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화/가수 활동
1. 개요
엄정화의 가수 활동 내역이다. 현재는 김완선, 이효리와 함께 대표적인 섹시 여가수로 알려져 있는데, 전성기 시절에는 김현정과 라이벌 구도를 이루었다.[1] 전성기 이후 음악적 변화의 성공으로 재평가 된 케이스라고도 볼 수 있다. 어찌보면 진정한 한국의 마돈나. 마돈나도 그저 그런 팝가수라는 평만 받다가 재평가 받은 루트를 엄정화 역시 그대로 따라가게 된 셈.
2. 상세
박진영은 엄정화를 두고 '''엄정화의 댄스는 최고가 아니며 엄정화의 보컬 기교도 최고라 볼 수는 없지만 무대위에서 노래를 표현하는 표현력 만큼은 엄정화만한 사람이 없다'''라는 평가를 내린 적이 있는데, 그야말로 엄정화의 전성기 시절을 대변할 만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뛰어난 연기력이 뒷받침된 그녀가 연출할 수 있는 무대는 무궁무진하고 음악적인 폭도 넓고 좋은 음색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음악적인 감도 무척 좋다. 다만 이 모든 탁월함에 비해 가창력이 아쉬운 게 가장 큰 흠.
일단 합창단 출신답게 음색이 명료한 편이고 음역대가 매우 넓다. 고음역대로 치면 그냥 타고난 수준으로 D.I.S.C.O만 해도 3옥 솔이 기본이고 무려 최고음 3옥 시까지도 찍고 내려오는 데 이를 별다른 파사지오 구간을 거치지 않고도 진성으로 올릴 수 있는 가수다.[2] 음역대 자체가 워낙 높아 티가 나지 않아서 그렇지 대부분의 히트곡이 3옥 솔에서 3옥 시 사이의 음역대에 집중되어 있다. 다만 성량이 아쉽고 라이브할 때 굉장히 불안하다는게 아쉬운 점. 하지만 또 불안한 와중에도 고음 처리를 다 하는 신기한(?) 가창력을 지닌 가수.
그런데 갑상선암 수술 이후로는 예전만큼 고음을 내지는 못한다고 한다. 수술 후 목소리를 되찾는 과정에서 발성을 다시 다듬느라 그렇게 되었다고.
데뷔 전 MBC 합창단으로서의 경력이 있으며, 이 때 ABU(Asian-Pacific Broadcasting Union) Golden Kite World Song Festival에 양수경의 코러스로 참여한 후, 가수 제의를 받아 데뷔하게 됐다고 한다.[3]
가요계의 입지때문인지 줄곧 '한국의 마돈나'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음악적 행보로 미루어보면 오히려 호주의 여가수 카일리 미노그와 공통분모가 많다.[4] 초창기에는 대중을 의식한 노래들을 주로 내다가[5] 커리어가 한풀 꺾인 뒤로는 일렉트로니카 장르에 도전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는 점도 그렇고, 성소수자들에게 인기 많은 게이 디바로서의 면모 등이 그렇다.
3. 도약기
3.1. 1집 'Sorrowful Secret' (1993)
1993년에 발매한 1집 'Sorrowful Secret'에서는 그녀가 출연한 유하 감독의 영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의 음악 감독이었던 신해철의 곡을 받아 OST의 성격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음반 판매량으로 겨우 8만장을 기록해서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더라도, 영화에서 엄정화가 맡았던 카페 가수 캐릭터를 기반으로 삼아 당시 대세였던 강수지, 하수빈을 위시로 하는 '''청순가련형 여가수들과 차별화된 몽환적이며 에로틱한 컨셉으로 공략을 시도'''해서 군부대를 중심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모았고, 이 덕분에 그녀는 가수 데뷔 첫 해부터 군인이 가장 좋아하는 여가수로 선정되는 등 섹시 디바로서의 성장 가능성이 점차 엿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이 곡은 '''데뷔 시절 엄정화라는 가수의 고유 컨셉을 정확히 잡아준 가이드라인 같은 곡'''이어서 엄정화 본인이 매우 애착을 가진다고 KBS 불후의 명곡에서 밝혔는데, '''사실 이 컨셉은 다름아닌 신해철이 직접 잡아준 것이다.'''
신해철의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신해철이 본 엄정화의 첫인상은 섹시와는 거리가 먼 청순한 느낌이었고 소속사 측도 가요계의 대세였던 청순가련 여가수 컨셉으로 엄정화의 데뷔 앨범을 만들고 있었으나, '''엄정화를 본 신해철은 그녀의 섹스어필 포텐을 간파'''하고 앞으로 청순가련 트렌드는 저물고 남자들이 여가수를 보면서 섹스어필을 즐기게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으면서 엄정화는 섹스어필 쪽으로 내재된 끼가 있다고 매니저를 설득했고, 녹음과정에서도 레코딩 엔지니어를 제외한 매니저 및 스탭들을 모두 쫒아낸 다음 엄정화의 내재된 끼를 끌어내기 위해 혼도 많이 내고 북돋아주기도 하는 등 여러모로 애를 많이 썼다고 한다.
엄정화 본인도 엄정화 고유의 컨셉을 잡아준 가이드라인으로 생각하며 애착을 가질 정도였고 훗날 신해철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오빠께 정식으로 감사드리고 싶었어요. '눈동자'라는 곡이 없었으면 그동안의 엄정화란 가수는 존재할 수 없었을 거에요'''라고 고인이 된 신해철에게 깊은 고마움을 표한 적이 있다.
