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휘재/활동

 


1. 데뷔
2. 전성기
3. 군입대
4. 방송 복귀
5. MC로 전향


1. 데뷔


서울예대 연극과 1학년 때이던 1991년, 서울예대에 방문했던 MBC PD의 눈에 띄어서 서울예대 동갑 동기 김한석과 함께 MBC 개그 프로의 아이디어맨(작가 비슷한 일)으로 일하게 되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스텝인 FD로 일하기 시작했다. 출처는 힐링캠프 124회 이휘재편. 그러다가 1992년, 이경규가 이휘재를 일요일 일요일 밤에몰래카메라엑스트라로 출연시켰고, 이것을 인연으로 해서 연예계에 데뷔하게 되었다. 이휘재는 이경규가 연예인으로 키워보자며 미리 점찍어둔 사람 중에 하나였다고... 이휘재 이외에 이경규가 연예인으로 키워보려고 점찍어둔 인물로는 강호동이 있다.
1992년 당시 몰래카메라 이상용 편으로 '가짜 우정의 무대'를 촬영하는데 이경규는 이휘재에게 "머리 한번만 밀면 스타덤에 오르게 해주겠다."고 꼬드겼다. 삭발한 병사로 출연하라는 것이였다. 이휘재는 이경규가 시키는 대로 '가짜 우정의 무대'를 촬영하기 위해 삭발을 했다.
그러나 해당 부대에서는 촬영 허가를 내주지 않았고 결국 이상용의 몰래카메라는 무산되었다. 이때 이휘재 본인은 버스 맨 뒷자리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이경규는 이로 인해서 이휘재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되었고 한동안 이휘재를 본격적으로 밀어주게 된다.#
개그맨 치고는 상당히 잘생긴 외모와 큰 키로 주목받았으며 이러한 외형을 아예 캐릭터로 잡아 나갔다. 그래서 탄생된 것이 유명한 유행어인 '''롱다리'''.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이경규'''로 1993년 '코미디 동서남북'이란 프로그램에서였다. 참고로 숏다리는 '''김한석'''이었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 데뷔를 했던게 '빅다리' '''강호동'''이다.[1] 나름대로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단어가 바로 '''TV에서 대놓고 표방한 외모지상주의 시초'''이기 때문이다. 즉 롱다리와 숏다리는 요즘의 '''위너'''와 '''루저'''의 옛말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

2. 전성기


[image]
1993~1994년도까지 MBC에서 방영한 일밤의 코너 중 하나인 '''TV인생극장'''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TV인생극장은 이휘재를 주인공으로 해서, 인생의 특정 순간에 상반되는 양자택일의 선택으로 인해 인생이 뒤바뀌는 모습을 보여주는 코너였으며, 여기서 이휘재는 훈훈한 비주얼, 적절한 개그와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로 잘생기고 유머러스한 남성상의 유행을 선도하며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이 당시 이휘재의 인기는 정선희가 방송에서 수 차례 언급했던 것처럼 실로 절대적이었다. 김혜수, 최진실 등등 당시 말만 꺼내도 억 하는 톱 여배우들과 이휘재의 키스신이 꼬박꼬박 들어갈 정도였으니… 이 코너로 이휘재는 1994년 MBC 방송대상 코미디부문[3]에서 이경실과 함께 최우수상(실질적인 연예대상)을 받았다.
당시 이 코너와 관련해서 가장 유행했던 말로는 '''"그래. 결심했어!"'''가 있다. 이 대사는 이 코너 자체를 그대로 표현한다고 보면 된다. 이후 TV인생극장은 MBC에서 테마게임이라는 프로그램으로 계승되었다.

3. 군입대


그러나 이러한 인기를 뒤로 하고 1994년 12월, 대한민국 육군 현역병으로 입대. 제8기동사단에 자대 배치를 받고 복무하다가[4] 연예병사로 차출되어 군생활을 마쳤다. 대한민국 국방부에서 지원한 훈련병들의 입소와 훈련과정을 그린 드라마인 '신고합니다' 등에 차인표 등과 출연하기도 했다.

