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권/선수 경력
1. 아마추어 시절
전주고를 졸업한 박정권은 2000년 연고 팀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9번지명이라는 상당히 낮은 순위로 지목된다. 그 해 쌍방울은 신인 드래프트에서 의외로 대박을 쳤다. 당시 지명된 동기는 SK의 원년 에이스인 1차지명 투수, 군산상고의 이승호(20), 중앙고의 광(光)속구 투수 '와일드 씽' 엄정욱(2차 2순위), 현대-히어로즈-한화의 너클볼러 대전고의 마일영(2차 1순위)[1] 이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상위픽. 그리고 비슷한 하위픽에 지명된 선수중에 성공한 입단 동기는, 전주고의 장신 사이드암 김명완[2] 이 있다. 물론 저 선수들이 입단하기 직전인 2000년 초 팀이 해체되어 자연스럽게 지명권은 쌍방울 선수들을 모태로 창단한 신생팀 SK 와이번스로 넘어가게 된다.
지명받은 뒤 동국대학교 체육교육학과(2001학번)에 입학했다. 유신고 출신 유한준이 대학 입학 동기였고 박한이가 대학 3년 선배, 한대화 전 한화 감독이 그 당시 은사였다.
참고로 고교-대학 통산 성적은 87경기 288타수 82안타 타율 .285 11홈런 63타점 6도루 57볼넷 61삼진. 전주고 시절에 투수를 겸했기 때문에 고등학교 시절 경기수가 조금 적은 편이다.
전주고 2년차 후배인 최형우 문서에도 이름이 나오는데 그 이유가 다름아닌 전주고 재학 시절 최형우를 매일 때렸다는 이유로 나왔다#. 그래도 박정권이 운영하는 고깃집에 찾아가서 식사를 한 걸 보면 현재 사이는 서로 나쁘지 않은 듯. #
2. 프로 시절
'''통산 1308경기 1134안타 209홈런 679타점 611득점 타율 0.273'''
2.1. 2004 시즌
동국대 졸업 후 2004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지명권을 인수한 SK 와이번스에 입단했다.
프로 첫해인 2004년에는 주로 대타로만 출전해 24경기 28타수 5안타 타율 0.176을 기록했다.
2.2. 상무 야구단 시절
2004 시즌 후 상무 피닉스에 입대했다. 상무 소속으로 2군 리그에서 5번 타자로 뛰며[3] 타격왕을 차지하는 등 본즈 놀이를 하며 포텐셜을 서서히 끌어올렸고 이때 외야 수비도 익혔다. 이때 네덜란드에서 열린 2005 야구월드컵에 출전하여 140m 대형홈런을 치는등의 활약으로 준우승을 하는데 기여하였다.
2.3. 2007 시즌
군 제대 후 다시 팀에 합류해 김성근 감독이 취임한 2007년에 박정권은 본격적으로 주전 경쟁에 합류하지만 당시 우익수자리에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으로 '국민우익수' 칭호를 받은 이진영과 인천의 프랜차이즈스타 박재홍,[4] 1루수 자리에는 거포 이호준, 지명타자 자리에는 캐넌히터 김재현 등이 버티고 있어 자리를 차지하는게 쉽지 않았다. 2007년은 대수비/대타 위주로 출전하며 100경기 208타수 46안타 4홈런 0.221을 기록, 데뷔 첫 풀시즌을 치른다.
2.4. 2008 시즌
08년에도 역시 우익수 자리는 노리기 힘들었지만 이호준의 무릎 부상과 재활로 인해 이진영과 함께 1루수자리를 번갈아가며 맡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할무렵 한화 이글스의 용병 덕 클락과 1루 수비중에 충돌하여 왼쪽 정강이뼈 골절로 시즌을 접게 되었다. 더욱이 서서히 주전으로 발돋움하려는 찰나에 나온 부상이라 더더욱 아쉬운 한 해였다.[5]
08시즌 최종 성적은 56경기 127타수 33안타 3홈런 0.260
2.5. 2009 시즌
드디어 2009년부터 주전 자리를 차지. 데뷔 후 처음으로 규정타석을 채운다. 이진영이 LG 트윈스로 이적하고 부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호준이 자리를 유지하지 못하며 주전 1루수로 131경기를 출전, 타율은 .276으로 다소 아쉬웠지만 홈런 25개로 팀내 최다 홈런과 76개의 타점으로 이호준의 부진 이후 대가 끊긴 SK 팀내 거포 이미지를 구축한 것이다.
특히나 9월 들어서 SK의 19연승 행진 중에 9월 한달동안 3할 5푼대의 타율과 8홈런 20타점을 쏘아 올리며(안타가 17개인데 홈런이 8개. 이정도면 안타 두 개쳤으면 그 중 하나는 홈런 수준.) 큰 활약을 펼쳤다.[6]
불이 붙은 방망이는 포스트시즌에서도 불을 뿜었다.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3-1로 끌려가던 중 임태훈을 상대로 추격하는 솔로홈런을 쳤으며 뒤이어진 2차전에서도 역시 임태훈의 직구를 다시 때려내 우측담장을 넘기는 홈런을 쳤다. 그리고 플레이오프 4차전 3대3 동점 상황. 2사 2,3루 찬스에서 '''또''' 임태훈을 상대로 좌측펜스를 때리는 결승 2루타를 쳐냈다. 여세를 몰아 5차전에서도 금민철을 상대로 또 홈런을 뽑고 두개의 안타를 묶어 3타점. 두산에게 14-3 대승을 거두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한다. 순도높은 활약을 펼친 박정권은 플레이오프 MVP를 차지.
