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기동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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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 제7기동군단 예하 '''제11기동사단'''. 별칭은 '''화랑부대'''. 강원도 홍천군에 위치하고 있다.
2. 상세
강원도 홍천에 제3기갑여단과 함께 주둔 중이다. 이 말은 11기동사단+3기갑여단을 같이 두고 있다가 강행도하해야 하는 동네는 3기갑, 공병도 같이 가야 하는 대규모의 지원이거나 도하가 필요 없는 경우 11기동사단을 쓴다는 의미이다.[1] 부대마크는 11을 45도 정도로 눕혀놓은 것이다. 경례구호는 화랑이다.
6.25 전쟁 중이던 1950년 8월 27일 경상북도 영천에서 창설되었다. 1951년 2월 최덕신의 지휘 아래 거창 양민 학살사건을 일으켰으며 전선이 중부에 고정된 뒤로는 설악산, 향로봉 등 주로 동부전선에 배치되어 전투를 벌였다. 종전 시점에는 화천에 배치되어 있었다.
1967년에 수립된 육군 사단 특성화 계획에 따라 육군에 3개 특화사단이 지정됐는데, 이 중 제11보병사단이[2] 1968년 1월 23일부로 상륙작전을 수행하는 상륙사단으로 전환된 과거가 있었으나 나중에 육군 특화사단 체제가 중단되면서 다시 일반보병사단으로 복귀하였다.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에는 (구)제2보병사단과 함께 투입되어 전과를 올렸으나 이 과정에서 한 병사가 전사하였다. 하필이면 전사한 병사가 전역이 얼마 남지 않은 병장이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실은 상병이었고 전사 후 병장으로 특진되었다.
2004년부로 대한민국에서 5번째로 기계화보병사단으로 개편됐다. (구)20사단과 수기사다음으로 K-21보병전투장갑차를 전력화 하였고 기갑수색대대에 K-2 전차를 전력화 중이다.
2016년 12월 1일부로 11사단, 8사단, (구)26사단이 제7기동군단으로 배속이 변경되었으며 따라서 상급부대도 제1야전군이 아닌 3야전군으로 변경되었다.이후 제1야전군과 제3야전군의 통합에 따라 지상작전사령부 직속 예하부대로 개편되었다.
2019년 11월 29일 해체된 제20기계화보병사단과 통합되었다.# #
서부전선의 수기사, 8사단, 30사단이 담당하는 역할을 동부전선에서는 11사단[3] 이 담당한다고 보면 된다.
제3기갑여단과 같이 있으며 같은 임무를 가지고 있다. 1개사단+강행도하가능 1개여단으로 부대도 같이 있고 훈련도 같이 해서 1+1이라고 보면 된다.
작전 반경이 북쪽의 최전방 부대들까지라서 출동이라도 하게 되면 한참을 가게 된다. 동부전선에 유일한 기계화보병사단인데다 한때는 사단급 전방부대임에도 불구하고 군단에 배속되지 않고 곧바로 군사령부 직속이어서 보급순위도 높았지만 편제가 바뀌어서...
보통 사람들은 '''젓가락 부대'''라고 불렀었다. 이유는 물론 11이라는 숫자에 있겠지만 이 부대에 떨어지면 너무 고생해서 젓가락처럼 빼빼 마른다고, 별명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개는 이게 가장 많이 언급된다. 요즈음 입대하는 장병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시외버스 터미널로 나가보면 이 부대 출신 노인들이 수고한다고 격려해주는 경우도 있다.
기계화되기 전까지는 행군을 많이 하기로 소문난 사단이었으나 개편 뒤로는 많이 나아졌다.
