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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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그녀는 좁다란 TV브라운관을 아이맥스 영화관으로 만드는, 행복한 착시를 선물하는 배우다. 그녀는 블록버스터의 여주인공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한 길 사람 속이 천 길 낭떠러지보다 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녀는 살풋 찡그리는 눈가의 잔주름만으로도 복잡한 속내를 표현하고, 그저 태연이 먼산바라기 하는 뒷모습만으로도 사랑을 잃은 슬픔을 표현한다.
그녀는 글래머도 바비 인형도 아니지만, 겁 많은 노루를 닮은 애잔한 얼굴로 천의 얼굴을 빚어낸다. 그녀는 신비주의 컨셉 없이도 신비롭고, 관객을 향해 다감하면서도 담담하다. 평범하지 않은 역할만 골라 맡지만, 테마파크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며 비명을 지르는 평범한 연애를 꿈꾼다. 그 어떤 선배 여배우에게도 그녀를 비유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이 그녀의 오롯한 아우라다.
화려하게 빛나는 세트와 의상 속에서도, 그녀만은 홀로 오려낸 듯, 차분한 무채색이다. 카랑카랑한 붓으로 흑과 백을 채색하기는 쉽다. 희노애락의 선명한 굴곡을 표현하는 것은 의지다. 그러나 흑과 백 사이에 있는 무수한 회색의 스펙트럼을 은밀히 포착하는 것은 재능이다. 세상에는 똑같은 회색이 하나도 없음을, 눈물에도 천개의 얼굴이 있음을, 그녀는 표정으로 연기한다.
순정만화의 주인공은 될 수 있지만, 명랑만화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순정만화 속에서 문득 반짝이는 명랑만화의 순간을 포착하는 건, 기교라기보다는 순수다. 그녀에겐 그 흔한 개인기 하나 없었지만, 영화 속 그녀는 우리를 말갛게 미소짓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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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Eun Joo - Only One, 이은주 추모 앨범 서문>
도시적인 차가움(이지적이고 팜므파탈적인)과 따뜻한 감성을 고루 갖춘 대체할 수 없는 분위기를 가진, 2000년대 초중반을 대표했던 여배우였다. 하이틴 스타로 데뷔하였으나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연기력과 특유의 성숙하면서 독특하고 매력적인 아우라를 발산하며 연기파 배우로 일찍 성장하여 스스로의 존재를 대중들에게 각인시켰던 배우였다.
그러나 한창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던 2005년 2월 22일, 우울증 증상이 심해지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때 그녀의 나이 고작 25살.
데뷔 후 8년 가량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생전에 탄탄한 커리어를 쌓아가며 영화, 드라마에서 입지를 굳혀나갔으며 필모그래피가 쌓일수록 한국 영화계를 이끌어 갈 차세대 여배우로 손꼽히곤 하였다.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최고의 여배우 중 한 명으로 성장하였을 것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다. 그렇기에 일찍 떠난 것이 더욱 안타까움으로 다가오며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리워하는 배우이다.
2. 생애
2.1. 1980~1999: 어린시절 및 데뷔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1남 1녀중 둘째로 태어났다. 이은주의 친가는 군산에서 '흥보당'이라고 하는 금은방을 운영했었다. 아버지는 프로 당구 선수 출신으로 '흥보당'의 일을 돕다 금은방이 문을 닫은 후에 '천일당구장'을 운영하였다. 어린 시절을 부유하게 자란 이은주는 무용, 피아노, 바이올린, 수영, 볼링 등을 배웠다. 특히 장래희망은 피아니스트로서 5살 때부터 연기자로 전향한 고등학생 때까지 총 12년을 배웠다.
데뷔의 계기는 1996년 7월 선경 스마트 학생복 모델 선발 대회에 은상으로 입상하면서부터였다. 당시 그녀는 군산영광여자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는데 어머니와 교복을 사러 갔을 때 매장 주인이 교복모델 대회에 나가볼 것을 권하였다. 이은주 자신은 별 관심이 없었으나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 몰래 원서에 사진을 붙여 보낸 것이 예선을 통과하였고 총 50명 중 7명을 뽑는 본선에 참가하였는데 정작 자신은 초대 가수들을 볼 생각으로 올라갔지 뽑힐 생각은 하지도 않았었다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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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학생복 선발 후 단체 사진. 중앙에 앉아있는 사람이 이은주, 왼쪽에 책을 들고 서있는 사람이 송혜교, 오른쪽에 넥타이를 매고 있는 학생이 안미정이다.
그녀가 <카이스트> 출연 이후 2000년 1월에 기고한 스포츠서울의 '스타고백'에 좀 더 자세한 상황이 묘사되어 있다.
어머니가 갑자기 원서 한장을 들고 오셨다. 들여다보니 모 학생복 모델 선발대회 원서였다. 깜짝 놀란 나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엄마,이게 뭐야?"하고 물어봤다.어머니는 "은주야,엄마 하자는대로 일단 따라 오렴"이라고 말씀하신 뒤 내 귀에 대고 "거기에 유명한 연예인들도 많이 온다니까 마음 편하게 먹고 연예인이나 보러가자"며 은근하게 속삭이셨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것이 다 어머니의 치밀한 작전이었던 것 같다. 구미가 당겼다. "그래,연예인이나 실컷 구경하고 오는거야." 나는 보무도 당당하게 행사장인 서울 리틀엔젤스회관으로 향했다. 난생 처음 드레스 비슷한 것도 입어봤다. 일단 기분은 좋았다. 하지만 웬걸! 세상에서 예쁘고 깜찍한 애들은 그곳에 다 모여 있었다. 적어도 군산에서는 '한 미모' 하던 나였는데... 다들 발랄하고 거침없는 태도가 오랫동안 이 대회를 위해 갈고 닦은듯한 모습이었다. 그 중에는 최근 <순풍산부인과>로 스타덤에 오른 귀염둥이 송혜교와 '자유'를 부른 여성 3인조 힙합그룹 O-24(오투포)의 안미정도 있었다. 특히 안미정의 경우,다른 친구들과 달리 너무 조용하고 수줍음을 많이 타 내가 말을 걸어 긴장을 풀어줄 정도였는데 지난해 가수로 변신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역시 진정한 "끼"는 무대에서 보여주는 것이라더니 안미정이 바로 그 경우다. 대회가 끝난 뒤 대기실에서 발표를 기다리던 나는 다른 애들과 달리 긴장도 하지 않았다. 왜냐구? 연예인들도 실컷 구경하고 화려한 옷도 입어봤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MC인 김승현 아저씨가 "은상에 이은주!"라며 큰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챙기던 짐을 땅바닥에 모두 떨어뜨렸다. 허겁지겁 무대로 나가 트로피와 상금을 받았다.
<스포츠서울, 스타고백, 이은주 편>
이은주가 처음으로 등장한 1996년 말 방영된 당시 스마트 교복 CF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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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교복 모델로 활동할 당시 이은주
이은주의 첫 연기 데뷔는 바로 예능 코미디 프로인 <코미디 전망대>였다. 1997년 1월부터 신설되었던 '요즘 애들 이렇게 살아요' 코너에 고등학생 신분으로 처음 출연했었는데[4] 해당 코너는 코미디언 오세헌과 고정으로 출연하며 실명을 그대로 썼었다. 그러던 중 1997년 KBS 2TV의 드라마 <스타트>를 통해 정극 연기에 처음으로 들어섰다. 드라마 첫 회부터 나오진 않고, 내용 중 1학년이 끝나고 2학년으로 올라갈 때 출연진들이 대거 교체되는데 이 때 2학년 반장으로 뽑히는 '정남영' 역으로 처음 드라마에 출연했다. [5]
<스타트>나 <코미디 전망대>에서의 초창기 데뷔 때만 하더라도 <카이스트> 이후 성숙하고 차가운 이미지로 각인된 것과 달리 굉장히 활발하고 다소 철없는 여고생 역으로 나왔었다. 특히 <코미디 전망대>의 '요즘 애들 이렇게 살아요'에선 스마트 광고 때 춘 춤과 노래를 스스로 코너에서 여러번 패러디하기도 했었다. 이후 <스타트>에서 남자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배우 성낙만(당시 예명 성진)과 함께 <가족오락관>에도 한 번 나왔었고[6] <좋은 친구들>, <퍼즐특급열차>에도 출연했었다.
1998년 8월 SBS 납량특집드라마 <어느날 갑자기>에서 귀신과 함께 스티커 사진기에 찍힌 후 자살하는 여고생 박성주 역으로 짧게 출연하였고 8월 말부터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백야 3.98> 1화에서 아나스타샤 (심은하)의 어린 시절 역으로 출연하였다.
그러던 중 1998년 가을 박종원 감독으로부터 <송어>의 캐스팅 제의가 들어와 처음으로 영화에 입문하게 되었다. 영화 <송어>의 출연은 그녀가 연기자로서 진로를 바꾸게 되는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사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은주는 음대에 진학하여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목표였고 처음엔 촬영이 끝나면 피아노 학원으로 가서 피아노 연습을 했었다.
당시 캐스팅 일화에 따르면, 크랭크인 6개월 전 조감독이 이은주를 만나 극중 창현과 비오는 산길에서 벌이는 정사 장면 부분의 시나리오를 보여줬었는데 너무 적나라한 내용과 [7] 고3이라 수험생활과 연기를 병행하기 힘들어 관둘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책꽃이에 그냥 꽂아뒀었다고 한다. 그런데 6개월 뒤 전화가 와 박종원 감독이 세화 역으로 이은주를 마음에 든다고 해 이에 촬영에 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8] 이후 이은주는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로 진학했다.
영화 촬영은 1998년 겨울 내내 진행되었고 해를 넘겼다. 이 와중에 그녀는 SBS <카이스트>에도 캐스팅이 되었다. 영화와 드라마를 동시에 촬영하면서 강원도와 대전을 계속 왔다갔다 해야 했기 때문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를 정도로 고생이 매우 심했다고 한다.