한국시리즈까지 그 기세가 이어져 타율 3할9푼3리, 2홈런, 9타점, 3득점의 맹타에 7차전의 투런홈런으로 한국시리즈 MVP까지 가져가는 듯 했으나, 7차전의 역전패로 팀이 준우승에 머무르며 아쉽게 무산되었다.
2.6. 2010 시즌
2010 시즌에서는 데뷔 첫 3할(0.306), 18홈런-17도루에 실책도 7개에서 2개로 감소, 5툴 플레이어로서의 가능성까지 보여주었다. 전준우와 더불어 2010 시즌 20-20을 노리고 있었으나 후반부의 페이스 저하로 실패하였다.
2010년 7월 15일 인천 SK 행복드림구장 한화전 9회초 수비에서 '''왼손잡이 2루수'''로 들어가면서 본의 아니게 야갤을 뒤집어 놓았다.[7] 교체할 내야수가 없는 상황에서 1루 수비밖에 안되는 이호준이 대타로 들어오자 다음 수비에서 1루수에서 2루수로 보직변경된 것.
그런데 구원 등판한 이승호도 불안했는지 폭풍 3삼진으로 9회초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팬들은 박정권에게 공이 굴러가지 않아 경기 재미가 반감(?)되었다며 이승호에게 원망 아닌 원망을 하기도 했다.
김성근 감독은 경기가 끝난 후 박정권의 2루수 기용에 대해 '''박정권이 아무래도 1루수를 맡고 있어 낮고 빠른 내야 펑고를 잘 받기 때문에 2루수로 넣었다'''고 말했다. #
2010년 올스타전에 감독 추천선수로 선발되었음에도 경기를 앞두고 발목뼈에 금이 가는 전치 3주짜리 부상을 당해서 출전 무산.[8] 하지만 2주 만에 복귀하고 다시 SK의 타선을 이끌었다.
한 칼럼리스트는 '이승엽 이후 좌타자에게서 40홈런 이상이 나온다면 박정권 또는 삼성의 최형우가 그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 좌타자 40홈런 달성자는 이 선수.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1, 3차전은 선발 우익수 겸 3번타자, 2차전은 선발 우익수 겸 7번타자, 4차전은 선발 우익수 겸 7번타자로 출장하여 14타수 5안타 1홈런 1볼넷 1희생플라이 6타점 3득점, 타율 .357, 장타율 .714, 출루율 .375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으로 우승했다. 특히 1차전 스코어 4:6에서 4:8로 도망가는 쐐기 투런, 3차전 2:1에서 3:1을 만든 1타점 2루타, 4차전 1:0에서 3:0을 만드는 2차점 적시타 등 해결사의 면모를 과시,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2.7. 2011 시즌
좌완에게 너무 약한 모습을 보여 팬들에게 좌상바 소리까지 들었는데, 2011 시즌에도 어김없이 약한 모습을 보이면서 중요 순간에 삽을 많이 푸자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
올스타전 홈런레이스에서 7개를 쳐서 우승했다. 예선에서는 6개를 치면서 도합 13개. 참고로 올스타전 이전까지 기록한 시즌 홈런은 '''9개'''였다. 물론 정상호가 배팅볼을 잘 던져준 것도 있지만.
그리고 다음 경기에서 무안타를 기록. 팀은 11점 이상을 내면서 승리감독 인터뷰에서 김성근 감독은 "박정권이 말대로 나 없으니까 즐기면서 야구한다" 라고 말했다.
8월 3일 결국 2군으로 강등이 되었다.[9] 더군다나 이날 LG전에서 이호준이 역전 끝내기 홈런을 쳤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호준이 먹던 욕은 한동안 대신 먹어 줄 상황.
개그욕심 가득한 박정권. 글러브 뺏긴 사람은 김민성.
9월 25일 LG전에서는 어이없는 홈송구로 인해 복귀해서 106일만에 거둘 수 있었던 김광현의 선발승을 날려먹었다.
2.8. 준플레이오프
10월 8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2011년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3타수 무안타로 부진했으나 가을 사나이답게 2차전부터 제대로 부활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1패로 지던 10월 9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준플레이오프 2차전 3회말부터 시작하여 11타석 연속 출루 기록을 세우며, SK의 준플레이오프 승리에 기여했다.
박정권의 2011년 준플레이오프 성적은 12타수 6안타 2타점 5볼넷 2도루 타율 .500, 장타율 .667, 출루율 .647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2.9. 플레이오프
10월 15일 오후 2시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서, "롯데의 약점을 철저히 파고들겠다"라고 했다.# 그리고 롯데의 강민호가 "SK에 사인을 뺏기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라고 하자 롯데가 SK를 견제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10월 16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1년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0:3으로 지고 있던 4회초에 선두타자로 나와 장원준에게 솔로홈런을 뽑았다. 그리고 5회에도 안타를 쳤으나 7회에는 무사 1루에서 삼진, 9회에는 선두타자로 나와서 삼진을 당하고 말았다.
이날 박정권의 기록은 5타수 2안타 1홈런 1타점 1득점이었고 팀은 스코어 7:6으로 이겼다.