3.2. 2집 'Uhm Jung Hwa 2' (1996)
1996년에 발매한 2집 'Uhm Jung Hwa 2'에서는 최준영이 작사/곡한 타이틀곡이었던 '슬픈 기대'가 다채로운 색상의 가발을 쓴 뮤직비디오로 화제를 모으면서 차트 10위 권에 안착하는 등 전작에 비해서는 나아졌으나, 대중들로부터 큰 반향을 얻기에는 아직 부족한 감이 있었다.
당시 섹시컨셉으로 나오는 가수들은 반응이 좋지 않았는데, '''아직 어린 나'''로 데뷔하고 이후 예능에서 이주일 성대모사로 유명해져서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섹시컨셉의 '''변신'''을 타이틀로 들고 나온 신수경은 후속곡이었던 리메이크곡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에서야 주목받을 수 있던 정도였다. 민해경은 공백기 이후 아예 섹시의상을 입고 강한 퍼포먼스의 '''너를 다시 보게 됐어'''를 여름에 선보였으나, 얼마 못 가서 접어야 했다.
사실 '슬픈 기대'라는 곡 자체의 멜로디는 나쁜 편이 전혀 아니었으며 음악적 측면에서나 무대 스타일 측면에서나 전작인 1집에 비해 한층 강렬한 느낌으로 진화한 덕분에 '''그녀가 섹시 댄스 디바로 나아가게 하는 교두보'''가 되어 주었고, 후속작인 3집에서의 '배반의 장미' 활동시 컨셉이 당시로서는 매우 강력하고 파격적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이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 뒤 김형석이 작사/곡하고 후속곡으로 활동한 발라드인 '''하늘만 허락한 사랑'''이 타이틀곡 '슬픈 기대'와는 달리 대중들에게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가요 프로그램에서 상위권을 차지했고 mbc에서는 1위 후보까지 오르면서 이 곡 덕분에 2집의 음반 판매량 또한 전작의 배를 넘는 1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는 등 가수로서의 커리어에 상승 곡선을 그렸다. 참고로 이 곡은 '''엄정화의 대표 발라드곡'''으로서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데, 실상 가사 내용은 NTR 수준으로 워낙 막장이다.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2집의 원래 타이틀곡은 1번 트랙인 '''사랑 갈등'''이었다. 이후의 타이틀이었던 '''슬픈 기대'''를 제외한 2집 전곡의 작사를 윤성희가 담당했는데, 그녀는 90년대 초반 방송작가로 데뷔한 이후 윤종신, R.ef 등의 가수들과 작업했다. 무엇보다 90년대 초중반 젊은 연인들의 사랑방식을 감각적으로 그려내는 데에 능통했고 엄정화 2집에서 꽃을 피웠던 것이다. 그 당시 나름대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앨범.
4. 전성기
4.1. 3집 '후애' (1997)
1997년에 발매한 3집 '후애'(대표곡: '''배반의 장미''', '''후애''', '''삼자대면''')에서는 주영훈이 작사/곡 한 타이틀곡 '''배반의 장미'''가 데뷔 이후 최초로 여러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하는 기록을 안겨주었고[6] 음반 판매량 30만 장으로 전작의 곱절 수준으로 뛰어넘는 등 그야말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인기 여가수의 반열에 오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장미 가시를 상징하는 뾰족하게 세운 헤어 스타일, 짙은 화장, 검은색 무대 의상 등 아방가르드한 무대 스타일로 섹시함을 포인트로 잡은 이 노래로 그녀는 각 음반 및 가요 차트를 휩쓸었고, 여러 무대에서 라이브를 선보이면서 뛰어난 퍼포머로서의 역량을 과시했으며 후속곡인 삼자대면도 상위권까지 오르면서 선전했다.
그녀의 회고에 의하면 당시로선 워낙 파격적인 컨셉이다 보니 처음에는 소극적으로 일부 머리카락만 세웠으나, 곡이 점차 인기를 얻으면서 자신감을 얻었는지 완전 번개머리 수준으로 강조했다고 한다.
그 뒤 3집 활동 막바지 때 대 신인이었던 지누션의 데뷔앨범 후속곡인 '''말해줘'''의 피쳐링을 맡았으며, 곡도 좋은데다 엄정화의 인기효과까지 결합되면서 당시 신인이었던 지누션은 이 곡으로 가요프로그램에서 여러 번 1위를 차지하면서 메이저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엄정화 또한 사실상 후속곡 수준으로 활동'''하면서 인기를 이어갔으며 또 다른 활동곡인 발라드곡 '후애'도 가요 차트에서 상위권에 랭크되었고 순위권에서도 꽤 오래 머물렀다. 이 때 시작된 양현석과의 좋은 인연은 10여년 후인 2008년 미니앨범의 'D.I.S.C.O.'로 다시 이어졌다.
