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중화 요리
1. 개요
바탕은 중국 본토 요리이나, 한국의 지역 특색에 맞춰 새롭게 변형된 중화요리. 한국식 중화요리를 파는 집을 한국에선 흔히 중국집이라고 한다.
2. 역사
한국식 중화 요리는 초기만 해도 정착한 화교들 다수가 산둥성 출신이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산둥성 요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다만 만주족 요리의 영향이 강한 동북 3성 요리의 영향도 받았는지 만주족 요리인 물만두가 나오기도 한다.[1]
한반도에 정착한 화교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으나, 근대 들어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화교가 들어오게 된 것은 대략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인데[2] 이들이 초기 주로 활동했던 곳은 짜장면이 탄생한 곳이라고도 알려진 인천 조계지였으며, 쿨리 노동자를 위한 음식을 만들다가 점차 고급화하여 부유한 한국인과 일본인들까지 상대하는 음식점이 성행하게 된다. 그래서 이 때는 청나라 음식이라고 청요리라고도 했는데 서울에도 유명한 청요릿집이 몇 군데 있었다.[3]
일제강점기 시기를 거치며 일본 문화의 영향도 제법 받았다. 일단 우동, 짬뽕이란 단어부터가 일본어에서 영향을 받았고,[4] 밑반찬으로 단무지와 양파가 포함된 것과 그 양파를 과거엔 '다마네기'라고 꽤 불렀던 것도 이러한 영향의 일부분이다. 이쑤시개를 '요지'라고 불렀던 것도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아예 일본어가 섞인 야끼만두, 야끼우동[5] 이라는 표현도 있다. 당시엔 고급요리였던 청요리집에 자주 방문할 수 있었던 계층은 부유한 일본인 지배층이었기 때문에 이들에게 영합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난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땐 중화요리점이 밀실 정치의 장이 되기도 했는데, 1920년대 후반의 조선공산당 사건도 중국집에서 공산당원 젊은이들이 일본인 공무원과 친일파들을 때려눕힌 것이 화근이 되었다. 좀 오래된 중국집에 가면 10명 내외의 소그룹이 식사를 하며 조용히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별도의 룸을 만들어 놓은 경우가 있는데 이게 그 밀실 정치의 흔적(?)이다.
그러다 광복 이후 중국 국공내전이 종식되면서 많은 화교들이 본국으로 돌아가고, 남은 화교들도 화교 탄압 정책과 맞물려 생활고를 겪자 대부분 식당업에 종사하게 되었는데, 20세기 중반 서방 원조로 밀가루가 대중화되고 이후 정부가 혼분식 장려정책을 추진한 것 등과 맞물려 화교가 운영하던 중국집들도 인기를 끌게 된다. 그렇게 중국집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점차 화교가 아닌 한국인이 운영하는 중국집들도 많아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 더 다양한 한국식 중화 요리가 개발되고 맛도 점점 한국식으로 바뀌면서 현재에 이르게 된다.
2000년대 이후부턴 조선족 유입 등으로 이전에는 없었던 양꼬치, 마라탕 등으로 대표되는 만주 요리를 선보이는 중식당도 한국에 많아졌다. 이러한 중식당들도 10~20년간 한국 손님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이전 세대의 중국집과 마찬가지로 재료와 요리법에서 은근한 현지화가 일어나고 있는 중.
3. 본토식 중국 요리와의 차이
해당 영상을 보면 "그나마 탕수육이 중국 음식 비슷할 뿐 나머지는 자기들이 별로 먹어보지 못한 한국 요리다"라는 의견이 공통적으로 나온다. 다만 애초에 조사에 참여한 인원이 소수라 여론조사상 유의미한 신뢰성을 가지긴 어려우니 그냥 재미 정도로 보자. 실제로 같은 중국 요리라는 테두리 안에 묶여있긴 하지만 산동 요리, 북경 요리, 사천 요리 등의 간격은 중국인들조차도 이거 뭐임 할 정도다. 게다가 한국의 짜장면이나 짬뽕은 후술되어있듯 중국에서도 전국적으로 대중화되진 않은 음식들이 한국에서 현지화까지 거쳤으니 당연히 중국에선 흔히 맛볼 수 있는 음식이 아니란 점은 알 수 있다.