10월 23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5차전에선 송승준과 크리스 부첵에게서 연속으로 투런포를 뽑아내는 등 5타수 2안타 2홈런 4타점 3득점으로 SK의 스코어 8:4 승리를 견인하고 경기 MVP와 플레이오프 MVP로 선정되었다.
박정권의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의 성적은 21타수 8안타 3홈런 1볼넷 1도루 6타점 5득점 타율 .381, '''장타율 .810''', 출루율 .409.
2.10. 한국시리즈
10월 24일 오후 2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에서 "전주고등학교 후배 최형우에게 많이 배우고는 있다. 하지만 최형우는 2010년 한국시리즈의 악몽을 기억할 것이다."라는 발언을 하였다.
그러나 정작 한국시리즈에서의 박정권은 그동안 가을만 되면 날아다녔던 미스터 옥토버의 모습이 아니었다.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동안 삼성 라이온즈의 전력 분석원에게 분석당한 탓인지 17타수 3안타(타율 0.176)라는 최악의 부진으로 한국시리즈 패권을 삼성에게 넘겨주는 원인을 제공하고 말았다. 그나마 3안타 중 1안타는 2차전에서 뽑은 팀의 유일한 적시타였고,[10] 나머지 2안타는 4차전에서 기록한 것으로 마지막 5차전에서는 3타수 무안타로 철저히 침묵, 그나마 상대방의 고의사구로 인한 볼넷 한 개만 달랑 얻었다.
박정권의 2011년 한국시리즈 성적은 17타수 3안타 4볼넷 1도루 1타점 타율 .176, 장타율 .176, 출루율 .333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박정권의 2011년 포스트시즌 성적은 50타수 17안타 3홈런 10볼넷 4도루 9타점 5득점 타율 .340, 장타율 .560, 출루율 .450.[11]
시즌 종료 후 2012년 주장에 선임되었다.
2.11. 2012 시즌
주장으로써 미칠 듯한 활약이 아닌 엄청난 부진을 겪었다. 4월 타율은 무려 '''0.155'''로 뒤에서 2등, 0홈런 6타점에 OPS는 .403으로 '''뒤에서 1위'''.
5월이 다가도록 1할 탈출에 실패했고 수비력마저 1루를 호시탐탐 노리시는 4번타자님 수준으로 떨어져 SK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어찌됐든 1군에 있는 1루수 볼 수 있는 야수들 중에선 수비가 가장 나은 관계로 끈질기게 1루수 자리를 사수했다. 오죽하면 팬들이 바라는 것 중 하나가 그냥 1루 수비 포기하고 이호준 1루에 박고 박정권은 2군행이라는 점에서 팬들의 기대가 무너졌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박정권의 처참한 공격력은 이만수 감독이 '''임훈'''이나 '''박진만'''을 1루수에 집어넣는 모험이나 정상호의 1루 전향을 시도하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같이 극악의 부진을 보이고 있던 최형우도 결국 2군에 내려가면서 팬들로부터 그 성적으로도 개막이후 쭉 1군에 붙어있는 경이로운 생명력을 칭송받아 생존왕이라는 별명을 획득했다.
욕이란 욕은 다 먹으면서 2할초반의 타율을 보이다가, 6월 22일 KIA 전에서 멀티 홈런을 기록한다. 각각 투런과 솔로, 그리고 두 홈런 다 125미터짜리 장외홈런이었다. 참고로 이는 박정권의 789일만의 한게임 멀티홈런이었다.
SBS의 유령(드라마)에서는 범인이 그의 유니폼을 입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래도 점점 '''가을이 가까워 오면서''' 귀신같이 부활할 낌새를 보이기 시작했다. 7~8월에 3할 중반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타격 페이스가 급속하게 올라갈 분위기다.
2.12. 포스트시즌
2012년 10월 16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년 플레이오프 1차전, 스코어 1:1인 6회말 2사 3루에서 결승점이 되는 적시타를 쳐서 가을거지, 가을정권의 명성을 이어가는가 했다. 이날 박정권은 선발 우익수 겸 5번타자로 출장하여 4타수 1안타 1타점 1도루를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1:2로 승리했는데 결승타를 친 박정권은 아쉽게도 정근우에게 밀려 이날의 MVP가 되지 못했다.
박정권은 2012년 플레이오프에서 1, 5차전은 선발 우익수 겸 5번타자, 2, 3, 4차전은 선발 1루수 겸 5번타자로 출장하여 19타수 4안타 2볼넷 1도루 1타점 3득점, 타율 .211, 장타율 .263, 출루율 .286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작년과 마찬가지, 아니 '''그 이상의 엄청난 부진'''으로 일관해 '''타율 0.100, 1타점'''[12] 으로 그동안 떨쳤던 가을남자, 가을거지, 미스터 옥토버라는 명성에 엄청난 흠집을 내고 말았다.
박정권은 2012년 한국시리즈 1, 3, 5차전은 선발 1루수 겸 5번타자, 2, 4차전은 선발 우익수 겸 5번타자, 6차전은 선발 우익수 겸 7번타자로 출장하여 20타수 2안타 3볼넷 1타점 3득점, 타율 .100, 장타율 .200, 출루율 .217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박정권은 2012년 포스트시즌에서 39타수 6안타 5볼넷 1도루 2타점 6득점, 타율 .154, 장타율 .231, 출루율 .250를 기록했다.
