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N KUNG-FU GENERATION
1. 소개
1.1. 평가
'''ASIAN KUNG-FU GENERATION은 록의 희망 그 자체였고, 앞으로도 록의 희망을 계속 울려 퍼뜨릴 것이다.'''
ㅡ 타카하시 토모키 (음악 기자)
'''우리 세대에 있어서 아지캉은 마치 산소 같은 것이어서, 누구나 그들에게 영향을 받고 당연히 거기 있는 것으로서 기능하고 있습니다.'''
ㅡ 요네즈 켄시
1.2. 활동
일본 요코하마 출신,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산하 레이블인 큔 뮤직(Ki/oon Music) 소속의 4인조 록밴드. 메이져 데뷔 17년차, 8090년대에 결성되어 2020년대까지 활동하고 있는 24년의 경력을 지닌 밴드.
2003년 메이저 데뷔 이후 2021년 현재까지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정규 2집 「솔파(ソルファ)」(2004)는 발매와 동시에 오리콘 차트 1위를 2주 연속 달성하였고, 정규 4집 「월드 월드 월드(ワールド ワールド ワールド)」(2008)와 베스트 앨범 「BEST HIT AKG」(2012) 역시 발매 첫 주 오리콘 차트 1위를 기록했다. 최신 엘범은 싱글「다이얼로그 / 만지고 싶어 확인하고 싶어(ダイアローグ / 触れたい 確かめたい)」이다. 곡조가 많이 차분해졌다.
방송 활동은 거의 없이 대중적 인기와 평단의 인정을 동시에 받고 있는 밴드. 방송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이유는 얼굴이 알려져서 부담 없이 쇼핑을 하러 가지 못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자기 방어라고 한다. 그래서 방송에 출연할 때는 심야 방송인지 확인한단다. 또한 나오더라도 케이블 TV의 음악 방송에만 나왔었지만, 베스트 앨범을 발매하면서 후지 TV의 「우리들의 음악(僕らの音楽)」에 출연하였다.
1996년 대학 경음악부에서 시작해 직장인 아마추어 밴드 시절을 거쳐, 인디 시절에 낸 음반이 2003년 메이저에서 재발매되면서 데뷔했다. 록밴드로서는 어마어마한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더니, 이제는 독자적으로 나노무겐 페스티벌(NANO-MUGEN FES.)[2] 이라는 록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보컬이 중심이 되어 인디 레이블 only in dreams를 운영하며 다른 후배 록밴드들을 후원할 정도로 거대한 밴드가 되었다!
2007년 7월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같은 해 12월 홍대 고스트시어터 단독공연, 그리고 2009년과 2011년의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 출연하여 총 4회의 내한공연을 가졌다. 펜타포트 공연은 아지캉의 '''첫 해외 공연이기도 했었다.''' 펜타포트 공연 당시에는 한국에서 아지캉의 인지도가 별로 없을 테니 이름을 알리는 데 의의를 두자고 생각했지만 예상치 못한 열광적인 반응에 놀랍고 고마워했다고 언급했다. 그것 때문에 바로 5개월 후 홍대 고스트시어터에서 단독공연을 열었고 그 후 고토 마사후미는 올 때마다 "좋아요?", "사랑해요" 등 열심히 외운 한국어를 선보였다. 2007년 단독공연 당시에는 천안의 독립기념관을 방문하였고, 2009년 지산 공연 후에는 일기에서 내한공연의 감동을 이야기하며 언젠가는 꼭 헤드라이너로 서고 싶다고도 했다. 2011년에는 호텔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한국인 아주머니에게서 한국말을 잘 한다고 칭찬받아서 좋았다고 트위터에서 밝히기도 했다.[3]
한국의 인디 밴드 더 칵스(The KOXX)의 노래를 듣고 마음에 들어 NANO-MUGEN CIRCUIT 2011에 초청하였고 컴필레이션 앨범에도 칵스의 음원 「Over And Over」를 수록하였으며, 나아가 only in dreams 레이블을 통해 앨범 「ENTER」를 발매하였다. 시간이 된다면 한국의 밴드를 더 많이 알고 싶다는 일기를 쓰기도 했다.
2013년에는 메이저 데뷔 10년 기념으로 팬에게 감사한다는 의미에서 따온 팬 감사제라는 이름의 10주년 기념 콘서트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의 홈구장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었다. 2016년에는 결성 20주년 기념으로 도쿄의 무도관 이틀 라이브를 포함한 20주년 기념 라이브 투어를 열었다. 2017년에는 남미 투어를 했으며, 연말엔 영국의 밴드 FEEDER와 함께 투어를 진행했다.
