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도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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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동계
친김영삼계 | YS계'''

<colbgcolor=#003990> '''형성'''
<colbgcolor=#ffffff>1982년
'''해체'''
1997년 ~ 1999년[1]
'''수장'''
'''김영삼'''
'''정치적 이념'''
자유보수주의, 자유민주주의, 반공주의
'''경제적 이념'''
경제적 자유주의
'''주요 정치인'''
최형우
김동영
박관용
김무성
정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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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민주당
통일민주당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해체''

1. 개요
2. 명칭의 유래
3. 활동
4. 구성
5. 동교동계와의 관계
6. 주요 인사[2]
7. 관련 문서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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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영삼 前 대통령의 직계 정치세력을 의미하는 표현이며, 2020년 현재로선 '''국민의힘비박계의 단군 할아버지'''격의 계파이자[3] 노무현이 원래 관련되어있던 계파이기도 할 정도로 현재 좌우 안가리고 발이 넓게 걸쳐진 정치세력이다. 현재로서는 너무 오래된 계파이나 김무성, 김영춘, 정병국, 이성헌도 상도동계 소속이었다.

2. 명칭의 유래


김영삼이 살아 생전에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4]에 거주했기 때문에, 1980년대 들어서 언론에서 상도동계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김영삼은 1950년대 정치에 입문해서 1970년대 부터는 민주화를 외치는 야당의 중진의원이자 대통령 후보급으로 성장했지만, 당시에는 김영삼계 혹은 김영삼의 호를 따서 거산(巨山)계라고 했지 상도동계라는 표현은 쓰이지 않았다. 경쟁관계인 동교동계 역시 마찬가지로 1970년대에는 김대중계 혹은 김대중의 호를 따라서 후광계라고 했지 동교동계라는 표현은 쓰이지 않았다.
상도동계 혹은 동교동계라는 표현은 신군부(하나회)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김영삼, 김대중과 그 직계 정치인들을 모조리 정치활동규제로 묶어서 제도정치권에서 추방하면서 생겨난 신조어이다. 졸지에 거리로 내몰린 이들은 재야 세력들과 함께 민주화 투쟁에 나섰는데, 독재정권의 언론통제에 묶여서 김영삼, 김대중의 이름을 언론에서 직접적으로 쓰기는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언론사들이 이리저리 돌려서 쓰다가 각자의 서울시 내 자택 소재지에서 따온 상도동계, 동교동계라는 명칭이 등장했다. 이렇게 거주지+계 명칭은 임시방편이고 직관적이지도 않으므로 신군부 퇴진 이후에 등장한 정치세력들은 친노, 친문, 친박과 같이 +중심적 인물의 성씨로 짓는 것이 일반적이다. 계파를 일컫는 '계'라는 용어도 여전히 사용되나 신군부 이전처럼 손학규계, 이재명계 등 중심 인물의 성명+계의 형태로 회귀했다.

3. 활동


이들은 군사독재 정권 시기에 일치단결해서 김영삼의 집권과 민주화를 위해서 뛰었다. 3당합당으로 집권당으로 변신한 이후에도 변함없이 김영삼에 대한 충성심을 발휘해서, 민주자유당 내에서 소수파의 한계를 딛고 결국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했다.
김영삼이 임기 막판 외환위기로 5%라는 사상최악의 지지율[5] 로 퇴임 하자 단일한 정치세력으로서의 상도동계는 와해되고, 구성원들은 각자 살길을 찾아 흩어진다. 2020년 현재 정치권에 상도동계의 기치를 내걸고 활동하는 현역은 없다.
현재는 지지를 철회했지만, 김덕룡과 김영삼의 둘째 아들 김현철 등, 원조 상도동계 인사들 상당수는 2017년 대선 당시에 문재인 지지선언을 하기도 했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까지도 김영삼 대통령 및 상도동계가 한나라당의 막후에서 끼치는 영향력은 여전히 강대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김영삼과 매우 껄끄러운 관계인 박근혜의 계파인 친박이 보수계 정당을 장악해 이질감이 강해졌고, 역으로 민주당계 정당은 김대중 시대까지는 상도동계와 물과 기름처럼 거리가 있었지만 2010년대의 친노, 친문과 상도동계는 노무현이 김영삼에 의해 발탁됐다는 점이나 PK 연고 계파라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상도동계 자체가 정치지형에서 실질적 영향력은 거의 사라진 상태라 유명인사가 한 손 보태는 이상의 의미는 별로 없는 상태다.

