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분석
談論分析
Discourse Analysis
1. 개요
언어로 소통되는 텍스트를 분석함으로써 그것이 반영하고 재현하는 개인적, 사회적 의미를 탐구하는 질적 분석 방법.
제임스 지(J.P.Gee)는 담론 분석을 가장 기본적으로 표현하자면 "언어에 대한 연구방법" 이라고 말한다.[1] 담론 분석은 '''언어가 어떻게, 그리고 왜 그렇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는 다학제적 방법론으로, 분류상으로는 언어학의 텍스트 분석(text analysis) 중 하나의 종류로 볼 수도 있다.
2. 본론을 읽기 위해 필요한 지식들
2.1. 담론 분석이 전제하는 사항
이동성(2008)은[2] 담론 분석의 '''학문적 전통(학파)'''을 몇 종류로 구분한다. 먼저 언어와 사회적 맥락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하며, 언어적 의사소통이 언중의 사고에 영향을 끼친다고 보는 영역이 있다. 다음으로, 인간의 일상적 회화 속에 나타나는 반복적이고 안정적인 언어적 패턴을 확인, 이를 언어가 사회적 행위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영역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사연구, 담화심리학(discursive psychology), 미하일 바흐친(M.Bakhtin) 학파, 그리고 미셸 푸코(M.Foucault)를 위시한 학파로 묶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공히 전제하는 것이 있다면, '''인간의 마음은 언어 속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제임스 지에 따르면, 담론 분석은 그 '''인식의 기본 전제'''로서 공통적으로, "사람들은 언어를 통해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그것을 승인받고자 한다" 는 점을 미리 합의한다. 또한 담론 분석이 기존의 도구적 언어관을 폐기했기 때문에, 다수의 문헌들에서는 "언어는 실재의 반영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그 이상이다" 를 사실이라고 간주한다. CDA에서는 더 적극적인 여러 종의 전제들을 포함시킨다. 미셸 푸코와 루스 보다크(R.Wodak) 등의 이론가들에 힘입어서, CDA는 "모든 언어는 결국 정치적이며, 모든 담론은 결국 이데올로기다", "담론은 사회에 의해 구성되면서, 동시에 사회를 구성한다", "담론 속의 권력관계는 비가시적이다", "담론은 언어적 옵션들을 취사선택하는 과정을 통해서 완성된 체계이다", "담론의 생산이 통제, 조절, 선별, (재)분배되는 일련의 과정은 보편적이다" 등의 진술들까지도 자명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들 진술들을 꿰뚫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결국 '''언어에는 연구자가 주목할 만한 사회적인 '무언가' 가 있다'''는 것이다.
2.2. 담론 분석을 주로 사용하는 학문들
담론 분석은 그 출신이 언어학이긴 하지만 현대에는 사회과학의 몇몇 영역들, 예컨대 커뮤니케이션학, 사회학, 여성학, 교육학 등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기형(2006)은[3] 사회문제, 문화 연구, 비평 분야에서 쓰일 수 있다는 잠재성을 강조하였던 바 있다. 특히 최윤선(2014)은[4] 담론 분석의 한 하위 유형인 비판적 담론 분석(CDA; critical discourse analysis)이 '''정치 연설문, 광고 카피, 신문기사, 교과서 등'''을 분석하는 데 쓰일 수 있다고 하였다. 최윤선(2014)의 제안을 구체적으로 풀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 지칭/인칭 연구: 담론 분석은 누구를 어떻게 부를 것인가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 인명으로 부를 것인가, 속성으로 부를 것인가? 얼마나 자주 언급할 것인가? 마틴 루터 킹의 저 유명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의 연설에서, '나' 라고 불리는 사람은 누구를 대표하는가? 반대로, '그들' 이 언급된다면 그것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광고에서 달콤하게 속삭이는 '당신' 은 어떤 부류의 시청자들인가? '우리' 라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 를 둘러싼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차이는 어떠할 것인가?
- 어휘/문체 연구: 담론 분석은 어떤 언어적 옵션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 또한 조명한다. 동일한 의사를 표시하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어휘들을 고를 수 있고, 굳이 그 어휘를 고른 것 자체가 하나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협약' 인가, '늑약' 인가? '약탈' 인가, '확보' 인가? '수탈' 인가, '이관' 인가? '폭침' 인가, '침몰' 인가? '청춘' 인가, '88만원 세대' 인가? 영어권에서는 능동태인가 수동태인가 여부도 중요하다. 이제는 관용어가 될 정도여서 심지어 영문 위키피디아에도 실린 "Mistakes were made" 라는 표현은, 주어를 생략했다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는 거냐는 도덕적 비난의 여지를 남긴다. 청자를 제한하는 어휘 역시 연구자의 주의를 끈다. 윌리엄 클라크의 유명 어록인 "Boys, be ambitious!" 는 소녀들을 잠재적 청자로 설정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특정한 전제(premise)를 함축하는 어휘 역시 중요한 분석 대상이다. 예를 들어, "공부한다더니, 여자 만나고 다닌다더라!" 라는 말 속에는, '이성교제를 하면 성실하게 공부하지 못한다' 는 전제가 깔려 있다.
- 이미지/기호 연구: 광고 분야의 담론 분석에서는 기호를 어떻게 제시할 것인가 역시 고려된다. 대리운전 등의 어떤 광고는 대놓고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세요!" 라고 지시적 기호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가전제품이나 IT 분야의 광고들은 오히려 "당신, 참 멋지게 사셨군요" 와 같은 시적 기호를 사용할 수도 있다.
2.3. 방법론적 정당성과 타당성
'''담론 분석의 방법론적 정당화'''와 관련하여, 김병욱(2014)은[5] 사회과학 연구자가 담론 분석의 필요성을 느끼는 이유들을 나열한다. 우선, 사회과학은 오직 담론 분석을 통해서만 특정 담론이 어떻게 각 집단들의 이해관계와 관련되며 각 집단들을 드러내게 되는지를 알 수 있다. 특히 CDA는 사회과학자가 권력의 불평등과 착취를 관찰하려 할 때, 그런 부조리가 정당화되는 이데올로기적 과정을 담론을 통해 분석할 수 있게 한다. 김병욱(2014)은 이에 덧붙여, 특정 사회 정책이 실행될 때 나타나는 갈등이나 예기치 못한 결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관점들, 추진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와 그 해결방안 등을 탐색할 수 있다고도 하였다.
'''담론 분석의 방법론적 타당화'''와 관련하여, 제임스 지는 그것이 "단지 주관적일 뿐" 이라는 비판에 대해서 "주관적인 게 아니라 해석적인 것" 이라고 응답한다. 담론 분석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어서 타당한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해석(즉 담론)을 분석하는 재해석 작업이 된다는 것이다. Gee(1999)는 이를 위해 네 가지 기준을 제시하기도 했다. 첫째, '''수렴'''(convergence)이다. 주요 연구 질문들에 대한 담론 분석의 결과는 분석자의 동일한 해석으로 일관되게 모여야 한다. 둘째, '''동의'''(agreement)이다. 담론 분석의 결과는 실제로 그 담론에 참여한 사람이 보더라도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포괄'''(coverage)이다. 담론 분석의 결과는 주어진 상황에 대해 실제로 적용하기에 용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언어적 세부사항'''(linguistic details)이다. 담론 분석의 내용은 언어학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없어야 한다.
담론 분석은 질적 연구분야에서 언어를 대상으로 하는 대표적인 연구방법으로 나름대로의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그 주요 학술지로는 《Discourse and Society》, 《Critical Discourse Studies》, 《Journal of Language and Politics》, 《Discourse and Communication》, 《Language and Communication》 등이 있다.
2.4. 철학적 배경
언어란 무엇일까? 당초에는 언어가 단지 자신의 생각과 감정, 느낌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물론 언어가 사회적 현실이나 외부 환경과 고립되어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언어는 그 자체로 어떤 사회적 힘을 갖는다기보다는, 그 사회적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반영하는 사례로서만 간주되었다. 이처럼 '''언어가 수동적인 현상이고, 인간의 사회적 삶에 도구로서만 그친다는 관점'''을 흔히 '전통적 언어관', 또는 '도구적 언어관' 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기형(2006)에 따르면, 그러다가 언어가 능동적으로 사회를 구성하고, 사건을 정의하며, 경험을 설명하고, 현실의 변화까지도 일으킬 수 있다는 인식이 나타났다. 이상의 학문적 전회(轉回)를 가리켜서 흔히는 '''"언어적 전환"'''(linguistic tur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회를 바라보려면 언어와 텍스트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담론 분석가들 중 일부는 CDA를 통해서 언어가 사회문화적 패권(hegemony)과 같은 거시적인 개념들까지도 담고 있을 수 있음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는 박해광(2007)[6] 과 같은 다른 문헌에서 비판이 가해지기도 했다. CDA가 전제하는 패권 개념이 레이먼드 윌리엄스(R.Williams)에 의지하고 있는데, 이는 안토니오 그람시(A.Gramsci)가 말했던 '국가의 억압적 지배' 에 담론이 너무 쉽게 대항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는 것이다. 아무튼 담론 분석은 '''기존의 도구적 언어관에 대항하며, 언어를 통해 그 사회를 읽어낼 수 있다는 철학적 인식의 전환을 이끌었다.'''