4. 방송 복귀


이휘재는 자신의 유명세에 힘입어 1집 'Say GoodBye' (1995)와 2집 'Blessing You' (1997)라는 앨범을 발표하고 가수로 활동했으나, 처참히 망했다. 이휘재는 이것을 자신의 흑역사임을 인정했고, 이를 개그 소재로 오랫동안 써먹기도 했다. 그래도 본인 말에 의하면 당시 Say GoodBye 앨범은 35만 장 정도 팔았다고 한다. 이 당시에는 백만 장을 팔아야 대박이었고, 중박 정도 치려면 50만장을 넘어야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당시 35만장이면 '''처참히''' 망했다고 할 정도는 아니고, 전문 가수가 아닌 개그맨 출신의 가수로서는 나름 선전한 편이었다. 솔로 가수가 1, 2년에 한 번씩 꾸준히 10만장 정도를 팔고 수익분배를 제대로 받았다면 별다른 공연이나 출연이 없어도 예나 지금이나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다. 물론 개그 활동보다 수익이 나오지 않았으니 사실상 망한 거나 마찬가지다.
당시 이휘재의 가수로서의 실패를 한 연예신문은 이렇게 분석했다. '이휘재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개그맨이기 때문에. 바로 재미있는 사람으로 이휘재를 받아들였는데, 가수의 이휘재는 마치 자신이 신승훈이나 이승환 같은 왕자님이 된 듯 자신을 표현했기 때문에, 대중이 그리던 가수의 모습이 아니다. 대중은 그런 모습에 이휘재를 이입시키는데 실패했다.'
후에 유재석과 듀엣으로 프린스란 그룹을 기획했지만, 그냥 프로젝트 선에서 머문 듯 싶다. 이때 두 사람 모두 예명을 만들었는데 이휘재는 '정빈', 유재석은 '유혁'이였다.[5]
그렇게 군 입대 이전의 인기를 제대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던 이휘재는 1999년, SBS에서 한 '남희석 이휘재의 멋진 만남'으로 인기를 회복한다[6]. 동시간대에 KBS1에서는 대하드라마 왕과 비가 방영되고 있었는데, '멋진 만남'이 전혀 밀리지 않았다. 당시 남희석은 얼굴은 딸리지만 물량 공세를 동원한 화려한 데이트를 추구하는 돈 많은 지역유지[7]의 아들 컨셉으로 여자 게스트의 눈길을 끄는 '남재벌', 이휘재는 돈은 없지만[8] 멀쩡한 외모와 특유의 말빨로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하는 도시풍 바람둥이의 '이바람'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이휘재의 극렬 안티들은 이 때의 인기 회복이 남희석의 인기에 묻어간 거라고 극구 주장하지만, 멋진 만남이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은 '''둘의 역할 분담과 호흡이 기가막히게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최전성기였던 인생극장은 일종의 단막극 형식으로 짜여진 각본의 비중이 더 컸기에 남희석과 합을 맞춘 이 시기가 이휘재의 커리어에 있어서 가장 좋은 개인 폼을 보여줬다는 것이 중론이다. 다만 당시 인기를 비교하면 남희석이 확실히 더 우위였다.
그 당시 '좋은 친구들', '멋진 만남'이라는 당대 최고의 인기 예능 2개를 이끌던 남희석과의 순간적인 인기는 (비록 조금씩 식고 있긴 했으나) 여전히 당대 원톱이었던 김국진을 위협할 정도였다. 결코 남희석이 프로그램을 혼자 이끌어가고 이휘재가 얹혀갔다든가 하는 식으로 진행자로서의 이휘재의 역량이 과소평가를 받을 만한 내용은 아니었고, 남희석과 이휘재가 철저하게 망가지는 개그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시청률도 좋아졌다.
참고로 이 때 멋진 만남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연예인이 그룹 클론을 패러디한 '클놈' 으로 등장한 지상렬, 염경환, 그리고 탤런트 이유진 등이다. 이 때의 인연으로 지금도 이유진은 이휘재와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5. MC로 전향


