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 리그/1996-97 시즌
1. 개요
프리미어 리그의 다섯 번째 시즌이다. UEFA 챔피언스리그 티켓이 한 장 더 확대되어 2팀을 진출시킬 수 있게 되었다. 우승 경쟁 구도는 디펜딩 챔피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 FC, 아스날 FC,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경쟁 구도로 흘러갔으며 프리미어리그 역대 우승팀 최소승점인 75점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치열한 우승경쟁 끝에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였다. 강등팀은 선덜랜드 AFC와 미들즈브러 FC, 노팅엄 포레스트로 결정되었는데 파브리치오 라바넬리, 에메르송, 잔루카 페스타와 같은 외국인 스타선수들을 영입하는데 100만 파운드를 넘게 지출하고 FA컵과 리그컵 모두 준우승을 차지한 미들즈브러의 강등은 충격이었다. 사실 1996년 12월 블랙번과의 경기에서 불참사태로 인한 승점 감점 3점이 없었더라면 잔류라 아쉬움을 남겼다.
2. 참가 클럽
2.1. 감독 교체
3. 순위
- 순위는 승점 > 득실차 > 다득점 순으로 결정된다.
3.1. 우승
3.2. 클럽별 리뷰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버풀, 아스날, 뉴캐슬과 시즌 내내 우승경쟁을 했으며 역대 프리미어리그 팀 중 최소승점인 75점으로 68점이라는 승점으로 2,3,4위가 나뉜 뉴캐슬, 아스날, 리버풀에 승점 7점이 앞서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개막 9경기 무패행진 이후 뉴캐슬 원정 0-5 패, 사우스햄튼 원정 3-6 패, 첼시에 홈에서 1-2 패배로 3연패를 당하며 12월 중순엔 6~7위까지 떨어졌었지만 선덜랜드전 홈경기 5-0 대승을 기점으로 11경기 9승 2무를 기록하며 빠르게 승점을 쓸어담으며 1월에 주춤하던 리버풀을 제치고 선두에 올랐다. 이후 선덜랜드 원정에서 1-2로 패배하고 더비카운티에 홈에서 2-3으로 패배하는 위기도 있었지만 선두를 빼았길 위기 때마다 리버풀이 알아서 자멸했으며 4월 19일 안필드에서 열린 사실상의 우승 결정경기에서 팰리스터의 2골로 3-1 완승을 거두며 우승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결국 2경기 남은 상황에서 리버풀이 윔블던 원정에서 2-1로 패배하며 프리미어리그 2연패에 성공했다. FA컵과 리그컵은 윔블던과 레스터에 덜미를 잡히며 조기탈락했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조별예선에서 페네르바체 SK에 홈에서 패하며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유럽대항전 홈경기 패배를 당했지만 아슬아슬하게 조별예선을 통과한 뒤 8강에서 포르투를 꺾고 준결승까지 올라가며 좋은 성적을 냈다. 준결승에서 대회 우승팀이 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홈과 원정 모두 1-0으로 패배하며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시즌 전 주전 측면 미드필더였던 리 샤프가 450만 파운드에 리즈 유나이티드로 떠났고, 주장 스티브 브루스는 버밍엄 시티로 FA로 떠났다. 앨런 시어러를 1200만 파운드와 앤디 콜을 주고 영입하려했지만 뉴캐슬에 하이재킹했고 울며 겨자먹기로 대신 영입한 올레 군나르 솔샤르가 성공적인 이적 첫해를 보냈는데 전 대회에서 19골을 득점하며 팀내 득점 1위에 올랐다. 22세의 젊은 미드필더 데이비드 베컴은 개막전 윔블던 원정에서 하프라인 뒤 60야드 거리에서 윔블던의 골키퍼 닐 설리번이 앞으로 나와있는 것을 보고 슛을 날린 것이 그대로 골인되며 유명세를 타더니 리버풀전, 토트넘전에서 중요한 골을 득점하며 맹활약했고 PFA 올해의 영플레이어 상을 수상했다. 솔샤르와 동향인 로니 욘센도 훌륭한 이적 첫 시즌을 보냈는데 게리 팰리스터와 찰떡궁합의 호흡을 보여주며 브루스의 공백을 훌륭하게 메웠다. 다만 또다른 이적생 카렐 포보르스키와 요르디 크루이프은 측면과 미들, 공격을 볼 수 있는 자원임에도 불구하고 실망스러운 활약상을 펼쳤다. 에릭 칸토나가 이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고 마지막 시즌에서 리그 11골을 포함하여 전 대회 합쳐 15골을 득점하며 박수칠 때 떠났고 영원한 맨유의 전설로 남게 되었다.