실제 이 곡은 지누션에게 주어지기 전부터 엄정화가 솔로곡으로 탐을 무척이나 내던 곡이었으나, 사실 이곡의 작사/작곡자인 이현도는 당시 양현석과 함께 공동 프로듀싱을 하고 있어 지누션에게 끝내 이 곡을 주게 되었고, 결국 엄정화는 보컬부분 피쳐링으로라도 참여 가능하도록 부탁하여 성사가 된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이 곡으로 활동하면서 지누션 멤버들과의 스캔들 때문에 지누션 팬들로부터 욕을 많이 먹어서 고생도 많이 했다고 한다.[7]
4.2. 4집 'Invitation' (1998)
3집의 대성공 이후 주영훈과 다시 한번 손잡고 1998년에 출시한 4집 'Invitation'(대표곡 '''초대''', '''POISON''', '''숨은그림찾기'''[8] )는 '''엄정화의 명곡들이 쏟아져 나온 명반'''으로 음반 판매량 또한 47만장으로 전작보다 상승하면서 '''실질적으로 그녀의 최전성기를 대표하는 앨범'''이라 할 수 있다.
타이틀곡 '포이즌'은 전작인 '배반의 장미'에서 보다 세련된 스타일로 다듬어진 멜로디와 편곡 덕분에 국민적 사랑을 받았으며, '''당시 여성들에게는 굉장히 충격적이었던 5대 5 가르마의 스트레이트 단발머리'''를 선보이며 패셔니스트답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9]
당시 모델로 이름을 날리던 차승원이 출연한 뮤직비디오도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코요태의 김종민은 이 곡에서부터 엄정화의 백댄서로 연예계에 입문하여 준수한 외모 덕분에 엄정화의 댄스 파트너 급으로 급부상하며, 개인 팬클럽이 생겼을 정도로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여담으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대표곡 중 하나인 'Sleep Now In The Fire'을 들어보면 노래 'Poison'이 나온다. 레코딩 중 일렉기타와 연결된 케이블을 통해 한인 라디오 방송 주파수가 혼선되어 엄정화의 노래가 잡음으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몇번씩 재녹음을 했을 때 오히려 잡음이 들어간 게 녹음이 잘 되기도 한 데다 멤버들이 오히려 재밌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대로 앨범에 넣어버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KBS 스펀지 41회 방송분에서 나왔다. 그 외에도 후반부에 포이즌 리믹스로 활동할 때에는 4집 수록곡인 '워킹 걸'의 도입부를 이용했다.
4집 후속곡으로 활동한 박진영이 작사/곡의 '초대'는 파격적인 노출 수준의 뮤직비디오 부채를 활용한 섹시 안무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중간에 상체 누드로 엎드려있는 엄정화의 등을 웬 할아버지 스님이 나와서 밀어 주신다...참고로 이 장면에서 엄정화가 상반신 누드로 엎드려 있는 모습이 나와 뮤직비디오가 일부 지상파 방송에서 방송금지 처분을 당했다.
참고로 이 곡의 랩 파트는 god 데뷔 전이던 데니 안과 박준형이 맡아서, 후속곡 활동 초기에는 둘이 무대에 나왔으며 리믹스 이후에는 백댄서이던 김영완이 데니 안 파트만 부르는 것으로 바뀌었다. 참고로 이 김영완이란 사람은 그룹 콜라의 리더 출신으로 코요태 4집 '비몽'시절 마약사건으로 탈퇴한 김구를 대신해 객원랩퍼로 활약했고 무한도전 토토가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사람이 출연해 랩파트를 담당했다. 참고로 엄정화도 이후 슈가맨 2에서 김영완이 속한 콜라를 제보했다.
그리고 불후의 명곡에 출연한 박진영은 초대를 작업한 일화를 공개했다. 엄정화와의 술자리에서 본인 필름이 끊길 정도로 술을 먹고 다음 날 엄정화와 통화를 했는데, 엄정화가 '나 노래 만들어준다고 했던 것 기억하지?'라고 묻자, 기억이 난다 하고, 오로지 엄정화에만 집중해 급하게 만든 곡이라고 한다.
4.3. 5집 《005.1999.06》 (1999)
1999년 발매된 5집 '005.1999.06'(대표곡 '''몰라''', '''FESTIVAL''', '''SCARLET''')에서는 3집과 4집에서의 연전연승으로 솔로 여가수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다진 엄정화가 당시 테크노 트렌드에 발 맞추어 귀마개에 물이 들어가 있는 일명 '''물병헤드폰'''을 쓰고 나오면서[10] 패션 아이템으로 까지 승화시키는 등 대 히트를 기록했으며 음반 판매량은 '''엄정화 역대 앨범 사상 최고 수준인 55만장'''을 기록할 정도로 '''그녀는 이 앨범에서 인기도의 정점을 찍었다.'''
3집과 4집에서 성공을 거두었던 주영훈의 곡이 아닌 김창환의 곡인 '''몰라'''를 타이틀로 하면서 화제가 되었으며, 참고로 엄정화는 김창환에게 이 곡을 받기 위해 2년 가까이 삼고초려를 했을 정도로 매우 공을 들인 게 훗날 화제가 되었다. 특히 이 당시에는 그녀가 이미 인기를 누렸던 톱스타였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삼고초려하는 것 뿐만 아니라, 김창환의 지시대로 당시 거의 무명이었던 가수 김태영[11] 의 지도까지 성실히 받는 등 정성을 쏟아준 덕분에 김창환도 상당히 흡족해했다는 후문이다. 참고로 이 곡은 박미경이 부르고 본인은 집착을 부르기로 했는데, 김창환의 설득으로 둘의 노래가 바뀌었다고 한다. 이는 히든싱어 5에서 박미경이 나왔을 때 언급되었다.
