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상/수상 기록
1. 개요
아카데미상의 각종 수상 기록을 정리한 문서다.
2. 최다 지명 및 수상
- 인물
- 최다 수상 - 월트 디즈니(22회 수상)
- 최다 후보 지명 - 월트 디즈니(59회 후보 지명)
- 작품
- 그랜드슬램
주요 5개 부문(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각본상/각색상)을 모두 휩쓴 영화는 현재까지 세 편이다. 참고로, 세 작품 모두 각색상을 받았으며 아직까지 각본상(순수창작 각본)을 포함한 그랜드슬램은 전무하다.
- 남우주연상
- 최다 수상 - 다니엘 데이 루이스(3회 수상)[13][14]
- 최다 후보 지명 - 로런스 올리비에(9회 후보 지명, 1회 수상[15] )
- 남우조연상
- 최다 수상 - 월터 브레넌(3회 수상)[18]
- 최다 후보 지명 - 월터 브레넌(4회 후보 지명, 3회 수상)
- 각색상
- 주제가상
- 시각효과상
- 최다 수상 - 데니스 뮤런(8회 수상)[35]
- 음향효과상
- 촬영상
- 미술상
- 최다 수상 - 새드릭 기븐스[47] (11회 수상)
- 최다 후보 지명 - 새드릭 기븐스(39회 후보 지명, 11회 수상)
3. 최다 수상 실패
3.1. 감독상
- 앨프리드 히치콕: 클래런스 브라운, 킹 비더, 로버트 올트먼 등과 함께 5회 후보선정-무수상 부문(5회가 최다)에 오른 히치콕이 되겠다. 《레베카》(1939), 《구명보트》(1944), 《망각의 여로》(1945), 《이창》(1954), 《싸이코》(1960)를 통해 감독상 후보에 올랐지만 모조리 실패. 그래도 《레베카》는 그 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긴 했고, 1968년에는 지금의 공로상격인 어빙 G. 솔버그상을 수상했다. 수상소감으로 '감사합니다' 한 마디 하고 들어갔다.
- 로버트 올트먼: 5회에 걸쳐서 감독상 후보에 선정되었지만(《야전병원 매쉬》(1970), 《내슈빌》(1975), 《플레이어》(1992), 《숏 컷》(1993), 《고스포드 파크》(2001)) 단 한번도 수상을 못했다. 황금종려상(《야전병원 매쉬》), 황금곰상(《버팔로 빌과 시팅 불》), 황금사자상(《숏 컷》) 을 모두 수상한 감독 중 한 명[48] 이건만, 아카데미에서는 냉대를 받았다. 2006년 감독상이 아닌 공로상을 받았고, 그 해 11월에 사망했다.
- 스탠리 큐브릭: 4회에 걸쳐 감독상 후보에 선정.(《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4),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시계태엽 오렌지》(1971), 《배리 린든》(1975)) 큐브릭의 영화는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작중 가장 파격적인 영화들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수상엔 실패했으며 큐브릭이 유일하게 받은 아카데미상은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로 시각효과상을 받은 것뿐.
- 시드니 루멧: 역시 4회에 걸쳐 감독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은 실패.(《12인의 성난 사람들》(1957), 《뜨거운 오후》(1975), 《네트워크》(1976), 《심판》(1982)).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은 《12인의 성난 사람들》이나 《네트워크》 같은 경우가 아까운 케이스로 꼽히는데, 특히 《네트워크》같은 경우에는 각본상과 더불어 연기상 부문에 5명 노미네이트, 3명 수상[49] 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거두고도 작품상과 감독상은 《록키》에게 내줘 아쉬움을 더 한 케이스이다. 2005년에 평생 공로상을 받았다. 큐브릭과 루멧 이외에도 4회 선정-무수상에는 피터 위어와 페데리코 펠리니 등이 있다.
- 리들리 스콧: 3회에 걸쳐 감독상 후보에 선정.(《델마와 루이스》(1991), 《글래디에이터》(2000), 《블랙 호크 다운》(2001)) 《델마와 루이스》 때는 《양들의 침묵》의 조너선 데미에게, 《글래디에이터》 때는 《트래픽》의 스티븐 소더버그에게, 《블랙 호크 다운》 때는 《뷰티풀 마인드》의 론 하워드에게 감독상을 뺏겼었다. 다만 감독상 3회 후보 선정-무수상부터는 좀 많아지는데, 현재 기준으로 잉마르 베리만, 노먼 주이슨, 스티븐 돌드리, 데이비드 린치, 알렉산더 페인, 데이비드 O.러셀 등이 있다. 그래도 이 감독은 글래디에이터로 작품상을 수상했다.
- 마틴 스코세이지: 2007년 《무간도》의 리메이크인 《디파티드》로 감독상을 수상하긴 했으나, 상을 받기 위해 무려 7번을 미끄러져야 했다.(《성난 황소》(1980),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988), 《좋은 친구들》(1990), 《순수의 시대》(1993), 《갱스 오브 뉴욕》(2003), 《에비에이터》(2004)) 《택시 드라이버》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좋은 친구들》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했었지만 말이다. 비록 염원하던 감독상을 받긴 했으나 《디파티드》의 수상에는 뒷말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리고 2014년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로 후보에 오르며 8번을 채웠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다. 2020년 《아이리시맨》으로도 감독상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봉준호덕에 기립박수를 받았다.
