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수/비판 및 논란
1. 개요
아직 젊은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전문성과 상관없이 온갖 이슈가 몰리는 곳마다 발을 담그는 데다 워낙 대외활동을 활발히 하고 SNS 활동 또한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다보니, 수많은 논란거리들을 만들어냈다. 2018년까지는 특유의 여성혐오/남성혐오 이중잣대와 메웜 옹호 주장으로 인해 주로 남초 커뮤니티에서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러다가 2019년 1월에는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의 목포 부동산 매입과 관련해서 이를 이익충돌금지원칙위반으로 맹비난하여 어그로를 끌었다.
2. 상세
2.1. 위법성조각사유의 입증책임에 관한 무지
애초에 홍성수 교수가 국내 인터넷 공간에서 유명인사가 된 것은 법률에 대해 무지한 진중권과의 법리논쟁에서 승리한 데 힘입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2012년 1월 정봉주의 구속에 대해서 진중권이 '입증책임은 정봉주에게 있다'고 한 것에 대해 홍교수가 자신은 법학교수라고 밝히면서 "피의자는 무죄로 추정되는 게 원칙"임을 말한 데서 비롯된 것.
그러나 이는 어이없게도 법학이론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물론 홍교수의 말대로 무죄추정의 원칙이 형법상 대원칙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일단 범죄사실의 구성요건해당성이 입증된 경우 그 위법성조각사유에 대한 입증책임은 피의자에게로 전환되는 것이 맞다. 이 사안은 홍교수가 주장하는 것과 달리 허위사실 유포죄의 사안이 아니라 명예훼손죄의 사안이다.[1] 일단 피의자 정봉주는 명예훼손의 기본적 구성요건을 충족했다. 이 경우 형법 제310조에 의해 그 위법성조각사유에 대한 입증책임은 피의자에게 전환된다는 것이 판례의 확고한 태도이다.“진중권씨가 (BBK 관련 의혹을) 입증할 책임이 정봉주씨에게 있다고 한 것은 소송의 성격을 잘못 이해 하신 듯. … 허위사실 유포죄로 처벌하고자 하는 형사소송이었기 때문에 입증책임은 검찰에 있습니다.”
결국 우리 법률과 판례에 따르자면, 이 사안은 허위사실유포 사안이 아니라 명예훼손 사안이고, 그 위법성 조각사유에 대한 입증책임은 정봉주에게 있는 것이 맞다. 물론 홍교수는 실무가 출신이 아니고 법사회학 전공이기 때문에 법률이나 판례와 상관없이 인터넷 공간에서 아무 얘기나 자유롭게 할 수도 있다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명색이 법대 교수라는 사람이, 엄연히 존재하는 법리와 판례를 무시하고 법대 1~2학년생이나 주워 섬길 원칙론만으로[2] 진영논리에 편승하여 다수 네티즌 입맛에 맞는 발언을 하고 스타 법학자로 등극[3] 한 것은 코미디였다고 볼 수 있다.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가 형법 제310조의 규정에 따라서 위법성이 조각되어 처벌대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는 그것이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 해당된다는 점을 행위자가 증명하여야 하는 것이다(대법원 1988.10.11.선고 85다카29 판결, 1993.6.22.선고 92도3160 판결, 1996.5.28.선고 94다33828 판결 등 참조)
이후, 홍교수는 위 관련 기사에서 자신의 취지가 진중권의 몇 가지 오류를 지적한 것에 그칠뿐, 그의 문제제기 자체에는 대부분 동의한다고 밝혔다.[4] 다만 자신의 오류에 대해서는 끝내 인정을 하지 않았다.
2.2. 영국 최저임금제 예찬 논란
2015년에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최저임금제 대폭 인상 논쟁이 불붙자 여기에 뛰어들었다. 페이스북에 2시간치 최저임금으로 장을 본 사진을 올려 화제가 된 것.