2.13. 2013 시즌
2013 시즌에도 주장을 맡게 되었으나 이에 대한 부담감이 상당했고, 이만수 감독과 면담을 가진 뒤 주장 자리를 내놓게 된다. 그리고 그 후임은 정근우가 맡게 되었다.[13]
시범경기에서도 부진했고 개막 2연전에서 6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며 2군으로 내려갔다.
4월 11일 넥센전부터 다시 1군으로 복귀, 삼성과 기아와의 시리즈 동안 3할 가까운 타율을 기록하고 시즌 1호 홈런도 쳐냈지만 5월까지 최정을 받쳐줘야 하는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했다. 결국 전반적인 팀 타선 부진으로 이만수 감독과 SK 프런트는 투수 송은범, 신승현을 KIA의 김상현과 진해수로 바꿔오는 트레이드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렇게 '''두 달 동안 2홈런 7타점'''으로 빌빌대던 선수가 6월에 갑자기 대반전, 월간타율 3할대에 '''5홈런 24타점'''을 몰아쳐대면서 부활, 신인 선수들이 날뛰고 있는 SK에서 과연 옛모습을 찾아 살아남을지는 두고 볼 일.
그리고 7월에도 무시무시한 기세를 이어가며 최정이 고군분투하던 SK의 또다른 거포로 재림했다. 7월 종료 시점 성적은 .293의 타율에 11홈런 45타점.
8월에도 상승세를 타며 현재 3할을 앞두고 있다. 타율은 8월 14일 현재 .296을 마킹하고 있다.
시즌 최종성적은 110경기 363타수 106안타 18홈런(8위) 70타점 4도루 64볼넷 1사구 79삼진, 0.292/0.394(9위)/0.501(5위)로 시즌 초반 온갖 욕을 다 먹던 것에 비하면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안타깝게 9월 타율이 2할 5푼으로 부진에 빠지며 3할 달성에는 실패. 하지만 대부분의 지표에서 본인의 커리어 하이급의 성적을 찍으며 성공적인 한 해를 보냈다. 또한 타수에 비해 볼넷이 상당히 많아 타율과 출루율이 1할 넘게 차이나는데, 선구안이 상당히 좋아졌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즌 중반이 넘어가면서 최정에 대한 압박으로 최정이 부진에 빠졌던 것이나, 최정의 뒤를 받쳐줄 4번타자가 없어서 병살 잘치는 분까지 데려온 걸 생각하면 박정권의 부활이 팬들이나 팀에게는 반가울 수 밖에 없다.
2.14. 2014 시즌
새로운 주장 박진만과 함께 부주장으로 선임되었다. 최정-루크 스캇에 이어 5번타자로 주로 나선 시즌 초, 웬일로 초반부터 가을 모드를 발동하며 한때 타점 1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4월까지의 성적은 타율 0.286, 홈런 3개, 21타점. 그러나 5월 들어 팀의 수직하강과 함께 극심한 타격 슬럼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재원의 급부상과 함께 타순도 6,7번쯤으로 내려갔다.
5월 29일, 목동 넥센과의 경기에서 9회 투아웃 만루 상황 대타로 출장해 자신의 통산 100번째 홈런을 때려냈다. 상대는 강윤구.
7월 27일까지의 팀별 상대 성적인데, 넥센을 상대로 극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저게 시즌초보다는 떨어진 거라는 거. 시즌 초에는 넥센 상대 타율이 7할을 찍었다.
8월 24일 삼성전에서 2009년 이후 5년만에 다시 20홈런 고지에 올랐다. 이 날 기준 타율은 0.285 20홈런 80타점에 7도루. 참고로 80타점은 본인 최다 타점으로, 시즌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타점 커리어 하이를 갈아치웠다. 이 페이스라면 3할+20홈런이 가능해보이며, 커리어하이인 25홈런을 넘길 가능성도 있어 앞으로 활약이 중요하다.
9월 11일 현재 94타점으로 SK 와이번스에서 이호준 다음으로 100타점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9월 12일 21경기로 연속 경기 안타 기록을 마감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타석에서 고의사구를 연달아 얻는 바람에 2타석밖에 기회가 오지 않았다.
10월 5일 한화전에서 2홈런 5타점을 쓸어담으며 커리어 최다 공동1위인 25홈런, 팀으로써도 10년만에 나온 기록인 100타점을 달성하였다.
10월 6일, 100타점 달성 바로 다음 경기에서 홈런과 함께 2타점을 추가하여, 커리어 최다 홈런 기록을 경신했다.(26홈런)
10월 7일, 9회말 1-1 상황에서 끝내기 안타를 치며 또 1타점 추가.
그러나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뭔가 힘이 떨어진 느낌.
2014 시즌에 타율, 안타, 타점, 득점, 홈런, 장타율 등 여러 부분에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역대급 타고투저 시즌이기는 했지만 그런 점을 감안해도 굉장한 활약. 시즌 초반 부진을 겪으면서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8월달 부터 '''팀의 중심 타선에서 맹활약'''을 보여주었다.
2.15. 2015 시즌
새로운 용병인 앤드류 브라운을 영입하면서 4번에서 5번을 치게 되었다. 본인도 이번 시즌을 끝나고 FA 계약을 앞두고 있기때문에 좋은 활약이 필요하다.
개막 직후에는 봄인데도 불구하고 비교적 클린업트리오의 역할을 잘 수행 했으나 그 이후 4월 말 2군으로 내려가기 전까지 타율 .232 홈런 2개만을 기록하며 부진했다.