2013년 12월 17일 유니클로 악스홀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단독 콘서트는 아니고, STRAIGHTENER와 넬과 함께 하는 콘서트. 공연 당일 화요일 이라 약 400명 정도 와서 다소 아쉬운 티켓 판매량이었지만 분위기는 훈훈하기 그지없었다. 고토가 연신 '고마워요'와 '아리가토'를 연발하고 팬들은 일본어로 응원했다. 특이한 건 드럼 앞에 티베트 국기가 조그맣게 있었는데, 아지캉 멤버들도 티베트 독립에 지지하는 듯하다?
2014년 Spitz의 ハチミツ 트리뷰트 앨범에 참여해 グラスホッパー를 커버했으며, 2017년 3월 29일 아지캉의 데뷔 20주년을 기념한 트리뷰트 앨범, AKG TRIBUTE가 발매되었다. 평은 호불호가 갈리는 편.
2017년 비슷한 시기에 데뷔하고, 서로 친한 밴드 STRAIGHTENER의 트리뷰트 앨범에 참여하였다.
1.3. 여담
밴드 이름은 일본어로 아지안 캉후-제네레-숀(アジアン・カンフー・ジェネレーション)이지만, 팬들은 보통 줄여서 아지캉(アジカン)이라고 부르며[4] 정식 밴드명보다 약칭의 지명도가 높을 정도이다. 영어로는 AKG 또는 AKFG로 표기한다. 한국어 표기로는 '아시안 쿵푸 제너레이션'이다.
밴드 이름의 유래는 고토가 좋아했던 일본 록밴드 THEE MICHELLE GUN ELEPHANT가 영어 단어를 3개 사용하는 걸 따라해 '3개의 단어를 사용하자'고 생각한 끝에 ASIAN KUNG-FU GENERATION으로 결정했다.[5] '외국 사람들이 듣고 놀랄 만한 이름'으로 하자는 의도도 담겨 있다. '쿵푸'는 고토가 쿵푸 영화를 좋아해서 붙였다고 한다. 이 밴드 이름으로 오아시스 前 멤버 노엘 갤러거로부터 "존나 멋진 이름이다"라는 칭찬을 들었다. 또 리암 갤러거는 "밴드 이름에 쿵푸가 붙어 있는데 너 쿵푸 할 줄 아냐?"라고 물었고, 고토는 더럽게 서툰 영어로 "못해요."라고 답변했다고 한다…고 했지만, 고토는 이 일화가 거짓이라고 부정하였다. 하지만 두 밴드의 캐릭터가 워낙 잘 맞아 떨어지는 일화라 금방 퍼진 듯.
미국의 얼터너티브 록밴드 위저와 지미 잇 월드(Jimmy Eat World)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다고 한다. 또한 멤버 전원이 영국 록밴드 오아시스를 상당히 좋아한다. 얼마나 좋아하는가 하면 공연 때 오아시스의 티셔츠를 입고 나오기도 하고, 「E」라는 곡[6] 에는 오아시스의 「Live Forever」의 기타 솔로 일부분을 넣기도 했다.
오아시스 이외에도 위저를 나노무겐 페스티벌에 초대해 함께 공연하기도 했고, 서드 아이 블라인드(Third Eye Blind)와는 역시 나노무겐에서 블러의 「Song 2」를 같이 부르기도 했다. 2013년 9월 15일에 열린 메이저 데뷔 10주년 기념 라이브에서 위저의 전 멤버 맷 샤프를 자기네 라이브에 불러서 같이 위저의 곡(?!) Only In Dreams[7] 을 연주하기도 했다. 또 이 날은 맷에게 데뷔 10주년 축하 인사를 받는 등, 정말 성공한 팬의 표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BECK의 Loser를 일본어로 바꾸어 부르기도 했다.[8] (영상)
대한민국에서는 나루토,[9] 강철의 연금술사, 블리치, 철콘 근크리트를 비롯한 애니메이션의 타이업으로 알려져 있다. 강철의 연금술사의 타이업 곡은 그 유명한 「リライト」(4기 오프닝). 2010년에는 영화 「소라닌(ソラニン)」의 주제곡을 맡기도 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대만, 미국 등지에서도 음반이 발매되고 있으며, 유튜브에서는 스페인어 자막이 들어간 아지캉 관련 동영상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메인 보컬인 고토 마사후미는 삑사리로 유명하다. 허나 일본에서는 이미 하나의 개성으로 자리잡은 듯하다. 최고 음역대는 조금 낮지만 시원시원하게 내지르는 보컬과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가사의 조합으로 유명하다. UK 록, 파워 팝의 영향을 받은 묵직한 기타 사운드와 팝적인 멜로디가 특징.[10] 본인들이 다른 밴드의 영향을 받은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며, 팬들에게도 다른 음악을 많이 들을 것을 권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공식 팬클럽은 없다. 나노무겐 페스티벌의 취지도 「일본 음악과 서양 음악 사이의 벽을 허물고 사람들이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장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라디오 방송에서도 다른 아티스트들의 음악, 특히 영미권 밴드들의 음악을 많이 튼다.
