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관료 겸 교수, 외교학자, 제11대 원광대학교 총장.[2]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3] .
2. 생애
1945년 만주국 삼강성(三江省) 자무쓰시[4] 에서 태어나 8.15 광복 후 귀국하여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성장하였다.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외교학과, 동 대학교 대학원 국제정치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5]
1977년 국토통일원(현 통일부) 공산권연구관실 연구관으로 근무했으며, 82년(38세)에 서울대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전두환 정부 때는 일해연구소(현 세종연구소)에서 수석연구위원, 기획조정실 실장 등을 지냈다. 노태우 정부 때는 민족통일연구원 부원장 등을 지냈다. 김영삼 정부 때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통일비서관, 민족통일연구원 원장 등을 지냈다.
김대중 정부 때는 통일부 차관을 지낸 뒤 명지대학교, 경희대학교 등에서 객원교수로 있다가 국가정보원장 통일특별보좌관을 지냈고, 2002년 1월부터 2003년 2월까지 통일부장관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고서도 유임되어 2004년 6월까지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석좌교수,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원광대학교 총장 등을 지냈다.
2019년 8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수석부의장에 임명됐다.#
3. 대북정책의 중심인물
기본적으로 이 사람은 어떠한 국가 對 국가의 외교라도 협상과 대화로 모든 것을 풀 수 있다는 대표적인 협상주의 성향 관료이자 학자다. 실제로 체제대결이 극한에 치닫고 반공주의가 치솟던 70년대부터 통일부 관료로 일하면서 국민들 머리속엔 뿔달린 빨갱이 괴물인간만 살 것 같던 북한과의 정상 외교를 위해 열린 실무회의에 참석하고 이를 주관하여 북한 공산당의 외교 담당자들과도 자주 만나 협상했던 경력을 가지고 있다.
80년대 초중반에는 <북한의 통일전략 구도와 통일방안 변천 과정> 같은 논문에서 북한의 통일전략, 평화통일 주장을 논리적으로 분석해 반박(요약 : 선 남한무력혁명, 후 평화정착) 하였기에 보수진영에서 변절자라는 비난을 하기도 한다.
월간조선의 관련 기사
보수진영의 비난에 대해 본인이 라디오에서 아래와 같이 직접 해명하였다.
이 시절에도 정세현은 1984년 국내에 대규모 수해가 났을 때 북한이 인도적 차원의 물자 지원을 제안하자 → 은사였던 서울대 교수 출신 통일원 간부와 함께 북측의 제안을 수용할 것을 주장하는 유연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70년대,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북한이 다른데 어떻게 옛날 북한이 평양에 있다고 생각하고 대책을 논의하느냐"[6]
북한을 직접 방문해 그쪽 고위층과 대화를 나누고 현지 모습을 살필 수 있었던 국무위원 출신 대북 전문가라는 희소성 때문에 정권이 바뀐 뒤에도 북한문제 주요 이슈가 있을 때면, 한국경제신문,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등의 언론사에서 인터뷰나 글 기고 형식으로 의견을 구하곤 하였다.
공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기고문, 자문의 형식으로 언론에 자주 비춰지는 대표적인 전직 통일부 관료. 특히 북한 관련 이슈에 대해서 외교적 협상의 대상이라는 전제를 깔고 북한 관련 사건에 해석 및 논평을 내놓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외교의 성향과 관련이 있어서 추가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 펼치기 · 접기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전에도 김어준의 파파 이스등에도 몇번 출연하여 북한 및 대북제제, 북미관계 관련 국제정세에 대해 해설을 해왔다. 다만, 북한과의 대화 진전이 양 체제 최고 지도부의 결단없이는 쉽지 않은 과정이기[7] . 때문에 대화가 지난할수록, 남북관계가 경색될수록 평가가 크게 갈린다.
