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

 


蚩尤 Chi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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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치우도의 모사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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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지어진 중국의 중화삼조당 내 치우 벽화. #
1. 개요
2. 상세
3. 문헌 속 치우
4. 치우 신앙
5. 사이비 사학
5.1. 한국 유사역사학
5.2. 중국 어용사학
6. 현대 대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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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요괴이자 치우 신앙의 대상인 으로, 중화삼조(中華三祖)로 여겨지기도 한다.

2. 상세


치우는 신화적으로 오랫동안 요괴, 마물 또는 괴물로 취급되었다. 치우 신앙은 분명 존재하였고 많은 중국의 군주들도 전쟁에서의 승리를 그에게 기원했지만, 민간 설화에서는 별놈의 것들에게 다 얻어터지는 등, 시대마다 기록마다 그 위상이 천차만별이었다. 천자의 재상, 대제후, 섭정과 서자 떨거지, 요괴, 재앙신의 갭은 엄청나지 않은가.
한고조 유방도 치우에게 제사를 지내고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는 등 군신으로서 치우 자체에 대한 신앙은 면면히 존재해 왔다. 하지만 민간에서의 치우는 그냥 태고적의 대악당으로서 원나라 시대의 잡극인 관운장대파치우(關雲長大破蚩尤, 관우가 치우를 개박살내다) 등에서 보면 옥천산에 머무르던 관우의 혼령에게 떡실신 당하고 개처럼 끌려다니는 등 수없이 많은 안습의 팔자를 걷고 있다. 다만 이는 지역마다 달라서, 치우신앙이 시작된 중국 동북지방에서는 상당히 대우가 좋았다. 진나라 때 진시황에게 접근한 방사들이 숭상을 권한 팔신[1]중에 치우가 있으며, 현재도 중국 동북지역 일부에서는 민간에서 용신이자 우신으로 숭배된다.[2] 실제로 한나라가 중국을 지배하기 전에는 중국에서도 지역/국가 별로 민간 신앙의 차이가 컸으나, 한나라를 시작으로 점차 각지의 민간 신앙이나 흡수한 나라의 관변 신앙을 정리하고 유학을 장려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본래 중국의 창세신급 여신이던 여와가 복희의 여동생으로 격하되는 신화도 한나라 때부터 등장한다.
치우는 팔 6개에 눈 4개가 달리고, 소의 뿔과 발굽,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동두철액)가 있었으며, 맨몸으로 맹수와도 대적할 수 있을 만큼 힘도 굉장히 강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당시의 조악한 기술로서는 어찌 할 도리가 없었으며, 안개 도술까지 구사할 수 있어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지 알 수 없으니 결국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었다. 이것을 묘사하기를 동두철액이라고 한다. ≪치우, 오래된 역사병≫(2017, 푸른역사)을 쓴 김인희 박사의 말에 따르면 이런 치우(蚩尤)란 뱀이 많은 중국 남쪽 장강(長江) 일대 지배 세력을 상징한다. 갑골문을 보면 치(蚩)란 뱀을 밟은 불길함을, 우(尤)는 고기를 독점하는 탐욕을 상징한다. 황제로 대표되는 황하 세력이 보기에 장강에 사는 놈들이 몹시 마음에 안 들었다는 의미다. 거기다 장강 일대는 구리가 풍부해 청동기가 빼어났다. "구리로 된 이마"를 지닌 치우가 기주, 혹은 탁록에서 황제와 한판 승부를 벌였다는 얘기도 거기서 나온다.
한편 형제 81인 또는 72인과 풍백, 우사를 거느리고 다녔다고도 한다. 문제는 단군신화에 풍백, 우사, 운사가 거론되는 덕에 환단고기를 지을 때 짜맞춰넣을 여지가 생겼다는 점. 그 외에 다섯 병기를 만들어 팔 6개로 들고 다녔다고도 하는데, 이 다섯 병기가 무엇인지도 기록마다 다 다르다. [3]
역사적 실존인물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신뢰성 있는 근거는 희박하다. 중국에서는 중화삼조라며 역사적 인물처럼 인정하지만 애초에 그건 소수민족 융합 차원, 다시 말해 '중국인'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불과하며 치우의 실존을 주장할 만한 근거는 사마천사기뿐, 물증은 하나도 없으며, 사마천 본인도 예전부터 내려온 이야기라는 것 말고는 역사라는 근거를 '''전혀''' 대지 않는다.[4] 중화삼조 운운한 뒤부터는 드라마 같은 데에서 살아서 헌원에게 복속한 걸로 나오기도 한다.
과거에는 유성우를 치우기(蚩尤旗, 치우의 깃발)라고 불렀다.