그 이후 5월 9일 다시 콜업 되었는데 콜업후 9경기의 성적이 타율 3할2푼4리 2홈런을 기록하며 어느정도 살아난 모습을 보였다.
5월 22일 까지의 기록은 타/출/장 .256/.371/.397로 좋다고 볼 수는 없으며 조동화의 장타율인 .392와 비슷한 성적을 내고 있는데[14] 최정이 모습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가려져 있지만 박정권의 부진도 팀에게는 악영향을 주고 있다.
결국 부진이 길어져 7월 5일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김태우 기자 트위터에 의하면 '''루키군 모범생'''이라고 한다.
7월 21일 1군에 올라왔고, 후반 대타로 나와 2루타를 보여줬다. 1타수 1안타.
8월 2일 1회 투런포를 치며 10호 홈런을 기록했다. 7년연속 두자릿수 홈런. 더불어 3게임 연속 홈런이기도 하다.
7월말부터 8월초까지 주로 '''2번 타자'''로 기용되었다. 일회성으로 그칠줄 알았더니 공교롭게 이 시기부터 타격감이 올라와 생각보다는 많은 경기에서 2번으로 나왔다. 팀타격이 전체적으로 살아난 뒤부터는 클린업으로 다시 돌아갔다.
8월 8일 kt전에서 12호 홈런을 때려냈다. 후반기 타율 4할을 넘기는 맹활약중.
8월 11일 롯데전에서는 1아웃에서 타자가 중견수 플라이를 치고 아웃되었는데 1루주자였던 박정권이 어처구니없게도 선행주자 박재상을 앞지르며 주자추월(누의 공과)로 아웃당하였다.
8월 21일 넥센전에서 만루포를 치며 팀의 5연패를 끊는데 크게 일조했다.
8월 26일 KIA전에서 1,0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이 날에는 4타수 2안타와 더불어 9회말 안타로 출루 후, 정상호의 끝내기 홈런으로 자신도 홈으로 들어와 팀의 승리를 함께했다.
9월 30일까지 세 경기 연속 홈런을 치며 홈런개수를 21개까지 늘렸다.
시즌을 0.281/0.353/0.477/0.830 21홈런 70타점으로 마감했다. 나이가 있다보니 작년에 비해 모든 스탯이 떨어졌으며, 가을거지라는 별명과 무색하게 시즌 전반을 삽질만 해댔다. 삽질만 해댄 것 치고는 스탯이 좋아보이는데, 박재상과 같이 팀 타선이 터질때 같이 터지거나, 스탯타를 많이 쳐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2.16. FA
대다수의 SK 팬은 나이도 있고 성적이 하락세이니 재계약하지 않거나 계약해봐야 유망주들 백업이나 봐주라고 2년 계약을 바라고 있는 상황. 내년이면 35세가 되는데 박정권이 소위 클라스가 있는 타자도 아니라서 기량이 쇠해보이는 박정권을 버리고 1루 용병을 데려올 것이 예상된다. SK의 1루자원으로는 군 입대중인 15시즌 2군 홈런왕 한동민, 신인 임석진과 김동엽이 있다. 더 이상 SK에 박정권의 자리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듯 했지만. 새로운 외국인 타자로 앤드류 브라운 대신 내야 유틸리티 헥터 고메즈를 영입했다. 고메즈는 일단 모든 내야 포지션이 소화가 가능하지만, 2루수나 유격수로 주로 출장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박정권을 아예 풀어버리는 시나리오의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최종적으로는 SK 6인의 내부 FA중 채병용, 박재상과 함께 팀에 잔류했다. 4년 총 30억(계약금 14억, 연봉 4억)으로 적정한 선에서 계약을 체결했다. 최근의 FA 몸값 폭등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혜자스러운 계약이라는 평도 있을 정도. 밑에서도 설명하겠지만 팬덤이 워낙 두터운데다가 이적 없이 11년동안 쭉 SK에만 머물렀던 등 나름 프랜차이즈 선수로 추앙받기도 해서, 대부분의 SK 팬들은 그의 잔류를 반기고 있는 중. 게다가 정우람이 팀의 82억 제시를 뿌리치고 한화 이글스와 84억이라는 금액에 계약하자 상대적으로 저렴한 금액에 잔류를 택한 박정권이 재평가되고 있다.
2.17. 2016 시즌
4월 7일 롯데전에서 시즌 첫 홈런을 신고했다.
4월 8일 LG전에서 끝내기 안타를 만들어냈다.[15]
4월 14일 KIA전에서 끝내기 안타를 또 쳐냈다.
타격감은 아직 끌어올리지 못했지만 개막 후 거의 매경기 호수비 한 개씩은 장식할 정도로 수비에서는 맹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헥터 고메즈의 가끔 나오는 악송구를 잘 건져내며 내야 수비 안정화에 일조하는 중.
그러나 그 뒤에는 붙박이 5번으로 나오며 떨공삼을 미친듯이 적립하며 까였다가 5월 5일 경기에서 각성하여 팀의 '''19:6''' 승리에 일조했다. 여담으로 이 날은 딸 박예서 양이 일일 아나운서로 경기를 보러 왔었는데, 딸의 응원에 본인도 기운을 얻은 것인지 5회 이재우를 상대로 솔로 홈런을 날리면서 자랑스러운 아빠의 모습 또한 보여주었다.
5월 19일 동점 홈런을 때렸다.그리고 9회 초 실점에 기여하는 기록되지 않은 실책을 하였다.