- 스티븐 스필버그: 스필버그의 감독상 도전사는 눈물겨울 정도. 《미지와의 조우》, 《레이더스》, 《E.T.》, 《칼라 퍼플》로 도전했지만 모두 미끄러졌다.[50] 《E.T.》는 가장 아까운 수상 실패작이라고 할 정도이고 《칼라 퍼플》은 아카데미의 구미에 맞는 작품성을 갖춘 영화였지만 흑인 여성의 인권이라는 소재가 발목을 잡은 듯. 결국 《쉰들러 리스트》로 눈물겨운 도전사가 승리로 장식되긴 했다. 그리고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두 번째 수상에도 성공했다. 21세기에는 실화를 각색한 두 영화인 2005년 《뮌헨》으로, 2012년 《링컨》으로 두 차례 감독상에 지명되면서, 2014년 기준으로 2승 5패가 되었다.
3.2. 연기상
- 피터 오툴: 아카데미의 진정한 콩라인. 무려 8회에 걸쳐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에 모두 실패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1962년의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뛰어난 연기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상을 하지는 못했다. 이때 수상자는 《앵무새 죽이기》의 그레고리 펙. 다만 이 결정은 이해할 만한 것이라는 평가가 많은 편이고 그의 가장 아까웠던 아카데미상은 보통 1968년 《겨울의 사자》로 수상을 놓쳤을때가 거론된다.그가 74세가 된 2007년에도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에 실패했고, 결국 2013년 12월 14일 사망했다. 그나마 2003년에 아카데미에서 평생공로상은 받았다.
- 리처드 버튼: 남우주연상 후보에 6번, 남우조연상 후보에 1번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에 모두 실패했다. 피터 오툴과는 달리 평생공로상도 받지 못한 채 1984년 8월 5일 58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 데보라 커: 피터 오툴과 동시대의 콩라인. 6회에 걸쳐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에 모두 실패했다. 《지상에서 영원으로》에 출연했을 때는 오드리 헵번이, 《왕과 나》에 출연했을 때는 잉그리드 버그만이 수상했다. 1994년 평생공로상을 받았고 2007년 10월 16일 사망했다.
- 글렌 클로즈: 현 시대의 데보라 커 혹은 여자 버전 피터 오툴 1983년, 1984년, 1985년 모두 여우조연상 후보로, 1988,1989년 그리고 2012년[51] 여우주연상 후보로 올랐는데 단 한 번도 수상받지 못했다. 1989년 영화 위험한 정사로 가장 유력한 수상후보였지만 셰어가 여우주연상을 가져갔다. 가장 최근에는 2018년 영화 더 와이프로 후보에 올라 가장 강력한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예측되었으나 또다시 낙방.
- 에이미 아담스: 여우조연상 후보에 4번, 여우주연상에 후보에 1번 총 5번 후보에 올랐지만 전부 수상에 실패했다. 사실 매년 후보에 오를때마다 상대 후보가 더 주목을 받는 불운의 케이스. 2006년 《준벅》으로 후보에 올랐을땐 《콘스탄트 가드너》의 레이첼 와이즈가 수상했고, 2009년 《다우트》로 후보에 올랐을때,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의 페넬로페 크루즈가 수상, 2011년에 《파이터》로 후보에 올랐을때, 같은 영화에 출연한 멜리사 리오가 수상했다. 2013년엔 《마스터》에서의 연기력이 찬사를 받아 드디어 오스카를 수상하는게 아니냐는 여론이 있었으나... 하반기에 공개된 《레미제라블》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앤 해서웨이가 수상자가 되었다... 그리고 2014년 《아메리칸 허슬》로 생애 첫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나, 수상자는 그 해 모든 시상식을 휩쓸었던 《블루 재스민》의 케이트 블란쳇. 블란쳇이 《블루 재스민》에서 워낙에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기에, 거의 확정적이였던 셈이다. 사실 이와 관련해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인연 아닌 인연이 있는데, 2014년에 둘 다 통합 5번째로 남녀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에 실패했다. 둘이 같은 나이인데다가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 같이 호흡을 맞춘 적이 있어서 그런지 그 해 최대의 콩라인으로 같이 언급되기도 했다... 2016년에 디카프리오가 남우주연상을 받긴 했지만. 다만 아직 40대의 젊은 나이인데다 작품성 높은 영화들에 꾸준히 출연하고 있어 앞으로도 기회는 충분하다고 봐도 될 듯.