비유나 상징 표현을 시의적절하게 구사하며, 출처 분명한 통계 수치로 상황설명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예를 들면,
- 노무현 정부 말기인 07년에야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을 두고 "나이 80에 애를 낳은 격"이란 표현으로 아쉬움을 표한 바 있으며, 2011년 북한 김정은 체제 출범 후 국내 일부 전문가들의 대북붕괴론 주장에 대해, 김정은을 왕족 모시듯 하는 북한 군 고위관계자들의 모습을 제시하며, "14살이든 27살이든 동궁(東宮)은 동궁"이란 말로, 94년 김일성 사망 후 승계과정을 겪어 본 북한의 후계구도는 연착륙하게 될 것이라는 대조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 한국의 대북지원금이 핵개발 자금으로 전용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북한은 05년 한 해에만 무기수출로 10억달러를 벌어들였다."며,[8] 남북경협자금을 전용하지 않고도 무기 개발이 가능한 수준의 자금을 벌고 있었기 때문에, 이북이 우리나라에만 목을 맬 것이라 보면 안 된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다만 미국은 북한이 경협자금을 핵개발에 전용했다고 보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0년 북한이 남북경협자금을 핵개발에 전용했다는[9] 결론을 내렸고, 2018년 트럼프 행정부도 남북경협이 북한의 불법 무기와 미사일 프로그램 증진을 도왔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이 문제의 큰 진전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는, 이후의 남북문제의 진전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10][11]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미 관계가 급박하게 진전됨에 따라 스케쥴이 많이 늘었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때에는 청와대의 초청으로 만찬장에 초대 받기도 했다.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뉴스공장은 거의 반 고정 수준이고 외교 안보 관련한 방송에는 거의 다 출연하고 있다.
2018년 10월 8일 뉴스공장에서 출연했다. 10.4 남북공동선언 기념행사를 위해 방북할 때 북한 관계자들이 여러 매체 인터뷰를 봤는데 결국 국제 정세가 정세현 전 장관의 예측대로 흘러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다만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전망(미국의 대북제재 일부 해제)처럼 빗나가는 경우도 있으며, 철저한 대북 유화파, 대화론을 주장하기 때문에 대북 강경론 주장과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하노이 회담 직후부터 북한의 대남 메시지가 180도 변화했음에도, 이런 언사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을 옹호하며, 대한민국 정부의 독단적인 대북 정책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하지만 북한은 2019년에만 대한민국의 촉진자 역할에 대해 비난하고, 유해발굴사업에 아무런 통보 없이 참가하지 않았으며, 미사일 도발의 감행, 대한민국 정부가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방북을 승인했으나, 북한이 입북을 거부하였고,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불참했다. 6월 2019년 남북미정상회동에서도 김정은은 개인적인 감사는 보냈을지 몰라도 문재인 대통령과 실질적으론 대화를 하지 않았다. 이후 연말까지 크고 작은 도발과,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비난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정세현은 북한의 비난 행태에 대해 북한의 '숨은 의도'와 북한의 '화법' 이면의 행간을 파악하고자 노력하였다.
정세현 본인이 통일원 실무자 시절부터 북한 동향을 다년간 꾸준히 살피면서 북한의 과거 대화 방식과 '화법', 그리고 변화 양상을 파악하는 눈을 갖게 된 덕분에 설득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분석력 덕분에, 김정일 정권 시절 체스판처럼 다양한 대외 전술로 정권에 필요한 것을 얻는 데 주력하는 북한 당국자들 대화 행간을 읽어내고 때로는 우리 관료들이 북한측의 요청에 따라 미국과의 대화 관련 조언을 건네기도 하였다.
