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지하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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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지하철 건설을 소재로 한 북한의 선전화. 우측 상단에 김일성이 그려져 있다.
'영광 → 개선' 구간 주행영상.
1. 개요
平壤地下鐵 / Pyongyang Metro
북한의 수도 평양의 도시철도. 북한의 유일한 지하철이기도 하다. 지하철에 한정하지 않는다면 함경북도 청진시에 트램이 운행 중이다. 정식 명칭이 평양지하궁전이라는 명칭으로도 잘못 알려져 있는데, 지하궁전이라는 명칭은 지하철의 장식이 화려하기 때문에 붙은 별명일 뿐 정식 명칭은 아니다. 정식 명칭은 평양 지하철도이며, 관할 기관은 평양지하철도관리국.[2]
세계 10대 지하철 중 9위로 선정되었으며, 원문, 발췌 번역[3] 깊은 지하철 내부와 고풍스러운 궁전과 같은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매주 첫째 일요일에는 유지보수를 위해 전 노선이 운행을 중단한다.
Enter Pyongyang from JT Singh on Vimeo.
위의 영상은 평양 시의 모습을 타임랩스 기법으로 촬영·편집하여 제작한 것으로, 도중에 평양 지하철 역사 및 전동차 내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역 입구부터 개찰구, 역 내부 구조 등 많은 면에서 구소련 지하철 스타일을 그대로 가져왔다.[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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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기지는 붉은별역으로부터 북쪽으로 제법 떨어진 곳(약 5~6 km 정도)인 용문동 인근에 존재한다. 바로 옆에는 평라선이 달리고 있다. 차량기지는 크게 2갈래로 나뉘어 있다. 전반적으로 서쪽과 북서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남동쪽이 터널 입구다. 평라선과 직결이 가능한 인입선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먼 이유는 평양 지하철의 깊이가 평균 100 m에 달하는 고심도라 지상으로 올라오는 데 많은 거리가 필요하기 때문.
2. 운행 노선
1968년 착공하여 1973년 9월 6일 천리마선 봉화역에서 붉은별역까지, 1975년 10월 혁신선 혁신역에서 락원역까지 개통하였다고 전한다. 1978년 9월에는 혁신선 혁신역에서 광복역까지 추가로 개통하고, 1987년 4월 10일 천리마선의 연장선인 만경대선이 부흥역까지 완전 개통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대한민국의 지하철보다 더 일찍 개통되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지하철은 1974년 8월 15일 개통된 수도권 전철 1호선. 참고로 남북한의 경제 규모에 있어 수치적으로 역전된 해가 1974년이다. 다만 서울지하철 건설 계획자체는 1960년대 후반부터 논의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북한과는 별 상관없이 결정된 것이기는 하다. 물론 체제경쟁이 심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북한이 먼저 건설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더욱 자극될 수밖에 없던 시절인지라 재빠르게 개통한 느낌도 없지는 않지만 아무튼 그렇다.
물론 서울지하철의 개통이 평양보다 늦어진 결정적인 이유는 1966년부터 1970년까지 서울시장을 지낸 김현옥이 '불도저 시장'답게 하도 공사를 벌려서 개발하다보니까 막상 지하철 건설에는 쓸 돈이 없어지는 바람에 건설이 늦어진 것이 가장 크며, 후임 양택식 시장이 여의도 땅을 팔고 외국 차관도 좀 얻어오고 나서야 서울지하철 건설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개통이 늦은 것이다. 1기 지하철 계획이 처음 나온 게 1967년(최종 확정은 1971년이다.), 심지어 그 때 수도권 전철 5호선 계획도 미리 세워져 있었다. 1974년이면 부산 지하철 1호선 초창기 계획(1971년)[4] 도 나왔던 시절이었다. 어쨌거나 1980년대 초까지는 평양지하철이 서울지하철보다 일찍 개통된 사실을 대한민국에 유포할 경우에는 국가보안법에 의거하여 처벌될 수 있었다. 사유는 적대세력에 대한 고무찬양.