4. 구성


상도동계의 보스는 당연히 김영삼이고, "좌동영 우형우"라고 김동영(1936년생, 1991년 작고)과 최형우(1935년생)가 중간보스급이었다. 그외에 서석재(1935년생, 2009년 작고), 신상우(1937년생, 2012년 작고), 박관용(1938년생), 김덕룡(1941년생), 강삼재(1952년생)[6] 그리고 비교적 늦게 가담한 서청원(1943년생) 등이 중진급이었다. 김무성(1951년생), 정병국(1958년생)의 경우 상도동계에서 연령이 적은 세대에 속하고, 막내는 김영춘(1962년생), 박재호(1959년생)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상도동계의 대다수는 호남 출신 김덕룡, 경북 출신 유성환, 충청 출신 서청원, 이신범, 경기 출신 최기선 등 일부를 제외하면 김영삼과 같은 부산, 경남 지역출신들이 많았다. 당장 위에 언급된 중진급을 보면 김동영-경남 거창, 최형우-울산, 서석재-경남 창원, 강삼재-경남 마산 등으로 군사정권시기부터 부산 경남 지역을 근거로 활발히 활동했고, 1980년 5공화국 시기에 가면 상도동계가 야당내에서 부산, 경남 지역을 사실상 독점하게 된다.[7] 문제는 3당합당으로 이들이 통채로 보수세력에 편입되면서 영남에는 민주당계 세력이 사실상 사라지는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8][9]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서 김영삼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한 김덕룡[10]이성헌만이 호남 출신이다.
상도동계는 3당합당 이후 거의 대부분이 민주자유당으로 들어가는데, 여기서 김영삼과 친분이 생겨 14대 대선의 민자당 경선 때 김영삼을 지지한 일부 민정계, 공화계 정치인들과 신한국당 잔류파 민정계, 공화계 정치인들을 상도동계의 별칭인 민주계에서 따와 신민주계라고 하기도 한다. 신박과 비슷한 개념이다. 대표적으로 강재섭, 김형오, 이상득[11], 최병렬, 박희태, 박창달, 김기춘, 허주 김윤환 등이 속했다. 상도동계의 첫 단독 정당이 통일민주당이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김영삼 대선 경선 승리의 '킹메이커' 역할을 한 셈.[12]
이름을 올리는 민정/공화계 출신 신민주계 의원으로는 양정규, 변정일, 현경대, 하순봉, 김영일, 신경식, 박우병, 김기배, 나웅배, 이자헌, 박명환, 박주천, 유흥수, 김진재, 남평우, 이한동, 김종호, 서정화, 이세기, 이해구, 이웅희, 정동성, 김인영, 오세응, 이만섭, 김영광, 이성호, 전용원, 곽정출, 이승윤, 이상희, 정창화, 박세직, 권익현, 이춘구, 서정화, 김영구, 김중위, 이민섭, 김일윤, 한승수, 함종한, 김종하, 나오연, 김태호, 이강두, 강용식, 김용태, 강경식, 정재철, 이택석, 전석홍, 최재구, 장영철, 박명근, 박범진, 정영훈, 정시채, 조영장, 양창식, 김한규, 남재두, 이영문, 윤한도, 박종근, 이상배, 김명섭, 서상목, 이재환, 이상재, 박경석, 김효영, 지연태, 이응선, 최돈웅, 최각규, 강성재, 권정달, 김길홍, 이경재, 조진형, 성무용, 이환의, 강현욱, 고명승, 박시균, 유용태, 김식, 조남조, 민태구, 이진삼, 손주환, 박성범, 이윤성, 윤원중, 최창윤, 황윤기, 이국헌, 이상현, 이사철 등이 있다.[13][14]
한편 상도동 직계로 분류되진 않지만 1996년 15대 총선을 기해 김영삼이 정계로 끌어들이며 그의 밑으로 들어와 정치인으로 입문한 사람들은 '''YS키즈''' 라고 불린다. 손학규, 김문수, 이재오, 이인제[15], 이회창, 이명박, 홍준표, 전 창원시장 안상수, 이방호, 정의화, 심재철, 박형준, 김태호, 전 인천시장 안상수 등이 대표적이다.[16] 이들은 김영삼의 당에 그대로 남았던 사람이 대부분이라 대다수는 신한국당~한나라당 당적을 가졌다.[17] (본 문단에 있는 인물들은 YS키즈로는 분류되나, 상도동계로는 분류되지 않는다.)
노무현과 그의 보좌관 출신인 안희정은 YS키즈라고 잘 부르지 않는데, 노무현은 1988년에 영입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민주자유당 합류 거부 후, 꼬마민주당을 거쳐 김대중의 세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문재인의 경우는 김영삼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으나, 그가 친노의 직계로 분류되고 특히 김영삼과 동향인 거제도 출신이라는 점에서 완전히 연관성이 없다고도 할 수는 없다.
원외로 확대하면 방송계에서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도 범 상도동계로 분류되며 이득렬 전 MBC 사장, 홍두표 전 KBS 사장도 한 때 범 신민주계로 분류되기도 한다. 한국갤럽 창업주인 박무익도 범 민주계로 볼 수 있고, 현재 리얼미터 대표이사 사장으로 있는 이택수도 신한국당에 몸을 담고 있었으므로 범 민주계라고 볼 수 있다. 한샘학원 설립자인 서한샘 전 의원도 범 상도동계라고 할 수 있다.
재계에서는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현대백화점의 정장현 전 의원도 범 신민주계로 볼 수 있다.[18] 그 외에 원내의 노승우 전 의원, 허재홍 전 의원, 백남치 전 국회 건설교통위원장, 김봉조 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 김동욱 전 국회 재정경제위원장, 정재문 전 의원, 김찬우 전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홍재형 전 국회부의장도 범 상도동계로 분류된다 .
문민정부 시대 국무위원 중에서는 이영덕 전 국무총리, 이홍구 전 국무총리, 이수성 전 국무총리, 고건 전 국무총리와 임창열 전 재정경제원장관 겸 경제부총리, 이병태 전 국방부장관, 이경식 전 경제기획원장관 겸 경제부총리, 정재석 전 경제기획원장관 겸 경제부총리, 한승주 전 외무부장관, 공로명 전 외무부장관, 유종하 전 외무부장관, 권오기 전 부총리 겸 통일원장관, 김인호 전 한국무역협회 회장(청와대 경제수석), 박재윤 전 통상산업부 장관, 김두희 전 법무부장관, 안우만 전 법무부장관, 김종구 전 법무부장관, 최상엽 전 법무부장관, 김동진 전 국방부장관, 조해녕 전 내무부장관이 범 신민주계로 분류된다고 볼 수 있다. 이양호 전 국방부장관, 김우석 전 내무부장관, 강운태 전 내무부장관, 권영해, 김덕 등 전 국가안전기획부장도 포함된다. 그 외에는 오명 KAIST 이사장, 공안검사 출신인 정경식 전 헌법재판관,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있으며, 특이사항으로 배우 출신의 강신성일 전 의원도 김영삼에게 영입되었다.