'''철학 사조들을 기준으로 분류'''하자면, 담론 분석은 인문학적 개념으로 사회를 논의하려는 사상가들의 장점들을 이것저것 빌려온 잡탕(…) 같은 인식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담론 분석의 이론적 배경을 이해하려면 먼저 페르디낭 드 소쉬르(F.de Saussure)나 롤랑 바르트(R.Barthes) 등의 구조주의 및 기호학계, 루이 알튀세르(L.Althusser), 미하일 바흐친(M.Bakhtin), 안토니오 그람시 등의 프랑크푸르트 학파, 미셸 푸코와 위르겐 하버마스(J.Habermas) 등의 논변윤리(Diskursethik)를 주도한 후기 구조주의 및 해석학계, 기타 구성주의(constructionism) 및 상대주의(perspectivism) 등으로부터 다양한 영향을 받았다. 여기서 요지는 '''연구목적에 따라서 담론 연구자가 자신이 의탁할 사상가를 골라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태지호와 권지혁(2016)은[7] 푸코의 접근방식이 구조주의보다는 현대 문화콘텐츠 연구에 더 적합하다고 하였다. 결국, 담론 분석을 준비하려면 먼저 이런 사상가들의 고담준설에 통달할 필요가 있다.
2.5. 유사 방법론과의 비교
담론 분석을 방법론으로서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한 영국의 언어학자 노먼 페어클러프(N.Fairclough)는, 자신의 저서에서[8] 담론 분석을 유사한 다른 방법론들과 서로 대비하고 있다.
- 회화 분석(conversation analysis)
회화 분석은 민족방법론(ethnomethodology) 출신 연구자들이 제안한 언어 연구방법이다. 여기서 민족방법론이란, 개인의 일상을 간주관적이면서도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방법' 들에 초점을 맞추는 방법론이다. 여기서 상정하는 회화는 동등한 관계에서의 비격식적인 대화를 의미하며, 언어의 관계적 측면이 강조된다. 이 때문에 회화 분석은 언어학적인 측면이나 화행론(speech act theory)처럼 권력의 작용을 밝히는 데에는 부적절한 면이 있다. Fairclough(1989)[9] 나 이동성(2008) 또한, 회화 분석이 지나치게 미시적인 분석 수준을 갖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 기호 분석(semiotic analysis)
미디어 연구자들이 사용하는 방법론 중 하나이다. 여기서는 뉴스 등의 영상매체에서 언어적이고 시각적인 기호적 부호(semiotic codes)들에 관심을 기울인다. 예컨대, 화면의 구성이나 카메라 워크, 현장취재(stake-out), 시민의견 청취(vox-pop) 같은 주제들에서 재현이 어떤 양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초점을 맞춘다. 그 비판적인 문제의식은 담론 분석 중에서도 CDA와 맞닿아 있으나, 아무래도 언어보다는 영상에 신경을 쓰는 분석방법이다 보니 텍스트에 대해서는 기존의 언어학적인 접근만큼 디테일하지는 못한 편이다.
- 비판언어학(critical linguistics)
언어에 이데올로기가 갖는 중요성을 수용한 언어학자들이 제시한 대안으로, 푸코의 비판을 따라서 그 어떤 언어나 지식도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포함시킨 언어분석 관점이다. 그러나 서덕희(2011)는[10] 비판언어학이 언어가 갖고 있는 상황적, 맥락적인 측면 및 실천성을 간과한 채 언어와 내용을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한계를 드러냈다고 비판하였다. 또한, 비판언어학은 언어의 기능을 연구하기 위해 비현실적으로 이상화된 조건을 상정한다. 즉, 실제 언어의 수용자들이 뭐라고 수용하는지 풍부하게 묘사하기보다는, 분석가들이 '연구실에서 소독된 언어' 를 분석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다.
- 문화장르분석(cultural-generic analysis)
Fairclough(1995)에 따르면, 문화장르분석은 버밍엄 대학교(University of Burmingham)의 현대문화연구센터(Center for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가 주축이 되어 있는 문화분석 학파이다. 여기서는 매체 장르의 문화적 의미를 탐구할 것을 강조하는데, 문화를 분석하기 위해 먼저 광고나 연설, 잡담, 면접 등의 매체 장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추적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 사회언어학(social linguistics)
추가로 언급할 만한 것으로, 박해광(2007)은 자신의 문헌에서 사회언어학과 담론 분석을 비교한다. 사회언어학은 언어에 반영되어 있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포착하여 폭로하고 문제제기하며, 이를 위해 특정 방언(dialect)의 공유가 그 계급이나 인종, 젠더 등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이 분야의 유명한 연구 사례로, 하류층 사람들의 언어생활이 단순하고 짧고 투박한 형태의 제한된 코드(restricted code)를, 중상류층 사람들의 언어생활이 복잡 다양하고 정교한 형태의 세련된 코드(elaborated code)를 따른다는 바질 번스타인(B.Bernstein)의 발표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박해광(2007)은 이것이 '언어는 현실을 재현할 뿐' 이라는 전통적 언어관을 극복하지 못했으며, 언어가 현실을 조성하는 능동적 실천이 될 수 있다는 담론분석의 관점과는 결정적으로 달라진다고 비판했다. Fairclough(1989) 역시, 이들이 'why' 의 근본적인 층위에서 언어와 이데올로기 문제를 비판하지 못하고, 단지 'what' 의 피상적인 층위에서 연구 질문을 만드는 데 머물렀다고 비판했다.
3. 본론
담론 분석을 설명하기 위해 부득이 사전에 갖추어야 할 정보들을 미리 제시했으니, 이제 이런 배경 속에서 담론 분석이 어떤 의미와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지 소개할 수 있다.
최초로 나타난 담론 분석은 기술적(descriptive)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이런 초기 담론 분석가들은 오늘날 '''기술적 담론 분석'''을 했다고 평가되는데, 이들이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다기보다는 이후에 나타난 CDA 진영에서 자신들을 차별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들을 네이밍한 것에 가깝다. 아무튼 이 기술적 분석가들은 '''언어의 작동 자체'''에 관심을 가졌으며, 가치중립성과 객관성을 지키려 노력했고, 현실을 '해석' 하는 데 신경을 쓰는 순수학문적인 성향을 드러냈다.
기술적 담론 분석은 가장 역사가 깊은 담론 분석 방법으로, 가장 빠르게 잡을 경우 1964년 즈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는 구조주의 인류학과 텍스트 분석이 인기를 끌던 시점이었는데, 이들의 주요 연구 대상은 설화, 신화, 민담, 이야기 등의 장르가 중심이었다. 상기했듯이 기술적 분석가들은 언어를 단순히 사회적 반영물로 보려는 전통적 언어관에 반대했으며, '''언어가 진지한 연구대상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을 견지했다. 그 이론적 논의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를 중심으로 하여 기호, 코드, 의미화(signification), 의미의 효과, 형식성 등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곧 이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요컨대, 담론 분석은 그것이 '기술적' 이기 위해서 잃는 것이 너무 많았다. 이들은 언어를 사회로부터 유리된 자기충족적 체계처럼 대했으며, 연구의 '순수성' 이라는 허상을 좇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담론 분석의 주류가 된 '''비판적 담론 분석''', 요컨대 CDA가 출현했다. CDA는 기술적 담론 분석과는 달리, 처음부터 중립을 포기하고서 '''사회문제나 이슈, 논쟁에 기꺼이 뛰어들었다.''' 이들은 가치개입성과 참여성을 강조했으며, 현실에 '개입' 하는 데 신경을 쓰는 응용학문적인 성향을 드러냈다. (편의를 위하여, 이하에는 비판적 담론 분석을 계속 CDA로 지칭하도록 한다.)
그 최초 시작은 Fairclough(1989)의 《Language and Power》 문헌에서 시작하며, 여기서 노먼 페어클러프는 기존 기술적 분석가들의 가치중립적 언어연구가 현실의 부조리와 유리되어 있다고 비판하여 화제가 되었다. 이후 1991년에는 암스테르담에서 현실참여를 주장하는 담론 분석가들이 모여 학회를 열었고, 이들의 노력을 통해 1990년대 초~중반에 걸쳐 CDA가 방법론으로 정립되었다. 하여간 이런 배경이 있다 보니 '''CDA가 과연 방법론의 한 종류가 맞느냐'''는 의구심도 끝없이 나오는 상황. 최윤선(2014)은 CDA가 문제지향적 학제간 연구 운동(problem-oriented interdisciplinary research movement)이라고 말하면서 방법론이 아니라 조망(perspective) 내지 인식론이라고 말했다. 신진욱(2011)[11] 의 문헌에서도 CDA는 접근(approach) 내지는 학파(school)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정희모(2017)[12] 또한 CDA가 사회적으로 불의하게 분배된 권력구조를 언어를 통하여 폭로하고자 하는 목적의 연구활동이라는 점에서 이것이 명백히 이념적이고 가치개입적이며 비중립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방법론이라고 하였다.
오늘날 담론 분석은 대개 CDA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으며, 하단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순수 언어학적인 맥락의 텍스트 분석을 할 때에는 '담화 분석' 이라고 표현을 달리하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담론 분석, 특히 CDA는 그 자체로 사회를 급진적으로 비판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서 언어를 문제 삼는 학술활동'''의 이미지가 없잖아 있다. 이런 연구자들의 계보는 흔히 푸코, 페어클러프, 이후의 영미권 매체연구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학파를 따르고 있다. 물론, 담론 분석이 꼭 이들만의 전유물인 것은 아니며, 실상 '''페어클러프 이외에도 담론 분석을 논의한 사상가들은 많이 있다.''' 예컨대 비엔나 학파의 담론사적 접근(discursive-historical approach), 테운 판 다이크(T.A.van Dijk)의 사회인지적 접근(sociocognitive approach), 테오 판 뤼벤(T.van Leeuven)의 사회적 행위자 접근(social actors approach) 등이 대표적이다.