실제로 대한민국 매체에서 평양 지하철이 서울 지하철보다 빨리 개통되었다는 것이 최초로 언급된 것은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를 참고하면) 1985년 동아일보 방북기사에서다. 사실 1985년 정도가 되면 평양은 2호선 정도가 개통된 반면에 서울은 4호선, 부산에도 1호선이 뚫려서 지하철 스펙 경쟁에서는 완전히 승리한 시점이었고, 수해 났을 때 북한에서 쌀도 받아먹을 정도[5] 로 꽤 유화책을 쓰던 시기이니 별 신경 안 썼을 듯하다. 다만 평양에 2개 노선의 지하철이 있다는 것은 (늦어도) 1977년에는 언급되고 있는 듯하다.
원래 계획은 천리마선 봉화역 아래로 대동강을 하저터널로 지나 강 동쪽 지역까지 지하철로 연결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1971년 봉화역 건설 도중 하저터널이 붕괴되어 1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이후 5번에 걸친 시도 끝에 하저터널안은 폐기되었고, 대신 세계청년학생축전을 맞아 김일성의 생가인 만경대 방향으로 2개 역을 추가로 개통하는 만경대선을 신설하게 된다. 그래서 동평양 개발계획이 대한민국의 1970~1990년대 강남대개발처럼 의욕적으로 진행되지 못해서 현재도 동평양이 서평양보다 뒤떨어지는 동네라는 이미지를 만들게 되었다. 참고로 평양 지하철이 가장 많이 참고한 구소련 모스크바 지하철의 경우, 냉전 시절에 지어진 노선 역시 미국과의 핵전쟁을 대비해 깊게 짓긴 했지만 모스크바 강을 지날 때는 지상으로 올라와 다리로 건넌다.(보로비요비 고리 역) 소련 초창기에 지어진 노선은 모스크바의 지형과 관련이 있다.
노선은 동서선(혁신선, 20km), 남북선(천리마-만경대선, 14km)이나 환승역은 천리마선 전우역/혁신선 전승역 하나밖에 없다.[6] 그러니깐 공항철도 개통 전의 경인선과 인천 도시철도 1호선이 만나는 부평역과 같은 수준... 유사시 방공호로 쓸 수 있도록 깊게 건설했다고는 하지만, 부평역처럼 엄청난 던전은 아니라고 한다.
1995년 김일성의 관저이던 금수산태양궁전 앞의 광명역이 폐쇄되었고, 인근의 삼흥역에서 출발하는 셔틀 노면전차를 운행하고 있다.
2.1. 연장 계획
김정은대 들어 만경대선 연장 계획이 세워졌다. 일부 탈북민들의 증언으로는 실제로 붉은별역에서 룡성 방면으로 연장할 계획이 대략 80년대쯤부터 세워졌지만 련못동 북부 지하에 수맥이 흐르고 있어서 그냥 손 놓은 상태이다. 평양 북부의 평성시와 은정구역은 과학단지로 많은 과학자들이 이곳에 몰려있으니 북한 당국으로써도 유사시 신속한 대피수단인 지하철 건설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리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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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안내기는 연장을 감안한듯하다. 저 기준이라면 혁신선은 광복역에서 서쪽으로 광복거리를 따라 2개역, 천리마선은 붉은별역에서 북쪽으로 2개역이 연장될 예정.
3. 운영
출퇴근 시간에는 5분 간격으로, 평시에는 10분 간격으로 4량 1편성의 열차를 운행하는데 첫차는 5시 반, 막차는 9시 반이다. 9시 반이 되면 군인이 지하철 입구를 차단한다. 막차의 출발은 9시 45분에 하는데, 9시 반에 입구를 통과한 사람이 승강장까지 오는 시간을 배려한 것이다. 그리고 환승역에서는 다른 노선의 막차를 타고 온 환승객을 기다린다고 또 20분을 대기한다. 그러다보니 환승역 쯤에서는 11시가 다 되어서도 잘하면 탑승이 가능하기 때문에, 입구를 차단하고 있는 군인에게 몇푼 주면 슬쩍 열어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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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난이 심각할 때는 출퇴근 시간대에만 운영하기도 했는데, 한국도 1970년대 석유파동 때 전철 운행편수를 줄였던 것과 비슷한 이치다. 전동차가 가속을 하면 무려 100여 가구의 전기를 사용하다보니 어쩔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나마 운행하는 열차도 최대한 전력을 아끼려는지 객실 내 조명을 일부만 켜놓고 운행했다고 한다.