홍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2시간 치 최저임금(13.4파운드, 약 2만 3천 원)으로 장을 본 결과 돼지고기와 맥주 한 병, 1.1리터 우유와 오렌지 주스 1병, 감자 1봉지, 양상추 1개와 버섯 1통, 토마토와 딸기, 요거트까지 구매할 수 있었다. 반면 당시 한국의 2시간 최저임금 1만 1600원으로 살 수 있는 건 생수 1통, 바나나, 라면 2개, 감자 두 개와 고기 한 팩 정도였다.#“영국 여행 가보면 살인적 물가에 놀라죠. 그런데 영국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1만1천원. 물가는 우리의 두 배 가까이 되지만, 최저임금은 우리(4천6백원)의 2.4배. 우리 삶이 얼마나 퍽퍽한지 알 수 있습니다. 영국의 빅맥셋트는 무려 7천4백원. 하지만 맥도날드에서 한 시간만 일해도 1만1천원 받습니다. 빅맥셋트 라지에 아이스크림까지 사먹어도 돈이 남죠. 한국 최저임금 4천6백원으로는 빅맥셋트가 5천2백원이니 언감생심이고요. 맥런치는 가능;; 영국의 연금제도 우리보다 좋고, 무상의료에, 교육비도 우리와 비교가 안되는 수준. 최저임금 2.4배. 최저임금으로도 세계최고 물가 수준의 런던 한복판에서 대략 살 수 있습니다. 서유럽 최악의 복지수준을 자랑(?)하는 신자유주의 종주국의 현실이 이 정도입니다. 요즘 한국의 대학생들이 최저임금 노동을 많이 하는데, 주당 15시간 이상 일하면, 정상적인 대학생활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커피숍 같은 곳에서 주 20시간 일해서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겨우 월 40만원. 이걸로는 기숙사비 내기도 부족합니다 ㅠ 이게 지금 대한민국 현실입니다. 사실 '알바'라는 개념이 이상한거죠. 모든 노동에는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어야 합니다. 주 40시간 일하면, 누구나 인간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임금은 받아야 합니다. 최저임금이 월 100만원도 안된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한국의 최저임금 4천6백원으로 뭐를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시면 비교가 되실 겁니다. 만약 '최저임금'으로 마트에서 장을 보면 차이가 더 벌어질 거에요. 장바구니 물가는 더 싸거든요. 그 와중에 한국에서는 내년도 최저임금이 4860원으로 결정되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영국의 살인적인 주거비용 얘기는 왜 안 하는가", "영국 의료서비스가 무상인 대신 개판이라는 얘기는 왜 안 하는가", "유럽의 식자재물가가 우리보다 훨씬 더 싼 이유는 농수산물시장이 완전개방된 것, 유통분야에서 중소기업 업종보호가 없다는 것이 큰데 왜 그 얘기는 안 하는가" 등의 비판이 제기되었다. "우리나라도 영국 따라서 무턱대고 그렇게 최저임금만 올리면 시간제 일자리만 줄어들 게 뻔한데 그런 경제학적 상식 없이 영국과 단순비교해서 최저임금 올리자고만 하는가" 등의 비판은 덤. 경제학적인 연구와 종합적인 분석 검토 등은 하나도 없이 어디든 뭔가 자기가 끼어들 수 있겠다 싶으면 일단 뛰어들어서 말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제기되었다.
그래도 이러한 홍교수의 글에 대해서는 절대 다수의 진보 네티즌이 열렬한 지지와 찬사를 보냈다. "최저시급 1만원으로 올리면 당장 내수부터 산다. 이게 노동자들만을 위한 것 같은가? 당위성은 누구도 부인 못한다. 오로지 대자본가들만이 반대할 뿐이다." 같은 글이 최다 추천 댓글이 되었던 게 그 예.# 어쨌든 이러한 홍교수의 활동 덕분에 최저임금 대폭 인상론은 대세가 되었고, 문재인 정권 집권 이후 최저임금은 실제로 큰 폭으로 인상되었고 그 효과에 대해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2.3.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은 여성혐오가 원인?
