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정치인)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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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의장'''
''당명변경''

'''제1·2대
이주영'''

제3대
김기현

'''경상남도''' '''정무부지사'''
''' 김태호 도정 '''
3대
강정호

''' 4대
이주영 '''

5대
이창희

'''대한민국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
제18대 전반기
이한구

'''제18대 전반기
이주영'''

제18대 후반기
장윤석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남 창원시 을)'''
제15대
황낙주

'''제16대
이주영'''

제17대
권영길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남 마산시 갑)'''
제17대
김정부[14]

'''제17·18대
이주영'''

''선거구 개편''
'''이주영'''[A]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선거구 개편''
'''이주영'''[A]

'''제19·20대
이주영'''

제21대
최형두

'''대한민국 제17대 해양수산부 장관'''
'''대한민국 제20대 후반기 국회부의장
이주영
李柱榮 | Lee Ju-young
'''
'''출생'''
1951년 9월 30일 (73세)
경상남도 마산시 완월동#
(現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완월동)
'''본관'''
광주 이씨
'''직업'''
변호사[1]
'''재임기간'''
제17대 해양수산부 장관
2014년 3월 5일 ~ 2014년 12월 24일
제20대 후반기 국회부의장
2018년 7월 13일 ~ 2020년 5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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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배우자'''
허영
'''자녀'''
아들 이재희, 딸 2명
'''학력'''
경기고등학교 (졸업 / 66회)
서울대학교 (법학 / 학사)
서울대학교 (법학 / 석사)
'''병역'''
공군 일병 소집해제
'''종교'''
천주교 (세례명: 라파엘)
'''소속 정당'''

'''의원 선수'''
'''5'''
'''의원 대수'''
'''16''', '''17''', '''18''', '''19''', '''20'''
경력 ||제20회 사법고시 합격
대법원 재판연구관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제16대 국회의원 {{{-1 (경남 창원 을)

경상남도 정무부지사 (김태호 도정)
제17대 국회의원 (경남 마산 갑)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한나라당 경남도당 위원장
제18대 국회의원 (경남 마산 갑)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제19대 국회의원 (경남 창원 마산합포)
제17대 여의도연구원 원장
제17대 해양수산부장관
제20대 국회의원 (경남 창원 마산합포)
국회 헌법개정특위 위원장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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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2.1. 장관 이전
2.2. 해양수산부장관
2.3. 장관 사임 후
2.4. 국회부의장
3. 소속 정당
4. 선거 이력
5. 논란
6. 여담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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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

2. 생애



2.1. 장관 이전


1951년 9월 30일에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완월동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서울고등법원 판사,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까지 지낸 후 변호사가 되었다. 이 동네 정치인치고는 드물게 마산고등학교마산상업고등학교 출신이 아니다.
이때부터 시작된 특이한 인연이 있는데 판사 시절 1984년 청주지방법원 형사단독재판장으로 있을 당시 공판검사가 초임 홍판표 검사였다. 그때 이주영은 성명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마침 홍판표 검사 이름 가운데 한자가 ‘판단할 판(判)’인데 칼도변이 들어간다. 이름 한자에 칼이 들어가는 것이 좋지 않고, 판표라는 발음도 어려워 내가 ‘판’을 ‘준’으로 바꾸라고 권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개명이 어려웠는데 이주영이 법원장에게 부탁해 개명 허가를 얻어주어 홍판표가 홍준표가 되었다고 한다.
서울고등법원 판사 재직 당시에는 김보은 양 사건의 항소심 재판을 맡았다. 의붓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딸이 자신의 남자친구와 함께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인데 살인 사건으로는 이례적으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라는 파격적으로 관대한 판결을 내리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는 훗날 가정 내 성폭력 문제에 대한 공론화의 계기를 마련하여 성폭력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경상남도 창원시[2]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 황낙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5년부터 2006년까지 김태호 경상남도지사 밑에서 정무부지사를 역임하였다.
2006년 김정부 의원의 당선 무효로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상남도 마산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3]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2. 해양수산부장관


