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평가

 



1. 긍정적인 면
1.1. 행정적 평가
1.1.1. 행정명령 남발?
1.2. 경제적 평가
1.2.1. 개요
1.2.3.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
1.2.5. 노동 시장
1.2.6. 인프라
1.2.7. 증권시장
2. 부정적인 면
2.1. 외교적 평가
2.1.2. 난잡한 이슬람권 정세
2.1.3. 대ISIL 공습
2.1.4. 혼란한 시리아
2.1.5. 흔들리는 대아시아 외교 정책
2.1.6. 심각한 외교안보팀의 불화
2.1.7. 외교정책에 대한 총평
3. 한국과의 관계
3.1. 여론조사


1. 긍정적인 면


자신이 핵심과제로 밀어붙인 오바마케어, 부자 증세, 동성애 관련 이슈에서 의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모두 관철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이 과정에서 민주당을 버리고 공화당과 협력하기도 하는 등의 추진력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전임 행정부가 남긴 파탄 직전의 경제를 정상 궤도로 돌려놓았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실제로 오바마 정권 아래 달러는 안정을 되찾고 대공황급 막장까지 가지 않고 비교적 수습이 잘됐다. 문제는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분명히 회복세에 접어들었으나, 미시적인 영역까지 회복을 느끼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는 지적이 있지만, 미국의 영향력은 이미 조지 W. 부시 정권 때 무리하게 중동에 개입하고 유가를 기하급수적으로 올리면서 약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유럽 연합과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이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바마 권한 밖의 일도 적지 않았다. 또한 오바마 정권은 전 정권이 망쳐놓은 미국의 대외 이미지를 회복시켰고,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유럽 연합 회원국 사이에서 지지도가 상당히 높다. 심지어 프리즘 폭로 사건에서 미국 정보기관이 메르켈 수상의 핸드폰을 해킹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도, 독일 내 오바마의 지지도는 쉽게 회복했고,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이후로는 더 높아졌다. 미국을 잘 믿지 못하는 프랑스에서조차 오바마 대통령의 인기는 굉장히 높으며, 에마뉘엘 마크롱도 오바마의 인기를 이용해 그가 보낸 독려 메시지를 선거용으로 요긴하게 사용했다.
IS가 준동하는 중동에 제한적인 공습만 가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2018년 현재, 어느 쪽이 더 현명한 선택이었는지는 너무나도 분명해졌다. 중동에 지상군을 파병했다면 IS를 몰아내는데 수백명~수천명의 미군이 죽고 앞으로도 몇 년은 저항세력을 소탕하기 위해 미군이 주둔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오바마 행정부의 간접 개입은 최소한 미국이 전에 벌여왔던 삽질보다는 훨씬 효율적인 것이었다.
개전 초기에 온갖 욕을 먹던 이라크군은 공습으로 IS의 진격이 뜸해진 사이[1] 황금사단을 주축으로 재편하고 이란과 페쉬메르가, 연합군과 협력하면서 바이지, 티크리트, 팔루자, 라마디, 모술을 탈환하여 이라크 내의 IS를 몰아냈다. 좀 걸렸을 뿐 미군 사상자를 최소화하면서 허수아비 군대였던 이라크군을 키워낸 셈이다. 2017년 7월 10일, 펜타곤 내부자도 오바마의 정책 덕분에 IS를 격파하고 모술을 탈환할 수 있었다고 밝히면서 오바마의 정책이 옳았음을 인정했다.#
또한 미국의 셰일 가스 혁명으로 유가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에 위협을 느낀 사우디아라비아가 매우 낮은 가격에 석유를 공급하면서 유가가 90달러에서 30달러까지 곤두박질쳤다. 덕분에 원자재에 의존하던 러시아베네수엘라 같은 반미 국가들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특히, 러시아는 부시 정권부터 고유가에 힘입어 성장하여 미국을 위협했는데, 셰일가스 혁명이 서방의 러시아 제재와 맞물리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오바마가 운 좋게 반사이익을 챙겼다고 볼 수도 있지만, 애초에 유가 하락의 시작이 미국의 셰일 혁명 때문이고, 오바마 행정부가 셰일 가스를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지원한 부분이 있기에 받아먹었다고만 보기에는 힘들다.
오바마는 집권 초기부터 셰일 가스를 석탄의 대체 자원으로 규정했고, 재생 에너지 산업과 함께 지원을 확대시켰다.### 오바마 정권 아래에 미국은 러시아를 누르고 최대 천연가스 생산국이 됐고, 석유탄화수소 생산은 2013년에 사우디아라비아를 능가했다.# 또한 원유 생산도 그의 임기 동안 80% 이상 늘어났고, 2011년에는 전년대비 800,000 배럴 이상 증가하여 미국 역사상 최대의 증가율을 보였다.# 2015년에는 의회의 도움을 받아 오랫동안 미국에서 생산된 원유 수출을 제한한 법을 수정했고#, 덕분에 국제 시장에 원유 공급이 높아졌으며, 수요 감소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견제가 맞물려 유가는 거의 반토막 수준까지 내려갔다. 다만 셰일가스 혁명은 당시 고유가와 미국 정부의 지속적인 저금리 정책이 맞물려 탄생했기 때문에, 셰일가스 혁명으로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같은 반미 국가들에게 경제적 타격을 준 정책을 전적으로 오바마 혼자의 공으로 볼 수는 없다.
역사적인 쿠바와의 수교, 파리 기후 협약 같은 평화적인 업적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다만 이란 협상의 경우, 그걸 못마땅해한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역대급 트롤링이 있었다.
국민들의 행정능력 신뢰도와 언론과의 관계지수가 갈수록 증가하는 듯하다. 갤럽조사에 의하면 2016년 4월에는 지지율 50% 회복, 2016년 5월에는 55% 까지 지지율을 회복했다. 2번째 텀이자 말기의 대통령 치고는 상당히 높은 지지율이다. 어떤 언론 분석에서는 공화당 대선주자들 막말 파티 덕분에 반등 효과도 있다는 듯하다. 여러 여론조사 업체에서 분석한 결과를 총괄 분석하는 RCP 보고서에서도 오바마의 지지율은 2016년에 49.8%까지 회복했다.# 2014년 미국 중간선거[2]에서 대패하여 양원을 공화당한테 넘겨준 걸 고려하면 레임덕에 빠진 대통령이 이 정도까지 지지율을 회복한 건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다.
특이하게도 반대 성향인 트럼프가 선거인단 과반으로 당선된 이후 지지율이 더 올라가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단순 지지율뿐만 아니라 '그래도 참 괜찮은 대통령이었지' 라며 재평가하는 횟수도 크게 늘고 있다. 이 추세는 오바마가 백악관을 떠난 뒤로도 이어져서, 2018년 1월 YouGov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오바마의 지지율은 50%를 기록했다.# 특히, 그의 이민 정책, 의료보험 개혁, 외교 정책, 사회 정책 등에서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2018년 2월 15일 발표된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바마의 지지율은 63%로 집계되어 그의 임기 마지막 지지율이었던 59%보다 증가했음을 시사했다.# 60년대 이후 대통령 직을 수행한 인물들 중에서도 지지율 4위를 기록했다. 비록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오르는 현상은 역사적으로도 자주 관측됐으나, 오바마의 지지율은 다른 대통령들보다 더 가파르게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 의회방송인 C-스팬이 역사가와 정부 전문가 91명을 상대로 시행해 2월 17일 공개한 역대 미국 대통령 평가에서 12위를 차지했다.출처 모두에 대한 평등한 정의(justice)' '도덕적 권위'는 전체 43명의 대통령 가운데 각각 3위, 7위를 받으며 매우 높은 점수를 받았다. '시민 소통'(10위) '경제 관리'(8위)도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의회와 관계' 부분에서는 역대 39위로 낮은 평가를 받았다.

1.1. 행정적 평가



1.1.1. 행정명령 남발?


이 항목은 원래 부정적 평가 밑에 서술되어 있었으나, 임기를 마친 시점에서 사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판단되어 수정 후 긍정적 평가로 옮겼습니다.
전반적으로 대통령 개인의 평가는 좋은 편이었지만 공화당 우세의 하원과 상원 무시하고 대통령 행정명령을 강행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다만, 공화당 의원들도 오바마 대통령과 대화조차 시도를 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협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오바마가 행정명령을 남발했다고 말하기에는 전임자들에 비해서 그 양이 적었다. 오바마는 총 276개, 조지 W. 부시는 291개, 빌 클린턴은 306개, 로널드 레이건은 381개, 짐 카터는 320개로 최근 미국 대통령 중에서 오바마보다 행정명령을 적게 발령한 대통령은 116개의 행정명령을 발령한 조지 H.W. 부시다. 조지 H.W. 부시와 짐 카터는 집권 1기만 마친 대통령임을 생각하면 오바마는 상당히 알뜰하게 행정명령을 사용했다.[3] 게다가 후임자 도널드 트럼프가 첫해에 53개의 행정명령을 강행하고, 대부분이 논란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오바마의 행정명령 남발을 옛말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오래전부터 헌법보수주의자들에게 대통령의 파격적인 행정명령 발행은 비판 거리가 되어왔다. 아무리 취지가 옳은 행동이라도 민주국가인 이상 입법부, 사법부, 그중에서도 민주주의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의회와의 협의가 되어있어야 하는데, 그게 결여되었다는 점이 가장 문제시되고 있는 편. 덕분에 항상 언행을 조심했던 오바마 대통령도 이런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 최대한 의회와 협력하려고 노력했고, 결과적으로 행정명령을 상대적으로 적게 발행한 것으로 분석된다.