2016년 5월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 경찰당국은 처음에 이를 가해자의 조현병 증세와 연관시키려 하였다. 하지만 이에 대해 홍성수 교수는 2016년 6월 4일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방송에 출연하여 이 사건이 혐오범죄, 즉 남성의 여성혐오로 인한 결과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범죄자 개인에게 실제로 조현병 증세가 있었든 없었든 상관없이, 이를 사회현상으로 놓고 보면 여성혐오를 원인으로 볼 수 있다는 것.
“피의자의 ‘여자들에게 항상 무시당했다’는 언급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습니다. (중략) 이 문제를 “여성혐오범죄다”라고 부르는 것이 유의미한 것은 이 문제를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범죄자는 “여자들에게 항상 무시당했다”고 언급했고, 그 언급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습니다. 전형적인 혐오범죄의 양태(대상 집단의 공포와 분노)가 나타난거죠. 그런 분노를 둘러싼 사회적 맥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그 뿐만이 아니라 홍교수는 오마이뉴스 등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묻지마 살인은 잘못된 표현... 여성 타깃으로 한 혐오범죄"라 주장했고,# 연일 페이스북에 이와 관련된 글을 올려, 남성 네티즌과 여성 네티즌 간의 젠더 전쟁을 촉발시켰다."어떤 나라에 이민을 갔는데 오로지 '한국 출신'이라는 이유로 폭력을 가하는 범죄가 빈발하는 상황을 가정하시면 됩니다. 그래도 그 나라에서 살만할 것 같다고 생각하신다면, '오버'하지 말라고 말할 자신이 있다면, 이 문제도 심각하게 안보시겠죠." #
홍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는 구체적 정황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막연한 법사회학적 지식만 갖고 끼어들어 사회적 여파를 불러 일으켰다는 비판이 많았다. 시청률에 미친 방송국, 선정성에 목말라 하는 언론사와 페미니즘에 경도된 교수가 합쳐져서 해당 범죄에 대한 우리나라 경찰 프로파일러팀의 분석과 전문가적 의견이 홍교수의 개입으로 인해 묻혔다는 의견이 많다.
2.4. 남성혐오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후 2016년 8월 23일 홍성수 교수는 ‘사이버공론장에서의 혐오와 모욕표현 이대로 괜찮은가?’ 주제의 언론중재위원회 세미나에 참가하여 ‘혐오’를 ''''소수자 집단'''에 대한 극단적인 부정적인 관념이나 감정'으로 축소해서 규정하였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만이 혐오에 해당하기 때문에, '여성혐오'는 존재할 수 있지만 '남성혐오'는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
그러나, 홍성수 교수의 주장과는 달리 미국에는 백인혐오로 인해 흑인이 백인을 살해했다는 결론이 난 판결이 실제로 존재한다. 애초에 혐오는 소수자, 비소수자를 가리지 않는데, 단지 사회에서의 파장 측면에서 소수자에 대한 혐오의 파급력이 더 크고, 소수자는 이런 차별 행동에 대한 저항력이 약하다고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백인 혐오가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그러한 이유로 남성혐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홍성수 교수의 주장은 잘못된 주장이다.“혐오는 일시적이고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소수자집단에 대한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관념이나 감정을 뜻하는 것으로서, 특정한 이데올로기, 예컨대 인종주의, 호모포비아, 제노포비아, 자민족중심주의, 반유대주의, 백인우월주의, 성차별주의 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중략)...메갈리아 게시물들이 남성을 혐오하는 감정을 표출하고 있기는 하지만, 남성을 소수자 집단으로 보기는 어렵고, ‘hate speech’를 지칭하는 혐오표현의 개념에서는, 주류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백인에 대한 혐오표현’이 불가능한 것처럼, ‘남성에 대한 혐오표현’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
또한 홍성수 교수는 2017년 2월 국가인권위원회 혐오 실태 조사 보고서에도 혐오는 소수자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전제했고, 서울시립대학교 2018년 1학기에 한 수업의 초청강사로 와서도 이와 같은 대답을 하였다. 여전히 여성(소수자)에 대한 남성(비소수자)의 차별은 혐오라고 하면서, 남성(비소수자)에 대한 여성(소수자)의 차별은 혐오가 아닌 분노라고 설명하는 이중잣대를 보인 것.[5]
그런데 애초에 혐오, 또는 혐오표현에 대한 정의는 각 교수나 단체마다 다름에도 불구하고,[6] 홍성수 교수가 혐오의 정의를 자신의 입맛대로 재정의하여, 혐오는 소수자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전제로 논리를 전개한 것은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본디 혐오표현 혹은 증오발언은 'Hate Speech'라는 영어를 번역하면서 나온 단어로서, 해당 문서에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해외에서 이 단어의 정의는 '''소수자만을 한정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에 혐오표현의 명확한 정의가 없다는 헛점에 착안해, 자신의 교수라는 권위와 언론에서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지속적으로 혐오와 혐오표현의 정의를 바꾸려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홍성수 교수의 주장은 실제로 메갈리아나 워마드 등의 여초사이트나 페미니즘 단체에서 적극적으로 원용되고 있다. 이들은 홍성수 교수의 주장에 근거하여 지속적으로 남성혐오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대한민국의 젠더 분쟁을 심화시키고 있다.