그나마 21세기 들어 한국 드라마 등의 영향으로 한국식 짜장면을 비롯한 요리 자체를 인지하는 중국인들은 많이 늘긴 했다. 당장 2018년 방영된 '현지에서 먹힐까-중국편'을 봐도 짜장면 맛이 궁금하다며 먹어보고 좋아하는 중국인들이 많았다. 물론 이 경우는 한국식 중화요리 장인이 즉석에서 만들어준 것이니 더 맛이 좋을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짜장면은 맛이 비교적 평준화되어있는만큼 웬만큼 상태 안좋은 혹은 불어터진 짜장면을 먹지 않는 한 외국인들도 호불호가 그렇게 심한 요리는 아니다.[6] 실제 한류 인기 등으로 인해 '''한국식 중화요리 전문 식당'''들도 중국에서 개업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물론 아직은 한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 중심이기는 하지만.
한국식 중화 요리로 가장 대표적인 메뉴 2가지를 꼽자면 역시 짜장면과 짬뽕일 것이다. 이들은 요리의 내용이 본토 요리와 비교해서 크게 바뀐 사례로, 짜장면은 산둥성에서 먹던 국수요리가[7]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개량을 거쳐 정착된 예이며, 짬뽕은 일본식 중화요리가 한국에 들어오면서[8] 다시 바뀐 사례이지만 중국집에서도 팔고 있다. 특유의 불맛이 특징.
한국식 중화 요리는 상대적으로 녹말, 돼지기름, 조미료가 많이 들어가는 편이라 끈적하고 진한 맛을 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기름을 아낌없이 쓰기 때문에 느끼해서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이런 맛이 나지 않으면 중화요리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기름에 튀기는 것은 단순히 바삭한 맛을 내는 것 뿐만 아니라 지용성 불순물을 드라이클리닝하듯 걸러내면서도 재료 특유의 맛을 잃지 않게 하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물론 이것도 가게마다 차이는 있을 것이다.
물론 아주 다르지만은 않다. 본토식과 너무 차이가 많이 나면 그건 그냥 한국 요리이기 때문. 대표적으로 양파를 엄청 많이 사용하는데 온갖 소스에도 양파가 들어가고 볶음밥에도 들어가며 상기한대로 밑반찬으로 양파가 나오는 것도 실제 중국 요리에 양파가 많이 들어가는 사정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느끼하지만 양파가 밸런스를 잘 잡아주며 감칠맛이 나는 것이다. 다만 양파를 대량구입할 수 없던 시기엔 직접 양파를 다듬어야 했던지라 주방이 눈물바다가 되곤 했다고(...). 더불어 소고기가 근소하게 우세한 한국에서 돼지고기가 적극 사용되는 몇 안되는 요리 분야인 것도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중국식 요리[9] 의 영향이다.
4. 기타
한국식 중화 요리하면 배달 음식으로 유명하다. 정작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 본토에선 2천년대 초반까지도 음식 배달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다고 하니 차이점이라면 차이점.[10][11] 초창기 한국의 중국집에선 나무 가방으로 배달을 했으나, 철가방이 등장하면서 이후 본격적인 배달의 기수가 되었다. 21세기 이후부턴 플라스틱 가방도 가볍고 들고 다니기 편해서 늘어가는 추세인 듯. 자전거를 이용하던 시절도 있었으나, 배달용 스쿠터이 등장하면서부턴 보다 편하게 배달할 수 있게 되었다.
중화요리집은 다른 음식점들에 비해 노동력이 장난 아니게 들어간다. 기본적으로 주방기구들 또한 무거운 종류가 많다. 중화냄비는 물론이고 주방칼 또한 클리버에 가까운 걸 사용한다. 오픈식 주방으로 된 중국집에서 요리사가 커다란 팬으로 재료들을 빙글빙글 돌리며 볶아내는 걸 보면 신기할 정도. 거기다 기름냄비 앞에 튀김을 하거나 센불에 바로 볶아내는 형식의 요리가 많으므로 주방에 들어가면 사우나를 방불케 하는 정도다.[12] 그래서인지 일반적으로 오랫동안 중화요리를 해온 주방장 같은 경우 팔뚝이 엄청 굵고 기름이 튀어서 생긴 화상자국이 피부병처럼 보일 정도로 많다. 또 이렇게 고된 일이다 보니 중화요리집은 여성 주방장을 보기가 꽤나 어렵다.[13]
중국집 밑반찬으론 단무지, 양파가 대세였고 지금도 그러하나, 김치를 주는 곳도 종종 있다. 하지만 화교가 운영하는 정통 중화요리점에서는 이런 것들보단 절인 오이와 찐 땅콩 등을 내주는 경우가 많다. 21세기 들어선 중국식 장아찌인 자차이#s-3를 주는 곳도 많아졌다.