기계화보병사단 최초로 2011년 정찰대가 천리행군을 했는데 1군 예비사단이어서 훈련이 워낙 많기 때문에 부수적으로 행군도 많은 것이다.[4] 부사관들의 말에 따르면 행군으로 화천까지 가서 훈련한 다음 도로 행군해서 복귀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현재도 그곳까지 가서 훈련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나, 이동은 장갑차 또는 육공 트럭으로 실시한다. 심지어 보병도 아닌 포병이 화천까지 진지공사하러 걸어왔다고도 한다. 거리로 따져보면 왕복 약 150km 정도이다. 예비사단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부대의 대항군 훈련은 기본이고 작계가 범상치 않아서 화천, 인제까지 가는 경우도 많았다. 돌아올 때는 통신부대 등 몇 부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행군으로 왕복했으며 행군을 자주하는 부대만큼 속도도 남달랐다고 한다.(전날 밤에 출발해서 다음 날 오후에 일찍 도착했는데 출발 장소가 화천 27사단 주둔지이다.) 훈련 때면 안 걸어도 되는 보직까지 일부러 행군을 시키는 경우도 많았고 먼저 부대로 돌아왔지만 아직 보병이 걸어오고 있다고 다음날 아침부터 그들이 돌아오는 시간까지 산악행군을 한 적도 있었다. 기계화사단으로 바뀐 지 꽤 지난 2011년에는 사단의 모든 일반 보병부대가 무박 100km한적이 있다. 수색대나 정찰대가 아닌 일반 보병들의 완주률이 엄청 높은편이였는데 이 무박100km 행군 완주를 위해서 40km행군을 한두 달에 한 번 꼴로 했었다. 이쯤되면 장갑차 전차가 주전력인 기계화사단이 아니다.
행군을 많이 하던 시절에는 '11사단은 전투화를 한 켤레 더 받는다.'[5] 라는 말이 유행처럼 돌았다.
기계화보병사단으로 바뀌었다고 훈련까지 줄어든 것은 아니어서 여전히 여러 가지 훈련이 매우 많다. 1군 사령부 직속 예비사단이었기에 강원도 전역을 상대로 대항군 노릇도 하고 여러 훈련들로 인해 8사단과 더불어 연간 훈련 계획표상 훈련수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육군 사단이다. 군복무가 24개월이던 시절에는 보통 전역시 까지 18개 정도의 훈련을 뛰었으며 심한 경우 22개의 훈련(그중에서도 몇 개는 2주)을 뛴 전역자도 있었다. 98년~00년 군번의 경우 3주 훈련과 4주 훈련도 있었다. 한 훈련을 마치고 돌아와 흙과 풀더미로 범벅이 된 훈련장비들을 정비하고 있는 도중에 계획표 상에 없던 새로운 훈련이 1주일 후 시작 된다는 소식을 방송으로 듣고 넋이 나간 상태가 되는 일도 다반사이다. 심지어 군장도 없는 전차병에게 보병 군장을 주어 행군시킨 적도 있다.(전차병은 메고 다니는 군장은 없다.) 물론 군대의 특성상 하나를 주면 하나를 얻는 특징이 있어 훈련이 빡빡한 대신 다른 특별한 임무는 별로 없고 모두가 기대하는 ASP 경계근무 투입 정도가 기다리고 있다. 여타 다른 기계화사단들 보다 훈련이 힘들다고 느끼는 원인은 강원도 라는 작전지역의 특징때문이다. 수기사 만하더라도 시가지를 전시에 작전지역으로 삼기때문에 장갑차로 이동하는 일반보병들이 무리하게 행군하거나 이동시킬 필요가 덜하다. 그에 비해 11사단은 온통 산으로 된 강원도가 주작전 지역이기 때문에 보병들은 훈련장까지만 장갑차로 이동하고 전술훈련은 여타 전방보병부대와 마찬가지로 산을 열심히 탄다.
다른 기계화보병사단들처럼 훈련과 교육, 작업을 하고 돌아오면 없는 일과 쪼개어 각종 정비와 장비 검열에 동원되는 현실이 마주하는데 거기에 아무리 해도 줄어들지 않는 훈련들의 개수까지 더해져 지옥을 선사한다. 덕분에 기계화보병사단으로 바뀐 초창기만 해도 행군하다 죽어도 좋으니 보병시절이 차라리 나았다고 과거를 회상하는 선임이나 간부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포병의 경우 북한도발같은 유사시에는 1군 유일 기계화부대의 포병이라는 명목으로 작계지역인 최전방으로 출동을 했었다. 실제로 2015년 8월에 있었던 서부전선 포격 사건 당시 포병여단 4개대대가 작계지역으로 출동해 화력증원임무를 수행했다. 현재는 통합 후 변경됨.