북한 정권이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고려여행사 평양 관광코스에 포함되며, 이를 통해 외국인들이 평양의 지하철 체험을 하게 된다. 다만 전 구간을 모두 이용할 수는 없고, 천리마선 부흥~개선역 사이의 구간만 탑승할 수 있다. 천리마선 잔여 구간이나 혁신선의 경우 일반적으로는 외국인 이용 금지이며, 특별 여행을 통해서만 승차할 수 있다.
90년대말 울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방북할 당시 몇몇 기자들이 북측 가이드를 따돌리고 시내를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이 때 가본 지하철은 운행이 중단되어 있고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심지어는 평양 지하철이 평상시엔 가동을 중지해 있고, 외국인이 올 때만 공개용 전동차를 운행한다는, 그리고 열차에 타고 있는 승객들은 전부 연기라는 설이 있다. 그래도 운행시간에는 개방은 하는 듯. 그러나 2000년 초, 중반 북한 주재 영국 대사였던 존 에버라드는 지하철이 꽤나 다닌다고 하였으며, 가끔씩 아무의 제지도 없이 타고 다녔다고 하였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평양을 제외하면 지하철이 일절 없기 때문에 지방사람들이 평양에 들를때마다 방문하는 일종의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이건 대한민국도 지하철 개통 초창기에는 지방사람들이 지하철이 뭐냐면서 구경하려 오기도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승차권은 우리가 쓰던 버스 회수권처럼 10개가 붙어있는 방식이다,[7] 토큰형 승차권[[http://pds68.cafe.daum.net/image/14/cafe/2008/04/23/10/17/480e8e4151b5a|종이형 승차권]]카드형 승차권
운임은 2002년 경제개혁조치 이전에는 10전, 이후 5원. 2010년대 들어 평양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취재에 의하면 IC카드 인식 개찰기를 도입하고 있다(사진). 일부 역에서 시범으로 도입하다가 얼마 후 전 역으로 확대했다. 카드 가격은 5천원인데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탑승료는 5원(…). 카드 살 돈이면 지하철 천번은 타는데 누가 사겠나 싶겠지만, 실질 환율이 1달러에 8천원이 넘기 때문에 큰 돈이 아니라 자주 타는 사람은 대부분 구입한다고 한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상시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카드를 구비하고 있고 이는 다시말해 일회권으로 승차하는 사람들은 외지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라 검문 등으로 상당히 귀찮다고 한다. 아래도 서술되어 있듯이 IC카드 미소지자는 역무원이 확인하는 별도 통로로 들어간다고 하는데, 소지품 검사라든지, 절차가 상당히 귀찮은 모양이다. 우리나라도 고속도로 하이패스 장비를 구비할 돈(10~25만원)이면 고속도로 통행료를 수십번에서 많은 경우 100번까지도 지불할 수 있지만 고속도로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은 귀찮아서 하이패스 장착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인 듯 하다.
아직 카드 충전기 같은 장비는 없고, 매표소에 직접 카드와 돈을 제출하면 역무원이 충전해주는 식으로 되어 있다. 외국인이나 IC카드 미소지자는 역무원이 운임이나 승차권을 확인하는 별도의 통로를 통해 들어간다.
여하튼 선전수단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평양의 주요지점을 통과하고 다니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만 되면 사람이 붐비는 풍경은 한국의 여느 지하철과 유사하다. 덧붙여서 평양에서는 일반주택에서 에어컨 쐬는 것이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기도 하고, 평양 근교지역에서는 전력이 끊기는 상황도 왕왕 벌어지다보니 무더운 여름철이나 추운 겨울철에는 무더위나 추위를 피하려고 사람들이 많이 붐비기도 한다.[8]
2010년대 말에는 조명시설을 대대적으로 개보수하고 구내 매점도 생기고 스크린TV로 열차 출발, 도착시간을 알리는 등 이전보다 많이 화사해졌다는 평이다. 신차의 LCD안내 디자인은 코레일보다 낫다는 자조적인 평가가 나올 정도.