3.1. 담론이란?
담론이란 무엇일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 담론, ×× 담론 같은 표현들을 일상적으로 사용하지만, 구체적으로 담론이라는 게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설명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사실 이 질문에 정말 제대로 대답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각오를 하고(…)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의 텍스트를 독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텍스트들은 하루이틀 안에 독파할 수 있는 양도 아니고 깊이도 아니다. 일단 여기서는 그런 복잡한 논의들을 전부 생략하거나 압축해서 고등학생~비전공자 대학생 수준으로 정리할 것이지만, 더 깊이 있고 정확한 논의를 원한다면 강진숙(2016)[14] 의 문헌을 찾아보면 되겠다."정치적 실천으로서의 담론이란 단지 권력투쟁의 '''장소'''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며, 그와 동시에 권력투쟁의 '''몫'''이기도 하다."
(Discourse as a political practice is not only ''a site'' of power struggle, but also ''a stake'' in power struggle.)
-
- Fairclough(1992),[13]
p.67 (기울임체는 원서에 존재)
담론(discourse) 개념의 역사적 기원을 살펴보자면, 우선 라틴어에서 유래했다는 언급이 많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단어에서 출발했는지는 의견이 다소 갈리는 것으로 보인다. 그 중 첫째는 라틴어의 "(방향성 없이) 질주하다" 를 의미하는 '''discurrere'''에서 기원하였다는 관점이다. 이는 담론이 추상적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과 종종 대립하기도 한다는 속성을 부각하는 어원설이다. 다른 의견으로는 라틴어의 "갈라지다", "전달하다" 를 의미하는 '''discursus'''에서 기원하였다는 관점이 있다. 이쪽은 중세 라틴어에서 discursus가 열띤 대화를 의미하였다는 사실로 지지되는 어원설이다.
다음으로 담론의 '''언어학적 의미'''를 따져볼 수 있다. 가장 일반적으로 (그리고 국어적으로) 정의되는 담론의 개념화는, 여러 문장들의 묶음으로 구성된 발화행위(utterance)를 통해 만들어진 텍스트로서, 언어학적 분석단위 중 가장 큰 것이다. 다시 말해, 언어학적 분석단위로서는 형태소, 단어, 구, 절, 문장, 기타 등등이 있겠으나, 그 중에서 담론은 '''일련의 문장들로 연결된 가장 큰 단위'''가 된다. 어떤 문헌에 따르면[15] 담론의 언어학적 정의는 '언어의 의미론적 측면과 행위의 화용론적인 측면을 묶어주는, 의미화된 연쇄로 이루어진 관계적 총합'(a relational ensemble of signifying sequences that weaves together semantic aspects of language and pragmatic aspects of action)이 된다.
그러다가 언어학자 미셸 페쇠(M.Pecheux)가 《Analyse automatique du discours》 및 이후의 저작들에서 '''담론에 대한 철학적 논의'''에 불을 붙였다.[16][17] 강진숙(2016)은 페쇠의 지적 전통이 알튀세르에서 이어진다고 하였는데, 페쇠 또한 담론의 언어적인 측면과 물질세계의 측면을 어떤 관계로 볼 것인지 유물론적인 배경 속에서 사유하였다. 이는 현실과 괴리된 채로 담론 내적인 언어적 측면에 관심을 갖는 소쉬르와는 달라지는 지점이다. 페쇠가 떠올린 담론과 사회적 권력 간의 관계는, (하단에서 설명할) 푸코가 말했던 '이데올로기의 작용으로서의 담론' 과도 달라지는 것이었다. 페쇠가 보기에 담론은 이데올로기의 시녀가 아니며, 담론 간의 대립과 저항, 투쟁, 적대, 전복이 존재할 수 있었다. 페쇠는 담론이 '''계급투쟁 속의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방식을 통해 특정하게 선택된 언어활동'''이라고 보면서, 이 어휘의 선택과 조합 방식을 규정하는 것을 '''담론 구성체'''(discursive formation)라고 불렀다. 또한 알튀세르를 따라, 페쇠는 담론 속에서 주체를 드러내는 방법이 바로 '''호명'''(interpellation)이라고 하였으며, 이 호명의 과정이야말로 담론을 통해 작용하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효과라고 하였다.
마이클 할리데이(M.A.K.Halliday)와[18] Fairclough(1992)는 '''담론이 현실을 구성하게 되는 언어적인 기능'''을 3가지로 나누어 소개한다. '''첫째''', 정체성(identity)이다. 담론은 개인이 사회적 정체성을 확정하고 긍정하게 만든다. '''둘째''', 관계(relation)이다. 담론은 그 참여자들 간의 사회적 관계를 실행하며 협상하기도 한다. '''셋째''', 관념성(ideation)이다. 담론은 개인이 그 세계를 의미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의 체계를 형성한다. 실제로 담론이 정체성에 갖는 영향력은 Gee(1999) 또한 강조한 바 있다. 제임스 지는 담론이 구문론 또는 구문론에서 화용론에 이르는,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승인하는 사회적 언어'''(social language)라고 지적했다.
이상의 논의를 배경으로 하여 CDA의 주류 관점에서 이해하는 담론은, '''"담론은 사회적인 실천으로서의 언어이다"''' 라는 것이다.[19] 아마도 "비판적 담론 분석이 말하려는 것이 대체 무엇이냐" 는 질문이 나온다면, 다른 거 다 제쳐두고 이 한 마디만 읊더라도 80점 이상은 받을 수 있을 만큼 중요한 메시지가 될 것이다(…). 이는 루스 보다크의 관점 역시 유사한데, Wodak(1996)에 따르면[20] 담론은 사회의 거시맥락(macro-context)과 떨어질 수 없으며, 말과 글을 활용한 사회적 실천이라고 강조하였다. 여기서 보다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담론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회를 구성하는 힘 역시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CDA를 위시한 오늘날의 담론 분석가들은 '''담론과 같은 언어적 실천이 거시사회 전체를 바꿀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이기형(2006)이 지적했듯이 교육 분야나 의학 분야와 같은 특수한 맥락 속의 담론은 정말로 제도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또한 어떤 연설가나 정치인이 애국심에 호소하는 담론을 펼친다면, 그 담론은 그것을 충실하게 수용하는 주체들을 '호명' 함으로써 특정한 사회적 힘을 능동적으로 형성하게 된다. 특히 이는 푸코나 페어클러프에게 크게 경도된 분석가들이 확신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를 소위 '담론 결정론'(discourse determinism)이라고 부르며 문제시하는 관점도 있다. 이런 이론가들은 인간을 담론의 결과물로, 정체성을 담론의 효과로만 이해하는 푸코의 견해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며, 좀 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상을 견지하려 한다. 즉, '''인간은 지배 이데올로기가 담론의 형태로 전달될 때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기형(2006)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데올로기는 지배적 위치에 올라 있는 담론들이 만들어내는 특수한 효과로 이해되고 있으며, 단지 담론의 수용자의 역량을 어느 정도 제약하고 프레임화할 뿐이라고 설명된다고 소개한다. 마찬가지로 정희모(2017) 역시 페어클러프가 '''언어의 힘을 과대평가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위의 '기본 전제' 단락에서 설명했듯이, 담론은 사회를 구성하기도 하지만, 거꾸로 '''사회에 의해 구성되기도 한다.''' 담론 분석가들은 이를 참이라고 전제하고 분석을 수행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를 하나 들라고 한다면 아마도 Foucault(1971)[21] 가 창안한 '''담론의 질서'''(order of discourse) 또한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당초 푸코는 이 개념을 처음 창안하면서 조금 복잡하고 사변적인 논의를 전개했지만, 이후의 CDA 이론가들은 이를 다소간 단순화하여 도입했다고 알려져 있다. Fairclough(1995)에 따르면, 담론의 질서는 '''서로 다른 담론 유형들 사이의 경계를 설정하고 그 혼합의 여부를 결정하는 언어적 네트워크'''이다. 그리고 여기서 '''담론 유형'''이란, 담론의 질서 내에서 관습화되어 있는 담론의 배열(configuration)이라고 할 수 있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똑같은 학생의 신분일지라도 교실에서의 언어생활과 교무실에서의 언어생활은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 원칙적으로 달라야 한다. 마찬가지로, 친구와의 언어생활과 부모님과의 언어생활은 달라지게 된다. 부모님이 아무리 친구처럼 친한 사이라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부모님께는 친구처럼 말을 걸 수 없다. 여기서 담론의 질서는, 친구와 대화한 경험과 부모님과 대화한 경험 사이에 나타나는 '''경험 간의 관계성을 결정'''한다. 똑같은 내용일지라도 친구에게는 쪽지가 되는 반면 부모님께는 전상서가 된다. 이러한 '선긋기' 가 두 언어생활 경험 사이에 가능할 수 있는 이유는, '''담론의 질서가 우리의 담론에 압력을 가하기 때문이다.'''