1.2. 경제적 평가



1.2.1. 개요


버락 오바마의 경제 정책은 미국 연방 정부의 적자를 줄이고, 고소득 가정의 세금을 적당히 늘려 건강 보험을 개혁했으며, 소득 불균형을 줄인 것으로 규정할 수 있다. 그의 첫 임기(2009~2013)는 2007년 부터 시작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를 극복하는데 집중됐다. 상당한 액수의 부양책과 금융 규제 강화를 통해 대침체의 문제점으로 부각된 금융사를 구제하는 한편 미래에 있을 또다른 거품을 막기 위해서 상당한 제재를 가했다. 그의 두 번째 임기(2013~2017) 동안은 첫 임기의 정책의 결실로 경제가 정상 궤도로 돌아오고 실업률도 떨어졌다. 덕분에 그는 전임 부시 정권 때 입법된 감세 법률 중 고소득 가정에게 적용된 부분이 추가 입법없이 자동 만료되도록 방치하여 조항의 자연소멸을 유도하였으며, 예산 자동 조정제를 돌입해 연방 정부의 적자를 금융위기 전으로 돌려 놓는데 성공했다. 주식 시장과 시장 이윤은 그의 임기 동안 신기록을 계속 이루었고, 물가 인상과 금리는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1.2.2. 2008년 금융위기


오바마는 2009년 1월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시작된 미국 역사상 최악의 금융위기라는 난제를 풀어야 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이전의 다른 경제 불황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금융의 중심에 있는 은행이 시스템의 모순으로 파산하고 있었고, 이런 은행들의 잘못된 관행으로 생긴 빚은 도미노 효과를 불러와 미국 가정 전체가 피해를 입고 있었다. 즉, 여태까지 미국이 황금기라고 자화자찬했던 금융 호황의 일부분은 단순한 버블이었으며, 이 버블이 터지자 누구도 걷잡을 수 없는 금융위기가 터진 것이다.#
선임 부시 대통령은 이미 7,000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돈을 풀어 파산위기의 회사들을 구제했으나, 3,6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1달 간격으로 80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있었고, 구제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금융회사들이 파산하고 있었다. 여기서 오바마는 갈림길에 놓인다. 똑같이 금융위기를 겪고 있던 유럽연합의 각 국가들은 긴축정책을 펼치고 있었고, 공화당 의원들 뿐만 아니라 민주당 의원 일부도 긴축 정책만이 해결이라고 백악관에 압력을 가했으며, 워싱턴포스터와 뉴욕타임스를 포함한 대부분의 언론사들도 부양책보다는 긴축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기고문을 실었다.
끝내 오바마는 7,870억 달러의 추가적인 돈을 시장에 공급하기로 결정하고 ARRA(American Recovery and Reinvestment Act)를 2009년에 의회의 도움을 받아 통과시킨다. 민주당에서는 전적으로 지원해주었으나 공화당은 상원 의원 일부만이 지지했다. 미국 의회 예산정책처(CBO)의 분석에 의하면, ARRA는 GDP 성장률과 실업률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발표했다. 실제로 무디스와 IHS Global Insight의 분석에 따르면, ARRA는 160만~18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지켜냈으며, 부양책이 끝날 때까지 약 25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하지만 CBO에서는 무디스의 분석은 매우 보수적으로 진행됐다고 평했고#, 이들의 자체 분석에 따르면, ARRA는 2009년 하반기에만 25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실업률을 2.1% 줄였으며 GDP 성장률은 3.5% 증가율을 보였다.# ARRA는 2014년까지 고용률 증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시기는 없다고 평가됐다.
결국 CBO의 분석처럼 오바마의 경제 부양책은 실업률을 크게 감소시켰고, 미국의 GDP 성장률은 2차 세계대전 이후 NATO 회원국 사이에서 가장 큰 격차를 보이며 성장하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OECD에서도 오바마의 부양책 덕분에 미국이 긴축을 외치는 유럽연합을 따돌리고 더 빨리 금융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던 이유로 지목했다. 그러나 2010년 4월 실시된 미국 비즈니스 협회(NABA)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70% 이상의 국민들이 ARRA 정책으로 일자리가 늘지 않은 것 같다고 응답했다. 즉,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미국은 분명히 빠르게 회복하고 있었으나, 미시적인 부분까지는 그 여파가 도달하지 않고 있었다는 뜻이다.
금융사와 함께 오바마는 고용에 영향이 큰 자동차 업계의 구제에도 관심을 보였다. 오바마는 자동차 업계의 성장률이 너무 느리다며 추가적인 구제 활동을 펼쳤고, 일시적으로 GM의 60% 지분을 미국 정부가 인수하여 대대적인 개편에 나섰다.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오바마의 이런 정책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자동차 연구 센터(CAR)의 분석결과에 따르면 오바마의 정책은 263만 명의 일자리를 지켰고, 총 1,050억 달러의 손실을 막을 수 있었다. 2016년 기준으로 자동차 생산량도 회복하여 금융위기 이전보다 230만 대를 더 생산하고 있는 중이다. 오바마의 자동차 산업 혁신 계획이 성공을 거두자 2012년 미국 대선 당시에 공화당 대통령 후보 밋 롬니까지 본인이 대통령이었어도 오바마처럼 행동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바마가 자동차 업계를 구제한 덕분에 자동차 기업의 파산으로 생길 수 있는 제2차 경제 위기를 막았고 그로 인해 생길 잠재적 재정 적자도 막았다는 평을 받았다.
심지어 오바마는 IT산업 육성에도 적극적인데다가 신경을 많이 써서 유튜브, 라이엇 게임즈,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하게 힘썼다.

1.2.3.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


부양책과 동시에 오바마는 금융 관리법을 대대적으로 개혁하여 새로운 규제를 도입했다. 2010년 7월 21일 미국 정부는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을 통과시켜 모든 연방 금융감독기관들과 거의 모든 분야의 금융 시스템을 개혁하게 된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은 금융 안정성과 소비자 보호를 크게 향상시켰고#, 연준이사회의장 재닛 옐런은 신용도와 경제 성장률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고 크게 금융 회복력을 키웠다고 발표했다.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으로 탄생된 대표적인 기관이 바로 소비자금융보호국(Consumer Financial Protection Bureau)이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의 국장이었던 리처드 코드레이(Richard Cordray)는 금융개혁법에 명시된 권한을 이용해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한 금융사들을 고발하거나 벌금을 징수했고, 징수한 벌금 120억 달러를 2천9백만 명의 미국 국민들에게 배분할 수 있었다.# 덕분에 CFPB는 소비자를 금융사로부터 효과적으로 보호했다는 평을 받았지만, 반대로 금융사들로부터는 월권을 행사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코드레이는 사임했다고, 트럼프는 믹 멀바니(Mick Mulvaney)를 대행 국장으로 임명했다. 멀바니의 취임 이후로 CFPB의 집행 속도가 느려졌다는 평이 많아졌으며, 애매한 영역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공화당은 법안 통과 이전부터 개혁을 반대해왔고, 상원에서 3명의 공화당 의원만 찬성하여 필리버스터를 겨우 막을 수 있었으며, 다수의 공화당 의원들은 지속적으로 금융개혁법의 폐지를 시도했다. 마침내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 일부 조항을 폐지하는데 성공했다.#


1.2.4. 의료보험 개혁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포괄적으로 의료보험을 제공한다는 내용 때문에 대부분 오바마 케어가 국가부채를 늘렸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오바마 케어는 복잡했던 의료 관련 법들을 정리하여 미래에 있을 연방/주 정부의 지출을 줄였을 뿐만 아니라, 미국 상위 5%에 세금을 부과하여 재정을 확보하였다.# 미국 의회예산정책처(CBO)에서 여러 번 오바마 케어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2년에서 2020년 사이에 약 2천억 달러에 이르는 지출 절감을 가져올 것이라고 발표했다.# 프리미엄 증가율도 오바마 집권기 동안 계속해서 완화됐다. 2000년에서 2005년 사이에 프라이엄 증가율이 69%였는데 비하여, 오바마 케어 실행 이후 2010년에서 2015년 사이에는 27%만 증가했다.# 2017년 프리미엄 증가율은 22%였으나 정부 보조금도 같이 증가하여, 오바마 케어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인구 중 70%에 이르는 국민들이 한 달에 75달러 이하로 의료보험을 지불할 수 있게 됐다.#
비록 공화당의 지지를 받지 못해서 대통령이 무리하게 강행했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오바마 케어는 보수 계열 연구기관인 Heritage Foundation에서 만들었던 의료보험 법안을 인용해서 만들었으며, 무엇보다 2012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밋 롬니가 매사추세츠 주지사로 재직할 동안 통과시킨 "롬니케어"와 많이 유사하다.# 공화당은 오바마 케어 도입 이후 계속해서 폐지하려고 2017년까지 약 60번 이상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1.2.5. 노동 시장


민간인 고용 수치는 2009년에서 2016년 사이에 약 7% 증가하여 1천만 명 이상의 민간인들이 직업을 찾았다.# 실업률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10%까지 올랐으나, 오바마 정권 아래에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고, 2016년에는 4.7%까지 감소하여 금융 위기 이후 이전으로 돌려났다. 무엇보다 체감실업률을 측정하는 U-6 수치[4]도 17.1%까지 올랐다가 9.2%로 줄었다.# 그러나 노동력 인구비율은 83%에서 81%로 줄어들었고, 25~54세 인구의 고용률도 75%에서 78%로 오르기는 했으나 금융 위기 이전 수치인 80%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2014년에서 2015년 사이에는 실질 임금이 5.2% 증가하여 약 $2,800 올랐고, 이는 소득 분포 전체에서 골골로 증가하여 괄목할 성장을 이뤘다.

