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카쿠 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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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명 : 센카쿠 열도(첨각열도, 尖閣諸島)
중국명 : 댜오위다오(조어도, 钓鱼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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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카쿠 열도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우오쓰리시마(중국명 댜오위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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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명칭
3. 상세
3.1. 역사
4. 사건 사고
5. 각국의 반응
6. 관련 문서


1. 개요


일본의 오키나와현, 야에야마 제도의 으로 위치상 대만 섬오키나와 제도 사이에 동중국해 남서쪽의 무인도와 암초로 이루어진 제도를 말한다. 일본중국, 대만이 각각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고 '''현재 일본이 실효지배를 하고 있는 중'''이며 일본 정부가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영토 분쟁 지역이다. 일본 행정구역상 일본 오키나와현 이시가키시 소속이지만 이시가키 섬과는 상당히 떨어져 있다.[1]
일본은 이 도서를 독도와 마찬가지로 무주지라고 주장하며 병합하였고(무주지 선점론), 이에 대해 중국/대만에서는 타이완 성 이란현 소속의 섬이지만 일본이 이 지역을 불법 점유하고 있으며, 일본의 '무주지 편입' 이전부터 자신들(중국 대륙의 국가들)이 이 섬을 인지하고 있었음은 물론 자신들이 영유하고 있었다는 증거를 내놓아 자신의 영토임을 주장하고 있다.
지리적 위치를 보면 센카쿠 열도는 오키나와에서는 450km 떨어져 있고, 이시가키대만에서는 각각 170km, 요나구니섬에서는 150km, 타이완의 펑지아섬에서는 140km 떨어져 있고 중국 대륙 본토에서는 약 320km 떨어져 있다.

2. 명칭


  • 일본 - 尖閣諸島(센카쿠 제도) 또는 尖閣列島 (센카쿠 열도)
  • 류큐어 전통 명칭
    • 오키나와어: ユクン・クバジマ(유쿤쿠바지마)[2]
    • 야에야마어: イーグン・クバジマ(이군쿠바지마)[3]
  • 중국 - 钓鱼岛及其附属岛屿[4][5](댜오위다오 및 그 부속도서)
  • 대만 - 釣魚臺列嶼[6](댜오위타이 열도)
  • 옛 영어명: Pinnacle Islands
대만이 사용하는 중국어 정체자 문서 중에 臺 대신에 臺의 약자로도 쓰이는 台를 쓰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정식으로는 臺를 쓰는 것이 권장된다. 단 홍콩마카오에서는 정식으로 臺를 폐지하고 台로 병합했기에 台로 표기하는 경우가 꽤 많다. 중국어 간체에서도 臺가 폐지되고 台로 통합됐으므로 무조건 台로 써야겠지만. 그런데 댜오위타이(釣魚臺 또는 釣魚台/钓鱼台)는 베이징에 있는 유적지 이름과 같아서 혼란을 일으킬 수 있으니 주의. 베이징에 있는 댜오위타이는 현재 주로 중국을 방문한 국빈을 영접하는 곳으로 쓰이고 있다.
옛 영어명에 보이는 pinnacle(피너클)은 건물(예를 들면 누각·樓閣) 위에 올려 놓는 작은 첨탑(尖塔)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일본어명 센카쿠(尖閣)는 바로 이 영어명을 번역한 것이다. 즉 원래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명명하기 전에 영어명이 더 먼저 있었던 셈.
중국어명에 보이는 조어(釣魚)는 낚시, 물고기잡이를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댜오위다오(조어도)는 물고기 잡는 섬이라는 뜻이고, 댜오위타이(조어대)는 물고기 잡는 높고 평평한 건물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댜오위다오/댜오위타이 자체는 이 제도 중 핵심이 되는 섬 하나를 가리키는 말인데, 이 섬에 붙여진 일본 측 명칭은 '조어' 부분을 거꾸로 뒤집어 쓴 우오쓰리 섬(우오쓰리시마, 魚釣島)이다. 조어(釣魚)나 어조(魚釣)나 뜻은 같다.[7]
한국의 옛날 신문에서 센카쿠 열도 관련 기사를 찾고 싶을 땐 댜오위다오, 댜오위타이, 센카쿠보다 조어도, 조어대, 첨각으로 검색하는 게 걸리기가 쉽다. 예전엔 한자를 그대로 한국 한자음대로 읽고 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8] 물론 조어대의 경우 베이징에 있는 유적지가 검색 결과에 걸릴 가능성도 높으니 주의.