담론에 대해 설명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바로 번역 문제이다. '''Discourse는 담론인가, 담화인가?''' 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일반적으로 discourse를 번역할 때 언어학, 순수인문학 분야에서는 담화라고 번역하지만, 푸코나 하버마스를 위시한 후기 구조주의나 사회과학계, 문화비평 분야에서는 담론이라고 번역한다. 이와 관련해서 박해광(2007)은 문화비평 분야에서 담론이라는 단어 자체가 명확히 합의되지조차 못했으며 단지 '패러다임적 전환' 이라는 막연한 상징적 개념으로 남아 버렸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일단 이 문서에서는 담론 쪽으로 통일하겠지만, 언어학 관련 전공자들이 보기에는 담론보다는 담화 쪽이 더 익숙할 수도 있다.
3.2. 거대담론
혹시 '거대담론' 이라는 표현을 들어보았는지? 신문 칼럼이나 에세이 등에서 종종 등장하곤 하는 이 용어 역시 의미의 난해함으로는 담론이라는 단어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게다가 거대담론이 일반적인 담론과 어떤 차이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 개념적 혼동은 설상가상으로 커지게 된다(…). 사실 담론 분석 관련 문헌들에서도 이런 용어는 그다지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다행히 제임스 지가 자신의 저서에서 거대담론에 해당하는 개념을 소위 '''"Big D"''' 로 지정해 둔 사례가 있다. Gee(1999)는 담론을 discourse/Discourse로 대소문자를 나누어 설명하면서, 대문자 담론의 의의를 적극적으로 강조하였다.
거대담론(Discourse) 내지는 'Big D' 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일단 해당 용어는 상호작용적인 정체성 기반 의사소통(interactive identity-based communication)으로 정의되는데, 이 정의를 이해하려면 앞의 기본 전제인, "사람들은 언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는 진술로 되돌아가야 한다. Gee(1999)에 따르면, 담론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being' 과 'doing' 의 '''두 가지 정체성 정보'''를 상대방에게 제공하려고 한다. 전자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주려는 것이며, 후자는 자신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려주려는 것이다. 이것을 '''승인 작업'''(recognition work)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담론은 결국 정체성이 서로 오가는 대화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위의 전제를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두 사람이 거대담론에 참여한다는 것은 결국 두 사람의 현저한 정체성(significant identity)이 두 사람의 몸을 빌어서 초역사적인 대화를 계속 이어감을 의미한다. 즉, '''역사의 물결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 온 담론'''이 바로 거대담론이다. 지금 만식 씨와 옥자 씨가 서로 대화하는 장면은 단지 두 사람의 입을 빌릴 뿐, 본질적으로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오가는 담론'''으로 볼 수 있다. 그 두 사람 이전에도 이미 그 거대담론은 역사 속 언젠가 최 진사와 충주댁이 대화하던 자리에서도 살아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개인이 거대담론에서 완전히 무력하다는 것은 아니다.''' 개인은 거대담론의 흐름을 바꾸고, 그것을 변형하고, 대체하며,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제임스 지는 '''연상의 망'''(web of association) 또는 '''담론 기록'''(discourse records), 혹은 Fairclough(2001)가 기억 자원이라 불렀던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거대담론에 대해서 개인들이 갖고 있는 맥락적으로 해석된 기억들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담론 기록은 거대담론에 참여하는 개인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합의된 것이고, 만일 이를 언어적으로 직접 언급하는 순간 거대담론은 그 소통의 접점이 깨지고 만다. 개인은 '''자신과 상대방 사이에 사회적 정체성이 교류할 때, 정체성 간에 어떤 대화의 관계가 성립해야 하는지 이미 체득해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가게에 방문한 중년 남성에게 그 가게를 지키고 있던 중년 여성이 "아유 사장님, 뭘로 드릴까?" 라고 접객을 한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거대담론은 중년 남성과 중년 여성의 사회적으로 맥락화된 정체성 간의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상품의 판매자는 상품의 구매자를 구태여 '사장님' 이라고 불러 줄 이유가 없다. 즉 이 사회적 관계는 단순히 상품 판매자와 상품 구매자의 관계가 아니라, '''두 사람의 정체성 사이의 특수한 상호작용'''(거대담론)을 반영하는 것이다. 여기서 담론 기록은, 사장님이라는 표현이 중년 남녀 간에 '얼핏 예의를 갖추는 듯하면서도 너스레를 섞은 친밀함을 전달하기 위한' 독특한 거대담론임을 중년 남성에게 상기시킨다. 즉, 중년 남성은 ① 자신이 그녀의 가게에 호감을 갖고 단골이 되어 주기를 이 중년 여성이 바란다는 정보, ② 서로가 너무 사무적이고 형식적이지는 않은 관계였으면 한다는 정보를 성공적으로 포착할 수 있다. 중년 남성이 만일 "아니, 저는 사장이 아니라 회사원인데..." 라고 반응한다면 거대담론의 접점은 깨지고 만다. 즉, 중년 남성이 그 너스레에 적절히 반응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그가 '''기존에 지니고 있던 담론 기록 덕분이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 제임스 지는 '''거대회화'''(Conversation) 내지는 'Big C' 라는 것도 제안하였다. 여기서 거대회화란, 특정 집단이 중시하는 주제를 두고 사용되어 온 모든 말과 글로 구성된 회화를 의미한다.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회화와는 달리, 거대회화는 해당 주제에 대해서 어떤 관점과 태도, 접근이 존재하는지 '''이미 잘 알려져 있고 정보가 공유되고 있다.''' 거대회화의 참여자들이 기본적으로 깔고 들어가는 배경지식의 출처는 논의(discussion)의 결과라고 설명된다. 여러분이 당장 떠올려 볼 수 있는 핫한 사회적 이슈들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 대화하는 것은 곧 거대회화에 참여함을 의미한다.
3.3. 담론과 이데올로기
위의 기본 전제에서 "모든 담론은 결국 이데올로기다" 를 기억한다면, CDA에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논의와 비판을 중요한 테마로 삼는 것 역시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미 저 《담론의 질서》 에서부터, 미셸 푸코는 '''언어(담론)와 권력, 그리고 이데올로기 사이에 서로 연결고리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로 현대의 CDA 연구자들은 이념 논의에 있어서 푸코를 비롯한 몇몇 사상가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푸코는 이데올로기를 정의할 때 '우위 집단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지식' 으로 정의하였는데, 이 정의는 권력과 괴리되어 있는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적 이데올로기 관점을 비판하고, 이데올로기가 권력과 연결되어 있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 위함이었다. 이데올로기는 사회정치적 환경과 사건, 경험에 대해서 해석하는 특정한 종류의 인식이 마치 '''자명하고 유일한 것'''처럼 믿어지게 하여, 그 이외의 다른 대안적 인식은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것을 이데올로기의 '''자연화'''(naturalization)라고 하며, 결과적으로 이데올로기는 그것으로부터 일부만 혜택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것이 모두에게 혜택을 주는 것처럼 여겨지는 보편적인 무언가로 위장된다.
'''이런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주인공이 바로 담론이다.''' 담론은 단순히 언어학적 개념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며, 특정 주제에 대해서 특정 시대 속에서 공유되는 에피스테메(episteme), 즉 지식에 관련된 인식의 방식을 실천함으로써 지식을 생산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즉, 담론은 이데올로기가 자연화한 방식대로 지식을 생산하는 길이 된다. 이를 '''이데올로기적 담론적 구성체'''(IDF; ideological-discursive formation)라고 부른다. 특정한 현실이 있고, 그것을 설명하는 특정한 방식이 있을 때, 그 둘 사이의 관계를 유일무이하고 당연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기능(이데올로기)을 수행하는 담론이 바로 IDF다. 그래서 페어클러프는 IDF를 찾아내는 것이 바로 CDA가 갖는 비판적 기능이라고 하였다. 즉, CDA의 목표는 어떤 발화에서 '''굳이 말하지는 않지만 암묵적으로 합의된 가정, 기본 전제, 대중의 상식''' 등이 자연화되어 은폐되어 있는 사례를 찾아내서 폭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담론 텍스트의 어떤 지점에서 CDA 연구자들은 이데올로기의 '냄새' 를 맡는 것일까? Fairclough(2001)는 그 사례로 두 가지 정도를 들고 있다. 그 첫째는 '''반복해 쓰기'''(over-wording)이다. 담론을 통해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려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접하는 표현'''일수록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마련이라고 여긴다. 예를 들어 보자. 홍콩 민주화 운동을 강경 진압하려는 당국자가 "우리 인민 모두는..." 이라는 말을 담화문 속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한다면, 이는 담론 분석가들의 시선을 끌 수밖에 없다. 다음 사례는 '''완곡표현'''(euphemism)이다. 담론은 어떤 지배 권력에 위협적일 수 있는 정보를 전달해야 할 때 그것을 '''부드러운 표현으로 에둘러 말함'''으로써 특정 이데올로기가 전복되는 것을 막는다. 이것도 예를 들어 보자. 정부는 어떤 반정부 인사를 감금 유폐한 후, 담화문에서는 "접견은 때때로 제한될 수 있습니다" 라고 공표할 수 있다. 이런 식의 어휘 사용은 CDA에서 포착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 유지 기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앞에서도 소개했던 인물인 미셸 페쇠는, 담론이 숨기는 이데올로기를 찾아낼 때 두 가지에 주목하라고 하였다. 그 첫째는 '''선구성된 것'''(the preconstructed)이다. 어떤 담론에서 '''암묵적으로 미리 전제하는 기본 가정'''은, 그 담론이 자연화하고 싶어하는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 예를 들어 보자. 미국이 서방 국가들에게 "이라크가 자유세계를 위협한다!" 고 호소한다면, 이는 서방세계가 자유로워야 하며 사실은 이미 자유롭다는 기본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다. 다음 사례는 '''명료화'''(articulation)이다. 인과관계에 관련된 접속사 등, 어떤 담론이 그 '''텍스트 내적으로 갖고 있는 몇몇 속성'''들 역시, 담론 참여자들에게 특정한 이데올로기가 자연스럽다는 확신을 제공한다. 이것도 예를 들어 보자. 미국이 서방 국가들에게 "이라크가 위협하기 때문에 전쟁은 불가피하다!" 라고 호소한다면, 이는 결국 주전론이 자연스러운 귀결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내포하는 것이다.