5. 동교동계와의 관계


군사독재 정권 시절부터 민주화 이후까지 정말 오랜 기간동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던 동교동계와는 그야말로 애증(愛憎)의 관계였다. 두 세력은 독재정권 시기 때론 경쟁하고 때론 협력하면서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이끌었으나, 1987년 13대 대선을 앞두고 양김씨가 야권후보단일화에 실패하면서 영원히 갈라서게 되었다. 이후로는 십수여년간 서로 철천지 원수마냥 처절하게 싸웠다.
그러나 이제는 양쪽 다 서로 모시던 보스가 각자 대통령도 한 번씩 한 다음에 세상을 떠났고, 이제는 다들 늙어서 대부분이 정계에서 은퇴했기 때문인지 그냥저냥 모여서 친목회도 하는 등 무난하게 지내는 듯 하다. 정치세력으로선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고, 잔존 세력도 김영삼 세력은 한나라당 당권을 이회창, 이명박이 차례로 장악하며 뺏기고[19][20][21], 이명박 이후로는 강삼재, 김덕룡과 둘째 아들 김현철 등이 문재인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동교동계 역시 열린우리당 분당, 노무현 탄핵사건 등 이후 야당 내 주도권을 점차 상실하였고, 대부분 고령으로 인해 정계를 은퇴했거나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자유한국당 등으로 분산되기에 이른다.