1.2.6. 인프라


오바마는 소득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서 중산층을 위한 일자리 창조에도 관심을 기울였고, 결과적으로 이를 간접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낙후된 인프라 복원에 집중한다. 미국의 고속도로, 국도, 일반도로, 전철, 기차 등은 오랫동안 보수되지 않은 덕분에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고, 이는 공화당/민주당 할 것 없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부상했다. 실제로 미국 고속도로의 안전과 질을 책임지는 Highway Trust Fund는 거의 메마른 수준으로 10년 넘게 방치되어 있었고, 이 때문에 피해를 입고 있던 각 지방 정부와 사업가들의 불만은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결과적으로 미국 연방 의회는 이례적으로 초당적인 지지를 얻어 "아메리카 지상 운송 복원법(Fixing America's Surface Transportation Act)"을 통과시켜, 5년 동안 총 3,050억 달러에 이르는 돈을 인프라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비록 오바마가 당초 원했던 4,780억 달러보다 훨씬 못 미치는 예산이었지만, 양원 모두가 공화당한테 넘어간 2015년에 이룬 업적임을 생각하면, 오바마가 의회와의 소통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예시로 오바마는 공화당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그들이 원하는 금융 규제 완화와 같은 항목을 법안에 포함시켰다.

1.2.7. 증권시장


오바마의 부양책 도입 이후로 기업이윤은 2016년 4분기까지 튼튼한 상태를 유지했고, 2012년 1분기에는 GDP 기준으로 10.8%를 기록해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달러 기준으로는 2014년 4분기에 1조 7710억 달러를 기록해 최고치를 경신했다.### S&P500 기준으로 2016년에 2,204.72를 기록해 오바마가 임기를 시작한 2009년 최저치 676.53에서부터 약 226% 증가했고#, 다우존스 기준으로 2013년에 14,253.77를 기록하여 금융위기 이전으로 회복시켰고, 2016년 12월에는 19,974.62를 기록하여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다.#

1.3. 우주 경쟁


오바마는 집권 1기 시절부터 항공우주산업에 관심을 보였고, 미국이 다시 우주 경쟁을 선도할 수 있게 만들고 싶어 했다.### 그의 전임자 부시 대통령도 우주 경쟁에 관심을 보이고 여러 개혁을 시도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달의 사람을 보내어 달을 개척하는 미션이었다. 하지만 오바마는 독립기관을 세워 NASA의 달 개척 미션이 경제적/과학적 시점에서 실용적인지 검토했고, 검토 결과 NASA의 목표는 예산을 초과하고 스케줄에도 뒤떨어져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후 오바마 행정부는 달 개척 미션을 포기하고 새로운 목표를 세우게 되는데,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화성과 소행성 탐사다.[5]
문제는 NASA가 특정 미션을 추진할 때는 단독으로 모든 것을 계획하고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회사와 타국가와의 협력을 필요로 하는데, 달 개척과 달리 화성과 소행성 탐사는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기에 협력 자체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오바마가 추진한 정책이 바로 우주항공산업 민간회사 육성이다. 본래 민간회사 육성은 2006년에 도입됐지만, 금융위기와 맞물려 예산이 부족해지자 미국 정부에서 지원을 확대하여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한다.[6] 결과적으로 NASA는 보잉과 함께 차세대 우주 발사 시스템을, 록히드 마틴과는 오리온 우주선을 개발하고 있는 중이다.
2015년에는 상업우주법안(Commercial Space Launch Competitiveness Act)을 통과시켜 민간회사에서 본인들이 우주에서 회수한 물체를 소유할 수 있게 만들었고, 국제우주정거장도 2024년까지 유지시킬 수 있도록 예산을 확보했다.# 상업우주법안 통과 이후, 민간투자 액수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서 2015년에만 투자된 액수가 2004년부터 2014년까지 투자된 10년 치 투자 액수를 뛰어넘을 정도였다.
그러나 오바마는 민간회사 육성, 화성과 소행성 탐사, 그리고 우주 안보를 제외한 영역에 대한 예산 삭감을 진행하여 순수과학 분야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했다는 비판이 존재하며, 오바마가 아니었어도 항공우주산업은 발전했을 거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또한 상업우주법안 통과로 '천체를 국가가 소유할 수 없다'는 우주조약을 위반했다는 비판도 있다.

2. 부정적인 면



2.1. 외교적 평가


"And so Mr. Obama, as Mr. Bush, as Mr. Clinton, as Mr. Cameron, as Mr. Blair, need a very short (crash) course. INTENSIVE (crash) course though, in realities of how the world works; ESPECIALLY ON HOW THE ISLAMIC WORLD WORKS."

오바마 대통령은 부시, 빌 클린턴, 데이비드 캐머런, 토니 블레어처럼, 매우 간략하지만 '''철저하게 집중적인''' 벼락공부가 필요합니다. 실제로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가에 관해 말이죠; '''특히 이슬람권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가 말입니다.'''

- 마이클 F. 슈어 (Michael F. Scheuer), 전직 CIA 오사마 빈 라덴 전담팀장

오바마는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 파리 기후 협정 체결, 이란 핵협상 타결[7] 등의 업적을 세웠다. 하지만 오바마 역시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전문적인 외교사안에 국무부보다 국방부, CIA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특히 아프간, 파키스탄 및 기타 아랍-중동 문제에서 외교관리들과의 적극적인 협업은 자신과 견해를 공유하는 소수의 핵심측근에만 한정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공들인 아시아 재균형 정책은 동남아시아에서만 불안정한 성과를 거두었고 대중외교에서도 중국과의 불필요한 긴장고조를 초래했다는[8][9] 비판을 받는다. 그리고 아랍의 봄과 그 이후 지역 정세 관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전문가들의 질타를 받고 있기도 하다.사방에서 코너 몰린 美 외교

2.1.1. 프리즘 폭로 사건


[image] [10]
2013년 6월 공개된, 오바마의 이미지를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사건. 여기에다 오바마케어까지 잡음을 일으키면서 중도성향의 지지층 이탈을 불러와 오바마의 지지율은 40% 아래로 내려갔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조지 W. 부시 수준의 지지도가 나왔다는 거다. 관련기사.[11]
프리즘 프로젝트를 시행한 것은 조지 부시이지만 오바마는 본인 입으로 직접 프리즘 프로젝트를 '''강력하게''' 옹호한 바가 있으며, 뿐만 아니라 오바마는 스노든을 구속하기 위해 각국에 압력을 넣기까지 했다.
2014년에는 지지율이 아슬아슬했으나, 2015년에는 미국 경제가 회복 추세로 접어들면서 상승하고 있다.
직접적인 연관은 모르지만 이슈가 제법 컸는지 애국법이 2015년 6월에 만료되자 국가안보국(NSA)의 미국 시민들에 대한 무차별적 통화내역 수집을 대폭 제한하는 ‘미국 자유법’을 의회가 통과 시켰다. 이후 오바마가 확인 서명을 해서 쐐기를 박았다.
더 이상의 상세한 정보는 해당 문서 참조.

2.1.2. 난잡한 이슬람권 정세


"오바마는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래 전쟁을 수행한 대통령"

- 뉴욕타임스[12]

2012년 시리아 내전에서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이 합의를 무시하고 화학무기 사용을 명백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조처도 하지 못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공군력만으로도 개입하려했으나 UN 표결에서 러시아와 중국이 반대를 하였고 미 의회에서도 부결되었으며, 심지어 믿었던 영국마저 시리아 내전 개입을 거부했다. 2009년 취임 전후해 벌어진 가자 전쟁에 이어 4년도 안 되어 또 터진 2012년 11월 가자지구 폭격에 따른 국제사회의 팔레스타인 승인은 덤.[13]
2년 뒤에 뒷목을 부여잡을 일이 또 하나 터졌다. 바로 2014년 중순에 발발한 이라크 내전. 그냥 내전도 아니고, 테러와의 전쟁보다 '''더 강력한''' 시즌 2다. 시아파수니파의 피로 피를 씻는 보복 상잔, 쿠르드족의 꿍꿍이속에 더해 드디어 괴물이 탄생하였다.[14]
그해 6월 29일 수립을 선언하여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깽판을 치고 있는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레바논을 비롯한 중동은 물론 서방등 세계 여러 국가에 마수(魔手)를 뻗치고 있다. 당장 레바논 바로 아래에 있는 국가가 이스라엘. IS는 또 유엔 평화유지군이 관할하는 이스라엘·시리아 접경 지역 골란고원까지 진출했다. 2014년 9월 파이낸셜타임스는 "IS의 검은 깃발을 단 무장 세력이 이스라엘 국경 1㎞ 이내에서 출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오바마는 8월 이라크 지역 공습을 승인했으며, 뒤이어 9월 시리아로 공습 확대를 지시했다.
이미 미국과 협상을 통해 핵 프로그램을 폐기한 상황에서 미국과 유럽이 개입해서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린 리비아는 세속주의 세력 VS 극단주의 세력의 내전으로 국가 막장 테크를 타고 있고, 쿠데타로 군부가 정권을 잡은 이집트 또한 러시아로 관계를 갈아탔다. 2014년 9월 리비아의 정국이 나락으로 치달아 이집트에까지 불똥이 튈지도 모르게 되자 이집트는 진지하게 리비아에 군사 개입을 고려했고(영어 사이트), 마침내 한달 뒤 리비아 내전에 개입했다.