- 줄리안 무어: 《부기 나이트》, 《애수》, 《파 프롬 헤븐》, 《디 아워스》[52] 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2번과 여우주연상 2번으로 총 4번에 걸쳐 후보에 올랐다. 연기력이 부족한 배우는 더더욱 아니였기 때문에 아위움을 감추지 못했는데 드디어 2015년 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스틸 앨리스로 노미네이트가 되고 후보 지명 5번으로 마침내 수상을 하게 되었다.[53] 자신도 받을 것이라며 기대를 많이 했는지 준비해온것 같은 수상소감을 했다. 수상소감은 유쾌하고 진심이 우러나와서 시상식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때 했던 수상소감. 이 때 입었던 드레스는 칼 라거펠트가 직접 디자인했던 드레스였다고 한다. 이 드레스를 완성하기 위해 987시간의 작업과 27명의 인원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플라워 장식은 15명의 자수 장인이 160개의 플라워를 만들기 위해 600시간을 소요했다. 또한 아카데미 시상식이 있었던 로스 앤젤레스에서 2명의 재단사가 드레스 마무리 짓기 위해 22시간이 소요된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길버트 그레이프》, 《블러드 다이아몬드》, 《에비에이터》,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1번과 남우주연상에 3번, 작품상 1번[54] 으로 총 5번이나 후보에 이름을 올렸지만 단 한 차례도 수상하지 못했다. 날이 갈수록 더 출중한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기에 많은 팬들이 그가 수상하지 못하는 걸 안타까워하고 있다.[55][56] 또한 《타이타닉》 때에는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면서 한동안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57]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서조차 미끄러지면서 아예 미국 웹에서는 '오스카를 못 받는 디카프리오 놀리기'가 하나의 밈이 되었다(…) 현재는 아카데미 콩라인 관련 인물로서 일반인에게는 가장 유명한 인물. 이에 굴하지 않고 레버넌트에서 그야말로 개고생해가며 연기한 끝에 2016년 또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런 게임도 나왔을 정도. 그러나 이번만큼은 수상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많았고, 결국 2016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 알 파치노: 역시 빼놓을 수 없다. 1972년 《대부》에서 처음 남우조연상에 이름이 불린 후 1974년 《대부 2》, 1975년《뜨거운 오후》[58][59] 등 총 8편의 영화로 후보에 올랐으나 모두 실패. 93년 65회 에서 《글렌게리 글렌 로즈》로 남우조연상을, 맹인 퇴역 장교로 큰 인상을 다시 한번 남겼던 《여인의 향기》로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는데, 먼저 시상된 조연상은 진 해크먼이 가져가면서 올해도 공치는 분위기인가 싶었지만, 주연상을 기어이 따내면서 동료배우들에게 기립박수를 받았다. 저서 《65년간의 오스카: 아카데미 시상식의 역사》에서 저자가 파치노 사진 아래에 “그는 언제나 신부의 들러리 같았지 신부 같진 않았다.”라고 밝힌 바 있다.
- 폴 뉴먼: 5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를 호령한 차도남의 조상으로, 클리프트-브랜도-딘을 잇는 할리우드의 반항아이자, '스크린의 전설, 슈퍼스타, 영화 역사 상 가장 유명한 푸른 눈을 가진 배우'이다(Screen legend, superstar, and the man with the most famous blue eyes in movie history)[60] . 그러나 이 분도 뛰어난 연기력과 화려한 경력에 비해 아카데미와 지독히 인연 없기로 유명하다. 1959년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처음 후보로 오른 뒤로, 1962년 《허슬러》, 1964년 《허드》, 1968년 《폭력 탈옥》, 1982년 《선택》, 1983년 《심판》으로 계속해서 남우주연상 후보에만 올랐다. 게다가 1969년에는 자신이 감독한 《레이첼, 레이첼》이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가 수상에 실패했다. 진정한 콩라인.. 그러다가 1986년에는 아카데미 공로상을 받았고 1987년에는 드디어 《컬러 오브 머니》로 남우주연상을 받아 30년 동안 묵은 한을 풀었.....는데, 하필 본인은 이 해 시상식 때 '더 이상 실망하기 싫다'라며 참석하지 않았었다고. 더구나 이 해 칸 국제영화제를 비롯, 미국 4대 비평가 협회와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등을 싹쓸이하며 오스카 수상이 거의 확실시되었던 《모나리자》의 밥 호스킨스가 뉴먼에 밀려 수상하지 못한 데 대해 지금까지도 비판하는 여론도 있다.
- 커크 더글라스: 배우 마이클 더글라스의 아버지로 이제 더 유명한데 1916년 생이다. 2019년 기준으로 나이가 무려 103세로 50년대부터 70년대 까지 남성미의 정점을 보여주며 최고의 원로 배우로 지내고 있다. 1949년 《챔피언》을 시작으로 1952년 《배드 앤 뷰티》,1956년 《열정의 랩소디》까지 총 세 작품으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단 한번도 수상하지 못했는데, 1996년 6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수여하여 그의 영화적 영향력이 얼마나 컷는가를 보여주었다.
- 제럴딘 페이지: 1924년생 배우로,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꾸준히 활동했으나 오스카 수상은 그녀가 죽기 1년 전인 1986년에서야 성공했다. 1954년 《혼도》로 처음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후, 총 4번의 여우조연상과 4번의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1986년 《바운티풀 가는 길》로 후보에 올라 제시카 랭, 메릴 스트립, 앤 밴크로프트, 우피 골드버그를 제치고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데 성공했다.