이은주는 이 영화에서 시골 여행에 따라간 '정화'(강수연)의 여동생 역인 '세화'를 연기하였다. 그녀는 '정화'의 옛 연인이었던 '창현'(황인성)의 꼬임에 빠져 불장난을 하게 되는 순진한 역할을 맡았다. 첫 영화 데뷔작인데다 10대임을 감안하면 다소 선정적이고 무거운 역이었음에도 설경구, 강수연과 같은 기라성 같은 배우들 앞에서도 자신이 맡은 '세화'의 이미지를 잘 소화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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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의 첫 영화 데뷔작 <송어>. 극 중 비중이 높지는 않았지만 메인 포스터에 등장했다.
이은주가 본격적으로 대중들의 인기를 얻게 된 건 1999년 SBS에서 방영된 드라마 <카이스트>에 출연하면서부터이다. 드라마 <모래시계>의 작가로 이름을 알린 송지나의 후속작이었던 <카이스트>는 그간의 흔한 청춘물들과 달리 공대생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라는 것에 많은 주목은 물론 우려를 낳기도 하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이 33.6%에 달할 정도로 흥행에 성공하게 된다.
여기서 이은주는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며 장학금을 타기 위해 겉으로는 자기 방어적으로 가시 돋힌 말을 타인에게 내뱉으며 현실적으로 돈을 쫓지만 속으로는 팀원들을 생각하는 '구지원' 역을 잘 표현해 냄으로써 대중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본인은 처음에는 자신과는 너무나도 다른 성격의 구지원 역할이 너무 마음에 안 들었다고 각종 인터뷰에서 밝혔다. 드라마 상에서 구지원은 냉소적인 행동과 성격 때문에 '''얼음공주'''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이은주가 영화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후에도 한동안 그녀의 이미지로 계속 따라다니게 되었다. 이은주는 <카이스트> 출연진 중 가장 나이가 어렸으나 극중 4학년을 연기했는데 이 때부터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성숙한 역들을 주로 맡게 됨은 물론 조용하고 차분한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각인된다.
방영 당시 큰 인기를 모으며 화제가 되었던 <카이스트>.
기존 청춘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차갑고 현실적인 '구지원'은 드라마 방영 당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킴은 물론 시청자들의 압도적인 호감을 받으며 최고의 인기 캐릭터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특히나 채림이 카이스트 제작진과의 불화로 조기 하차한 이후 강성연이 투입되기 전까지 메인 여주인공 포지션을 독점했다. 이 때의 인기로 이민우, 김정현과 함께 김혜수의 플러스유에 나와 노래 및 춤솜씨를 선보이기도 했다. 또한 드라마의 인기가 높아지자 출연 멤버들과 함께 1999년 인기가요 여름 특집(1999년 8월 15일)에서 주제곡 '마음으로 그리는 세상'과 2000년 100회 특집(2000년 2월 27일) 무대에 나와 '내 마음의 약속'을 불렀는데 직접 솔로 파트를 부르기도 했었다.[9]
한 편 그녀가 연기한 '구지원'은 드라마 상에서 '김정태' 역의 김정현과 극중 엮이며 후반부에 사귀게 되는데 실제로 둘은 1년 가량 교제를 했었다. 김정현의 요청으로 이은주는 한글과컴퓨터에서 제작한 인터넷 영화 <예카 YECA>에 동반 출연하기도 하였다. 둘은 1년 가량 연애를 지속하다 2001년 말 헤어졌다.
2.2. 2000~2003: 충무로의 기대받는 배우로
한편, <송어>의 출연은 그녀가 본격적으로 영화에 발을 내딛게 되는 계기가 되었는데 영화 홍보 차 KBS 파워 인터뷰라는 프로에 강수연과 함께 출연했을 때 이를 본 홍상수 감독이 자신이 구상하고 있던 새 영화의 주인공으로 찍고 연출부를 통해 섭외 전화를 하게 된다. 그 영화가 바로 <오! 수정>이다. 처음에는 스케줄 때문에 거절하였는데 이후 홍상수가 직접 여러 번 전화를 걸어 영화 출연을 성사시켰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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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로서의 길을 본격적으로 열어준 <오! 수정>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데뷔, <강원도의 힘>으로 작가주의 감독으로서 인지를 넓혀가던 홍상수의 세번째 영화 작품이었던 <오! 수정>은 제작 당시 한국에서 30년 만에 제작된 흑백 영화라는 점과 그간 감독의 작품과는 달리 정보석, 문성근이라는 유명 배우와 더불어 21살 짜리 신인 여배우의 캐스팅에 주목을 받았다.
이 영화에서 이은주는 실제 나이보다 훨씬 많은 20대 후반의 케이블 TV 구성작가 ‘수정' 역으로 ‘영수’(문성근)와 ‘재훈’(정보석) 사이에서 일견 순수하면서도 여우같이 밀당하는 모습을 잘 연기했다. 영화 내용상 연상의 남자들 사이에서 노출은 물론 다소 적나라한 베드씬까지 부담스러운 장면도 많았지만 <오! 수정>을 통해 이은주는 영화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본격적으로 쌓아가기 시작하며 주목받는다. 본인 스스로도 <오! 수정>을 통해 영화의 본격적인 맛을 알게 되었고 배우로서의 욕심이 생기게 해준 고마운 작품이라고 말했으며 단순히 어린 신인 연기자에서 진지하게 영화에 임하는 연기파 배우로 일찍 성장하게 된다.
영화는 개봉 이후 부산영화평론가 협회 최우수상, 도쿄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은 물론 칸 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초청작과 제 1회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되는 등 각종 국제 영화제에서의 호평과 상을 거머쥐었지만 무엇보다 갓 스물살을 넘긴 이은주에게 주목하게 된다. 이 때 그녀는 처음으로 홍상수와 함께 칸을 방문하여 무대에서 영화 소개를 하였고 국제적으로 유명한 배우들을 보며 스스로 영화 배우로서의 다짐을 굳히게 된다.
이 영화를 통해 그녀는 2001년 제 38회 대종상에서 “신인배우상”을 거머지게 된다. 그 때 그녀의 나이 고작 22살. <오! 수정>에서의 성공적인 주연 연기를 통해 이은주는 수상의 영광은 물론 데뷔 후 짧은 기간에 차기 영화들에서 유명 남배우들과 함께 주연으로 발탁되며 바쁜 커리어를 쌓아가게 된다.
한 편 2000년 초, KBS의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란 미니시리즈에서 극 중 ‘이동진'(이민우)과 엮이다 집안 사정상 조폭 보스인 ‘황병우'(강석우)의 내연녀가 되는 역할로 출연하였으나 당시 드라마의 경쟁 상대가 레전드로 불리우는 “이 것”이었기에 드라마는 처참하게 망했고 극 중 이은주의 역할도 회가 거듭될수록 출연이 무의미할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영화에선 주연급의 위치를 빨리 확보하게 된 그녀는 그 해 겨울 김대승 감독의 데뷔작인 <번지점프를 하다>의 '인태희' 역으로 캐스팅, 아련하고 심금을 울리는 옛 첫사랑의 모습을 잘 연기하였다. 전체 영화 중 그녀가 출연하는 씬은 3분의 1 정도에 불과했으나 성숙하면서도 애절한 첫 사랑의 모습을 연기한 이은주의 모습은 영화의 동성애 논란과는 별도로 그녀를 충무로의 기대주로 떠오르게 하였다. 특히나 영화 속 노을지는 석양에서 이병헌과의 왈츠 씬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본인 스스로도 출연한 영화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며 아련한 배역이라고 밝힌 바 있다.[11] 작품 개봉 이후 홍보 역시 주로 이병헌과 이은주가 담당하였고 영화는 서울 관객 50만 관객을 넘기며 흥행하였다. 이렇듯 단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이은주는 한국 영화를 이끌어 갈 차세대 여배우로 주목받게 된다.
<번지점프를 하다>의 왈츠씬
<번지점프를 하다> 이후 그녀는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다. 바로 SBSi에서 제작비 전액을 PPL로 충당하여 인터넷으로 공개 상영된 영화 <아미지몽>에서 극 중‘안지훈’ (조승우)을 사랑하게 된 팬던트 목걸이 정령인 ‘아미’ 역으로 출연하게 된 것. SBS 드라마 <카이스트>를 연출했던 김경용 PD가 감독한 인터넷 영화는 당시 카이스트 출연진 (김정현, 강성연, 정성화) 등이 다시 뭉친 작품이었다.
2002년 이은주는 차태현, 손예진과 함께 영화 <연애소설>에 출연하게 되었다. 이번엔 그간의 다소 차갑고 진지한 역이 아닌 발랄한 ‘김경희’ 역을 맡게 되었는데 그녀는 이 때 처음으로 자신의 성격과 똑같은 역할을 맡게 되었다고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전부터 그녀는 <카이스트> 이후 주로 차갑거나 조용하고 성숙한 역할을 맡아서 냉정하게 비춰지는 자신의 이미지를 바꾸고 싶다고 각종 매체에서 말했었고 <연애소설>을 통해 그 변신을 성공적으로 이루었다. 또한 이 작품을 통해 그간 연상의 배우들과의 작업을 벗어나 처음으로 자기 나이와 비슷한 또래와 함께 비교적 편안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고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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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우정 사이의 세 주인공 속에서 이은주는 평소의 자신 같은 털털하고 발랄한, 하지만 후반부에 가서는 다시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며 가슴 아픈 사랑을 잘 표현하였다. 영화 역시 서울 관객 59만명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하였고 이은주는 이 때 처음으로 제 23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게 되었다.
<송어> 이후 <오! 수정>, <번지점프를 하다>, <연애소설>에 이르기까지 이은주는 때로는 차갑고 조용한, 한 편으로는 따스하고 발랄한 다양한 이미지를 구축해 갔다.