2.1.3. 대ISIL 공습


초반에는 대IS 공습에 대한 비판이 많았으나 2015년을 기준으로 IS의 돈줄이었던 석유 생산 지역을 수복하여 IS의 경제적 타격을 주더니, 임기가 끝날 시점에 IS가 점령했던 지역의 반 이상을 수복시켜 괄목할만한 성적을 이루었고, 이 정책은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재사용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이 문제는 '''지상에서 개입을 안 하는게 최선'''이라는 전문가/분석가의 수가 적지 않다. 그렇다고 공습이 효과가 있냐하면, 공습의 효과는 오히려 떨어졌지고 있다는 보도가 계속되고 있다. 각종 항공작전이 '돈 처먹는 하마'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은 덤. IS에서 공습이 시작되면 산개하는 등, 대응 전술을 발달시키고 있으며 근본적으로 공습만으로 적을 저지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2014년 8~10월의 공습은 어느 정도 효과는 보았고, 몇몇 지역에서 IS를 밀어내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10월 들어서는 한계가 나타나고 있는데 공습이 집중된 지역에서는 IS를 격퇴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은 다시 IS의 공세에 노출되고 점령당해서 IS의 세력은 여전히 확대 일로에 있다. IS는 연합군의 공습이 집중되면 그 지역은 그냥 버리고 다른 지역을 공략한 다음 나중에 다시 공격해오면 된다는 것.
게다가 이 공습 집중도가 거의 서방에서 보도되는 뉴스 여론에 따르고 있다보니까, 일시적으로 관심을 받는 지역(코바니, 신자르) 등에 집중되었다가 좀 사정이 나아지면 다시 다른 지역으로 빠지고 그럼 IS가 다시 돌아오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대 IS전략이라는 것이 마치 술래잡기를 하듯이 허둥지둥 IS의 공세를 쫓아다니면서 공습을 때려 몇몇 거점을 방어하는 수준이다. 몇몇 거점에서 값진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공습이 집중되지 않은 지역에서 세력 확대가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IS의 세력을 줄이는데는 실패하고 있다.
게다가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어쩔 수 없이 민간인 오폭 사고도 발생하고 있다. 목표가 IS라고 해도 민간인 오폭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만으로 아랍권에서는 서방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어나고 IS의 입지는 더욱 강화되며, 서방 내에서도 전쟁에 대한 염증이 확산된다.(당장 베트남 전쟁을 생각해보자.) 폭격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로 '수니파 vs 서방'이라는 선전 구도가 강화되고 있으며, IS가 현지에서 지지를 더욱 끌어모으고 있다는 견해도 있었다. IS가 민간인 집에 자신을 상징하는 '검은 깃발'을 걸어 국제동맹군을 교란하려 한다는 보도도 나왔는데, 이런 오폭을 유도하기 위한 시도. 민간인에 섞여 들어가 상대를 속이는 전술은 국제동맹군이 공습을 결정했을 때 새로 고안돼 IS 지도부가 하달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아 정보가 부족한 터라 인공위성 사진이나 정찰기의 항공사진으로 공습 목표를 결정하는 국제동맹군으로선 전투기의 정밀 타격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이 교란 전술은 특히 IS가 공습을 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국제동맹군의 오폭으로 무고한 민간인 사상자가 나는 경우 여론전의 재료가 된다는 점에서 IS엔 '일석이조'다. IS가 미군 주도의 국제동맹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를 교묘히 이용하면 이라크 주민의 반미 감정을 불러 일으켜 지지기반을 다지는 반사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모술에서 활동하는 언론인 알리 알사라이는 "'깃발 전술'은 국제동맹군에 틀린 정보를 주면서 내부 무력반발도 잠재우는 효과가 있다"며 "국제동맹군이 민간인 시설을 공습한다면 IS는 바로 여론몰이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고 공습과 지원만을 하고, 민간인 거주지역은 되도록 공습하지 않고, 지상전은 이라크 정부군과 민병대에 맡기는 제한된 전략의 한계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특별히 대안도 없다는 것이 문제. 공화당 뿐만 아니라 민주당에서도 보다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으나 오바마는 계속 지상군 투입은 불가능하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2016년 현재는 황금사단을 중심으로 개편한 이라크 정부군의 선전과 시아, 수니파 민병대 및 이란과의 공조로 이라크의 전황은 상당히 호전되었다. 티크리트, 바이지, 라마디 등지에서의 일련의 패배로 http://news1.kr/articles/?253805212월부터 1월까지 한달간 IS는 이라크의 점령지 40%를 잃었다. 현재 이라크군은 안바르 주의 또다른 대도시인 팔루자에 집중하는 모양. 팔루자는 라마디보다 어려울 거라는 관측이 많아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라크 정부의 관측대로라면 연내에 이라크 내 IS의 심장이자 제2도시인 모술의 탈환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 수니파가 다수인 라마디 공략에 나설때 시아파 민병대를 배제하고 수니파 민병대를 앞세우는 유연함을 보여주고 있다.(이라크 정부는 시아파가 주도) 현재로써는 공습으로 IS의 진격을 막고 허약한 이라크 정부군이 재편할 시간을 벌어준다는 작전이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것은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2015년 항목 참고.
정리하자면 2014년에서 2015년 사이에만 해도 오바마의 ISIS 대책 방안에 대한 비판이 많았으나#, 해가 거듭할수록 좋은 성과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오바마를 ISIS의 창시자라고 격렬히 비판한 도널드 트럼프도 오바마의 정책을 재사용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끝내 오바마의 정책이 옳았음을 트럼프가 증명해주기 시작했다.# 이는 사설에서 진보좌파 성향을 보이는 언론뿐만 아니라 National Interest 같은 보수우파 성향을 보이는 언론에서도 인정해주고 있다.#

2.1.4. 혼란한 시리아


또 미국이 지원하는 '온건파' 시리아 반군들은... IS가 '''경쟁 관계에 있던 반군들과 화해하는 움직임도 감지돼 미국이 주장하는 ‘온건한 반군’은 대체 어떤 반군을 말하는 것인지'''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 주도의 공습에 항의하고 반대하는 이들은 공습 작전이 시리아 바샤르 아사드 정부군이 아닌 반군을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는 '''이슬람 자체를 향한 공격'''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 ‘자유시리아군’의 한 여단장은 “미국-연합군은 IS를 섬멸하겠다는 구실로 신성한 시리아 혁명과 대결하고 있다”며 “나는 개인적으로 이슬람에 대항하는 연합군 편에 서서 싸우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습 작전은 미국 지원을 받는 단체들을 포함한 다양한 분파의 반군들 사이에서 IS, 알 누스라 전선과 시리아 내 알 카에다 연계조직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켜 '''반군들 사이의 화해‧협력'''이라는 뜻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그렇게 됐다: 알-누스라와 IS가 미국의 폭격을 맞고 화해하고는(양측은 겉으로는 부인하지만) 미국이 지원하는 소위 '온건파'를 두들겨패고 있다.#
알 누스라 전선과 IS는 2013년 중반 갈라섰고 혹독한 경쟁을 벌여왔다. 그러나 시리아 반정부 활동가는 “양측이 이미 화해를 위한 행동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IS가 본부 진지가 있는 라카시에 억류했던 알 누스라 전선의 포로들을 모두 석방했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는 또한 많은 사람들이 IS에 충성을 서약하는 것을 보았다”고 말한다. 공습 이후에 많은 반군들이 IS에 충성하는 등 종래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관리들은 또한 난데없이 '호라손 그룹'도 공습했다고 말해 급속도로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호라손 그룹은 음지에서 서방 국가를 공격하는 알 카에다의 베테랑 정보원들의 네트워크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많은 활동가들은 '''호라손 조직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다'''며 공습 목표는 알 누스라 진지였던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미국은 시리아 내 '''존재하지도 않은''' 호라손 그룹을 언급하면서 사실은 알 누스라 전선을 공격한 것이다.
공습 작전으로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보도 이후 공습 반대 분위기와 함께 ‘서방으로부터 이슬람을 지키자’는 결속의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게다가 미국 주도의 공습으로 IS 소유의 임시 정유공장이 파괴돼 석유 부족에 대한 불평마저 터져 나오고 있다.
9월 중순 인터넷에 공개된 동영상에서 이들리브주 나블시에서 벌어진 공습 반대 시위에서는 알 카에다의 깃발이 휘날렸다. 한 수니파 교도는 “여기에는 알 누스라 전선 같은 분파는 없다, 우리는 모두 수니파일 뿐이다. 연합군은 수니파와 민간인을 상대로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공습에도 불구하고 매달 1,000명 이상의 외국인 용병이 꾸준히 시리아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워싱턴포스트(WP)는 중앙정보국(CIA)을 비롯한 미국 정보기관들을 인용해 최근까지도 시리아 유입인구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10월 30일 보도했다. 한 미 정보당국 관계자는 "시리아로 향하는 무장세력의 수는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시리아 내 외국인 용병 수도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1년간의 추세를 살펴보면 현재 시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국인의 수는 대략 16,000명을 넘어섰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지난 1980년대 구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맞섰던 무자헤딘에 모여든 인원을 넘어서는 수치다. 유입 경로도 다양해서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물론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등지 등 전 세계에 걸쳐있다.
미국 정보당국은 그간의 조사 결과 IS의 세련된 신병모집과 더불어 오랜 내전으로 인해 발생한 다양한 무장세력들의 활발한 활동 등이 이 같은 흡인력을 가지게 만든 것으로 분석했다. 짧게는 미국의 시리아 공습이 개시된 지난달 23일 이후, 길게는 이라크 공습이 시작된 지난 8월 초 이후 상당한 기간이 지났음에도 유입세가 눈에 띄게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은 공습이 생각만큼의 효과를 거두고 있지는 못한다는 분석을 가능케 한다.
미 국가대테러센터(NCTC) 부소장이었던 앤드류 리프먼은 "미국의 시리아 공습은 어떤 이들에게는 두려움을 심어줌으로써 시리아행을 좌절하게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시리아로 향해야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시리아로 유입되는 외국인 수는 결국 과거와 비슷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 10월 30일, CNN과 뉴욕타임스 등은 척 헤이글 미국 국방부 장관이 최근 내부적으로 백악관의 시리아 전략 미흡을 비판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아사드 정권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비판의 골자였다. 그러나 여전히 백악관의 대ISIS 정책의 일부인 온건 반군파 훈련에는 찬성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IS와 알카에다 연계세력을 박멸하고 온건반군의 힘을 키워줘서 아사드 정권에게 타격을 가하려던 미국의 계산이 이해관계가 난마처럼 복잡하게 뒤얽힌 중동과 이라크, 시리아 내전의 판도에서 쉽게 먹혀들지 않고 있다. 미군 훈련받은 시리아 반군 장교 알 카에다에 투항 뒤 무기 넘겨(...)
중동의 현재 혼돈을 관찰한 어느 분석가의 식견
결국 이라크에서 미군이 했던 역할을 여기서는 러시아가 맡게 생겼다. 이쪽은 본격적으로 지상군까지 투입한 상황.
바샤르 알 아사드의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의 거점이었던 알레포를 장악했다. 오바마 레거시에 비상이라는 기사 #

