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중화민국
親中華民國, Pro-Republic of China camp
1. 개요
중화민국에 친근감을 가지고 옹호하는 성향을 가리키는 말.[1] 민국파(民國派)라고도 하며 일본에서는 친화파(親華派)[2] 라고 부르기도 한다.
친대파와 혼동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엄연히 다르다. 구분법은 간단하다.
- 대만(에 있는 중화민국)의 대륙 수복을 주장하거나 대만이 중국(중화민국)이라고 생각하면 친중화민국이고,
- 대만은 중국(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과 아예 별개라고 생각하고 대만 독립을 지지하면 친대파다.
또한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스프래틀리 군도, 스카버러 암초 등 양안과 타국의 영토 분쟁에서도 친중공과 똑같이 중국(중화민국)의 영토로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가끔 중공과 잠시 협력하는 기이해보이는 경우도 있다.[5][6] 반대로 67폭동 당시 영국령 홍콩의 민국파가 영국 편에 서서 친중파에 맞선 사례와 2013년 부터 2019년까지 일어난 미국 샌프란시스코 중화회관 국기 철거 사건 등 일종의 대리전으로서 중국 대륙인 또는 친중공과 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중국 분열주의자 등 혐중 성향에게는 친중공이나 친중화민국이나 똑같은 족속들이라고 까이기도 한다. 혐중 입장에서는 소수민족들의 자주성을 찾기를 원하며 자유중국이든 공산중국이든 "중화"라는 이름 하에 속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7]
2. 국가별 사례
2.1. 홍콩
중국과 자치권이 분리된 홍콩에서는 민국파(民國派)라는 이름으로 친중화민국 세력이 존재한다. 친중파와 똑같이 홍콩 독립운동에는 반대하나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닌 대만의 중화민국령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본토파와 대치할 때 친중파와 민주파 둘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기도 한다.
민국파 중에서 의견이 갈리기도 하는데 홍콩 특별행정구 체제를 중화민국 하에서 유지하자는 의견과 특별행정구를 해체하고 중화민국에 완전 합병을 하자는 의견으로 나뉘기도 한다.
2008년 대만에서 마잉주 정부로 부터 양안관계가 개선되자 민국파에 대한 탄압이 줄어 활발해졌지만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과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면서 다시 탄압 당하고 있다.
2.2. 중국 대륙
국부천대 직후에도 중국 본토에서는 중화민국 잔존 세력이 남아 있었지만 중공의 통치와 50년대의 반혁명운동으로 인해 사라져갔고 1972년 중화인민공화국이 UN에 가입함으로서 중공의 압박으로 대만의 수교국이 줄어들자 남은 희망마저도 사라졌다.
그나마 남아있는 세력은 중국범람연맹이 있지만 불법 정당 취급을 받아 활발하지는 못한 상태다. 자생적인 친중화민국 개인들도 있으나 역시 VPN 없이는 티도 못 낸다.
중국 민주화 세력이 모두 친중화민국일 거라고 생각되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들은 새로운 민주 중국을 세우기를 바라지, 중화민국 위주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8] 그리고 이미 중국 본토에서 자생적인 민주화 세력이 생겨난 탓에, 중국이 민주화되더라도 중화민국이 대륙을 회복할 가능성은 희박하게 되었다.
2.3. 대만(대만일치시기)
일제 식민지 시절 대만인들은 일제의 지배로 인해 일제로부터 해방되어 중화민국으로 편입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2차 대전 후 중화민국으로 편입되었을때 크게 환영했으나 2.28 사건이 터지면서 중화민국 유지파와 대만 독립파가 갈려 지금에 이르고 있다.