최근엔 삼진은 덜먹는데 타율은 덜 올라온듯.
5월달을 보면 정말 심각했다. 타율도 2할 초반까지 수직하강에 떨공삼 머신으로 전락. 결국 6월 8일 2군으로 내려갔다. 거기에 박정권이 2군으로 내려간 후 그의 자리를 물려받은 최승준이 각성하면서 1군에 돌아와도 입지가 예전만은 못할 것이다는 우려도 나오는 중. 6월 22일부로 1군에 복귀했지만 클린업 자리는 정의윤, 최승준에게 내주고 2번타자로 출장하고 있다.
6월 29일 kt전에서 5타수 4안타를 때려내며 사이클링 히트 문턱까지 갔지만 홈런을 치지 못해 결국 실패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7월 9일에는 8회 8:4까지 따라붙는 투런포를 날렸으나 팀은 패했다. 여담이지만 40여일 만의 홈런이라고 한다.
7월 12일 KIA와의 원정 경기에서 연장 10회 초 극적인 3점 홈런을 때리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홈런을 쳤던 배트는 동갑내기 절친인 유한준에게서 받은 것이라는 후일담이 있다.
7월 23일 넥센과의 홈경기서 6회 말 상대 선발 맥그리거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터뜨렸다. 이 홈런은 개인 통산 1000번째 안타이자 150번째 홈런. 하지만 팀이 2:10로 대패하며 그 빛이 바랬다.
8월 31일 KIA 타이거즈 원정 경기에 6번 타자로 선발 출장해 4타수 2안타를 쳐내며 8년 연속 100안타를 만들었다.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한 2009년부터 100안타 개근을 하고있다. 다만 인생 첫 FA 계약을 맺고 첫시즌인 2016시즌은 아직까지 가진 힘을 다 못쓰고 있다. 타율은 0.269, 13홈런 47타점.
9월 3일 NC 다이노스 원정 경기에서 시즌 14호 투런포를 쏘아올렸다. 지난 8월 24일 이후 8경기 만의 홈런이다. 하지만 9회 말 그의 평소 수비력으로는 이해할수 없는 수비 실책을 저지르고 말았다.
9월 4일 NC 다이노스 원정 경기에서 시즌 15호 솔로포를 쏘아올렸다. 이틀 연속 홈런포. 9월들어 타격감이 매우 좋다.
시즌 최종 성적은 18홈런 59타점 0.277 0.337 0.460 0.797로 '''고액연봉자이자 주전 1루수에 걸맞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다. 가을에도 팀을 멱살 잡고 이끄는 주역은 아니었으며, OPS가 0.8도 안되는 1루수라는 점에서 하락세가 명확해지는 모양새이다. 다음 시즌에는 최승준, 한동민, 김동엽 등과의 주전 경쟁이 더 험난해질 것으로 보이는데, 마지막으로 부활의 날개를 펼칠 수 있을지가 주목되고 있다.
2.18. 2017 시즌
2017시즌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힐만-염경엽 체제에서 추락한 비룡을 다시 부활시킬 수 있을 지 주목된다.
4월 9일 경기에서 포수 플라이, 내야 플라이, 좌익수 플라이, 우익수 플라이를 기록하고 마지막 타석에서 중견수 플라이를 당하며 사이클링 뜬공(...)을 당했다.
6월달부턴 타격이 반등을 보이고 있다. 6월 20일까지 월간 성적이 .333 .382 .667 1.049로 소리없이 활약중이다.
6월 18일 대구 삼성전에서 수비형 1루수라는 말이 무색하게 실책을 두개나 저질러 2안타를 치고도 서진용과 함께 이날의 역적이 되었다.
6월 20일엔 3점 홈런을 친 나주환에 이어 시즌 6호 백투백 홈런을 쳤다.
8월 12일 문학 kt전에서 8회 2사에 최승준의 대타로 투입되어 초구 만루홈런을 때려냈다!
이로써 '''역대 18번째 9년 연속 10홈런''' 기록을 세웠다.
이는 박정권의 통산 6번째 만루홈런으로 2015년 8월 20일 넥센전 이후로 '''722일'''만에 만루홈런을 때린 것이다.
그후 멀티히트 행진으로 타격감을 끌어올렸고, 8월 18일 문학 LG전에선 최동환을 상대로 '''3년만에 연타석 홈런을 때려냈다!''' 모두 투런이었고 특히 두 번째 홈런은 비거리가 '''130m'''나 나왔다. 마지막 타석에서도 안타로 타점을 추가하며 5타점 경기.
그치지 않고 다음날엔 KIA 배힘찬을 상대로 3점 홈런을 때려냈다. 그후 2-3루 상황에서 안타를 때려내며 이날도 4타점 경기를 펼쳤다.
8월 24일 대구 삼성전 정인욱을 상대로 쓰리런을 때려냈다! 그리고 25일 윤성환을 상대로 선제 솔로 홈런을 날렸다.
그러나 10월 5일 결정적인 와일드카드 1차전에서는 2타수 1볼넷 1득점 1삼진으로 크게 부진했고, 8회초 2사에서 대타 최승준과 교체되었다.
2.19. 2018 시즌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노쇠한 기량과 사라진 팀내 입지, 그럼에도 그는 가을을 기억하고 있었다.'''