2.5. 미러링 옹호 논란
2018년 1월 5일, 홍성수 교수는 ''''말이 칼이 될 때''''라는 저서를 발표했다.# 이 책에서 홍교수는 ‘여성혐오도 나쁘고 남성혐오도 나쁘다’는 남성들의 시각을 ‘양비론’이라고 규정하며, 남성들이 ‘미러링’의 의도를 오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혐오표현’이란 ‘힘 있는 다수’가 ‘힘없는 소수’에게 가하는 차별적·공격적 언행으로 한정해야 하므로, ‘힘없는 여성들이 행하는 남성 상대의 미러링은 혐오 발언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애초에 그 미러링이라고 하는 게, 실제로는 여초 커뮤니티에서 그간 행해지던 사이버폭력과 악플에 대한 사후정당화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많았다.[7] 메갈리아 등의 남혐 커뮤에서 내로남불을 시전한 이후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던 개념을 명색이 법학자라는 사람이 대놓고 옹호한 것.[8]악에 대해 악으로 되갚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제법 그럴듯한 논리지만, 이것은 미러링의 취지를 오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러링은 뒤집어서 보여주기 위한 것이지, 그 자체로 혐오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 또한 그 사회적 효과를 보면, 여성혐오와 남성혐오가 똑같은 문제를 낳고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여성혐오적 말이 여성차별을 확대 재생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러링 차원에서 발화되는 남성혐오적 말이 남성차별을 확대 재생산한다고 볼 수는 없다. - 저서 「말이 칼이 될 때」 중에서
게다가 홍교수는 ‘다수’가 ‘소수’에게 행하는 폭력만이 혐오표현이라고 했는데, 이는 ‘소수’에게 단지 그들이 ‘소수’라는 이유만으로 상대편에 대한 온갖 폭력과 패악질이 가능하도록 백지수표를 발급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언더도그마 문서 참조) 그들이 그저 ‘소수’이기만 하다면, 취사선택되거나 왜곡된 통계,사실관계를 유포함으로써 공포를 확산시키든, 상대 집단 전반에 ‘잠재적 가해자’ ‘혐오성향’ 등의 낙인 프레임을 씌움으로써 이른바 소통의 원천봉쇄를 하든,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만든 것. 이는 당연히 진보진영에 분열과 혼란을 일으켜, 다수의 지지와 사회적 연대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정치사회적 추동력의 상당부분이 상실되게 만들었다. 나아가 사회적 연대의 가능성을 봉쇄하고 진보운동에 대한 20대 남성 집단의 반발이 일어나도록 만들었다.
특히 성별 대립 프레임에서 더 나아가 '남성=다수, 여성=소수 프레임'에 근거한 홍교수의 미러링 정당화가 더욱 어이 없었던 것은, 논리적으로 여성들의 미러링 역시 ‘다수’가 ‘소수’에게 행하는 폭력이 아니라고 볼 수도 없다는 데 있었다.[9] 메웜들은 여성들이 다수를 점하는 공간에서 소수인 남성들을 더욱 매섭게 몰아붙였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이 연대를 호소하는 여성 내부에서도 소수의견을 용납하지 않고 소수파를 '흉자' 또는 '명자'로 몰아붙이며 사상강요를 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등 차별적이고 파시스트적인 행동을 일삼았다.[10]
위와 같은 점에 근거하여 평론가 박가분은 다음과 같이 홍교수의 저서를 비판했다.
