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별 한류

 

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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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1990년대: 한류의 탄생과 문화부흥의 태동기
3. 2000년대 초반: 본격적인 한국 문화산업의 일본 진출과 욘사마 열풍
4. 2000년대 후반: 한국 컨텐츠의 지속적인 해외 수출과 K-POP의 영향력 증가
5. 2010~11년: K-POP 신한류 붐과 국산 온라인 게임 대유행의 시대
6. 2012년 이후 ~ 현재: 신한류 붐의 지속적인 흥행과 북중미, 남미, 유럽권 흥행 가능성의 시대


1. 개요


한류는 크게 세 단계에 걸쳐 성장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부터 시작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비롯한 2000년대 초반 생성기(중국·동남아권으로 드라마 수출)→2000년대 중반 심화기(일본에서 드라마 ‘겨울연가’ 열풍)→2009년~10년 정착기(K-POP 중심으로 시작된 신한류)다. 이 가운데 정착기에 해당되는 ‘K-POP 신한류’는 드라마·영화가 중심이 됐던 과거 한류와는 그 양상이 다르다. 디지털 환경을 토대로 안정적인 성장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2. 1990년대: 한류의 탄생과 문화부흥의 태동기


한류라는 단어가 탄생하기 이전에도 1990년대 후반에 수출되어 중국 CCTV에서 방영되어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사랑이 뭐길래, 의가형제 등 인기 드라마와 같이 한류열풍의 싹이 조금씩 보이고 있었다.[1]
또한, 클론(가수)대만에서도 큰 인기를 끌기도 했고 NRG가 중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일으켰으며 대만의 배우, 인기가수 서회옥이 1990년대 한국에서 유행한 히트곡들을 많이 리메이크하기도 했다.[2]
한류라는 단어의 기원을 보면 1997년경부터 중화권을 중심으로 한국 TV드라마와 대중가요가 인기를 얻으며 한류가 발생했는데, 당시 대만에서 '하일한류(夏日韓流, 여름에 한국 바람이 불어옴)', 중국에서 '일진한류(一陣韓流, 한국 문화 마니아들)' 등의 표현이 국지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에 1999년 가을, 당시 한국 문화관광부에서 한국 대중음악을 해외에 홍보하기 위해 제작, 배포한 음반의 제목에 〈韓流-Song from Korea〉로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 때 즈음 하여 한류라는 단어가 한국 대중문화를 거론하는 고유명사로 확실하게 각인되게 된다.

