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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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반달리즘(영어: Vandalism)'이란 문화재, 문화적 예술품, 종교 시설, 넓게 보면 타인의 재산 등을 파괴, 훼손하려 하거나 낙서로 더럽히는 활동을 말하는 단어며, '밴덜리즘' 또는 '훼손 행위(毁損行爲)'라고도 한다.
역사적으로 아날로그 시대와 디지털 시대를 기점으로 이 행위의 척도와 정도가 명확히 구분되는데, 최근에는 스마트폰을 통해서 일어나는 반달 행위도 일어나고 있다. PC에서 일어나는 반달과는 차이가 있다.
2. 상세
사전적 정의로는 '고의 또는 무지에 의한 공공물 등의 오손'을 의미한다. 특히 범죄학 및 형사정책학에서는 '정신적 성숙이 신체적 성숙을 따르지 못하고 나타나는 부적응적 심리 상태에서 나타나는 문화 거부와 폭력적 반항 행위'를 말한다. 이유 없이 남의 자동차나 기물을 손상시키거나 오토바이 폭주 따위의 행위도 반달리즘일 수 있다고 한다. 이는 강력범죄보다는 경미한 소년 비행 현상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며 해결책으로는 조직적인 레크리에이션을 들 수 있는데, 또래 집단과의 적응도를 사회적 적응성으로 승화함으로써 그 성향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국내에 출간된 단편집 종말문학걸작선 2권에 보면 '''반달맨'''이라 부르는 부류가 나온다. 핵전쟁 이후 지구에 남겨진 모든 문화예술을 철저히 파괴하는 자들로, 그 정체는 '''식량이 부족하자 어른들이 어린 애들을 잡아먹는 참화'''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다. 눈 앞에서 친구가 잡아먹히고 자기들도 잡아먹힐까봐 숨어다니던 시절을 보냈기에 기성세대에 대한 증오심은 팽배해 있고, 그래서 기성세대가 남긴 유산의 흔적을 철저히 말살하고 있었던 것.
반달리즘은 5세기 초 반달족의 활동에서 유래되었다.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족은 서기 429∼534년 동안 훈족을 피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갈리아의 일부를 침입해서 국토를 황폐하게 만들었고 455년에는 로마를 침입하여 약탈하고 로마인 지주들에게서 땅을 빼앗았다. 반달족은 아리우스파 그리스도교를 열성적으로 믿었으며 훈네리크(477∼484년 재위) 치세 말기에는 한동안 아프리카의 가톨릭 교회를 심하게 박해하였다.
하지만 '문화유적 파괴'에 반달족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억울한 것이, 그들의 문화재 약탈은 다른 수 많은 이만족의 침공이나 전쟁 동안의 문화재 파괴에 비해선 매우 온건한 편이었다. 반달족은 로마 문화의 우수성을 인정하였고, 라틴어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당장에 가이세리크 왕의 로마 약탈도 당시 교황과 협정을 통해 저항하지 않는 사람을 죽이거나 고문하지 않고 건물에 불을 지르지 않았다. 말 그대로 문화재를 때려 부수기보다는 재물을 약탈하는데 집중했다. 오히려 북아프리카에 자리를 잡은 반달 왕국은 533년 동로마 제국의 장군 벨리사리우스에 의해 멸망 당하면서 흔적도 없이 불태워지고 만다. 그래도 로마가 털렸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기에 반달족은 문화파괴자로 기억되고 만다.