2021년 1월 1일부로 제11기동사단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3. 예하부대
3.1. 사단직할대
- 사단본부
- 공병대대[20사단]
3.2. 제9기계화보병여단 투호
- 여단본부
- 제9여단 군수지원대대 감호
- 제56전차대대 백호
- 제127기계화보병대대 돌격
- 제128기계화보병대대 투호
3.3. 제13기계화보병여단 사자
- 여단본부
- 제13여단 군수지원대대
- 제36전차대대 천마
- 제112기계화보병대대 진격
- 제129기계화보병대대 충무
3.4. 제61기계화보병여단 결전
- 여단본부
- 제61여단 군수지원대대 솔연
- 제12전차대대 질풍
- 제108기계화보병대대 철마
- 제111기계화보병대대 무적번개
3.5. 포병여단 용포
- 여단본부
- 제55포병대대 청룡
- 제78포병대대 승리
- 제91포병대대 백호
- 제955포병대대 흑룡
4. 과거부대
4.1. 제20기계화보병여단
제20기갑여단으로 독립
2019년 11월 29일 제20기계화보병사단이 11사단으로 통합되면서 20여단은 제3군단 직할 제20기갑여단으로 개편되었다. 동홍천IC 근처 화촌면에 위치하고 있는 부대로 통칭 독수리 여단. 부대 마크에도 독수리가 들어가는 디자인이었고 신 여단 마크도 이러한 특징을 부분적으로 이어받았다.
4.2. 신병교육대
(구)신병교육대는 2007년에 지어진 신 막사로 깨끗하며 생활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과거 쓰이던 구 막사는 단층 일자 형태로서 매우 길었다. 한 방에 한 개 소대가 이용하였고 시설은 냉방은 말할 것도 없고 난방이 극악을 달렸으나 신 막사가 지어졌음에 해결되었다. 현재 구 막사는 종교시설로 이용 중.
신 막사에서는 소대별로 방이 구분된다. 생활관마다 텔레비전이 구비되어 있으나 훈련기간 중에는 사용이 금지된다. 텔레비전 밑 찬장에는 장기, 바둑, 부루마블(!)까지 비치되어 있으나 텔레비전과 마찬가지로 사용금지. 단 퇴소식 당일은 사용이 가능하였다. 또한 드럼세탁기까지 세탁실에 있으며 주말에 개인정비시간을 이용하여 세탁이 가능하다.
신병교육대 치고는 규모가 작은 편이기 때문에 훈련장 간 이동거리가 짧은 경우에 속한다. 제일 먼 곳이 막사에서 1.5km 남짓. 육군훈련소 출신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매우 배아파 한다. 모 여단 본부와 같은 곳에 있다. 여단에서 좀 더 올라가면 신병교육대이다.
내부에 길을 따라 개울이 흐르는데 수질을 장담할 수 없으니 훈련 받고나서 목마르다고 함부로 마셔선 안 된다. 실제로 식중독에 걸렸던 사례가 있으니 주의!ㅣ.
종교활동은 천주교, 불교[11] , 개신교가 있으며 불교가 막사와 제일 가깝기 때문에 가장 선호되지만 그때 그때 퍼지는 루머에 따라 사람수가 달라진다. 구막사 시절에는 사단 사령부 인근의 절에서 불교행사를 했는데, 기본으로 국수를 비롯하여 간혹 유명 브랜드 도넛의 짝퉁, 심지어 자장면까지 별식으로 제공한 적이 있어, 한때 법당에 인원이 꽉찬 것도 모자라 밖에도 설 자리가 없어 훈련병들이 2회로 나뉘어 법회에 참석했던 적도 있었다. 한동안 별식에 대한 기대감으로 훈련병 수송작전에 기본적으로 두 대의 사단 대형버스가 동원되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절의 훈련병 우선 정책에, 그들이 먹고 남는 별식을 겨우 받아 먹어야 했던 자대 기간병들의 불만이 폭주하는 기현상도 있어 염불보다 잿밥임을 입증. 천주교는 종교행사 종료 후 부대 복귀시간이 가장 빨랐기 때문에 중식 취사사역에 동원이 되어 종교행사 중 가장 인기가 없었다.