본인 블로그에 고토 마사후미가 직접 일기를 쓴다. 기존에는 공식 홈페이지에 일기를 썼지만 2014년부터는 거의 본인 블로그를 통해 소식과 본인의 솔로 활동을 알리는 중. 공식 홈페이지에도 가끔씩 갱신이 되긴 한다. 녹음 기록이나 잡담, 앨범에 대한 미팅 내용 같은 것을 상세하게 쓰고 있어서 아지캉의 근황을 비교적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2011년부터는 트위터 때문에 일기 업데이트가 비교적 뜸해졌다. 트위터에는 공식 홈페이지보다 더 개인적인 주제의 트윗을 올리지만, 가끔 일기에도 밝히지 않은 밴드의 최신 소식을 흘리듯이 써 놓기도 한다.[11]
앨범 일러스트가 상당히 특이한데, 일러스트레이터 나카무라 유스케(中村佑介)가 첫 앨범부터 거의 모든 앨범 일러스트를 계속 맡고 있다. 정규 8집 Wonder Future와 싱글 Easter, Right Now, 영상작품집 12권을 제외한 작품에 참여하였다.[12] 이후 Re:Re: 싱글은 다시 나카무라 유스케의 일러스트가 앨범 자켓으로 쓰였다. 그의 그림을 처음 보고 고토는 '이거야말로 아지캉의 앨범 재킷으로 딱이야!'라고 생각했다고 한다.[13] 2010년에는 아지캉이 애니메이션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의 오프닝 곡을 담당하게 되고[14] 나카무라 유스케 역시 해당 작품의 애니메이션 원화 일러스트 및 모리미 토미히코의 원작 소설 문고판 표지를 그리게 되었다. 모리미 역시 나카무라의 아카시를 칭찬했다고 한다. 이후 2017년 개봉한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의 주제가인 「황야를 걸어(荒野を歩け)」에도 참여하였다.
친한 관계로는 대표적으로 스트레이테너(STRAIGHTENER), ELLEGARDEN/the HIATUS가 있는데 각 밴드의 보컬들인 고토 마사후미와 호리에 아츠시, 호소미 타케시는 아주 절친한 사이라고 한다. 두 밴드는 나노무겐 페스티벌에 매년 참가하며 라디오나 블로그 등에서도 서로서로 자주 언급한다. 2018년 엘르가든이 재결성한 것을 계기로, 2019년 10월에 세 밴드가 합동으로 진행하는 NANA-IRO ELECTRIC TOUR[15] 를 15년만에 재개최 할 예정이다.
그 외에도 아트스쿨(ART-SCHOOL), 애시드맨(ACIDMAN), 비트 크루세이더스(BEAT CRUSADERS), 챗몬치(Chatmonchy)[16] 스페셜 아더스(SPECIAL OTHERS) 등등 인맥이 넓은 편.
2. 결성과 데뷔
- 1996년 요코하마의 칸토가쿠인 대학(関東学院大学)에 입학했을 때, 고토는 경음악 서클에서 초대를 받지만 집합 장소를 착각해 다른 경음악 서클로 가 버리는데, 그때 키타를 만나게 된다. 당시 그 서클에는 UK 록을 좋아하는 사람이 키타밖에 없었고, 이 둘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분위기가 고조되어 밴드를 결성하기로 했다.[17] 결성 다음날 고토는 부실에 혼자 있던 야마다에게 "좋아하는 밴드가 뭐니?"라고 물었는데, 야마다가 "비틀즈"라고 대답하여 밴드 가입이 확정되었다…. 그 후 같은 서클에서 드러머로 활약 중이던 이지치가 가입하게 된다.