'남희석 이휘재의 멋진 만남'의 성공과 2000년대 초에 방영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공포의 쿵쿵따 코너에서 강호동, 유재석, 김한석 등과 진행을 맡은 이후 이휘재는 본격적으로 MC로 전향하게 된다. 모르는 이들이 많은데, 90년대 초반부터 이미 일요일 일요일 밤에로 본격 MC 활동을 시작했다. 이래봬도 예능계 MC로의 경력만 따지면 '''이경규 다음쯤''' 된다.
군제대 이후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한 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탑은 아니라도 꾸준히 MC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항상 정점이라기보단 정점의 '''약간 아래'''를 유지해 왔다. 그동안 이경규, 김국진, 남희석, 신동엽, 김용만, 유재석, 강호동 등 MC 최정점은 항상 바뀌었지만 이휘재의 살짝 아래 위치는 거의 고정.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MC 줄줄이 탈세, 절도, 도박, 폭행, 마약 등의 혐의로 주춤했기에 '''반사이익'''을 얻어 능력과는 무관하게 오랫동안 살아남은 현역 MC가 되었다.
다만, 중간중간 논란이나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은근히 자주 있어서 탑 급[9] MC들 중에서 대중에게 팬심과 호감도는 떨어지는 편이다. 쉽게 말해 이휘재만큼 자주 나오고 오랫동안 MC를 본 이는 매우 드물지만 정작 그의 광팬이라거나 "이휘재 때문에 이 방송 본다."라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얘기.
MC로서 능력은 무난한 편이다. 20여년간 꾸준히 예능 프로그램의 MC를 맡고 있어서 대중들 사이에서의 인지도도 나름 높은 편이다. 정해진 대본을 따라가며 자신이(혹은 제작진이) 미리 정해놓은 흐름을 벗어나는 발언이나 행동은 강하게 제지하는 편. 이러한 진행 스타일로 '지휘재'라는 별명도 얻었다. 다만, 화려한 입담이나 게스트를 살려주는 캐릭터 메이킹, 돌발적인 드립을 받아치는 순발력은 매우 떨어지는 편이다. 정신없이 드립이 오고가는 리얼 버라이어티나 돌발 상황이 벌어지기 쉬운 관찰 예능보다는 작가가 강하게 관여하는 스튜디오 예능이나 토크쇼, 웃음보다는 순수한 진행 능력이 중요한 행사 진행 등에 강점을 보인다. 근래 예능의 대세가 리얼 버라이어티, 관찰 예능으로 변화함에 따라 트렌드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이휘재만의 캐릭터로는 상기한 멋진 만남에서부터 이어진 바람둥이 캐릭터가 있다. 방송용 멘트인지는 모르겠지만 김나영, 한성주 등 여러 여자 연예인들의 적극적인 대시를 받고 있는 걸 보면 여러모로 여자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운명인 듯. 이런 기믹들이 극대화(?)된 순위 정하는 여자라는 케이블 프로그램에서는 '여자가 끊이지 않는' 기믹으로 여자 연예인들 사이에서 '지휘재' 기믹을 발휘하고 있다.
남희석은 결혼과 더불어 당시의 '남재벌' 이미지를 탈피할 수 있었지만, 2010년까지 미혼으로 남았던 이휘재는 '이바람'의 이미지가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 이 때 잡힌 바람둥이 캐릭터는 결혼 이후까지도 방송에서 여성 출연자들과의 상황극에 꾸준히 써먹고 있다. 결혼 전에는 김나영, 유이 등과 실제 스캔들처럼 연기를 했다면, 결혼 후에는 '오늘만큼은 과거로 돌아가겠다.'던지 등의 바람둥이 시절을 그리워하는 식의 애드립을 많이 치는 편. 이 때문에 여성 편력에 관련된 루머에 시달리기도 했었다. 다만, 이바람 컨셉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큰 스캔들은 단 한번도 낸 적이 없다. 젊을 적부터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말로 이휘재가 바람기가 넘쳤다기보다는 그저 여자들에게 인기만 많았던 것에 가깝다. 그도 그럴 것이, 롱다리라는 별명의 원조답게 큰 키[10]와, 잘생긴 얼굴, 게다가 상술했듯 좋은 집안에 위트와 재치에 입담까지 겸비했으니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 스타일이었으니... 실제로 대학 시절 가까웠던 지인들인 김현철[11], 김진수, 김한석 등이 직접 증언한 바로는 대학 시절에 주변의 많은 여자 선후배들이 이휘재에게 접근하려고 그렇게 노력했다고 한다. 심지어 한번은 남자 선배가 짝사랑하던 여자 선배와 이휘재가 놀러갔다가 그 남자 선배에게 들키는 바람에 이휘재가 심하게 맞을 뻔해서 김현철이 말린 일도 있다고 한다.[12]