2.4. 대한민국
한국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부터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수교 이전에는 자유중국이라 불리며 같은 자유진영이자 분단국가로서 친중화민국이 많았다. 당장 쑨원과 장제스부터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수여받은 중화민국 인물이다. 그러나 단교 후인 1990년대 이후로는 줄어들어 중화민국이 대만과 동일시되기에 이르러 친대파이거나 둘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아[9] 친중화민국파는 그나마 소수밖에 남지 않은 상태이다. 그리고 정치권에서는 완전히 없어진 상태이다. 원래 친중화민국적이던 보수 정당도 중공과 수교하면서 중화민국을 버리게 되었다. 그야 한국 경제가 중국에 꽂은 빨대가 굵기 때문에.. 일부 진보계 정당이 중화민국과 가까워 보이는 모습도 볼 수 있으나 이것은 친중화민국보다는 친대만에 가깝다. 중화민국에 친밀감을 갖더라도 대만에서 독재정권을 이끈 장개석이라는 인물은 껄끄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
일부 극우계열 인사들은 중화민국과의 국교회복을 주장하며 친중화민국 성향을 보이곤 한다.# 친중공(하나의 중국)이나 친대만(1중 1대)이라면 몰라도 친중화민국 쪽 노선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으로 부를 수는 없다. 재밌는 사실은 미국이나 일본 쪽에선 친대만이 자주 보인다면, 한국 인터넷에선 친중화민국이 더 자주 보인다는 것이다. 미국은 몰라도 일본은 한때 중화민국의 적이었지만, 중화민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후원자였기 때문일지도. 인터넷상에서 중공의 실책을 보여주는 동영상이나 기사 등에 있는 댓글에서 종종 볼 수 있다.(ex: 중화민국이 언젠간 중공을 몰아낼 것이다.) 이것은 장제스 생전의 반공 '자유중국'에 대한 향수인 듯하다.[10]
2.5. 미국
제2차 세계대전 당시부터 같은 연합군이였고 국공 내전 당시에도 국민당만 지원을 하였으며 국부천대 이후에도 중화인민공화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고자 대만에 주중미군을 두기도 했었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를 하고 중화민국과 단교를 한 이후에는 친중화민국이 많이 줄었고 오히려 친대만이 많아졌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차이잉원 총통과 전화 통화를 하고 사절단을 보내기는 했지만 여전히 친중화민국적인 행보는 보이지 않고 있다. 2020년대 들어 미국이 친 대만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중국 견제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거지, 국가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
2.6. 바티칸
유일하게 유럽 국가 중 중화민국과의 수교국이며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어용 수단으로 바티칸이 아닌 중국 공산당에서 멋대로 사제를 임명하는 행태를 벌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중화민국의 편에 서고 있다.
3. 현상황
21세기에 들어 친대파와 달리 전세계적으로 친중화민국은 그렇게 별다른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으며[11] 과거 중화민국과 협력한 미국마저도 "중화민국"이 아닌 "대만"을 지지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봐도 아무리 미국같은 초강대국이라 할지라도 대만이라는 조그만한 나라를 앞세워 거대한 중화인민공화국과 싸워 중화민국으로 통일시키기에는 크나큰 무리가 있다. 수교 당시만 해도 실제 중화민국이 시행하려 한 국광 작전을 반대하였다.
설령 성공했더라도 사후 조치의 비용도 어마어마하고 현재 중국의 민주화 세력 대다수는 자체적인 민주화를 원하는데 이들 입장에서 반국가단체인 중화민국에게 지배당하게 된다면 다른 문제가 야기될 수도 있다. 거기다 이란 등 여러 친중 국가들의 참전에도 대응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한계로 인하여 미중전쟁, 심지어 '''3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수 있는 엄청나게 위험한 도박이나 다름없는 중화민국의 대륙수복에 비하면 그나마 덜 위험한 친대만 정책을 펼쳐 중국을 압박하는 노선으로 선택하는 실정이다.
4. 관련 단체
- 중국
- 홍콩
- 한국
- 미국
- 주미중화총회관(駐美中華總會館)
- 로스앤젤레스 중화회관(洛杉磯中華會館)
- 해외중산학회(海外中山學會)
- 바티칸
- 파라과이
- 시우다드델에스테 중화회관(東方市中華會館)
4.1. 역사 사례
중화민국이 아시아에서 부강했었던 공화국이었던 만큼 주변국에서 이를 벤치마킹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당장 대한민국의 '민국'이 중화민국이란 국명에서 본딴 것이다.
5. 관련 인물
6. 관련 매체
- 영국령 홍콩: 반환 이후 홍콩의 친중화민국 언론들은 폐간되거나 친중공으로 전향하였다.
- 공상일보(工商日報)
- 화교일보(華僑日報)
- : 현재 친중공으로 전향
- : 현재 친중공으로 전향
- 한국
- 미국: 모두 중화민국계 미국 화교들이 운영하고 있다
7. 관련 사건
- 중국
- 천안문 6.4 항쟁: 일부 친중화민국 세력이 시위대 측에 참가했다.