3. 문헌 속 치우


김인희 박사의 말에 따르면 재앙을 상징하는 '치(蚩)'자와 욕심을 상징하는 '우(尤)'자를 결합하여 ‘치우’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은 서주(西周)시대에 이르러서인데, 이는 서주시대에 치우집단이 세력을 형성하고 역사무대에 등장했음을 뜻한다. 치우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상서의 주서(周書) 여형(呂刑)편에 실려 있는데, 여형(呂刑)을 제정하면서 악독한 형벌의 기원을 설명하는 과정에 등장한다. 서주는 무기와 예기를 제작하는 데 필수품인 청동 원료를 확보하고, 제후로서 예를 다하지 않는 초나라를 덕을 실행한다는 명목으로 정벌했는데 이러한 내용이 '여형'편에 황제가 치우를 정벌한 이야기로 기록된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치우 현상에 대해 한족 왕조가 정통이란 관념의 산물이라 생각한다. 황제는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황제염제는 화하의 정통으로 숭배된다. 치우가 탁록에서 전쟁을 한 것은 정의가 사악함을 징벌한 것으로 인(仁)과 덕(德)이 폭력을 이긴 것을 말한다. 치우는 탐욕스럽고 난을 일으키며 정벌해도 죄가 되지 않으며 죽여도 되는 폭도라고 간주된다.
이러한 외모와 산해경에서 표현된 원전 신화에서의 미칠 듯한 강력함, 그리고 비와 바람을 다스렸느니 하는데다 대척점에 있는 황제가 하필 가뭄을 사용하는 것 때문에 일부는 치우가 신농의 기믹을 이어받은 동부 평야의 풍요와 문명의 신이며 황제는 그에 대항해 나타난 서부 황야의 무법자(?)라는 주장도 있다. 참고로 말하자면, 묘족의 전승에 따르면 당시 동부 평야는 묘족이 주름잡고 있었는데 한족들이 그들을 밀어냈단다…. 근데 헌원이 가뭄을 상징한다면 풍백, 우사 앞에선 떼꿀멍이긴 해도 비를 내리게 하는 응룡이 황제편인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치우라는 이름은 산해경에서도 나오는데[5], 산해경은 선진시대인 전국시대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치우가 정말 고대의 실존인물이었다면 수없이 발견된 은나라갑골문자에는 왜 전혀 나오지 않는지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6] 설마 모를까 싶지만, 사마천의 사기가 쓰인 전한전국시대보다 한참 뒤의 시대다. 즉, 신화 속의 존재일 확률이 매우 높고 실존인물이라는 증거는 전혀 없다. 치우의 무덤이라 전해는 곳들도 그냥 그렇다는 구전이 내려올 뿐, 유물이나 기록 같은 제대로 된 근거가 없다.
전승에 따르면, 당시 그의 군대는 발전된 병기제작 기술과 치우의 영도력에 의거 수많은 세력을 패퇴시키고 그 판도를 넓혀갔다. 그리고 그 뒤 신농씨(神農氏)와의 주도권 싸움에서 승리한 신흥세력 황제(黃帝)와 격돌하게 되는데, 여기까지는 중국 신화와 한국 유사역사학에서 별 이견이 없지만 그 뒤의 기록부터 상당 부분 달라진다.
응룡이나 황제가 죽였다는 쪽이 메이저지만, 마이너하게는 살아서 고향으로 도망쳤다거나 헌원의 신하가 됐다고 나오기도 한다. 치우가 죽었다는 설을 따르지만 '치우가 죽은 후 요마들이 날뛰니 치우의 얼굴을 그려 붙여 그가 살아서 헌원의 신하가 된 것처럼 위장하자 조용해졌다'고 나오는 신화도 있는데, 사망설과 생존설의 융합을 꾀한 것으로 보인다.
치우와 황제의 마지막 싸움은 탁록(학술적으로 위치 불명)에서 있었고, 그 때 황제는 지남거(指南車, 항상 남쪽을 가리키는 일종의 나침반)를 만들어 안개 속에서도 방향을 잡을 수 있게 되었고, 결국 응룡(應龍)과 자신의 딸인 태양을 다스리는 여신 (妭)[7]까지 총동원하여 그를 쓰러뜨렸다고 전한다. 묘족 신화에서는 발의 미인계에 의해 당했다고 나온다. 그리고 황제에 의해 토막나서 처형당하는데, 이때 흘린 피가 단풍나무에 스며들어 가을마다 단풍이 붉게 물든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다만 같은 산해경에서 단풍나무 전설 기록에 보면 치우가 자신을 포박한 차꼬와 수갑을 풀어 버리고 도망쳤는데 그것이 변한 게 단풍나무라는 이설도 나온다. 애초에 산해경은 역사서가 아니라 후대에 수없이 덧씌워진 신화집이라 모순되는 내용이나 현실과 괴리된 내용이 굉장히 많다.
관자 오행편에 보면 황제 헌원이 치우를 得(득, 만나다/얻다로 둘 다 해석 가능)하여 천도를 훤히 알게 되었다는 기록도 나오지만, 염제의 자손인 치우 본인이라기보다는 유성을 의인화한 별개의 인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금속기 주조나 기상현상의 통제와 같은 면모가 없고, 대신 천도를 아는 현자라서 황제가 관직을 내린 것으로 나온다. 일단 황제와 싸운 그 치우가 아니라는 주석이 달려 있지만 본문이 아니라 주석이므로 권위가 떨어지며, 함께 병렬로 언급된 다른 재상들 중 다른 중국 신화의 신들이 있고, 중국 신화에 나오는 치우가 한 명 밖에 없기 때문에, 이 치우와 저 치우를 동일 인물로 여기는 경향이 예전부터 있어 왔다. 한편 지수 편에서는 천자가 치우에게 광산을 관리하게 시켰다가 치우가 무기를 만들어 다른 제후국들을 겸병하고 다니다가 천자에게 털린 것, 즉 잘 알려진 탁록전쟁과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렇게 한 전집 내에서도 기록에 차이가 있는 이유는 관자가 여러 명의 저자와 편집자의 손을 거쳐 완성됐기 때문이다.