- 다만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런 체스판에서 → 권투의 링 위로 북한이 대화 포지션을 바꾼 것처럼 매우 직설적인 모습을 보이는데다 + 미국발 대외변수 + 그리고 남남갈등 구도에서 일부 강경 탈북단체들의 돌출행동까지[12] 예측 어려운 상황이 계속 불거지고 있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그리고 한 번 중용하면 큰 실수 없는 한 10년 넘게 중용되는 북한의 외교, 대남 부서의 담당자들도 조금씩 새 인물이 들어오고 있는 것 역시 우리 관계자들이 새로이 파악에 진력해야 하는 변수.[13]
정세현은 2019년 8월 이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맡고 있어,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례로 대한민국 정부가 2019년 김연철 장관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금강산 관광 추진, 철도 연결 추진 등 지속적으로 북한에게 경제적 혜택을 제공해보겠다고 밝혔던 일 역시 일정부문 정 씨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겠느냐는 요지. 하지만 북한은 이런 것에는 거의 반응하지 않았고, 김연철 장관은 통일부 장관으로서 북한과 단 한 번도 회담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2020년 6월 북한이 탈북자들의 삐라를 명분(최고존엄 모독) 삼아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감행하는 파국 직전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 파견 제안을 공개하며, 문재인 '''대통령'''(실제로 강조 표기를 사용함)이 '간곡히 제안'했으나 김여정이 그것을 단호히 거부하는 모양새로 무안을 준 것. 다행히 며칠 후 미국 헤리티지 재단에서는 이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을 '''연출된 분노'''로 간주하며 대북 제재 완화를 검토할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고,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미관계의 교착상태 책임을 질 사람을 언급하며 사안 확대를 원치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남북미 문제가 2020년 중반기 제1의 핫이슈이자, 당면과제로 떠올랐다.[14]4. 비판
친북 성향의 발언으로 비판받고 있다. 최근에는 반미 성향도 드러내고 있다.
4.1. 존 볼턴에 대한 비난
- 2019년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존 볼턴이 회담 결렬을 주도했다고 주장하며 (한국에는) 재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고 인디언을 죽이면서도 조금도 양심의 가책 없이 자기가 잘했다고 하고 정당화하는 서부영화의 백인 기병대 대장이 생각난다고 비난했다.[15] 인종 문제에 민감한 동맹국 미국의 최고위급 공무원에 대한 '인디언 죽이는 백인 기병대장이 연상된다'는 인신공격성 막말으로 인해# 이번 회담 결렬을 북한의 위장 비핵화 때문으로 보는 사람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또한 "퍼주기 없이 평화 없다"고 말하며 남-북 경협을 전제로 하는 대북 지원을 주장하여, 비핵화 없는 대북 지원은 굴종이자 조공일 뿐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참고기사1 : "퍼주기 없이 평화 없다"참고기사2 : 평화는 공짜가 아니다
-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미국 실무자들은 사실 북한의 비핵화를 바라지 않을 수 있다는 근거없는 주장을 했다. → 대적할 상대가 있어야 사세를 유지할 수 있는 미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와 북한의 비핵화 문제 타결이 서로 상충한다는 게 그 요지이나, 일각에서는 근거가 약한 정치적인 음모론이라 비판하는 의견도 있다. #(위에서 15번째 문단)
- 월간조선은 정세현이 DJ 집권 이전 보수정권 시대에는 반북 성향의 논문을 작성했던 사실을 공개하며, DJ 집권 이후 정세현이 친북으로 변절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이는 보수진영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한데, 정 전 장관이 군사정권 시절부터 공직 생활을 하며 대북관련 실무를 맡았던데서 연유한 것.[16]
보수진영의 비난에 대해 본인이 라디오에서 아래와 같이 직접 해명하였다.