3. 상세


원래 섬 일대는 1884년 오키나와에 살던 후쿠오카 현 출신 사업가 고가 다쓰시로가 발견한 뒤 일본 사이타마현에 사는 한 남성의 사유지였으나, 일본 정부가 권리자에게 20억 5천만 엔을 주고 매입하여, 2012년 9월 11일부로 국유화하며 오키나와현에서 관할로 두었다.[9]
중국은 댜오위다오가 대만의 부속도서로서 1403년 명나라 영락제 시기의 문헌을 근거로 중국이 댜오위다오를 가장 먼저 발견했으며, 댜오위다오라는 이름을 붙이고 섬을 이용해왔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이때부터 계속해서 중국이 관할권을 행사해왔으며, 여러 고지도들도 댜오위다오를 중국 영토로 표기한다고 주장한다. 출처.
이에 반해 일본은 류큐 왕국을 오키나와현으로 편입한 후 인근의 무인도였던 센카쿠 열도 또한 오키나와현으로 편입시켰으며, 1971년 미일 오키나와 반환협정에 따라 센카쿠 열도의 영유권이 일본에 반환되었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청일전쟁태평양전쟁을 거치면서 종전 이후 영토 문제가 명확히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중일간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중국에서 댜오위다오가 대만 소속이 아니라 류큐[10] 소속임은 인정하되 '''류큐는 중국에 조공을 바치던 속국'''이었으니 지금 일본은 오키나와 현을 불법 점령하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댜오위다오를 포함한 오키나와 현을 통째로 중국에 '반환'해야 한다는 자극적인 논리를 펼치기도 한다. 이는 류큐가 옛날에 조공 바치고 책봉받았으니까 속국이고 중국 땅이라면 똑같은 논리로 몽골한국, 베트남도 통째로 중국 땅이라고 우길 수도 있는 지나친 주장이다. 물론 아직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닌 듯하지만 2006년부터 갑자기 이런 주장을 펴는 중국 학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3.1. 역사


1879년, 일본 정부는 사츠마 번의 정벌 이래 작은 예속국가였던 류큐에 침입해 류큐 왕국을 폐합하였다.(류큐처분) 류큐왕국과 교류를 하고 있었던 미국의 전직 대통령인 율리시스 그랜트청나라에 이 사건은 심각한 문제이므로 청나라가 일본과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랜트의 중재로 청나라 측은 류큐를 3분해서 서남부의 사키시마 제도(미야코야에야마 제도)는 청이 먹고, 아마미 군도는 일본에 병합시키며 오키나와 제도 (오키나와 본섬 주변)는 독립을 유지할 것을 제안했다. 일본은 사키시마 제도(미야코야에야마 제도)는 청나라에 주는 대신 오키나와를 일본에 병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홍장은 일본의 제안을 조공국이 없어지는 굴욕이라고 여겼는지 받아들이지 않았고, 협상이 진행되는 도중 청일전쟁이 나면서 야에야마를 근거로 타이완 섬까지 통째로 일본이 점령하면서 류큐 분할은 없던 일이 되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그때 이홍장이 사키시마 제도를 받았을 경우 센카쿠 열도 영토 분쟁은 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이 섬들은 전통적 일본의 영역이 아니라 류큐, 아니면 대만 소속인데, 류큐의 부속도서로 본다면 그중에서도 오키나와 본섬의 부속도서가 아니라 사키시마 제도(미야코야에야마 제도)의 부속 도서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1895년 청일전쟁 와중에 일본 제국은 이 군도를 무주지라며 자국 영토로 편입했다. 편입과정은 현지에 표지 말뚝을 설치한다는 각의 결정을 했다는 것이다.(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실제로는 청일전쟁 승리 후 세울 필요성이 없었으므로 이를 실행하지는 않고, 1969년 5월 10일에 세웠다.
이때 편입 과정에서 외국에 알리지 않고 편입한 것으로 보인다.

질문: 일본 정부는 1895년의 각의(閣議) 결정을 대외적으로 밝히지 않고 비밀리에 실시한 것은 아닙니까?

일본 정부 답변: 1895년의 각의 결정이 당시 '''공개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당시 다른 일반적인 각의 결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전술한 각의 결정 이후 일본은 민간인의 토지 차용 신청에 대한 허가 발표, 그리고 국가 및 오키나와현에 의한 실지조사 등 센카쿠 제도에 대해 공공연히 주권 행사를 하고 있었으므로, 일본의 영유 의사는 대외적으로도 명백했습니다. 또한 국제법상 선점 의사에 대해 '''타국에 통보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1905년에 일본 정부가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할 당시에도, 대한제국 정부는 이를 모르고 있다가 1906년 울도 군수 심흥택이 독도에 일본인이 방문하고 나서야 이를 알고 본국 정부에 보고 할 정도였다. 이렇게 당시 일본은 영토를 편입하면서 관련국에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고 몰래 해왔다. 위 일본 정부의 답변에서도, 1) 민간인의 토지 차용 신청에 대한 허가 2) 오키나와현에 의한 실지조사 같은 주권행사가 '대외적인 영유권 의사 표명'이라고 액면 그대로 믿기에는 힘들어 보인다. 이는 일본 국내에서 몰래 할 수 있는 것으로 외국 정부를 상대로 한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 미국이 중국에 대만과 함께 류큐 일대를 중국에 완전히 '반환'하는 것을 제안했으나 이상하게도 장제스가 거부했다는 주장이 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굳이 추정을 해보자면, 그때 장제스가 류큐를 받았을 경우 센카쿠 열도 영토 분쟁은 없었을 수도 있다. '''어차피 이 섬들은 대만 아니면 류큐 소속이니까.''' 물론 중국이 이 곳을 실질 통치하겠다고 나섰다면 일본이 개입하지 않은 채 중국과 대만 사이에 분쟁이 생겼을 것이다.
현재 센카쿠 열도 분쟁에서 중국과 대만은 일본의 실효 지배를 무력화해야 하는 입장이라 일단은 협력 관계에 있다. 독도 문제에서 북한이 남한을 지지하면서, 굳이 끼어들려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센카쿠 열도와 인근 해역은 1895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영토로 귀속됐다가 1951년 9월 미일강화조약 체결로 일본에서 미국으로 이양되었다. 처음에 미국은 당연히 중국에 모두 반환해주려고 했는데 장제스가 거절한 이후 미국은 땅 욕심이 생겨서 결국 미국의 영토가 됐다. 그러다 다시 일본에 반환되었고 사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동 도서에 대한 영유권 주장은 제기되지 않았으나, 1968∼1969년 유엔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ECAFE)의 아시아 연안지역 광물자원 공동개발조정위원회(CCOP)가 동중국해 일대의 해저조사를 실시하여 석유매장 가능성을 확인한 시점부터 중국-대만의 영유권 논쟁이 활발해졌다.[11]