- 고토가 말하길 처음에는 딱히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없어서 영어 가사로 썼지만, 점차 일본어로 써야겠다는 마음이 강해졌다고 한다. 영어 가사로 된「Hold me tight」[18] 가 그 시절의 곡이다. 자작곡으로 교내 및 요코하마의 라이브하우스를 중심으로 공연을 하다가, 대학 졸업 이후에는 멤버들이 각자 회사원으로 일하면서도 밴드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대로는 안 되겠다. 모든 것을 걸고 제대로 해 보자'고 결심, 야마다를 필두로 다들 직장을 그만두고 밴드에 몰두하기로 했다. 전체 일본어 가사로 된 첫 음원 「가랑눈(粉雪)」이 인디계 FM에서 방송되어 반향을 불러일으킨 뒤, 서서히 도쿄의 시부야, 시모키타자와 등지에서의 라이브 활동이 늘고, 2002년 인디 레이블 언더플라워 레코드에서 발매한 EP 「붕괴 앰플리퍼(崩壊アンプリファー, Houkai Amplifier)」가 다음해 큔 레코드에서 이례적으로 재발매되면서 마침내 메이저 데뷔를 이루어내게 된다.
3. 멤버
3.1. '''고토 마사후미'''(後藤正文)
1976년 12월 2일생, 시즈오카 현 출신.
보컬, 리듬기타. 거의 모든 곡을 작사, 작곡한다. 2012년 이후로는 'Gotch'라는 이름으로 솔로 활동도 병행하는 중. 팬들 사이에서는 주로 곳치(ゴッチ) 또는 곳상(ゴッサン)으로 불린다. 중·고등학교 때 야구부 소속이었고, 패션에 관심이 많아 헌옷 가게에 자주 드나들었다. 머리 모양이 멤버 중 가장 격하게 바뀌는데, 덥수룩한 자갈치 머리(일본에서는 Ω라고 통칭)가 되었다가 짧게 잘랐다가 다시 덥수룩해지기를 반복. 2012년 들어서는 꽁지머리를 하고 있다.[19] 2015년 중반기부터는 파마 머리를 고수하였으며, 2019년 들어 파마가 풀리면서 과거의 헤어스타일로 돌아가고 있다.
20년이 넘는 경력의 밴드 메인 보컬인지라, 노래에 담겨진 목소리로 세월의 흐름을 직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매 엘범마다 모두 목소리가 서서히 바뀌는 것을 느껴보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
산책을 하면서 주변의 풍경이 주는 느낌을 창작의 원천으로 삼는다는 자칭 산책선생. 스모를 좋아하여 직관도 자주 하는 모양. 라이브에서는 일부러 가사를 바꾸어 부르기도 하고, 기분이 좋을 때마다 스피커 위에 올라간다. 라멘을 좋아해서 전국 투어를 돌면 현지의 라멘을 챙겨 먹는 것이 일과였지만, 나중에는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그 외에 좋아하는 음식은 호르몬, 싫어하는 음식은 연어알. 그러나 홋카이도산은 좋아한다는 얘기가 있다.
혼자 있을 때 말고는 거의 언제나 안경을 쓰고 있으며 일러스트에서도 안경이 빠지지 않는다. 본인의 말로는 안경 벗으면 미남이라는데….[20] 야구 경력 때문인지 자칭 일본에서 피크를 제일 멀리 던지는 남자. 야구 또한 좋아하며 주니치 드래곤즈의 팬. 2007년 일본 시리즈의 합작 퍼펙트 게임 당시에도 소감을 홈페이지에 남기기도 했다. 멤버들과 나란히 서 있으면 안습할 정도로 키가 가장 작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오아시스, 위저, 넘버 걸[21] 등등.
2009년부터 인디 레이블 only in dreams를 주도하며 다른 아티스트들의 음원을 프로듀싱하고 있고, 2011년 3월 11일 도호쿠 대지진 이후 지진 피해 지역에 대한 모금 및 지원활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한편 THE FUTURE TIMES라는 비정기간행 무료 신문을 자비로 창간하여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해 보자'는 취지를 밝혔다. 창간준비호가 나왔을 때는 고토가 직접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이벤트를 하기도 하고, 제2호에는 신문 발간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첫 솔로 음원 「LOST」의 유료 다운로드 코드를 첨부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계속하여 아지캉 활동과 동시에 솔로활동도 하는 중.