현재 사용되는 반달리즘이라는 단어는 프랑스 혁명 당시 혁명 세력이 교회를 때려 부수는 모습을 반달족에 빗대면서 등장한 단어이다. 근년에는 미국이나 유럽의 대도시에서 약탈과 살인, 공공시설의 파괴, 방화 등의 도시범죄가 급증하는 세태를 이르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인류의 반달리즘의 사례는 기원전 4세기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356년 그리스 에페소스의 헤로스트라투스란 사람이 악행으로 후세에 이름을 남기겠다는 생각으로 아르테미스 신전에 불을 질렀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그리스 최초의 순대리석 신전으로 파르테논 신전의 두배 규모에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건축물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자행된 반달리즘은 삼국전쟁 당시 당군에 의해 행해진 고구려와 백제 지역에 대한 대규모 파괴가 있었고[1] 백제의 문화재인 정림사지 오층석탑에는 당나라 장수인 소정방이 비문을 새겼다. 신라 또한 후삼국시대에 견훤에 의해 조직적인 파괴공작을 겪는다. 고려시대에는 요나라의 침공에 수도가 함락당해 장서를 비롯한 많은 문화재가 불탔던 적이 있으며 특히 몽골 제국의 대규모, 장기침략 동안에는 어마어마한 파괴가 일어났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과 분노한 국민들에 의한 자행된 파괴와 병자호란의 파괴가 대표적이며 근대에는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이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던 귀중도서 등 문화재를 약탈하고 불을 지른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리고 최근의 사례로는 탈레반의 바미안 석불 파괴,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ㆍ이라크 전쟁 후 문화유산 약탈 등이다. IS의 문화재 파괴도 이에 해당된다.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면, 전쟁 와중에도 상대방의 문화재를 파괴하는 행위는 하지 않는 것이 전쟁에서 나름대로의 최소한 상도의(?)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당시 교토만큼은 건드리지 않은 것도 이러한 이유. 당시 육군 장관이었던 스팀슨이 신혼여행지로 다녀온 교토의 문화에 감격하여 폭격 후보에서조차 그의 명령으로 제외되었다. 빨치산을 제거하기 위해 팔만대장경을 폭격하라는 명령을 거부하여 사형당할 뻔했다가 항명죄를 묻지 않고 기사회생한 김영환 공군대령도 그랬다. ISIL이 민간인 학살 다음으로 가장 많은 비난을 듣는 이유가 바로 이 반달리즘이다.
최근 들어서는 사람들의 시민의식이 많이 상승함에 따라 일부 학생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이 반달리즘을 잘 안한다. 설사 초등학생 이하의 어린이들이라도 교육만 잘 시킨다면 반달하는 행위를 피할 수 있다.
3. 사례
3.1. 고대
- 역대 최대 규모의 반달 행위로는 그리스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화재, 진시황제의 분서갱유, 항우가 저지른 진시황제의 아방궁, 남조 소량의 황제 소역이 고금의 진귀한 서적 14만권 불태운 것, 헤로스트라투스가 아르테미스 신전을 불태운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유럽이 강탈해 간 오벨리스크나 모아이 석상도 들 수 있다.
3.2. 중세
3.3. 근대
- 프랑스 대혁명 - 이 단어의 시작
- 문자의 옥
- 한국의 예로는 조선시대 숭유억불시대에 일부 극단주의자들은 절을 불지르거나 남산(경주) 등지의 불상을 파괴하기도 했다. 울주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과 이 불상이 있었던, 현대에는 사라진 사찰 간월사가 바로 유교 극단주의자들이 저지른 파괴 행위의 대표적 사례.
- 또다른 예시로는 조선시대 벼루를 만들기 위해서 비석을 훼손한 사례가 있다. 현재 태종무열왕릉의 비석이 사라져있는데 본래 고려까지는 멀쩡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선비들이 벼루를 만든답시고 고품질 석재인 비석을 사용해서 벼루를 사용했다. 이는 퇴계 이황이 경주 지역 유생들을 역사유적인 태종무열왕릉 비석을 벼루로 만드는데 사용한다고 꾸짖는 편지가 남아있어서 알 수 있다. 경주 김씨들의 본거지인 경주면서 조상들의 제사를 중시했던 시대에서도 무열왕릉의 비석마저 벼루로 사용될 정도면 다른 비석들 또한 벼루로 가공되어서 사라졌을 가능성이 충분히 높다.
- 외적의 문화재 파괴 사례는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 간 외규장각 문서나 여몽전쟁 때의 황룡사 9층 목탑 방화 등이 있으며, 일제가 석굴암을 보수하면서 저지른 훼손 행위도 포함된다.
- 과거에는 프랑스에서 "지금까지의 예술은 가짜임!"이라는 주장하에 루브르 박물관에 불을 지르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이것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설사 저 말대로 지금까지의 예술이 가짜라 하더라도 남의 물건에 함부로 피해를 입히려는 것은 엄연히 해서는 안 될 짓이다.