- 뉴캐슬 유나이티드
지난 시즌 12점 차의 리드를 잃어버리고 맨유에 우승을 내줬던 뉴캐슬은 맨유가 노리던 득점왕 앨런 시어러를 세계 이적료 신기록이었던 1,50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하이재킹하며 영입했다. 그는 뉴캐슬의 감독인 케빈 키건이 뉴캐슬에서 선수 생활을 보내고 있었을 때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볼보이로 활약했던 뉴캐슬 토박이 로컬보이였다. 시어러가 적응기 따윈 없이 맹활약하며 초반 10경기에서 8승을 거두고 맨유에 5-0 대승을 거두며 선두로 치고나갔으나 곧 7경기 연속 무승의 슬럼프에 빠지며 4위로 떨어졌고 토트넘에 7-1 대승, 리즈에 3-0 대승을 거두며 다시 올라가려던 찰나에 지난 시즌 우승을 아쉽게 놓친 이후 스트레스가 심했던 케빈 키건 감독은 1997년 1월 8일 돌연 사임을 선언했다. FC 바르셀로나를 이끌고 있던 바비 롭슨이 물망에 올랐으나 자신이 맡고있던 바르샤와의 의리를 생각하며 정중하게 거절했고 그 대신 블랙번에서 나와 야인으로 있던 케니 달글리시가 새로운 감독이 되었다. 안필드에서 2년 연속 4-3으로 패배하는 일도 있었지만 시즌 막판 뒷심을 발휘하며 최종전 강등이 확정된 노팅엄 포레스트에 홈에서 5-0 대승을 거두며 같은 승점 68점의 아스날과 리버풀을 골득실로 따돌리며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리그컵은 4라운드에서 미들즈브러에, FA컵도 4라운드에서 노팅엄에 패배하며 조기 탈락했고, UEFA컵은 8강까지 진출했지만 AS 모나코에 패하며 탈락했다.
- 아스날
시즌 전 브루스 리오치 감독이 선수와의 불화와 구단과의 마찰로 경질당했고 수석코치였던 스튜어트 휴스턴이 감독대행직을 맡았다. 휴스턴이 QPR 감독으로 떠나자 팻 라이스가 또 감독 대행을 맡았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도 조지 그레이엄의 후임 감독으로 물망에 올랐던 나고야 그램퍼스의 감독 아르센 벵거가 9월 22일 리오치의 후임으로 부임하는 것이 확정되며 클럽 역사상 첫 비영국인 감독이 되었고 10월 1일부터 아스날의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 자세한 내막은 아르센 벵거/아스날 FC를 참조하자. 시즌 전 파트리크 비에이라와 레미 가르드를 영입했던 아스날은 개막 12경기에서 1패만을 당하며 벵거 부기 초반 선두까지 올라갔지만 12월에 1승3무1패, 2월에 2무2패를 기록하고 맨유와 리버풀과의 맞대결에서 모두 패배한 것이 우승경쟁에 큰 타격으로 작용했다. 결국 우승경쟁을 포기하고 챔피언스리그 티켓이 주어지는 2위에 집중했으나 마지막 홈경기인 뉴캐슬에 0-1로 패배하며 골득실에 앞선 뉴캐슬에게 순위를 내주었고, 더비 카운티의 마지막 베이스볼 그라운드 홈경기였던 최종전 더비 원정에서 3-1 승리를 거두었지만 뉴캐슬이 노팅엄에 5-0 대승을 거두며 골득실차에 밀려 3위로 UEFA컵에 나가게 되었다. 