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대명사)

 

1. 개요
2. 지역별 쓰임
2.1. 중국
2.2. 한국
2.3. 일본
3. 외국어의 유사 표현
4. 기타
5. 사용 인물



1. 개요


황제#s-2 전용 일인칭. 상고중국어에서 소유격 한정으로 사용된 1인칭 대명사였으나, 사기에 따르면 진시황이 황제만 쓰는 1인칭으로 하도록 명한 뒤로 그게 굳어졌다고 한다.

2. 지역별 쓰임



2.1. 중국


청나라 시절쯤 되면 짐은 문어적 표현에 국한되게 된다. 예를 들면 강희제는 일상적으로 대화할 때는 짐을 쓰지 않고 자신을 보통 '我'라고 자칭했다고 한다. 我는 현대 중국어에서도 일반인들이 평소에 사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1인칭 표현이다.

2.2. 한국


한국사에선 의외로 짐이 쓰인 기간이 안 쓴 기간보다 훨씬 긴데 이 "짐"이란 표현이 최초로 등장한 시기는 신라 왕조의 유리 이사금 때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 이사금조 참조. 유리 이사금 이후 여러 신라 임금(진흥, 진평, 선덕, 문무 임금 등.)들이 "짐"을 사용한 기록이 남아있으며, 삼국사기뿐 아니라 당시의 금석문 기록인 진흥왕 순수비에도 진흥왕이 스스로를 짐으로 칭하는 기록이 등장한다. 백제와 고구려, 발해는 짐을 썼다는 직접적인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백제의 칭호 "대왕 폐하", 고구려의 연호 "영락", 발해의 존칭 "황상" 등을 보면 신라 외 다른 고대 국가들도 "짐" 표현을 썼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 "짐"이란 표현은 고려에서 보이는데 고려는 잠시 황제를 칭했을 정도로 자주성이 강했기에 원 간섭기 이전까지 임금들이 "짐" 표현을 써왔다.
조선은 제후국을 자처한만큼 "짐" 표현을 쓰지 않다가[1] 왕권이 강력하던 영조 시절에 잠시 쓰였고 이후 고종이 자주국 "대조선국"을 칭하면서 "짐"이란 표현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2] "대한 제국"을 개창하며 순종 황제까지 쓰이다가 더 이상 쓸 일이 없게 되었다.

2.3. 일본



일본에서도 이 글자를 1인칭으로 쓰곤 한다. 일본식 독음은 チン()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신을 가리켜 짐이라고 일컬었고, 조선에 보내는 국서에 "천하가 이제 짐(히데요시 자신)의 한주먹 안에 있노라."라는 글귀를 적어서 보내 조선 조정을 경악하게 한 일도 있었다. 당시 일본의 정식 군주는 고요제이 덴노였고, 히데요시는 어디까지나 천황의 신하인 신분이었기 때문. 하지만 당시 일본의 실질적인 군주는 히데요시였고, 일본의 고요제이 덴노는 아무런 힘이 없는 허수아비 신세였기 때문에 일본 국내에서 히데요시가 스스로를 가리켜 짐이라고 일컬어도 별 문제는 없었다.
현대 일본의 천황은 스스로를 짐이라 칭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짐이라고 칭한 마지막 천황은 쇼와 천황으로, 옥음방송이나 일본국 헌법같은 공식 문서에서는 朕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대화할 때는 일반적인 1인칭 대명사인 '와타시'나 '보쿠'를 사용했다. 전후에는 공식 문서에서도 와타시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아키히토나루히토도 마찬가지이다.


3. 외국어의 유사 표현


영어권 국가에서는 군주가 자신을 취하는 대명사로 '''We'''를 쓰거나 혹은 '''"He said "..."'''와 같이 '''그는 말하노라, ~하노라'''와 같이 자신의 권위를 나타냈다. 이렇게 복수형으로 자신을 칭하는 것을 두고 '장엄복수형'이라고 한다. 3인칭으로 칭하는 경우는 카이사르에서 유래하는데, 갈리아전기를 쓸 때 꼭 자신을 3인칭으로 칭했는데 이것이 로마황제의 관습이 되었다. 이것이 이어져 유럽에서는 군주가 자신을 3인칭으로 지칭하는 풍습이 생긴 것. 심지어 조지 워싱턴도 이를 본받아 자신을 3인칭으로 지칭하기도 했는데 다행히 황제에 오르려고 하지는 않았다.[3]
일본어 번역 시 '여(余)'를 '짐'으로 번역하는 경우도 많지만 엄밀히 말해 두 가지는 다른 것으로, '여'는 '나'를 문어적으로 고풍스럽게 표현한 것일 뿐, 실제로 신분이 높은 이만 쓰는 1인칭이 아니다. (특히 구한말 문헌을 보면 넘쳐난다.) 문맥에 따라 '여'를 '짐'으로 옮길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나'로 옮기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운 경우도 많으니 주의를 요한다.[4]

4. 기타


이와 반대로 황제보다 낮은 (孤)나 과인(寡人)이란 표현을 쓴다. 그중 과인은 왕이 자신을 낮추는 표현으로 주로 잘못을 인정하거나 겸양할 때 쓴다. 예를 들면 "가뭄이 심한 것은 과인이 부덕한 탓이로다."는 식으로. 그 외의 1인칭 표현도 자신을 낮추는 의도가 많다.
  • 불곡(不穀): 곡식은 사람을 기르는 물건인데 임금이나 제후는 백성을 잘 기르지 못하니 곡식보다 못하다는 뜻. 곧 임금이 착하지 못함을 자칭하는 말.
  • 묘충(眇沖): 나이가 어린 사람. 마찬가지로 제왕이 스스로가 부족함을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하다.
루이 14세가 한 말로 유명한[5] "L'etat, c'est moi"는 "짐이 곧 국가다"로 옮겨진다. 프랑스어로는 아무나 쓸 수 있는 1인칭인 'moi'일 뿐이다.

5. 사용 인물




[1] 간혹 사극에서는 호칭은 전하라고 하면서 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는 완전히 고증 오류이다. 또한 과인이라고 하는 것도 오류 아닌 오류이다. 왕이 스스로를 '과인'으로 부르는 것은 왕이 스스로 자신의 과실을 인정할 때 등 스스로를 낮추는 경우에 한정적으로 쓰이는 표현으로 실록 상에는 평범하게 '나'를 의미하는 '여(余)'를 사용했다고 한다.[2] 이 때 칭호를 "대군주 폐하", "왕후 폐하", "왕태자 전하" 등으로 바꾸었다.[3] 오히려 그는 초대 미국 대통령으로서 연임 혹은 종신집권 등을 아예 염두에 두지 않고 모범을 보였다. 오죽하면 주변에서 '인재가 없으니 제발 대통령직을 맡아달라'는 요구조차 수 차례 거절했다. 이러한 행보와 업적으로 그는 미국사와 세계사에 영원히 남을 명성을 얻었다.[4] 예를 들어 라오데키야 쥬데카 곳초 같은 경우 '나'가 더 적절하다.[5] 실제로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루이 11세가 "짐이 곧 프랑스다"라고 말했다는 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