하지만 이후 그녀가 주연으로 나온 출연한 영화들은 흥행 실패와 더불어 작품성에 있어서 혹평을 받게 된다. <연애소설> 이후 개봉된 공포 영화 <하얀방>[12] 은 엉성한 짜임새로 인해 평단의 혹평은 물론 흥행에서도 좋지 못하였다. 다음 작품이었던 안재욱과 함께 출연한 <하늘정원> 역시 90년대 시한부 멜로드라마를 보는 듯한 신파성 내용에 평단으로부터의 혹평을 면치 못하며 흥행에서 실패했다.
<하늘정원> 이후 그녀는 새로운 영화에 캐스팅되었다. 바로 <소금인형>이란 작품이다. 신인 감독이었던 ‘이순안’이 각본 및 연출을 담당했던 이 영화는 한석규의 형인 한선규가 설립한 ‘힘픽처스’에서 제작하고 <이중간첩> 이후의 공백을 깨고 한석규가 나오는 영화로서 크랭크인부터 관심을 끌었다.
이은주는 이 영화에서 사고로 아들을 잃고 극 중 ‘선우’의 아내 역인 ‘지호’ 역을 맡았다. 영화는 극 중 지호가 갑작스레 괴한에게 납치되어 구출되는 과정을 그리는 스릴러 영화가 '''될…… 뻔하였으나''' 감독과 스태프의 갈등으로 인해 촬영 지연이 빈번하게 발생되었고 해를 넘겨 2004년이 되어도 내-외부 적으로 심각한 갈등으로 인해 고작 20프로 정도 밖에 진행이 되지 못했었다.
그녀가 팬카페에 남긴 글이나 당시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를 보면 <소금인형>을 촬영 중에 있다며 명백히 언급을 했다. 그러나 영화 관계자들은 한석규와 이은주의 계약 만료 기간인 2004년 3월까지 끝내 갈등을 풀지를 못했고 투자사였던 CJ가 직접 개입해 제작을 중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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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알려져있는 거의 유일한 <소금인형>의 스틸샷.
이전에도 제작 중단이 되었던 영화들이 있었으나 <소금인형>은 영화계의 큰 손인 CJ가 직접적으로 개입해 제작을 중단한 영화였기에 당시 세간의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배우들의 계약 만료는 2004년 3월이었고 그녀는 <소금인형>의 촬영이 재개되면 다시 합류하기로 구두 약속을 하였다. 그러나....영화는 결국 제작 중단되었다. 영화가 엎어진 자세한 이유에 대해서는 당시 필름2.0에서 취재한 기사를 참고. [13] 덕분에 스릴러라는 색다른 장르에서 이은주의 연기는 영영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영화가 제 때 제작이 되었더라면 2004년 6월 개봉 예정이었다.
그 사이 그녀는 영화 <안녕! UFO>에서 맹인 역의 ‘경우’로 새로운 연기 변신을 시도하였다. 이은주는 일부러 집에서도 눈을 감고 걷고 맹인들을 실제로 직접 만나 맹인 연기를 체득, 영화에서도 맹인의 모습을 완벽하게 연기하였다. 하지만 이 영화 역시 이은주의 연기력과는 별개로 완성도 자체에 큰 점수를 받지 못하며, 특히 그 당시 개봉한 블록버스터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흥행 속에 묻혀 초라하게 막을 내리고야 말았다.
그나마 다행히도 <태극기 휘날리며>는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 중 천만 관객을 돌파하였다. 그녀는 극중 비중이 크지 않았지만 극 중 '진태'(장동건)와 결혼을 앞두고 가족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보도연맹 명단에 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는 '영신'을 연기함으로써 많은 관객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낸 태극기 휘날리며에서의 '영신'의 죽음.
2.3. 2004~2005: 너무나도 짧았던 전성기
그런데 <소금인형>의 제작 중단은 그녀의 커리어에 변화를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다. 영화 제작 중단의 공백이 커지자 TV 드라마에 캐스팅된 것. 그 드라마가 바로 <불새>였다. 원래 드라마 속의 여주 ‘이지은’ 역은 김희선에게 먼저 제안이 왔으나 영화 촬영 문제와 옛 연인 사이였던 에릭이 상대 역으로 캐스팅되었기에 무산되었다. 처음엔 이은주도 <소금인형> 촬영 일정 때문에 출연을 고사하였으나 영화의 제작이 거의 계약 만료시까지 풀릴 기미가 안 보이자 결국 안방 극장으로 복귀를 선택하게 된 것.
또한 촬영 중단이 장기화되면서 주연이었던 그녀와 한석규는 그 사이 문제작 <주홍글씨#s-2>에 캐스팅이 되었다. 이은주가 먼저 캐스팅되었고 이후 한석규가 합류함으로써 <소금인형>에서 중단되었던 둘의 호흡을 차후 맞추게 된다. 그러나 안 그래도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졌던 <소금인형> 제작은 주연 배우 둘, 특히 한석규가 영화가 채 마무리되기 전에 다른 영화에 캐스팅이 되어버림으로써 (이순안 감독의 주장에 의하면) 결국 중단이 확실시 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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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에게 전성기를 가져다 준 작품 불새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이후 4년만의 안방 극장 복귀작에 주연으로 출연한 이은주는 그간 스크린에서의 부진을 씻어내고 큰 인기를 누리게 된다. 드라마 <다모>로 큰 인기를 얻은 이서진, 신화 출신의 에릭과 함께 주연을 맡은 이은주는 드라마 초반부에는 철없는 부잣집 딸로서 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가난한 ‘장세훈’(이서진)과 결혼, 임신까지 하였으나 갈등을 겪고 사고를 당해 유산, 이혼 후 아버지 사업이 망해 ‘리빙헬퍼’로서 살아가는 ‘이지은’을 연기했다.
<불새>는 최고 시청률 31.7%에 '불새리안’이라는 수많은 불새 폐인들까지 양산하며 2004년 상반기 최고의 인기 드라마로 군림했다. 드라마는 부의 집착, 다소 막장스런 내용, 그리고 7화에서 계란을 던지는 씬 등으로 인해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은주는 초반부의 철없는 오렌지족과 10년 후의 성숙한 여인이 과연 동일인물이 맞나 싶을만큼 상극의 상황속에서 다른 행동과 성격을 잘 연기함은 물론 각 회마다 섬세한 감정표현과 눈물씬을 보여줌으로써 그야말로 그간의 경력을 통틀어 물오른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이은주는 이 때를 깃점으로 팬덤이 확 늘어나게 되며 ‘라이징 스타’에서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불새>는 2004년 6월 29일 종방시까지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였고 이은주의 인기는 대만을 비롯한 중화권 국가들로도 퍼져 나갔다.
2004년 상반기는 그녀에게 있어서 매우 바쁜 시기였다. 불새가 종방을 향해 달려가던 순간 그녀는 영화 <주홍글씨>의 촬영을 시작하였다. 영화 속 그녀는 극 중 재즈 가수인 ‘최가희’ 역으로 한석규가 연기한 ‘이기훈’의 불륜녀 역할을 연기하였는데 그간의 멜로 드라마 이미지가 아닌 파격적이고 극단적인 모습의 연기를 보여줄 것이라는 소식에 크랭크인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주홍글씨>는 2004년 10월 15일 제 9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어 상영되면서 세상에 공개되었다. 영화는 막상 개봉 전의 기대와는 달리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며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이은주의 연기력은 관객 및 평론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영화 속 그녀는 직접 더 코어즈의 ‘Only When I Sleep’을 불렀고 노출 연기와 보는 사람이 버거울 정도의 극단적인 감정 표현을 감행하는 등 작품에 모든 걸 쏟아 부었다.
그녀가 영화에서 직접 부른 Only When I Sleep
문제는 이때부터 그녀의 우울증 증상이 영화 촬영 이후 후폭풍과 겹쳐 감당 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 되었다는 점이다.
이미 그녀는 이전부터 수면 부족을 비롯한 생활 패턴의 붕괴를 겪으며 우울증 증세를 겪고 있었다. 사실 우울증은 2004년 1월 <안녕UFO> 홍보차 KBS 비타민에 출연하였을 때, 의사로부터 경미한 증상으로 진단 받았었고 수면 나이는 무려 59세로 측정되었었다. 해당 방송 출연시 그녀는 정말로 솔직하게 응답했다면서 "지금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가?"에 대해서도 O를 쳤다고 말했다.
영화 내용상 '최가희’는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있는 캐릭터였는데 이은주는 주인공을 연기한 후 심각한 후유증을 겪게 된다. <주홍글씨> 개봉 이후 관련 공개적인 매체 인터뷰와 지인들과의 사적인 대화에서 그녀가 공통적으로 언급했던 부분이 바로 트렁크씬의 촬영이 얼마나 힘들었는지,[스포일러] 그리고 자신이 연기한 ‘가희’라는 캐릭터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었다. 스스로도 영화가 너무 힘들어 딱 한 번 보았다고 말할 정도로 그녀는 거의 모든 매체와의 인터뷰마다 가희라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난 후의 후유증과 괴로움을 성토했다. 실제로 당시 인터뷰 영상들을 보면 얼굴이 수척해지고 웃음기가 사라진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또한 트렁크씬뿐만 아니라 베드씬도 굉장히 그녀에게 힘들었는데 33차례나 촬영을 감행, 상대 배우였던 한석규가 기절하고 그녀는 영화를 촬영하면서 4kg이나 빠졌다고 하였다.[14]
영화 촬영 현장, 특히 베드신 촬영이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해선 그녀가 변혁 감독과 함께한 인터뷰에도 나와 있다. 인터뷰를 읽다보면 영화 홍보가 아닌 둘 사이의 신경전이 다소 오가는 걸 볼 수 있다.
그녀가 얼마나 영화로 인한 후유증으로 힘들어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중 하나로 연예부 기자였던 김가희가 쓴 책에 이런 일화가 적혀 있다.