4. 사건 사고


2010년 9월, 일본이 이 섬 주변에서 조업을 하던 중국인 어부를 체포했다. 여기에 중국은 맹렬하게 항의했다. 중국 정부에서 일본 관광을 금지하고 희토류 원소 수출을 중지하겠다는 격렬한 압박을 벌인 끝에, 결국 일본은 '''중국인 어부들을 무조건 석방하는 굴욕'''을 보이면서 양국의 국민감정은 극히 나빠졌다. 이 사건으로 민주당과 간 나오토는 지지율이 폭락했고, 반대로 자민당은 반사이익을 얻어 이후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후임인 96대 총리직을 다시 자민당이 가져갔다.
이후 10월 12일, 사건 발생 당시에 중국 어선이 일본 순시선에 들이박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가 현재는 삭제되었다. 해당 영상이 해상보안청 직원에 의해 유출되었다는 것이 알려지자 해상보안청의 상급 기관의 수장인 마부치 스미오 당시 국토교통대신과 내각총리대신의 최측근인 센고쿠 요시토 당시 내각관방장관이 경질되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중국이 완전히 이겼다고 볼 수도 없는 것이 그 후 일본은 바로 도서지역 방어를 명분으로 글로벌 호크를 도입하려고 하였고, 군비증강과 요나구니 섬에 병력을 배치하고 있어 자위대의 활동범위까지 늘려주고 말았다. 일본의 군비증강에 대해 비판하던 중국으로선 구실을 만들어준 꼴이 되었다. 요나구니 섬은 센카쿠 근처에 위치한 곳으로 이곳에 병력을 배치하는 것은 센카쿠 열도의 수비를 강화하고 감시하기 위한 것이다.
2013년 1월 18일에 우리나라(한국)국적의 황금호가 이 부근에서 화재로 인해서 침몰하자 중국과 일본, 대만은 지도자가 직접 지시하여 세 국가 모두 자국 해군 군함, 구조선, 항공기까지 동원할 정도로 경쟁적으로 나서서 특수 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구조 경쟁이 치열했다.#[12]
일본오가사와라촌의 미나미토리시마[13] 해저에서 대규모 희토류 원소가 발견되어 어차피 틀어진 중/일간 사태는 걷잡을수 없는 양상으로 굴러갈수 있다. 이번에 발견된 그 규모는 '''전세계가 몇백년치 사용할 분량으로 1600만톤이 발견'''되었다.[14] 그러나 역시 그 채산성에 대해서는 검증이 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여기는 센카쿠 열도와도 중국과도 전혀 상관없는[15] 태평양 한가운데의 섬이다.
2012년 4월 이시하라 신타로가 이곳을 자신이 도지사로 있는 도쿄에서 사겠다는 성명을 밝혔다. 물론 중국에게 돈을 지불해서 구입하겠다는 게 아니라, 현재 개인 소유로 되어있는 센카쿠 열도의 섬 일부를 해당 개인에게 돈을 지불하고 도쿄로 편입시키겠다는 소리. 그러니까 이게 성공한다면 이후 중국측에서 센카쿠 열도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형식상으로 일본의 수도인 도쿄에 대한 간섭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은 감정 대립에 있어서는 몰라도, 법리적으로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개인의 부동산 소유권과 영토에 미치는 국가의 주권은 완전히 분리된 것이다. 이를테면 일본인이 독도에서 부동산을 산다고 그 부동산이 '일본의 영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설사 중국인이 센카쿠 열도의 섬을 개인적으로 구입하여 가지고 있다고 해도, 부동산을 소유하려면 일본의 관청에 등기를 해서 일본 정부에 부동산 관련 세금을 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부동산을 구입하여 소유한 중국인은 일본의 영토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되는 셈이다.
이처럼 영토에 관한 주권 대립의 문제에서 해당 부동산 소유자의 국적은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결국 이 활동은 이시하라 신타로의 유치한 선동질이며, 그나마도 결국에는 섬주인이 도쿄가 아닌 일본 정부에 팔면서 일본은 센카쿠 열도를 공식적으로 국유화하였다.
그리고 2012년 8월 15일, 일본 정치인들이 태평양 전쟁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센카쿠에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은 중국 소속의 시민단체 댜오위다오보호행동위원회가 상륙을 감행했고 일본 측에서 시민운동가 5명을 체포해 버렸다. 비록 중국인은 아니지만 엄연히 중국 주권의 홍콩인이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어떻게 처리를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참여자 중에 대만 사람과 대만을 지지하는 홍콩 사람들도 있어서,[16] 오성홍기 2개 외에 청천백일만지홍기 1개를 가지고 함께 상륙했고 의용군 행진곡삼민주의가를 모두 불렸다고 한다.