2.1.5. 흔들리는 대아시아 외교 정책


길게 본다면 미국은 2000년대부터 가속도가 붙은 중국의 급성장을 막는 데 자신의 역량을 쏟아부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촉발된 대침체때문에, 당장 오바마는 미국 내부의 경제위기 불 끄기에도 바빠서 이곳저곳을 살피지 못해 곳곳에서 문제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또한 북한에도 제대로 신경쓰지 못해 북한이 노골적인 대남도발과 핵개발을 마음 편히 자행하는 것을 방관하기도 했다. 한국이나 일본이 핵을 가지고 힘의 균형을 기본으로 한 안정적 평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한국은 미국과 함께해야 힘을 낼 수 있는 상황이고 일본도 군사적인 개입이 원칙적으로 제한된 상태라 적극적인 제지를 하지 못하는 정국이었다. 여기에서 미국이 모르쇠를 시전한 짧은 기간동안 김정은이 체제를 세습하고 핵개발에 성공하는 등, 사실상 골든타임을 넘겨준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는다.
물론 아예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닌데,재임 초기에만 해도 동아시아에 굉장히 많은 공을 들였다. 오바마가 아키히토에게 90도로 깍듯하게 인사하는 것도 이 시기에 잡힌 것.[15] 등으로 비난,조롱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 때는 앞서 서술한 대침체 상황 속에서 미국 경제가 오늘내일 할 때라 강해지는 중국을 막지 않는 대신 중국을 인정하고, 그만큼의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 대중정책의 기본 골자였다[16] 한편으로는 '아시아로의 회귀'라고 불리는 전략으로 해군력의 60%를 아시아에 배치하고 아시아 국가와의 협력으로 중국의 진출을 봉쇄하고자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이런 행보가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당연히 중국은 자신을 겨냥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남중국해와 센카쿠 열도에서 양국은 분쟁을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얻어간 것은 없었고, 결국 아랍의 봄 이후 찾아온 중동의 혼돈과 시리아의 생화학무기, 이란 핵무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전쟁 같은 이슈로 인해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잠시 내려놓게 된다. #
심지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세력통합도 지지부진했는데, 동아시아의 미 동맹국들은 전통적으로 NATO와 유사한 집단방위체제보다는 개별 국가가 각자 미국과 동맹을 맺는 차륜형(hub-and-spoke) 구조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과 동맹국 뿐만 아니라 동맹국들끼리도안보협력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나, 이것이 원활하게 추진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특히 동맹국 중 한국과 일본은 지속적으로 역사적 문제로 인한 갈등을 빚고 있는데다, 양국 정치인들은 해결 의사는 커녕 이 갈등을 이용하는 전통적으로 이용해왔기 때문에 [17], 그리고 서로 협력하여 얻을 대북 이득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의 요구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18] 미국 입장에서는 한일에 강권하여 위안부 합의를 성사시킨 것이 눈에 띌만한 성과이긴 하지만, 이것 역시 문제의 완전한 해결이라기보다는 양국이 미국 체면을 봐서 잠시 문제를 접어두기로 한 것에 가깝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위안부 합의가 정의고 용감한 결정이라는 오바마'(경향신문)
2014년에는 아시아 순방 중 일본을 방문해 아베 신조 총리와의 정상 회담에서 센카쿠 열도 역시 미군의 방어 의무 대상이며, 일본의 집단 자위권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JTBC, 뉴시스 우상호의 오바마 비판
미국 대통령으로써는 최초로 2차대전중에 원폭을 투하했던 히로시마에 방문했고연합뉴스 2016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도 미국이 재촉한 바가 있었다고 평가되는 등 한일 양국의 외교적 관계 개선과 일본을 통한 동아시아 영향력 행사에 큰 힘을 쏟은 듯 보이지만 결과가 극적이지는 못했다.
결국 큰 틀에서 보자면 이들의 실패 요인은 자신들이 동아시아에서 가지는 정치적 입장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것에 실패한 채로 보여주기식 관계개선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동아시아 정세가 애매하게 흘러가는 와중에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이 성공하고, 수소폭탄과 함께 SLBM 실험까지 성공했다고 주장하면서 오바마의 아시아 정책은 다시 한 번 흔들리고 말았다. 공화당에선 연일 4차 핵실험은 오바마의 실패라고 비난하면서 대선 레이스에 힘을 싣고 있는 상태. 오바마는 한반도에 전략자산을 배치하고, 강력하면서도 포괄적인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전략자산 배치는 립서비스에 가깝고 경제제재는 중국이 참여하지 않는 가운데 북한이 말그대로 '잃을 게 없는' 나라기 때문에 아무 쓸모없다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자기가 버는 돈이 없는데 무슨 경제제재를 하냐는 것. 결국 주한미군이 종말 고고도 지역 방어 체계(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THAAD)를 도입하면서 전략자산 배치는 현실화되었으나, 근본적인 대응은 되지 못했고 결국 동아시아, 특히 중국과 북한에 대한 대응이 참패로 돌아가자 이 여파가 2016년 대선에까지 미치게 된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심심하면 북한 이야기를 꺼내고, 이에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은 혈압이 오르는 그림이 자주 연출되었던 것을 보면 확실히 대선에도 큰 영향을 미친 듯 하다.
또한 역설적이게도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는 오히려 러시아-중국과의 동맹을 강화시켰다. 러시아로서는 미국과 적대시한 이상, 중국이 꺼림칙하더라도 중국이 내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던 것.[19][20] 결국 이것이 가시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2015년 5월에 터져나오는데, 양국이 30년의 가스 제공 협정을 체결하고 공동 군사훈련을 실시해버린 것이다.
2016년 6월 브렉시트가 터지면서 대아시아 외교가 치명타를 맞았다. 영국의 탈퇴로 NATO의 힘의 공백이 생겨 러시아를 견제 하기가 어려워지고 내내 미국과는 다른 견해를 내놓았던 독일과 파트너십을 맺게 생겼다. 제임스 골드가이어 아메리칸대 교수도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브렉시트의 중대 피해자는 아시아를 중시하는 미국의 재균형 외교정책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은 유럽에 러시아와 중동을 견제하는 책임을 분담시키면서 아시아 중시 정책에 집중할 수 있었는데 브렉시트로 유럽이 역내 문제에 발목이 잡히면 이런 역할 분담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게다가 우방국으로 믿었던 필리핀에서 뜻밖의 변수가 터져나왔다.[21]
오바마 히로시마행에 이어 아베가 일본 수상 최초로 진주만을 방문했다. #

2.1.6. 심각한 외교안보팀의 불화


오바마 정부가 비판받는 원인 중 하나이자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대응에서 가장 비판받는 부분. 그 동안에도 오바마가 척 헤이글이나 존 케리 국무장관보다 마틴 뎀프시 합참의장이나 백악관의 측근들을 더 신뢰한다는 지적이 많았으며, 국무회의에서도 헤이글 장관은 침묵하고 케리는 왕따라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헤이글 장관이 수전 라이스 백악관 정책 보좌관에게 '''아사드 정권에 대한 확실한 원칙이 잡히지 않는 한 IS 격퇴는 불가능'''이라는 메모를 보내면서 터지고 말았다.
일단 온건 반군을 지원한다면서 정작 미국이 공습 대상에서 제외한 아사드 정권이 그 온건 반군을 공격해 세력을 약화시키는 모순은 그렇다쳐도, 국방장관이 '''대통령에게 직언을 못하고 참모에게 쪽지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상황이 문제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중동 전문가인 앤소니 코데스만은 미 국제 전략 연구소 사이트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의 시리아 정책에 대해 '''전략적으로 엉망진창'''이라며 혹평했는데 헤이글 메모에서도 볼 수 있듯이 참모팀과 내각이 서로 대통령에게 대외 정책에 대한 통일된 의견 조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11월 24일, 척 헤이글 국방부 장관이 사임의 뜻을 밝혔다.#

2.1.7. 외교정책에 대한 총평


This is the way Obama administration ends; not with a bang, but a pathetic whimper.[22]

오바마 정권은 이렇게 끝났습니다; 거대한 파멸은 없었지만, 비참한 신음소리들과 말이죠.