3, 4집에 이어 5집에서도 라이브 논란은 끊이지 않았는데, 발단은 또 뮤직뱅크에서였다. 컴백 후 처음 라이브로 '몰라'를 소화했을 때 후렴 가사를 틀리는가 하면, 음정 불안과 음이탈이 계속되었다.[12]
주영훈이 만든 후속곡 '페스티벌'은 그동안 엄정화가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던 밝고 경쾌한 컨셉으로 대중들에게 어필했으며 활동시기가 한창 여름일 때라서 피서 시즌과 맞물려서 길거리마다 이 노래가 나왔을 정도로 타이틀곡 못지않게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으며 5집 음반 판매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했다.
사실 처음 주영훈이 이 곡을 쓰고 컨츄리꼬꼬에게 주었으나, 가뜩이나 가벼운 그룹 이미지에 이 곡까지 해버리면[13] 이미지가 더 가벼워질 것 같아서 거절했고, 그 다음에 엄정화에게 주려고 할 때 그녀도 처음에는 하기 싫다고 울었을 정도였지만 결과는 알다시피 여름만 되면 ATM으로 변할 정도로 대성공. 참고로 그 당시 한 시즌 54개의 홈런을 치면서 대활약을 하기 시작한 삼성 라이온즈의 이승엽이 타석에 들어설 때 나오던 등장곡이 되었다. 너무 가벼운 이미지와는 대조되게 음정 자체는 상당히 멋진 음정으로 엄정화의 노래 중에서도 손에 꼽을 수 있는 명곡이다.
전작의 인기를 꾸준히 이어가며 대한민국 대표 여가수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면서 그 해 KBS 가요대상 청소년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1999년 말에 5.5집의 성격으로 베스트 앨범을 발표했고, 주영훈이 만든 '크로스'라는 신곡으로 활동을 이어가면서 14만장의 음반판매량을 기록하는 등 전성기의 끝자락을 예고하게 된다.
5. 성숙기
5.1. 6집 'Queen of Charisma' (2000)
2000년 6집 'Queen of Charisma'(대표곡 '''Escape''', '''틈''')은 고품격의 귀족적 컨셉으로 접근했다. 'Queen of Charisma'라는 범상치 않은 앨범 타이틀에 세계적 포토그래퍼 리 젠킨스와 호흡을 맞춰 찍은 이번 앨범의 자켓과 사진집은 언뜻 보아도 굉장히 럭셔리할 정도로 국내 가요계에서의 엄정화의 위상을 대중들에게 뽐내는 듯한 컨셉으로 접근했으며 전성기때의 앨범들과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주영훈 스타일의 댄스곡들로 승부를 걸었다. 앨범의 디자인은 이승환과의 인연으로 앨범 디자이너를 시작한 GIGIC 이강현 실장의 작품. 이승환 6-9집까지의 앨범, 크로스진 데뷔앨범, 엠블랙 데뷔~미니5집 리패키지까지의 앨범 등등 다수.
하지만 '''화려한 포장과는 달리 속의 알맹이는 그렇게 알차지 못했다.''' 타이틀곡 'Escape'에서는 스팽글이 달린 와이드 팬츠와 한층 올린 업헤어를 '카리스마'라는 콘셉트에 맞춰 내세웠지만 전작들이 얻었던 광범위한 지지를 시장에서 이끌어내는 것에는 실패했으며, 킹콩이 등장하는 뮤직비디오를 기반으로 활동한 (김건우 작곡가가 야심차게 만든) 일렉트로니카 풍의 댄스곡 '틈'으로 음악적인 시도를 했지만 프로듀서였던 작곡가 주영훈은 일렉트로니카 장르와 인연이 없었기에 음악성에 있어서 좋은 평가를 받기도 어려웠던데다, 이때 그녀는 아직 하우스 댄스 장르를 기반으로 인기를 얻고 있던 시기인지라 대중들의 반응은 시원찮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전작들과 차별화되지 못한 진부한 음악 스타일에다 6집 활동시기인 2000년 하반기 당시에 쟁쟁한 가수들이 대거 컴백하는 바람에 타이틀곡 'Escape'와 후속곡 '틈' 모두 가요 차트에서 10위 권 안에 드는 등 선전했음에도[14] 음반 판매량은 '''전작인 5집에 비해 반토막 수준인 23만장으로 급감'''하는 굴욕을 당했다.
5.2. 7집 '화(花)' (2001)
이듬해인 2001년에 발매한 7집 '화(花)'(대표곡 '''다가라''')에서는 기존의 강력한 비트의 하우스 댄스에서 다소 편한 느낌의 디스코 풍의 음악과 복고 스타일의 의상으로 무대에서 어필했다. 타이틀곡 '다가라'는 6집보다는 나은 반향을 보였고, 확실히 더 대중적이었으며 중독성이 강해 케이블 뮤직차트에서는 1위를 기록, 지상파 차트에서는 1위 후보에 오르는 등 괜찮은 행보를 이어갔다. 후속곡인 '괜찮아요' 역시 중위권에 들면서 선전했으며 음반판매량 또한 전작인 6집보다 약간 적은 수준인 20만장으로 선방했다.
인기에 있어서 성장세는 멈췄을지 몰라도 그동안 공고히 다져온 대표 여가수로서의 명성은 어디 가지 않는지 '오드리 헵번 스타일'을 키워드로 앞머리를 짧게 자른 뱅헤어가 화제를 모으며 유행이 되기도 했다.