4. 치우 신앙


일부 사람들한민족의 조상신이라고 우겨대지만, 사실 한국과는 관계가 없고 그보다는 묘족의 조상신이라는 설이 더 유력하며, 중국 동부 황하 하류 지역의 민간 신앙에서 많이 받들어지는 신이기도 하다. 묘족 역시 원래 양쯔강 이북에 거주하다가 후대에 남하했다고 한다. 현 중국에서는 소수민족 융합 차원에서 치우 또한 '중화삼조'라고 해서, 황제 헌원염제, 치우를 중화민족(한족과 다른 개념)의 조상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중국에서도 신화시대를 다룬 드라마에서도 흔히 치우를 비열하고 사악한 악당으로 묘사하는 통에 묘족 출신 지식인들이 '중화삼조의 한 분을 이렇게 묘사하다니!' 하고 발끈하곤 한다.
치우를 숭상하는 묘족들조차도 치우가 황제에게 깨졌다는 것 자체는 인정하는것 같다. 묘족 신화에서 치우는 헌원에게 패한 이후 본거지인 동북부로 돌아가 자식들 중 하나에게 남쪽으로 내려가 나라를 세우라 하고, 그 자식이 남하하여 나라를 세우는 게 그게 묘족의 시조가 된다.(김선자 저, 중국 소수민족신화기행) 근데 이 과정에서 황제 헌원의 제재는 전혀 없다. 아예 등장이 없다. 는 농담이고, 그쪽까지 힘을 실을 여력이 없었다고 보는게 무방할 듯. 다른 지역을 마저 정복하느라 바빴다고 나오며, 헌원이 아내를 넷이나 둔 이유가 일거리가 폭주해 사무를 시키려고였다는 기록까지도 있다. 고대 중국의 관중은 물론이고 당대까지의 장안과도 꽤 떨어진 지역이니 하나라 이전이면 더욱 외지였을 것이다.
단 ≪치우, 오래된 역사병≫(2017, 푸른역사)을 쓴 김인희 박사는 저서에서 치우가 한민족의 조상신은 물론이고, 심지어 묘족의 조상신조차 '아니다'라고 주장하였다. 저자가 실제로 묘족을 찾아가 인터뷰해보면, 지식인 계층에서나 치우를 알 뿐, 근대적 교육을 받지 못한 일반인들은 모른다고 하였다. 그런데 묘족의 지식인들이 민족주의적 감정으로, 한족과 대립되는 위대한 조상을 만들고자 치우 신화를 끌어들이고, 묘족의 전설이나 옛 이야기들 중 '치우'와 이름이 조금이라도 유사한 인물이 등장한다 싶으면 전부 치우와 연결지어 역사를 꾸며내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 박사의 저서를 따르면, 묘족의 '치우 신화'라는 것도 곧이 믿을 수가 없다. 물론 일반인 계층에선 이미 신앙이 사멸했을 뿐[8] 조상신으로 섬겨진 역사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5. 사이비 사학


한국과 중국의 유사역사학에서 둘 다 비중 있게 나오는데다, 중국의 소수민족 중 세력이 큰 편이자 치우 숭배의 원조인 묘족들이나 묘족이 소수민족으로 분포해 있는 동남아 국가들에서도 치우와 관련된 각종 환상문학을 써제끼고 있다 보니 각종 떡밥이 끊이지 않는다.

