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1999년
1. 개요
1999년 열린 프로야구 시즌.
팀당 133경기, 총 532경기를 치뤘다. 프로야구 양대리그제가 처음 도입된 시즌이다. 양대리그를 열리긴 했지만 다른 리그와의 경기도 있으며 동일리그끼리는 20경기, 다른 리그와는 18경기씩 치뤘다. 드림리그와 매직리그로 나뉘어졌는데 드림리그에는 현대, 두산, 해태, 롯데로, 매직리그에는 LG, 삼성, 쌍방울, 한화로 이뤄졌다.
'''역사상 최악의 타고투저 시즌'''으로 손꼽히고 있는데 쌍방울 레이더스의 대부진, 외국인 선수 제도의 도입으로 인한 웨이트 트레이닝 등이 그 원인으로 보인다. 이 해에만 30-30 클럽 가입자가 3명(이병규, 홍현우, 제이 데이비스)이나 나왔으며 20-20 클럽도 30-30 클럽 가입자 3명에 양준혁, 송지만, 신동주 3명을 더해 무려 6명이나 나온 역대급 타고투저 시즌이었다. 반대로 투수쪽은 2.17의 임창용과 2.54의 정민태를 제외하면 2점대 시즌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투수가 없었다. 이 해와 비견되는 타고투저 시즌으로 2014년 시즌이 있다.[1]
삼성 라이온즈의 이승엽은 시즌 54홈런을 쳤다. 오 사다하루의 기록에 1개 차로 타이 기록에 실패했다. 하지만 4년후 이승엽 본인에 의해 그 기록은 깨진다.
2. 정규시즌 최종순위
양대리그제로 치뤄진 첫 시즌인 만큼 이변이 많이 일어났는데 전년도 우승팀 현대 유니콘스와 준우승팀 LG 트윈스가 포스트시즌에 탈락한 반면 하위권에 있던 한화 이글스와 롯데 자이언츠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그리고 외환위기로 인한 모기업 부도 여파로 야구단 존속에 커다란 위협을 받고 있었던 해태 타이거즈와 쌍방울 레이더스는 전시즌보다 순위가 2계단이나 하락하며 2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특히 이 해의 쌍방울은 역대급 안습의 끝을 달렸는데 1998년 시즌에 김기태, 조규제, 박경완 등이 다른 구단으로 팔려나가면서[2] 핵심전력이란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으며, 그나마 남아있던 전력인 김원형은 1999년 7월 10일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상대 타자 장종훈의 타구에 얼굴을 직격, 광대뼈 함몰 부상을 입은 데다가 심성보도 당뇨병으로 기량이 갈수록 떨어지는 바람에 다른 구단 같았으면 2군에 있었을 선수들을 궁여지책으로 쓸 수 밖에 없어서 시즌이 진행될수록 패배만 차곡차곡 쌓여갔다. 바닥인 전력을 끌어올려 1996년과 1997년 쌍방울을 2년 연속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던 김성근 감독도 이 상황은 버틸 수가 없어서 결국 올스타전 직후 경질되고 김준환 감독 대행 체제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결국 쌍방울은 시즌 '''97패'''에 승률 0.224라는 매우 비참한 성적을 받고 마지막 시즌을 마감했다.
그나마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전해 준 선동렬과 이종범의 임대료로 근근히 연명하던 해태는 쌍방울에게 13승2무3패를 기록했지만 다른팀에게는 동네북신세로 전락, 승패 -9에 통합 7위로 주저앉았다.
전년도 우승팀 현대는 쌍방울이 승률자판기 역할을 한 탓이었는지 승률 5할대를 기록하고도 종합 순위 5위에 드림리그에서도 3위에 그쳐 가을야구에 실패했다. 시즌 막판까지 매직 2위 한화보다 승률에서 앞서 준플레이오프를 치를수도 있었으나 한화가 10연승하여 현대를 추월하는 바람에 결국 포스트시즌에 가지 못했다. 첨언하자면 같은 리그 팀끼리는 20경기였으므로 20×3=60, 다른 리그 팀끼리는 18경기였으므로 18×4=72. 오히려 인터리그 경기가 더 많았다. 이 시즌 매직리그에 속한 쌍방울이 기록한 최악의 성적이 드림리그에도 상당부분 영향을 미쳤던 셈이다. 드림리그 1위 두산은 쌍방울전에서 16승1무1패로 거의 전승에 준하는 상대전적을 기록했다.[3][4]
2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올랐던 LG 트윈스는 가장 먼저 20승에 선착했지만 투수력 붕괴로 매직 3위, 통합 6위로 추락하고 말았다. 마이클 앤더슨과 재계약을 포기한 가운데 지난해 다승왕 김용수를 마무리에 복귀시키고 최향남을 1선발로 구상해뒀지만 개막 전 부상당하는 바람에 지난해 3선발이던 손혁이 1선발이 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신인 김상태가 선발로 로테이션을 돌고 심재학을 투수로 전향시키는 무리수를 뒀지만 타고투저가 된 리그에서 버티지 못했다.[5]
한화 이글스는 정민철, 송진우, 이상목, 구대성 등 강한 마운드를 앞세워 3년 만에 가을야구에 성공했다. 여기에 데이비스와 로마이어의 외국인 타자와 장종훈, 이영우, 송지만, 강석천이 다이너마이트 타선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활약을 했다.