[image]
박근혜 대통령 집권 후, 유독 구설수가 많던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이 결국 물러나고 그 후임으로 전격 발탁되었다. 2014년 2월 12일 장관에 지명되어 3월 6일 취임. 사실 아주 뜬금없는 인사는 아닌데, 정치인 이주영의 주요 후원처 중 하나가 바로 마산어시장 상인회이기 때문이다.[4]
[image]
이주영 장관이 전국구급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취임 이후 한달만에 터진 세월호 사건 당시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유족들을 위로하고 사태를 수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주영 전 장관 "팽목항 200일, 죄인 된 심정으로 임했다" 사고가 터진 날 이후부터 머리도 수염도 깎지 않아서 흡사 도인 같은 외모로 변했음에도 사표를 제출하고 수리하는 그해 연말까지 이를 계속 유지했다.[5] 국회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에 장관 자격으로 출석보고를 해야 했던 관계로 장발은 유지한 채 수염을 정리했다.
원래 이런 대형사고가 터지면 문책성 인사로 책임자가 사의를 표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주영 장관은 사고를 수습한 후 사의를 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고 기간 동안 사고대책본부가 있던 진도 팽목항에 계속 거의 살다시피했으며, 유가족들과 자주 접촉하며 사고를 수습하려 노력했기 때문에 본인의 보수적 정치성향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사고의 여파로 정부 및 정권을 거세게 비판하는 측에서조차 정작 주무부처 장관인 이주영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적었다. 심지어는 조국 당시 서울대 교수도 그의 행보에 인정했을정도. 초기엔 곧 사표가 수리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으나, 그의 진정성 있는 태도에 유가족회의서 오히려 그의 유임을 정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2014년 12월에 사임.

2.3. 장관 사임 후


2015년 초, 새누리당 원내대표직에 도전했지만 유승민에게 아쉽게 패배하였으며 2017년에 또다시 원내대표에 도전했으나 한선교 의원으로 단일화가 이뤄지며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에 다시금 도전했으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창원시 마산합포구 선거구에서 여당 단독후보로 공천되었으며 본선에서 당선되었다.
2016년 7월 3일 당대표에 출마했다. 그러나 이정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언론에서는 친박계(신박)으로 보나, 나라 망신이 터진 후 대통령 탄핵이 필요성이 있으면 제기하면 된다든가 새누리당/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의 목록엔 없는 점으로 보아 게이트 이전, 혹은 그 이후에 탈박인 것으로 추정. [6] 친홍계로도 분류되기도 하였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과거부터 인연이 있었고,[7] 19대 대선 때 홍준표 지지 선언을 하고 도와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선 낙선 후 홍준표 대표의 당 운영에 대해서 독선적이라며 가장 나서서 비판하기도 하여서 완전히 친홍으로 보기도 어렵다. 그러면서도 친홍과 비홍 사이의 중재에도 힘썼다. 협조할 것은 하면서도 비판할 건 하는 사이인 듯. 초, 재선 의원들이 계파색이 다소 옅은 의원으로 지목하였음으로 당내에서는 무계파로 보는 듯하다. 실제로 2018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선거 때는 본래 독고다이인 나경원, 친박에서 탈박한 한선교와 같이 중립진영을 표방하기도 했다.

2.4. 국회부의장


2018년 7월 12일, 원구성 협상에 따라 자유한국당 몫으로 돌아간 국회부의장 자리를 두고 같은 당 정진석 의원과의 당내 경선에서 승리를 거두어 같은해 7월 13일 본회의 투표를 거쳐서 정식으로 국회부의장으로 취임했다.
이주영 의원은 임기동안 다방면에 열정을 쏟고 훌륭한 결과를 이끌어낸 바 있는데 특히 야당의원이자 초선위원시절 권력형 비리 저격수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당시 동방금고 불법대출 사건과 관련된 사설 펀드에 권력실세들이 연관되어 있다는 ‘정현준 게이트’를 비롯하여, 주가조작으로 권력형 비리의 결정판이라 불린 ‘이용호 게이트’, 특검이 실시되어 대북 비밀 송금의 실체가 드러난 ‘대북비밀송금게이트’,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 세 아들의 부정재산축적사건 등 정권의 심장부를 겨눈 공격의 전면에 나서 야당의 대표 공격수 역할을 수행하였다.#
또한 신한국당이 1996년 15대 총선에서 안기부의 예산을 가지고 선거 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던 사건에서 당시 강삼재 전 한나라당 의원과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이 국고 등의 손실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이주영 의원은 이 사건의 변론을 담당하여 예산횡령이 아님을 밝혀내 무죄판결을 이끌어 내었다.#
전관예우금지법 마련에도 일익을 담당하였는데 당시 이주영 의원은 사법제도개혁특위 위원장으로서 민의를 바탕으로 한 국회에서 최초였던 사법개혁을 주도하여, 법조일원화 제도를 도입해 일정 기간(10년) 이상의 경력자만이 법관이 될 수 있도록 했고, 법관과 검사 등은 퇴직 전 근무기관의 관련 사건을 퇴임 후 1년 동안 수임하지 못하도록 전관예우금지법을 마련하는 성과를 냈다.#
정치 외로는 대아프리카외교를 대표 활동 내역으로 들 수 있는데 2013년 국회아프리카새시대포럼을 결성하며 2020년까지 70차례에 걸친 아침 세미나를 개최하는등 아프리카에 대한 국가차원의 관심 제고를 촉구하며 남다른 열정을 보인 바 있다. 또한 한-아프리카 재단법을 통과시켜 아프리카 연구, 투자의 허브 역할을 할 한-아프리카 재단을 외교부 산하 기관으로 승격시키는 등 국회 안팎에서 한국과 아프리카의 가교역할에 매진하였다.#
아울러 이 의원은 청소년 활동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며MRA(세계도덕재무장운동)와 스카우트 활동에 열정을 쏟았다. 특히 2023세계잼버리대회 한국유치 위원장을 맡아 4년마다 열리는 청소년 최대의 축제인 잼버리를 전북 부안 새만금으로 유치한 것이 최대의 업적으로 꼽히며 이에 아태 스카우트 최고 공로훈장을 받는 영예를 누린 바 있다.#
또한 가정 붕괴가 가속화되며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을 염려, 건강한 가족문화를 정착시키고자 가정의 달에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 부부라는 의미에서 5월 21일을부부의 날로 지정하였고 이를 법정기념일로 제정하는데 앞장서기도 하였다.#
2020년 3월 5일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김태호 전 경남지사, 경남을 지역구로 삼는 4선 김재경 의원(경남 진주시 을), 재선 김한표 의원(경남 거제시) 등과 함께 컷오프 되었다.
컷오프 직후 공정한 경선의 기회조차 배저해버린 기준 없는 공천에 반발, 납득할 수 없다며 무소속 출마를 시사했으나 이후 대의를 위해 불출마 선언하였다.
이후 본업인 변호사로 복귀하였다. 변호사 사무실은 국회의원 사무실을 그대로 쓰고 있다.