- 페페 에스코바(Pepe Escobar), 브라질 분석가이며 언론인

2011년부터 시작된 아랍의 봄 당시 상당히 적극적으로 개입했지만, 중동과 이슬람의 종교, 정치, 문화적 배경을 보지 못했다. 사실 아랍의 봄 자체는 모하메드 부아지지로 대표되는 가난과 독재에 시달리던 아랍 민중들의 불만과 분노가 폭발한 것이었고, 실제로 튀니지이집트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어느 정도 국가체제가 안정적으로 정착된 국가'''에서는 평화적 정권 교체라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물론 이집트는 쿠데타로 실패했지만..)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다시피, 안타깝게도 아랍권 국가들 중 대다수의 국가는 '''민주주의가 자랄만한 사회적 역량이 부족한 국가'''가 태반이었다. 해당 국가들에서 독재자에게 탄압받는 반대파들 중에서는 오랫동안 정권에서 가장 위협요소로 탄압받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자리잡고 있었고, 당연히 이러한 극단주의 세력을 통제할 권력이 사라진 상황에서 극단주의자들이 득세할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아랍의 봄 당시 처음에는 어느 정도 평화적으로 흘러갈 수 있었지만, 이렇게 흘러가버린 예가 많다.
이는 특정 종교를 전국민 모두가 의무적으로 숭배하는 국가들의 공통적인 특징인데 해당 종교의 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문제로 인해, 그리고 그 해당 종교에 대한 영향력이 강한 독재자가 출현할 경우 민주주의는 싹을 틔울 수 없는 구조가 된다. 민주주의란 '''사람에 의해서'''가 기본 전제인데 이 경우는 '''신에 의해서'''가 기본 전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구조의 국가들은 독재하기 참 쉬워지는데 독재자는 그냥 신의 이름만 열심히 팔면 되기 때문이다. 일설에는 종교란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을 효율적으로 지배하고 착취하기 위해서 유명인사[23]의 이름을 팔아서 만든 것이 종교라 하는데 모든 종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국가에서의 종교는 전술한 정의에 완벽히 부합된다. 이런 구조의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하자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인간 나부랭이 주제에 감히 신에게 대든다고 뒤집어씌우기 딱 좋다. 굳이 이슬람이라서가 아니라 불교가 거의 의무적으로 숭배되는 태국도 마찬가지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예를 들어 리비아의 경우, 카다피가 거의 승기를 거둔 시점에서 혁명정부를 지키기 위해 NATO가 개입하면서 정권 교체에 성공했지만, 이후 새로 새워진 혁명정부가 국가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서 남겨진 카다피 세력을 이슬람주의 세력이 흡수, 세속주의 세력과 이슬람주의 세력의 내전으로 치달았다. 물론 지금은 유엔과 아프리카 국가들의 중재 아래 각자 내전을 치루던 각 정파 세력들이 양보하여 다시 새로운 통합 정부로 통합된 상태이다.. 또한 이집트 역시 무바라크 정권의 교체를 묵인한 이후[24]. 선거를 통해 무함마드 무르시가 집권하자 이를 반겼다. 하지만 그가 이슬람주의 정책을 펼치면서 군부의 영향력을 축소하려 하자[25], 이에 불만을 품은 군부가 쿠데타를 통해 다시 장악했다.
또한, 시리아 내전에 있어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비교적 카다피에 반대하는 세력이 자리잡힌 시점에서 군사적으로 지원해 성공적으로 교체를 이끌어 낸 리비아와는 달리, 시리아 인구의 구성을 보면 알겠지만 다수의 수니파와 소수의 기독교, 야지디교 등 옛 유고슬라비아와 비슷한 다양한 종교, 민족집단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여기서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을 아사드로 대표되는 중앙정부가 억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사드가 민주화 시위를 유혈진압으로 진압하려 하다가, 내전으로 발전하면서 이러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장치가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유고슬라비아와 마찬가지로, 미국 입장에서는 러시아를 크게 자극하면서[26] '''이라크 전쟁과 비슷한, 혹은 그 이상의 군사적 출혈을 낼 수도 있는''' 시리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고 싶어하지 않았고,[27] '''미국이 군사적 개입 의지가 약하다는 것'''을 깨달은 러시아 입장에서는 시리아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자국과 군사동맹이었던 아사드 정부를 지킬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시리아 내전이 악화되는 것을 방조한 책임이 크다.[28]
그리고 내전이 끝나고 IS가 사라져도 남을 초대형 폭탄이 있으니 쿠르드족. 1부터 10까지 미국 책임인 이라크 내전과 IS 탄생, 미국이 간접적으로 촉발시킨 시리아 내전을 통해 이들은 국가와 맞먹는 무력과 자신들의 영토를 보유하게 되었다. 이라크와 시리아가 순순히 자기네 북부 지역을 내줄리 없으며 쿠르드족 견제에 국운을 거는 터키도 가만히 있을리 없다는걸 생각하면 또 한번 피바람이 불어올 가능성이 없다고도 못할 상황이다.
또한 공화당 일각에서는 이란에 접근하여 제제조치 해제를 덜컥 시켜준 것도 크게 비판한다. 현재 합의된 제제조치 해제안을 보면 막상 이란이 북한처럼 맘먹고 핵개발을 계속해도 실효성 있는 핵사찰을 할수가 없는 상태이며, 각종 미사일 개발, F-14 전투기 가동 유지 등 이란의 군사적 R&D 능력은 상당한 수준에 달해있고 반미노선을 포기하지 않아 신뢰를 할수 없는데 제제조치 해제가 범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동유럽에서는 러시아와 대립이 일어나고 있다. 2014년 크림 위기를 시초로 우크라이나를 시작으로 러시아의 거의 코앞에서 냉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러시아에서는 서방의 대러 제제가 러시아의 영향력을 제한시키려는 음모라며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러시아가 역사적으로 행한 소련-핀란드 전쟁이나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같은 전략적 실책이 더 크다. 당장 비슷한 사례로 2004년 우크라이나에서 오렌지 혁명으로 친서방세력이 집권했음에도, 이를 무력으로 개입하지 않고 지속적인 영향력 행사를 통해 친러 정부 수립을 성공시킨 것과는 달리, 이번 2014년 혁명 때는 바로 우크라이나계 러시아 주민들을 선동하면서 적극적인 무력개입에 나섰다. 이는 과거 1994년 몰도바와 2008년 조지아의 사례와 비슷하게 해당 국가 내 친러세력을 선동해 해당 국가에 대한 영향력을 장악하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명분을 가지고 있던 남오세티아 전쟁과 달리 이번 사례는 군사적 분쟁이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록 군사력을 행사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크림 병합은 애초부터 서방과 우크라이나, 러시아가 소련 해체 이후 크림 반도에 대해 안정시켰던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이어서 서방 측에게 지나치게 관심을 끌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이는 2008년 이후 소강상태였던 서방과 러시아의 관계를 한순간에 악화시켰으며, 이에 오바마 행정부는 군사적, 정치적인 부담을 알지만 당장 '''러시아계 보호를 빙자한 침략'''을 행사한 러시아에게 강경하게 나설 수 밖에 없었다.[29]
러시아 정부는 고르바초프-옐친 시기 시절부터 시작된 미국 정부 주도 아래의 나토 확장을 가리켜 서방이 먼저 약속을 깼다며 우크라이나 침략을 정당화시키고 있다. 실제로 조지 H. W. 부시 정권 아래에 독일 통일을 두고 소비에트의 고르바초프와 구두 계약을 맺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양자 간의 공식적인 협약이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미국 측에서는 구 소련 동유럽 국가들의 나토 가입을 막을 필요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조지 H. W. 부시 대통령 시절부터 미국 국무부는 동유럽 국가들의 나토 가입을 준비했고, 클린턴 정권 시절에 폴란드, 헝가리, 체코를 나토에 가입시켰다.# 조지 W. 부시는 더 나아가서 불가리아, 루마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를 가입시켜 러시아를 압박했다. 즉, 러시아가 미국 세력의 확장에 불만을 갖고 이에 합당한 대응을 모색하는 건 맞으나, 오바마가 정계에 나서기도 전에 시작됐던 일을 모두 그에게 책임을 묻는 건 잘못됐다. 오히려 오바마 정권은 최대한 러시아와 평화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으며, 2012년 재선 때도 밋 롬니와 반대로 러시아를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여 공화당의 비판을 받았다. 더욱이 러시아 정부에서 크림을 무력으로 합병하여 미국의 동맹국들이 모인 유럽 연합을 간접적으로 압박한 상황에서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 조치는 어쩔 수 없었다고 봐야 한다. 그렇지만 효과가 있는지 지금 러시아 경제력이 반토막 난 상황인데다가 국방비까지 감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동아시아의 회전 정책(Pivot)은 그저 그렇다. 중동에 치중되었던 미국 외교를 부상하고 있는 동아시아로 바꾸었으나, 그가 선택한 정책이 결실을 맺었는지에 대해서는 평이 복합적이다. 클린턴/부시 정권부터 괌과 일본은 동아시아 정책의 중심으로 여겨졌고[30], 싱가포르에는 항공모함 주둔 기지를 설치했으며, 필리핀과 일본과의 협력을 키워나갔다. 오바마 정권은 이에 더해서 중국과의 교류도 증가시키려고 했으나, 중국은 미국의 이런 정책을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정책으로 판단하고 반대했다. 당시 호주 총리 케빈 러드는 오바마의 이런 정책을 반겼으나[31], 하버드 대학교의 로버트 로스 교수는 중국은 십중팔구 미국의 이런 정책을 위협으로 간주할 것이며, 오바마의 회전 정책은 중국을 자극시켜 베이징과 워싱턴의 화합을 방해만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지 워싱턴 대학교의 아미타이 엣지오니 교수도 너무 이른 시기에 회전 정책을 적용하는 게 아닌지 걱정 섞인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군이 미군을 위협하려면 아직 몇십 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며, 지금은 중동에 집중하는 게 옳은 선택일 거라고 설명했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오바마 정권이 추진한 것이 바로 TPP지만, 워낙에 자국 내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고, 2016년 미국 대선에서 TPP를 반대하던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오바마의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됐다.