3.3. 기타
- 엔니오 모리코네: 5회에 걸쳐서 음악상 후보에 선정되었으나 수상에는 실패했다.(《천국의 나날들》(1978), 《미션》(1986), 《언터처블》(1987), 《벅시》(1991), 《말레나》(2000)) 우리에겐 널리 알려진 《시네마 천국》이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아예 음악상 후보도 들지 못으며[61] 2006년 제7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명예상이 유일했다. 여담이지만 명예상 수상 때 이탈리아인인 그는 영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몰라서 당연히 이탈리아어로 수상소감을 말했는데 아카데미 측이 통역을 준비하지 않은 탓에 관중은 뭔소리인지 몰라 어리둥절했고 시상을 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옆에 서있다 황급히 통역을 해주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 뒤 2016년에 《헤이트풀8》으로 마침내 음악상을 받았다.
- 이안: 이쪽은 감독상은 두 번이나 탔으니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작품상과 인연이 전혀 없어서 해당되는 케이스. 2001년에는 《와호장룡》이 나왔지만 《글래디에이터》에 밀려 작품상 후보에 그치고, 2005년엔 《브로크백 마운틴》을 선보였으나 《크래쉬》에 인해 탈락, 2013년엔 《라이프 오브 파이》를 선보였으나 《아르고》가 차지했다.
- SF 영화: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스티븐 스필버그의 《E.T.》가 작품상 후보에 오른 적이 있다. 다만 SF영화는 2010년 82회 시상식에 《아바타》와 《디스트릭트 9》이 후보에 올랐기 때문에 콩탈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 보다 커지긴 했지만 결국 골든 글로브가 선택했던 《아바타》는 아카데미에선 미끄러지고 말았다. 결국 콩탈 실패. 2011년 83회 시상식에는 크리스토퍼 놀런의 《인셉션》이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블랙 스완》과 《킹스 스피치》라는 막강한 경쟁자들이 있어서 콩탈 실패의 가능성이 커보인다. 결국 작품상의 영예는 말 더듬이 임금님에게로 넘어갔다. 2014년 86회 시상식에는 《그래비티》가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된 상황인데 이번의 경우는 《노예 12년》이나 《내브래스카》같은 경쟁작들이 있지만 2010년의 《블랙스완》, 《킹스 스피치》에 비하면 막강하다고 하긴 힘들다는 지적이 있어서 이번에야 말로 사상 최초의 SF 영화의 작품상 수상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곤 있지만... 일단 골든 글로브는 《노예 12년》을 선택했는데 《아바타》와 《허트 로커》가 맟붙었던 2010년과는 정반대의 상황. 《그래비티》는 무려 7개부분을 석권했지만 작품상은 골든 글로브처럼 《노예 12년》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나 알폰소 쿠아론이 감독상을 수상했는데 흑인감독의 흑인영화 최초 작품상 수상이라는 오스카 역사를 새로 쓴 노예 12년에 가려져서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사실이지만 SF 영화로 감독상을 받은것은 《그래비티》가 최초라고 할수 있다.
- 토머스 뉴먼: 《월-E》, 《니모를 찾아서》, 영화 《로드 투 퍼디션》, 《아메리칸 뷰티》, 《쇼생크 탈출》 등에 참여하여 일곱 번이나 음악상에 후보로 올랐지만 한 번도 수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007 스카이폴》로 여덟 번째 음악상에 지명되었지만 《라이프 오브 파이》에 밀려서 실패했다. 그 뒤로 《스파이 브릿지》로 9번째로 음악상 후보에 올랐으나 이번에도 수상은 하지 못했다.
- 케빈 오코널: 아카데미의 또다른 콩라인 이자 총 18번 후보지명(…)《탑건》, 《스파이더맨》, 《트랜스포머》 등 음향으로 참여하여 18번 후보에 총 20편이 지명[62] 되었지만 한 번도 수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이유 때문인지 미국 CBS 방송에도 출연까지 할 정도로 유명인사가 되었다.[63][64] 그리고 2017년 마침내 <핵소 고지>로 음향상을 수상하였다!!
- 제임스 뉴튼 하워드: 《사랑과 추억》, 《도망자》, 《쥬니어》, 《원 파인 데이》,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빌리지》, 《마이클 클레이튼》, 《디파이언스》로 무려 8번이나 음악상에 노미네이트 됐지만 단 한번도 수상하지 못했다. 《빌리지》로 수상이 점쳐졌지만 상은 《네버랜드를 찾아서》의 얀 A.P. 카치마레크가 가져가게 된다.
- 로저 디킨스: 영국 데번 주의 토키 출신으로, 1975년 단편 다큐멘터리 《Mothers Own》에서 촬영 감독으로 데뷔한 뒤, 1977년 영화 《Cruel Passion》으로 처음으로 영화 촬영 감독을 맡게된다. 그 뒤 《쇼생크 탈출》, 《파고》, 《쿤둔》,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 《레볼루셔너리 로드》,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더 브레이브》, 《007 스카이폴》, 《프리즈너스》로 촬영상으로 총 11번 노미네이트됐으나 단 한 번도 수상하지 못했다. 2015년에 《언브로큰》으로 또 노미네이트가 됐지만... 결국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2016년엔 시카리오로 13번째 노미네이트 되었는데, 악몽이 다시 재현되었다. 90회 시상식에 블레이드 러너 2049로 또 노미네이트 되었고, 마침내 수상에 성공했다.