- 근현대 미술에서 가장 유명한 사례는 이탈리아 미래파. 이들의 경우 진짜로 반달을 가했다. 이들이 이런 짓을 저지른 건 과거의 위대한 로마의 문화유산 때문에 정작 현대미술가들인 자신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두각을 나타낼 수 없다는 절망감, 산업혁명이 일어난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뒤쳐진 공업 구조에서 기인한 기계문명 선망, 무솔리니로 대변되는 파시즘의 대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 일본의 일국일성령, 폐성령, 훼불훼석은 시간과 규모로 따지면 문화대혁명보다도 크다. 다만 이것은 통치를 위한 정비에 더 가까운 편.
- 김일성이 족보를 모두 없애게 한 것도 반달리즘에 해당한다.
3.4. 현대
- 아시아에서 가장 악명높은 반달 사례로는 문화대혁명이 있을 것이다.
- 기독교 광신도들이 타종교 시설에 반달을 가한 사례가 있다.
- 2001년 탈레반이 바미안 석불을 파괴함으로써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일이 있었다.
-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는 탈레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문화재를 잿더미로 만들고 있다. 모스크, 유적, 교회, 조각상 등 상상도 못할 만큼의 문화적 가치를 지닌 것들을 죄다 부수고 있다.심지어 이슬람 영웅 살라흐 앗 딘의 묘까지 훼손했다.
- 싱가포르에서는 미국인 학생 마이클 페이가 주차된 차량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낙서를 하고, 교통 표지판을 파손하는 반달리즘의 범죄를 저질러서 싱가포르 경찰에 붙잡혀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선처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판결대로 태형에 처했다. 정확히는 태형 6대, 징역 4개월, 벌금 3500 싱가포르 달러라고 한다.[2] 한국인도 예외는 아닌데, '나 여기 왔다 감', '○○○♥○○○' 따위의 낙서를 남기는 것이 그것. 이런 행위는 국가 망신이니 제발 하지 말자.
- 현대미술에서 논란이 된 사례로는 안드레 세라노(Andres Serrano, 1950~)의 사진 작업인 <오줌 예수>(1987)가 있다.# 예수의 십자가상을 오줌에 넣고 찍었다는 점이 논란이 되어 전시장에 전시된 사진이 반달을 당하는 등 논란이 된 바 있다. 작가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아브젝시옹(abjection)[3] 의 개념을 끌어들여 배설물 그 자체는 인간의 신진대사 활동의 결과로 생겨난 자연스러운 결과물인데 이를 무조건 배척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인지 반문하였다. 또한 역으로 '오줌처럼 더러운 이 세상에 잠겨있는 예수님의 심정을 생각해보자'는 식으로 충분히 성찰이 담긴 해석을 할 수도 있는 것이라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 불가리아 소피아에 소련군 기념상이 있는데 냉전이후 많이 반달당하는 동상으로 되어버렸다. 미국산 캐릭터로 페인트질로된 반달을 시작해서 프라하의 봄 진압에 관한 사과[4] , 유로마이단 사태를 반영한 페인트질 등이 있다.
- 한편 크리스 오필리(Chris Ofili) 흑인 성모 마리아 그림에 코끼리 배설물을 바른 작품 <성모 마리아>(1996)를 내놓아 신성모독이라는 비난을 들은 바 있다. 이에 대해 작가를 옹호하는 측은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코끼리의 배설물이 유용한 삶의 재료이며,[5] 서구 사람들처럼 불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문화적 차이를 작품에 담았을 뿐인데 이를 신성모독이라 비난하는 것은 과잉반응이라는 것이었다.
- 비교적 최근인 2014년에는 유명 팝 아티스트인 폴 멕카시(Paul McCarthy, 1945~)가 프랑스 파리 방돔 광장에 설치한 녹색 조형물이 반달을 당한 사례가 있다.# 일부 사람들이 이 조형물을 보고 항문 마개 같다고 여기고 지탱해주는 와이어를 잘라 공기가 빠지게 만든 것이다. 이에 대해 옹호자들은 자위 도구가 아니라 성탄 트리처럼 보이는 무난한 작품을 왜 부쉈느냐 항의하거나, 설령 항문 마개를 형상화한 것이라 해도 그것이 대중을 불쾌하게 모욕하는 것이라 어찌 단정지을 수 있는지 반문했다.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플뢰르 펠르랭은 이에 대해 예술 표현의 자유 원칙에 대한 심각한 위반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 위와 가장 비슷한 사례로 홍익대학교 정문 일베조형물 설치 사건이 있다. 일베를 상징하는 손 모형을 본뜬 조형물이 파괴되면서 표현의 자유와 혐오대상 상징을 보지 않으려는 자유와의 충돌을 그대로 보여준 바가 있다.