"70년대,80년대,90년대 2000년대 북한다른데 어떻게 옛날 북한이 평양에 있다고 생각하고 대책을 논의하느냐"
본인 해명 발언 영상
"70년대,80년대,90년대 2000년대 북한다른데 어떻게 옛날 북한이 평양에 있다고 생각하고 대책을 논의하느냐"
본인 해명 발언 영상
5. 논란
5.1. 사드 배치 관련 입장
사드 국내 도입 논란에 대해 연합뉴스와 진행한 인터뷰에서는, 우리 경제에서 대'''중'''의존도가 크고 "THAAD배치를 '''철회'''할 때 미국의 보복 가능성에 대해서는 "압력이야 있겠지만 보복이라고 해서 주한미군 철수를 하겠느냐. 그러면 동아시아에서의 패권 유지를 위한 전초기지가 사라지는 셈"이라며 "미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는 엄청나게 주한미군을 줄일 것처럼 얘기하지만 철수론은 공갈일 뿐"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압력을 넣으면 한미동맹을 깨자는 얘기인데, 그렇게 동맹을 압박하겠느냐"는 것. 동시에 "만일 미국이 경제보복을 한다면 중국과 더 손을 잡아야 하지 않나. 그래야 굶어 죽을 걱정이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대통령이 미국을 설득할 만한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걸 강조하며, "사드를 막는 것과 함께 민주정부 10년과 같이 남북관계를 관리할 수 있는 정부가 들어서야 한다"며 "그러려면 대통령이 실력이 있어야 한다. 과거 1994년 김일성 사망 직전 위기 상황 때의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미국 대통령을 직접 설득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합뉴스
5.2. 국정감사 위증
2003년 11월 3일 정세현 통일부 장관이 제주도 민족평화축전에 참가한 북한에 대가를 지불한 것과 관련해 국회 국정감사 도중 위증한 것으로 밝혀졌다. 기사 2003년10월 7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국정감사에서 북한의 참가 대가로 100만달러 제공 여부에 관한 질문에 "사업승인이 완전히 나지 않았다"고 부인했었다. 기사
5.3. "남북관계 파탄 원인은 미국" 발언
2020년 6월 15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김여정의 담화문이나 옥류관 주방장의 막말 등으로 남북관계가 파탄에 이른 배경에 대해 "이러한 모욕, 수모를 당하게 만든 건 미국이다"라며 "미국에 할 말은 해야된다"고 주장했다. 기사지금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 정부가 북한한테 이런 모욕, 수모를 당하고 있다. 이렇게 만든 것은 사실 미국이었다
또 "미국이 사사건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데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개발 때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에 책상 치고 고함 지를 수 있는 용기가 없으면 남북관계는 한 발짝도 못 나간다.”이라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기사
5.4. 김정남 암살 사건 관련
- 2017년 김정남 암살 당시에는 김정남 암살을 김대중 납치와 비교하며 "우리도 비난할 처지 아니다"라 발언,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이 직접 해명했고, 김정남 암살은 "용서받을 수 없는 패륜 범죄이자 테러 범죄"라고 말하며 진화하기도 했다.당시 문재인 후보의 정확한 발언은 아래와 같다.
"(이번 사건은) 인류가 함께 규탄해야 할 테러범죄행위라는 것은 저와 민주당의 단호한 입장"이라며
"정 전 장관의 말씀 취지에 대해서는 제가 정확히 알지는 못하겠지만 그와 다른 뜻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의 말씀 취지에 대해서는 제가 정확히 알지는 못하겠지만 그와 다른 뜻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본인의 직접해명
"권력의 속성을 안보문제로 비화하지 말라는 뜻으로 얘기한것이었지, 김정은 체제의 잔혹사에 눈을 감자는 얘기가 아니었다. "
5.5.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 관련 발언
2020년 6월 17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에 대해 위와 같은 발언하여 논란이 되었다.# 그 15층짜리 건물이란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인데, 이 건물 또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의 후폭풍으로 반파됐다.폭파한 건 사실이지만 옆에 있는 15층짜리 건물에 방이 많다. 거기 다시 들어가면 되는 것.