홍 교수는 안일하게도 ‘여성의 정치적 주체화에 기여했으니 메갈리아의 미러링이 일부 극단화되었다고 해서 미러링 전체를 싸잡아 비난해서 안 된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러나 여기서 홍 교수가 결코 대답하지 않는, 아니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꼬리를 문다...(중략)...무엇보다도 누군가의 정치적 주체화를 위해 다른 누군가가 집단적인 사이버 폭력과 린치의 희생양이 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과연 ‘진보’가 평소 내세우던 정의관에 부합하냐는 것이다.
진보진영은 이미 탈냉전 시대 이후 자신들이 낳은 전체주의적 폭력성에 대해 이와 비슷한 질문을 여러 번 받아왔지만, 매번 수준 낮고 실망스러운 대답을 내놓았다. 홍 교수의 책도 바로 그 실망스러운 대답의 연장선에 있다. 메갈리아를 옹호하는 우리의 인권법학자는 과거의 적색테러를 옹호하던 서구 좌파 지식인들의 오류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홍 교수는 정말로 혐오표현의 용법을 개인이나 집단의 의도 아래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지를 스스로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홍 교수 역시 혐오표현이 지닌 전염성과 확산성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메갈리아의 자칭 미러링만큼은 무해한 저항의 수단으로 활용될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에 집착하고 있다. 무엇보다 홍 교수는 현실 속의 강자 vs. 약자, 다수 vs. 소수라는 권력 구도가 남성과 여성이라는 범주를 가로지른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 대다수의 진보파가 섬세하게 성찰하기를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지점이다.#
2.6. 펜스 룰에 대한 비판 논란
2018년 3월 미투운동이 날로 확산되는 것에 대항하여 '펜스 룰'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자, 홍성수 교수는 이에 대해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 '펜스 룰'을 명분으로 하는 교류의 단절이 또 다른 차별로 이어진다는 것.
하지만 이에 대해 펜스 룰은 남자들 입장에서 불가피한 방어기제라는 반박이 많았다. 단순히 '예쁘다'란 말도 여성혐오가 되고, 그냥 한번 쳐다본 것조차 시선강간이 되는 등 성희롱의 기준이 모호한 상황에서 언제든 실수할 수 있다는 공포에 사로잡힌 남성들이 펜스 룰로 방어막을 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냐는 것.#조직의 상층부를 남성들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과의 개별적·비공식적 교류가 차단되면,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여성들에게 불리한 장벽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출장 같은 공식 업무에서 여성이 부당하게 배제되거나 채용·승진에서 탈락한다면 그건 아예 불법적 차별이다. 이것이 미투운동이나 반성희롱·반성폭력 운동이 지향하는 ‘성평등’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교수는 계속해서 펜스 룰을 남성 측의 단순무식하고 '''저열한 대응'''이라 매도하며 비난하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홍교수 역시 이러한 일방적 비난을 통해 그동안 여성계에서 펜스 룰의 문제점으로 주장해온 '소통 거부'와 '차별'을 남성들에게 시전했다는 점.