이안 라이트는 리그 23골을 포함하여 전 대회에서 30골을 득점하였고 데니스 베르캄프도 리그 12골을 포함하여 전 대회 14골을 득점하였다. 2월에는 PSG로부터 17세의 유망주 니콜라 아넬카를 영입하였다. 시즌 전 기대 성적보다는 좋은 성적이었지만 톱4와의 경기에서 1승5패를 당한 것이 독으로 작용하며 7점 차이로 우승을 놓쳤다. 하지만 벵거 감독이 부임한 뒤부터 식단조절 등 팀체질 개선과 함께 팀 스타일이 변하기 시작했고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 리버풀
1997년 새해를 맞았을 때의 순위는 2위에 승점 5점이 앞선 선두였다. 그러나 맨유가 연승을 기록하며 리버풀로부터 선두 자리를 빼았았고, 리버풀에게 선두를 탈환할 찬스가 여러번 있었지만 뒷심부족을 노출하며 그 찬스들을 모조리 말아먹었다. 맨유가 더비에 2-3으로 패배했을 때 최하위 코번트리를 상대로 홈에서 1-2로 패하며 그 기회를 날렸고, 시즌 막판 홈에서 가진 맨유와의 사실상의 우승 결정경기에서도 데이비드 제임스 골키퍼의 치명적인 두 번의 실책이 나오며 1-3 패배를 당했다. 여기서 사실상 우승이 결정났지만 그래도 챔스 출전 자격이 주어지는 2위는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윔블던 원정에서 1-2로 패배하고 최종전에서 승리하면 2위가 확정되는 상황에서 셰필드 웬즈데이에 1-1로 비기며 뉴캐슬-아스날에 골득실에서 밀려 4위로 떨어지는 최악의 마무리를 했다. 크리스마스에 1위를 하면 우승을 못하는 징크스의 시작이 되었던 시즌이다. 아쉬운 마무리를 했지만 로비 파울러와 스탄 콜리모어는 47골(리그 파울러 18골, 콜리모어 12골)을 합작하며 좋은 시즌을 보냈다. 시즌 막판 맨유의 우승이 결정된 윔블던과의 원정경기에서 마이클 오웬이 데뷔전을 치렀고, 오웬은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기록하며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 아스톤 빌라
빌라에서 7년간 활약했던 베테랑 센터백 폴 맥그레스는 더비 카운티로 떠났다. 지난시즌 리그컵 우승팀이었던 빌라는 이번엔 우승컵은 없었지만 5위로 마감하며 2년 연속 UEFA컵 진출에 성공했다. 공격수 드와이트 요크는 리그 17골을 포함하여 전 대회 20골을 기록하는 맹활약으로 2년 연속 팀내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레프트백 앨런 라이트와 센터백 우고 에히오구는 전경기를 풀타임으로 출장하였다. 이들과 사우스게이트, 스톤튼이 주축이 된 수비는 34실점으로 경기당 1실점이 안되는 짠물수비를 기록했다. 10골을 기록한 사보 밀로세비치를 따라 볼튼에서 빌라로 클럽레코드인 40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이적한 사샤 쿠르치치는 기대 이하의 활약을 보였다.