5.1. 한국 유사역사학



치우는 '''한국과 전혀 관계가 없는 중국 신화 속 인물'''이나, 극히 최근인 1990년대에 갑자기 이를 한민족과 연관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나 2000년대한-일 월드컵 애국주의 마케팅과 함께 절정을 이뤘다. 이후 대중적 관심은 많이 사라졌으나 치우에 대한 일부 사람들의 맹목적 빠질은 여전히 답이 없어서, 민족의 시조를 바꿔치기 위해서라면 똥과 된장을 안 가리고 달려든다.
한국의 기록에서 치우를 한민족과 연관지은 가장 오래된 문헌은 규원사화이고 가장 대표적인 저작은 환단고기인데, 환단고기는 익히 잘 알려졌다시피 위서이며, 규원사화는 논란이 많지만 역시 위서라는 설이 더 설득력 있다.참고 링크 이러니 치우와 한국의 고대가 뭔가 관계가 있다는 건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치우 숭배가 도깨비 신앙에 영향을 줬다고 보는 학자들은 있지만, 역사적으로 한반도 내에서 직접적인 치우 신앙은 존재하지 않았을 뿐더러 한국식 도깨비와 치우의 외모는 완전히 딴판이다. 사실 이에 대해선 신채호나 정인보, 김교헌 같은 '민족사학자'들도 언급하지 않았던 치우가 뜬금없이 '민족사'에 삽입된 것부터 설명되어야 한다.
김인희 박사의 말에 따르면 치우가 한국인의 조상이라고 (유사역사학자들 중에서) 처음 밝힌 이는 박성수이다. 박성수는 1999년 치우연구회 창간호에 실린 「민족의 무신, 치우 천황」이란 논문에서 “중국의 기록에는 치우가 삼황오제 때 싸움만 좋아하는 말썽 많은 동방의 제후로 기록되어 있으며 결국에 가서는 정토(征討)당하고 마는 패장으로 왜곡되어 있으나 우리 기록에는 일찍이 환웅의 신시시대에 중국을 정벌한 용감한 장수 왕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경주 안압지 출토 녹유귀면와(綠油鬼面瓦)는 치우인데 이름을 잃어버리고 도깨비로만 기억하고 있다”라고 했다.
규원사화와 환단고기를 제하면 이들의 논거는 사기 등에 써있는 '동이' 기록인데, '''항목에 쓰여있듯 동이=한민족이 아니다'''. 그저 중국 입장에서 동쪽에 있는 민족들을 동이라고 불렀을 뿐(비유하자면 우리가 '서양인'이라고 부른다고 독일과 이탈리아인을 동일 민족이라고 볼 수 없는 것), 동이라는 '민족'은 존재한 적이 없으며 이들의 상호 연관성 또한 지역이 지역이다 보니 나타나는 제한적인 혈연적 관련성과 교류 정도에 그친다. 위에 설명했듯 '''한반도에는 독립적인 치우 신앙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없으므로''' 계승 의식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없다[9]. 아니, 고구려 적부터 계승했다고 내려온 기자조차 연관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명되어 학계에서 버림받았는데 검증조차 안 된 이러한 학설을 인정할 근거는 무엇인가? 이러한 동이 드립은 내선일체론, 동북공정과 다를 바가 없다.
규원사화와 환단고기 및 이를 따르는 대다수 일부 사람들의 주장에서는 전쟁에서 오히려 치우가 승리했다고 하며, 결국 전쟁은 이기긴 했지만 휴전 비슷하게 마무리되었다는 얘기를 한다.