2.7. 워마드 옹호 논란
2018년 7월에는 워마드의 패륜적 행위를 아예 대놓고 두둔하기에 이르렀다. 2018년 7월 10일[11] 온라인 커뮤니티 ‘워마드’ 게시판에 성체 훼손 사진이 올라오는 사건이 일어나자(워마드 성체 훼손 사건 참조), 2018년 7월 12일 자칭 혐오표현 전문가인 홍성수 교수가 이것을 혐오표현이라 보기 어렵다며 적극 옹호에 나섰던 것.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가톨릭이 탄압 받는 소수종교는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홍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여성들이 ‘재기해(자살해)’라고 외친 것도 “혐오표현의 문제는 아니다. 소수자(약자) 차별과 무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여러 비판이 가해졌다. 특히 진보적 역사학자 전우용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갈등이 심한 것도 문제지만, 갈등을 표출하는 방식이 너무나 패륜적인 것이 더 문제다” “약자의 강자에 대한 ‘혐오감’은 정당할 수는 있지만 인류의 상식과 보편윤리에서 벗어나는 ‘혐오표현’은 어떤 궤변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그 후 며칠 뒤에 워마드 여성 회원이 낙태한 남자 태아를 가위로 조각조각 토막낸 뒤 그 사진을 커뮤니티 게시판에 자랑스럽게 올리고, 다른 회원들이 그 행위에 동조한 사건이 일어나자,(워마드 남아 낙태 인증 사건 참조) 전우용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후 2019년 1월 홍교수는 워마드 폐쇄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표한 적이 있는데, 이것이 과거 워마드를 옹호한 전력과 겹치게 되면서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워마드와의 전쟁'을 선포한 바른미래당 하태경·이준석 최고위원의 행보를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치"라고 비판하면서 워마드 폐쇄는 '전혀 엉뚱한 해법'이며, "그런다고 20대 남성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지 않으냐"라고 주장하면서다.#"제 분노가 향하는 대상은, '여성의 남성에 대한 혐오 표현은 언제나 정당하며, 혐오표현이 성평등을 앞당긴다'고 주장했던 지식인들입니다. 인간의 끔찍한 도덕적 파탄을 부추겨 놓고도 반성하지 않는 '지성'이야말로, '무한 혐오'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동안 워마드 회원들에게 '여성해방의 전위'라는 헌사를 바쳤던 지식인 중에 반성하는 인간이 나오지 않는다면, 저 패륜 집단도 결코 반성하지 않을 겁니다."
홍교수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 남초 커뮤니티에서 "읔 숙대" "숙대에서 쇠경 받아먹으니 저런 소리 할만하네" "'혐오 표현' 전문가는 먼가요 ㅋㅋ" 등 냉소적인 반응이 많았다.엠팍[12] 하지만 이와 반대로 과거 홍교수는 일베 폐쇄 방침 또한 표현의 자유 침해를 들어 반대한 전력이 있는 만큼# 워마드 폐쇄 역시 같은 접근으로 이러한 주장을 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존재했다.
2.8. 숙대생들의 김순례 동문 옹호 관련 논란
2019년 4월 8일에는 숙명여대 총학생회가 김순례 동문의 5.18 민주화운동 폄훼에 대한 성명서를 철회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철회의 이유는 ▲김순례 동문에 대한 규탄이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도덕적 검열'''을 더욱 공고히 하는 데 일조하고, ▲정치적 행동을 이유로 동문을 규탄하는 것은 향후 숙명여대 내의 '''여성 네트워크 형성'''을 저해하며, ▲ 518민주화운동은 '''의견이 대립하는 사안'''이기 때문에[13] 이러한 취지로 숙명여대 중앙운영위원 압도적 다수가 철회 쪽으로 표결함에 따라 숙대 총학생회는 철회 성명을 발표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는 이른바 진보 페미니즘을 외친다는 숙명여대에서 재학생 다수가 '5.18 유공자들은 괴물 집단'이라는 망언의 발화자 김순례에 대해 그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역사왜곡[14] 까지 자행하면서 까지 쉴드를 쳐준다는 것, 다시 말해 숙대생 다수가 워마드의 추종자들이라는 것이어서 많은 사람들의 쓴웃음, 그리고 나아가 분노와 우려를 자아냈다. 홍 교수 역시 2019년 4월 9일 페북에 "정신적 내상을 크게 입었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는데, 이에 대해 몇몇 네티즌들이 홍교수의 페북으로 몰려와 "워마드의 이런 행태가 하루이틀도 아니고 숙대생 다수가 워마드라는 건 비밀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무슨 충격이냐" "그동안 워마드를 적극 옹호해왔던 당신 역시 이런 사태에 책임 있는 것 아니냐"는 추궁을 해댔다.[15] 그러자 홍교수는 대략 다음과 같은 긴 글을 자신의 페북에 올렸다.#
그러나 이러한 홍교수의 변명에 대해서는 대체로 ''''비겁하다''''는 평가가 대종을 이루었다.# 특히 "워마드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어서 정해진 실체가 없으므로 비판이 무의미하다"는 홍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는 "이런 논리라면 세상에 비판 가능한 게 무엇인가?", "일베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는데 일베는 그럼 비판가능한가?"라는 냉소가 쏟아졌다. 그리고 "메갈출신 중에 '''뛰어난 실천'''을 하는 분들이 많다"는 홍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도 "이런 논리라면 1970년대 유신독재세력이나 1980년대 신군부세력 중에도 뛰어난 실천을 한 사람이 많지 않았는가?"라는 반박이 곧장 가해졌다.일단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일부 세력들이 그런 식으로 진화할 거이라는 위험을 몰랐던 것도 아니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것도 전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 잘 알고 있었다.