제이미 로맥에게 1루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리며 개막 10경기동안 엔트리에 조차 올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한동민이 1루 수비가 가능하고 대타 요원으로는 최승준이 있기에 사실상 올라오기는 힘들어보였으나 6월 13일 외야수 정의윤, 정진기가 2군으로 내려가고 그 자리를 김강민과 함께 메꾸기 위해 1군으로 콜업되었다.
이후 7경기에 나와 14타수 3안타(1홈런) 4타점 2득점 타율 0.214을 기록했다.
그리고 6월 28일 김재현과 함께 엔트리에서 말소 되었다. 대신 등록된 선수는 윤정우와 정진기.
9월 4일 확장엔트리가 시행되면서 1군에 올라올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콜업되지 않았다. 대신 올라온 선수는 최승준이다. 가을이 왔는데 왜 안올리냐며 힐만감독을 원망하는 목소리가 많다.
그러나 확실히 2군에서도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전력 외로 분류되는 것이 맞다고 보여진다. 2년간의 부진을 씻어내고 올 시즌 다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김강민과 달리 재작년 시즌부터 노쇠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데다가 아예 올 시즌에는 거의 뛰지 못했기 때문에빠르면 올 시즌, 늦어도 명목상의 FA 재계약 해가 되는 다음 시즌이 끝나면 은퇴 기로에 놓일 것으로 생각된다.
10월 2일 노수광이 부상으로 말소되면서 드디어 1군에 올라오게 되었다. 10회 말 2점차로 뒤지는 1사 12루 대타로 나와 1루수 땅볼로 물러났다.
10월 26일 발표된 플레이오프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노수광 부상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고, 혹시나 하고 집어넣었던 건데...[16]
10월 27일 넥센과의 플레이오프 1차전 7회말 정의윤의 대타로 나와 첫 타석은 우익수 플라이로 물러났지만 9회말 김상수를 상대로 끝내기 2점 홈런을 때렸다. 이 홈런으로 '''플레이오프 통산 7호 홈런''', '''KBO 리그 플레이오프 통산 최다 홈런(7개)'''이라는 기록을 작성하게 되었다. [17] PO 1차전 MVP는 덤.'''잘 맞췄습니다! 중견수 쪽, 뒤로! 박정권이 시리즈 SK에게 첫 승을 안깁니다! 이게 가을사나이 박정권입니다!'''
-플레이오프 1차전 끝내기 투런포 KBS 이광용 아나운서 멘트
28일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안타를 기록하지는 못했으나 볼넷 2개를 얻어내며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볼넷으로 출루한 6회에 이재원의 투런 홈런으로 득점을 기록하며 결과는 3타석 1타수 무안타 2볼넷 1득점. 이후 나주환과 교체되었다. 여담으로 이 날 박정권만이 SK에서 볼넷으로 출루했다.
11월 4일 한국시리즈 1차전 6회초 2:3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조쉬 린드블럼을 상대로 재역전 투런포를 날렸다.[18] 이어서 7회에는 본인의 타석에서 장원준의 폭투로 SK가 추가득점을 올렸고, 고의사구로 나갔다. 9회에는 1사 1-3루에서 쐐기를 박는 희생플라이까지 만들어내며 3타수 1안타 1사사구 3타점을 기록, PO에 이어 한국시리즈에서도 1차전 MVP를 따냈다.
11월 10일 한국시리즈 5차전 6회말 지명타자 최항의 대타로 나왔다가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으나, 8회말에는 한 점 더 달아나는 1타점 적시타를 때려냈다.박정권이 컨디션이 좋을시 sk의 승률은 좋지만 터지지않는날에는 좋지않은편이다.
11월 12일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는 두번째 투수 이영하를 상대로 1-3카운트 5구 끝에 우익수 오른쪽 2루타로써 마무리를 지었고 8년만에 다시 우승반지를 끼게 되었다.
2.20. 2019 시즌
조동화와 이대수가 2018년을 끝으로 나란히 은퇴하면서 선수단 전체를 통틀어 현역 선수 중 최고령이자 최고참이 됐다.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1차 스프링캠프에 참가했으나 오키나와에서 열리는 2차 캠프 명단에서는 제외되었다.
최승준이 오키나와 캠프 중 햄스트링 부상으로 귀국 조치가 내려지자, 박정권이 1군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러나 본인 역시 시범경기 기간 중 허리부상으로 이탈, 시즌을 재활군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6월 8일 경기에 2군 경기에 첫 출전한 뒤 11타수 3안타 2타점을 기록하다가 6월 14일 1군에 콜업됐다.
콜업 당일 6번 타자 1루수로 선발 출전해 5회 1타점 적시타와 7회 우전 안타로 4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했고 수비에서도 호수비를 선보였다.#
6월 16일 5번 타자로 선발출전, 3타수 2안타 2볼넷 1타점 3득점으로 팀 동료 고종욱과 함께 상대 선발투수 이재학 공략의 선봉장이 되었다.
6월 27일 LG전에서 3타수 3삼진으로 부진했다. 변화구에 대처가 안되는 모습.
이후 별다른 활약이 없다가 7월 8일 말소됐다.
현재는 허리 쪽이 살짝 좋지 않아 재활 치료를 마친 뒤 경기에 출전할 예정이라고 한다. 심하지는 않아 당분간 치료와 출전을 병행할 수도 있다고.#
확대 엔트리 시행시 1군 등록 후보 1순위라고 한다. SK팬들은 뭐 가을이 왔다면 당연히 박정권을 찾으니...