치우천황 같은 말을 쓰고 치우를 한민족의 조상으로 착각하고 있더라도 치우가 황제에게 패한 게 맞다고 인정한다면 그냥 환독의 영향권에 있을 뿐 일부 사람들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다만 변종 일부 사람들 중에서는 황제가 치우를 이긴 게 맞다고 인정하지만 오히려 황제를 더 정통성 있는 배달족 군주로 보고 섬기는 경우도 있으니 방심은 금물.
사실 규원사화와 환단고기의 치우 서술은 서로 다르다. 규원사화에서의 치우는 환웅(신시씨)이 데리고 내려온 신하 중 하나지, 왕족이 아니다. 신시씨의 신하라고 딱 박아놨다. 공상에서 제멋대로 제위에 오른 적 있다고는 한다. 규원사화에서 치우씨의 후손들은 일부는 중국에 너무 동화되었다고 나오나, 치우의 후손 가문 중 하나인 남후는 단군 아래의 제후 중 가장 활발하게 외부 정복 활동을 벌이거나 제후들 중에선 리더 노릇을 하려 드는 등 2인자. 그래도 어디까지나 신하이다.
탁록전쟁의 승패를 왜곡한 것, 작중에서 그려지는 탁록전쟁의 전반적인 양상, 옹호극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무기의 등장같은 요소는 환단고기가 규원사화를 베낀 게 맞다.
단기고사에서는 治尤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행적은 중국 신화와 비슷하게 염제를 위해 자부선생 밑에서 같이 공부한 동문인 헌원과 싸웠다가 패배하지만 그의 손자인 특명이 단군조선의 관료가 된 것으로 나온다. 이 治尤라는 이름은 환단고기에서도 등장하지만, 서방을 담당하는 신으로 자오지환웅과는 별개의 인물로 나온다.
일부 사람들 중 관자 오행편에서 치우가 천도에 밝았다고 하는 기록을 갖다붙이는 자들이 있는데, 관자에서는 치우가 황제의 재상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2002년 월드컵 당시에는 붉은 악마에서 귀면와를 치우의 얼굴로 해석하여 귀면와의 도안을 붉게 만든 치우천왕기 도안을 만들어 널리 퍼뜨리고 다녔다. 귀면와는 여러 설이 있지만, 도철의 형상이라는 설도 있다. 중국 기록에는 도철은 사흉중 하나로 아주 탐욕스러운 괴물이다.
한국조폐공사에서는 치우천왕 불리온 금메달/은메달을 팔고있다. 조페공사에 환빠가 있고 그들의 주장에 완전히 포섭되었는지 '고대 배달국의 14대 환웅'으로까지 소개하고 있다! 일개 사기업도 아닌 공기업에서 이런 짓거리를 저지르는 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심각한 일이다.
일부 사람들이 치우를 한민족의 조상신으로 홍보하고 다니다 보니 다른 나라에도 어느 정도 알려졌는지 최근에는 묘족(몽족) 가운데에서도 한국인과 자신들이 같은 왕(치우)을 공유하는 같은 동이족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댓글 참조
물론 한민족과 묘족사이에서도 서로 상대방을 그냥 치우에게 지배받은 민족중 하나로만 보는경우도 있다.
千古奇才横空贤 천고의 세월 영웅 치우천왕은
可堪并论炎黄间 염제와 황제와 더불어 이야기 하리
五兵刑法君始点 다섯 무기와 형과 법이 치우로 시작했으니
九黎生气冲云天 구리 백성 사기는 하늘을 찌르고 남는도다
席卷中原华夏联 염제와 황제를 누르고 중원을 석권하니
血染江河五千年 5000년 강물을 피로 물들였네
英名不因涿鹿败 영웅의 이름이 탁록 패전으로 말미암지 않으니
老黑石山百花鲜 흑석산 온갖 꽃들 여전히 붉네
묘족은 이와 같은 치우만가를 전승해 왔으며, 해마다 음력 10월이면 묘족은 치우 제사를 지낸다.
...라는 떡밥을 일부사람들의 인터넷 본거지 중 한 곳인 쿠투넷에서 뿌렸으나 정작 묘족들의 넷커뮤니티 苗人网에서는 罗国锦의 창작시가로 소개하고 있다.#