나만 해도 박사학위 논문 중 한 챕터가 래디컬 페미니즘(정확하게는 래디컬 페미니즘의 법이론)을 다루고 있다.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떠드는 사람들보다야 훨씬 더 상세하게 그 논리와 운동방식, 그리고 한계와 문제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논문의 논지도 래디컬 페미니즘 법이론의 한계를 비판하는 것이었다).
근데 래디컬페미니즘의 내부에만 엄청나게 많은 분파들이 있다. 내 기준으로는 경계해야 하지만 연대해야 할 흐름도 있고,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할 위험한 분파도 있다. 그런데 그 경계는 현실에서 매우 희미하게 나타난다. 심지어 한 개인도 왔다갔다 한다. 그래서 '래디컬 페미니즘에 반대한다'고 외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큰 의미도 없다 (그래서 내 논문에서도 혼란을 피하게 위해 래디컬 페미니즘의 법이론이 이것이라고 정의를 먼저 하는게 매우 중요했다). 사안마다 다르게 판단하고 대처해야 할 뿐이다.
나름 정립된 '사상'도 이러할 진데, 인터넷 커뮤니티인 '메갈리아'나 '워마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메갈리아에 반대한다, 워마드에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은 전혀 아니다. 외부에서 비판하는 분들보다 문제점을 더 잘 알고 더 많은 접촉면이 있는데 왜 걱정과 우려가 없었겠는가?
실제로도 극단주의 분파는 자신들과 다른 페미니스트나 나 같이 남성인 주제에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듯한 남성을 더 집중 공격한다. 문제의식이 없을 수가 없다. 다만 그 실천의 방법은 달랐다. 현실적으로 메갈리아를 타겟으로 비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거기에는 우려스러운 흐름도 있었지만 긍정적인 흐름도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 극단주의가 아니라 매우 훌륭한 페미니즘적 실천을 하는 분들 중 적지 않은 분들이 소위 '메갈 출신'이다.
메갈을 통해 페미니즘에 눈을 떴지만 지금은 여러 영역에서 각자 유의미한 실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분화된 워마드는 좀 더 극단주의 성향이 있다. 메갈리아보다는 분명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간단하지 않다. 워마드를 타겟으로 갈라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할 말을 아예 안한 것은 아니다. 워마드 자체를 거론하는 것이 실익이 별로 없기에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고, 특히 '워마드 어케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그 프레임에 말리지 않기 위해 노코멘트한 것 뿐이다.
그 대신 워마드 자체보다는 워마드발 '의견', 예컨대 난민 혐오, 트랜스젠더 혐오 등 소수자 혐오에 반대하는 의견은 적극 개진했다. 그런 혐오에는 여러 세력이 가담해 있기 때문에 굳이 워마드를 거론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워마드의 한 극단적 흐름을 정면 비판한 것이다. 그리고 워마드는 강고한 단일 조직체가 아니기 때문에 핵심 그룹을 제외하고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주위를 들락거린다.