2012년에 들어서는 원자력 발전 반대 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2012년부터 사카모토 류이치 등이 주도하고, ELLEGARDEN 등의 뮤지션들이 참가하고 있는 NO NUKES 페스티벌에도 참가. NO NUKES 2014에서는 이틀날 단독 공연을 가지기도 했다. 아지캉 전체로서는 싱글 「마칭 밴드(マーチングバンド, Marching Band)」의 커플링 곡으로 「N2」(No Nukes)라는 정치성 짙은 곡을 발표하는데,이 활동들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때문만은 아니다. 고토는 3.11 이전부터 방사능 폐기물 처리 문제 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일기에도 관련된 내용을 자주 써 왔다. 계속 관심을 갖고 생각하던 것이 사고를 계기로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 전에도 고토는 정치나 사회를 주제로 곡들을 쓰곤 했었다. 평화헌법의 수호를 주장하는 No.9이 그 예. 또한, 2015년 9월 일본의 대학생들이 주도하는 SEALDs에서 일반인·비참가 학생들에게 배포중인 홍보물에서도, 학생들의 반전운동을 지지하는 메세지를 남기고 있다.
2018년에는 뜬금없이 음악상을 만드는 꿈을 꿨다는 것을 계기로, Apple Vinegar Award라는 이름의 음악 신인상을 만들었다.(...) 상금은 본래 고토 본인이 착출한 10만엔이었으나 사카모토 류이치 등의 기부를 통해 20만엔으로 늘었으며, 지명된 앨범들은 모두 고토가 골랐다고 한다.
BUMP OF CHICKEN의 천체관측을 듣고 울었다고 말했다. 지금의 아지캉이 있는 것은 이 곡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3.2. '''키타 켄스케'''(喜多建介)
1977년 1월 24일생, 카나가와 현 출신.
리드 기타, 백보컬. 목소리가 고음이라 주로 코러스를 맡지만 메인 보컬을 맡은 곡이 다섯 곡 있다.[22]
아지캉에서 가장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고토지만, 리더는 엄연히 키타이기 때문에 새 앨범이 나왔을 때의 멤버 코멘트 등에서는 항상 키타가 첫 인사를 한다. 팬들에게는 키타켄, 켄쨩, 켄스이 등으로 불린다. 훈남이라 그런지 2007년 단독공연 내한 때 팬레터를 잔뜩 받았으며,[23] 팬들 사이에서 라이브시 키타가 위치하는 관객 기준 무대 왼쪽 앞을 '키타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깁슨의 레스폴 스탠더드를 주로 사용한다.
Spitz의 보컬 쿠사노 마사무네와 말하는 목소리도 노래하는 목소리도 아주 비슷하다. 오죽하면 Spitz의 트리뷰트 앨범 참여시 키타가 코러스를 맡은 부분에서 마사무네가 부르는 줄 알았다는 리뷰가 있을 정도. 다만 흡연 때문인지 2018년 기준 고토에게 목소리가 변했다며 디스를 당하기도 했다.좋아하는 아티스트는 오아시스, 푸 파이터즈, 라디오헤드,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등.
술이 약하며 술버릇도 나쁘다. 자면서 걷는 자칭 엄청난 곡예를 과시하기도 하고, 취해서 자고 있는 걸 깨우면 엄청나게 화를 내는 바람에 '''국도 16호선에 잠자는 채로 방치된 적도 있다.''' 또한 나노무겐 페스티벌 뒤풀이에서 처음에는 서양 아티스트들과 별로 이야기를 안 하다가, 술에 취하면 갑자기 영어가 유창해져서(?) 서양 아티스트들과 함께 목청껏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밴드 최고의 지각쟁이. 고토가 말하길, "옛날부터 좋아질 기미도 없거니와, 한두 시간 늦는 건 예사고 늦게 와서 비행기를 놓친 적도 있다." 실제로 멤버들이 키타에게 리더라는 직책을 맡긴 것도 이런 성격을 좀 고치기 바랐기 때문.
주니치를 응원하는 고토와 다르게 한신 타이거즈의 팬.
2011년 야마다와 함께 코스모스튜디오(コスモスタジオ)라는 유닛을 결성(?)했으나 2019년 현재까지 아직 이렇다 할 활동은 없다.
2018년 5월 발매된 시이나 링고의 트리뷰트 앨범에 참여. 커버한 곡은 正しい街으로 the ウラシマ's라는 유닛[24] 에서 기타를 맡았다.
3.3. '''야마다 타카히로'''(山田貴洋)
1977년 8월 19일생, 시즈오카 현 출신.