4. 전동차
투입된 열차는 자기네가 자체 개발하여 중국에다가도 수출을 했을 정도라고 북한 당국에서 선전해왔지만, 실제로는 한동안 가장 최근에 도입한 전차가 동독 해체 후 베를린 지하철에서 사용한 열차였었다. 평양 지하철의 모든 차가 전부 독일차는 아니고, 이 문서를 보면 중국에서 만든 차도 있는 모양. 베를린에서 사용하던 차의 최고 속도는 70km/h이며, 중국 장춘에서 만든 차는 90km/h까지 낼 수 있다는 듯. 전동차는 매우 낙후된 수준이다. 4량 운행이며, 문은 닫히는 것은 자동인데 여는 것은 수동이다.[9] 출입문에 손잡이가 달려있는 것이 이것 때문이다. 출근시간이나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평양 행사가 있는 날에는 사람이 너무 꽉 차서 문을 열고 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독일 지하철중에서도 구형에 해당한다. 동력은 직류 1500V / 교류 25000V 가공전차선 방식으로 달리는 한국과 달리, 베이징 지하철이나 오사카메트로 제3궤조집전식 노선과 같은 직류 750V로 달리는 제3궤조집전식이다. 근데 꼴에 1,2차분이 있는지 1차분은 상부 개폐식 창문이고 2차분은 2분할 통유리 창문이다.
그러다가 김정은의 지시로 신차가 개발된 듯 하다. # # 사용하던 전동차가 너무 낡아서 중국에 신차를 주문하라고 했는데, 중국에서 대당 100만달러를 부르자 자체적으로 그만한 돈이 없었던 기관에서 김정은에게 결재를 올렸고, 김정은이 200만 달러를 주면서 그럼 이참에 개발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신차가 투입되었다. 그러나 신차 투입 이후 촬영된 구글 지도 파노라마나 외국인들의 영상을 보면 십중팔구는 구형인데, 제작비라고 준게 200만달러라서 몇량 못만들었다고 한다. 신차에는 LCD로 역이나 일기예보 등을 안내하는 등 신문물(…)이 있어서 도입 초기에는 일부러 신차를 기다렸다 타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신차가 도입되면 일부러 그거 타보려고 기다리는 승객들은 철도가 있는 국가라면 어디서든 볼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한심해보일 일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다른 나라처럼 차량 끄트머리의 좌석은 특정인들을 위해 지정되어 있지만, 노약자나 임산부, 환자, 장애인이 아니라 공화국영웅이나 로력영웅 같은 영웅 칭호 소지자나 영예군인(상이군인), 전쟁로병(한국전쟁 참전 경력이 있는 노인)들의 자리로 지정되어 있다. 노약자보다 전쟁 용사를 우대하는 정책은 프랑스와 같은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노약자석과 '아기 어머니'석으로 대체되고 있으며, 노약자나 아기 어머니가 없을때는 다른 사람도 앉을 수 있다고 한다.
4.1. DK4(중국 장춘)
평양 지하철에서 가장 오래된 차종이다. 1972년부터 1973년까지 중국에서 제작되었다.
현재 이 차종은 대부분 평양에서는 대차된 것으로 보이며, 상당수가 개조되어 지방 도시에서 통근열차 비스무리한 걸로 굴러다니고 있다. 위 문서의 사진 속 차량도 이 차량이다.
4.2. BVG GI(동독)
BVG G형 전동차 모델이다.
독일민주공화국(동독) 에서 1978년부터 1982년까지 제작된 차량을 1997년부터 '''중고로''' 반입된 차량이다.
역시 현재 평양에서는 대차되었는지 최근 영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지방 도시에서 통근열차로 쓰는 중. '''무려 팬터그래프를 달고 다닌다!'''
4.3. BVG D(독일)
BVG D형 전동차 항목 참조.
현재 평양 지하철에서 많이 쓰이는 차량이며 평양 지하철의 얼굴마담이기도 하다. 위의 차량들처럼 일부가 평의선에서 통근열차로 운행 중이라는 말이 있다.
4.4. 100형(북한?)