- 첼시
글렌 호들 감독이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옮기면서 스타 미드필더인 루드 굴리트가 선수 겸 감독이 되었다. 그는 그의 국제적인 인맥을 적극 활용하며 월드클래스 선수들을 영입했다. 프랑스 국가대표 센터백 프랑크 르뵈프, 이탈리아 국가대표 미드필더인 로베르토 디 마테오, 유벤투스의 주장이던 지안루카 비알리가 영입되었고 11월에는 파르마의 플레이메이커였던 지안프랑코 졸라가 합류하게 되었다. 첼시는 1989-90 시즌 5위 이후 최고 순위인 6위로 마감하게 되었고 FA컵은 결승전에서 디 마테오의 42초 결승골에 힘입어 미들즈브러를 2-0으로 제압하고 우승하며 26년 만에 무관에 탈출하는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지안프랑코 졸라는 11월이 되어서야 합류하여 시즌의 2/3만 치르고도 12골에 수많은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단숨에 첼시팬들의 슈퍼스타가 되었고 FWA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기에 이르렀다. 비극적인 일이 하나 있었는데 디렉터 매튜 하딩이 헬기 추락사고로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고 홈구장 스탬포드 브리지의 한쪽 스탠드를 "매튜 하딩 스탠드"로 명명하게 되었다.
- 셰필드 웬즈데이
개막 후 4연승을 기록하며 1위에 올랐고 데이비드 플리트 감독은 8월의 감독상을 수상했지만 곧바로 무승행진을 기록하며 중위권으로 떨어졌다. 시즌 중반에 20경기에서 단 1패를 기록하긴 했지만 너무 많은 무승부 때문에 UEFA컵 진출권이 주어지는 좀더 높은 순위로 올라가지 못하며 7위로 마감했다.
- 윔블던
개막전 홈에서 베컴에게 장거리골을 허용하며 맨유에 0-3으로 대패를 당했고, 이후 2경기를 더 패하며 개막 3연패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이후 19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했고 12월 블랙번을 1-0으로 잡았을땐 선두 아스날에 승점 1점이 적은 3위에 자리잡았다. 하지만 후반기에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의 법칙으로 유럽대항전에서 멀어졌으며 8위로 마감하였다. 리그컵과 FA컵 모두 준결승까지 진출하였는데 준결승에서 각각 대회의 우승팀이 되는 레스터 시티와 첼시에 떨어졌다.
- 레스터 시티
플레이오프를 거쳐 1년 만에 승격한 레스터는 강등후보로 꼽혔고 마틴 오닐 감독의 1차적인 목표는 리그 잔류였다. 하지만 레스터는 리그 순위를 9위로 마쳤고 리그컵에서는 결승에서 미들즈브러를 재경기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승하며 33년 만의 트로피를 얻는데 성공했다. 그러면서 UEFA컵에 진출했다. 19세의 어린 스트라이커 에밀 헤스키는 홈개막전 사우스햄튼과의 경기에서 홀로 2골을 넣어 승리를 책임졌고, 결승전에서 0-1로 지고있던 연장후반 13분 극적인 동점골을 넣으며 승부를 재경기로 끌고갔고, 힐스버러에서 열린 재경기에서도 연장전에 결승골을 넣으며 우승의 1등공신이 되었다.
- 토트넘 핫스퍼
지난 2시즌 UEFA컵 진출을 아쉽게 놓쳤던 토트넘은 이번에는 최소 1개의 트로피 혹은 5위 이내의 성적을 기대했으나 FA컵과 리그컵 모두 조기에 탈락했으며 10위라는 저조한 성적으로 프랜시스 감독 부임 후 최악의 성적을 냈다. 실망스러운 성적으로 인해 게리 프랜시스 감독의 거취는 물음표가 되었고, 팬들의 경질요구도 거세어져 갔다. 리그에서 두자릿수 득점한 선수는 아무도 없었으며 7골을 득점한 테디 셰링엄이 최다득점자일 정도로 빈곤한 공격력을 보였다.