- 라이카 스튜디오: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의 독보적인 콩라인. 4번 후보로 올라갔으나 모두 실패했으며 미국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라이카가 상 받는 난이도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상 받는 난이도랑 똑같다 카더라...
4. 인종·성별 수상
4.1. 흑인 영화인
- 감독상: 91회 시상식까지 6번의 노미네이트가 있었다. 1991년작 《보이즈 앤 후드》의 존 싱글턴, 2009년작 《프레셔스》의 리 대니얼스, 2013년작 《노예 12년》 스티브 매퀸, 2016년작 《문라이트》의 배리 젠킨스, 2017년작 《겟 아웃》의 조던 필, 2018년작《 블랙클랜스맨》의 스파이크 리 감독이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자는 없다.
- 작품상: 1985년작《컬러 퍼플》(퀸시 존스)이 처음 후보에 오른 뒤 91회 시상식까지 11번의 노미네이트가 있었다. 수상작은 2013년작 노예 12년(스티브 매퀸)이 유일하다.[65]
- 남우주연상: 1958년작 《흑과 백》(The Defiant Ones)에 출연한 시드니 포이티어가 처음 후보에 오른 뒤 90회 시상식까지 23번의 노미네이트가 있었다. 1963년작 《들백합》(Lilies of the Field)에 출연한 시드니 포이티어, 2001년작 《트레이닝 데이》에 출연한 덴젤 워싱턴[66] , 2004년작 《레이》에 출연한 제이미 폭스, 2006년작 《라스트 킹》에 출연한 포레스트 휘태커가 수상했다.
- 남우조연상: 1969년작 《멤피스로 간 세 도둑》에 출연한 루퍼트 크로스가 처음 후보에 오른 뒤 91회 시상식까지 19번의 노미네이트가 있었다. 1982년작 《사관과 신사》에 출연한 루이스 고셋 주니어, 1989년작 영광의 깃발에 출연한 덴젤 워싱턴, 1996년작 《제리 맥과이어》에 출연한 쿠바 구딩 주니어, 2004년작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 출연한 모건 프리먼, 2016년작 《문라이트》와 2018년작 《그린 북》에 출연한 마허샬라 알리가 수상했다.
- 여우주연상: 1954년작 《카르멘 존스》에 출연한 도러시 댄드리지가 처음 후보에 오른 뒤 90회 시상식까지 11번의 노미네이트가 있었다. 수상자는 2001년작 《몬스터 볼》에 출연한 할리 베리가 유일하다.
- 여우조연상: 1939년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출연한 해티 맥대니얼이 처음 후보에 올라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91회 시상식까지 24번의 노미네이트가 있었다. 1990년 《사랑과 영혼》에 출연한 우피 골드버그, 2006년작 《드림걸즈》에 출연한 제니퍼 허드슨, 2009년작 《프레셔스》(Precious)에 출연한 모니크, 2011년작 《헬프》에 출연한 옥타비아 스펜서, 2013년작 《노예 12년》에 출연한 루피타 뇽오, 2016년작 《펜스》에 출연한 바이올라 데이비스, 2018년작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에 출연한 레지나 킹이 수상했다.
- 미술상: 블랙 팬서의 미술 감독, 한나 비츨러는 흑인 최초로 오스카 미술 부문에 후보로 올랐으며, 최초 수상자가 되었다.
4.2. 히스패닉/라티노 영화인
- 여기서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라틴 아메리카 국가 출신자와 해당 혈통의 미국인은 히스패닉이자 라티노로 간주하며,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브라질 출신자와 해당 혈통의 미국인은 히스패닉이 아닌 라티노로 간주한다.
- 감독상: 1985년작 《거미여인의 키스》를 감독한 엑토르 바벤코(아르헨티나 출신, 브라질 이주)가 처음 후보에 올랐다. 이후 2002년작 《시티 오브 갓》을 감독한 페르난두 메이렐리스(브라질 출신)가 후보에 올랐다. 2013년작 《그래비티》를 감독한 알폰소 쿠아론이 처음 수상했고, 2006년작 《바벨》로 후보에 올랐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가 2014년작 《버드맨》과 2015년작 《레버넌트》로 2회 연속 감독상을 수상했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2017년작 《셰이프 오브 워터》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쿠아론은 2018년작 《로마》로 다시 감독상을 수상했다.
- 남우주연상: 1950년작 《시라노》(Cyrano de Bergerac)에 출연한 호세 페레(푸에르토 리코 출신)가 처음 후보에 올라 수상했고, 1952년작 《물랑 루즈》로 다시 후보에 올랐다. 이후 1957년작 《와일드 이즈 더 윈드》(Wild Is the Wind), 1964년작 《희랍인 조르바》에 출연한 안소니 퀸(어머니가 멕시코계), 1988년작 《스탠드 앤 딜리버》(Stand and Deliver)에 출연한 에드워드 제임스 올모스(부모가 멕시코계 미국인), 2011년작 《이민자》(A Better Life)에 출연한 데미안 비쉬어(멕시코 출신)가 후보에 올랐다.