3. 2000년대 초반: 본격적인 한국 문화산업의 일본 진출과 욘사마 열풍



2004년 4월 3일, 배용준의 일본 최초 공식방문 영상 뉴스 링크[3]
2000년 2월 H.O.T가 베이징 공연을 성공리에 마친 후 중국의 한 신문이 "한류가 중국을 강타했다"라는 헤드라인을 뽑으면서 공식화되었다.[4] 그리고, 어린 나이부터 일본 가요계로 진출하여 오리콘 차트를 제패하면서 대성공을 거둔 BoA는 한국의 K-POP이 일본 진출의 길을 열기 시작하는 초석이 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도 겨울연가를 통해서 일본의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배용준의 욘사마 신드롬과 함께 한국 드라마 인기가 많아지면서 일본에서도 본격적으로 한류라는 단어가 전해지게 되었다.# 이처럼, 보아는 배용준과 함께 '가수는 보아, 배우는 배용준' 이런 식으로 1차 한류의 주역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흔히 한국에서는 일본에서 일어난 한류의 기원으로 '욘사마 열풍'을 원조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1999년 '한국 영화계의 르네상스 시대'의 시작을 알리기 시작한 한석규, 최민식, 송강호, 김윤진 주연의 영화 '쉬리'가 일본에서 대흥행(매출 15억엔)을 기록하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이 먼저였다. 물론,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한류 열풍의 기반을 다진 인물은 배용준이 맞다.
쉬리가 일본인들에게 "어? 한국 영화도 꽤 재미있는데?"정도였다면, 배용준은 일본 여성들에게 '그동안 잊고 살던 첫사랑'이란 이미지를 심어준 셈이다. 겨울연가 문서에서도 자세히 나와있지만 하네다 공항이나 투숙하던 호텔 주위에 모여서 손 한번만이라도 흔들어주기를 바라기를 간절히 기다리던 장면은 흡사 첫사랑을 고대하는 슈퍼스타였다.
그 시절, 일본에서는 아직 한류라는 단어가 없었지만, 한류 열풍의 원인은 중화권, 동남아와 일본은 방향성이 서로 달랐다. 중화권에서는 이전까지 전혀 보지 못했던 파워풀한 댄스를 하는 아이돌과 트렌디 드라마를 통해서 10대, 20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누렸다면, 일본에서는 겨울연가와 같은 멜로 드라마로 1970년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이처럼, 욘사마 열풍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그 이유는 일본의 중장년층이 한국에 대해 비교적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연령층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하지만 적어도 여성들에게는 그 이미지가 희석되어지고 "한국은 동화와 같은 이야기를 가진 아름다운 나라'라는 긍정적인 인상이 자리잡게 된 계기가 된다.
그리고, 한국 영화계는 1999년 쉬리가 일본에서 15억엔의 매출로 대흥행을 기록하면서 점차 일본 진출을 시작하였으며, 2004년 박찬욱 감독의 작품 '올드보이'가 한류의 핵심수요층인 일본과 중국을 넘어서 진정한 의미의 세계적인 대흥행에 성공하였다.
이처럼, 한국 영화계는 2000년대 초반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거대한 문화산업으로 부흥하고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기 시작했고, 국내의 내수시장을 넘어서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도약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아가서 대한민국의 당당한 소프트파워를 과시할 수 있는 거대한 힘이 되어줬으며 세계 무대로 한류의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산업의 한 축을 지탱하게 된다.

4. 2000년대 후반: 한국 컨텐츠의 지속적인 해외 수출과 K-POP의 영향력 증가


2000년대 초반에서는 게임 한류도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게임 한류' 시초에 있는 게임은 당시 그라비티에서 개발한 라그나로크 온라인으로,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5]을 필두로 기타 아시아 국가와 해외에도 서비스를 이어가기 시작했다.[6]
2000년대 후반에 들어 일본에서도 동방신기의 인기를 시작으로 '신한류 붐의 시대'로 불리는 한국 아이돌 가수들의 열풍이 불어 중년층을 넘어서 젊은층으로까지 인기가 확산되었다.
2000년대 후반 시기에 들어서 대장금 이후부터 딱히 아시아권에서 큰 붐을 일으킨 한국 드라마가 많지 않아서 영향력이 약화되었다고 생각되기 쉬운데, 한국콘텐츠진흥원에 의하면 드라마 수출규모는 매년 늘어나고 있었다.
다만, 대박을 기록하는 작품은 줄어들고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도 드라마 대장금이 인기를 끌었다고 하고, 아랍권과 북아프리카에서는 방영되면서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았고 중국, 일본, 터키같은 수많은 국가에서도 리메이크가 되기도 하였다.
이란에서도 한국드라마는 유명하다. 이란에서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방송을 하는 국영방송의 지상파 채널 서너 개는 물론이고, 시청하면 불법인 외국 페르시아어 위성 채널에서도 방송을 해준다. 얼마 전에 이란 정부가 폐쇄 조치를 먹인 뉴스 코프 계열인 파르시 1이 그 예다.
그리고, 뽀롱뽀롱 뽀로로는 전 세계 82개의 시장에 수출되어 2004년 프랑스 최대 지상파 채널인 TF1에서 최대 57%의 시청점유율을 기록했고 2007년 '아랍권 CNN' 으로 불리는 알자지라 방송에서까지 전파를 탔다.
2009년에는 캐릭터 상품 누적 매출액이 무려 8300억 원을 달성했다! 흔히 한류 열풍하면 한국 드라마K-POP, 영화 등을 떠올리지만 온라인 게임같은 미디어도 당당한 문화산업으로 뻗어나가게 되었고 거대한 한류 열풍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실제로, 게임과 서적이 한국 미디어 산업에서 해외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리니지 시리즈아이온, 카트라이더, 미르의 전설, 크레이지 아케이드 시리즈가 조(兆) 단위도 넘게 매출을 기록하면서 성공적인 흥행을 거뒀다.