일단은 '''중화'''요리라서인지 한자서 따온 이름이 많으나, 일본 등의 영향이 뒤섞인 단어도 있고 하다보니, 정작 메뉴명은 한국식도 중국식도 아닌 국적불명의 명칭이 생각보다 많다.
5. 종류
- 돼지고기류
- 탕수육
- 라조육
- 깐풍육
- 유린육
[1] 참고로 동북3성 요리도 몽골 요리, 한국 요리, 러시아 요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국, 러시아 요리의 경우 근현대 시기 이 지역에 조선인, 러시아인들이 몰려와 살던 영향을 받았다.[2] 근대 이전에도 화교들이 대거 들어온 적은 종종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후 동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3]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청요리란 단어를 흔히 찾아볼 수 있었지만 요즘엔 사어화되는 추세. 다만 아직도 청요릿집을 표방하는 식당들이 드물지만 있다 보니 청요리란 말이 쓰이는 곳도 있다고 한다.[4] 짬뽕의 원류를 중국 산동성의 '초마면'으로 보는 설도 있지만, 기존 각주의 설명대로 초마면이 짬뽕의 중국어 명칭이므로 이로 바꾸는 언어 순화운동을 벌인다는 이야기는 모순이 있다. 왜냐면 일부 화교가 운영하는 중화요리점에서는 이미 초마면이라는 하얀 국물의 중화요리집의 '우동'에 가까운 메뉴를 파는 곳이 있는 데다, 지금의 짬뽕과는 전혀 다른 요리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동일하다고 생각할 순 없기 때문.[5] 일본의 야끼교자나 야끼우동과는 다른 요리. 대구 지역의 한 가게에서 개발되었다 21세기 수도권으로 올라오면서 '볶음짬뽕'이라는 좀 더 이해하기 쉬운 명칭으로 바뀌었다. 사실 이 요리를 개발한 사장도 일본식 어감 때문에 메뉴명을 바꿀까 고심하기도 했다고 하니 정확하게 따지면 야끼우동은 일본이랑은 좀 연관성이 떨어지긴 한다.[6] 오히려 짬뽕처럼 매운 요리가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편이다.[7] 이른바 작장면. 헌데 이 작장면조차도 중국 북부 일부 지역에서 먹는 요리라 남부쪽 사람들은 잘 모른다.[8] 초마면이 기원이란 말도 있으나 이쪽이 더 유력한 설이다. 자세한 내용은 짬뽕 항목 참조.[9] 단적으로 말해서, 돼지고기 생산, 소비, 수입 모두 중국이 세계 1위 국가다.[10] 중국에서 음식 배달이 본격적으로 정착된 시기는 매우 늦어 2000년대 후반 또는 2010년대 와서부터라고 한다. 물론 지역마다 차이가 있을 순 있다.[11] 그도 그럴 것이 중화권은 집에서 먹는 일이 드문, 원체 외식문화가 발달한 지역이다.[12] 중국은 고대부터 석탄을 민간연료로 널리 사용했으므로 센 화력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요리가 많이 발전되었다. 옛 중식주방에선 알몸(!)에 앞치마만 입고 요리를 했었다니 말 다했다. [13] 사실 요리는 여자나 하는 것이라는 가부장적 통념은 실제로는 가정집 주방에서만 통하는 것으로, 가정이 아닌 식당 단위로 넘어가면 오히려 여성 조리사를 찾아보기가 몹시 힘들다. 요식업 자체가 굉장히 강도 높은 체력을 요구하기 때문. 실제로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군주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헤드셰프급 보직들은 대부분 남성이였고 이는 현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예를 들어 북한 김정일의 전속 주방장 후지모토 겐지도 남자였다. 지금은 꽤 알려진 사실이지만 2천년대 드라마 대장금에서 주방에 여성 나인들이 잔뜩 있던 것은 일종의 판타지로 실제로 요리사는 남성이 대부분이였고 여성 나인들은 간단한 보조 작업 위주였다.#[14] 볶음짬뽕의 밥 버전으로, 볶음덮밥이라고 보면 된다. 다만 중화비빔밥은 야키덮밥에서 국물이 없는 스타일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15] 일부 중국집에서 판매하기는 하는데 인지도가 많이 낮긴 하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고.[16] 쉽게 말하자면 잡탕밥. 즉, 잡다하게 이거저거 넣어서 만든 덮밥이다. 때문에 일부 중국집에서만 존재하며, 중국집별로 레시피가 다른 경우도 있다.[17] 유래로만 따진다면 중화 요리의 한 종류에 속하기는 하지만 간식류의 인상이 강해서 중국집에서 따로 팔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