6. 주요 인사[22]


  • 김동영: 김영삼의 왼팔로 아래의 최형우와 함께 좌동영, 우형우로 불렸다. 1991년 간암으로 작고.[23]
  • 최형우: 상도동계의 좌장. 김영삼의 오른팔.[24]
  • 서석재: 前 총무처 장관[25]
  • 김명윤
  • 김수한: 제 15대 국회 전반기 의장[26]
  • 김덕룡[27]
  • 서청원[28]: 상도동계 출신 친박 좌장인데, 현재는 상도동계 후배들인 김무성, 정병국, 김영춘 등의 인물들이 모두 서청원을 상도동계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사실상 상도동계에서 제명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김영삼 대통령 서거 2주기 때 김무성 등의 현역 상도동계 인물들은 행사내내 모두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서청원은 행사 30분 전에 미리 가서 짤막하게 인사하고 바로 갔다.
  • 강삼재[29]: 상도동계 중에서는 김무성과 비슷한 연령대로 연령대는 젊은 편이었지만 정치 경력이 길어서인지 의외로 상도동계에서 중간 정도의 서열에 위치한 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학시절 친구로, 김영춘과 더불어 몇몇 상도동계 정치인들이 문재인을 지지하게 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 김정수
  • 황낙주: 제 14대 국회 후반기 의장.
  • 박관용: 제 16대 국회 후반기 의장.[30]
  • 박종웅[31]
  • 문정수: 前 부산광역시장
  • 김무성: 한때 새누리당 당대표이자 옥새런 사건을 일으킨 그 김무성이 맞다. 당시에는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정치인 비슷한 이미지였고 김영삼을 꽤나 가까이서 보좌했다.
  • 최기선[32]: 김영춘, 박재호와 마찬가지로 한나라당 탈당 이후 잠시 자유민주연합(...)에서 머물다가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으로 입당했다. 이 직후에는 민주당계 정당에 계속 잔류했으며, 이후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이 바뀌고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에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을 역임하다 2018년 2월 지병으로 별세하였다.
  • 이성헌
  • 이종혁
  • 정병국: 원조 소장파인 남원정의 일원이다.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시에 이명박을 지지해 친이계가 되었다.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맡기도 했으며, 2011년 이명박 정부 시절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친이계 중진이며, 유승민과 같이 바른정당 - 바른미래당 - 새로운보수당을 같이 이끈 친유계 중진에 속한다. 바른정당 초대 대표를 지냈으며, 바른미래당을 창당할 때는 동교동계 소속인 박주선, 이동섭과 협력하기도 했다. 같은 상도동계 출신인 손학규가 바른미래당 대표를 하는 시절 손학규 대표의 실책에 대해서도 일단 기다려보자고 했으나, 손학규 대표의 독선적인 모습을 보이자, 직접적으로 손학규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여 사실상 친유계친안계의 편을 들었다.[33] 바른미래당바른정당 출신들이 탈당하여 만든 새로운보수당자유한국당과 통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현재는 국민의힘 청년정치학교의 교장이다.
  • 김영춘[34]: 지속적으로 상도동계의 막내로 언급되었고, 김영삼도 실제로 상당히 김영춘을 총애하고 아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당시의 상도동계 직계로써는 드물게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 창당에 동참했다. 당시 김영삼이 직접 불러서 뭐하러 힘들게 열린우리당으로 이적하냐고 묻자 "이 당민주정의당처럼 변하는데 제가 여기 남아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후에는 계속 민주당계 정당 소속으로 활동하다가 2017년 6월 문재인 정부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 박재호: 김영춘과 함께 상도동계 직계의 막내로 통하며, 통일민주당-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 소속이었다가 새정치국민회의로 이적했고, 현재도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 노병구
  • 이재근
  • 정재문
  • 황병태