지배 이데올로기를 지탱하는 IDF는 전면적으로 발화되지만, 세상에는 발화되지 못하는 담론도 존재한다. 다시 말해, '''세상에는 "말해진 것과 말해지지 못하는 것 사이의 투쟁" 이 존재한다.''' 이는 앞서의 기본 전제, "모든 담론들은 언어적 옵션들을 취사선택한 결과" 라는 인식과도 맞닿아 있다. 이는 이미 저 유명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Bourdieu)가 말해진 담론을 '지배적 권력을 갖춘 언어' 로, 말해지지 못한 담론을 '지배적 권력을 갖추지 못한 언어' 로 설명했던 것과도 관련이 있다.
지배의 패권을 갖춘 담론, 즉 IDF는 곧 '''자동화되고 반복되고 모방하는 언어''', 즉 클리셰(cliche)를 만들어낸다. 바로 이 클리셰가 그 담론 이외의 다른 무언가를 상상하지 못하도록 언중의 사고를 틀어막게 되고, 결과적으로 그 지배 체제가 고착화되는 것이다. 이를 깨뜨리고 담론 패권을 전복하려면, 먼저 패권을 가진 담론을 낯설게 보는(defamiliarize) 것이 필요하며, 이를 '''일탈적 해독'''(aberrant decoding)이라고 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결국 '''담론의 생산수단을 통제'''(control)'''하기 위한 권력투쟁의 과정'''이 존재할 수 있다. 이를 가리켜서 '''담론 투쟁'''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즉, 담론 투쟁은 단순히 말싸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무엇은 말해도 되고 무엇은 말하면 안 되는지를 결정하는 '''입막음 활동을 둘러싼 쟁탈전'''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 운동가들이 "우리의 발언을 막지 말라! 이 생각은 우리의 담론 투쟁이다!" 라고 외치는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는 것이다.
사회인지적 관점으로 담론에 접근하는 사상가인 판 데이크는[22] '''세 가지의 담론 통제 방식'''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우선 '''맥락 통제'''(context control)를 들 수 있다. 이것은 누가, 언제, 어디서 담론의 생산 및 소통에 참여할지를 결정하는 통제권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담론 접근성은 정부수반의 연설문이나 대국민 담화문에서 가장 크다고 간주된다. 다음으로 '''담론 통제'''(discourse control)가 있다. 이것은 간단히 말하면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로서, 담론의 내용이나 의미, 형식이 어떠할지를 직접적으로 결정하는 통제다. 마지막으로 남은 '''정신 통제'''(mind control)의 경우, 담론이 인간의 인식과 인지적 과정에 편향적인 영향을 끼치게 만드는 통제이다.
그런데 '''담론적 패권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동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분석례가 바로 세월호 참사를 주제로 한 김영욱, 함승경(2015)[23] 의 문헌이다. 이들에 따르면, 세월호 침몰 후 대략 1년 동안 담론의 지형은 '참사 담론 vs. 교통사고 담론' → '진상규명 담론 vs. 보상금 담론' → '기억 담론 vs. 피로감 담론' 의 세 가지 양상으로 변화하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여론의 변화다. 사건 직후 여론은 세월호에 대해 참사 담론 쪽에 패권을 실어주었지만, 그 이후로는 줄곧 보상금 담론과 피로감 담론 쪽을 지지하면서 친정부 진영 측으로 패권을 이동시켰다는 것이다. 이들 연구자들은 이에 대해, 정부에서 기존에 확산시킨 '경제 담론', 즉 당장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된 담론이 갖고 있는 패권을 정부가 적극 이용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하였다.
3.4. 담론과 텍스트
경우에 따라 담론 분석은 텍스트 분석의 한 종류처럼 간주되거나, 혹은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24] 꼭 그래서가 아니더라도, 담론 분석가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텍스트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먼저 '텍스트' 가 무엇인지, 그리고 텍스트가 텍스트답기 위한 기준,[25] 즉 '''텍스트성'''(textuality)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게 된다. 물론 텍스트 자체는, Gee(1999)에 따르면 '타인의 말 또는 글' 로 심플하게 정의할 수 있다. 문제는, 텍스트는 텍스트가 아닌 것과 무엇이 다른가이다.
이성만(2005)은 텍스트성의 기준 여섯 가지를 들면서, 이를 텍스트 내적 기준 두 가지와 텍스트 외적 기준 네 가지로 분류하였다. 먼저, '''텍스트 내적 기준'''은 다음과 같다. ① '''응결성'''은 텍스트의 문법적인 법칙에 의거한 통사론적 연결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② '''응집성'''은 텍스트의 의미를 구성하는 요소가 있어야 하며, 그 수용에 영향을 끼치는 현실 지식의 일부 역시 텍스트성에 포함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넘어져서 무릎을 다쳤다" 는 텍스트에는, 넘어지면 어딘가 다칠 수 있다는 지식이 공유되어야 함을 전제한다. 한편 '''텍스트 외적 기준'''은 다음과 같다. ③ '''의도성'''은 생산자의 태도나 의도가 반영되어 있어야 텍스트로 성립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잠꼬대는 텍스트가 아니지만, 전화번호부는 텍스트로 불릴 수 있다. ④ '''용인성'''은 텍스트의 수용자가 그것을 텍스트로 인정해야 함을 의미한다. ⑤ '''정보성'''은 텍스트 내부에서 기대되는 뭔가 새로운 것이 발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⑥ '''상황성'''은 텍스트가 만들어지는 상황과 정세, 맥락이 반영되어야 텍스트로 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이성만(2005)은 '''텍스트 외적 기준들은 맥락에 의존적'''인데, 이것은 CDA의 이론적 관점과도 연결된다고 하였다.
위에서 거대담론이나 지배 이데올로기에 부역하는 담론(IDF)들이 초역사적으로 안정적인 특징을 갖는다고 설명하였는데, 실제로 이런 류의 담론은 '''입에서 입으로, 텍스트에서 텍스트로 전해지면서 계속 유지된다.''' 다시 말해, 환경과 맥락과 조건이 아무리 변화하더라도 계속 담론이 확장되고 변형되면서 확산된다. 이를 담론사(discourse history) 연구자들은 일명 '''재맥락화'''(re-contextualization)라고 부른다. 예컨대 Fairclough(1995)는 영국의 사례를 가져오는데, 시장논리에 입각한 일명 '엔터프라이즈(enterprise) 담론' 이 공공의 담론 영역으로까지 마구잡이로 침투해 들어왔다고 말하고 있다. 즉, 당초 이윤추구 맥락에서 의미 있게 논의되었던 담론이 영국 사회에서 패권을 얻게 되자, 개개인의 삶의 양식 전반에 이르기까지 '''새롭게 맥락화되고 개념화되어 생존'''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텍스트의 속성은 위에서 정의한 '타인의 말과 글' 이라는 정의와 언뜻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철수 씨가 쓴 글에 대해서 그것을 철수 씨의 텍스트라고 이해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이 문제다. 철수 씨는 그 텍스트를 만들기 위해서 자기 나름대로 '''다른 누군가의 텍스트들'''을 참조하거나 그 영향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골치 아픈 상황을 가리켜서 연구자들은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이라고 부르며, 재맥락화의 중요한 문제로 꼽는다. 철학자이자 페미니스트였던 쥘리아 크리스테바(J.Kristeva)가 1986년에 언급하면서 유명해진 이 용어는, 당초에는 문학 분야에서 주로 논의되다가 그 이후에는 분석의 난점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언어학계의 텍스트 분석가들에게도 적극적으로 도입되었다.
제임스 지는 상호텍스트성에 대해서 '''다른 텍스트나 텍스트 유형에 대한 상호 참조'''를 의미한다고 개념화하면서, 그 존재 자체로 이미 상기했던 거대회화의 존재를 드러낸다고 하였다. 짧고 쉽게 정의하자면, 상호텍스트성은 '''타인의 텍스트로부터 가져온 자산'''이다. 이것은 대중적인 수준에서 흔히 말하는 인용이라는 개념과도 관련이 있는데, 실제로 상호텍스트성은 직접인용의 형태로, 간접인용의 형태로, 그저 '아는 사람들끼리만 통하는' 암시를 은연중에 보내는 것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Fairclough(1992) 역시 상호텍스트성의 세 가지 종류로서, 타인의 텍스트가 번갈아 제시되는 '''순차적'''(sequential)인 것, 타인의 텍스트를 담고 있는 '''내포적'''(embedded)인 것, 마지막으로 타인의 텍스트를 분리할 수 없는 '''혼합적'''(mixed)인 것으로 나누었다. 어떻게 분류하든, 늘 마지막 케이스가 문제다. '''타인의 텍스트가 암시적이거나 분리할 수 없는 형태로 나타날 때, 텍스트 분석의 난이도는 불지옥급으로 치솟는다.'''