이 앨범이 출시된 이후 2002년부터 국내 가요계 음반 시장이 급속도로 침체의 길을 걷게 되었고, 엄정화 가수 본인으로서도 연령대가 30대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걸그룹을 비롯한 10대 여가수들과 경쟁하기 점차 힘들어지게 되자 인기도에서 한계를 느끼게 되는 등 댄스 여가수로서 위기가 찾아왔다. 연령대에 맞게 발라드로 전향하라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도 많이 있었지만, 그녀는 이를 마다하고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해 댄스 여가수로서 음악적으로나 스타일로나 성숙되고 진보된 모습으로 다시 한 번 차별화를 시도하는데 집중하게 된다.
2002년에는 클론과 홍경민과 함께 월드컵 송인 '발로 차'에 작업에 참여했다.
5.3. 8집 'Self Control' (2004)
엄정화 - Eros
2004년 발매한 8집 SELF CONTROL에서는 엄정화 정규앨범 사상 최초로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전면에 내세우는 시도를 했다. 이 앨범은 더블 앨범으로, 한 장은 일렉트로니카곡들 위주의 'self side', 다른 한 장은 기존과 비슷한 이미지의 댄스곡 위주의 'control side'이다. 실질적으로는 self side에 수록된 정재형 작사/곡의 <Eternity>와 control side에 수록된 주영훈 작사/곡의 <Eros>로 더블 타이틀 활동을 했으며 후속곡인 <Flying>으로 짤막하게 활동했다. 의외로 차라리 과도한 일렉트로니카보다는 기존 엄정화 스타일을 살린 'control side'를 더 높이 평가하는 평론가가 많았다.
일렉트로니카인 'Self Side'에 참가한 작곡가들의 면모는 화려한데 정재형, 롤러코스터, 윤상, 프랙탈, 달파란 등 당시 한국에서 일렉트로니카풍 가요를 한다는 아티스트들은 다 불러왔다. 본인이 일렉트로니카를 하고싶어 직접 발로 뛰며 섭외했다고. 다만 이 막강한 프로듀서진에 엄정화가 잘 녹아들지 못했고 엄정화의 앨범이 아니라 오히려 각 프로듀서들의 곡에 엄정화가 피처링한 곡들을 모아놓은 것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타이틀곡의 대중성도 심히 떨어지는 바람에 유일하게 차트제를 운영했던 MBC에서는 7위에 턱걸이했고 음반판매량도 전작인 7집의 1/8 수준인 2만 5천장에 머무르면서 흥행에 처참하게 실패했다. 활동 기간도 길지 않아 그녀의 8집 활동 자체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듯. 다만 이 앨범의 시행착오가 없었다면 다음 앨범인 9집 Prestige의 수준있는 음악성이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타이틀곡 'Eternity'는 마돈나의 8집 <Music> 수록곡 'Don't Tell Me'의 편곡, 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멜로디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표절은 아니다. 불행히도 그녀의 가창력은 마돈나가 아니었으며 정재형도 미르와스 아마드자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망했다. 마돈나도 가창력이 아주 뛰어난 가수는 아니지만 적어도 엄정화보다는 낫고[15] , 아마드자이는 대표작이 마돈나와의 작업일 정도로 그리 돋보이는 프로듀서는 아니므로 정재형이 딱히 꿀릴 것은 없지만, 결과물만 봤을 때는 그렇다는 이야기.
오토튠을 과도하게 사용했고 음악방송에도 DJ세트를 마련, 라이브로 오토튠을 사용하는 등의 혁신적인 시도를 했다. 하지만 사실 오토튠의 음성왜곡 효과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보컬과 프로듀서의 역량이 둘다 받쳐줘야 한다. 보컬은 배음을 최대한 빼고 음을 직선적으로 불러야 하고, 프로듀서는 그 보컬의 목소리를 편집증적으로 1/100초 단위로 자르고 이어붙여야 매끄러운 결과물이 나오는 법인데...결정적으로 '그냥 엄정화' 목소리에 오토튠 효과만 줘서 뭔가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는 평을 받았다. 조금 변명하자면, 2004년에는 오토튠을 사용한 기법이 2010년대만큼 널리 퍼져있지 않았다. 실제로 오토튠 자체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것 자체도 2005년의 티페인 이후이고...이 당시 잘 알려져 있지 않던 것을 혁신적으로 도입했다는 것은 맞다. 노하우까지 익히지 못했을 뿐.
엄정화 - Eternity
Madonna - Don't Tell Me
8집은 판권 문제로 음원 사이트에서 서비스가 되지 않고 있다.
5.4. 9집 'Prestige' (2006)
'''37세''' 때인 2006년에 발표한 다음 앨범인 9집 Prestige에서는 전작의 방향을 이어와서 앨범 전체적으로는 지누, 캐스커, 페퍼톤스, W 등을 영입해 일렉트로니카가 주류였다. 활동이 많지 않았기에 대중적인 반향도 미미했고 음반 판매량도 6천장 수준으로 바닥이었지만 외적 이슈와 관계없이 음반만큼은 전문가들에게 호평을 받아 그 해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앨범상'을 받았다.
