 할 가능성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을 암시한다.[14] 또는 장비가 팔다 남은 고기를 우물 안에다 넣고 큰 바위로 입구를 막은 뒤 "이 바위를 들 수 있으면 안에 있는 고기 다 가져가도 됨"이라고 하면서 갔는데 그 말을 들은 관우가 바위를 들어 고기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도 한다. 이후는 동일.[15] 유비는 이때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16] 고우영 삼국지에서는 홍부용을 감부인과 동일인으로 설정해서 이 창작 전개와 이후의 전개를 더 자연스럽게 연결되게 했다.[17] 맹달의 아버지 맹타장양에게 포도주를 뇌물로 바치고 벼슬을 따낸 적이 있다.[18] 도원결의 당시, 장비가 현대 기준 나이로 고등학생이었던 것을 반영한 것이다.[19] 이문열 버전의 삼국지는 초반에는 독자적이고 새로운 에피소드가 여럿 창작되어 들어가 있었지만 연재소설 형식으로 집필하다보니 나중에는 내용을 따라가는데에 그치게 된다.[20] 사실 저기 나오는 병사들은 정규군이 맞다. 촬영할 때 엑스트라로 인민해방군을 동원했기 때문이다.[21] 유비, 관우, 제갈량이 식탁 앞에 모여 칭다오 병을 들고 건배를 하고 있다. 장비는 술 버릇이 좋지 않아서 이날 나오지 못했다는 후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