그런 이들 중 일부는 저쪽 극단에 갔다가 자칫 잘못하면 다른 쪽 극단으로 빠진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얘기가 괜히 나온게 아니다. 한 때 저 쪽 극단으로 갔다가 다른 극단으로 가는 것을 막고 좋은 방향으로 함께 가면서 연착륙하도록 하는 유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극단주의를 고립시키시 위해서도 그렇다. 그래서 여전히 페미니즘 운동은 중요했고, 페미니즘 운동이 이 복잡한 국면에서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수많은 활동가들이 분투했다. 워마드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보다 소수자와 연대하는, 보편적인 사상이자 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이 든든히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더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이것이 하루에 열번씩 "나는 워마드를 반대합니다"라고 외치는 것보다 현실적으로도 더 위력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것은 워마드 반대를 외치는 것보다 훨신 어렵고 복잡하고 힘든 일이었다.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단화를 막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할 수는 있다. 그런데 표면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극단주의 분파가 세력을 더 넓히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건 좀 검증이 필요하다) 오히려 메갈리아 시대를 경유하며, 더 소수화되면서 극단화되었다고 보는게 맞다.
그래서 굳이 '책임'을 묻자면, 그런 실천이 (소수화된) 극단화를 막지 못했다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비록 극단화를 저지하진 못했지만, 그런 실천들이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은 결코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 인권과 평등을 위한 자원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워마드 반대'를 하루에 1,000번씩 외쳤어도 극단화 자체를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홍교수가 "비록 워마드를 반대하지는 않았어도 워마드가 싫어하는 것을 이야기하며 살았다"고 생색낸 것에 대해서도, 차가운 반응이 쏟아졌다. "당신은 워마드가 싫어하는 것이면서 진보주의자들은 다 똑같이 주장하는, 그러니까 딱히 티가 안 나는 거를 이야기했을 뿐, 대개 워마드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비판은 안 하고 오히려 그들의 만행을 정당화하며 살아오지 않았느냐?"는 것.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다수의 진보 지식인과 페미니스트 동지들은 이러한 홍교수를 옹호하고 위로하였다. 그 덕분인지 홍교수 역시 며칠 안 되어 정신적 내상에서 금방 회복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1. "래디컬페미니스트들이 온갖 종류의 약자들을 비하하고 멸시한 게 하루이틀 일도 아니지요. 그러한 가닥들을 전부 무시하고 나팔수 노릇해오셨으면서 뭐가 그리 새삼 충격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2. "같은 맥락에서 봤을 때 5.18 피해자들은 특별법으로 보호 받고 있고, 법원이 5.18이 민주화 운동임이 분명하다고 못 박아줬으며, 국가예산이 일부 투입되어 지원되고 있으니 사회적 약자가 아니고 따라서 혐오표현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거 아닙니까? 소수자가 아니면 혐오표현의 해악이 커지지 않는다고 하셨으니 이 문제도 보는 시선에 따라서는 별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군요. 이런 식의 말도 안 되는 말장난 하지 말고 인간 상호간의 존중을 중시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대해, 양비론이라고 반박했던 저서가 있었을 텐데요. 인간 개인이 다수자 소수자로 명확히 구분될 수 없는 속성의 총체이니 저런 식의 흰소리가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지금 와서 말씀하실 건가요. 수년 전부터 계속적이고 지속적으로 가해진 비판에 대해 궤변을 늘어놓았던 것이 나팔수 노릇이 아니면 뭔가요"
3. "5.18 피해자면서 동시에 사회적으로 성공한 중년 남성이 있다면 이 사람은 소수자입니까 다수자입니까. 이 사람을 비난하는 건 5.18 피해자에 대한 혐오표현이라 문제가 됩니까, 아니면 권력자인 중년 남성이니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습니까."
4. "이런 상황은 진보와 인권의 가치가 아니라 "정체성 정치"로 이념을 설파하고 선동한 결과물이 아닐까요? 지금 페미니스트는 그 어떤 가치보다 여성주의 즉 페미니즘이 최우선이고 그 여성주의를 지키고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그 어떤 가치도 그게 5.18이든 인권이든 기본권이든 홀로코스트든 아무 상관없는 파시즘의 초기현상이 나타나는 게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