지난 앨범에서도 일레트로닉을 시도했지만 엄정화 본연의 색깔이 전혀 녹아들지 못했던 반면, 본작에서는 앨범의 주인이 엄정화임이 분명해졌다. 앨범의 전반적인 컨셉 및 장르는 영국 일레트로닉 밴드인 모로코와 마돈나의 영향을 받은 듯 하다. 현재 일렉트로니카가 주류를 이루는 2010년대의 가요계 트렌드를 감안하면 상당히 앞서가는 앨범이었기에 어찌보면 비운의 명작이라 불릴 정도.
앨범의 전체적 컨셉은 당당히 사는 여성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동안 섹시가수 이미지를 버릴 수 없어서인지 타이틀곡은 노골적인 섹스어필을 나타내는 방시혁이 작곡한 'Come 2 Me'를 선정했지만 좋은 반응을 이끌지 못했다. 이곡은 원래 앨범 발표 후 얼마동안 Cum 2 Me로 명명했다가 Come 2 Me로 변경되었다. 이 때 제목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 'cum'이라는 단어는 영어 속어로 '사정하다'라는 뜻이기 때문에 선정적이라는 것이다[16] . 가사 내용도 '너만 생각하면 달아올라, 너의 손길에 쓰러지고 싶어'라면서 대놓고 성관계를 비유하였기 때문에 논란이 컸다. 또한 노래 자체도 당시 유행하던 팀벌랜드의 사운드를 차용해서인지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곡들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비판도 받았다.
앨범 발매 직후 마돈나를 벤치마킹해 이태원의 D모 게이클럽에서[17] 쇼케이스를 열기도 했다. 사실 'Come 2 Me' 활동 때도 하드게이풍의 게이 스타일 백댄서들을 대동했다. 사실, 엄정화는 이효리와 더불어 게이들에게 가장 상징적인 게이 아이콘으로 손꼽힌다.
미국에서는 마돈나, 브리트니 스피어스, 레이디 가가 대한민국에서는 엄정화, 이효리가 있다. 게이 커뮤니티에서는 유독 여자 솔로 가수가 인기를 얻는다. 특히 한물 간 여자 가수가 인기가 높은 것 같다거나, 대중이 주목하는 여가수들은 그들의 취향을 비껴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마돈나의 경우 전성기 때부터 게이 아이콘으로 주목받았고 레이디 가가 또한 데뷔 초부터 그러했으므로 잘못된 시각이다.
tvN 개국방송에서 최초로 'Come 2 Me'의 방송무대를 선보였는데, 무대 의상이 가히 속옷에 가까워 큰 이슈가 되었다. 당시 여론은 노골적인 의상에 악플로 도배되었고, 나이 많은[18] 여가수의 추태라는 의견이 주를 이루었다. 허나 이는 당시 대한민국의 정서상의 문제로, 서양에서는 레이디 가가, 마돈나[19] , 리아나,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의 디바급 여가수들은 이런 옷을 매 공연 때마다 입는 등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었다. 특히 마돈나는 50살이 넘어서도 이런 옷을 즐겨 입는다.[20]
tvN 개국 축하연 뿐만 아니라 MKMF, 각종 음방 등을 돌 때마다 논란과 화제가 되었으니 화제성 하나만큼은 대단했다고 할 수 있다. 훗날 엄정화가 당시의 패션에 대한 해명을 인터뷰에서 밝히길, 속옷 모양의 의상이 아니라 '''진짜 팬티'''였다고 한다. 본래는 다른 의상이 준비되었으나, 사이즈가 안 맞아서 급한대로 코디들이 사온 팬티를 입고 나갔었다고. 여기서 영감을 얻었는지 나중에는 속옷브랜드도 런칭했다. 먼 훗날 아예 이런 옷이 컨셉인 걸그룹까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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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의상은 모로코의 의상을 차용한 듯하다.
6. 제2의 전성기
6.1. 미니앨범 'D.I.S.C.O'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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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는 승승장구하던 반면 앨범은 대중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하던 중 2008년, 발랄한 일렉트로니카 클럽 사운드 풍의 곡 'D.I.S.C.O'를 발표한다. 계절 분위기에 잘 맞고 노래가 워낙 좋았던지라 다수의 음원 차트의 1위에 오르고 음반 또한 8천 장의 판매량을 기록[21] 하는 등 큰 성공을 거두며 가수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YG엔터테인먼트의 프로듀싱진에 의해 만들어진 미니앨범으로, 2007년 빅히트를 친 빅뱅의 거짓말을 듣고 반한 엄정화가 YG엔터테인먼트의 수장인 양현석에게 직접 연락해 앨범을 함께 내고 싶다고 먼저 요청하여 이루어졌다. YG가 어렵던 시절 지누션의 ‘말해줘’에 피쳐링을 해줘 지누션의 인기와 YG의 재정상태를 크게 끌어올려준 공로가 있었기에, 오랫동안 연락을 못한 사이였음에도 거리낌 없이 제작을 수락했다고.