그러나 그녀의 지인들이나 대부분의 매체들은 그저 배우가 배역에 몰입한 정도가 조금 강한 일시적인 현상으로만 치부했었다. 오히려 대외적으로 이은주는 <불새> 이후의 인기를 실감하듯 차기 드라마 출연에 대해 구두 합의를 하고 각종 CF, 화보 촬영을 진행함은 물론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직접 참석하였다. 이은주는 영화제 기간 동안 집중 조명을 받으며 각종 연예 프로 및 다양한 미디어와 인터뷰를 했다. SBS 좋은 아침에서는 따로 25분 가량 시간을 할애해서 <불새> 이후의 바쁜 행보와 부산국제영화제 방문 기간 동안의 그녀를 밀착 취재 및 인터뷰 하였다.[15]“들어오기 싫었어요. 기자님이 있어…” 순간 깜짝 놀랐어요. 그때, 느닷없이 이게 무슨 말인지 싶어. 난 영화 <주홍글씨> 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때였고, ‘어떻게 저 나이에 저런 연기를 할 수 있지…이은주, 해냈구나’라는 경외감까지 생겨나 반갑게 회사에 온 그댈 맞았죠. 그 말을 듣고 당혹스러워 한 날 보며 당신은 '''“이름이 같잖아요. 또 생각나서요”'''라며 흐릿한 미소를 띠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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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토크 김가희 기자의 연예기행, p170>
또한 높아지는 중화권에서의 인기에 부합해 양조위와의 보그 화보 촬영까지 진행했다.
11월에는 제 25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 참석, 직접 영화 <주홍글씨>에서 불렀던 'Only When I Sleep'을 라이브로 불렀다. 이 영화제에서 그녀는 '여우주연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수상하질 못했다.[16]
2004년 제 25회 청룡영화상에서 그녀가 라이브로 부른 'Only When I Sleep.'
12월에는 무려 제1회 베이징 한국 영화제에 초청받는 등 바쁜 행보를 이어 나갔다. 드라마와 영화에서의 열연을 통해 한국 영화를 이끌어 갈 차세대 여배우로 인정받고 정상급의 자리를 향해 가는 그녀의 커리어는 탄탄대로처럼 보였다. 심지어 사망 며칠 전에도 화장품CF까지 계약하는 등 누구도 그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리라 믿지 않았다.
2005년 2월 18일, 단국대 졸업식에서 학사모를 쓰고 기념 촬영을 한 후 얼굴이 잘 안 보일 정도로 벙거지를 푹 눌러쓰고 도망가듯이 빠져나가는 와중에 연예가중계와 짤막하게 인터뷰를 했던 것이 그녀가 대중에게 비춰진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3. 사망
[image]
2005년 2월 22일, 분당 자택 본인의 방 드레스룸에서 목을 매 숨진 채 오빠에 의해 발견되었다. 경찰은 단순한 우울증으로 인한 충동적 단순 자살로 수사를 마무리 지었으나, 죽기 며칠 전까지 대외 활동을 하며 자신이 재학 하던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졸업식에도 참여해서 밝은 미소를 보여준 사람이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는 것을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아 각종 루머가 양산되기도 하였다. 특히나 정상급 배우로서 진입을 앞두고 기대를 한창 받을 때 나온 갑작스런 소식이었기에 연예계는 물론 대중과 미디어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녀는 꽤 오래전부터 우울증 증상을 앓았고 관련 전조 증상들이 그녀의 사망 후 뒤늦게 재조명 받았다. 앞서 예능 프로그램 비타민에서는 우울증 위험이 높다고 판정되었으며 평소에도 수면 부족이 심했었던 것이 드러났다. 같은 교회를 다니던 기자에게 "지난 1년 간 너무 고통스러워 죽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고 지나가듯 털어놓기도 하였다.
측근의 말에 의하면 <불새>로 인기를 얻을 때에도 심리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였었다고 한다. 이전부터 심한 불면증과 식욕부진으로 인한 체중 감소, 외로움 등 전형적인 우울증 증세를 보였었고 이러한 증상은 영화 <주홍글씨#s-2> 이후 걷잡을 수 없이 더 심해졌다.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더불어 그녀의 개인적인 고민으로 스트레스가 많았던 듯하며 <주홍글씨#s-2> 출연 이후 후유증과 수면 부족과 같은 생활 패턴의 붕괴는 이러한 증상을 더 부채질 했다.
그녀의 지인 하 씨의 인터뷰(유서 속 언니)[17] 에 의하면 그 당시 이은주는 자신에게 마음의 병이 있다는 것을 인지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유럽 여행을 다녀오는 등 노력했지만, 우울증이라는 병이 자신을 죽음에까지 내몰 위험한 병인지는 미처 몰랐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은주는 자살 직전 두 차례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불면증과 거식증을 호소하며 진료를 받았다. 그녀는 의료진으로부터 검사를 위해 입원 권유를 받았으나 거절했고, 그 다음 진료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후 자살했다.
자살 직전 우울증으로 힘겹던 때, 그녀는 소원을 적은 메모지를 묻었었다. 이은주 사후 언론사에서 하 씨와의 단독 인터뷰 때 당시의 일화가 좀 더 자세히 드러나 있다. 평소 이은주는 마음이 우울할 때면 소나무 묘목을 사다가 집 근처 강변에 직접 심으며 스트레스를 풀곤 했는데, 2월 초에 나무를 사려다가 주인이 아직 땅이 얼어서 나무를 심으면 곧 죽는다고 해 대신 새해 소원을 적어 나무를 심으려던 자리에 묻었다. 하 씨에 따르자면, 오랜만에 이은주는 환하게 웃었으나 그로부터 보름 후 세상을 스스로 떠났다. 장례를 치른 뒤 하 씨는 그녀가 적은 소원을 파보았고 그 소원이 바로 '''메모지'''였다.
생각해 보면 그녀가 얼마나 스스로 고통스러워 했으며 마음의 병으로부터 절실히 벗어나고 싶어했는지 알 수 있는 마음 아픈 부분...해당 종이는 지금 이은주의 어머니가 보관하고 있다고. 기사 전문<메모지 전문>
이은주의 소원과 함께 자라길 바라며
1. 사랑하는 내 가족들 모두 행복하게 건강하게 함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가족이라 여기는 한 사람도 내게 베풀어주는 것 이상의 좋은 삶을 살 수 있기를..도움이 될 수 있기를..서로가
2. 지금 힘든 시기 '''<2004년 11월부터 현재 2월>''' 이제 몸도 마음도..머리도 정상적으로 돌아와 많이 웃고 기쁘게 살고 싶습니다.
3. 좋은 배우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이제 더 이상 아픔없이 건강해지길...
2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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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21일, KBS 포토다큐-천상의 배우 이은주>
장례식에는 그녀가 소속되어 있던 나무엑터스의 연예인들은 물론 많은 배우, 가수, 연예인 지인들이 참석하였고 발인 시 그녀의 옛 연인이기도 하였던 김정현이 영정 사진을 들었다.
그런데 그녀의 자살 직후에 가수 전인권이 갑작스럽게 자신과 이은주가 연인 사이였다는 주장을 해서 세간의 비난을 받았다. 이에 이은주의 친오빠는 분노하며 이를 전면 부인 하는 글을 썼다. 위에도 언급된 그녀의 친한 지인이었던 하 씨는 둘의 관계는 전인권의 일방적인 집착에 가까운 행동이었다고 전했다. 이은주는 전인권을 그저 연예계 선배님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전인권의 이 같은 행동(수십 통의 문자를 보낸다든가)을 매우 부담스러워 했지만 이은주의 여린 성격 탓에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줬다고 전했다. 그 당시 이은주는 2살 연상의 회사원 남자친구도 있었다고 하 씨가 사후 인터뷰에서 밝혔다. 위에도 언급된 하 씨와의 인터뷰 전문을 읽어보면 전인권의 행동이 좀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가뜩이나 심란해 할 유족들을 더 당황스럽게 했다는 점에서 전인권은 한동안 비난을 면치 못했다.
4. 유서 전문
5. 이은주를 말한다
은주는 뭐랄까, 보기도 전에 김종학 감독님이 칭찬을 너무 많이 해서, 대단한 재목이 나왔구나, 그랬지. 처음 봤을 때 느낌? 꾸미지 않았지만 그대로 예쁜 야생화 같았어. 거칠면서도 매력적인 야생화 같은 소녀.
<이병헌. 2001년 2월 15일, 씨네21-그대와 함께 왈츠를, <번지점프를 하다>의 이병헌, 이은주>
은주는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나이보다 어려 보일 얼굴이예요. 그 때문에 생명력이 긴 배우가 될 거고. 시나리오에서 자기 역할을 이해하는 능력과 집중력이 뛰어난 것도 장점이지요. 정확한 발음법을 훈련하면 대배우가 될 거라고 믿습니다.
<김대승. 번지점프를 하다 감독, 2001년 3월 22일-Film 2.0>
이은주는 스타덤에 오른 영화배우답지 않게 몸치장에 별로 흥미가 없다. 평소에는 주로 맨얼굴로 있고, 아직 귀도 뚫지 않았다. 촬영 전 메이크업에도 별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하지만 카메라만 돌아가면 힘이 난다. 아무리 지쳐 있어도 눈에 빛이 나며 주어진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단기간에 뭔가 보여주며 자신을 소모하기는 싫다. 한계단 한계단 차근차근 밟아나가며 오래도록 팬들과 함께하는 친구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
<[미스굿데이] 동화같은 연애·소설같은 사랑하는 이은주, 2002년 9월 9일>
그녀는 22세지만 그녀를 앞에 두고 있자면 22세라는 숫자가 의미 없어 보인다. '깊고 침착한 기운'. 이미 충무로 최고의 기대주로 부상한 그녀지만 그녀가 이루어 온 것보다는 앞으로 이루어 나갈 것에 훨씬 더 큰 빛이 보인다.