예를 들어 보자. 서덕희(2011)의 문헌에서 연구주제로 삼고 있는 홈스쿨링을 담론의 영역으로 삼는다면, 분석가는 곧 홈스쿨링 담론 속 텍스트들이 간단치 않은 배경을 갖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똑같이 홈스쿨링을 긍정하는 입장에 선다고 할지라도, 어떤 담론 속에는 소위 '교실붕괴' 담론, 즉 공교육이 이미 그 한계에 달했다는 누군가의 텍스트가 뒤섞여 있을 수 있다. 또 어떤 찬성측 담론에는 '개인의 선택의 권리' 담론, 즉 제도권 교육에 자녀를 맡길지 아니면 집에서 직접 교육을 할지는 전적으로 학부모의 선택권에 달린 것이며 국가는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누군가의 텍스트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이를 일반화하면, 개인이 어떤 담론에 임할지라도 결국 그는 기존에 이미 존재하는 규범과 인습, 사회적 구조와 가치 체계 등의 제약을 받게 되며, 결과적으로 그가 활용하는 텍스트 또한 '''이름 모를 누군가의 텍스트와 상호텍스트성을 맺고 있는 혼합적인 텍스트'''가 되고 만다.
상호텍스트성은 그 본래 영역인 문학 분야의 비평가들에게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텍스트 분석을 해야 하는 언어학 연구자들에게도 또 다른 의미에서 굉장한 '''방법론적 고민'''을 하게 만드는 문제가 된다. 심지어 이는 커뮤니케이션학과 같은 의사소통 분야에 있어서는 그 이상으로 포괄적인 주제들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한 예로, 어떤 문헌에 따르면[26] 대중 잡지들이 어떤 과학적 연구 성과를 소개하고 거론할 때에는 다분히 과장된 재맥락화를 거치기 때문에, 원본 연구의 텍스트와 이를 참조하는 잡지의 텍스트가 서로 크게 달라진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3.5. 담론과 맥락
맥락 이야기가 나온 김에, 담론 분석에서 맥락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역시 곁들여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임스 지는 (이데올로기 논의에서 이미 익숙하게 보았던 그 느낌으로) '''언어가 어떤 맥락을 구성하면서 동시에 그 맥락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Gee(1999)는 '''사회적으로 위치지어진 의미'''(socially-situated meaning)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이는 짧게 표현하면 맥락화된 의미라고도 할 수 있다. 즉, 특정 맥락에서만 통하는 특별한 의미의 단어나 어구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나는 성평등에 동의해, 아 물론 여기서 성평등이라는 것은..." 이라고 말하거나, "기업을 규제하고 의사표현을 검열하다니, 반민주적이다! 자고로 민주주의란 개인의 자유를..." 이라고 말하는 것은 의미의 맥락화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Gee(1999)는 한편으로 '''프레임 문제'''(frame problem)를 거론한다. 이 개념에 따르면, 언어를 해석할 때 우리는 맥락을 고려하게 되지만, 과연 어디까지 맥락을 고려해야 할지에 대한 '''적절한 기준은 없다'''는 것이다.
맥락에 대한 다른 연구자들의 논의로서, 루스 보다크의 의견 역시 소개할 수 있다. 여기서는 '''맥락을 네 종류의 수준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텍스트 내적 맥락이다. 이것은 언어적이고 직접적인 수준의 맥락을 의미한다. '''둘째''', 상호텍스트적 맥락이다. 이것은 발화, 텍스트, 장르, 담론들 사이에서 존재하는 맥락이다. '''셋째''', 상황 맥락이다. 이것은 중범위 수준에서 언어 외적으로 상황적인 측면을 고려하는 맥락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정치역사적 맥락이 있다. 이것은 가장 거대한 수준인데, 그 담론이 뿌리내리고 있는 맥락을 고려하는 것이다.
또한 판 데이크는 맥락과 관련하여 '''맥락모형'''(context model)을 제안하기도 했다. 판 데이크의 문제의식은 담론과 맥락이 일대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한 담론에 적용할 수 있는 맥락이 너무 많다는 데서 출발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 많은 담론들 중 어떤 특정한 방식의 맥락을 골라서 담론을 해석'''하게 되는데, 여기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바로 맥락모형이다. 결국 판 데이크의 요지는, 담론을 맥락 속에서 분석하기 위해서는, 어떤 담론을 특정한 맥락화된 의미로 읽어내게 만드는 그 '''선택된 맥락'''이 무엇인지를 찾아낸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보자. 미국의 호소에 부응하여 유럽의 어떤 나라가 이라크 전쟁에 지상군을 파병할 때, 파병 지지측 정치인은 이라크 전쟁 담론을 둘러싼 맥락 중에서 '국제사회적 위기' 맥락은 부각시키고 '서방의 중동 침공사' 맥락은 숨기는 맥락모형을 형성하게 된다.
3.6. 3차원 담론 분석
담론을 분석하기 위한 분석틀로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역시 앞서 계속 언급되었던 페어클러프일 것이다. 이 인물은 Halliday(1978)의 문법이론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 이론적 틀을 참고하여 자신의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 방법론은 소위 '''3차원 담론 분석'''이라고 불리며, 수많은 CDA 연구자들이 너나할 것 없이 앞다투어 수용하게 되는 인기를 끌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페어클러프는 담론 분석의 차원을 3가지의 차원으로 나누었고, '''각각의 차원에서 분석가가 수행해야 하는 작업이 달라진다'''고 하였다.
- 텍스트(text) 차원 : 이것은 기술(description) 단계로서, 종래의 기술적 담론 분석을 포괄한다. 여기서는 텍스트 속의 어휘, 문법, 구조 등의 언어적 작동을 진술하게 되는데, 특히 텍스트의 동질성 수준 또한 중요한 분석 대상이 된다. 왜냐하면 동질성이 커질수록 하단에서 소개할 담화 실천의 관습성 또한 함께 증가하게 되기 때문이다.
- 담화 실천(discourse practices) 차원 : 이것은 해석(interpretation) 단계로서, 텍스트 차원과 사회문화적 실천 차원 사이에서 가교의 역할을 담당한다. 여기서는 텍스트가 생산되는 과정과 소비되는 과정을 논의한다. 즉, 담화의 생산자, 배포자, 수용자가 누구인지, 텍스트가 처한 상황은 무엇인지를 상호텍스트성을 고려하면서 분석한다. 페어클러프는 담화 실천에 대해서 '언어를 정상적으로 사용한다고 여겨지는 방식' 으로 정의했는데, 유동적이고 창의적인 사회일수록 그만큼 관습성이 낮고 창조적인 담화 실천이 나타나지만, 폐쇄적이고 관습화된 사회일수록 담화 실천이 고루하고 진부하게 나타난다고 하였다.
- 사회문화적 실천(socio-cultural practices) 차원 : 이것은 설명(explanation) 단계로서, CDA가 그 비판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차원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텍스트 해석 과정에서의 사회적 압력이나, 텍스트가 갖는 사회문화적 파급효과를 논의한다. 이를 위해, 텍스트와 상호작용하는 거시사회적 구조 및 제도, 그리고 그것에 의해 (재)구성되는 텍스트를 분석하게 된다. 앞서 보았던 담화의 질서가 바로 사회문화적 권력들 간의 패권투쟁의 결과물인데, 이런 패권은 일시적이고 불안정할 수도 있다.
- 텍스트 내적 관계 차원 : 이 차원에서는 역시나, 의미론이나 어휘, 문법, 음성학 등의 기술적인 텍스트 분석을 수행하게 된다.
- 담론 차원 : 이 차원에서는 담론이 어떻게 텍스트의 내부와 외부를 매개하는지에 대해 세 가지로 나누어 분석한다.
- 장르들(genres) : 여기서의 목적은 텍스트가 어떤 사회적 행위를 수행하는지 확인하는 데 있다. 장르는 지속적인 언어적 참여를 통하여 행위의 틀이 내면화된 것으로, 사람들이 그 규칙을 벗어나서 언어생활을 하기가 어렵다.
- 담론들(discourses) : 여기서의 목적은 텍스트가 특정 현상을 어떻게 표상하는지 확인하는 데 있다. 페어클러프는 동일한 현상에 대해서 서로 다른 담론이 나타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반영하였다. 예를 들어, 홈스쿨링에 대해서 '선택의 권리' 담론과 '대안공동체' 담론이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다.
- 양식(style) : 여기서의 목적은 텍스트를 통해 화자의 정체성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확인하는 데 있다. 텍스트 속에서 그 화자를 가리키는 언어적 특성들은 동일한 양상을 띠게 되는데, 이를 분석하면 그 담론에 임하는 화자가 자신을 무엇으로 정체화하려 하는지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홈스쿨링 담론에 임하는 참여자들은 스스로를 학계 전문가로, 사회운동가로, 혹은 평범한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 정체화하게 될 수 있다.
- 텍스트 외적 관계 차원 : 이 차원에서는 담론을 통한 실천이 현존하는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패권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재)구조화하는지 확인하게 된다. 패권에 대한 많은 학자들의 지적을 수용하여, 페어클러프는 IDF와 같이 패권에 봉사하는 담론이 있는가 하면 그 패권에 대항하는 위치에 놓이는 담론도 있음을 반영하였다. 또한, 패권적 담론이라 할지라도 그 실상은 동질적인 논리적 구조와 내용으로 구성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이질적인 맥락들로부터 주섬주섬 맞춰진 다양한 담론들이 인위적으로 접합되어 있을 수 있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외국인 노동자에 부정적인 담론은 그 일부를 '범죄예방' 담론으로부터 끌어오면서도 일부는 '내국인 실업률' 담론으로부터 끌어왔을 수 있다.