같은 중국 국적자라도 중국 본토 주민이 중화민국 국가를 불렀다간 코렁탕 먹기 십상이지만 홍콩과 마카오 주민은 일국양제(1국가 2체제)에 따라 중국을 거부·부정하는 정치 활동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 그래서 홍콩에는 중국에서 독립해서 홍콩을 독립국으로 만들어 영연방 회원국이 되자고 주장하거나, 중화민국을 정통 중국으로 간주하고 홍콩의 중화민국 편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중국 정부답게 몰래 감시를 하거나 탄압은 기본이다. 홍콩과 마카오에 대한 일국양제는 각각 반환한 날짜부터 최소 50년은 보장하기로 했기 때문에 그 동안은 합법이다. 물론 이 50년이 지난 뒤 중국 정부가 일국양제를 연장시킬지 폐지할지 지금은 아무도 모른다. 2014년 홍콩 우산 혁명의 사례를 보면 50년 후에 일국양제를 폐지할 가능성이 높아보이기도 하지만 진짜로 그렇게 할지는 역시 알 수 없다.
어쨌거나 결국 일본은 이들을 체포하긴 했으나 중국의 반발이 클 것으로 예상되어 나머지 재판 없이 바로 추방을 해버렸다. 자칫 이들을 기소라도 했다간 간 나오토 총리 시절과 마찬가지로 중국이 크게 반발하기 때문에 독도 문제에만 집중을 하자는 판단 때문인 듯.
2012년 9월 11일, 일본이 센카쿠 열도의 3개 섬을 개인 소유자에게 20억 5천만엔을 주고 구입하여 정식으로 국유화한 것이 반일의 불씨에 기름을 끼얹는 결정타가 되었다. 이윽고 중국 전역에서 본격적인 반일시위가 시작되었다. 반일시위가 절정에 달한 것은 9월 18일 전후로, 이날은 류탸오후 사건을 조작하여 일본군만주사변을 일으킨 날이라서 원래부터 중국에서 반일감정이 알게 모르게 끓어오르는 시기인데, 센카쿠 열도를 일본이 국유화한 사실이 알려짐에 따라, 두 사항이 합쳐져 반일감정을 엄청나게 끓어올렸다.
중국다운 대륙의 스케일에 걸맞게 '''해군 군함을 붙인 어선 군단'''으로 센카쿠 열도 바로 옆에서 대놓고 조업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시위로 인해 중국에 진출해있던 일본 대다수 메이커들이 파괴, 약탈등의 초월적인 피해를 입었고 시위대와 정부 단위로 내뿜어대는 무지막지한 패기로 인해 가뜩이나 안좋았던 중일관계는 삽시간에 막장으로 변해버렸다. 어선들에게 중국 해군을 붙이는 경우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드문 일이고, 센카쿠 열도를 칩입하는 중국어선을 돕는 일은 주로 중국의 해안경비대 경비함들이 나선다.
2012년 8~9월에는 중일간의 충돌의 여파로 일본의 대중국수출이 크게 감소했다.
2013년 8월 중국 해경선 4척이 이틀동안 센카쿠 해역에서 일본 어선과 순시선들을 쫓아버리며 시위를 벌였고, 이에 맞서 일본도 중국의 센카쿠 열도 상륙에 대비해 대규모 탈환 훈련을 벌였다.
한편 같은 달에는 중국 인민해방군에서 지원한 온라인 FPS 광영사명 온라인에서 출시와 동시에 센카쿠 열도를 자위대의 공격으로부터 지키는 코옵 모드가 발표되어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서 굉장히 시끄러웠다.[17]
2014년에는 아예 중국측에서 센카쿠 인근에 자국의 '''군사기지'''를 건설했다. 중국은 앞으로도 외교 협상에서 유연한 자세를 보이면서도 일본의 센카쿠 실효 지배를 무너뜨리기 위한 '''군사력 확충을 지속할 것'''이라고 한다. #
그리고 이 기사를 보면 센카쿠 열도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5일만에 압승을 거둔다 했는데, 현재 중국의 국력이 일본보다 우위이긴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지도 않고 겨우 5일만에 압승을 거두는 건 '''무리'''다. 그리고 현재 공군력으로 따졌을 땐 중국이 우위는 명확하나 해군력에서 여전히 중국이 일본을 일방적으로 누르는 건 불가능하다. 거기에 일본이 미국의 동맹국이다보니 중.일간에 전쟁이 일어나면 당연히 미국이 개입하는 만큼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기사를 봐도 알 수 있듯이 '''미 태평양 사령관이 중국이 센카쿠를 공격하면 일본을 보호하겠다고 대놓고 못 박은 상황이다.''' 당연히 센카쿠 열도도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으니까 센카쿠 열도도 방위하는 곳에 포함된다
8월들어 센카쿠 열도 분쟁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2016년 8월 12일 오전 5시경 센카쿠 열도의 가장 큰 섬인 우오츠리 섬 북서쪽 약 65㎞의 공해에서 그리스의 화물선과 중국 어선 민진위05891호가 충돌하여 어선이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하였고, 해당 어선에 타고 있던 중국 어민 가운데 6명이 일본 해상 당국에 의해 구조되었다. 기사. 기사2.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해 "협력과 인도주의 정신을 보여준 것을 칭찬한다"고 논평했으나 중국 인터넷 상에서는 자국 정부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상술된 것처럼 중국은 센카쿠 열도 해역 근처에서 대량의 어선을 동원하여 조업하는 방식으로 일본에 시위해 왔었고, 어선을 통제한다는 명분으로 해경선을 투입해 왔었다. 