7. 관련 문서


  • 김영삼
  • 청구동계
  • 동교동계 - 라이벌로 매우 유명했으나 양쪽이 이제 은퇴한 지금은 서로 화해한 상태로 알려져있다. 일부는 더불어민주당 혹은 바른미래당으로 들어가서 다시 하나가 되었다.
  • 친이 - 김영삼이 이명박을 정치인으로 만들어준 장본인이며, 이명박을 밀어준 사람이기도 한데다 김덕룡[35], 정병국, 김현철 등의 이명박을 지지했던 인사들은 김영삼 세력이기도 했으며, 17대 대선 당시에는 대부분의 상도동계 직계들이 이명박을 지지했다.[36] 거기다가 김영삼도 처음부터 직접 이명박 지지 선언을 했을 정도로 상당히 연관이 깊은 사이다.[37][38]
  • 친노 - 김영삼이 노무현을 정치인으로 만들어준 장본인이라, 노무현의 정치행적은 동교동계와 가장 관련이 깊지만 오히려 뿌리는 상도동계와 매우 연관이 깊다. 실제로 고향 또한 김영삼, 노무현, 심지어는 노무현의 후계자라 평가받는 문재인도 모두 PK 출신이며 3당 합당 이전에 김영삼에게 정계 입문을 권유받은 적이 있지만 거절했었다. 안희정의 경우에도 정계 입문은 김영삼 밑에서 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과도 연결된다.
  • 친유 - 정병국을 비롯한 당 내 상도동계 출신 정치인들 중 유승민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면서 친유에 합류한 경우가 많다. 애초에 상도동계로부터 파생된 친이 출신 인사 중 정병국 외에도 류성걸, 김희국, 조해진, 박정하, 김은혜, 이성권, 이종훈, 신성범, 정운천 등이 친유로 분류된다.
  • 친박 - 서청원이 대표적으로 친박에 편입되었으며, YS 키즈를 통틀어서 이완구, 이인제, 김문수 등의 일부 인물들도 박근혜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는 중이다. 다만 한나라당으로 계승된 상도동계에서도 김영삼이 박근혜를 싫어했기 때문인지 이쪽으로 간 경우는 적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탈한 인물도 나타나고 있다. 김무성은 친박에서 금방 이탈한지라 탈박도 아닌 비박으로 불린다.[39]
  • 국민의힘 - 상도동계 정치인 중 한 명인 김무성의 계파인 친무가 전부 국민의힘 소속이고 정병국 등의 상도동계[40]가 존재한다
  • 더불어민주당 內 일부 계파 및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지지선언을 한 상도동계 직계 인물들 - 김현철[41], 김덕룡, 강삼재 등의 대부분의 상도동계 원로 그룹이 대선에서 문재인을 지지했으며, 김영춘 등도 현재 더불어민주당 현역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42] 일부는 범 친문계로 분류되기도 하나, 현역 상도동계 직계 인사들이 현재는 줄어들었고[43] 현역 상도동계도 친문이 아닌 기타 무계파에 위치한 경우가 많아 친문계와 연관이 깊지는 않다. 게다가 19대 대선 당시에 문재인 지지선언을 했던 상도동계 인사들은 모두 지지를 철회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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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7년 외환위기로 문민정부가 사실상 끝장나면서 구심점이 사라진 상도동계는 와해되게 되고 이후 이회창계, 친이계, 손학규계 등으로 흩어지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문단 참고.[2] YS키즈를 제외한 상도동계 직계[3] 일단 비박계를 이루는 친무의 수장인 김무성친이의 수장인 이명박 모두 상도동계나 YS 키즈로 분류된 인물이고, 친무, 친이의 주요 인물들이 상도동계에 속하는 인물에 해당된다. 친유의 경우도 수장인 유승민친박 좌장에 속한 인사에 해당되었기에 구 친박계가 포진하고 있었지만, 정병국 등 상도동계, 친이, 소장파 인사들이 합류하게 되고, 상도동계, 친이, 소장파 등이 친유 내 지분의 상당수를 차지하게 되면서, 사실상 이념적인 조상은 상도동계이다. 심지어 강경우파로 분류되는 홍준표친홍도 범상도동계에 속한다.[4]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동에 거주하였다.