5.2. 중국 어용사학


위에서 중화삼조라 하며 실존인물로 포장하려 한다고 했는데, 이를 위해 어용학자들이 여러가지로 환단고기급 소설을 써내고 있다. 웃기는 건 한국의 유사역사학자들 중에서도 이런 중국 어용학자들의 영향을 받거나, 이들의 주장을 근거로 치우의 실존을 주장하는 작자들도 있다.

6. 현대 대중문화


진실 여부는 제껴놓고라도 '''창작 작품'''의 소재로서는 적당해서인지, 소설이나 만화 등 여러 곳에서 자주 쓰이고 있다.

6.1. 치우천왕기


2003년 간행되기 시작한 이우혁판타지 소설 치우천왕기는 치우와 관련된 유사역사학의 주장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논란이 많았으나 애초에 판타지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나름대로 수작이라고 평해진다. 그리고 작가 이우혁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치우천왕기 완간 소식을 알릴 때 자신은 규원사화만 잠깐 참고했지 환단고기부도지 등의 서적은 참고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지만, 규원사화와 환단고기를 읽어봤다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다만 환단고기의 내용을 사용했다고 해서 그것이 진짜 역사가 아니고 그냥 소설적인 장치라고 이전부터 밝혀왔었다. 하지만 이전 작품인 퇴마록에서 여과없이 환단고기에 관련된 내용을 적었다는 점에서는 지금도 비난을 피하지는 못하고 있다. 후에 소장판에서는 내용, 각주에서 아예 환단고기 관련 내용을 빼버렸다.
사실, 80년대에는 '단(丹)'같은 소설을 TV광고를 하며 팔았고 환단고기 역시 수업 시간에 국어교사들이 이야기해주는 일이 흔했다. 그래서 '환단고기'부터 '대쥬신제국사'가 출판된 시기까지, 그런 것을 이용하는 정권은 혐오해도 민족적 자부심을 부추기는 컨텐츠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었던, 다시 말해 악과 깡말고는 세계에 내세울 게 없었던 그 시대를 산 386세대 유명 인사들도 대놓고 옹호하지는 않아도 대놓고 까지는 않고 은근히 희망하며 후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 작가 역시 동시대를 산 사람.
작중 묘사되는 치우에 관해서는 치우천치우비 항목 참조.
이후 조아라의 노블레스인 MEMORIZE에서 치우천이 사용했던 갑옷이라는 설정으로 치우천왕의 갑옷이 등장한다.