사고 전날에도 200척 가량의 선박이 일시 조업 활동을 펼쳤으며 근처에도 적지 않은 해경선이 위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 해경선이 사고 직후부터 수색을 하였음에도 어민들을 직접 구출하지 못하면서 긴급 상황에 자국민을 구출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마이니치 신문은 일본 정부 내부에 이번 구조를 통해 최근 격앙된 센카쿠 열도 문제가 다소 완화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2017년에는 아예 중국 해경선이 일본과 영유권을 다투는 동중국해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부근뿐만 아니라 '''규슈 남부 영해'''까지 처음으로 '''침범'''하는 등 오히려 중국 측에서 일본에 대한 도발을 더 확대하고 있다. #
거기다 2018년 올해 1월에도 '''중국 잠수함이 센카쿠 수역에 진입'''하는 등 갈등과 충돌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 일본 측에 따르면 중국 잠수함이 이 지역 주변 일본 접속수역에 들어온 것은 2013년 이후 이번이 6번째라고 한다. 특히 이날 다이쇼지마 앞바다에서는 중국군 프리깃함도 출현해 접속수역 안팎을 넘나든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일본은 2014년 11월에는 중국 원자력 잠수함이 센카쿠 열도 자국 영해에서 항해했다고 밝힌 바 있다.
2018년 3월에는 중국 해경선이 나흘 연속 센카쿠 열도 일본 접속수역에 진입하는 등 중국측의 도발이 갈수록 상례화되는 중이다. # ##
2019년 3월에도 중국 해경선 4척이 센카쿠 열도 내 일본 해역으로 침입하였다. #
2019년 8월 1일에는 아예 052D형 구축함 2척을 비롯한 중국 함정 6척이 잇따라 센카쿠 열도에서 가까운 일본 오키나와 인근의 미야코 해협을 통과했다. 심지어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일본 측의 반발에 대해 '''"혹시 중국 군함이 과거에 미야코 해협을 드물게 지나갔기 때문이라면, 앞으로 여러 번 더 지나가겠다"'''면서 '''"일본이 익숙해지면 괜찮아질 것"'''이라고까지 말하는등 일본과의 해상 영유권 분쟁에서 물러날 의사가 전혀 없음을 공개적으로 발언하기도 하였다. #
심지어 중국 해경국 함정들의 센카쿠 영해 침범이 2019년 들어 크게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중 해경국 함정, 일 센카쿠 영해 침범 올들어 급증 기사에 따르면 중국 공용선박의 일본 영해 침범은 작년(2018년) 12월 일본의 센카쿠 열도 국유화 후 처음으로 월 단위로 '제로'를 기록했지만 올들어서는 1-4월에는 월 3회, 5월에는 4회로 늘었다. 7월 29일까지 일본측의 영해를 침범한 중국 공용선박은 '''연 82척'''에 달했다. 작년 1년 동안의 70척을 이미 넘어선 것이다. 접속구역 항해는 4-6월에 걸쳐 과거 최장인 '''연속 64일'''을 기록했다. 이에대해 일본측은 2019년 7월로 중국 해경국이 군 계통의 인민무장경찰부대로 편입된 지 1년이 지나면서 해경국 선박들의 항해 양상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해상보안청오키나와현 11관구의 소속 해상순시선 11척과 순시정 10여척의 600명의 대테러부대이시가키시에 보안대를 따로 만들어 센카쿠 열도의 방어를 극대화하고 있다. 또한 오키나와현의 여론을 반중 정서로 맞추어 고조시키며 중국위협론을 부각시키고 있다고 한다.
2020년 4월 2일부로 경비 강화를 위해 '국경낙도경비대'를 출범시켰다.#
일본이 센카쿠 열도 주소 변경에 나서자 대만이 먼저 주소변경 가졌다.# 이시가키 시의회는 센카쿠 열도의 주소 표기를 '이시가키시 도노시로'(登野城)에서 '이시가키시 도노시로 센카쿠'로 변경하는 의안을 이날 회의에서 찬성 다수로 가결했다. 오는 10월부터 적용된다.#
케빈 슈나이더 주일미군 사령관은 중국군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센카쿠 열도 주변 영해와 접속수역을 수시로 침범하는 도발을 하는데 직접 개입할 것임을 시사했다.#
자민당에서 센카쿠 열도 실효지배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이 센카쿠 열도와 관련한 온라인 박물관을 세웠다.# 일본이 항의하지 않을 리는 있을 수가 없다.#
센카쿠 열도 동쪽 끝 섬인 다이쇼지마(大正島) 인근의 수역에 중국 해경국 소속 선박 2척이 10월 13일 오후까지 머물다 돌아갔다. 이는 체류 시간은 57시간 39분에 달했다.#
중국군이 일본정부전용기를 향해 '중국 영공을 침범했다'고 경고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020년 9월 27일에는 조어도 인근 수역에서 대만 어선이 일본 해상 보안청 순시선에 의해 충돌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대해 대만 해양순방서는 어민들을 도와 일본과 후속 협상을 통해 손해배상 등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한다. 댜오위타이 수역서 우리 어선 일본 순시선에 의해 충돌