행군은 중의적 표현으로 아름답다. 홍천강을 끼고 한바퀴 휘 돌때 탁 트인 광경이 볼 만하다. 무려 홍천 9경중 하나인 금학산 노일리 부근을 통과하는데, 꽤나 장관이라서, 행군로에 펜션들이 산재해 있는데 여기서 들리는 가가호호 즐거운 소리가 정말 짜증난다. 그리고 여름 시즌엔 행군로 중간에 11사단 유격장이 위치해 있는 탓에 현역들이 유격훈련으로 신나게 구르는 장면을 미리 구경할수도 있다. 다만 포장도로가 끝나고 비포장 산길로 들어서면 지옥이 시작된다. 상류지라 주먹만한 자갈들이 상당히 많은데 잘못 하면 발목이 나갈수도 있으니 조교나 간부들이 정신차리라고 할때 잘 차리자. 또 잔망 떨어서 수통에 물을 반만 뜨거나 식수 조절을 잘못해 물이 부족하게 되면 30km 행군때 지옥을 맛보게 된다. 하라는대로 하자. 몇년 전에 수통에 물을 1/3만 채웠다가 급성탈수로 기절한 훈련병도 있었다.
2019년 현재는 해체되어 그 자리에 보충중대가 창설되었다가 다시 해체되고 20기갑여단 소속의 방공중대, 기갑수색중대, 정보중대, 화학중대가 입주하고 있다. 20사단 시절 직할대들의 2중대들이 일괄적으로 이동 및 개편 창설된 것.
이로서 육군 전체적으로 기동사단 운영 신교대는 모두 해체되었다.
5. 출신인물
5.1. 사단장
5.2. 장교/부사관
- 강인순 : 現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중령시절 37전차대대장을 역임했다.
- 강건작 : 現 청와대 국방개혁비서관. 소령시절 제11기계화보병사단 작전처에서 근무했으며 중령 시절에는 예하 제112기보대대장을 역임했다.
5.3. 병
- 노태형(야구선수)
- 박한결(야구선수)
- 임하룡
- 김국진
- 탁재훈 : 9여단 여단본부 참모부 군수과 서무계원이었다고 한다. 탁재훈 군복무 시절 쓴 편지, JTBC 기사.
- 김현철(개그맨)
- 김호창
- 김대희
- 조빈 : 1995년 7월에 입대. 원래 수색대였다가, 먼저 문선대에 차출되었다가 복귀한 김대희의 소개로 일병 말호봉 때 문선대에 차출되었다고 한다. 국방일보 기사.
- 정찬우(컬투) : 원래 수색대대 본부중대 81밀리소대 소속으로 평소에는 위병소 위병이었으나 일병 때 문선대에 차출되었다.
- 형곤
- 조권 : 군악대에서 복무했다.
- 고원정(소설가)
- 한선교(정치인)
- 나홍진(영화감독)
- 곽튜브(유튜버) : 전산병 출신이다.
- BaD-Mouth
- 양노을
- 모군
- 장종환
- 삼삼삼 - 신승호
6. 기타
6.1. 근무환경
사단 사령부가 터미널과 굉장히 가깝다.(걸어서도 30분 안에 도착한다.) 9여단만 제외하면[12] 대부분 읍내와 지척에 있으니 휴가 나가기 굉장히 좋은 여건이다.(가까운 예로 화천의 부대들은 나오는 데만 시간 단위가 걸린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읍내로 나가면 시간 때우는 간부, 운전병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6.2. 매봉산
홍천과 강원도 내륙에서 비발디파크로 가는 길목에 있는 산. 위치상 가장 가까운 부대는 2019년 기준 955포병대대[13] 이지만 포병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15] 따라서 포병들은 보통 타 군단 지역을 빌려쓴다.
기보대대들이 전용으로 사용하는 곳이다보니 59전차대대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관리소대장과 병력들이 파견나온다. 59전차대대에서 관리하는 이유는 매봉산 훈련 부지가 59전차대대 소속이기 때문이다. 훈련장 내부를 돌아다니다보면 폐막사와 연병장[16] 이 있는데 그곳이 원래 59전차대대였다. 59전차대대가 제20기갑여단으로 분리된 후에도 지속 운영하는 것으로 추정. 다만 거리가 본대와 멀다보니 관리소대 점검은 가까이 있는 포병대대들이 하고 있다. 부지는 어마어마하게 넓고 박격포 사격을 11사단뿐만 아니라 강원 남부 향토사단도 빌려서 사용한다. 원래는 20포병대대가 가장 가까운 부대이기 때문에 매봉산에서 박격포 사격이 있을 때마다 사격통제관을 파견보냈는데 통폐합 후 최신시설을 이어받은 955포병대대가 이 짬까지 물려받았다.