5. 2010~11년: K-POP 신한류 붐과 국산 온라인 게임 대유행의 시대


카라, 2NE1, 원더걸스,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빅뱅 등의 아이돌을 중심으로 한 K-POP 가수들이 아시아권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아시아를 넘어 멕시코, 페루를 중심으로 한 중남미권에서도 한국 드라마와 한국 아이돌의 인기가 정말 대단하다[7]. 그리고,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 포맷이 외국으로 수출되면서 고무적인 흥행을 거두고 있는 중이다.
2010년 일본 온라인 게임 시장의 점유율 탑 10이 전부 한국산 온라인 게임이었다. 특이하게도, 한국에선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았던 게임이 일본에선 잘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1위인 프리우스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연평도 포격 사태 때에는 영국의 경제학자 다이엔 코일이 "내 둘째 아들이 하고 있는 메이플스토리의 업데이트가 없어질지도 모르니까 북한이 한국을 공격하지 않길 바란다(Son 2 hopes n Korea doesn't attack s Korea or 'there'll be no more updates to Maple Story'..."고 트위터에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이 외에 전 세계에서 팡야 캐릭터인 의 생일 파티를 개최하는 이벤트를 실시하기도 했다. 심지어 던전 앤 파이터는 중국 온라인 게임 시장 1위를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오죽하면 중국서버가 본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초차원게임 넵튠 시리즈에서는 간접적으로나마 엘소드 관련 패러디가 나온다. 참고
음악계의 아시아 컨텐츠 시장은 일본중국 외의 시장이 조금은 아쉬운 실정이다. 불법 복제가 많은 아시아에서 큰 음반 수익 등을 못 얻고 있기 때문.
런닝맨, 무한도전 외국편들에 나타난 열광적인 인기로 보아 예능 방송도 어느 정도 파급된 것으로 보인다.
한류 덕에 수출 길이 열리는 등 한국에 대한 이미지 향상과 친근함으로 가전수출등 한국 상품의 추가 구매로 이어지고 있다. 분명한 것은 1차 드라마 한류붐 이후에 2차 아이돌 한류 붐이 아시아를 넘어서 세계 곳곳 중남미, 중동에 인기를 얻으면서 세계적인 문화 강국으로서의 이미지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정부 주도로 추진한다고 판단하여 연구하는 중이다.
2011년, 한국의 관세청은 여러 가지 데이터를 근거로 한류와 수출의 연관성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관세청은 한류가 확산되고 있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국산 소비재 수출이 급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2005년 이후 중남미의 국가들과 페루에서 그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중남미 수출 50% 급증… “알고 보니 新한류 덕분”

6. 2012년 이후 ~ 현재: 신한류 붐의 지속적인 흥행과 북중미, 남미, 유럽권 흥행 가능성의 시대


미국 문화에 치우쳐 있던 아시아 국가들이 한류 드라마와 가요 등을 통해 아시아화를 시도하고 있다.

- 도쿄대 대학원 교수 소노다 시게토 #

한류가 미국에 확실히 도래했다.