5. 각국의 반응



5.1. 일본


'''명백한 일본 땅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 게재된 공식 입장을 옮기면, "센카쿠 제도가 일본 고유 영토임은 역사적으로도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하며, 실제로 일본국은 이를 유효하게 지배하고 있습니다. 센카쿠 제도를 둘러싸고 해결해야 할 영유권 문제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습니다."라고 한다.[18]
일본은 센카쿠 열도에 대해 1885년 오키나와에 살던 후쿠오카 현 출신 사업가 고가 다쓰시로(古賀辰四郞)가 발견한 뒤 일본 정부가 무주지(無主地)임을 확인하고 1895년 1월 14일 오키나와 현에 정식 편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반적인 무주지를 영토로 편입했으므로 센카쿠 열도는 일본 영토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 주장을 중심으로 센카쿠 열도 개척의 날이라는 기념일까지 만들었다.
이 같은 영유권 분쟁은 북한 핵개발 문제와 함께 일본 내에서 평화헌법 개정의 명분과 군비 강화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2014년 7월 내각의 결정에 따라 헌법해석 변경이 이루어졌다. 이는 우익 세력의 오랜 숙원인 헌법개정의 전초작업에 해당한다. 개헌이 국내여론상 어렵다고 판단되자 헌법 9조의 해석[19] 변경을 단행하여 개헌과 비슷한 효과를 보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또 경항모급인 이즈모함을 건조하고 차세대 주력전투기로 쓰일 F-3 개발과 미국으로부터 F-35를 도입하는 등의 조처를 통해 군사력 강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7년 아베 총리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공식적으로 일미안보조약 제5조의 대상이 됨을 재천명하였다.[20]

5.1.1. 류큐 독립 지지자


류큐 독립 운동가들은 일본 정부와 동일하게 센카쿠 열도가 현재는 오키나와현 소속이라는 입장이다. 그리고 류큐가 독립할 경우 '''명백히 류큐 공화국의 영토가 돼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다만 근래 중국과의 센카쿠 열도 영토 분쟁이 격화되자 독립 운동에 불똥이 튀었다. 독립 시 센카쿠 열도를 중국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겠냐는 우려 때문에 독립 찬성 여론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 일각에서 오키나와 현 현지의 독립 운동가들의 입장과 무관하게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류큐 독립이나 류큐의 중국 편입 같은 주장이 나오자, 류큐 독립 운동가들이 일본 극우 세력으로부터 중국의 지원을 받았느니 어쩌니 같은 사실과 다른 음해에도 시달리고 있다. 상세한 내용은 류큐 독립 운동 문서를 참고할 것. 그리고 류큐가 독립했을 경우 중국은 아예 센카쿠 열도만이 아니라 류큐를 강제로 병합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실제로 중국은 류큐가 자신들에게 조공을 바쳤다는 이유만으로 류큐가 중국의 역사라는 말도 안되는 류큐공정이라는 역사왜곡을 자행하고있다. 중국이 역사왜곡을 하는 이유는 자신들 패권주의적 침략행위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목적이 제일 크다. 실제로 티베트와 위구르도 중국의 이같은 패권주의적 침략행위에 당해서 강제병합을 당하였다. 그리고 티베트인과 위구르인들은 자유를 잃고 자신들의 문화가 파괴당하는 비극을 겪었고 지금도 현재진행중이다. 적어도 일본이 현재는 류큐의 문화유산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는등 보호해주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5.2. 중국


'''명백한 중국 땅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더 나아가서 미국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스에 '댜오위다오는 중국 땅'이란 내용으로 대형 광고를 실어 일본이 골머리를 앓게 했다.

5.3. 대만


'''명백한 대만 땅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모두 자신의 입장이 올바르다고 주장한다.

釣魚臺列嶼(Diaoyutai Islets)是臺灣的附屬島嶼,其行政管轄隸屬臺灣省宜蘭縣頭城鎮大溪里。無論從歷史、地理、地質、使用與國際法來看,'''釣魚臺列嶼都是中華民國的固有領土。'''

댜오위타이 열도(Diaoyutai Islets)는 대만의 부속 도서이며, 그 행정 관할은 대만성 이란현 터우청진 다시리에 예속되어 있다. 역사, 지리, 지질, 국제법적 관점을 막론하고, '''댜오위타이 열도는 중화민국의 고유 영토이다'''.

출처: 대만 외교부, 中華民國對釣魚臺列嶼主權的立場與主張(중화민국의 댜오위타이 열도 주권에 대한 입장과 주장)