직할대를 제외한 모든 11사단 출신들이 이 산을 기억하는 이유는 바로 공포의 방화지대 공사 때문이다. 9, 13, 20, 포병여단 예하 모든 대대가 동원되어 해마다 구역을 순환하면서 방화지대 공사를 하는데 공사지역이 하나같이 험하기 짝이 없다. 그나마 덜 험한 지역이면 관리구역이 어마어마하게 넓고, 구역이 좁다 싶으면 서있기도 힘들 정도에다 애초에 모든 구역으로 가기 위한 산길이 답이 없다... 아예 처음부터 도보로 가는 것은 아니고 어느 정도까지는 트럭을 타고 이동하는데 하필 하차하는 공간이 생각보다 좁아서 운전병 한 명만 어리버리해도 개판이 되어버린다. 20여단은 독립하여 이 임무에서 빠졌고 61여단이 매봉산을 짬맞을 것으로 예측된다.
6.3. 태권도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으나 보병사단 당시 이 부대의 태권도 훈련은 상상초월이었다. 근 10년 가까이 전군 태권도 대회에서 다수의 우승을 차지하고 결승상대는 해병대일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자부심도 엄청났다. 전 사단 대원의 평시 태권도 훈련도 강도가 높아서 단증을 따지 못하는 부대원에게는 말년 병장이 될때까지 두고 두고 간부와 고참에게 갈굴거리를 제공했다고 한다. 태권도 단증이야 누구나 다 따는 것 아니냐 하겠지만 문제는 이 부대의 태권도 단증 심사. 정확히 말하면 단급심사. 엄청나게 까다로운 기준으로 심사를 보며 제대로 단련을 안하거나 체육에 소질이 부족한 부대원은 당연히 탈락하고,사회에서2단 취득한 병사가 기준미달이라며 초단에 도전 다시 취득하게 하였다 .2015년 현재는 타 사단과 비슷해졌다. 일부 태권도 유단자에 한해 교육하고 파견보내는 정도.
6.4. 부대영상
6.5. 사단가
1절
지키자 삼천리 화려한 강토
지키자 반만년 찬란한 전통
화랑이 가는곳 승리가 온다
우리는 빛나는 화랑사단 용사
2절
조국에 몸바친 젊은전우여
들어라 빛나는 정의의 총검
받들자 바치자 빛나는 충혼
우리는 영광의 화랑사단 용사
3절
하늘에 호국용이 용트름 친다.
신라의 빛난문화 화랑의 자랑
나가자 빛내자 화랑의 정신
우리는 씩씩한 화랑사단 용사
4절
영천벌 높이든 구국의 깃발
조국을 지키는 화랑부대다
노도같이 휩쓸며 적을 무찌른
우리는 무적의 화랑사단 용사
7. 사건사고
2013년 6월 17일, 악성 뇌종양을 앓던 신성민 상병이 숨졌다. 작년 12월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했는데, 중대장이었던 서선석 대위[17] 는 꾀병이라고 하면서 한 달 동안 방치되었고, 결국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국군수도병원과 일반병원을 오가다 5월 14일부터 급격히 증세가 나빠졌고 폐렴까지 겹치면서 결국 사망했다. 해당 상병은 내무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간부, 특히 대대에서 성질 더러운 것으로 유명했던 중대장의 눈 밖에 난 병사였고 평소 신상병의 행실을 아니꼽게 본 중대장이 임의로 꾀병이라고 판단해버린 것. 신성민 상병이 허무하게 죽었는데도 중대장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다른 부대로 전근갈 때까지 자기가 병사 하나를 죽였다는 사실을 무용담처럼 떠벌리며 뻔뻔하게 잘 있다가 전역했다.
2015년 1월 27일 9여단(투호부대) 여단장이 여군하사를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8. 여담
1군 직할 예비 사단이었다 보니 1군의 다양한 행사(?)에 차출 되었는데, 실례로 1999년에는 지금 없어진 제76보병사단의 진지공사 지원을 위해 한개 연대가 통째로 몇 개월간 화천으로 파견 나간 적도 있었다. 실제 일반 보병들은 화천 진지공사에 행군으로 걸어갔다.