- 남우조연상: 1948년작 《잔 다르크》[67] 에 출연한 호세 페레가 처음 후보에 올랐고, 1952년작 《비바 자파타》, 1956년작 《열정의 랩소디》(Lust for Life)에 출연한 안소니 퀸이 두번 모두 수상했다. 이후 1990년작 《대부 3》에 출연한 앤디 가르시아(어렸을 때 가족과 망명한 쿠바계 미국인)가 후보에 올랐고, 2000년작 《트래픽》, 2003년작 《21 그램》에 출연한 베네치오 델 토로(푸에르토리코 출신)가 《트래픽》으로 수상했다.
- 여우주연상: 1998년작 《중앙역》(Central Station)에 출연한 페르난다 몬테네그루(브라질 출신)가 처음 후보에 올랐다. 이후 2002년작 《프리다》에 출연한 셀마 헤이엑(멕시코 출신의 멕시코계 미국인), 2004년작 《기품있는 마리아》(Maria Full of Grace)에 출연한 카탈리나 산디노 모레노(콜롬비아 출신), 2018년작 《로마》에 출연한 얄리차 아파리시오(멕시코 출신 원주민계 혈통)가 후보에 올랐다.
- 여우조연상: 1954년작 《부러진 창》(Broken Lance)에 출연한 케이티 후라도(Katy Jurado, 멕시코 출신), 1959년작 《이미테이션 오브 라이프》(Imitation of Life)에 출연한 수전 코너(어머니가 멕시코계 미국인 배우인 루피타 토바르)가 후보에 오른 뒤, 1961년작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출연한 리타 모레노(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가 처음으로 수상했다. 이후 1987년작 《가비의 기적》(Gaby: A True Story)에 출연한 노르마 알레안드로(아르헨티나 출신)가 후보에 올랐고, 1991년작 《피셔 킹》에 출연한 머시디스 룰(어머니가 쿠바계)이 두번째로 수상했다. 그 후에는 1993년작 《공포 탈출》(Fearless)에 출연한 로지 페레스(부모가 푸에르토리코계), 2006년작 《바벨》에 출연한 아드리아나 바라사(멕시코 출신), 2018년작 《로마》에 출연한 마리나 데 타비라(멕시코 출신)가 후보에 올랐다. 2011년작 《아티스트》에 출연해 후보에 오른 베레니스 베조의 경우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지만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가 벌인 더러운 전쟁으로 3살 때 가족이 프랑스로 망명했다.
4.3. 아시아계 영화인
- 여기서는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국가 출신자와 해당 혈통의 미국인은 아시아 출신 및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간주하며,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출신자와 해당 혈통의 미국인(아랍계 미국인, 이란계 미국인 등)은 별개로 언급한다.
- 감독상: 1964년작 《모래의 여자》[68] 를 감독한 데시가하라 히로시(일본 출신)가 196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처음 후보에 올랐다. 이후 89회 시상식까지 1985년작 《란》을 감독한 구로사와 아키라(일본 출신)[69] , 1999년작 《식스 센스》를 감독한 M. 나이트 샤말란(인도계 미국인), 2000년작 《와호장룡》, 2005년작 《브로크백 마운틴》, 2012년작 《라이프 오브 파이》를 감독한 이안(대만계 미국인) 감독, 2019년작 《기생충》을 감독한 봉준호 감독이 후보에 올랐다. 그 중 2006년 시상식과 2013년 시상식에서 이안 감독이, 2020년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수상했다.
- 작품상: 1986년 《전망 좋은 방》(이스마일 머천트[70] , 인도계 영국인)을 시작으로 89회 시상식까지 8번의 노미네이트가 있었지만 수상은 하지 못했다. 《와호장룡》과 《라이프 오브 파이》로 작품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 이안 감독 역시 수상하지 못했다. 이들 이외에 후보에 오른 키트먼 호(A. Kitman Ho)[71] 는 홍콩 출신, 리처드 사카이[72] 는 일본계 미국인이다. 2020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외국어 영화로는 최초로 작품상을 수상했다. 또한 기생충 제작자로 공동으로 이름을 올린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73] 는 제작자로 작품상을 수상한 최초의 아시아계 여성 제작자라는 기록을 가지게 되었다.
- 남우주연상: 1956년작 《왕과 나》에 출연한 율 브리너(할머니가 몽골계 혈통인 러시아계 미국인)가 처음 후보에 올라 수상했고, 1982년작 《간디》, 2003년작 《모래와 안개의 집》에 출연한 벤 킹슬리(아버지가 인도계)가 후보에 올라 《간디》로 수상했다.
- 여우주연상: 1935년작 《다크 엔젤》에 출연한 멜 오베론(인도계 영국인)이 후보에 오른 게 유일하다.