대만 극우들도 이곳으로 배를 타고 돌격하여 일본 극우단체랑 바다에서 쌍욕하고 서로 들이박기까지 하며 일장기를 불태우고 분노하던 적도 있으니 말 다했다.
일본독도 문제로 국제사법재판소로 가네 마네 할 때 대만에서 "댜오위타이 문제도 같이 회부하자!"라고 주장했다고 하나 실제로 대만이 ICJ회부를 실행에 옮겼다면 일본은 ICJ 강제 관할권 조항에 동의한 국가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일방적인 제소에도 무조건 응해야 하므로, 실제로 대만이 ICJ에 회부한 것은 아니다.
현재 대만은 일본과 따로 협정을 맺어 현재 대만의 센카쿠 열도 영유권 주장은 일시 유보한 상태이다. 정확하게는 미국처럼 일본의 행정권까지만 어쩔 수 없이 인정해준 것이고, 주권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대만에서는 센카쿠 열도 영유권 주장에서 정치 진영에 따라 온도차가 있는데, 범람연맹 계열에서는 센카쿠 열도가 대만 땅이라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편이다. ICJ에 회부하자는 발언도 범람연맹의 중심 정당인 중국 국민당이 집권했던 시절 마잉주 당시 총통이 했던 말이다. 반면 범록연맹 계열에서는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해 센카쿠 열도가 대만 땅이라고 말은 해도 적극적으로 영토 분쟁에 나서지는 않는다. 리덩후이는 아예 센카쿠 열도가 일본의 영토라고 발언해버려서 대만 여야 양쪽에서 까인 적이 있다.
범록연맹 계열의 민주진보당 소속 차이잉원 현임 총통은 당선 직후 "조어대는 중화민국의 영토다"라고 발언한 바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이유로 차이잉원 총통 시기에는 영토 분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만 입장에서는 그렇잖아도 중국에 밀려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상황에 일본마저 적으로 만들어 좋을 게 없기 때문에 센카쿠 문제로 일본을 자극하는 것은 최대한 피하고 있다. 물론 일본 입장에서도 중국 견제를 위해 대만과의 협력은 중요하다. 대만과 일본 양국은 2012년에 대만 어민의 센카쿠 해역 내 조업 허용을 골자로 한 어업협정을 체결한 바 있으며, 일본 내에서는 대만에 너무 많이 양보한 거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대만으로부터 센카쿠 관할권을 인정받는 대신 어업권을 내준 셈이다.
2020년 현재 타이완-일본 수역에 대만 해양순방서는 매일 한 척 내지 두 척의 함정을 파견해 순시 근무하고 있으며, 해양순방서 제1순방구주임 홍버성(洪伯昇)은 앞으로도 우리 정부의 어민보호 표준작업 절차에 의거하여 어민 보호 임무를 이행하고 우리나라 주권과 어먼의 어업권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5.4. 미국


미국은 센카쿠 열도를 일본땅으로 보고 일본을 지지하는 중이다.
2015년 아베 신조 내각의 노력으로 미국이 센카쿠 열도에 대한 미일방위조약의 효력이 발휘됨을 인정하는 상황이고 동시에 미일합동훈련을 통한 중국의 센카쿠 열도에 대한 팽창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저지를 위한 미일방위협력을 가속화함으로써 일본 영토임을 시인했다. 현재 센카쿠 열도를 두고 중일간의 갈등은 상당히 대립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2015년 동안 근접위협비행에 사격레이더의 조준 등의 사건들이 나오고 있고 중국견제론에 입각하여 일본의 아베내각이 매우 강경하게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미-일 가이드라인에 ‘센카쿠 방위’ 명기”, 美태평양사령관 "中 센카쿠 공격시 日 방위"…군사개입 표명, 미일 국방, 센카쿠 안보조약 적용 재확인, 2017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또한 마찬가지로 센카쿠 열도를 보호한다고 천명했다. '''트럼프·아베 정상회담…“센카쿠 열도 안보 대상” 중국 견제'''
현실적으로 미국에게 중국은 잠재적 주적이다. 때문에 중국이 어디랑 대립을 갖더라도 표면적인 주적인 북한과의 대립이 아닌 이상 중국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사실상 일본의 영유권을 인정해주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미일관계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례없이 강력한 상황이며 센카쿠 열도 분쟁뿐 아니라 남중국해 분쟁, 한일 간의 위안부 합의, 일본의 재무장 등 여러 현안에서 대부분 미국은 일본 편을 들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도 이 분쟁에 함부로 왈가왈부 하지 못하는 상황.

5.5. 한국


한국은 공식적으로 이 문제에 중립이고, 최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일본이 실효지배하는 점을 고려하여 이름을 표기할 때에는 일본명을 따라 '센카쿠 열도'라고 부를 때가 많으며, 맨 처음 언급할 때에 한해 '(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병기한다.
민간에서는 한편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에 반감을 가지고 똑같이 무주지라고 병합한 이 섬을 중국이 영유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으나, 일본과의 독도 분쟁을 생각하면 '''실효지배'''하는 쪽이 유리하다는 논리를 따라 한국의 독도 실효 지배의 정당화로 오히려 일본의 센카쿠 열도 실효 지배를 인정하는 의견도 있다.

5.6. 북한·러시아·몽골


북한러시아, 몽골은 같은 구 공산권인 중국의 영유권 주장에 동조하는 경향이 있지만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둘은 동상이몽의 상태라 꼭 지지만 하고 있지도 않다.
북한에서는 공식적으로 '''댜오위다오'''라고 칭하며, "일본명 센가꾸 렬도"라고 병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혈맹 관계이니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러시아는 명시적으로 일방을 지지하는 의사를 표명하는 것은 아니나, 쿠릴 열도를 둘러싼 분쟁과 관련하여 일본과 대립하는 입장에 있어, 중국에 동조하는 것으로 보이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다만, 러시아의 경우 쿠릴 열도를 실효지배하고 있는 입장에 있으므로 중국의 주장에 완전히 힘을 실어 주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이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는 입장에서 센카쿠 열도와 관련하여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기 어려울 수 있는 것과 비교하면 러시아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몽골의 경우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낀 지정학적 위치와 더불어 외교적으로도 양국과 보다 가까우므로 중국의 주장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몽골 역시 명시적으로 중국의 영유권 주장에 동조한다고 보기까지는 어렵다.

