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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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고귀한 산마리노 공화국
Serenissima Repubblica di San Marino
Republic of San Marino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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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면적
61.2km²
접경국
[image] 이탈리아[1]
인구
33,931명 (2020)
인구밀도
520명/km²
수도
산마리노
정치체제
공화국, 단일국가, 의원내각제
집정관(총리)[2]
알레산드르 마치니(Alessandro Mancini)
미르코 돌치니(Mirko Dolcini)

공용어
이탈리아어
화폐단위
유로(€)
국가(國歌)
Inno Nazionale della Repubblica
국제연합(UN) 가입
1992년
대한수교현황
대한민국: 2000년 수교
북한: 2004년 수교

표어
Libertas(자유)
국가 코드
최상위 도메인

.sm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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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이탈리아에밀리아로마냐리미니 현의 관할 구역(진한 주황색과 옅은 주황색 칠해진 지역)과 그 주변을 대략적으로 그린 지도. 위 지도에서 RSM이라 쓰인 부분이 산마리노 공화국이다. AR은 아레초(Arezzo)에 속한 월경지이다.
1. 개요
2. 역사
3. 정치
4. 경제
5. 사회
6. 문화
7. 스포츠
8. 외교
8.1. 대한민국과의 관계
8.2. 일본과의 관계
8.3. 중국과의 관계
8.4. 이탈리아와의 관계
8.5. 바티칸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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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유럽의 국가. 유럽에서 중세 이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공화국이다. 바티칸 시국처럼 전 국토가 이탈리아에 둘러싸인 내륙국이다. 정식 국명은 가장 고귀한 산마리노 공화국(Serenissima Repubblica di San Marino)이다. 가장 고귀한 공화국이란 국명은 예전 유럽 공화국들이 보편적으로 쓰던 국명이었는데 산마리노는 이들 국가 중 유일하게 현재까지 남아 있다.[3] 국수주의적 자뻑이 아니라, 국민 주권이 고귀하다는 뜻이다.
세계에서 5번째로 작은[4] 초미니 국가. 국토 면적은 60㎢로 울릉도성남시 분당구보다도 작으며, 안양시, 고양시 일산동구와 거의 비슷하다. 굳이 서울로 치자면 각각 강서+양천, 영등포+구로+동작, 용산+마포+서대문, 은평+서대문+종로, 노원+도봉, 송파+강동 과 비슷하다.
인구는 2016년 기준 33,285명으로 강원도 인제군과 비슷한 수준. 수도는 국명과 동일한 산마리노(San Marino)다. 보르고 마조레(Borgo Maggiore)라는 시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국기에 그려진 세 개의 성벽은 티타노 산에 세워져 있는 세 개의 요새를 그려넣은 것이다. 제1 요새는 과이타, 제2 요새는 체스타, 제3 요새는 몬탈레.
루리웹 유저의 산마리노 여행기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 - 산마리노 여행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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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년 기독교를 신봉한 성 마리노(Sanctus Marinus) 은수자와 로마인들이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기독교 박해를 피해 티타노 산 근처에 소규모 공동체를 이루고 공화제에 기초한 국가를 세웠다. 이후 교황령에 속하였으며, 주권을 유지하면서 티타노 산을 중심으로 주위의 영토를 조금씩 얻어나갔다.
1631년 교황 우르바노 8세가 독립국임을 인정했으며, 빈 회의에서도 1815년 독립국으로 승인, 마침내 전 유럽의 승인을 따냈다. 마리노 성인의 이름을 따 국가명도 산마리노가 되었다.
이탈리아 통일 전쟁에서는 주세페 가리발디가 산마리노에 올라가 숨기도 했다. 이때 오스트리아 제국의 제후국 중 일부가 가리발디와 산마리노를 비난하면서 공격을 가했지만 격퇴했다. 이탈리아 통일 후 산마리노가 독립을 인정받게 된 데에는 이때 가리발디를 도운 공적도 어느정도 정치적으로 고려되었다고 한다.
1918년-1920년 스페인 독감으로 나라 인구의 80%가[5] 인플루엔자 A에 감염되어, 산마리노는 나라 멸망 직전까지 갔다. 산마리노는 스페인 독감으로 인한 환자를 받을 병원이 없는데, 이탈리아는 산마리노는 다른 나라라며 제대로 협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2% 정도인 당시 스페인 독감의 치사율은 산마리노에서 10%에 가까웠다.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치료 대기만 하다가 죽어나가는 사람이 나왔기 때문이다.[6]
1923년 이탈리아 왕국파시스트 정권이 들어서자 산마리노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1922년 결성된 산마리노 파시스트당(PFS)은 1923년 4월에 첫 집정관(줄리아노 고치)을 내었고, 1926년부터 1943년까지 산마리노 파시스트당이 유일 합법정당이 되어 다른 정당의 활동은 일절 금지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산마리노는 중립을 지켰다. 2차 대전 기간 동안 산마리노가 중립을 지킨 이유는 이탈리아와 달리 산마리노는 아돌프 히틀러를 신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산마리노 파시스트당이 집권했지만 방공 협정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무솔리니 역시 산마리노의 중립에 씁 어쩔 수 없지라며 인정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무솔리니가 실각하자 잠시 파시스트 정권이 실각하였다가, 독일군이 이탈리아 북부에 진입하자 1944년 산마리노 파시스트당은 산마리노 공화국 파쇼라는 이름으로 부활하여 집권하다가 동년 11월 해체된다. 덕분에 이탈리아 전선이 생기자 나치 독일군이나 연합군이나 산마리노로 일부 피난하기도 했다고 한다.
1992년 국제연합(UN)에 가입했다.
코로나19로 인해 현재 인구 비례 감염률과 사망률이 최악을 달리고 있다. 인구의 약 11% 감염, 0.2% 사망. 환자 및 사망자의 수 자체는 얼핏 적어 보이지만, 산마리노와 같은 소국에겐 이것도 대단히 심각한 피해이다. 인구 대비 감염률은 안도라, 몬테네그로, 체코에 이어 4번째이고[7], 사망률은 지브롤터에 이어서 2위, 국가에서만 따지면 1위다.