무대 의상이 파워 숄더에 형광색으로 떡칠이 된 극도로 과장된 스타일이었고, 그 모습이 꼭 ‘기뉴특전대’의 대장 기뉴의 옷차림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엄기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럼에도 너무 찰떡같이 잘 소화해서 "저런 컨셉츄얼한 의상을 소화할 수 있는 가수는 역시 엄정화 뿐"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한편 정형돈이 무한도전에서 이 의상을 엄정화 못지않게 소화해 일명 '돈기뉴'로 큰 화제가 됐다.[22]
타이틀곡 활동 기간이 마침 빅뱅의 공백기였던 터라 T.O.P가 거의 매번 빠짐없이 무대에 함께 올랐는데, 후일 엄정화는 지누션 때와 달리 스캔들 같은 악재가 전혀 없어서[23] 빅뱅 팬들이 워낙 응원을 잘 해준 덕에 매우 즐겁게 활동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유튜브에서 당시 무대영상을 보면 탑을 보러온 팬들이 엄정화의 이름을 불러주면서 응원법을 하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수록곡 ‘DJ’는 CL이 랩 피처링을 한 곡으로, 이 노래 덕에 2NE1으로 데뷔하기 전에 미리 무대에 서봤던 적이 있다.
한국에서 워낙 인기가 있었던 탓에 2009년에는 대만의 가수인 온람(Landy Wen)이 이 곡을 중국어로 번안했다.# 중화권에서 한국의 컨텐츠를 표절하는 사례가 많아 처음에는 표절곡인 것으로 의심하는 네티즌들이 많았으나 정식으로 판권을 구입한 번안곡으로 확인되고 있다. 참고로 이 곡은 Delegation - Heartache No. 9을 샘플링했다.
7. 가수활동 재개
7.1. 무한도전 '토토가' 특집 (2015)
1990년대 뮤지션들을 재조명하는 취지로 기획된 MBC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특집에 극적으로 출연하며 화제가 되었다. 별다른 노출 없이도 심플한 듯 한 의상컨셉만으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관객들을 매료시킬 정도의 섹시함과 카리스마로 무대를 장악하여 대중 및 언론으로 부터 찬사를 받았으며, 국내 유수 음원사이트에서는 그녀의 활동곡이었던 4집의 '포이즌'과 '초대'가 실시간으로 상위권에 랭크되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2000~2010년대의 걸그룹을 중심으로 과도한 노출과 수준 이하의 민망스런 안무들 때문에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번 엄정화의 무대를 통해서 가요계에서 섹시 컨셉의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을 정도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론도 있는데 사실 엄정화 4집도 1990년대 말 당시의 기준으로는 민망스런 에로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안무로 여겨졌다. 어디까지나 시대상이 바뀐 것 뿐이라는 것이다.
7.2. 10집 'The Cloud Dream of the Nine'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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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DREAM의 더블 타이틀 곡인 'Watch Me Move', 'Dreamer'
2016년 12월 27일에 발매되었으며 앞서 26일에는 SBS '2016 SAF 가요대전'과 '카운트다운 라이브: Umaizing'를 통해 신곡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소설 구운몽을 테마로 하였다고 한다.# 앨범은 FIRST DREAM, SECOND DREAM이란 이름으로 두 파트로 나누어 따로 발매될 예정인 듯. 12월 27일 공개에서는 1~4번 트랙이 공개되었다. 구운몽이 테마인만큼 앨범도 두 파트 합쳐 총 9개의 트랙.
전작 앨범이 YG엔터테인먼트가 총 프로듀싱을 맡은 것 처럼 이번 앨범은 미스틱 엔터테인먼트의 프로듀싱진과 함께했다. 보도가 나온지 대략 2~3년 정도 되었으니 꽤 오랜기간 준비해온 앨범인 듯.
미스틱 쪽에서는 이민수, G.고릴라, 포스티노, 김이나 작사가가 참여했으며, 그 외에 OnePiece, Kenzie, 프라이머리(프로듀서) 등이 앨범에 참여했다. 피처링에는 이효리, 샤이니 종현, 정려원이 참여했다.
7.3.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2017)
2017년 2월 4일에 전설로 다시 TV로 대중 앞에 등장했으며 이 프로그램에서는 역대 최다 인원의 가수가 참여했다.(총 42명) 백댄서로 대상을 받은 김종민이 출연했으며, 그를 본 엄정화는 만감이 교차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7.4. 10집 'The Cloud Dream of the Nine - 두 번째 꿈'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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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DREAM의 타이틀 곡인 'Ending Credit'
총 4곡. 당초 5곡 예정이었는데, 나머지 한 곡인 She는 12월 말에 추가되어 완전체 정규 10집이 발매된다. 볼 수 있듯이 작년 첫 번째 꿈 발매 당시 공개했던 티저와 달리 Photographer와 Ending Credit의 순서가 바뀌었으며, 타이틀 곡인 Ending Credit에는 대세 가수가 된 SURAN이 작곡에 추가 되어있다. 첫 번째 꿈 이후 앨범에 추가 작업이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음원 공개 당일 주간 아이돌 엄정화 편이 방송되고 저녁 내내 실시간 검색어를 점령하는 등 화제가 되었다. 비록 차트 진입은 실패했으나, 한발 늦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50위권까지 다시 올라왔다. 특이한 점은 주로 여초 커뮤니티들에서 지지가 높았다는 것. 무대만 몇 번 더 공개되면 순위가 더 올라갈 가능성도 있어 보였으나 큰 반등은 없었다.
그래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고, 뮤직비디오와 곡이 엄청난 호평을 받아서 엄정화 본인도 SNS를 통해 '힘이 나고 행복하다'는 메시지를 올렸다.
춤은 1million dance studio의 댄서로 유명한 리아킴이 담당했다. 노래 공개 이후 미스틱 공식 유튜브에 1million dance studio와 콜라보한 댄스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엄정화의 기존 노래들과 달리 안무 난이도가 상당히 높다. 주로 포인트 위주였던 과거 안무와 달리 이번에는 도입부 독무를 시작으로 후렴부 군무까지 꽤나 난이도가 높은 편.