북한에서는 김종태 전기기관차 연합기업소에서 개발한 것이라고 선전한다. 그러나 과거 독일제 차량을 선전했듯이 실제로는 중국제나 인도산 차량인데 북한 자체개발이라고 우기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구미권 사이트에서는 기존의 베를린지하철 Class D 차량의 리뉴얼 버전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지멘스 사의 VVVF 인버터가 장착되었으며, 이는 '''북한 최초의 VVVF 철도 차량'''이다. 승차 가능인원은 TC칸(운전실이 있는 칸) 210명, T칸(무동력객차)은 240명이라고 적혀있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중국산 차량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아래는 일본의 교도통신이 취재한 북한의 신형 전동차 운행 영상.
속도 표시기에 43km/h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아 평시에는 시속 40km/h 정도로 운전하는 모양이다.
북한에서 올린 신형전동차 홍보 영상.[12]
N'rail에 2016년 10월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일본인 멤버가 올린 북한 철도 여행기에 찍힌 사진에 의하면 각 객차 후방부는 다음 객차와의 연결 통로 자체가 없어[13] 다른 칸으로 이동하지 못한다.
이 글에 따르면 원핸들 마스콘이고, 윈도우 XP의 작업 표시줄이 보이는 LCD 화면이 장착되어 있다고 한다.
본 영상은 2018년 9월 4일 게시된 영상으로 부흥역 ~ 영광역 구간의 운행 영상이다. 차내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차내 LCD판에는 다음 역 연계 노선과 노선도, 환영 문구, 속도ㆍ온도ㆍ습도까지 나타낸다. 대한민국의 수도권 전철과 대전 도시철도에서 볼 수 있는 임산부 배려석 자리에 교통약자석을 설치했으며 분홍색인 다른 좌석들과 달리 주황색 커버를 씌워 구분하였다. 안내 표시를 보면 남쪽 지하철과 똑같이 장애인, 노약자, 임산부, 유아동반자 전용이라고 되어 있다.
4.5. ? (북한?)
북한 국영 언론이 공개한 전동차이다.
사진의 배경을 봐서는 천리마선이나 혁신선에 투입되는 전동차인듯 하다.
내부는 100형 전동차와 유사하지만 좌석이 파란색이다.
아직은 도안만 나온 상태.
5. 시설
각각의 역사는 유사시 방공호로 사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무조건 깊이 팠으며'''(깊이가 150m가 넘어가는곳도 있다고) [14] , 이런 연유로 구 서울도시철도공사(현 서울교통공사) 구간처럼 깊숙이 내려가는 수준이다. 그나마 에스컬레이터라도 있으니 망정이지…. 너무 깊게 파서 에스컬레이터가 고장나면 지옥의 등반 & 교통마비 확정이기 때문에 모든 역을 순회하면서 역당 한두달정도 역내 장비를 총점검 한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어느 역인가는 점검중이라 쓸수 없다고.
사실 평양 지하철이 건설된 가장 큰 이유는 교통 문제 해결이 아닌 군사적 목적으로, 주석궁과 순안공항을 잇기 위한 수단일 것이란 설이 있다. 김일성 사후 주석궁은 금수산기념궁전으로 바뀌었으며, 이에 맞춰져 혁신선 광명역도 폐쇄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단순히 군사적 목적으로 건설되었다고 하기에는 어폐는 있는게 지하철이 건설되었을 당시의 평양도 서울만큼은 아니라도 한창 인구가 활발히 증가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서 자가용 보급은 별로 되지도 않은데다가 버스는 증차해도 콩나물 시루 소리가 나왔을 정도로 터져나왔기 때문에 분명 지하철이 필요했다. 다만 그걸 감안해도 너무 깊게 팠던게 문제일 뿐. 거기다가 순안공항은 평양 시내에서 20 km가 넘게 떨어져 있는데 북한이 이런 긴 구간을 지하철로 연결할 의중이 있었는지도 불명이고 무엇보다 순안공항 옆으로는 바로 평의선이 지나가고 역도 있는데 굳이 지하철을 여기까지 뚫을 필요가 있었는지는 미지수.