- 반달을 저지를 의도가 없었는데 문화재가 파괴된 황당한 사건도 있다. 스페인 에케 호모 화 훼손 사건 문서 참고.
- 국내의 경우 2008년 일어난 숭례문 방화 사건도 일종의 반달리즘이라 할 수 있다.
- 이태원동 상가들도 저녁에 셔터 내린것을 보면 외국인이 한것으로 추정되는 온갖 낙서로 도배되어있다. 주인들도 지워도 지워도 또 하기에 결국 포기한듯..
- 아프리카 말리에 있는 팀북투 유적을 파괴한 이슬람 극단주의자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이 열었으며, 징역 9년을 선고하였다. ICC가 문화유적 파괴를 전쟁범죄로 인정해 처벌한 것은 이번이 첫 사례다.
- 러시아에서 구 소련 시절의 별 상징물을 뚱이로 칠해버린 용사가 나타났다. 기사 잡히면 최대 15일 동안 구금당한다고 한다.
- 토인비 타일의 경우 길거리 보도블럭에 이상한 메시지를 새기는 그래피티의 한 종류인데, 시카고 당국에서는 이를 반달리즘으로 간주하고 적발시에는 엄중 처벌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 2018년 6월 8일 독일정부가 청계천 한빛광장에 기증한 베를린 장벽 파편에 예술을 빙자한 그래피티가 칠해졌다. 이 남성은 그래피티를 한후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사람들의 비난이 있은 뒤에 인스타 계정을 삭제하였다. 2018년 서울 베를린 장벽 훼손 사건 항목 참고.
- 프랑스에서 노란 조끼 운동이 일어날때 에투알 개선문이 낙서당했다. 또 개선문 안에 있는 마리안상도 파괴당했다.사진
- 울주 천전리 암각화
- 한국형 표준 전동차 - 원래 국립과천과학관에 보존되어 있었는데, 이거를 웬 순간이동 우주선으로 마개조시켰다.
4. 처벌
문화재보호법 제 92조에 의해 3년 이하의 유기징역에 처하게 되나, 이 중 하나[6] 에 해당되는 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문화재청이 도난공고를 낸 문화재라면 공소시효가 배제된다. 사실은 외부에 그 존재가 드러난 시점부터 새로 시작이다. 다른 예지만 탈영 군인의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대신 참모총장의 복귀명령에 따른 명령불복종으로 영구히(물론 죽기 전이라면) 처벌 가능한 것과 비슷하다.
5. 관련 문서
[1] 특히 당의 고구려에 대한 증오는 상당하여 수도를 완전히 초토화시켜 버렸고 평양은 남북국시대 내내 변경지역으로만 남는다. 그나마 고려시대에 가선 다시 복구가 진행되어 대도시로 다시 기능하게 된다. 백제의 경우 당군에 의한 반달리즘 중 생긴 도끼자국이 왕가의 무덤에 남아있다.[2] 이 동네 태형은 10대를 맞느니 차라리 징역 10년을 살고 말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물론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지기 싫어서 특별히 몽둥이가 아닌 회초리로 엉덩이를 4대 때리고 추방하는 것으로 끝냈다. 물론 아프긴 하지만 몽둥이보다는 약한 편이다. 마이클 페이는 이 때문에 고국으로 돌아가서는 싱가포르는 최악의 국가이며 인권탄압국, 후진국이니 절대로 싱가포르에 가지 말자며 보이콧 운동을 했었다.[3] 아브젝트(abject)는 더럽다고 여겨지는 것, 배제되고 추방되는 대상, 기성 체제나 관념에서 배제하려 하는 존재, 나아가 이런 이질적이고 위협적으로 여겨지는 어떤 것들을 거부하고 추방하려는 심리적 현상을 지칭하는 개념이다.[4] 당시 진압군중에 불가리아군도 있었기 때문[5] 코끼리 대변에는 섬유질이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황토집처럼 움막을 지을때 코끼리 똥을 사용하기도 하고, 연료로 사용하기도 한다.[6] 제 1항에 규정된 것 외의 지정문화재 또는 가지정문화재(건조물은 제외)를 손상, 절취 또는 은닉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한 자, 일반동산문화재인 것을 알고 일반동산문화재를 손상, 절취 또는 은닉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한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