- 리즈 유나이티드
시즌 개막 후 5경기 만에 구단주와 불화가 있었던 하워드 윌킨슨 감독은 맨유와의 홈경기에서 0-4로 대패한 뒤 8년 만에 경질되었다. 그의 후임으로는 재미없는 축구로 유명했던 前 아스날 감독 조지 그레이엄이었다. 그는 뇌물 수수 혐의로 아스날에서 경질당하고 자격정지 징계가 끝난 뒤 쉬고 있던 차였다. 로즈 더비 라이벌 맨유로부터 클럽 레코드인 450만 파운드에 합류한 리 샤프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으며 주포인 토니 예보아는 장기 부상으로 인해 6경기에 나오는데 그쳤다. 하지만 이안 하트의 기존 주전이었던 토니 도리고를 위협하며 급부상하기 시작했고, 팰리스로부터 합류한 나이젤 마틴은 1경기 빼고 모두 출장하여 19차례의 클린시트를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리즈의 수비는 38경기에서 38골 만을 실점했고 총 20차례의 클린시트로 모든 팀 중 가장 많은 무실점 경기를 펼쳤다. 그러나 이떄까지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소였던 28골에 그친 빈곤한 득점력이 성적에 발목을 잡았고 이 때문에 다음 시즌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를 영입하게 된다.
- 더비 카운티
5년 만에 1부리그에 올라온 더비는 복귀 첫시즌을 12위로 무난하게 마무리했다. 후반기 올드 트래포드에서 맨유에게 파울로 완초페의 데뷔전 데뷔골에 힘입어 3-2로 승리하는 이변도 연출했다. 그리고 102년 동안 경기했던 베이스볼 그라운드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냈고 다음 시즌부터는 프라이드 파크에서 경기하게 되었다.
- 블랙번 로버스
앨런 시어러를 떠나보냈다고는 하지만 전전시즌 챔피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개막 이후 11경기 무승으로 꼴찌로 추락하며 강등위기에 몰렸다. 이로 인해 레이 하포드 감독은 자진 사퇴했고 오랫동안 팀에 있었던 토니 파크스 코치가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 12경기 만에 리버풀을 3-0으로 꺾고 첫승을 올렸고 이경기를 기점으로 18경기에서 2패만 기록하며 강등권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크리스 서튼과 케빈 갈라허가 11골과 10골로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
- 웨스트 햄
오프시즌 첼시와 미들즈브러처럼 여러 외국인 선수들을 영입했다. 루마니아의 공격수 플로린 라두치오이우와 포르투갈의 윙어 파울로 푸트레가 이적생이었는데 루마니아인은 단 2골에 그쳤고 푸트레는 무릎부상으로 인해 단 9경기에 나오는데 그치며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결국 웨스트햄은 강등권을 전전하며 힘겨운 시즌을 보내야했다. 하지만 리오 퍼디난드가 주축으로 자리잡기 시작했으며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선발되기도 했고, 겨울에 데려온 폴 킷슨과 존 하트슨이 결정적일 때마다 득점해주며 웨스트햄을 잔류로 이끌어주었다.
- 에버튼
지난시즌 6위로 마치며 유럽 무대나 메이저 트로피를 대한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피터 존슨 구단주가 시즌 중도에 득점력이 좋은 윙어 안드레이 칸첼스키스를 피오렌티나로 팔고 조 로일이 데려오려던 선수들의 영입은 불허하는 막장 행보를 보이며 전반기 유럽대항전 진출권에 있던 순위는 겨울에 6연패를 당하며 급속도로 내려가기 시작했고, 3월 들어 조 로일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사임했다. 그 대신 주장이었던 데이브 왓슨이 감독 겸 선수 역할을 맡으며 남은 시즌을 보냈고 15위라는 저조한 성적으로 마감했다.