또한 북한에 수출된 전동차 수와 실제로 운행하고 있다는 전동차의 수가 다른 점을 들어 군사적 목적의 비밀노선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탈북자들 증언 가운데에는 평양시 아래에 거대 지하 구조물이 건설된다는 증언을 한 경우도 있다. 다만 이건 북한이 일부 전동차를 개조해 지방 노선에서 통근열차로 써먹는걸 감안하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역사(驛舍)가 매우 화려한데, 역사 안에 상들리에를 달아놨고 엄청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는 소련이 만든 모스크바 지하철의 초호화 역사들을 참고했기 때문.[15]
2012년 2월 3일에 유튜브에 업데이트 된 영상. 촬영은 일본인이 부흥역에서 한 듯.[16]
이렇듯 고풍스럽고 멋있는 내부와 깊이로 세계 10대 지하철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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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영향을 받은 러시아와 동구권, 중앙아시아의 지하철에는 플랫폼 끝부분에 시계와 배차 간격을 알려주는 장치가 있는데, 평양 지하철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다른 곳은 대부분 디지털 시계인데 여기는 아날로그 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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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 등 제어 설비는 1970년대 이후 업데이트가 안 된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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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 설치되는 역명판은 이렇게 생겼다. 대부분 역 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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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역에는 이런 노선도가 붙어 있다. 혁신선 삼흥역과 락원역 사이에 간격이 좀 길게 나 있는 것으로 광명역(혁신선)의 흔적을 알 수 있다. 아래의 버튼을 누르면 경로가 표시된다.[17]
6. 여담
- 인터넷 블로그의 한 사용자는 평양의 지하철이 세계 10위권 수준의 퀄리티를 자랑한다는 정보에 기반하여 현대식 지하철 노선도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참고 다만 인터넷에 떠도는 계획노선도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내용 자체는 오류가 있다.
6.1. 통일 이후의 처분?
위에 언급되어 있다시피 평양 지하철은 심도가 너무 깊어 접근성이 매우 떨어진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 2014년 7월 20일 방송분에 의하면 지하철 승강장까지 내려가는 데만 20분이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평양 지하철 역 입구부터 개찰구를 거쳐 승강장까지 내려가는 과정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녹화한 롱테이크 영상 등 유튜브의 여러 동영상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내려가는 데 20분씩이나 걸리는 구조가 아니며, 방송 특성상 좀 많이 과장된 이야기다. 아예 에스컬레이터가 고장나서 걸어내려간다고 쳐도 내려가는 데 20분씩이나 걸리는 거리는 아니다.
일부에서는 심도가 깊은 모스크바 지하철과 부산 지하철의 만덕역처럼 엘리베이터와 빠른 속도의 에스컬레이터를 다수 설치함으로써 접근성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전망도 나오고 있지만, 그 깊다는 모스크바 지하철도 평균 심도는 50m 정도에 불과하며 가장 깊은 역도 지하 100m 정도다. '''가장 얕은 역도 심도 100m를 넘기는''' 평양 지하철에 갖다 댈 수준이 아니다. 게다가 이 정도 막장 대심도라면 이용객 확보를 위한 노선 연장조차 쉽지 않다.
심지어 최근 수도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들도 대략 50m정도의 심도라는 점을 생각해보자. 그렇지만 세계 각지에서 건설되는 마천루 건설 기술의 발전으로 고속 엘리베이터 설치사업도 제법 활발히 진행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고속 엘리베이터를 설치한다면 지속적으로 운영될 수도 있다. 물론 엘리베이터 설치예산이나 개보수 비용으로 인해서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건 어쩔수 없겠지만...
이 때문에 기존 노선은 폐쇄시키거나 관광용 노선으로 남기고 아예 '''평양 지하철 1, 2호선을 대체제로 새로 뚫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어쨌건 인구 250~300을 전후하는 도시에 도시철도는 반드시 필요할 텐데, 기존선들이 다 깊숙히 있어 편리성은 그냥 없다고 봐야 한다. 특히 영광역의 경우 '''지하 150m'''에 있어 근처 평양역까지 환승하려면... 만일 경의선(평의선,평부선)과 평남선을 이용하여 '''평남권 광역전철'''을 굴리게 된다면 평양 지하철과 환승 역시 희대 막장환승. 결국 공기수송은 뻔하다.