5.6. 연평도 해역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 발언
'''유가족에게는 유감이지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라는 논조의 인터뷰를 해 비판을 받았다. #
6. 여담
-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옥류관 냉면을 곱빼기로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날 만찬에서 기분좋게 한 잔 하셨는지(...) 만찬이 끝난 직후 출연한 프로그램에서 만찬 메뉴판을 가지고 알딸딸한 상태로 출연했다.
- 2018년 남북정상회담 하루 전 JTBC 손석희 사장과 얘기를 나누며 남북정상회담 결과 및 방향성에 대해 얘기했다.
- 대북 대화론에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난 10여 년 동안 강경책을 내세운 자유한국당 인사들의 주장과 대척점이 서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가 워낙 많다보니, 정 전 장관이 "그 쪽 사람들", "그쪽에서"라 칭하면, 사람들이 자연스레 특정 정당 이름을 떠올릴 정도.
- 미디어에 출연할 때 상당한 수준의 패션 센스를 자랑한다. 항상 완벽한 핏의 수트와 재킷차림에 셔츠와 타이의 매칭이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노신사의 멋을 잘 표현한다. 상당한 고급 제품들을 주로 착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제외교, 특히 적성국이었던 북한,중국의 권력층과 접촉하던 일을 하던 사람이고 북한의 대외 외교에서 상당히 형식미를 중요시하는 것을 맞추다보니 70이 넘은 나이에도 외모부터 격식을 엄격히 갖추는데 익숙한 것으로 보인다.
- 도올 김용옥과는 1972년 대만 유학시절부터 만나 인연이 깊다. 이런저런 문제로 대만 유학을 오래 하진 못했지만 이때의 공부를 계기로 박사논문을 '모택동의 대외관 연구'로 쓰기도 했고, 지금도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두 사람이 같이 공부하며 거의 같은 시각을 가지고 있다.
- 2020년 8월 12일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회복을 위한 공개 좌담회에서 전문가적인 식견을 보여주었다. 모란봉 경기장에서의 문재인 대통령 연설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원고를 사전에 검열하지 않았다고 파악하며, 김정은 위원장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부담되는 수준이었다고 평가했다. 한미 워킹그룹 형성과 동시에 남북 관계 진전에 대한 어려움을 예견했다. 90년대 중반에 북핵 문제에 대해 한미 간의 협력 중 김영삼 정부가 미국에 대해 사사건건 엇박자를 놓으니 한미 공조 원칙을 들고 나오니, 합의를 했는데 이후 미국의 견제를 경험이 있던 점이 첫째,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무리하게 금강산 관광과 개성 공단을 조건과 댓가 없이 제공하겠다고 선언한 점이 둘째 근거였다. 이 외에 북한의 남한에 대한 열등 의식과 고압적인 자세는 표리의 관계로 이해해야 한다고 파악하고 최근 북한의 외교 정책은 선미후남이라는 주장에 동의하며 이는 한국이 국제 정세 사이에서 주도적 역할을 놓친 점을 원인론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 한국 젊은이들이 할로윈을 기념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7. 관련 서적
- <모택동의 國際政治思想>
- <정세현의 정세토크>
- <정세현의 통일토크>
- <담대한 여정-판이 바뀐다 세상이 바뀐다>
[1] 창원 정씨 집성촌이다.[2] 2014년 12월 임기만료.[3] 부총리급[4] 現 중국 헤이룽장 성 자무쓰시[5] 이후 인터뷰에 따르면 이 시기인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 신민당 후보로 출마했던 김대중 후보가 장충단공원에서 수십만의 유권자들을 모아놓고 한 <4대국교차승인론>과 <남북교류협력론>을 골자로 하는 대북 정책 관련 연설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으며, 김대중 대통령의 국제관계 인식을 크게 높이 평가하였다."서울대 교수들보다 훨씬 더 유식해 보였다"라고 언급하였다. <출처 평양갑시다. 333 P> 하지막 정작 김대중 정권시절인 1998년 통일부 차관이 될때까지는 김대중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었다. [6]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를 수 있는 게 국제정세인데, 어떻게 1가지 방법론 및 원칙만 고수할 거냐는 말.