[5] 훗날 박근혜가 탄핵되기 전까진 역대 최악의 지지율이었다.[6] 강삼재는 연령대에 비해서 상도동계 내에서 서열은 높았는데 1981년에 국회에 입성해 정치를 시작했기 때문이다.[7] 반대로 호남지역은 동교동계가 완전 독점한다.[8] 부산, 경남 지역에서 3당합당에 반대하면서 김영삼과 갈라진 이기택, 노무현, 김정길(1945) 등은 애초에 상도동계가 아니다. 이기택은 1960년대부터 야당에서 활동한 중진급으로 친김영삼이긴 해도 김영삼의 부하는 아니었고(수평적 관계), 노무현은 김영삼의 추천과 상도동계의 조직력으로 국회의원이 되긴 했지만 상도동계보다는 YS가 데려온 재야진보세력에 가까웠다. 김정길도 야당 시절부터 상도동계 주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9] 1990년 삼당합당 이후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부산,경남 지역에서 민주당계 정당 후보들의 득표력은 잘해야 10%대 초중반이었다. (참고로 부산 인구의 대략 10% 정도가 호남 출신으로 추정되며, 김대중의 1987년 대선 부산 지역 득표율이 15%였다.) 2000년대 이후 30~40%대 까지 올라온 것은 바로 부산지역 486들과 시민운동가들이 친노 간판을 쓴 것과 민주노총과 공업지대를 중심으로 활발한 노동운동 덕분에 진보정당/민주당계 정당으로 노동자계급표가 결집하면서부터다. 그리고 민주당계 정당이 영남 공략을 위해서 나름 공을 들인 점과 한나라당이 너무 안일하게 대처한 점도 있었다.[10] 김영삼과 같은 김녕 김씨이다.[11] 이명박의 둘째 형 이상득이 맞다.[12] 반면 김종필, 박태준, 박철언 등은 김영삼을 직접 밀지 않거나 심지어 비토하다가 자유민주연합으로 행한다. 새한국당을 거쳐 새정치국민회의로 간 이종찬 전 국정원장의 경우도 있다.[13] 여기서 경남 거제 출신의 김기춘을 제외하면 핵심은 대부분 TK 출신들이다. 김기춘으로 유명해졌지만, 이들은 92년 대선 기간 김영삼을 지지하면서 "우리가 남이가"식의 영남지역주의, 패권주의 의식을 대놓고 보여주었다. 물론 하순봉, 김영일, 신경식, 유흥수, 김진재, 이상희, 권익현, 강경식, 이강두, 나오연, 곽정출 같이 PK 출신도 제법 있었다.[14] 하나회 숙청으로 유명한 김영삼이지만 살아남은 이들도 있다. 권익현, 이춘구, 박세직, 고명승은 하나회 멤버였으며, 아예 고명승은 12.12 가담자였음에도 면죄받았다. 이상재는 언론통폐합과 K공작을 주도했던 보안사 출신의 민정계 실세였으며, 권정달 또한 신군부에 속했다. 강용식, 박성범은 땡전뉴스를 제작했다. 이사철도 군사정권 시절의 공안검사 출신이었다. 육군 제2작전사령관 출신인 박세환 전 재향군인회장도 범 신민주계로 분류될 수가 있다.[15] 합류 시기로 보면 박재호, 김영춘, 정병국과 비슷하기에 상도동계로 볼 수 있으나 당적을 자주 바꿔 동교동계와 청구동계에도 걸쳤기에 상도동계 직계로 보지는 않는다.[16] 다만, 이회창은 이후 정권말기에 YS 인형 화형식을 저지르고, 한나라당에서 김영삼을 사실상 내쫓아서 그런지 사이는 극악이었다.[17] 손학규는 후에 탈당해서 민주당 계열로 갔으나 바른미래 소속이 되면서 다시 범 보수정당 소속이 되었다.[18] 김석원의 아버지인 김성곤이 이승만과 박정희 때에 여당 정치인이었다. 김우중 또한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대우그룹을 창업했고 박정희와 전두환 때 그룹을 많이 성장시켰지만 김영삼 정부와도 큰 친분을 유지했으므로 범 신민주계로 봐도 무방하다.[19] 일부는 새로운 당권을 가진 세력으로 그대로 들어가서 중책을 맡았다. 친이계로 들어간 정병국, 이재오나, 친박계로 들어간 김무성, 서청원이 대표적인 예이다. 근데 김무성이 친박으로 간 것은 자의반 타의반이고 그 기간도 얼마 되지 않는데다가 범친이로 분류되기도 하니 상당히 애매하다.[20] 다만, 박근혜한테는 상도동계 핵심 세력을 뺏겼다고 볼 수는 없다. 실제로 강삼재와 김덕룡, 차남 김현철 등 상도동계 일부는 문재인을 지지했고 일부는 바른미래당으로 흡수되었다.[21] 김영춘과 박재호는 이회창이 당권을 잡고 있던 시절에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으로 이적했다.