6. 관련 문서



[1] 도쿄오가사와라 제도만큼은 아니지만...[2] 유쿤은 우오쓰리 섬(魚釣島), 쿠바는 구바 섬(久場島)을 가리킨다. 가장 중요하게 여긴 두 섬을 가지고 센카쿠 열도를 포괄해서 표현한 것이다. 또한 유쿤은 물고기(魚), 쿠바는 비로 야자(ビロウ, livistona)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3] 오키나와 방언과 마찬가지로 우오쓰리 섬과 구바 섬을 합칭한 것. 또한 이군은 물고기를 잡을 때 쓰는 작살(銛)을 의미하고 쿠바는 비로 야자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4] 정체자(번체자)로는 釣魚島及其附屬島嶼.[5] 다만 이 명칭은 중국 대륙(본토) 지역에서 주로 쓰고, 특별행정구인 홍콩마카오에서는 중국 본토로 반환되기 이전부터 오랫동안 대만과 교류가 밀접했던 탓인지 대만에서 쓰는대로 釣魚臺列嶼나 臺만 台로 고친 釣魚台列嶼로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물론 홍콩과 마카오의 현지 정부는 중국 중앙정부에서 쓰는 표기를 번체로 바꾼 釣魚島及其附屬島嶼를 쓸 가능성이 있지만. 한편 중국어가 공용어 중 하나인 싱가포르와, 화교가 상당수 존재하는 말레이시아에서는 중국 정부가 쓰는 钓鱼岛及其附属岛屿를 많이 쓴다고 한다.[6] 관행상 台가 臺의 속자·약자로 흔히 쓰이기 때문에 釣魚台列嶼 같은 표기도 볼 수 있다. 특히 홍콩에서는 臺를 폐지하고 台로 통합했기 때문에 대만측 표기를 따르는 홍콩인들이 臺만 台로 고친 釣魚台列嶼로 표기하는 경우가 꽤 있다. 그리고 굳이 중국 본토의 간화자(간체자)대로 옮긴다면 钓鱼台列屿이다.[7] 한문 및 현대 중국어 문법상 동사 뒤에 목적어가 오는 게 기본 어순이지만, 목적어를 앞으로 당겨 도치할 수도 있다. 그래서 釣魚와 魚釣가 같은 의미가 된다. 여기서 釣는 '낚시질하다, 낚다'로 해석되고, 魚는 '물고기(를)'로 해석된다.[8] 오래된 신문 기사에서는 한글 없이 한자만 써놨다(소리내서 읽을 경우에는 한국 한자음대로 읽음). 하지만 네이버 등의 옛날 신문 검색 시 한글을 입력하면 거기에 맞는 한자도 자동으로 매칭시켜서 검색 결과에 표시해 준다. 이 기능 때문에라도 검색 시 한국 한자음대로 적는 게 좋다.[9] 부동산 소유자가 누구인가와 어느 나라의 영토이냐는 다른 문제이고, 또 한 나라 안에서 어느 행정구역에 속하느냐도 다른 문제이다. 예를 들어 부산에 사는 사람이 서울에 땅을 사도 계속 서울의 관할 지역에 속하고, 한국인이 미국 내 땅을 사도 미국 영토인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조치는 중국에 큰 어그로를 끌어서 중국에서는 한국THAAD 배치 당시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반일 감정이 형성되어 과격 시위도 있는 등 난리가 났다.[10] 오키나와 현, 때에 따라서는 가고시마 현의 아마미 군도도 포함.[11] 문단 서술 참고 내용의 출처 [12] 중국, 일본, 대만 언론이 대서특필할 정도였던 황금호 침몰사고의 결말은 선원 9명 가운데 대부분이 숨지거나 실종된 것으로...[13] 행정구역이름으로 오가사와라촌에 속하긴 하지만 오가사와라제도에는 속하지 않는 별도의 섬[14] 연합뉴스 2018.4.11날.[15] 남태평양 국가나 미국과의 분쟁이 생기면 모를까 중국과는 무관하다.[16] 말 그대로 홍콩이 중국이 아닌 중화민국의 지배를 받는 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2014년 홍콩 우산 혁명 같은 민주화 이슈에서는 홍콩 독립론자들과 입장을 같이 하지만, 일본과의 영토 분쟁 같은 이슈에서는 홍콩 내 중국 지지자들과 보조를 같이 한다.[17] 해당 게임의 코옵 모드 중 경험치 벌이가 가장 좋은 모드는 이 센카쿠 열도 모드와 중일전쟁 시기 상하이 모드 두 가지다. 어찌 보면 게임으로 프로파간다 효과를 노린 것.[18] 일본 외무성은 다른 분쟁지역에 대하여는 '북방영토 문제', '다케시마(독도) 문제'라는 표현을 쓰는 반면, 자신들이 실효지배하는 센카쿠에 관하여만 '센카쿠 제도를 둘러싼 정세'라고 에둘러 표현하여 영유권 문제가 없음을 애써 강변하고 있다.[19] 기존 해석: 국제법상으론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갖고 있지만, 헌법을 개정하지 않는 이상 직접 침략하는 상대에 대해서만 대응할 수 있다. → 변경 후: 직접 공격받지 않아도 타국에 무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으로, 집단적 자위권 보유를 공식적으로 인정[20] 이는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결코 공짜로 얻어낸 것이 아니다. 일본의 센카쿠 열도 점유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대가로 일본 정부는 미국에 엄청난 경제적 지원을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