- 남우조연상: 1957년작 콰이 강의 다리에 출연한 하야카와 셋슈(일본 출신)가 처음 후보에 올랐고, 1984년작 《킬링필드》에 출연한 행 송남 응고르(캄보디아 출신)가 처음 수상했다. 하지만 행 송남 응오는 조연상이 아니라 주연상을 받아야 한다는 논란이 거셌고 조연상을 받아야 했다던 백인 배우 샘 워터스톤이 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며 더 말이 많았다. 결국 이 둘 다 이후로 별다른 행보를 보이지 못하며 배우로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못했다. 이외에 1966년작 《산 파블로》에 출연한 이와마쓰 마코(일본 출신), 1984년작 《베스트 키드》에 출연한 팻 모리타(캘리포니아 출신 일본계 미국인), 1991년작 《벅시》, 2001년작 《섹시 비스트》에 출연한 벤 킹슬리, 2003년작 《라스트 사무라이》에 출연한 와타나베 켄(일본인), 2016년작 《라이언》에 출연한 데브 파텔(인도계 영국인)도 후보에 올랐다.
- 여우조연상: 1957년작 《사요나라》에 출연한 우메키 미요시(일본 출신)가 처음 후보에 올라 수상했다. 이외에 1985년작 《신의 아그네스》에 출연한 멕 틸리와 1994년작 《브로드웨이를 쏴라》에 출연한 제니퍼 틸리(아버지가 중국계), 2006년작 《바벨》에 출연한 기쿠치 린코(일본 출신), 2010년작 《트루 그릿》에 출연한 헤일리 스타인펠드(어머니가 필리핀계 포함)이 후보에 올랐다.
- 2003년작 《모래와 안개의 집》에 출연해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쇼레 아그다슐루는 이란 혁명으로 망명한 이란계 미국인이다. 2018년작 《보헤미안 랩소디》에 출연해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라미 말렉은 이집트계 혈통의 아랍계 미국인이다.
4.4. 여성 감독
1976년 《Seven Beauties/Pasqualino Settebellezze》의 리나 베르트뮬러[74] , 1993년 《피아노》의 제인 캠피언, 2003년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소피아 코폴라, 2009년 《허트 로커》의 캐스린 비글로, 2017년 《레이디 버드》의 그레타 거윅 감독 5명만이 감독상 후보에 올랐으며, 이 중 수상자는 비글로 감독이 유일하다.
[1]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촬영상, 편집상, 미술상, 의상상, 음악상, 시각효과상, 음향효과상.[2]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편집상, 미술상, 의상상, 작곡상, 주제가상, 시각효과상, 음향상, 음향편집상.[3]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편집상, 미술상, 의상상, 분장상, 음악상, 주제가상, 시각효과상, 음향효과상.[4]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여우주연상×2, 여우조연상×3, 촬영상, 편집상, 미술상, 의상상, 음악상, 음향효과상. 이 중 6개 부문 수상.[5]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편집상, 미술상, 의상상, 음악상, 주제가상, 시각효과상, 음향상, 음향편집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분장상. 이 중 11개 부문 수상.[6]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촬영상, 편집상, 미술상, 의상상, 음악상, 주제가상×2, 음향효과상, 음향편집상. 이 중 6개 부문 수상.[7] 안소니 홉킨스는 한니발 렉터 역으로 단 16분 정도만 출연하고도 남우주연상을 받았다.[8] 워터프론트, 콰이강의 다리, 아라비아의 로렌스[9]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새, 아마데우스, 잉글리시 페이션트[10] 쉰들러 리스트[11] 밀고자, 역마차, 분노의 포도,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12] 우리 생의 최고의 해, 미니버 부인, 벤허[13] 나의 왼발, 데어 윌 비 블러드, 링컨[14] 총 6회 후보 지명. 3회 수상작 외 아버지의 이름으로, 갱스 오브 뉴욕, 팬텀 스레드[15] 햄릿[16] 아침의 영광, 초대받지 않은 손님, 겨울의 사자, 황금 연못[17] 소피의 선택, 철의 여인[18] 컴 앤 겟 잇, 켄터키, 서부의 사나이[19] 한나와 그 자매들, 브로드웨이를 쏴라[20] 애니 홀, 한나와 그 자매들, 미드나잇 인 파리스[21] 닥터 지바고, 사계절의 사나이[22] 대부 1, 2[23] 전망좋은 방, 하워즈 엔드[24] 세부인, 이브에 관한 모든 것[25] 사이드웨이즈, 디센던트[26] 대부 1, 2[27] 젊은이의 양지, 콰이강의 다리[28] 잃어버린 주말.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와 선셋대로는 오리지널 각본이므로 각본상으로 분류.[29] 알렉산더의 랙타임 밴드, 틴 팬 앨리, 베르나데트의 노래, 마더 워 타이츠, 내 마음 속의 노래와, 콜 미 마담, 모정, 왕과 나, 카멜롯[30] 지붕 위의 바이올린, 죠스, 스타워즈, E.T, 쉰들러 리스트[31] 애천, 조커 이즈 와일드, 애정이 꽃피는 양지, 파파스 델리케이트 컨디션[32] 하비 걸, 히어 컴스 더 그룸, 티파니에서의 아침을, 술과 장미의 나날[33]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알라딘, 포카혼타스[34] 나의 길을 가련다, 조커 이즈 와일드, 애정이 꽃피는 양지, 파파스 델리케이트 컨디션[35] 제국의 역습, E.T, 제다이의 귀환, 인디아나 존스와 미궁의 사원, 이너스페이스, 어비스,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 쥬라기 공원[36] 마스터 앤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 다크 나이트, 