3.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95
정계 입문

1995 - 1997
합당[8]

1997 - 2012
합당[9]

2012 - 2017
당명 변경

2017 - 2020
당명 변경

2020
합당[10]

2020 -
당명 변경

4.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창원 을)

38,970 (16.19%)
낙선 (3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창원 을)

'''41,729 (44.13%)'''
'''당선 (1위)'''
'''초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창원 을)

40,046 (37.8%)
낙선 (2위)

2006
상반기 재보궐선거 (경남 마산 갑)

'''26,255 (49.69%)'''
'''당선 (1위)'''
'''재선'''[11]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마산 갑)

'''47,357 (71.95%)'''
'''당선 (1위)'''
'''3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창원 마산합포)

'''57,035 (68.82%)'''
'''당선 (1위)'''
'''4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창원 마산합포)

'''54,054 (65.25%)'''
'''당선 (1위)'''
'''5선'''[12]

5. 논란


  • 2015년 8월 일부 변호사들이 딸이 외부 공고 없이 단독 채용 절차로 네이버 사내 변호사로 채용되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
  • 2019년 9월 27일 국회 대정부질문 정치분야에서 이주영 국회부의장이 문희상을 대신해 의사진행을 맡고 있었는데, 자유한국당의 긴급 의총 요구로 정회를 선언하였다. 원래 정회는 국회의 중요한 의사결정이기 때문에 의장이 단독으로 정회할 수 없으며 여야 교섭단체와 합의한 이후에만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이후 문희상 의장이 돌아와 위와 같이 독단적인 의사결정을 넌지시 비판하는 발언을 하였다.

6. 여담


  • 의외로 바른미래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조경태와 함께 합류하면 좋은 국회의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아무래도 세월호 참사 당시 그의 행보 등을 보면 기존 범친박들과는 달랐는데다가, 그의 경력 등을 생각해보면 의외가 아니긴 하다.
  • 아들 이재희도 변호사이며, 법무법인 명재 대표변호사로 있다. # # [13]
  • 이명박 시절부터 이진복과 함께 부마항쟁 관련법안에 참가했던 인물로, 문재인 때는 박근혜가 없애버린 동행명령권을 다시 복구하는 법안을 내놓기도 하였다. #


7. 둘러보기


'''국회의원 지역구 및 정당 관련 둘러보기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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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대 국회의원 임기가 만료되자 다시 본업으로 복귀했다.[2] 현재의 창원시 성산구 선거구.[3] 마산, 진해, 창원이 합쳐지면서 예전에 쓰던 합포구 명칭에 마산이 붙게 되었다.[4] 의원 사무실부터가 시내 쪽이 아닌 해안도로변 어시장 바로 옆에 있다.[5] 재미있게도 2019년 조국 사태 당시에는 이와 반대로 심재철 의원과 함께 청와대 앞에서 '''삭발'''을 하였다. #[6] 다만 탄핵 절차의 하자 지적을 위한 논의에 참여한 적은 있었다. [7] 이 둘은 1984년 같은 검찰에서 일할때 호흡을 맟췄고, 홍판표에서 홍준표로 개명할수 있게 도와준것도 이주영 본인이다.[8] 개혁신당과 신설 합당[9] 신한국당과 신설 합당[10]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11] 전임자 김정부 의원직 상실[12] 제20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13] 상술된 채용논란을 보면 딸 한명도 변호사인걸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