3. 정치





산마리노 의회는 60명의 의원을 뽑고 이들의 임기는 5년이며, 이들이 의원 중에서 집정관을 선출한다. 의석 수에 비해 원내 진입하는 정당이 많으며, 몇 정당은 원내교섭단체처럼 연합을 한다.
집정관은 다른 나라의 총리와는 달리 정부 수반과 국가 원수의 역할을 겸임하며, 6개월이라는 정해진 임기가 있다. 이 자리에는 2명이 선출되는데, 고대 로마 공화정의 전통을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의회에서 2/3이 정족수가 충족되지 못하면 국민투표로 넘기게 되어 있다.
여성참정권은 1959년에 부여되었다.

4. 경제




산중에 위치한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관광업과 우표 발행을 위주로 살아간다. 화폐를 이탈리아와 공유하기 때문에, 안도라처럼 이 나라도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니지만 유로를 사용하는 나라가 되었다.
티타노산에 있는 세 개의 요새 중 제2요새인 체스타 요새는 현재 무기박물관으로 기능하고 있다. 제일 유명한 축제는 중세축제, 국민들의 자발적인 자원봉사에 의해 전개되는 진정한 축제라고 할 수 있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석궁대회. 산마리노의 도시대표와 이탈리아의 도시대표가 석궁실력을 겨루는 것인데 각 팀에서 출전한 선수 3명이 한 조를 이루어 겨룬다. 과녁은 3단으로 되어있으며 제일 높은 중앙의 직경은 겨우 5cm다. 마지막 궁사의 시위가 당겨지면 과녁을 구경객들에게 돌아가며 보인다.
특이사항으로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등록된 자동차 보유 대수가 인구수보다 많은 나라라는 것이다. 인구가 워낙 적은 데 비해 1인당 GDP는 세계 10위권인 강소국이라 그런 듯.
미니국가들이 조세피난처로 먹고사는 경우가 많은데 산마리노는 조세피난처가 아니다. 오히려 법인세소득세이탈리아보다 1~2%p정도 더 비싸다고 한다. 대신에 부가가치세와 같은 소비세는 0%, 즉 면세다. 그러다보니 음식물 가격은 이탈리아에 비해 진짜 미친듯이 싸다.

5. 사회


인구의 97%가 가톨릭이고 다른 기독교 종파들까지 합치면 99%다. 그러나 국교는 없다.
1985년 개교한 산마리노공화국 대학교가 유일한 대학교이다. 텔레비전 방송은 SMtv San Marino가 4개 채널을 운영하며 라디오 방송국 2곳도 있다. 모두 90년대 들어와서 개국했다.

6. 문화


전 국민이 서로 얼굴정돈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8] 공정한 재판이 안 된다고 하여 외국인을 초빙하여 재판관으로 삼는다고 한다.
결혼식은 주로 성당과 정부 청사에서 많이 한다. 정부 청사에서 결혼을 할 시엔 내무부 장관이 주례를 봐준다.
전통 음식으로 파사텔리라는 딱딱해진 빵을 갈아 새우깡 모양으로 만들고 각종 해산물을 넣는 음식이 있다. 옆 도시 리미니의 명물로 유명한 피아디나(Piadina)도 전통 음식 취급을 받는다. 이것들에 와인을 주로 곁들여 먹기에 와인 주유기도 있다. 여기서 집에서 마실 와인을 자신이 가져온 와인통에 담아 가져가는데 한 번에 20~30L를 가져가며 가격은 리터당 2500원부터 시작한다. 루팡 3세 2015년작 TV판의 배경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7. 스포츠