6.2. 기타


중국 신화에서는 한 가지 발명품을 만든 신이나 영웅이 신화마다 다르게 나오는 이야기들이나 그 반대가 많다. 이런 신들은 해당 직업인들이 가톨릭의 수호성인처럼 각 직업의 시조이자 수호신으로 모시는데, 이렇게 많은 이유는 유명한 신이나 영웅을 내세워 미화하려는 목적이다. 그러다 보니 하나의 신이 여러 직업의 수호신이던가, 실제 역사하고는 전혀 동떨어지는 우스꽝스러운 경우도 존재한다. 판타지 라이브러리에서 , , 등의 무기를 발명한 것으로 나온다.
슈퍼로봇대전에선 용호왕 등 초기인들이 치우의 무덤 근처에 묻혀있다 나오지만 아직까지 치우의 초기인 같은 건 언급되진 않았다.
고우영의 십팔사략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포악하고 잔인한 원시 부족 족장이다. 맹수를 맨손으로 때려잡을 정도로 힘이 세고, 자기 부하들은 잘 대해주지만 반항하거나 저항하는 등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을 냅다 때려죽이거나 물어죽이는 악랄한 괴물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시시시시~"'''라는 웃음소리가 특징이자 포인트. 황제 헌원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꽤 잘 나갔었지만, 헌원이 신농씨를 굴복시키고 세력을 일원화하면서 맞붙은 대전에서 구리 투구와 무기들로 무장한 병사들은 헌원의 맹수부대의 밥이 되고, 안개도술로 적을 절벽으로 유인한 뒤 낙석으로 때려잡던 18번 전법도 헌원의 지남거로 인해 전부 파훼되면서 헌원의 칼에 의해 목이 달아난다.
이현세 작가의 천국의 신화 2부의 주인공이자 전 시리즈를 통틀어서 언급이되고 주인공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5부의 주인공 가리온은 치우가 쓰던 강궁과 무기(창으로 재달련된 12자루의 칼)를 사용하면서 치우의 환생으로 불리게되고 전생 때와 마찬가지로 여자 문제 때문에 흑화한다. 6부에선 짝사랑하던 여자를 잃은 위만이 힘을 추구하게 되자 봉인되어있던 멧돼지 악령이 치우의 창술 12초식과 마지막 최강이자 최악의 초식인 동귀어진까지 알려준다.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는 이름 한번쯤 비춰주셔야 하는 것이 관례...일지도 모른다.
2011년 3월 둘째 주부터 조선일보 모닝플러스의 주간 어린이 한자 교육 만화 '맛있는 한자'에서 치우천왕 스토리가 연재되기 시작. 귀추를 좀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자부가 등장하고 배달국 천자가 등장한 것으로 보아서는 유사역사학이 아닐 가망이 희박하다.
이상하게 일본에서 만들어진 삼국지 관련 매체에서 자주 언급된다. 삼국지 조조전이나 SD건담 삼국전 등. 물론 역할은 마왕. 조조전에 대한 내용은 이 문서를 참고하자. 사실 본작에서 자신이 치우라고 직접 언급하는 대사는 없지만, 삼국지가 배경인 작중 연도(221년)를 기준으로 삼천 년 전에 황제와 싸운 끝에 봉인되었다는 대사로 미루어 보아 거의 확실하다.
SD건담 삼국전에선 치우+노이에 질을 모티브로 했으며, 삼후에 의해 그들의 동료였던 현무장과 함께 봉인된 암흑의 화신이자 군신이란 설정으로 나온다.
작안의 샤나에서는 슈드나이의 옛 모습 중 하나로 나온다. 자세한 건 슈드나이 항목 참조.
타나카 요시키의 소설 창룡전에서 우종족의 왕으로 등장하며, 최종보스로 보인다. 우종족답게 소머리에 사람의 몸을 가진 괴물이며, 4권에서 잠깐 나왔다가 용왕 4형제의 삼남인 류도 오와루가 휘두른 칠성보검에 머리에서부터 사타구니까지 반토막이 나는 안습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작중에서는 72명의 형제들이 있다고 했으니, 어쩌면 진짜 치우가 아닐지도?
페르소나 3에서는 탑 아르카나의 최종 페르소나로 등장. 이명은 강군의 왕으로, 스킬카드 '''무도의 마음가짐'''을 주며 아이템화 할 경우 타케바 유카리의 최강 무기 원시만궁이 된다.
문제아 시리즈에서는 황제와 싸웠던 마왕 치우 혹은 무장신 치우로 언급된다. 별의 신무기인 아스트라를 벼리는게 허락된 푸른 별의 대장장이 중 하나라고 한다. 동세계관인 밀리언 크라운에서는 그 이름을 받은 왕관종 치우도 존재한다.
TRPG 월드 오브 다크니스 에서는 먼 옛날 동방의 늑대인간 부족인 핫켄의 장군이었다고 나온다. 핫켄이 대륙에서도 살고 있었을 때만큼 오래 전이라고.
그리고 이 치우도 모에선을 맞았다.후방[[http://www.google.co.kr/imgres?imgurl=http%3A%2F%2Fsadinfish.com%2Ffairytale%2Fgame%2Fimg%2Fweb_chara04.jpg&imgrefurl=http%3A%2F%2Fwww.lkong.net%2Fthread-910686-1-1.html&h=500&w=600&tbnid=ZPfexD9aqOUsjM%3A&zoom=1&docid=TDw0TbaOIybs2M&ei=CiHdU4vWOcve8AXM2YLIAg&tbm=isch&client=firefox-a&ved=0CDMQMygrMCs4yAE&iact=rc&uact=3&dur=251&page=7&start=236&ndsp=38|주의]]
태합입지전 5에서 치우의 갑옷이라는 아이템이 등장한다. 교토의 황거에서 1년에 한 번씩 벌어지는 천황의 친람 경기에서 전국의 괴물들을 뚫고 승리하면 랜덤으로 득템할 수 있다.
타이완의 상업지 작가 흑청낭군의 한 단편에서는 구릿빛 피부에 팔 여섯개를 가졌으며 노출도높은 옷을 입은 야성미넘치는 소녀로, 인체를 이용한 신묘한 지남거를 쓰는 황제에게 패배해 성노예 신세가 된다.
현재 대한민국 쇼트트랙 대표팀 선수들의 헬멧 정면에 도장되어 경중 자주 볼 수 있다.