- 미국 국무부 대변인 모건 오테이거스 #

2012년 3월 17일, 도쿄대 후쿠타케홀에서 열린 '현대한국문화의 아시아적 환류(還流)와 지역 아이덴티티의 가능성'이란 심포지엄이 열렸다. 여기서 일본의 소노다 시게토(園田茂人) 도쿄대 대학원 교수는 한류 현상에 색다른 주장을 하였다. 그는 아시아의 한류 현상이 미국 중심의 편중된 문화에서 벗어나려는 아시아의 움직임이라고 주장했다.
2012년 3월 26일, 미국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강연을 하면서 한류에 대하여 언급하였다.오바마 카카오톡-한류 언급 “디지털 시대 소통법” 외대 강연 관심↑
2012년 3월 27일, 프랑스의 카날 플뤼(CANAL plus) 토크쇼 '르 쁘띠 주르날(Le Petit Journal)'에서 얀 바르테즈 MC는 대선주자 자크 셰미나드와 대화하며 샤이니에 대해 "K-POP 열풍의 주역"이라고 평했다. 그는 프랑스의 무소속 대통령 선거 후보인 Jacques Cheminade 자크 셰미나드에게 "LMFAO의 '라이브 마이 라이프'와 샤이니의 '셜록' 중 어느 노래를 선택하시겠습니까?"라고 질문했다. 자크 셰미나드는 결론적으로 대답을 회피했다.(오리지널 출처)Le Petit Journal 27/03/12 - Spéciale Jacques Cheminade, 관련 내용은 동영상 마지막에 등장함.(스포츠조선 관련기사)샤이니, 프랑스 유명 토크쇼서 소개! '미친 인기' 입증
사실 전반기까지의 한류 확장세는 고만고만했지만, 후반기에 접어들자마자 이제껏 듣지도 보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어마어마한 한류 돌풍이 전 세계에 휘몰아치고 있으며, 그 중심에 놓인 것은 바로 싸이강남스타일. 강남스타일은 그동안의 정립된 아이돌 위주의 K-POP의 고정관념을 다 부수고 엄청난 흥행을 하고 있으며 그 기세는 역대 K-POP 콘텐츠의 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우고 있다. 아직까진 이는 한류의 전반적인 돌풍이 아닌 싸이 한 개인의 돌풍이긴 하다.
지금까지 아시아권 시장에서만 고무적인 흥행을 거두고 유럽권과 북미권에서는 그저 작은 팬덤을 형성한 수준에 그쳤던 한류의 한계점을 벗어나 K-POP 가수들의 노래가 전 세계적으로 열광하는 전무후무한 상황을 만들어내기 시작함에 따라 신한류 붐의 지속적인 성장과 새로운 문화부흥의 희망과 가능성을 품게 됐다는 점이다. 그리고 기존의 아이돌 주도의 K-POP이 아니라 새로운 접근과 방식에서의 K-POP 출고 방식을 다시금 재고할 수 있게 되는 지평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리고, 최근 온라인 게임에 이어서 서서히 한국산 모바일 게임의 흥행도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이를 두고 온라인 게임에 이어서 또 다른 게임 신한류의 신호탄이 될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예측하는 사람들이 있다.
2014년에 가장 두각을 드러낸 분야는 단연 드라마였다. 2013년 말부터 SBS에서 방영한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과 대만에서 사회 현상이라고 칭할만한 폭발적인 인기를 보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배우 김수현, 전지현이 중국에서 찍은 CF 제품의 장백산 표기 논란으로 웹상이 시끄러워진 적도 있다. 이후 한국산 드라마가 중화권 시장에 갖는 의미가 더욱 각별해져서 괜찮아, 사랑이야가 약 20억 원에 수출되는 등의 성과를 보였다.
2016년 특기할만한 시작도 역시 드라마였다. 태양의 후예아시아에서 신드롬을 일으켰으며 유럽의 수많은 국가에 판권을 판매해 유럽에서도 엄청난 경제효과를 냈다. 아메리카, 아프리카에 진출하는 중으로 이미 인기를 끌고 있다.
2016년 세계인이 생각하는 한류는 케이팝보다 한식, 패션, 뷰티
2017년 1월 기준으로 전 세계 한류 팬이 무려 6000만 명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세계의 한류 팬의 수가 한국 인구수(5169만6216명·지난해 12월 기준)를 뛰어넘은 셈이라고 한다. 또한 차세대 신한류의 대표주자로 유투버들의 K뷰티와 K웹툰이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2015년 이후부터 온라인 게임 분야로는 검은 사막이 상당한 호평과 동시에 북미권와 유럽권, 러시아권과 아시아권을 상대로 상당히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으며 각종 MMOPRG 온라인게임 차트를 갈아치웠었다. 그리고 외산게임에 밀려서 2017년까지 상대적으로 온라인 게임으로 히트작이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한국 시장에서 PLAYERUNKNOWN'S BATTLEGROUNDS라는 FPS/TPS가 등장을 하게 되고 전 세계 동시접속수 320만명을 찍고 여태껏 한국 게임이 근처도 가지 못했던 스팀 동시 접속자 수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다만, 한국 게임이란 인식이 명확한 검은 사막과 달리 배틀그라운드를 한류와 결부시켜서 말하기에는 해외 게이머들의 인식에 있어서 플레이어언노운, 즉 브렌던 그린의 비중이 굉장히 거대하기 때문에 매우 부적절하다. 이후로는 포트나이트에게 차츰차츰 밀려나는 중이다.