이명박 대통령이 11사단 신교대를 방문하는 바람에, 훈련복귀가 지연된 예하부대도 있었다. 그리고 그때 사인을 했던 축구공이 화랑사단 박물관에 전시되고 또 그게 화랑사단 소식지에도 실렸다. "1군 전투력 발휘의 핵심" 이라고 적은 자필(인지는 불명)서체도 있다.
대대급 6주 집중훈련을 가장 처음으로 하는 부대로 선정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공병대대가 이 6주 집중훈련을 4월 23일~ 5월 31까지 받는다고 한다.
부대마크가 미 육군 제3보병사단의 마크와 비슷하다.
11사단 공식전우회는 화랑동지회가 있다. 사이트.
[1] 3기갑 공병이 와서 도와줘야 될 만큼 대규모 강하가 아니면 11사단 자력으로 도하한다는 뜻이다.[2] 나머지 두 사단은 산악사단으로 지정된 2사단과 공정사단으로 지정된 5사단.[3] (구)20사단을 통합하여 경기 양평권까지 담당.[4] 정찰대의 경우 2년간 공식적으로 인증된 행군 길이만 1200km에 달한다.[5] 육군의 병 피복 보급이란 게 필요한 건 언제나 부족해서 새 전투화를 받기란 하늘에 별따기다. 하지만 기계화보병사단으로 개편되기 전 대부분의 병사들은 지급받은 두 족의 전투화로는 감당이 안 돼서(더군다나 A급 한 족은 남겨두려고 애를 쓰기 때문에) 전역자들이 남겨놓은 전투화 또한 품귀상태인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는 병사들의 사제 전투화 구입이 일부 묵인되기도 하지만 현재는 징계이다.[20사단] 공병대대를 배속변경[A] 퍼포먼스 영상[6] 정비대대와 보급수송대대가 개편하여 군수지원대대가 되었음. 각 여단의 군수지원대대는 각 여단 예하부대를 지원하고, 사단 직할 군수지원대대는 사단 직할부대와 포병여단을 지원함.[7] 새롭게 편성된 부대로 기존의 정찰대와 비전투 정보분야, UAV 및 드론이 포함된 정보부대로, 기존의 정찰대는 정보대대 예하의 지상정찰중대로 편성, 개편되었다.[8] 공식 웹드라마[9] 20사단 화생방지원대를 대대급으로 확대개편 동시 11사단으로[10] 경비 참모 군악 수송 보충대가 한 건물에서 생활[11] 나누어주는 불교 경전을 보면 훈련소 선배들이 남긴 깨알 같은 훈련 매뉴얼들이 있다. 다만 이 경전이 보통 1년마다 갱신되므로 없을 수도 있다.[12] 여기는 버스로 읍내와 40분 정도의 거리이다. 하지만 양평과 매우 가깝게 있기 때문에 시외버스로 30분 만에, 용문역까지 갈 수 있다. 오히려 기차나 수도권 전철(경의중앙선 한정)을 이용해야하는 입장에선 이쪽이 나을 수도 있다.[13] 구 20포병대대 주둔지였는데 현재는 955대대로 통합되면서 인수했다[14] 105mm 똥포라면 몰라도 155mm급 자주포들은 이런 단거리에 맞는 장약은 거의 보유하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다. 어떻게든 해보겠답시고 쏘면 그 탄은 민간 지역으로 갈 위험이 너무 크기에 안전 문제로 사용하지 않는다.[15] 훈련장의 곡사화기 사거리가 너무 짧아서 포병은 자주포 방열 등을 제외하고는 이 훈련장을 쓸 여건이 안된다.[14] 그나마 방열도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전개교장을 활용하다보니 관측반이나 화력지원반 파견 말고는 이 훈련장에 발도 들이지 않는다. 정확히는 혹한기 훈련을 할 훈련장을 못 빌려서 기보여단 사이에 꼽사리 끼는 상황이나 후술할 방화지대공사 빼고 아예 쳐다도 안 본다는 이야기.[16] 폐막사 주변에 심하게 녹이 슬어있는 M47 패튼과 M113 장갑차가 서로 같이 붙어있는 전시대 비스무리한 것이 있다.[17] 2008~2010년 사이에 임관, 군장학생을 하다가 학군사관으로 전환된 임관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