4. 비판점
담론 분석, 그 중에서도 CDA, 특히 그 중에서도 페어클러프를 위시한 조류의 CDA는 원체 유명하기도 유명하지만, 그만큼 상당히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여기서는 두 건의 문헌들을 소개할 것인데, 두 문헌 모두 CDA에 대해서 상당히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으면서도 굉장히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지적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차후 담론 분석을 진지하게 탐구한다면 참고할 것을 강력히 권장하는 자료들이다.
4.1. 신진욱(2011)
- 담론을 분석함으로써 사회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서 담론을 분석함
> "많은 CDA 연구들은 그 담론투쟁의 장에 개입해서 자신의 연구결과를 통해 특정한 입장의 타당성을 설득하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규범적 판단과 당파적 입장을 '선언' 하고 그 '증거' 를 찾는 경향이 있다. 이런 방법론으로 비판을 수행했을 때, 연구자의 입장에 동의하는 사람에겐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평범한 연구가 되고, 입장에 동의하지 않은 사람에겐 설득력 없는 이데올로기적 입장 표명으로 받아들여질 위험이 있다."
> -
> - 신진욱(2011), p.16
해외의 고전적인 짤방에서도 나오지만, "여기 근거들이 있다, 결론은 무엇일까?" 와, "여기 결론이 있다, 이를 입증할 근거는 무엇일까?" 중에서 건전한 학술활동을 골라야 한다면 후자보다는 전자가 더 적절할 것이다. 문제는, CDA의 경우 어떤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특정한 무언가가 '틀렸다, 나쁘다, 잘못되었다' 고 가치판단을 미리 도출한 뒤, 자신의 이 판단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뒤늦게 CDA를 활용하여 논리를 갖다 붙인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치판단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종류의 '비판적' 인 정체성을 갖는 학문이 갖는 특성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분석의 결과로써 가치판단이 나올 수 있어야 하는데, 그 가치판단을 옹호하기 위해 분석을 한다는 것이다.
CDA의 이런 경향은 그것이 적용되는 쟁점 맥락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신진욱(2011)은 CDA 연구 사례들의 태반이 누구나 문제가 있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주제들, 예컨대 인종차별이나 파시즘 같은 극단적으로 문제시되는 사회현상만을 다룬다고 지적한다. 반면, 사회적으로 의견이 워낙 첨예해서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를 쉽사리 판단하기 어려운 주제에서는 CDA 연구가 잘 수행되지 않는다. CDA가 담론을 분석함으로써 비판적 결론을 도출하는 생산적인 방법론이라면, 이런 연구활동의 차이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이런 식의 연구활동의 결과는 어떠한가? 신진욱(2011)에 따르면, 쉽사리 문제시되는 주제에 대한 CDA 분석 결과는 '놀랍지도 않고 뻔하기 짝이 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찬반이 갈리는 애매한 주제에 대한 CDA 분석 결과는 '가치판단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는 일방적인 선언' 으로 전락한다. 그렇다면 이런 분석을 왜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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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진욱(2011), p.16
해외의 고전적인 짤방에서도 나오지만, "여기 근거들이 있다, 결론은 무엇일까?" 와, "여기 결론이 있다, 이를 입증할 근거는 무엇일까?" 중에서 건전한 학술활동을 골라야 한다면 후자보다는 전자가 더 적절할 것이다. 문제는, CDA의 경우 어떤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특정한 무언가가 '틀렸다, 나쁘다, 잘못되었다' 고 가치판단을 미리 도출한 뒤, 자신의 이 판단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뒤늦게 CDA를 활용하여 논리를 갖다 붙인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치판단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종류의 '비판적' 인 정체성을 갖는 학문이 갖는 특성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분석의 결과로써 가치판단이 나올 수 있어야 하는데, 그 가치판단을 옹호하기 위해 분석을 한다는 것이다.
CDA의 이런 경향은 그것이 적용되는 쟁점 맥락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신진욱(2011)은 CDA 연구 사례들의 태반이 누구나 문제가 있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주제들, 예컨대 인종차별이나 파시즘 같은 극단적으로 문제시되는 사회현상만을 다룬다고 지적한다. 반면, 사회적으로 의견이 워낙 첨예해서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를 쉽사리 판단하기 어려운 주제에서는 CDA 연구가 잘 수행되지 않는다. CDA가 담론을 분석함으로써 비판적 결론을 도출하는 생산적인 방법론이라면, 이런 연구활동의 차이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이런 식의 연구활동의 결과는 어떠한가? 신진욱(2011)에 따르면, 쉽사리 문제시되는 주제에 대한 CDA 분석 결과는 '놀랍지도 않고 뻔하기 짝이 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찬반이 갈리는 애매한 주제에 대한 CDA 분석 결과는 '가치판단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는 일방적인 선언' 으로 전락한다. 그렇다면 이런 분석을 왜 해야 하는가?
- 비판과 자기성찰의 '초심' 을 잃었음
CDA가 드러내는 한계점은, 가장 '비판적' 이고자 하는 학자들로부터 제기되기도 한다. 마이클 빌리히(M.Billig)는 CDA를 논의하면서, 그 연구자들이 불평등과 모순, 사회적 불의 등에 대해 겨누어야 할 비판의 칼날이 무뎌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CDA를 통해서 실제로 지배 권력이나 이데올로기를 위협하고 전복할 만한 통찰들이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의 정체성을 '비판적 학문' 으로 규정하는 CDA가 사회적 변화와 사회 정의를 위해서 한 것이 대체 뭐가 있느냐는 게 이들의 비판이다. 이에 대해 신진욱(2011)은 CDA가 위치해 있는 학문적 지형을 언급한다. 현실적으로 CDA는 아직까지 언어학과의 접점이 매우 크며, 그들의 비판의식이 현실에 반영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회학, 정치학과의 접점이 약하다는 것이다. 결국, 학제간 연구가 빈약한 환경에서는 CDA의 비판적 힘도 약해진다는 게 요지다.
- 담론과 권력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이론적인 엄밀함이 부족함
위에서 소개했던 기본 전제 중, "담론은 사회에 의해 구성되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회를 구성하기도 한다" 를 되새겨 보자. 이것은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알다가도 모를 진술이다(…). 양면적 진술은 이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CDA는 담론이 지배의 수단이 되면서 동시에 투쟁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담론이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낸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그 두 양면적 상황 간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명쾌하게 설명하진 못한다. 예를 들어, 여러 담론들이 대립되는 관계에 놓인다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의 담론이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인가? 그도 아니면 하나의 담론이 동시에 여러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인가? 신진욱(2011)은 아직까지 이론적인 양면성이 갖는 난제에 대한 확실한 합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또한 이 양면적인 관계 속에서 출판되는 연구의 비율에서도 편향이 발생하고 있다. 많은 연구자들은 담론이 지배권력에 봉사하는 사례만을 찾는 데에 골몰할 뿐이며, 담론이 지배권력에 균열을 내고 파열을 일으키며 전복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 데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신진욱(2011)은, 그렇다면 CDA는 '지배수단으로서의 담론' 과 '전복적 가능성으로서의 담론' 중 어느 쪽에 이론적인 우선순위를 둘지 하루빨리 결단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발전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만일 CDA가 후자를 우선시하기로 한다면 지배적 담론의 재생산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에 대한 인식론적 고민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럼 그것을 담론이 변형되는 특수한 사례 중 하나로 취급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또한 이 양면적인 관계 속에서 출판되는 연구의 비율에서도 편향이 발생하고 있다. 많은 연구자들은 담론이 지배권력에 봉사하는 사례만을 찾는 데에 골몰할 뿐이며, 담론이 지배권력에 균열을 내고 파열을 일으키며 전복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 데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신진욱(2011)은, 그렇다면 CDA는 '지배수단으로서의 담론' 과 '전복적 가능성으로서의 담론' 중 어느 쪽에 이론적인 우선순위를 둘지 하루빨리 결단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발전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만일 CDA가 후자를 우선시하기로 한다면 지배적 담론의 재생산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에 대한 인식론적 고민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럼 그것을 담론이 변형되는 특수한 사례 중 하나로 취급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4.2. 정희모(2017)
- 한두 편의 담론을 분석함으로써 과연 그 사회 전반을 들여다볼 수 있는지 의문임
> "일상의 담화에서 역사적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매우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푸코의 고고학이나 계보학처럼 그 담화가 사회·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오랜 기간 그 담화의 주변들을 면밀하게 추적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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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희모(2017), p.176
교육학자의 관점에서 정희모(2017)는 현대에 들어서면서 점점 많은 교육학 연구자들이 CDA를 소개하고 도입하는 것을 환영하면서도, CDA가 갖고 있는 자체적인 한계나 문제점들을 충분히 고찰하지 않은 상태로 마구잡이로 갖다붙이려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우려하였다. 그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한계점, 즉 CDA가 (특히 페어클러프를 따를 때) 담론(언어)을 과대평가하는 방법론이라는 문제의식은 찾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CDA를 도입하는 연구자들은 언어의 힘을 도대체 어느 정도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물론 언어의 중요성은 위에서 '언어적 전환' 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통해 이미 잘 정당화되었지만, 이는 미셸 푸코와 같은 굇수급(?)의 태산북두 이론가들이 평생을 바쳐서 '지식의 고고학' 이니, '지식의 계보학' 이니 하는 거대한 연구 프로젝트를 이루어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서구 문명사회와 지성사 전체를 꿰뚫는 철저한 논증을 거친 후에야, 푸코는 간신히 "담론과 권력과 이데올로기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고 말할 수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오늘날 인문학계에서 그의 위상이 최고존엄의 위치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페어클러프는 그렇게 했는가? 그는 CDA에서 마치 "단 하나의 담론조차도 그 사회의 권력과 이데올로기를 드러낸다" 고 말하는 듯 보이며, 이는 푸코의 메시지에서 한 발 더 강하게 나아간 메시지다. 그러나 페어클러프는 이런 강한 주장을 펼칠 때,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그 정도의 지적 성실성은 보이지 않았다.