축구FIFA의 회원국이자 UEFA의 회원국이다. 물론 유럽 최약체. 국대축구 관련사항은 산마리노 축구 국가대표팀 참고. 축구리그는 캄피오나토 삼마리네세 디 칼초 참고.
한때 F1 그랑프리를 유치하기도 했다. 대회명은 산마리노 GP. 그러나 실제로 그랑프리가 열린 서킷은 산마리노가 아닌 이탈리아 볼로냐 근처에 있는 이몰라 서킷. 본래 같은 국가에서 두 번 개최하지 않는 것을 규정으로 하는 F1에서 이탈리아가 대회를 두 번 유치하기 위한 꼼수라는 견해가 있다. 94년 산마리노 GP가 유명한데, 이 그랑프리에서 F1의 전설적 드라이버인 아일톤 세나가 레이스 도중 사고로 사망하는 비극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 그랑프리에서는 세나 외에도 롤란트 라첸베르거라는 드라이버가 예선 도중 숨지기도 했다. 게다가 루벤스 바리첼로는 연습주행 도중 중상을 입었다.
야구는 꽤 잘하는 편. 산마리노에는 이탈리아 최상위 야구 리그(IBA)에 참여하는 자체 프로 야구팀이 있다. 스폰서명이 붙어서 T&A 산마리노라는 이름이다. 위키피디아 홈페이지 물론 이탈리아 반도(산마리노 포함) 내의 프로야구 리그는 우리나라나 미국에 비해 인기가 저조하지만, 그래도 그 사이에 메이저로 참여하는 것마저도 대단한 것. 게다가 리그 우승을 네 번, 리그컵을 두 번이나 우승했고, 유럽 전지에서 온 야구 리그 우승팀들이 모여 겨루는 유로피언 컵에서는 세 번이나 우승했고 위키피디아, 꽤 개최한 경력이 있는데다, 상위권을 지키고 있으니, 대단하다고 할 뿐이다. 유럽에서 그나마 잘하는 야구팀들은 이탈리아네덜란드밖에 없는데 이 구석에서 돋보이는 성적을 거두고 있다.

8. 외교



8.1. 대한민국과의 관계



대한민국과는 이전까지 미수교 상태로 있었다가 2000년 9월에 대사급 관계로 수교하였으며 현재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주 이탈리아 대한민국 대사관이 겸임한다. 북한과는 2004년에 수교하였다.

8.2. 일본과의 관계


일본과는 1961년에 영사관을 두다가 1996년 11월에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특이하게도 산마리노 북동쪽에 산마리노 신사라는 일본식 신사가 있다.

8.3. 중국과의 관계


아르메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함께 중화인민공화국을 90일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나라이다. 반면 산마리노는 공항이 없어 이탈리아를 통해 입국해야 하기 때문에 중국인은 사실상 솅겐조약 비자를 받아야 들어올 수 있는 상황.

8.4. 이탈리아와의 관계


이탈리아와는 언어, 문화, 종교 등에서 매우 가깝다. 산마리노와 이탈리아는 이탈리아어가 공용어이고 경제적으로 산마리노는 이탈리아와 교류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또한, 양국은 유로를 공식화폐로 지정했다. 역사적으로도 양국은 로마 제국의 일부였던 적도 있었다.

8.5. 바티칸과의 관계


바티칸과 1978년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간 적이 있다. 이탈리아 조각가 파치니의 작품을 우표에 인쇄할 권한, 즉 저작권 논쟁이 불거져 발생했다. 산마리노 정부가 바티칸 궁전의 일반인 알현실에 걸린 파치니의 작품을 인쇄한 기념 우표를 발행하려 하자 교황청은 즉각 반발, 산마리노 정부가 이를 강행한다면 무력 행사를 불사하겠다고 통보했다. 결국 산마리노 정부는 우표 발행을 포기하고, 대신 '인기 있는 크리스마스 상징물'을 넣은 우표 발행에 동의하여 교황청과 합의를 성사시켰다(이상《백과사전에도 없는 바티칸 이야기》59~60쪽에서 발췌).

[1] 국토 전체가 이탈리아에 둘러싸여있다.[2] 이탈리아어로 Capitani reggenti(영어로 쓰면 Captains Regent)라고 한다. 임기가 6개월로 매년 4월 1일과 10월 1일에 교체된다.[3] 다른 가장 고귀한 공화국들은 가장 고귀한 베네치아 공화국, 가장 고귀한 제노바 공화국, 가장 고귀한 루카 공화국 등이 있었으며 모두 사라졌다. 폴란드 리투아니아 연합도 이런 국명을 썼었다.[4] 작은 순서대로 바티칸, 모나코, 나우루, 투발루 순서.[5] 한국의 경우 당시 전체 인구의 40%가 감염된 것을 감안하면 이 80%는 매우 높은 비율이다. 참고로 한국의 경우 치사율은 1.9% 정도로 세계 평균과 비슷했다.[6] 그리고 이 상황은 102년 후에 산마리노와 이탈리아에서 똑같이 재현된다.[7] 지브롤터를 포함할 경우 5번째[8] 는 명백히 과장이고, 몇 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 정도로 보는 게 맞다. '던바의 수(Dunbar’s Number)’라고 해서 옥스퍼드 대학교의 로빈 던바(Robin Dunbar) 교수에 따르면 인간이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고 친밀감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집단의 상한선은 약 150명 가량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