3. 한국과의 관계


정책적인 면에서 한국 여론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평이 있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본에서는 꽤나 좋은 평가를 받는다라는 주장도 있다. 대체로 한미동맹을 중요시한 이명박 정부시절에는 그럭저럭 좋았으나 외교수준이 떨어지면서 친중성향을 보이던 박근혜 정부시절엔 평가가 떨어졌다는 소리를 듣는다.
2008년 대선 유세 기간 동안 버락 오바마는 북한의 김정일과 '조건 없이(unconditionally)' 회담을 가지겠다고 대답해,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존 맥케인은 물론 친공화당/강경우익 성향의 폭스뉴스의 시사 앵커들로부터 맹공격을 받았다. 맥케인은 북한이 시리아의 핵시설 건설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미국 정부의 보고가 있었는데, 이런 위험한 국가의 지도자와 '조건 없이' 만나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평했고#, 폭스뉴스의 앵커들은 북한과 관련된 오바마의 발언이 그가 얼마나 외교에 무지한지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보수 성향의 앵커들은 공화당 정권이 들어서고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만남을 가지자, 트럼프 대통령에게 매우 큰 외교적 성공이라고 평했다.###
오바마는 한미 FTA와 관련하여 2010년 6월에 열린 토론토 G20 정상회의 때의 약속처럼 한미 모두에게 공평한 무역협정을 신속하게 맺으려고 노력했으며,# 결과적으로 본인이 속한 정당인 민주당으로부터 비판을 받으면서도 최대한 빨리 FTA를 마무리하고 통과시키는데 공헌했다.# 예시로 미국 농축업 종사자들은 쌀과 쇠고기 관세를 완전히 없애버리고 싶어 했지만, 15년 안에 쇠고기 관세 40% 인하하는 것으로 끝났으며, 쌀은 배제됐다. 미국에서 원했던 의료와 교육 부분 서비스업 개방도 더 이상 요구하지 않고 끝냈으며, 자동차 수출입도 최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고려해서 마무리 지었다.
2012년 3월 22일, 버락 오바마는 세계은행 총재로 한국인 재미교포 김용을 임명했고, 역사적으로 미국이 고른 후보가 총재로 당선됐기 때문에, 김용은 아시아계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은행 총재가 됐다. 오바마가 김용을 임명하기 전에 여러 나라들에서 타국가의 경제 거물들을 후보로 로비했던 걸 생각하면 매우 이례적인 선택이었다.#
네오콘의 독선적인 태도가 동맹간의 균열을 일으켰다는 인식을 가졌던 오바마 행정부는 '우방국 정부들에 대한 배려와 적극적인 정책협력 자세'를 중시했는데 당시 한국에서 대북 봉쇄를 지향하던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가 이 외교정책상의 배려와 협력 대상이 되면서 후임 대통령인 트럼프와 비교해서 북한과 대화에 소극적이었다.
이외에도 오바마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한국에 불합리한 합의를 강요했다는 분석이 강하며, 민변 송기호 변호사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이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과 관련된 WTO 분쟁에서 "한국이 패소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한다.#[32]
여담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꼿꼿하게 일왕과 악수하는 사진은 오바마 대통령이 일왕에게 깍듯이 인사하는 모습과 대비되었다.#
이런 이유로 일부 혐일 성향의 한국 네티즌들[33] 오바마를 비하하는 의미로 오바마를 왜바마, 잽바마, 또는 뻑킹니그로(...), 중국시장을 말아먹은[34] 검둥이 새끼라고 부르곤 한다. 이러한 여론은 구글 검색으로 니거바마 왜바마 잽바마 등의 키워드를 검색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오바마를 친일로 보기에는 그의 임기 동안 미국-일본 관계가 편했다고 보기 힘들고 아베를 포함한 일본 총리들과의 사이도 좋지 못했다. 일단 오바마는 본인 자서전에다 대놓고 근 10년간의 일본 정치는 꽉 막혀 변화가 없고 방향을 잃었다고 평했고[35], 그의 임기 1기 시절 총리가 세 번 이상 교체된 것과 하토야마 총리의 어색한 성격을 이와 같은 일본의 꽉 막힌 정치 지형에 책임 있다는 듯한 뉘앙스로 서술했다.# 오바마의 일본 정부를 향한 불만은 아베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도 나아졌다고 보기가 힘들다. 일단, 아베의 국수주의 성향과 그의 역사 왜곡은 오바마가 원했던 동아시아 안정과 평화를 정면으로 위협했고, 2013년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방문은 오바마와 그의 측근들의 심기를 건들어 이례적으로 강력한 외교적 언사로 아베를 비판하여 일본 정부를 당혹하게 만들었다.# 또한 오바마는 아베가 고노 담화를 인정하도록 압력을 가했고,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에 대한 오바마의 이 같은 반응은 아베 측근들로 하여금 여론 조작을 힘들게 만들었다. 역사 문제 이외에도 오바마 행정부는 아베 총리의 아베노믹스를 좋은 시선으로만 보지 않았고, 이는 미국 이외에 다른 G7 정상들도 공유했다. 특히 오바마는 일본 정부의 엔화가치 절하에 대해서 경고했으며#, G7에서는 다른 정상들과 함께 난민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을 요구했다.
반대로 일본에서도 오바마는 반갑지 않은 대통령이었다. 일단 미국은 지속적으로 오키나와에 미군기지 건설/확장을 원했지만, 일본 정부에서는 지역사회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일본 정부는 중국의 위협에 대해서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오바마 행정부를 향한 불만이 많았다. 비록 오바마는 센카쿠 열도가 일본 영토임을 인정하고 미국 정부는 최선을 다해서 군사적으로 도울 것이라고 기자회견에서 밝혔으나, 아베는 오바마의 반응이 약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TPP 협상에서도 오바마는 지속적으로 아베가 일본의 성역이라고 규정한 농산물을 완전히 개방하라고 압박했고, 그 강도는 아베의 야스쿠니 방문 이후 증가했다.## 즉, 오바마 행정부와 일본 정부는 역사 문제, 경제협력 문제, 군사문제 등으로 전혀 순탄치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오바마가 한국 정부를 일방적으로 선호하거나 편애했다고 보기 힘들며, 오바마는 단순히 미국 대통령으로서 자국 이익을 위해서 두 나라에 동시에 압력을 넣었다고 볼 수 있다. 덕분에 일부 일본의 우파성향 웹사이트에서 오바마를 폄하하고 아베를 찬양하는 글을 확인할 수 있다.#