- 사우스햄튼
지난 5시즌 중 4시즌을 강등권 근처에서 순위로 마쳤고 지난시즌도 마지막날 간신히 강등권에 골득실에서 앞서 잔류하자 데이브 메링턴은 경질되었고 그레이엄 수네스가 신임 감독이 되었다. 그는 클라우스 룬데크밤과 에길 외스텐슈타드를 영입하였고 이 두명은 좋은 활약상을 보였다. 전반기 디펜딩 챔피언 맨유를 상대로 6-3 대승을 거둔 것은 시즌 최고의 장면이었다. 그러나 사우스햄튼은 이번에도 강등권에서 맴돌며 힘겨운 시즌을 보냈는데 개막 7경기에서 2무만을 거두다가 8번째 경기에서야 첫승을 신고했고 맨유전 승리 이후에는 20경기에서 승점 15점만을 기록하며 꼴찌까지 추락했다. 다행히 잔류로이드가 발동하며 강등권 경쟁팀이었던 노팅엄, 웨스트햄, 선덜랜드, 블랙번에 승리를 거두며 7경기에서 승점 15점을 쓸어담았고 최종전에서 빌라에게 0-1로 패배한 뒤 16위로 잔류했다. 간신히 잔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네스 감독은 경질의 칼날을 피할 수 없었고 리그컵에서 자신들을 꺾었던 3부리그 스톡포트의 감독 데이브 존스가 후임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그 유명한 알리 디아 사건이 나왔는데 이것은 그레이엄 수네스 항목을 참조하면 된다.
- 코번트리 시티
시즌 중반 론 앳킨슨 감독이 감독직을 내려놓고 단장직을 맡았으며 플레잉코치였던 고든 스트라칸이 감독직을 승계했다. 전반기 강등권에 있다가 1월 4연승으로 11위까지 올랐지만 다시 부진에 빠지며 최종전을 앞두고 19위로 떨어져 30년 만에 1부리그에서 강등될 위기에 몰렸다. 다행히 최종전 토트넘 원정에서 2-1 승리를 거두었고 선덜랜드와 미들즈브러가 최종전에서 승리하지 못하며 극적으로 17위 생존에 성공했다. 다만 행운이 따른 것이 미들즈브러가 승점 3점의 감점이 없었다면 영락없이 강등될 뻔했다. 디온 더블린이 14골을 득점하며 생존에 큰 지분을 차지했다.
- 선덜랜드
피터 리드 감독의 선덜랜드는 전반기 중위권인 11위로 마쳤고 홈에서 첼시를 3-0, 아스날을 1-0, 맨유를 2-1로 잡으며 인상적인 시즌을 보냈지만 후반기 급격한 부진에 빠지며 강등권 경쟁을 해야했고 최종전을 치르기 전 아슬아슬한 17위였으나 반드시 승리해야 했던 최종전 윔블던 원정에서 통한의 0-1 패배를 당했고 결국 안타깝게 1년 만에 강등당하고 말았다. 99년의 역사를 함께한 로커 파크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는데 다음 시즌 홈구장이 될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의 첫 시즌을 2부리그에서 보내야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말았다.
- 미들즈브러
100만 파운드 이상의 이적료가 발생했던 브라질의 미드필더 에메르송과 불과 직전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득점했던 이탈리아의 스타플레이어인 파브리치오 라바넬리를 영입하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라바넬리는 데뷔전이었던 리버풀과의 홈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3-3 무승부를 이끌며 화려한 데뷔전을 치렀고 전대회 합쳐 33골을 득점하며 환상적인 시즌을 보냈다. 보로는 다음 두 홈경기에서 웨스트햄에 4-1, 코번트리에 4-0 승리를 거두었고 에버튼 원정에서도 승리를 거두며 4위에 올라갔지만 곧바로 12경기 연속 무승에 빠지며 성적이 추락하기 시작했고 결국 크리스마스에는 강등권으로 떨어졌다. 게다가 블랙번과의 원정경기에서 선수 대부분이 독감에 걸려 경기에 나타나지 않은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잉글랜드 축구협회로부터 승점 3점 삭감의 징계를 받아 꼴찌까지 추락해버렸다. 보로는 이후 3월에 4연승을 거두며 강등권 탈출에 박차에 나섰지만 FA컵과 리그컵 양 대회 모두 재경기도 치르면서 결승까지 도달한 탓에 일정이 빡빡해져 선수들이 방전되기 시작하였고 결국 승점 3점의 징계가 끝까지 발목을 잡았다. 최종전 리즈 원정에서 승리할 경우 선덜랜드를 제치고 잔류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끝내 역전골이 나오지 않아 1-1로 무승부에 그쳐 19위로 강등당하고 말았다. 리그컵과 FA컵 모두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했으나 리그컵에서는 레스터시티에 연장에 재경기까지 가는 엄청난 접전 끝에 분패를 당했으며, 강등이 확정되고 맞이한 첼시와의 FA컵 결승전에서는 경기 시작 후 42초 만에 디 마테오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0-2로 패배해고 준우승에 그쳤다.