<매일경제, 영화 '연애소설' 히로인-이은주-2002년 9월 12일>
처음 만났을 때 우선 ‘참 곱다’ 생각했어요. 성형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있잖아요. 그리고 나이에 비해 성숙해요. 분위기가 있어요. 그러면서도 또 그 또래의 귀여움과 발랄함이 있죠. 은주 씨는 우리나라 여배우 중에 몇 안되는 폭넓은 배우라고 생각해요.
<이범수. 마리끌레르- 이범수, 이은주 그 애드리브, 그 순발력! 서로에게 반하다, 2004년 1월>
아름다운 사람, 고 이은주를 떠나보내며…천상에서 피어야 할 꽃이 진흙투성이 세상에 내려왔건만온 마음을 다해 세상 사람들에게 삶과 사랑, 웃음과 눈물의 의미를 전하였더니그 모습이 어여쁘고 가엾었던 신께서 이제 되었다, 하시었나 봅니다. 불꽃 같았던 열정을 거두고 그분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한결 같았음을 기억합니다. 늘 겸손하게 세상을 대했고, 따뜻했으며, 성실했고, 아름다웠습니다. 많은 말보다 진실한 말을 하려 애썼고, 원망 아닌 인내를 택했던 선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맑고 투명한 심성이 빛이 되고 향기가 되어 그녀가 남긴 작품들에 스며 있음을 깨닫습니다. 10년 간 남긴 아홉편의 작품들…신기루같은 작품 속 인물들에게 자신의 삶으로 생명을 불어넣었던 사람이기에, 그녀는 떠났지만, 그 분신들을 통해 우리는 그녀를 거듭 만날 수 있습니다. 가녀린듯 힘 있고,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고 싶어했던 마음,진심 어린 맑은 눈빛, 차분한 목소리와 고아한 몸짓…언제나 마음과 영혼을 바쳐 푹 빠져들곤 했던 빛의 세계 속에서 웃고 울고 꿈꾸었던 그녀는 진정한 영화의 연인이었습니다. 함께 꿈 꾸었던 모든 이들에게 신실한 친구이며 든든한 동지였던 사람. 당신이 품었을 환희와 상처, 고뇌와 희열의 순간을어찌 감히 모두 헤아린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배우이자 영화인으로서 품었던 당신의 열정과 진정한 마음만은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한 후에 나누고 싶었던 많은 이야기들은 아직 시작도 못했건만,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무심히도 짧았음이 새삼 아프고 또 아픕니다. 이 아픈 이별 앞에서 무슨 말로 당신을 위로할 수 있으며, 또한 남겨진 우리를 위로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우리의 가눌 길 없는 슬픔이 가시는 걸음에 짐이 되어선 안 되겠기에, 지금은 잠시 접어두려 합니다. 이곳의 무겁고 아팠던 모든 것들은 훌훌 벗어버리시고, 좋았던 기억과 따뜻한 온기와 아름다운 마음만을 품고 가십시오. 하나님의 보살핌 속에서 부디 평안하고 행복하시길 두 손 모아 간절히 기원합니다. 2005년 2월 24일. 함께 꿈꾸었던 이들의 마음을 모아… 문근영 드림
<문근영. 2005년 2월 24일, 발인식>
시상대에 두번 올라오게 되어 영광이다. 이 상은 이병헌 선배, 설경구 선배, 류승범씨가 받아야 할 상인데 제가 받아 송구스럽다. 어린 제가 이런 상을 받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늘 나라에 있는 고 이은주에게도 영광을 바치며 사랑하는 강혜정과 이 영광을 함께 하고 싶다.
<조승우. 2005년 7월 8일 제 42회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6. 어록
요즘은 강수연 언니하고 심은하 언니의 연기를 유심히 보게 돼요. 그분들 연기를 보면서 숨통이 트이는 것 같은 느낌을 자주 받거든요. 강수연 언니와는 곧 개봉될 영화 <송어>에서 자매로 출연했는데, 3개월 간 강원도에서 촬영하면서 여러 모로 배울 점이 많았어요. 심은하 언니하곤 <백야 3.98>에서 ‘어린 아나스타샤’와 ‘성인 아나스타샤’로 출연하긴 했지만, 사실 촬영하면서 두 번 밖엔 만난 적이 없어서 아쉬웠구요.
어머니 요리에는 ‘양념 공식’이 있다고 하잖아요. 어머니 음식 맛을 흔히들 손맛이라고 하던데, 제가 보기엔 요리 속의 양념들이 알맞게 들어가 서로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거든요. 연륜이 쌓이다 보니까 따로 계량을 하지 않고서도 요리가 가능한 경지에 이른 거겠죠. 맛 내기에 서툰 초보자일수록 양념의 양을 정확하게 넣는 습관이 중요한 것처럼, 연기도 배워 나가는 자세에 있어 ‘정확한 자세, 정확한 공부’가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연기자 ‘이은주’만의 독특한 맛을 갖게 되겠죠?
<1999년 3월, SBS 매거진, 새봄, 우리 곁에 움튼 푸른 새싹 하나, 탤런트 이은주>
돈과 인기, 화려함과 편함. 이런 이유로 연예인이 되고 싶다면 다른 길을 찾는 게 나을 거예요. 무척 힘들거든요. 연기로 한 획을 긋겠다면 환영입니다. 새내기 연기자들이 많지만 이미지가 비슷하죠? 제 나름의 캐릭터를 빨리 만들어야 하는데…
<1999년 5월 15일, 한겨레 인터뷰>
5년 후요? 5년 후면 제가 '''25살'''이겠죠. 그러면 어떤 모습일 것이다라기 보다도요.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다하고 바램이 더 커요 저는요. 지금도 연기 생활하고 있지만 2년 정도 밖에 안 됐거든요. 그때 정도 되면 여러분들 앞에 떳떳이 나가서 뭐 외치고 뭐 이래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제가 어느 위치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연기로나마 그리고 여러분에게 인정받는 것까지 그 위치에 있었으면 좋겠구요. 그렇게 되도록 지금부터 열심히 노력할게요.
<온라인 컴퓨터 잡지 DISSE 1999년 8월호 인터뷰>
예전엔 자신감도 없었고 남 앞에 서는 걸 싫어했어요. 그런데 99년이 되면서 변했죠. 활발하면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촬영 6개월 전에 조감독님과 만났는데 창현과 비오는 산길에서 벌이는 정사 장면 부분의 시나리오를 보여줬어요. 너무 적나라해서 ‘어쩌지?’했죠. 게다가 당시 고3이라서 수험생활과 연기를 함께 하기도 그렇고해서 관둘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책꽂이에 그냥 꽂아뒀었죠. 그런데 6개월 뒤 전화가 왔어요. 박종원 감독님을 그때 처음 봤는데 세화 역으로 내가 마음에 든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다시 시나리오를 집어 들었어요.
쉬는 시간이면 박종원 감독님한테 ‘69신 어떻게 하실 거예요?’라고 물어봤어요. 너무 부담스러워서요. 결국 키스만 하는 걸로 했는데 키스 경험이 없어서 NG가 많이 났어요. 지금은 당차게 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 달 간은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시간이 날 때면 문제집을 들고 공부를 했죠. 박종원 감독님은 영어를 가르쳐주시기도 했어요.
<1999년 10월, 프리미어 - <이면의 발견, 이은주>
'''질문''':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으세요?
저는 기존의 이미지 때문에 그런지 얌전한 역이 많았어요. 실제 제 성격은 발랄하고 쾌활하거든요. 앞으로 제 성격과 비슷한 역을 하고 싶어요.
'''질문''': 연예인이 된 후에 좋은 점과 나쁜 점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음...좋은 점은 일단 다양한 연기를 하잖아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본다는 것이 아주 좋아요.
여러 인생을 경험할 수 있고 다양한 성격을 표현해낼 수 있다는 것이 연기자라는 직업의 좋은 점인 것 같아요. 연기자가 아닌 사람들은 한 가지의 인생만 살 수 있잖아요. 그리고 나쁜 점은 친구들을 자주 못 만난다는 거예요. 전 고등학교 때 데뷔를 해서 그때 친구들과 실컷 놀지 못한게 아쉬워요.
'''질문''': 소중히 여기는 것 세가지만 말씀해 주세요.
첫번째는 가족, 두번째는 나 자신. 주변 환경을 포함해서요. 일도 포함이 되고요. 그리고 세번째는 앞으로 평생을 같이 할 사람이요.
<1999년 12월, 청소년 잡지 Bop 인터뷰>
실제 성격은 지원이와 많이 달라요.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거 좋아하고, 밝은 성격에 애교도 잘 떨거든요(웃음). 지원이는 너무 얄미울 정도로 냉정해서 정이 떨어질 정도였어요. 나보다 점수 1점 더 받는 친구 깎아내리려고 점수 주지 말라고 하고…. 그런데 지금은 지원이도 많이 인간적으로 변했어요. 겉보기보단 마음이 따뜻한 친구예요. 남을 배려하는 면도 있고, 보이지 않게 뒤에서 친구들을 걱정해주고 도와주잖아요. 처음엔 너무 얄미워서 대본을 찢어버리고 싶었던 적도 있었는데, 1년 정도 지원이로 생활하다 보니까 이젠 너무 사랑스럽고 익숙해져 버렸어요. 제가 어딘가 지원이를 닮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면서 ‘이건 은주가 아니라 지원인데…’하고 느낄 때도 있어요.