[7] 일례로 전두환 정부 때, 대통령이 참모들의 의견을 전격 수용해 비밀리에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했지만, 이를 인지하지 못한 '''여권'''의 반대로 실패한다. 때문에 후임인 노태우 정부에서는 역시 대통령 결단 하에 공개적으로 남북대화를 추진, 7.4 남북 공동 성명(1972년) 이래 최고의 대북정책 성과이자 통일의 기본방향을 담은 남북기본합의서(1991년)를 조인(調印)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8] 2005년 미국 의회조사국 보고서, 유튜브 11분 16초. 다만 이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래리 닉시 한반도 담당 연구원처럼 남북경협 자금의 전용에 의혹을 보내는 시각은 여전히 있었다. 그리고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미국 보수 씽크탱크 기관을 중심으로 남북경협 자금의 핵개발 전용 의혹 조사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한다.[9] 05년 보고서에 관여한 "래리 닉시" 한반도 담당 연구원이 이번에도 작성 전반에 참여하였다.[10] 북한은 여타 공산국가들처럼 민수경제와 군수경제를 분리해서 운용하고 있지만, 북한의 절대권력자인 김정은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전용이 가능하다 보는 시각이 있다. 미국이 2019년 2월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스몰딜을 거부한 것도 남북경협 자금이 북한 핵개발에 전용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11] 탈북자 출신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의 주장에 따르면, 김정일이 용처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자금을 다루는 39호실이라는 부서가 있기 때문에, (이북의 무기판매 실적과 별개로) 개성공단 등 남북경협 자금을 이 39호실 관할로 끌어들일 경우, 김정은이 핵개발 자금으로 전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39호실 자금의 구체적인 모습이 밝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아직은 2015년 홍용표 통일부 장관의 주장(개성공단 유입 자금의 70%가 39호실로 흘러들어가 핵과 미사일 개발에 사용)처럼, 김정은이 가진 수많은 자금원 중에 딱 개성공단의 달러가 핵 개발에 쓰였다고 단정할 증거는 제시하기 어렵다고.[12] 미국이 2차대전 때 ' 일본의 최고 존엄인 천황을 건들지 않았던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기도 하다.[13] 2020년에 북한은 김여정을 전면에 내세우며, 다음 정권 때야 대화를 고려해볼 수 있다는 식으로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비난 수위를 올렸다. 이 때 정세현은 대한민국이 나서서 미국과 연계시켜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라는 요지로 북한의 발언을 해석하였다. 6월 들어 포르노 삐라에(노무현 전 대통령과 + 이설주 사진 + 포르노 배우 몸통을 합성한 물건) 강경한 태도를 보인 김여정이 문재인 대통령의 이름을 거론하며 욕설에 가까운 담화를 내놓은 후에는, 북한이 진짜 무언가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는데, 탈북민들이 설마 포르노를 남북한 지도자 얼굴과 합성한 물건을 삐라로 보냈을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14] 7월 10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주관 하에 진행된 공식 담화에서, 김여정이 미국 독립기념일 행사 DVD를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싶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미국의 반응을 타진하고자 일종의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후문[15] 문제의 백인 기병대장 발언의 정확한 내용은 "저는 그 사람을 보면 인디언을 죽이면서도 조금도 양심의 가책 없이 자기가 잘했다고 하고 정당화하는 서부영화의 백인 기병대 대장이 생각납니다."였다.[16] 사실 정세현은 본래 정치인이 아니라, 대학교수를 목표로 통일부 내에서도 북한 동향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부서에 5년 이상 근무하며 공부를 했던 "학자"이다. 5년 넘게 북한 동향을 살피다 보니, 나름 그쪽 변화의 흐름을 감지하는 전문가가 돼 고위직에도 발탁되며 출세를 하게 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