[1] 제나라에서 국가적으로 제사 지내던 여덟 신[2] 이쪽 전승에서는 치우가 황제 헌원에게 막판에 패해 동북부로 돌아온 후, 이쪽 마을에 좌정하여 우신이 되었다고 전해진다.(서영대 저, 용, 그 신화와 문화 세계편 참고)[3] 주로 등장하는 병기는 검과 창, 도끼는 기본으로 기록되며 활이나 쇠뇌, 또는 투구나 방패로 나머지 병기들이 기록되기도 한다.[4] 애초에 사마천은 하나라부터 역사라 봐서 삼황과 오제는 배제하려다가, 고민 끝에 오제까지는 사기에 넣어준 것이었다.[5] 혹자는 어전비가 산해경보다 이른 시기의 것이라고 하나, 이 역시 시대상으로는 전국시대의 것이고, 출토지역상으로는 한민족의 세력범위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6] 동네 의원들이 손으로 파내서 쓴 갑골문 유적들은 미미한 수준으로, 대규모 발굴로 수습한 갑골문 유적에 한 글자도 나오지 않는 것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 부분이긴 하다[7] 황제의 딸 발은 후에 가뭄을 부르는 재앙신의 속성을 띠게 되어, 이름의 한자도 妭에서 魃로 바뀌게 된다.[8] 한국인 중에서도 신과함께 등으로 유명해지기 전에는 대별왕과 소별왕, 삼신할미 등을 모르는 한국인들도 없지 않았다. 그냥 환인과 환웅, 단군 정도만 유명했다. 하지만 대별왕 소별왕 신앙이 없고 유명하지 않았을 뿐, 신화는 분명히 존재했으므로 치우가 묘족의 조상신인지 여부와 비교하기엔 무리다.[9] 그네들 중에서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드립은 안 치지만, 조선왕조실록 등에 기록된 치우 관련 제례는 중국에서 수입한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