청소년드라마 할 때까지도 그저 또래 친구들하고 소풍가는 마음으로 촬영장 다니고 했는데, <백야 3.98>과 <카이스트>를 하면서 이게 나의 직업이 되는구나, 나도 배우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작품 속 인물에 따라 제가 변해가고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게 얼마나 신기한지 몰라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고, 지금은 존경하는 강수연, 심은하 선배 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분명한 자신의 색깔이 있고, 어딘지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그런 배우요. 이은주는 ‘어딘가 다르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2000년 1월, 여성동아 - <카이스트>의 도도한 이은주 성숙한 여인으로>
지난해 2월 영화 <송어>와 함께 시작한 STV 드라마 <카이스트>는 주위에서 흔히 말하는 나의 출세작이다. 냉정하고 차갑지만 속은 누구보다 따뜻한 구지원 역으로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시작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극중 구지원의 성격이 명랑 쾌활하고 솔직한 나와 정반대였기 때문이었다. 연기 경험이 많으면 다양한 성격의 인물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없겠지만 경력이 짧은 나로서는 무척 힘든 일이었다. ‘나라면 저렇게 행동하고 말하지 않을텐데…’‘쟤는 왜 저러지’ 등과 같은 생각이 수없이 들었다. 또 <송어>의 촬영때문에 강원도와 대전을 오가는 문제도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강원도의 추운 산골에서 야외촬영을 하다가 따뜻한 카이스트 건물에 들어가면 얼굴이 늙은 호박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카이스트>의 인기가 점점 올라가고 극중 구지원에 대한 얘기가 서서히 방송가와 PC통신에 퍼지기 시작했다. 기분도 좋았지만 연기자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모습이 인정받는 것 같아 흐뭇했다.
<2000년 1월, 스포츠 서울, 스타고백-이은주편>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나는 수정을 연기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노출 장면이 많은 것도 부담이 되었지만 그처럼 섬세한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 더 힘든 일로 느껴졌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다시 읽고 한 번 해 보기로 결심했다. 이 영화가 완성되었을 때 다른 배우가 수정을 연기하는 모습을 본다면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어느 부분이 잘려 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많은 양을 촬영했다. 들어가야 할 부분이 들어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쉽지는 않다. 열심히 했고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2000년 4월 27일, Film 2.0>
<오! 수정> 따라서 칸에 갔을 때였다.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행사에 <와호장룡>에 나왔던 미셀 여(양자경)가 들어올 때 카메라맨들이 그를 찍으려고 난리였다. 미셀 여도 같은 동양인인데, 너무너무 부러웠다. 우리나라에는 왜 그런 배우가 없을까. 저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
<2000년 12월 28일. 한겨레-문화생활-영화비디오>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마음을 굳혔다. 인태희라는 인물도 마음에 들었다.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그 정도 나오면 아쉬운 듯 하면서도 다시 보고 싶어질 것 같았다. <번지점프를 하다>는 예쁘기만한 멜로가 아니라 독특한 구성과 줄거리가 있는 멜로라는 점때문에 특히 끌렸다.
배우인 내가 존경하는 선배가 있듯이 연기자에게 존경 받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 영화에 대한 애정이 크기 때문에 영화를 하는 모든 분들이 인정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영화의 맛은 기다림과 정성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영화는 현장에서만큼은 상업적이지 않다. 영화와 드라마 현장이 다른 점이 그것이다. 드라마는 시간과 제약이 많기 때문에 놓치는 부분이 많지만 영화는 기나긴 기다림 속에서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긴 시간을 기다림과 상상, 공상으로 보내면서 내가 변한다는 생각을 한다. 무엇보다 영화는 ‘작품을 한다’는 느낌을 준다.
<2001년 1월 27일, Film 2.0 인터뷰>
'''질문''': 원하는 사랑은?
영화 같은 사랑을 해보고 싶어요. 영화 같은 만남과 영화 같은 추억이 있고 영화 같은 대화를 하고 영화 속의 한 그림 같은 집에서 살고 영화 같이 환상적으로 결혼도 하고 싶고 그래요.
'''질문''': 욕심나는 연기', 해보고 싶은 역할?
맹한거요. 맹한 것도 해보고 싶구요. 푼수처럼 왈가닥, 그리고 털털하고 남자다운 것도 해보고 싶구요. 안 어울릴 것 같죠? 어울려요. 안한 게 더 많아서 어떤 게 주어져도 열심히 할 것 같아요.
'''질문''': 외롭다고 느낄 때
저는 원래 성격이요. 그 외로움 걸 못 참고 누구가를 만나고 싶고 그런게 아니구 혼자 그냥 즐겨요. 혼자 외로워서 낭떠러지로 떨어질 때까지 감정이... 그 때까지 그런 걸 즐기다 보면 외로움이 어느새 없어져요.
'''질문''': 비오는 날의 추억?
비 오는 날은 항상 비를 맞는다. 비 맞는게 좋아요. 비를 맞으면 비 오는 날은 왠지 투명한 유리공안에 사람들이 갇혀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제가. 그래서 기분이 너무 좋아요.
'''질문''': 이은주는 차갑다?
제가 보여드렸던 드라마나 영화의 이미지인 것 같아요. 저를 잘 아시는 분들은 그렇게 말씀을 안 하세요. 저는 사랑스럽구요, 웃기도 잘 웃고 그런 아이예요.
'''질문''': 앞으로의 계획-바람
외국에 나갔을 때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아마 10년이 넘을지도 몰라요. 큰 꿈이라는 건 아닌데 언젠가 그 꿈이 생겼어요. 아마 깐느 영화제 갔을 때 생겼던 거 같아요. 깐느에 갔을 떄 홍콩 배우를 한 명 본 적이 있는데 홍콩 사람도 서양인은 외국 사람들이 너무나 좋아하고 사인받고 이런 모습이 옆에서 지켜봤을 때 너무 부러웠거든요. 열심히 하다보면 나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오늘 저에 대해서 많이 아셨죠? 저는 이렇게 차갑지만은 않은 여자구요. 그리고 앞으로 영화에서 더 좋은 모습, 그리고 또다른 작품으로 새로운 모습 꼭 보여드릴게요. 여러분 감기 조심하시구요. 항상 행복하세요.
<2001년 1월 27일 박상원의 아름다운 TV얼굴 149회-로드 인터뷰>
조신하고 수줍은 전형적인 80년대 여대생을 연기하라고 했다면 더 힘들었겠죠. 하지만 태희는 그 시절 여대생답지 않게 솔직하고 당돌하고 당당하고…, 분명한 캐릭터가 있잖아요. 캐릭터 잡는 데 있어서 <오! 수정> 때와 다른 점이라면 홍상수 감독님은 촬영장 밖에서 많이 만났고 김대승 감독님은 현장에서 주로 대화를 했죠.
<2001년 2월 15일, 씨네21-그대와 함께 왈츠를, <번지점프를 하다>의 이병헌, 이은주>
<번지점프를 하다>는 독특한 소재의 멜로라는 점 때문에 선택했는 걸요. 출연하는 장면이나 대사가 많고 적다든가, 캐릭터가 어떻다든가 하는 점은 크게 신경 안 써요. 작품이 괜찮으면 어떤 역할이라도 할 수 있는 게 배우라고 생각하거든요.
몇 편 찍지는 않았지만 영화는 드라마에 비해 보람이 커요. 쏟는 정성이 틀려서겠죠. 현장 상황도 많이 틀리고요. 그렇다고 영화만 고집하겠다는 건 아니예요. 아직은 어린 걸요. 이것저것 많이 배우고, 먼 훗날 여건이 된다면 영화배우라는 이름으로 남고
싶은 게 소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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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2월, 프리미어 - <스타 점프 이은주>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하구요. 너무 많이 떨렸어요. 정말 욕심나는 상이었는데 요번에도 못 받으면 어떡하나. 엄마 아빠 얼굴 어떻게 보나 이 걱정이 앞섰거든요. 엄마 오고 싶어했는데 상 못 탄다고 내가 못 오게 한 거 너무 미안하고 아빠 엄마 너무 사랑하고 앞으로 '''한국영화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2001년 4월 25일, 제 38회 대종상 신인배우상을 수상하며>
<오! 수정>과 <번지점프를 하다> 때는 아쉬움이 많았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봤기에 영화 자체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려 노력했고, 영화 중반부가 넘어가자 눈물을 숨길 수가 없었어요. 배우라는 직업이 좋아요. 하지만 배우 이은주로 불리기에는 많이 부족하죠. 아직 얼마 안했고 그저 쑥쓰러울 뿐이에요.
<2002년 9월 9일, 미스굿데이 동화같은 연애·소설같은 사랑하는 이은주>
제가 하고 싶은 걸 해야 최선의 노력을 할 수 있고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봐요. 작품을 고를 때 딱 꼬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작품을 하면 극장에 내 얼굴이 걸리겠구나 하는 느낌이 와요. 착하고 예쁘고 그런 역들은 아닌 것 같아요.
영화를 고르면서 흥행여부를 따져 본 적이 없어요. 나한테 도움되는 역이면 되고 그 작품을 통해 배웠다면 잘한 선택이지요. 하고 싶은 거 골라서 열심히 하고 결과가 좋으면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을 거고 그렇게 스타가 될 수 있는 거겠지요. 흔히 스타라 불리는 사람들과 다른 저의 이미지를 좋아해주는 분들도 많아서일까요. 스타보다 전 배우가 좋아요. 전 잘생긴 톰 크루즈보다는 인간적인 니콜라스 케이지나 설경구 선배같은 얼굴이 더 좋아요. 저도 그런 얼굴이었으면 해요.
<2002년 9월 12일, 매일경제, 영화 '연애소설' 히로인-이은주>
편한 사람 만나면 <연애소설>의 경희 같아지고, 어른들을 만나면 <오! 수정> 같아져요.
<오! 수정> 이후 저는 많이 달라졌어요. 뭐랄까, 많이 닫혔다고 할까요. 또래 아이들과는 뭔가 달라진 느낌을 갖게 됐어요. 어른들은 저렇게 사랑을 하나, 저렇게 뒷골목에서 여자를 꼬시나…. 전혀 그런 것을 몰랐던 저는 그때 고민을 많이 했고, 선배 연기자들하고 인생 얘기를 하면서 내 고민은 얘기해도 잠깐 동안의 슬픔의 전염밖에 안 되겠구나, 이런 기분이 들었어요. 지금도 저는 친구의 고민은 잘 들어줘도 카페에 앉아 수다로 고민을 털어내고 하는 것은 못해요.