아니면 기존 노선들의 저심도 지반에 지하철을 새로 지을 때까지 쓰다가 신선이 뚫리면 폐선시키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만약 억지로 현재의 평양지하철을 계속 이용할 경우, 차량과 승강장 크기로 봤을때 현재 평양지하철과 같은 동력과 집전방식으로 달리는 부산김해경전철이나 용인경전철처럼 경전철 차량으로 대체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니면 신안산선처럼 초고속 엘리베이터 여러개를 각 역마다 설치하는 방법도 있긴 하다.
6.1.1. 관련 문서
[1] 광명역은 폐역되었다.[2] 이름만 보면 무슨 정부기관 같지만 실제는 군부대다. 지하철 공익이 공익계의 해병대(…)로 꼽히는 것과는 반대로 땡보직인건지 부자나 고위층 자제들이 많으며, 특히 그 중에서도 딸은 여기로 보내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 여군이 엄청 많다고. 그 때문에 복무중 임신률도 모든 부대중에 최고라고 한다(…).[3] 1위는 대한민국 수도권 전철.[4] 물론 이후로 사정상 이래저래 변경하여 1985년에야 개통되었다.[5] 당시 전두환이 각료들과의 대화를 통해 북한으로부터 지원 물자를 받기로 결정했는데 받아보니 그 질이 굉장히 조악했고 먹지 못해서 버린 쌀도 많았다고 한다. 답례로 당시 우리가 생산하던 TV 등을 잔뜩 북으로 보내주었고 그렇게 역관광했다.[6] 이 역간의 환승통로가 없다고 잘못 알려져 있었으나 실제로는 환승통로가 있다고 한다. 월간 '북한'에도 관련 내용이 실려있고 탈북자들의 증언에서도 전승역 환승통로가 있다고 한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환승통로가 사람으로 너무 붐벼서 걸음도 더디고 숨막힌다고 한다.[7] 영상의 39초부터영상의 2분 36초부터 꽤 오랫동안 승차권이 없다고 서술돼 있었다.[8] 평양 외 지역에서는 방공호가 이런 역할을 하는것을 보인다.[9] 베를린 지하철은 후에 버튼을 누르면 문이 열리는 반자동식으로 개조되었다.[10] 현재 봉바르디에에 인수됨.[11] 속도계는 100km/h까지 표시가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12] 현재 해당 유튜브 계정이 해지되어 시청이 불가하다.[13] 가입 필요.[14] 또한 승강장 입구에는 아연 재질 문이 설치되어 있으며 다양한 터널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고 한다. -모스크바 지하철도 깊은데, 방공호 용도도 있지만 주 원인은 연약지반 때문이다. 모스크바 지하철이 첫 개통한 년도는 핵무기가 나오기 한참 전인 1935년이다.[15] 건설역에는 전후 복구 모습 벽화, 건국역에는 평양시 전경 모자이크화가 있다고 한다.[16] 원 유튜브 링크는 삭제되어서 다른 유튜브 링크로 변경되었다.[17] 대한민국 수도권 전철에도 1999년까지는 북한 노선도와 비슷한 사이로 당역 위치에 불이 들어오는 점 등 노선도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이건 정보량이 너무 작아서, 수도권 전철 5호선이 개통한 1996년에 5호선에 도입되지 않기 시작하여, 1997년부터 1~4호선에서도 서서히 교체되다 서울 지하철 6호선이 개통한 2000년에 전면적으로 폐기되고 스티커 땜질식 벽붙이 노선도가 붙었다. 그러다가 스티커 땜질식 종이 노선도로도 역 정보량이 부족해지자, 2012년 분당선 왕십리역 ~ 선릉역, 서울 지하철 7호선 온수역 ~ 부평구청역 구간이 개통할 때쯤부터 터치스크린식 노선도가 역에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다만 이건 광고를 따면서 진행하는 사업이라 서울특별시 내 역들에만 보급되고 광고가 부족한 경기도·인천광역시 노선도들에는 여전히 종이노선도가 붙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