오늘날 CDA 연구자들은 흔히, 단 하나의 텍스트를 갖고도 그 사회의 모순과 불평등, 억압적 구조를 폭로할 수 있다고 '감히'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정희모(2017)는 그들이 그 하나의 텍스트를 보기 이전에 먼저 그 주제에 관련된 무수히 많은 텍스트에 대한 추상화와 개념화의 처리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몇 줄의 문장으로 구성된 담론이 문제적이라고 분석하는 CDA 연구자는, 이미 그 문장을 접하기 이전에 그 담론에 대해 수많은 텍스트를 읽어보았고 숙고했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확장하면, 정희모(2017)의 결론은 간단해진다. 담론으로 사회를 볼 수는 있다. 단지 그것이 담론과 담론으로 이어져서 어마어마한 텍스트를 낳는 거대한 구성체가 될 때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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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희모(2017), p.176
교육학자의 관점에서 정희모(2017)는 현대에 들어서면서 점점 많은 교육학 연구자들이 CDA를 소개하고 도입하는 것을 환영하면서도, CDA가 갖고 있는 자체적인 한계나 문제점들을 충분히 고찰하지 않은 상태로 마구잡이로 갖다붙이려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우려하였다. 그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한계점, 즉 CDA가 (특히 페어클러프를 따를 때) 담론(언어)을 과대평가하는 방법론이라는 문제의식은 찾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CDA를 도입하는 연구자들은 언어의 힘을 도대체 어느 정도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물론 언어의 중요성은 위에서 '언어적 전환' 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통해 이미 잘 정당화되었지만, 이는 미셸 푸코와 같은 굇수급(?)의 태산북두 이론가들이 평생을 바쳐서 '지식의 고고학' 이니, '지식의 계보학' 이니 하는 거대한 연구 프로젝트를 이루어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서구 문명사회와 지성사 전체를 꿰뚫는 철저한 논증을 거친 후에야, 푸코는 간신히 "담론과 권력과 이데올로기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고 말할 수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오늘날 인문학계에서 그의 위상이 최고존엄의 위치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페어클러프는 그렇게 했는가? 그는 CDA에서 마치 "단 하나의 담론조차도 그 사회의 권력과 이데올로기를 드러낸다" 고 말하는 듯 보이며, 이는 푸코의 메시지에서 한 발 더 강하게 나아간 메시지다. 그러나 페어클러프는 이런 강한 주장을 펼칠 때,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그 정도의 지적 성실성은 보이지 않았다.
오늘날 CDA 연구자들은 흔히, 단 하나의 텍스트를 갖고도 그 사회의 모순과 불평등, 억압적 구조를 폭로할 수 있다고 '감히'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정희모(2017)는 그들이 그 하나의 텍스트를 보기 이전에 먼저 그 주제에 관련된 무수히 많은 텍스트에 대한 추상화와 개념화의 처리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몇 줄의 문장으로 구성된 담론이 문제적이라고 분석하는 CDA 연구자는, 이미 그 문장을 접하기 이전에 그 담론에 대해 수많은 텍스트를 읽어보았고 숙고했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확장하면, 정희모(2017)의 결론은 간단해진다. 담론으로 사회를 볼 수는 있다. 단지 그것이 담론과 담론으로 이어져서 어마어마한 텍스트를 낳는 거대한 구성체가 될 때에만.
- 다양한 주제에 범용적으로 쓰기 어려운 방법론임
정희모(2017)는 CDA가 교육학에서 당시까지 적용되어 온 사례들을 거론하면서, 이것이 CDA를 오해했거나 그 방법론을 잘못 적용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요컨대, CDA는 정치학이나 커뮤니케이션학 등지에서 연설문이나 뉴스보도 등을 이념적이고 비판적인 방식으로 분석할 때에나 효과적이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육학이라는 분야에는 적용하기에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CDA는 그렇게 아무 분야에나 마구 적용할 수 없으며, 소수의 학문분야에서만 특수한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용가치가 크지 않은 방법론이다. 기타 분야에서 CDA를 사용해야 한다면 먼저 그 정당화를 충분히 거치거나, 혹은 기존의 분석방법을 그 분야에 맞게 변형해야 한다는 것이다.
CDA는 심지어 연구 질문에서도 제약이 따른다. CDA는 특정 담론으로부터 우리가 몰랐던 '무언가'(what)를 새롭게 발견하는 것은 거의 할 수 없고, 이미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무언가가 특정 담론에서 '어떻게'(how) 반영되어 있는가를 상기할 수만 있다는 것이다. 즉, 연구자가 비판하고자 하는 어떤 이데올로기나 권력이 어떤 담론의 사례에서 이렇게 드러날 수 있다고 폭로하는 기능은 수행할 수 있으나, 그 담론을 분석함으로써 연구자가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지식을 도출할 수는 없다. 그저 연구자가 옳다고 믿었던 기존의 입장이 여기서도 입증됨을 재확인할 뿐이다. 그렇다면 CDA는 학술적 논의를 생산적으로 이끌어가는 힘 역시 상당히 약하다는 의미가 된다. 새로운 이야기가 꾸준히 나와야, 권력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새로운 관점들이 꾸준히 제기되어야 학자들이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CDA로는 "이렇게나 나쁜 이데올로기가 이렇게나 뿌리깊게 만연해 있다!" 만을 반복해서 외칠 따름이다.
CDA는 심지어 연구 질문에서도 제약이 따른다. CDA는 특정 담론으로부터 우리가 몰랐던 '무언가'(what)를 새롭게 발견하는 것은 거의 할 수 없고, 이미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무언가가 특정 담론에서 '어떻게'(how) 반영되어 있는가를 상기할 수만 있다는 것이다. 즉, 연구자가 비판하고자 하는 어떤 이데올로기나 권력이 어떤 담론의 사례에서 이렇게 드러날 수 있다고 폭로하는 기능은 수행할 수 있으나, 그 담론을 분석함으로써 연구자가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지식을 도출할 수는 없다. 그저 연구자가 옳다고 믿었던 기존의 입장이 여기서도 입증됨을 재확인할 뿐이다. 그렇다면 CDA는 학술적 논의를 생산적으로 이끌어가는 힘 역시 상당히 약하다는 의미가 된다. 새로운 이야기가 꾸준히 나와야, 권력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새로운 관점들이 꾸준히 제기되어야 학자들이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CDA로는 "이렇게나 나쁜 이데올로기가 이렇게나 뿌리깊게 만연해 있다!" 만을 반복해서 외칠 따름이다.
5. 국내의 동향
최윤선(2014)의 문헌에 따르면, 국내의 담론 분석은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그 방법론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다. 담론 연구의 경우 군사독재의 엄혹한 현실 속에서 담론생산의 외적 압력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으며, 담화 연구자들은 이와 다소 괴리된 상태로 영미언어학계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결국, 국내의 담론 분석은 '''언어학자들과 사회과학자들 사이의 학제적인 소통이 부족'''한 상태로 출발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서는 문화비평, 커뮤니케이션 분야를 중심으로 담론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이론적 조망은 페어클러프, 페쇠, 판 데이크가 주류지만, 그 외에도 드물게 로저 파울러(R.Fowler)나 마이클 핼러데이를 통해 논의하는 사례도 확인된다고 한다. 문화비평 분야에서 대부분의 연구 주제는 '''뉴스보도 양상, 대선 캠프의 홍보전략, 노동운동, 근대화 담론''' 등으로 정리될 수 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던 비판적인 문헌들은 국내의 연구동향에 대한 비판 역시 남기고 있다. 신진욱(2011)에 따르면, 국내 사회과학 분야의 대부분의 CDA는 페어클러프를 통해 분석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며, 페어클러프만을 편식(?)한 결과로 인해 '''분석의 인식론적 다양성'''이 크게 부족해졌다. 이를 다시 말하면 국내의 CDA는 '''그 이론적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페어클러프에 과도하게 의존함으로써, 국내 CDA 연구자들은 최신의 학술적 성과를 바탕으로 하는 생산적인 비판에는 이르지 못하고, 늘 나왔던 진부한 비판을 반복하는 데 머무를 뿐이다.
또한 정희모(2017)는 교육학계에서 CDA가 갖는 비판적 성격에 대해 마치 '비판적 사고력', '필자의 의도 파악' 같은 말랑말랑한 개념인 것처럼 오해한다고 지적했다. CDA가 비판적이라는 것은 곧 이념적이고 가치개입적이며 전복적인 현실투쟁의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지만, 교육학에 CDA를 접목한 문헌들은 그런 측면들을 몰랐거나 혹은 알면서도 도외시한 채로 '비판적으로 독해하는 법' 같은 '''비정치적인 맥락으로 엉뚱하게 적용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희모(2017)는 이런 논문의 저자들이 과연 CDA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라고까지 말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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