9월 1일 확대 엔트리로 콜업됐다. 그리고 9월 3일 문학 NC전 6회말에 대타로 등장해 1타점 적시타를 때렸다.
그 이후 계속되는 부진으로[19] 타율이 1할대에 진입하며 WAR도 음수를 찍었다. 18시즌, 18플옵, 18코시, 19시즌 모두 WAR이 음수이다. 그러나......
9월 28일 삼성과의 원정 경기에서 9회초 정현 타석에 대타로 들어서서 극적인 동점 홈런을 날렸다. 허나 다음 이닝 2사 만루의 기회에선 삼진으로 물러났고, 팀은 끝내기 홈런을 맞으며 두산에 선두 자리를 빼앗겼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플레이오프에서 키움 히어로즈와 맞붙게 된 팀의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작년만큼의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된다.
10월 14일 플레이오프 1차전 3-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연장 11회초 2사 2루에서 대타로 나왔으나 삼진으로 물러났고 팀은 영봉패했다. 다음날 2차전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10월 17일 키움과의 플레이오프 3차전 9회초에 대타로 출전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현역 마지막 타석'''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10월 26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현재 퓨처스 2군 타격코치가 공석인데[20] 많은 이들이 박정권을 위해 자리를 비워둔게 아닌가 추측해왔고 그 추측대로 박정권이 퓨처스팀 타격코치로 부임하게 되었다.
[1] 다만 마일영은 어려운 쌍방울의 형편상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현대로 지명권이 넘어가게 된다. 마일영의 지명권 트레이드 이후 법이 바뀌며 신인 지명권을 현금 트레이드하는 게 금지되었다.[2] 2004 시즌부터 '''신'''승현으로 개명. 박정권보다 낮은 2차 '''11'''순위로 계약금도 없이 입단할 정도로 당시엔 기대치가 낮았었다.[3] 참고로 이때 4번을 친 선수는 김상현.[4] 원래 포지션은 중견수였지만 유망주 김강민이 중견수를 차지하자 2006년 후반부터 우익수로 포지션을 변경하였다.[5] 한편 클락은 훈훈하게도 박정권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과의 말을 전하고 자숙의 의미로 1경기를 자진 결장하기도 했다.[6] 그리고 재미있게도 이 활약은 김성근 감독이 09시즌 막판 20연승을 하면 팬티만입고 인천시내를 만세를 부르면서 뛰겠다니까 박정권은 '''남은 야구인생 전부를 걸고 열심히 하겠다'''고 발언한 후의 활약. 하지만 아쉽게도 19연승으로 시즌을 마감하면서, 없었던 일이 되었다.[7] 내야수는 자신의 시선을 기준으로 할 때 왼쪽으로 공을 던질 때가 많은데, 팔 가는 방향대로 자연스럽게 공을 던지면 되는 오른손잡이와는 달리 몸을 틀어서 던져야 하기 때문에 불편할 뿐더러, 달리는 주자에 송구를 방해받게 되는 경우도 다반사. 이는 1루수를 제외한 내야수 모두에게 해당되는 상황이다.[8] 덕분에 양준혁이 올스타전에 대신 출전해서 쓰리런 홈런을 터뜨렸다.[9] 사실 7월 한달간의 성적만 봐도 2군으로 내려가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성적이였다. 한달 동안 고작 '''3타점'''을 기록했다. 외야 자원이 부족하기에 어쩔 수 없이 1군에 데리고 있을 수밖에 없던 상황. 부상에서 회복된 박재상이 1군으로 올라오고 나서야 2군으로 내려갔다.[10] 팀의 나머지 득점은 최동수의 솔로홈런과 박재상의 2홈런(4점), 그리고 상대 폭투로 얻은 1점이 전부.[11] 2011년 포스트시즌에서 15경기 이상 뛴 SK 선수들 중 장타율, 출루율이 제일 높다. 역시 미스터 옥토버. [12] 그 1타점도 막장으로 얼룩진 3차전에서만 얻은 것이었다.[13] 정근우도 처음엔 고사를 하였으나 정권이를 도와달라는 이만수 감독의 말에 받아들였다.[14] 5월 22일 기준 박정권의 2루타 5개 홈런 4개, 조동화의 2루타 3개 홈런 2개.[15] 공식 기록상으로는 끝내기 안타가 아니라 상대팀의 끝내기 실책이다. 동점인 주자 1루 상황에서 박정권이 안타를 쳤는데 수비 실책 때문에 1루주자가 3루까지 가서 서 있던 상태에서 더 뛰어 홈으로 들어왔기 때문. 당시 홈까지 들어온 주자는 최정.[16] 힐만 감독도 박정권이 가을야구에서 강했던 경험을 믿어서 엔트리에 등록했다고 밝힌 바 있다.[17] 이러한 기대는 많이들 가졌지만, 이 일이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고 단언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정규 시즌에서조차 1군보다 2군에서 지낸 날이 더 많기 때문에, 오히려 가을에 강하다는 일견 비합리적, 비논리적으로 보이는 이유만으로 올린 것에 대해 불만을 품은 팬들도 있었다. 하지만, 박정권은 모든 잡음을 '''한 방에 종결시켰다.'''[18] 이 홈런으로 '''KBO 리그 포스트시즌 통산 홈런 3위'''에 등극했다.[19] 더블헤더 1차전인 19일 4타수 무안타 2삼진을 기록한 것이 그 예시. [20] 시즌 초부터 김석연 퓨처스 수석코치가 타격코치를 겸직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