애초에 게임은 공산품과 비슷한 특성을 보인다. 때문에 소프트파워를 이끌어내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한국 드라마, 미국의 헐리웃 영화처럼 해당 문화상품에 대한 소비가 곧 2차적인 파급력으로 이어지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배틀 그라운드나 기타 외국에서 흥행한 한국산 게임을 하면서 한국 문화를 느끼고 한국어를 배우거나 한국 여행을 가서 굿즈를 사고 싶어 하고,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진다거나 하는식의 연속적인 심리와 파생효과로 이어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2018년에는 한류 관련 콘텐츠 수출액이 5조원을 돌파했다. 그리고 중국의 비중이 20%대로 줄고 서구권의 비중이 20%대로 증가했다.기사
또한, 영화계에서는 2019년 봉준호 감독의 작품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황금종려상 수상까지 이뤄내는 매우 큰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타다가 마침내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 부분에 노미네이트 되고, 2월 9일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4개 부문을 석권, 아카데미상의 역사를 새로 쓰는 업적을 이루게 된다.
2019년 8월 21일 '팬덤 연구소 블립'이 오늘의 케이팝 현황, 팬덤 데이터 관측기 ‘케이팝 레이더(K-Pop Radar)’의 사이트 오픈을 기념하여 유튜브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작한 ‘2019년 케이팝 세계 지도’를 브리프 섹션에 공개했다.기사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이 25일 공개한 '2020 해외한류실태조사' 보고서 결과.
[1] 지금이야 "외국에서 한국인이 출연하는 것이 뭐가 대단한 일인가?"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방송되는 프로가 외국에서 방송된다는 자체 하나로도 화젯거리로 충분한 시절이었다. 오죽하면, 80년대 개그 소재로 어느 나이트클럽이 손님을 끌어모으기 위해 호객 문구가 "지금 막 동남아 순회공연을 마치고 막 귀국한 가수 OOO씨의 공연이 있겠습니다." 였겠는가? 당시에는 이렇게 허구라고 해도 해외에 한국 연예인이 나가 공연, 아니 연기라도 했다는 것 자체가 큰 화제였다.[2] NRG가 국내에서는 1.5군 정도였지만, 중화권에서는 H.O.T나 젝스키스보다 더 인기가 많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NRG는 한류 1세대 가수라는 수식어가 당당하게 붙는다.[3] 당시 일본 중,노년대 여성들 사이에서 배용준의 인기나 위치는 현재의 방탄소년단이 해외 여성팬들에게 있어서의 그것과 같았다. 더우기 손자, 손녀를 두었을 법한 50, 60대 할머니들마저 공항으로 집결해 배용준이 입국하는 순간 열렬하게 손을 흔들고 반가워하던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일본 기준으로 본다면 '집안에서 조용히 자녀양육에 살림이나 하고 있어야 할' 일본 여성들이 '고작 한국에서 온 듣보잡 남자 배우' 한명에 저렇게까지 열광적인 환영을 보낸다는게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처사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일본내에서는 한류팬들을 괴짜내지는 정신이상자로 취급하기 시작했던 것이다.[4] <동아시아의 한류>(신윤환,이한우 편저, 전예원, 2006) P76[5] 어느 정도냐면 한때 일본 남성 동인층 사이에서 초메이저 장르를 차지한적도 있다. 1999년의 key-leaf 순애계 에로게 붐 다음 타자가 라그나로크였던것. 그뿐만이 아니라 MMORPG특성상 남자 캐릭터들도 다양하게 짤수 있어서 여성에게도 많이 어필했었다. 2000년대 중반 라그나로크 붐이 끝난뒤, 동인 메이저 장르의 자리는 동방프로젝트가 이어받는다.[6] 단, 그라비티는 일본계 기업인 겅호로 매각된 탓에 2005년 이후 시점에서야 게임한류라는 말은 다소 어폐가 되었다.[7] 특히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는 핵폭탄급 인기를 누리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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