타이틀 곡의 가사가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만남', '사랑', '이별'을 영화계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을 이용하여 한편의 스토리로 써 내려간 게 매력적인 포인트. 또한 엄정화 자신 또한 가수와 영화배우를 병행하는 인물인 만큼 Ending Credit의 컨셉은 본인과 찰떡인 셈.
음반 전체적으로도 큰 호평을 받아 2018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팝 음반에 노미네이트되었다. 특이한 건 앨범 자체는 2017년에 공개되었는데 2018년 음반으로 후보에 들었다는 것. 게다가 시상식 자체는 2019년 2월 26일에 열렸다.
7.5. 놀면 뭐하니? - 환불원정대 활동 (2020)
7.6. 디지털 싱글 - '호피무늬' (2020)
2020년 12월 22일 새 디지털 싱글 '호피무늬(Feat. 화사, DPR LIVE)'를 발매하고 컴백했다. 프로듀싱은 다이나믹듀오의 개코가 담당. 솔로활동은 3년만의 컴백이다.
환불 원정대 활동이 마무리 된 지 약 한달여만에 고속컴백을 했는데, 사실 이 곡은 환불원정대 활동 당시 엄정화가 준비해갔던 후보곡이었다고 한다. 당시 다른 멤버들의 반응이 좋았어서 바로 활동을 결정했다고.*
[1] - 1998년 KBS가요대상 라이벌전[2] 티얼스의 최고음이 3옥솔인걸 생각해보면 기본 음역대 자체가 매우 높다는 걸 알 수 있다.[3] 사회자가 '범정화'라고 소개한다. 'Eom'이 'Bom'으로 잘 못 전달된 듯.[4] 실제로도 둘은 자주 비교되기도 하였다. 특히 엄정화가 2000년대 들어 일렉트로니카를 시도하기 시작하면서 카일리 미노그를 벤치마킹 한 것 같다는 의견도 많이 있었다.[5] 카일리 미노그는 팝락을 비롯한 댄스팝, 엄정화는 주영훈을 필두로 한 하우스 댄스곡.[6] <배반의 장미>는 가요톱10에서는 1997년 5월 2주, 3주차에 2회 1위에 올랐으며 가요톱10 사상 최후의 여가수 1위곡으로 남게 되었다.[7] 출연 당시 엄정화의 상의가 펑퍼짐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가지고 '임신했다'는 루머가 PC통신을 장악할 때도 있었다.[8] 솔리드 출신 프로듀서 정재윤이 만든 곡이다.[9] 원래 이 곡은 베이비복스에게 불려질 예정으로 써진 노래인데 베이비복스 측이 거절하고 재편곡을 거쳐 엄정화에게 가게 되었다. 베이비복스가 부를뻔한 'Poison'은 엄정화 버전과는 다른 힙합 비트였고 제목 또한 '낙타의 꿈'이었다고.[10]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이 디자인한 것이라고 한다. 걸그룹 디바도 이상봉의 패션쇼를 본 후 이를 사용하려 했지만 엄정화가 먼저 하고 나와 하지 못했으며 음반재킷에서는 이를 착용하고 있다.[11] 1999년 클론의 3집 객원보컬로 유명하며 가수로서도 알려졌다.[12] 당시에는 립싱크를 하는 가수들이 많아서 이따금씩 뮤직뱅크에서 라이브 특집 방송을 하기도 했다.[13] 전주에 337박수가 들어가면서 응원가 분위기가 날 정도다.[14] Escape는 음악캠프와 인기가요에서 최고 3위까지 올랐다.[15] 정확히 말하자면 마돈나는 음역대나 스킬 면에서 특출나진 않지만 오히려 그 점이 일렉트로니카에서는 큰 단점이 되지는 않으며, 운동으로 다져진 안정성만은 장점이다. 반면 엄정화는 음역대는 의외로 넓지만 보컬 안정성이 좋지 않은 타입.[16] 점잖게 표현해서 사정이지, 실제로는 '싸다'라는 어감이다. 우리말의 '사정하다'에 해당하는 생물학 용어는 'ejaculate'.[17] 제대로 된 무대가 있던 유일한 게이클럽이었다. 현재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하드락 카페가 들어왔다가 망했다.[18] 2006년 당시는 미디어에서 30살을 노처녀라고 말하는 드라마가 나오던 시기였다. 하물며 38세는 정말 많은 나이로 여겨졌을 것이다.[19] 실제로 엄정화의 저 의상은 당시 마돈나의 Hung Up 의상에서 차용한 듯한 인상이 있다.[20] 서양이라고 비판 여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21] 많지 않은 판매량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음원 중심으로 개편된 한국 음악 시장에서 견고한 팬덤도 없는 15년차 여성 가수인 엄정화가 정규도 아닌 미니앨범으로 이 정도 판매량을 보인 것은 굉장한 성과라 할 수 있다.[22] 실제로 정형돈은 이전부터 여장을 매우 싫어했는데 돈기뉴가 워낙 반응이 좋았어서 아예 연말 콘서트에서 커버 무대까지 했고, 이후 여장에 부담이 없어졌다고 밝혔다.[23] 탑과 엄정화는 거의 스무살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