2010년 12월 5일 부로 그동안 교제해 오던 여자친구와 결혼해서 유부남이 되었다. 바람둥이 이미지 이후로는 별다른 특색이 없었는데,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면서 쌍둥이 아들들 육아에 힘쓰는 가정적인 모습으로 그간의 이미지를 탈바꿈, 2015년 KBS 연예대상까지 수상했으나, 이듬해 2016년, 또다른 하위 문서인 이휘재/비판 및 사건사고 문서에 기재된 맨 마지막 문단 내용인 SBS 연기대상에서 MC로서 큰 태도 논란을 저지르는 바람에 한때는 이전만한 활동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시청자의 의견을 수용하고 진행 형식을 바꾸는 노력을 보여주면서 평판이 나아지고 있는 추세'''였'''다. #
하지만 2021년 연초, 이휘재/비판 및 사건사고 문서에 서술한 층간소음 논란은 물론 본인 포함 가족들의 이런저런 비행까지 까발려지면서 다시금 방송 활동에 상당한 지장이 생겼다.
[1] 코미디 동서남북은 시청률 저조로 6개월도 버티지 못하고 폐지되었지만 유행어만큼은 살아남았다. 그러나 우리말을 파괴하는 예로 많은 비판도 받았다.[2] 다만, 이휘재가 데뷔한 1990년대 초에 178cm는 당시 대한민국 남성 평균 신장과 비교하면 큰편에 속했다. 또한 키가 180이 넘는 강호동은 특유의 떡대도 있다보니 유독 더 크게 보였다.[3] 현재의 MBC 방송연예대상[4] 복무기간 중에도 방송 인터뷰로 복무 부대로서 많이 알려지기도 했고, 전역 후에 공포의 쿵쿵따에서 8사단의 경례 구호인 '''돌격'''을 FM으로 외치는 시범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때 주변 부대의 간부들을 비롯한 장병들이 싸인받으려고 얼마나 들락날락했는지 당시 부대 지휘관이 사적인 일로 이휘재 있는 곳에 들락날락하는 사람은 지위계급을 막론하고 처벌하겠다고 공고했다 카더라.[5] 이후 런닝맨에서는 유재석을 자막으로 아예 유혁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6] 참고로 이휘재는 멋진 만남의 시작과 동시에 KBS에서 '남희석 이휘재의 한국이 보인다'를 진행했다. 그리고 이 때부터 게스트로 참여해서 염경환지상렬도 유명해졌다.[7] 남희석의 부모님은 고향에서 목욕탕을 한다.[8] 당연히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휘재의 아버지는 해양대학교 출신에 이휘재가 어릴 때부터 배를 몰던 선장이었고, 은퇴 후에도 해운회사 이사직을 역임할 정도로 부유했다. 이휘재가 그 동안 방송에서 스스로 말했던 중고등학생 시절 일화들을 보면 아버지 지갑에 손을 대서 자기가 친구들을 다 이끌고 놀러가서 친구들 몫까지 펑펑 돈을 쓰고 놀고 나서 나중에 아버지에게 걸려서 두들겨 맞았던 경험담들이 많다. 한마디로 그만큼 집에 이 많았다는 것이다.[9] 언제나 대상 후보로 언급되는 이경규,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여기에 과거의 영광을 생각하면 김국진, 이영자 등도 낄 수 있다. 조금 더 보태자면 자신들만의 각자의 영역들을 확실히 구축하고들 있는 김성주, 전현무, 김구라 등도 볼 수 있겠다.[10] 실제 키가 178cm 정도로 2010년대 후반 기준으론 그리 큰 키가 아니지만, 90년대 초중반까지는 충분히 장신 소리를 들을만한 피지컬이었다. 또한 현재 나이가 40대 후반에 접어들어 젊은 시절보다 키가 조금 줄었을 가능성도 있다.[11] 김현철은 이휘재의 충암고 2년 선배이기도 하다.[12] 이휘재 본인 말로는 그냥 같이 오리배 한 번 탄 것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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