[22] YS키즈를 제외한 상도동계 직계[23] 제 1 정무장관을 노태우 정부 시기에 지냈다. 김동영 장관이 임기 중에 사망하면서 장관직은 최형우 의원이 승계.[24] 제 1 정무장관을 노태우 정부 시기에 지냈다. 김동영 장관이 임기 중에 사망하면서 장관직은 최형우 의원이 승계. 이후 문민정부에서 내무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1997년에 중풍으로 쓰러졌고, 이후 정계를 떠났다.[25] YS가 통일민주당 총재를 지내던 시절에는 사무총장을 지내기도 했고, 문민정부 시기에는 총무처 장관을 지냈다. 전직 대통령 4000억 비자금설을 언론에 흘렸고, 민정계의 반발 끝에 장관직에서 물러났다.[26] 현재 미래통합당 상임고문 중 신영균, 정재철과 함께 최연장자이며, 상임고문단 단장을 맡고 있다. 아들인 김성동 前 의원도 미래통합당 소속이다.[27] 문민정부 시기 정무 1 장관을 2번 역임. 2004년 이래로 민추협 이사장직을 맡고 있으며, 이명박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생기는데 공을 세우기도 했다.[28] 문민정부 시절에 김덕룡의 후임 정무 1 장관이었고, 이후 2002년에 한나라당 대표, 2008~2012년에 친박연대 대표를 지냈다. 20대 국회 기준 최다선(8선) 의원.[29] 문민정부 시절에 여당(민주자유당) 사무총장 역임.[30] 문민정부 시절에는 대통령비서실장과 정치특보를 지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발의될 당시 국회의장이었다.[31] 3선 국회의원으로, 16대 국회 후반기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 역임. 김영삼 대통령 퇴임 이후에는 YS의 대변인 역할을 했다.[32] 前 인천광역시장.[33] 이게 사실 당내에서 파란이 안 클 수가 없는 것이, 정병국 의원은 바른미래당 내에서 최다선 의원이다. 심지어 당의 두 축 중 하나인 유승민 전 대표도 정병국 의원보다 의원 선수가 적다는 뜻.[34] 문재인 정부의 첫 해양수산부 장관.[35] 특히 김덕룡의 경우, 이재오, 이상득, 박희태, 최시중과 더불어 친이 6인회의 구성원이기도 하다.[36] 상도동계의 수장인 김영삼이 처음부터 이명박 지지 선언을 했던 만큼 이 영향도 상당히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가 당시 신한국당-한나라당에서 일부 민주당계 정당으로 이동한 인사들을 빼고는 대부분의 상도동계들이 이명박과 친한 사이이기도 했다.[37] 다만, 김덕룡과 김현철은 18대 대선에서 문재인과 박근혜가 나왔을 때는 문재인을 지지했다.[38] 김영삼, 김덕룡과 대부분의 상도동계들은 이명박을 지지했으나, 강삼재는 예외적으로 이회창을 지지했다.[39] 허나, 김무성은 박근혜의 요청에 의해 당 대표였던 시절 박근혜를 보좌했지만, 이후 2009년경, 박근혜와 전혀 안 맞는다고 생각해서 박근혜를 멀리하기 시작했고, 이 때부터 친박이 아닌 범 친이계 비박으로 분류된다. 즉, 김무성의 경우는 친박에서 금방 이탈한 셈이다.[40] 정병국은 친이계, 친유계로도 동시에 분류된다.[41] 다만, 김현철의 경우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면서도 더불어민주당이 김대중, 노무현 정신만 강조하고 민주화에 공을 세운 김영삼은 강조하지 않는다면서 불만을 표시하며 더불어민주당 주류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다가 결국 2019년 1월 탈당하였다.[42] 김영춘의 경우 상도동계 직계로, 타 상도동계 직계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통일민주당-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 당적을 가지고 있었으나, 훗날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민주당계 정당(열린우리당)으로 입당한다. 이후 현재까지도 더불어민주당에서 활동하는 중이다.[43] 당장에 현재 남아있는 상도동계중 최고 원로라고 볼 수 있는 김덕룡부터도 사실상 정계를 은퇴한 거나 다름없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