- 영국령 홍콩
- 미국
- 샌프란시스코 중화회관 국기 철거 사건: 201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진출한 중국 대륙 사업가들이 현지 친중화민국 단체인 샌프란시스코 중화회관에 걸린 청천백일만지홍기를 철거하라고 소송을 걸어 오성홍기로 대체당한 사건으로 2019년까지 치열한 소송전 끝에 친중화민국 세력이 승소하여 다시 중화민국 국기를 걸게 되었다.[18]
8. 관련 항목
[1] 일반적으로 1949년 국부천대 이후의 중화민국을 가리키며 그 이전은 잘 포함되지 않는다.[2] 중국어로는 중빠를 뜻하므로 혼동 주의.[3] 친중화민국주의자들에게는 중화민국이면 중화민국이지 중화민국(대만)이 아니다. 대만 = 중화민국이 아니라 대만 ⊂ 중화민국이므로. 반공대륙을 주장하는 범람연맹 측은 물론 통일을 포기하고 두 개의 중국을 인정하자는 온건 범람연맹 지지자도 이러한 표현을 좋게 보지 않는다. 또한 이와 근본적으로 같은 논법으로 '대만은 국가가 아님', '진먼과 마쭈는 대만이 아님'을 강조하는 성향도 있다.[4] 친한과 친북의 차이라 생각하면 된다.[5] 사례로 홍콩의 친중파와 민국파가 센카쿠 열도에 들어와 오성홍기와 청천백일만지홍기를 한 자리에서 나란히 휘날리며 시위한 적이 있다.당시 기사(영어)[6] 사실 한국도 그런데, 조선중앙방송 등에서 독도 영유권 관련해서 일본 욕했다는 보도를 하면, 보통의 남한 사람들은 걔들더러 잘했다고 하지, 우리 땅인데 왜 너희가 나서냐 하는 반응은 흔치 않다.[7] 이는 일제강점기 조선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조선의 국권 회복을 원한 것이지 일본과 조선총독부의 민주화를 바란게 아닌 것과 같다.[8] 자유조선 등 북한의 반체제 인사들이 모두 친남은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또 남한의 반체제 인사가 전부 친북은 아닌 것이나 마찬가지다.[9] 대상을 한국으로 치면 통일반대론자면서 북한 수복을 주장하는 격이지만 한국과 달리 대만은 중화민국이자 대만으로 여겨지니 크게 관심있지 않는 이상 혼동이 쉬울 수밖에 없다.[10] 정작 장제스에게 경의를 보내는 범람연맹은 21세기 와서는 친중(공)적 방향으로 선회했으며(공산당과 친밀하다기 보단 방법론을 대화와 협의로 바꿨다), 정작 반중(공) 성향을 보이는 범록연맹을 비롯한 대만 진보진영은 장제스를 독재자,학살자라고 생각해 싫어하며 대만민족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에 '자유중국'을 잘 내세우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의 혐중(공)+친장제스 성향은 현 대만 내에선 보기 드물어진 셈.[11] 경우에 따라서는 중화민국 사람들의 지지도 못 얻는다. 1중 1대를 주장하는 독립파들이 그 예다.[12] 서울에 위치한 협회로 한성(漢城)은 원래 서울의 중국어 표기였으며 2005년에 首爾(서우얼)로 바뀌었다. 그러나 본 협회는 전통상 계속해서 漢城이란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13] 친중화민국이라기보단 친대만에 더 가까운 노선으로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친대파 항목에 조원진 항목을 등재해놓았다.[14] 심심하면 대한민국-중화민국 양국 공무원들의 만남을 가졌으며, 박정희의 경제정책은 대만 장개석의 경제개발을 많이 본땄다고 한다. 장제스 총통 서거 당시 조문단을 파견하기도 하였다.[15] 선우휘 칼럼(조선일보 1983.10.09.) 중국의 옥은 어디 있는가 : "그럼, 오늘날 정통의 중국은 어디있으며 진정한 중국인은 누구인가?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대만에 있는 자유중국이요, 거기 사는 중국인들일 것이다. (중략)여기서 단정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자유중국이 대륙으로 복귀하지 않고 중공이 그대로 눌러있는 한 우리의 민주평화통일은 백일몽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형편이 중공이 '봐줘서' 좋아지리라는 생각보다 더 어리석고 위험스러운 생각은 없을 것이다."[16] 6.25 전쟁 당시 북진하고 내친 김에 중국 대륙도 중화민국에게 돌려주자며 중화민국군의 참전과 원폭 사용을 주장하던 인물이다.[17] 달라이 라마 본인은 중국의 티베트 탄압을 반대하지 독립까지는 주장하지 않는다. 본인부터가 중화민국 대륙시대 출신이기도하고.[18] 원래 이곳은 대륙인들이 오기 한참 전에 있었던 곳으로 당연히 중화인민공화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