3.1. 여론조사


IPSOS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한국은 인도와 함께 오바마에 대한 지지율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나타났다.# 퓨리서치센터의 여론조사에서도 2010년~2015년까지 75%~88%의 지지율을 기록해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도 오바마에 대한 지지율이 높은 곳으로 집계됐다.###### 2013년 8월에 실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도 한국인들의 오바마 지지율은 71%로 집계됐다.# 아산정책연구원에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오바마의 호감도는 미국 호감도보다 높았고, 한반도 주변국의 그 어떤 정상들보다도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아산정책연구소는 미국의 강력한 소프트파워에 오바마가 크게 기여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오바마 집권기에 한국의 최고 권력자가 박근혜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임기 당시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비교되며 꽤나 평가를 높게 받은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비교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초기에는 9~17%로 집계됐으나, 2018년 북미회담 이후 32%~46%로 집계됐다. 46%가 낮아 보일 수도 있으나, 이는 이스라엘, 필리핀, 인도, 케냐, 나이지리아 뒤를 잇는 높은 수치이다.###### 한국갤럽도 퓨리서치와 비슷한 결과를 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초기인 2017년에는 9%로 매우 낮았으나, 북미회담이 개최된 2018년에는 24~32%를 기록했다. 하지만 2019년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고 나서는 지지율이 15%로 하락한 모습을 보여줬다.# 아산정책연구원은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서 오바마는 미국 자체 호감도에 상관없이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지 못하다는 평을 남겼고, 오바마 시절처럼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 호감도를 끌어올리는 긍정적인 역할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을 2017년에 내놓은 바 있다.#
[1] IS 조직원들이 산개한다느니 민간인을 방패로 쓴다느니 하면서 공습의 효과를 지적하는 시각도 있지만, 사실 군사적으로 봤을때 그냥 자위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2차대전 때도 제공권을 장악당한 독일군은 '평지에서는' 변변한 공세 한번 해보지 못하고 쭉 연합군에게 밀리기만 했다. 공습 초기에야 소규모로 침투한 IS에게 이라크군이 혼비백산해서 도망치는 모습도 나오고 그랬지만 이라크군이 전열을 갖추고 나서는 그런 모습이 거의 없어졌다. 베트남전 패배도 민심을 등에 업은 베트콩이 주요 원인이었지 북베트남군은 야심차게 준비한 테드 대공세에서 엄청난 전력을 날려먹고 전쟁 내내 그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공습이 '대규모 공세를 저지'하는데는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2] 당시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은 42.6%를 기록하면서 그의 임기 내에서 최저를 찍었다.[3] 집권 2기까지 끝낸 대통령들 중에서 오바마 대통령보다 행정명령을 적게 사용한 대통령을 찾으려면 그로버 클리블랜드까지 올라가야 한다.[4] 실업자 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유로 아르바이트생으로 활동하거나 한계근로자들을 포함한다.[5] 소행성 탐사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예산을 삭감하여 취소된 상태다. 하지만 소행성 탐사 미션에서 개발된 기술들을 여전히 유효하며 계획대로 화성 탐사에 응용될 예정이다.[6] But it was "turbocharged" under the Obama administration, which made the development of private crew-carrying vehicles a priority[7] 트럼프 행정부는 처음에는 이랍 핵협상은 여전히 지켜지고 있다며 인정했으나 # 결국은 파기 [8] 이 문제는 시진핑 정권의 책임론도 강하다.[9] 한일 위안부 합의 역시 한일관계의 특수성을 잘 이해하지 못한 섣부른 미국의 조급성으로 인해 한미일 삼각공조가 균열이 일어나 대중 포위망에 구멍을 초래했다.[10] 오바마의 유명한 연설인 "Yes, we can"과 선거 포스터의 패러디이다. 하단의 문구(WE ARE WATCHING YOU)는 굳이 부연설명을 안해도 알법한 빅 브라더의 패러디.[11] 물론 38%으로 바닥을 찍은 후 14년 2월 첫째 주 기준으로 41%로 간신히 40% 위로 치고 올라오긴 했다. 미국 대통령들의 평균은 53%이며 조지 W. 부시의 지지율은 40%였다.[12] 당연하지만 칭찬의 의미가 전혀 아니다. [13] 여담으로 2013년 2월 12일에는 북한의 3차 핵실험이 있었다.[14] 애초에 이라크를 쳐들어가지 말고, 간신히 상황을 지탱하고 있는 사담 후세인을 죽여버리지 말아야 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 그렇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차기 방책을 일찍이 모색했어야 했다. 쿠르드, 시아파, 수니파로 이라크를 3등분 했다면 지금의 ISIS가 생길 수 있었을지 의문이란 주장도 있다.[15] 이 때를 기점으로 오바마는 일부 혐일 성향 사이트(뽐뿌,클리앙,루리웹 등)에서 니거바마 왜바마 [[https://www.google.com/search?rlz=1CDGOYI_enKR911KR911&hl=ko&biw=414&bih=720&sxsrf=ALeKk02zYBtaJXbG4o2N8pARhI6fACVwPA%3A1604813327691&ei=D4KnX6PbKZnbhwObmKbYBw&q=%EC%9E%BD%EB%B0%94%EB%A7%88&oq=&gs_lcp=ChNtb2JpbGUtZ3dzLXdpei1zZXJwEAEYAzIHCCMQ6gIQJzIHCCMQ6gIQJzIHCCMQ6gIQJzIHCCMQ6gIQJzIHCCMQ6gIQJzIHCCMQ6gIQJzIHCCMQ6gIQJzIHCCMQ6gIQJzIHCCMQ6gIQJzIHCCMQ6gIQJzIHCCMQ6gIQJzIHCCMQ6gIQJzIHCCMQ6gIQJzIHCCMQ6gIQJzIHCCMQ6gIQJzoCCAA6BAgAEAM6BAgjECc6BQgAELEDULzfAViQ6wFgxvUBaAhwAHgCgAGDAogB9gWSAQUwLjQuMZgBAKABAbABD8ABAQ&sclient=mobile-gws-wiz-serp]|잽바마][16] 전략적 재균형에 해당한다.[17]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20대 총선에서 반일 분위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을 일으킨 것과 아베 신조 한국 비하 발언 논란 사건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18] 북한 붕괴론참조. 북한이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의 강대국이 적극적으로 행하는 경제 제재들을 수십년간 당하고도 무너지지 않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결국 중국을 어떻게 하지 않고서는 북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 전임인 오바마와 다르게 트럼프는 이를 인정. 중국에게 북한 문제 해결에 나서라고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19] 그리고 중국의 주된 관심사는 아직은 동남아시아 쪽에 있고,중앙아시아에서는 러시아 눈치를 보는지는 몰라도 그다지 적극적인 팽창은 하지 않는다.[20] 서방세계는 일단 러시아를 유럽으로 취급을 안 하고 중국과의 동맹을 끼리끼리 논다고 생각하지만, '''러시아와 중국은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차지한 그 시점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대립해온 역사가 있다. 중국이 세지는 건 러시아 입장에서도 부담스럽다. 둘이 친해지는 건 말 그대로 적의 적은 나의 친구 이상이 아니다.'''[21] 두테르테는 전통적으로 친미 성향을 띄던 필리핀의 외교관계를 반전시켰는데, 그는 주필리핀 미국 대사를 ‘개XX’라고 비난하고, 오바마가 인권 문제를 운운하자 오바마에게도 욕설을 퍼부었으며, 아예 공약으로 친중을 내세울만큼 강경한 친중반미 정치인이다. 그러나 이렇게 오바마에게는 심각할 정도로 적재적이던 두테르테는 정작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그의 당선을 축하하면서 친근감을 과시했다. 아세안 관련 행사에서 트럼프가 노래를 요청하자 필리핀 가요를 불러줄만큼 분위기가 크게 반전되어 버렸다.(...)[22]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의 This is the way the world ends. Not with a bang but a whimper를 인용했다.[23] 파라오의 경우는, 쿨하게 그 '유명인사'의 포지션에 본인을 집어넣어 그냥 자신이 직접 신의 노릇도 겸했다.[24] 사실 이는 미국보다도 무바라크를 보호하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집트 군부의 '''방관'''이 가장 컸다. 이집트 정치를 보면 알겠지만, 엄연히 이집트 군부는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하다.[25] 사실 이 부분이 무르시 실각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26] 왜 NATO가 지상군으로 세르비아를 점령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보자. 유고 내전 당시 세르비아 정부는 엄연히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27] 모가디슈 전투르완다 내전 참조.[28] 물론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면 이 서술과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미국 내부의 집단이나 사람들이 '이라크 전쟁에 돈을 그렇게 쓰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질질 끌려다녔으면서 우리가 손해만 봤는데 또 이슬람 지역에 군사개입해서 돈이랑 인명만 낭비할거냐'는 비난이 격렬하게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시리아 지역은 위에도 있듯이 내부적인 상황이 복잡한 것이라 개입을 했다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과 유사하게 후상황이 악화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29] 당장 서방에서 패권주의적인 지도자에게 양보를 한 결과가 정말 나쁜 쪽으로 악영향을 끼친 전례도 있고, 무엇보다 서방 입장에서 적어도 자국의 영향력 아래있는 동유럽 국가(발트 3국, 폴란드, 루마니아 등)의 방위마저 소홀히 한다면 그 결과가 어떨 지는 잘 알 것이다.[30]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미국 동아시아 외교의 중심지였다. 비록 오바마 정권이 일본에 집중한 것은 사실이나,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에게 책임을 물은 것도 사실이며, 베트남, 호주, 대만, 싱가포르와의 협력도 중요시했다.[31] 미국 국무부는 호주도 동아시아에 포함시킨다.[32] 사실 엄밀히 말해 이 부분은 오바마가 한국에 악감정이 있기보다는 당시 대한민국 외교의 실패를 보여주는 것이다. 오바마는 정의의 사도가 아니며 어디까지나 미국 대통령으로서 미국의 국익을 위해 힘쓰는 사람이다. 당연히 외교란 누가 누구랑 친구라서 무조건 편드는 문제가 아니며 서로 줄다리기를 하면서 최대한 자기 쪽으로 기울게 만드는 미묘한 작업이다. 문제는 당시 한국의 대통령 박근혜가 임기 기간동안 태업과 무능으로 얼룩진 상태라 사실상 국가의 수장이 부재나 마찬가지였다는 것. 미국 입장에서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의 존재를 신경쓰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한국 입장에서 미국을 끌어들이려면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는 동시에 한국이 주요플레이어 중 하나인 동북아 안보 문제에서 실마리를 제시하는 식으로 당근을 던져주면서 슬슬 꼬드겨야한다. 물론 외교 담당부처가 있긴 하지만 대통령이란 사람이 정신을 놓고 있는데 제대로 될리가 없다. 한국의 외교 부재를 틈타 일본과 미국이 공조 체제를 구축했으니, 아무 이유없이 한국 편을 들어줄 것이란 기대 자체가 비현실적인 것.[33] 이러한 성향이 짙은 클리앙,뽐뿌,과거의 엠팍에서 특히 두드러진다.[34] 다만 후에 발생한 사드 배치, 코로나19 사태에 이따른 중국의 적반하장의 반사이익을 얻어서 이부분은 어느정도 재평가 받게 되었다.[35] a symptom of the sclerotic, aimless politics that had plagued Japan for much of the deca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