베이스, 백보컬. 팬들에게는 야마쨩 또는 야마상으로 불린다. 경력이 꽤 쌓인 지금까지도 프로필 사진이나 잡지 촬영에서 언제나 똑같은 굳은 표정을 짓는다. 본인 말로는 "사진발이 안 받는다"고. 머리 모양이 자주 바뀌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똑같은 머리 모양을 하고 있는 것도 특징.[25] 또한 청바지와 체크무늬 남방 셔츠가 트레이드 마크이다. 고토 曰 "어느 날 청바지를 안 입었네, 하고 보면, 블랙 진을 입고 있는 정도의 남자인 것이다."
한결같이 성실하고 과묵한 이미지이지만 고토와 키타가 출연한 라디오 공개방송에서 '멤버들 중에 가장 H한 사람'으로 지목된 적이 있다…. 팬더의 재즈 베이스, 프레시존 베이스를 사용하며 가끔 베이스에 코러스나 딜레이를 걸고는 한다. 고토와 함께 작곡한 노래가 많으며[26] 2012년경 들어서는 단독 작곡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비틀즈, 오아시스, 스매싱 펌킨스 등이다.
서예 솜씨가 아주 뛰어나 밴드 굿즈의 봉투에도 직접 쓴 글씨가 사용된 적이 있으며, 그냥 손글씨도 또박또박 잘 쓴다.[27] 좋아하는 음식은 일본 최초의 컵라면형 인스턴트 야키소바 '페양'이라고. 개인 활동으로는 위에 언급된 코스모스튜디오 말고도 2012년 1월에 데뷔한 신인 가수인 카타히라 리나의 음원 프로듀싱을 맡으면서 프로듀서로 데뷔했다.
2015년 여름 4살 연상의 아나운서 나카다 아키와 결혼하며 유부남이 됐고, 2016년 봄에 딸이 태어났다.
2018년 발매한 Can't Sleep EP의 イエロー(Yellow)를 통해 처음으로 메인 보컬을 맡게 됐는데, 팬들에게 여러모로 충격을 안겨주었다.
3.4. '''이지치 키요시'''(伊地知潔)
1977년 9월 25일생, 카나가와 현 출신.
드럼 담당. 일부 곡에서는 노이즈 기타[28] 와 피아노[29] 를 연주하기도 했다. 중학교 때 행진곡 밴드를 한 적도 있다. 아지캉에 가장 늦게 합류한 멤버이며 인디 시절에 두어 번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기도 했다. 때문에 2015년 원더 퓨쳐 투어에서 고토가 결성 20주년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아, 이지치는 18년인가?"라며 드립을 치기도 했다. 처음에는 아지캉보다 '캐러멜맨'이라는 다른 밴드 활동이 주였다. 팬들에게는 주로 키요시, 가끔 키요뽕 등으로 불리며 '한류스타 이지천'이라는 별명도 잠시 유행했었다.[30]
경제학부(고토, 키타), 문학부(야마다) 전공자인 다른 멤버들과 달리 공학 전공자이며 독실한(?) 크리스천이기도 하다. 또한 멤버 중 유일하게 헤비메탈을 좋아한다.[31] 고토가 말하길 곡 구성은 늘 까먹지만 기술적으로는 매우 뛰어난 드러머. 고토가 아지캉에 이지치를 데려온 이유도 좀 더 복잡한 패턴을 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블루 트레인」을 듣고 키요시의 드럼 실력에 감탄한 팬들이 많았다. 한때는 리허설에서 다른 사람 말을 잘 듣지 않아서 무슨 곡 연습하는지 혼자만 모르기도 하는 '아지캉의 리허설 명물'이었다지만 요즘은 안 그러는 듯? 그 외에도 이가 아플 때 두 배로 빨리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치과를 두 군데 동시에 다니는 바람에 치과의사가 화를 낸 적이 있다거나, 뮤즈 공연에 뮤즈의 멤버 매튜 벨라미와 비슷한 패션을 하고 가는 등 엉뚱한 구석이 있다.
요리를 잘해서 후지패브릭의 카나자와 다이스케와 함께 잡지에 요리 연재를 하기도 했다. 2011년 인스트루멘털 밴드 포노톤즈(PHONO TONES)를 결성하여 아지캉 활동과 병행하고 있다. 작곡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지만 2012년 드디어 본인이 작곡한 「냉장고의 썰렁한 농담(冷蔵庫のろくでもないジョーク)」이 싱글 커플링 곡으로 발표되었다.