<2002년 9월 18일, 씨네21-“노는 기분”으로 편안하게 <연애소설>의 이은주>
자신의 감정을 너무 표현하고 싶지만 참아야 하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물론 지금은 어렵겠지만, 세월이 쌓이고 사랑도 해보고 이별도 겪다보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서른 살의 이은주라…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언제나 보고 싶은 배우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2003년 4월 2일, Cinebus>
모든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그러겠지만, 제가 태어날 때부터 엄마는 절 자기 분신이라고 생각하면서 키워왔어요. 다른 형제가 있는데도 그만큼 애착을 가졌죠. 연예계 들어오게 된 계기도 엄마 때문이에요.
그래서 엄마랑 추억이 많아요. 고 2 때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학교는 꼭 거기서 졸업해야 한다 길래 서울과 군산을 왔다 갔다 했으니까요. 학교 다니면서 3시간 반에서 4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엄마가 직접 운전하셨어요. 극성스러운 건 아닌데 그냥 저도 재미있어 하니까…. 엄마도 탈출구가 된 것 같고요. 게다가 엄마 고향이 서울이었거든요. 아빠 따라 군산에서만 20년 이상 살다가 딸 핑계 대면서 서울에 있는 외가도 들르시곤 했죠. 너무 힘들어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그랬어요.
<2003년 12월, 세븐틴 잡지-unique girl 이은주>
'''질문''': 멜로 배우로서 사랑에 대해 정의를 내려본다면.
음,사랑이라…. 희생,기다림,배려,그리고 늘 함께 해야하는 것. ‘러브 액츄얼리’를 봤는데 다양한 사랑법이 나와 감동했다.
'''질문''': 반대로 잘못된 사랑법이 있다면.
'Do Not!’ 뭘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게 안좋은 것 같다. 사랑은 자칫 집착이나 기대로 쏠릴 수 있다. 내 경험상 맞는 말이다.(웃음)
'''질문''':그럼 ‘현재’의 사랑은 어떤가?
글쎄,사랑을 하고 있지 않다. 언젠가는 그런 사랑을 해보겠지. 가끔 공원에서 노부부가 다정하게 손잡고 거니는 걸 보면 ‘나도 저렇게 살아야 될텐데’라는 생각에 부럽다.
'''질문''': 시각장애인 연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시선 처리가 가장 문제였다. 그래서 시각장애인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눈을 꼭 감고 있기도 하고 눈동자가 고정돼 있기도 하고, 때론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기도 했다. 집에서 평상시에 눈을 감고 생활하는 연습도 많이 했는데 평소처럼 걸을 때 다리를 먼저 내밀다가 상처도 많이 났다.
'''질문''': 시각장애인을 연기하면서 그들의 생활을 더 이해했을 법도 한데.
장애를 가진 이웃들이 많지만 시각장애인은 고충이 남다를 것 같다. 사람이 접하는 정보의 60∼70%가 눈을 통해서 들어온다는 말도 있지 않나?
'''질문''': 이번 영화에서 ‘배우 이은주’는 어떤 변신을 하나.
일단 많이 풀어졌다. 촬영하는 내내 솔직한 연기를 보여주려 애썼다. 몇달 동안 이은주가 아닌 영화 속 캐릭터 경우로 살았다.
'''질문''': 얼굴을 보면 늘 25∼26 나이에 머물고 있는 것 같은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를 20대 중반 나이로 보더라. 배우로서는 좋은 것 같다. ‘화양연화’의 장만옥도 나이를 가늠할 수 없던데 그녀처럼 묘한 매력을 풍기는 배우로 남고 싶다.
<2004년 1월, 스포츠 투데이, 와이드 인터뷰 이은주,보이지않는 사랑…보실래요>
연기에 대해서 정의하라고 하면 잘 모르겠구요, 제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이런 판단도 못하겠구… 한 가지 제가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건 그냥 솔직하게, 정직하게 하자에요. 그게 제게 제일 잘 맞는 게 아닌가 싶어요. 연기에 대한 그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어떻게 보면 제가 좀 보수적인 거 같거든요, 사람을 대할 때. 친한 사람들 이외에 마음을 여는, 이성이 될 수도 있겠고, 사랑도 될 수도 있겠고… 벽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에요, 어느 쪽으로든. 그걸 깨야 되는 건가, 깨는 게 옳은 건가… 가끔은 갑갑함이 있으니까. 그게 지금 제 고민이에요. 이제 12월 달이니까, 계획을 세울 달이니까, 새해엔 변할 수 있을까?
<2004년 1월 마리끌레르, 이범수, 이은주 그 애드리브, 그 순발력! 서로에게 반하다>
그냥 영화가 좋아요. 영화가 너무 좋구요. 외국 영화든 한국 영화든 보는 것도 좋구요. 제가 찍고 있는 순간도 너무 좋구요. 물론 같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티비 드라마나 방송 매체도 분명히 좋을 거예요. 그런 시간도 있었고. 그런데 이상하게 영화 현장에 있으면 굉장히 맘이 편안하고 내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 느낌을 자꾸 전달받고자 계속 하는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거? 시나리오 전체를 봤을 때 제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느낌들이 있거든요. 그게 흥행에 성공 하겠다 안 하겠다라고 따져본 적은 정말 맹세코 단 한 번도 없구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거니까 하는 거예요.
2004년은 내가 가진 띠의 해이구나라고 처음으로 느낀 년도예요. 미신일수도 있고 사실이 아닐지도 몰라요. 그래도 바램과 왠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나 직감 있잖아요. 바램. 이런 느낌이 들어요. 그런 좋은 일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12년 후예요? 36살 때인가? 결혼은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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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2월 9일, 맥스무비, <태극기 휘날리며> 이은주-아무도 못말리는 여배우>
2004년을 위한 2003년이었죠. 2004년은 2003년보다 많이 웃고 많이 행복한 순간이 왔으면 좋겠어요.
<2004년 2월14일, 안녕!유에프오 이범수 이은주 - 구파발행 버스는 사랑을 싣고>
잠을 거의 하루에 한 두시간씩 자구요. 끼니도 거의 하루 한 끼를 먹을 수 있을 정도구요. 너무 힘든데 찍고 나서 감독님이나 주위 스텝 분들한테 좋다고 칭찬 한 마디 받았을 때 피곤했던 하루가 쭉 풀리는 그런 순간인 거 같더라구요.
좀 많이 냉정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좀 철두철미하고 틈이 없을 것 같다는 말들을 많이하세요. 좀 까다로울 것 같다는…근데 그렇지 않거든요. 훨씬 더 밝은 면도 많구요. 어우러질 수 있는 그런 성격도 많이 있구요. 근데 아직 그런 모습을 제가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에 보여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가진 외형적인 이미지로만 그렇게 판단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이번 <불새>를 통해서 많은 모습 여러분들께 비쳐드리면서 조금 더 가까이 있는 사람이다,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걸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개봉을 했을 때 관객들이 박수를 쳐주고 좋다고 많이 웃어주고 눈물을 흘려주고 그럴 때 보람을 느끼죠.
저도 드라마를 다시 하는 게 너무 오랜간만이어서 많이 떨리고 설레이고 그러는데 지금 그 어느때보다도 최선을 다해서 찍어가고 있거든요. 여러분들이 많은 관심 보여주시는거 너무 감사드리는데요. 방송이 시작되고 끝나는 그 날까지 여러분들의 따뜻한 사랑과 격려 속에서 드라마를 마치고 싶습니다. 많이 사랑해주시고 <불새> 잘 될 수 있도록 기대해주세요. 감사합니다.
<MBC 불새 특집 인터뷰>
이루고 싶은 꿈이요? 멋진 연기자가 되고 싶죠. 많은 사람한테 존경받고 싶구요. 그리고 기왕에 배우가 제 직업이 됐으니까 진짜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연기에 대해서는 늘 매번 아쉽죠. 저 때 왜 저렇게 했을까. 조금 더 열심히 할 걸. 조금 더 이렇게 해볼 걸.
여우주연상 받고 싶어요. 내가 내 자신을 봤을 때도 아 진짜 받을만하겠다 싶을 때,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 2004년 7월 8일 SBS 생방송TV연예 조영구가 만난 사람-이은주편>
<주홍글씨#s-2>를 찍으면서 지금까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배우들은 작품 하나 할 때마다 그 캐릭터에 빠져들잖아요. 예외가 없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연기를 할 수도 없구요. 그런데 나는 조금 더 심한 것 같아요. 아니, 많이 심해요. 거의 중독 수준이죠.
<2004년 10월, 에스콰이어 “WOMAN WE LOVE - 너무나 평범해서 튀는 여자, 이은주”>
영화만 하다보니까…그런거 있어요. 이제 TV에 쉽게 쉽게, 편안하게 볼 수 있고 자주 볼 수 있으면 느끼는 그런 감정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분명 있는데, 영화를 계속 하다보니까 영화를 안 보시는…영화를 자주 안 보시는 그런… 연세 많으신 분들이나, 그런 분들께 얼굴을 많이 알리는 기회가 됐죠. 사람들은 쉽게 저한테 연예인, 연예인 하는데 그게 이렇게…그렇지, 연예인이지…근데 왜 그게 그렇게…잘…저랑 안 어울리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좀 더 자유로운 인간이고 싶은데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은데, 제재돼 있는… 어쨌든 이쪽 일하고 있고 공인이기 때문에 좀…차단되는 것들…그런 것들이 힘든게 아닌가 싶어요.
연예인이라기 보다 그냥 인간 이은주로서의 모습이 많이 담겨서 비쳐졌으면 좋겠어요.