- 노팅엄 포레스트
개막전 코번트리 원정 3-0 승리 이후 12월 21일 아스날과의 홈경기에서 깜짝 2-1 승리를 거둘 때까지 16경기 연속 무승행진의 수렁에 빠지며 프랑크 클락 감독이 경질되고 스튜어트 피어스가 선수 겸 감독 직을 맡았다. 1월에 3연승을 거두며 1월의 감독을 수상하였고 잠시 강등권에서 빠져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데이브 바셋 감독이 3월에 오고 셀틱으로부터 피에르 반 후이동크가 합류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치고나가지 못하며 무승행진에 빠졌고 결국 꼴찌를 기록하며 1994년에 1부리그로 돌아온지 3년만에 2부리그로 강등당하고 말았다.
4. 개인 기록
4.1. 득점 순위
4.2. 도움 순위
4.3. 해트트릭
5. 개인 수상
5.1. 이 달의 감독상
5.2. 이 달의 선수상
5.3. 올해의 감독상
알렉스 퍼거슨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5.4. PFA 올해의 선수
앨런 시어러 - 뉴캐슬 유나이티드
5.5. PFA 영플레이어
데이비드 베컴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5.6. FWA 올해의 선수
지안프랑코 졸라 - 첼시
5.7. PFA 올해의 팀
[1] 디비전1 우승 포함시 11회[2] 2006년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사용된 38,419명 규모의 홈구장[감독대행] A B C D E F G H I J K L [플레잉코치] A B C D E F G H I [3] 2016년 런던 스타디움으로 이전하기 전 사용되었던 35,016명 규모의 홈구장[4] 원래 홈구장은 15,876명 규모의 플로 레인(Plough Lane)을 사용했었으나 1989년 힐즈브러 참사 이후 1990년에 모든 축구장을 좌석으로 바꾸라는 테일러 보고서의 발표가 있었는데 빈약한 재정 문제 때문에 구장 개조를 못하여 1991/91 시즌부터 플로 레인 대신 크리스탈 팰리스의 홈구장인 셀허스트 파크에서 홈경기를 치렀다.[5] 2005년 리코 아레나로 이전하기 전까지 사용했던 23,489명 규모의 옛 홈구장[6] 세인트 메리즈 스타디움 개장 이전 2000/01시즌까지 사용했던 15,200명 수용인원의 옛 구장이다.[7] 1997년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로 이전하기 전까지 사용된 22,500명 규모의 홈구장[8] 1997년 프라이드 파크 스타디움로 이전하기 전 사용된 18,300명 규모의 홈구장[9] 2002년 현재의 킹파워 스타디움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사용된 22,000명 수용인원의 옛 구장이다.[10]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였다.[11] FA컵 우승[12] 리그컵 우승[13] 선수들이 블랙번 로버스와의 경기를 독감으로 인해 뛰지 못하는 바람에 승점 3점 감점[14] 4골을 넣었다.[15] 6시즌 연속 수상, 공격수 최고 기록(티에리 앙리와 동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