4. 디스코그라피
한국에서는 정규앨범 9장(「君繋ファイブエム」, 「ソルファ」, 「ファンクラブ」, 「ワールド ワールド ワールド」, 「サーフ ブンガク カマクラ」, 「マジックディスク」, 「ランドマーク」, 「Wonder Future」, 「ソルファ(2016)」)과 싱글 B-side 모음집 1장(「フィードバックファイル」) 그리고 베스트 앨범 2장(「BEST HIT AKG」, 「BEST HIT AKG 2」)이 정식 발매되어 있다.
4.1. 싱글
ASIAN KUNG-FU GENERATION/싱글 항목 참조.
- 싱글 판매량
4.2. 정규 앨범
4.3. EP
4.4. 라이브 앨범
4.5. 컴필레이션 앨범
4.6. DVD
4.7. 트리뷰트 앨범
4.8. 기타
- 나노무겐 컴필레이션
- 고토 마사후미(Gotch) 솔로 활동
- 책
[1] 사진 기준 맨 왼쪽부터[2] 이름의 유래는 당시 고토가 알고 있었던 가장 작은 단위 '나노'와 가장 큰 단위(?) '무겐(무한)'을 합친 것. 2003년 라이브하우스에서 처음 시작했을 때는 아직 페스티벌이라고 부를 정도의 규모는 아니었으나, 언젠가는 그렇게 만들겠다는 꿈을 담았다고 한다. 2005년부터 요코하마 아레나를 빌려 개최하면서 명실상부한 페스티벌이 되었고, 2010년부터는 투어 형식의 나노무겐 서킷(NANO-MUGEN CIRCUIT)도 함께 하고 있다. 2007년을 제외하고 2014년까지 개최했다. 또한 출연하는 국내외 아티스트들의 곡을 모아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매하기도(2005, 2006, 2008, 2009, 2011, 2012, 2013).[3] 여담인데 고토는 한국의 독립영화 「똥파리」를 재미있게 보았다고 한다. 게다가 그 영화를 통해 한국어를 배웠는데 그 단어는 "'''십팔놈아!'''"(…) 고토는 무슨 뜻인지 알까?[4] 시이나 링고는 '아지후'라고 부른다.[5] '고고 시치킨 보이스'라는 이름도 후보였다.[6] 정규 1집 君繋ファイブエム에 수록.[7] Weezer(Blue)의 마지막 곡이자 고토 마사후미가 운영하고 있는 레이블의 이름. 맷 샤프가 베이스를 치고 베이스 야마다가 기타를 쳤다.[8] NANO-MUGEN COMPILIATION 2013에 수록.[9] 애니메이션 2기 오프닝 「머나먼 저편(遥か彼方)」(2003)에 이어 9년 만에 「그럼, 내일 보자(それでは、また明日)」(2012)로 나루토 질풍전 6기 극장판 「ROAD TO NINJA」의 주제곡을 맡았고, 그 후 애니메이션 질풍전 19기 오프닝 「블러드 서큐레이터 (ブラッドサーキュレーター)」(2016)을 4년만에 맡게 되었다.[10]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른바 '시모키타계' 록밴드의 대표격이다. 직접적으로는 넘버 걸과 미셸 건 엘리펀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11] 한국어 멘션에 한국어로 리트윗해 준 적도 있고, 노트북으로 인터넷 실시간 방송을 한 적도 있다.[12] Easter와 Wonder Future의 앨범 자켓이 나카무라 유스케의 작품이 아니라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었는데, 고토가 앨범의 의도에 따라 일러스트를 제외한 것이라고 밝혔다.[13] 흔한 모에 계열의 일러스트가 아닌, 검은 머릿결의 소녀와 속칭 "다이쇼 로망"식 색채가 담긴 일러스트를 주력으로 삼는 화가. 덧붙여 2010년대 들어서는 모에 계열 일러스트를 그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오히려 이런 쪽이 더 신선하게 받아들여진다고 한다.[14] 정규 6집 「매직 디스크(マジックディスク, Magic Disk)」에 수록된 「길 잃은 개와 비의 비트(迷子犬と雨のビート)」. 참고로 이 곡의 가사는 반복되는 세계를 주제로 한 해당 작품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다시피 한 가사이다.[15] 엘르가든의 팬들에겐 '虹(무지개)'의 모티브가 된 투어로 알려져 있다.