<2004년 10월 22일, SBS 좋은아침-뜨거운 열정을 가진 배우-이은주>
(가희 집 촬영씬 때) 일주일을 거의 못 자고 못 먹으면서 정말 가희가 돼버렸어요. 배우 이은주라기 보다는 진짜 가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매일 같이 기도한 탓일까요. '''촬영이 끝난 지 두 달이 넘은 지금도 가희를 연기하면서 느낀 감정들이 내 안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어요.''' 하지만 가희처럼 목숨이 걸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그런 행동은 하지 못할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잠시나마 살아볼 수 있는 배우라는 직업이 마냥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이번 영화를 통해서 알게 되었어요. 그만큼 <주홍글씨>를 촬영하면서 힘들었어요. 나와 비슷한 점이 있긴 하지만 다른 부분이 너무나 많은 가희를 내 안으로 끌어들이면 들일수록 마음이 아파 왔거든요.
이전 작품들이 지금의 ‘배우 이은주’를 있게 해 준 받침대이었다면, <주홍글씨>는 ‘저의 가능성’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연기를 하는 동안 가희의 진심이 느껴져서 늘 가슴이 아렸는데 관객들이 극장문을 나서는 순간에도 제가 느꼈던 감정들을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그 정도의 연기는 했나고요. 그건 직접 보시면 아실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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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27일, 맥스무비 <주홍글씨> 이은주 – 죽을만큼 ‘가희’를 사랑하다>
제목: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셨어요.
추운겨울날 감기는 안걸리셨는지 모르겠네요.
여러분들이 보내주시는 응원의 글들 잘 보고있습니다.
항상 감사하구요 여러분들 성원이 있게에 힘내고 있어요.
모두들 건강하시고 늘 좋은일만 가득하시길 바랄께요..
감기 걸리지 마시고 설날도 다가오니까 다시한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럼 모두들 평안한 날들 되시길 바랄께여
건강하세요..
<2005년 1월 30일-그녀가 팬카페에 올린 마지막 글>
7. 출연작
7.1. 영화
7.2. 드라마
7.3. 뮤직비디오
8. 수상 경력
9. 여담
- 이은주와 떨어뜨릴 수 없는 것이 바로 피아노이다. 원래 꿈이 피아니스트였을 정도로 그녀의 피아노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배워 음대 진학을 목표로 삼다 연기에 매력을 느껴 연극영화과로 진학한 케이스이다. 생전 그녀의 피아노 실력은 그녀가 출연한 작품들에서도 볼 수 있는데 데뷔작이었던 <스타트>에서부터 피아노를 연습하는 장면이 있었다. <카이스트>에서도 그녀가 직접 피아노 치는 장면이 몇 번 등장하는데 심지어 피아노 치던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환영으로 마주치는 납량특집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20] . 영화 <오! 수정>에서도 원래 정보석이 치기로 되어있던 피아노 씬을 홍상수가 그녀가 피아노를 친다는 것을 알고 직접 치도록 씬을 바꾸었다. <오! 수정> 제작 영상을 보면 촬영 도중 쉬는 시간에 직접 스태프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이은주의 모습이 나온다. <연애소설>의 테마곡도 직접 자신이 연주하였고 <주홍글씨#s-2>에서도 직접 피아노를 친다. 생전 팬미팅에서도 직접 <연애소설>의 테마곡을 연주하기도 하였으며 이소라의 프로포즈에도 나와 이병헌과 호흡을 맞춰 빌리 조엘의 'Just The Way You Are'을 연주하기도 하였다. 그녀가 안치되어 있는 납골당에는 생전 피아노 실력과 배우로서의 삶을 기리기 위해 피아노 모형과 슬레이트 모형이 함께 들어가있다.
직접 감상해 보도록 하자.
- 당구 실력도 수준급이었다. 당구선수 출신이시자 당구장을 운영하시던 아버지 밑에서 배웠다고 한다. <카이스트>에서도 극중 당구 내기를 해서 이기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 그녀의 당구 실력이라고 한다.
어느날 촬영팀의 회식자리. 지원 역을 맡은 이은주가 일어나서 노래를 부르는데 이건 기가 막힌 거였다. 바로 이거다! 이걸 보여주는 거다. 작가팀은 지원이 노래부르는 신을 집어넣기 위해서 무지 노력했다. 그래서 나온 결과가 문제의 노래방 신.[21]
그걸로 끝난게 아니었다. 들어보니 피아노도 친단다. 원래 피아노 전공하려고 생각했었다나. 음..우리가 배우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었군. 그럼 집어넣어야지. 박기훈 교수역의 안정훈이 색소폰을 분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마이클은 원래 가수 지망생이었으니 기타를 치고 지원이의 피아노까지 합치면…흐흐흐. 그래서 20, 21회 ‘오래된 연인’ 편에서 연주회까지 하게 된 거다. 이 정도야 뭐 연기자로 악기 하나쯤 다루고 노래 잘한다는게 별거냐 하는 생각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또 듣고 말았다. 당구도 친다는 거다. 그것도 500점씩이나! 프로당구 선수였던 아버지한테 배웠다는데, 작가팀은 즐겁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후 지원은 멋진 당구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어이없는 정태가 한 마디 한다. “너 혹시 쌍둥이 아니냐! 구지원의 쌍둥이가 있어서 하나는 공부하고 아르바이트 하고 또 하나는 피아노 치고 당구치는거 아니냐고!” 우리도 묻고 싶다. “또 할 줄 아는 거 없어? 말만해. 써줄게.” 지원이 또 무슨 깜짝쇼를 할지 모르니 긴장하고 계시도록.
<송지나의 카이스트>-p44-45>
- 원래 나이에 비해 성숙해 보이는 외모와 말투로 <송어> 이후의 작품에선 주로 자기 나이 또래보다 성숙한 역할들을 연기했다. 특히나 얼굴을 알린 <카이스트>에서 워낙에 냉정한 역으로 나와서 이후에도 차갑거나 조용한 이미지로 주로 각인되었다. 생전 인터뷰에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다”라는 얘기도 들었었다고 밝혔었다. 실제 나이보다 많은 성숙하거나 조용하고 차가운 배역, 이미지에 대한 질문은 그녀가 가지는 인터뷰마다 나오는 단골 주제였다. 스스로도 그런 이미지에 고정되기 싫어 그런 사람은 아니고 밝고 털털한 사람이라고 인터뷰 때마다 수십차례 밝혔다. 자신은 패션도 잘 꾸미지 않으며 바지를 주로 입고, 치마는 주로 우울하거나 아주 기분 좋을 때만 입는다고 했었다. 귀도 배우로 데뷔 후 한참 후에나 뚫었었다고. 하지만 한 편으로는 고민을 털어놓기보다 속으로 혼자 끙끙 앓는 여린 사람이라고도 밝힌 바 있다. 연기 스펙트럼 역시 좁은 배우는 아니었다. 실제로 <연애소설>이나 <안녕 U.F.O>, <불새> 초반부 에피소드를 보면 발랄하고 청순한 역할들도 충분히 잘 소화하며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줌을 알 수 있다. 다만 작품 자체의 흥행 부진이나 후반부의 다시금 성숙한, 혹은 비극을 맞이하는 역할들로 인해 주로 대중들에게는 조용하고 성숙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 가수 바다와 배우 김소연과 생전에 매우 절친한 사이였다. 특히 바다와 단국대학교 선-후배 사이였던 이은주는 바쁜 와중에도 이틀에 한 번 꼴로 전화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김소연과는 바다의 소개로 서로 알게 되어 절친이 된 셋은 ‘우리끼리 S.E.S(성희, 은주, 소연)를 결성하자'는 농담을 할 정도로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 두터운 우정을 쌓아왔다.[22] 바다는 2005년 2월 이은주가 생을 달리 하였을 때 충격으로 잠깐 쓰러지기도 했었고 제일 먼저 빈소를 찾아 오열하며 자리를 지켰다. 고인이 세상을 등지기 전 날까지 전화통화를 했었던 것으로 드러나 많은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발인 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울면서 불렀고 생전에 고인과 찍었던 사진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아 고인의 어머니께 전달하기도 하였다. 발인 몇 주 후 연예가중계에서 직접 찾아가서 심경을 물어보자 눈물을 감추질 못했는데 그만큼 고인의 죽음이 큰 충격이었던 듯. 이후에도 이은주의 추모 공연에서 노래를 부르고 자신의 SNS에 고인과의 추억을 언급하는 것은 물론 공식 유튜브에는 15주년을 기리며 고인의 대표작 불새의 OST 커버 영상을 올렸다. 불후의 명곡 출연 때 조성모의 'To Heaven'을 불렀는데 10년전 쯤 20대 때 떠난 자신의 친구를 생각했다며 시작하기 전부터 울먹이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노래 끝자락에 가서는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운 듯 결국 눈물을 흘렸다. 김소연 역시 매년 진행되는 추모식 행사에 참석하는 등 두 사람 다 안타깝게 생을 저버린 이은주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
- 생전 '여우주연상'을 꼭 수상받길 원했다. 2004년 7월 SBS <생방송TV 연예>에 나와 인터뷰 하길 여배우로서 '여우주연상'을 반드시 수상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었다. 그녀는 주홍글씨에서의 파격적인 열연을 선보이며 모든 것을 쏟아부었으나 안타깝게도 그 해 청룡영화제에서 후보로만 그쳤다.[23] 그리고 세상을 일찍 떠남으로써 그녀의 수상 목록에는 '여우주연상'은 빠져 있다. 그녀가 너무나도 이 상을 받고싶어했기 때문에 만일 그녀가 그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더라면 그래도 우울증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어 아직까지 연기 활동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며 많은 팬들이 아쉬워하였다. 또한 깊은 연기력으로 만약 여태까지 살아있었더라면 후에라도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하였을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만큼 그녀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