인셉션, 덩케르크[37] 스타워즈, 레이더스, E.T,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38]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아메리칸 스나이퍼[39] 허리케인(1937), 카우보이와 숙녀, 스네이크 핏, 정오의 출격, 이브의 모든 것[40] 빅 하우스, 노티 마리에타, 샌프란시스코, 스트라이크 업 더 밴드, 위대한 카루소[41] 오클라호마, 남태평양, 알라모,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사운드 오브 뮤직[42] 라이언 일병 구하기, 레미제라블[43] 핵소 고지[44] 검은 백조(1942), 윌슨(1944), 리브 허 투 헤븐, 클레오파트라[45] 그레이트 왈츠, 미니버 부인, 상처 뿐인 영광, 지지[46] 무기여 잘있거라[47]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1929), 메리 위도우(1934), 오만과 편견(1940), 애정은 강물처럼, 가스등, 애정(1946), 작은 아씨들(1949), 파리의 아메리카인, 배드 앤 뷰티, 줄리어스 시저(1953), 상처 뿐인 영광[48] 다른 한명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49] 이때 이후로도 한 작품에서 연기 부문에 5명 노미네이트, 3명 수상의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50] 《죠스》는 지명조차 되지 못했는데 스필버그는 이 사실에 크게 분개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감독상 후보가 밀로스 포먼, 페데리코 펠리니, 스탠리 큐브릭, 시드니 루멧, 로버트 알트만이라는 레전설급 감독들이다. 운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51] 글렌 클로즈와 닮은 꼴로 뽑히는 메릴 스트립이 수상했다.[52] 이때 여우주연상은 같은 영화에 출연했던 니콜 키드먼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53] 같은 해에 사랑에 대한 모든 것으로 에디 레드메인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과거에 새비지 그레이스로 모자역으로 호흡을 맞춘 적이 있으며 유명한 일화로는 캐스팅 당시 오디션에서 에디 스케쥴 문제와 투자자들의 반대로 교체될 뻔했는데 줄리안이 이 배역은 에디꺼고 에디가 아니면 나도 출연 안 하겠다고 강경하게 나서서 다행히 출연을 하게 되었고 인터뷰에서 에디는 당시 인지도 없는 신인배우인 자신을 위해 싸워준 줄리안에게 고마워했고 줄리안은 그때부터 이미 알아봤고 자신의 안목이 틀리지 않아서 기분이 좋았다고 밝혔다. [54]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제작자로도 참여하여 작품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55] 하지만 디카프리오를 제치고 수상한 배우들의 소위 말하는 인생 연기를 보면 밑에 등장할 알 파치노에 비해 억울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56] 사실 이에 관한 다른 관점도 존재한다. 디카프리오가 상을 너무 의식한 듯한 영화에 출연해 오버 액팅을 한다는 현지 비판도 존재한다. 길버트 그레이프때와 같은 연기를 바란다는 주문까지 있을 정도. 실제로 수상자들의 연기를 보면 양식화되거나 오버 액팅보다는 극과 인물에 녹아든 연기가 대부분이다.[57] 디카프리오 외에 남우조연상의 빌리 제인도 후보에 오르지 못했고 제임스 캐머런은 작품상과 감독상에는 후보에 올라 수상까지 했지만 시나리오 (각색상)은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58] 원제는 Dog Day Afternoon. dog day는 '뜨거운'을 뜻하는 관용어다. 이전 엔하에서는 개 같은 날의 오후라고 번역했으나, 이는 오류다.[59] 한편 동 세대 배우인 잭 니콜슨의 경우 1974년 영화 《차이나타운》으로 파치노와 후보에 올랐다가 이듬해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다.[60] 출처 - imdb. http://www.imdb.com/name/nm0000056/bio?ref_=nm_ov_bio_sm[61] 그래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탈리아계를 차별한다는 논란도 일었다.[62] 69회 시상식 때는 《트위스터》와 《더 락》이 동시 지명되었고 71회 시상식 때는 《아마겟돈》과 《마스크 오브 조로》가 동시에 후보에 올랐다.[63] 인터뷰 영상은 이곳에서 볼 수 있다.# [64] 같은 인터뷰 영상이지만 이건 5분이다.# [65] 그 해 작품상을 수상한 문라이트의 경우 후보에 이름을 올린 제작자 3명이 모두 백인이다.[66] 총 9번 지명 (자신이 감독, 제작한 영화로 작품상 후보 1회 포함) 91회 시상식까지 남우주연상에 6번, 남우조연상에 2번 그리고 자신이 감독, 제작한 작품으로 작품상에 1회 노미네이트 되었다.[67]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68] 196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랐다.[69] 《란》 이전의 작품들은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랐다.[70] 《하워즈 엔드》, 《남아있는 나날》로도 후보에 올랐다.[71] 7월 4일생, JFK.[72] 제리 맥과이어.[73] 여담으로 곽 대표의 오빠는 친구를 제작한 바 있는 곽경택 감독이고, 곽 대표의 남편도 은교의 정지우 감독으로 영화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74] 가이 리치 감독, 마돈나 주연의 《스웹트 어웨이》로 리메이크된 《귀부인과 승무원》이 대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