[16] 하시모토 에리코가 All Right Part2의 코러스로 참여하기도 했으며, 10주년 기념 무도관 라이브에도 찬조 출연. 또한 고토 마사후미가 챗몬치의 싱글 きらきらひかれ의 프로듀싱을 맡으면서 싱글 커플링 곡에서 하시모토 에리코와 듀엣을 하기도 했다.[17] "같이 밴드를 하자"고 먼저 말한 사람은 키타였고, 고토에 의하면 자신은 그 대화 이후로 키타와 같이 밴드를 결성하자고 한 약속을 사실 깜빡하고 있었는데, 다음날 키타가 "어제 밴드 하자고 했지?"라면서 다가왔단다. 팬 감사제에서의 발언에 따르면 스토커 같았다고.(…)[18] 컴필레이션 앨범인 フィードバックファイル(Feedback File, 피드백 파일)에 수록되어 있다. [19] 덥수룩한 것보다 차라리 묶는 게 낫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20] 2011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서는 하도 열정적으로 연주하다 보니 공연 도중에 안경이 벗겨졌다! 일본에서도 그런 적이 있었다고 한다. 2013년 악스홀 공연에서도 어김없이 또 벗겨졌다. [21] 이 밴드를 소재로 한 곡으로 정규 1집에 수록된 「N.G.S.(Number Girl Syndrome)」가 있다.[22] 싱글 「블루 트레인(ブルートレイン, Blue Train)」의 커플링곡인 「거짓말과 이상한 나라(嘘とワンダーランド)」. 이 곡은 고토가 작사에만 참여했기에 작곡한 사람이 부르는 게 좋겠다고 해서 부르게 된 것. 참고로 「블루 트레인」도 키타가 작곡을 시작해 고토가 마무리한 곡으로서, 키타가 작곡에 참여한 최초의 곡이다. 이후 2015년 싱글 「부활절(Easter/復活祭)」의 커플링곡 「시사이드 슬리핑(シーサイドスリーピング)」, 2016년 싱글 「Re:Re:」의 커플링곡인 「타임 트래블러(タイム トラベラー)」, 2016년 싱글 「블러드 서큘레이터(ブラッドサーキュレーター)」의 커플링곡인 「팔경(八景)」, 2017년 싱글 「황야를 걸어(荒野を歩け)」의 커플링곡인 「축제 후에(お祭りのあと)」에서도 보컬을 맡았다. 다다음 싱글인 Dororo에서도 커플링 곡의 보컬을 키타가 맡을 예정이었으나 고토가 악상이 떠오르지 않아 취소되었다. 키타가 보컬을 맡은 곡은 전부 키타가 작곡한 곡이라는 특징이 있다.[23] J-POP WAVE 아지캉 편 인터뷰에서 밝힌 사실이다.[24] Vo. 쿠사노 마사무네(Spitz), G. 키타 켄스케, Dr. 스즈키 히데야(Mr. Children), Ba. 코레나가 료스케(雨のパレード)[25] 대학 시절 딱 한 번 머리를 길렀던 적이 있는데 마쓰이 히데키와 비슷했다고 한다.[26] 대표적으로는 블리치 오프닝으로 쓰인 「애프터 다크(アフターダーク)」가 있다.[27] 참고로 멤버 중 가장 악필은 고토이다.[28] 정규 2집 「솔파」에 수록된 「라스트 씬(ラストシーン)」[29] 정규 3집 「팬클럽(ファンクラブ, Fan Club)」에 수록된 「월광(月光)」이라는 곡 인트로 부분. 드뷔시의 동명의 피아노 곡에서 따온 것이다.[30] 한국 팬이 붙인 게 아니라 고토가 붙인 것이다.[31] 실제로 고토가 운영하는 only in dreams에서 매년 '올해의 베스트 앨범'을 추천받고 하는데 나머지 멤버들과 다르게 이지치만 메탈 앨범을 선정하는 경우가 잦다.[32] 초동 판매량[33] 본래 2017년 9월 27일 발매 예정이었으나, 모종의 이유로 11월 29일로 발매가 연기되었다.[34] 완전한정생산반에 솔파 전 곡 라이브 CD 포함[35] Beck의 1994년 노래를 일본어 가사로 부른 커버곡[36] 발매 시기를 보면 인디 시절이다. 한마디로 아지캉의 초기 사운드를 들어볼 수 있다. 그러나 인디 시절 발매되었다는 한계로 현재 구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데다, 공식 사이트에는 언급조차 없는 음반들이다.[37] 'あ'로 시작하는 단어부터 'ん'까지 50음도 순으로 단어를 하나씩 골라 음악 이야기나 고토의 개인사를 쓴 칼럼.[38] 전권과 같은 컨셉트로 이번에는 A부터 Z까지.[39] 2011년 3월 9일, 원전 사태로부터의 일기를 정리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