2년 연속 꼴찌를 했던 롯데 자이언츠는 호세와 마해영의 대활약과 김명성 감독의 지도를 앞세워 드림리그 2위를 했다.
OB 베어스에서 팀 이름이 바뀐 두산 베어스는 명칭에 대한 어색함 때문에 곤욕을 치뤘다. 하지만 팀 성적은 드림리그 1위, 최종 순위 3위로 2년 연속 한계단씩 상승하는 괜찮은 성적을 올렸다.[6]
지난해 우즈의 성공에 고무된 나머지 외국인을 타자로 뽑는 것이 유행이었다. 사실 이 해 성적은 도입 2년차에 접어든 외국인 선수의 활약 여부가 성적을 좌우했는데 호세의 롯데[7] , 우즈의 두산, 제이 데이비스와 댄 로마이어의 한화, 찰스 스미스의 삼성[8] 은 가을야구에 진출한 반면 가을야구 진출 실패 팀 중 외국인 선수가 성공한 팀은 트레이시 샌더스, 윌리엄 브릭스가 활약한 해태밖에 없었다.[9] 외국인 농사에서 반절만 성공한 팀은 현대 유니콘스[10] , 완벽하게 실패한 팀은 LG 트윈스와 쌍방울 레이더스였는데 이 세 팀은 모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LG는 주니어 펠릭스와 재계약하고 케빈 대톨라를 영입했지만 펠릭스는 나이 속이고 태업이 의심되는 모습에 대톨라는 3루를 본 적 없는데 3루수로 쓰겠다고 데려온게 문제였다.[11] 펠릭스와 대톨라는 합쳐서 22홈런밖에 기록하지 못하며 타팀의 외국인 타자 한 명만큼의 몫도 하지 못했다. 쌍방울은 외국인 선수를 쓰지 않던 지난해와는 다르게 LG에서 재계약을 포기한 마이클 앤더슨를 영입하고 제이크 비아노를 데려왔지만 둘 다 망했다.
3. 신인드래프트
한국프로야구/2000년/신인드래프트
4. 포스트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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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다른 시즌 보기
[1] 이 쪽은 30-30클럽은 없지만 4개 팀이 팀 타율 2할 9푼을 넘겼다.[2] 김기태와 김현욱이 현금트레이드로 20억에 삼성으로 이적할 때 전반기 66경기 동안 승률 3할을 유지한다는 각서를 썼다.[3] 롯데는 12승2무4패, 현대는 15승1무2패, 해태는 13승2무3패[4] 매직리그에선 삼성이 쌍방울에 15승5패, 한화는 14승6패, LG는 12승1무7패다.[5] 주니어 펠릭스와의 재계약, 김상호 현금 트레이드로 심재학의 자리를 지워버린 이 선택은 최악의 악수였다.[6] 드림/매직 전체 승률 1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예전처럼 단일리그로 했으면 한국시리즈 직행인데 양대리그로 1위와 다른 리그 2위와 4강전을 펼치고 이긴 팀이 한국시리즈 진출하는 방식인데 두산이 한화에게 지면서 한국시리즈에 좌절되고 만다. 양대리그에 피해 사례라 볼 수 있다.[7] 마무리로 데려온 마이클 길포일은 성적부진으로 퇴출됐지만 에밀리아노 기론이 대체선수로 성공했다.[8] 파트너였던 빌리 홀은 빠른 발만 강점일 뿐 나머지는 낙제점이었다.[9] 해태는 홍현우의 30-30과 장성호의 포텐 폭발, 양준혁의 영입, 정성훈의 가세 등으로 리그 최고 수준의 핵타선을 갖추고도 이강철과 이대진의 부재와 김상진의 위암 투병 끝에 요절 등으로 투수력 부재가 심각했다.[10] 에디 피어슨은 31홈런 109타점으로 제몫을 했지만 조 카날리는 기량 미달로 한 달만에 퇴출됐고, 대체자 브렌트 바워스는 이렇다할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11] 대톨라는 서용빈이 병역비리 혐의로 구속된 뒤 1999시즌 결장한 상황에서 구멍난 1루와 본 포지션 외야를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