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보병사단

 




제5보병사단
第五步兵師團
The 5th Infantry Division
[image]
통일의 문을 여는 열쇠부대
창설일
1948년 4월 29일
상징명칭
열쇠부대
소속
[image]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제6군단
규모
사단
역할
연천군 지역 일대를 수색 및 경계
사단장
[image] 소장 이상철(학군 28기)
위치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 궁평리

1. 개요
2. 상세
4. 예하부대
4.1. 사단 직할대
4.2. 제27보병여단 표범(GOP)
4.4. 제36보병여단 독수리 (GOP)
5. 출신인물
5.2. 장교/부사관
5.3. 병
6. 기타
6.1. 사단가
6.2. 안보관광
7. 사건사고
8. 여담

보병사단령
제1조(설치) ① 육군에 보병사단(이하 "사단"이라 한다)을 둔다. ② 사단은 관할구역의 작전·훈련 및 군 행정에 관한 사항을 관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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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국군 제6군단 예하 제5보병사단. 일명 열쇠부대. 공식 상징명칭은 상승 열쇠부대. 부대의 상징도 열쇠. 적색 바탕은 정열과 명예, 백색 원은 단결과 완전무결, 열쇠 문양은 통일의 문을 여는 열쇠를 의미한다. 열쇠모양은 5사단의 숫자 5에서 따왔다. ㅇ부분을 동그랗게 그려넣은 형태이다. 불행히도 GOP철책이 뚫린 사건이 3번이나 있었기에 인근 GOP사단인 옆동네 청성 아저씨들무적태풍 아저씨들에겐 북한군에게 문을 열어주는 열쇠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게다가 병사들 사이에선 휠체어 사단이라는 자조섞인 의미로 불리고 있다. 일단 마크부터가 휠체어를 단순화시킨 것 같고, 상당히 강도 높은 훈련들로 인해 휠체어 신세가 되는 (다치는) 병사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경례 구호는 "단결"[1]
메이커 사단. 사자연대를 제외한 나머지 연대 예하부대의 시설은 열악하기로 소문난 바로 옆 28사단보다도 열악하다.
현재 국군 전 부대에 퍼져있는 5분대기조 시스템이 사단 포병연대 예하 205 포병대대에서[2] 전군 최초로 도입/시행되었다. 또한 전군 최초로 GOP 과학화 경계시스템이 도입된 부대이기도 하다.
주 임무로 중부전선 중심 연천지역 및 철원 일부의 GOP 경계를 담당한다. 사단 좌익에는 28사단, 우익에는 6사단이 위치한다.
제6군단은 해체가 예정되어 있다. 예하 28사단도 해체가 예정되어 있고 일부는 5사단에 예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5사단은 제1군단 또는 제5군단으로 예속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제1군단에는 이미 3개 사단(제1, 9, 25사단)과 해체 후 기갑여단으로 개편되는 되는 제30사단 그리고 제2기갑여단이 있기 때문에 제5군단(제3, 6사단, 제1기갑여단)으로 예속될 가능성이 크다.[3][4]

2. 상세


1948년 4월 29일 경기도 수색에서 제3, 4, 9연대를 기반으로 제5여단으로 창설되었다. 최초 지휘관은 김상겸 대령[5]. 창설 후 여단 주둔지가 전라남도 광주로 변경 되었고, 1949년 5월 12일, 제5보병사단으로 승격되었다. 이때 제15, 20연대가 사단으로 배속되었다. 초대 사단장은 송호성 준장. 이후 1949년 7월에는 백선엽 대령이 사단장으로 부임하였다. 사단은 제15연대를 전주에, 제20연대를 광주에 주둔시켜 빨치산 토벌을 주 임무로 하며 부대 정비 및 교육훈련을 실시하였다. 그 후 한국전쟁 발발 전 제주도 4.3 사건, 여순사건 진압에 동원되었다.
이후 1950년 6월 25일에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육군본부의 소환으로 서울 용산에 올라와 북한군 남하 지연작전에 참여 하였다. 이 시점에는 백선엽이 1사단으로 옮겨가고 이응준 준장이 사단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근데 이때는 말이 지연전이지, 닥치는데로 투입하라는 채병덕의 삽질로 말미암아[6] 사단의 주력인 15연대는 1사단 13연대를 재건하기 위해 해채되고,[7] 20연대가 창동 - 미아리 축선 방어전을 위해 한강 이북에 투입 되었다가 지휘 가능한 연대가 사실상 없어져서 결국 사단 자체가 공중분해 당하기 직전까지 가게 된다.
결국 한강을 방어하지 못한 채 1950년 7월 1일부터 시흥전투지구사령부 예하부대로서 지연전을 전개하며 철수하게 되는데, 철수하는 도중 대부분의 병력이 분산되어 17일에는 기어이 사단이 해체되기에 이른다. 이후 1950년 10월 8일 대구에 주둔 중이던 제27연대, 마산에 주둔 중인 제35연대, 부산에 주둔 중인 제36연대를 근간으로 대구에서 제5보병사단을 재창설하였고, 이 연대들이 지금까지 이르게 된다.[8]
다시 재창설된 5사단은 이후 수많은 전투를 치루게 되는데, 그 중 36연대가 미 2사단 예속으로 치룬 피의 능선 전투[9]가칠봉 전투[10]가 유명하다.
이후 5사단은 1952년 10월에 강원도 351고지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강원도 전선을 북방으로 밀어 올렸고, 이 전선은 지금 강원도에 그어진 휴전선의 일부가 되었다.
이후 강원도 화천에 주둔했던 5사단은 1953년 3월 신편된 제15보병사단과 임무교대 후 후방인 남원에서 지리산 공비 토벌 작전에 투입되다 다시 전방으로 올라가 7월 금성 전투의 핵심 전투인 백암산 전투를 치룬다.
이후 1954년에 강원도 철원, 1960년 경기도 포천, 1971년 경기도 양평으로 주둔지가 변경 되다가, 1977년 당시 전방을 담당하던 제20보병사단에서 대대장 월북사건이 터지며 서울 근처로 재배치되는 바람에 20사단과 임무를 교대하여 1978년 4월 1일 현재의 주둔지인 경기도 연천에 이르게 되었다.
1960년대 후반에 육군 사단 특성화 계획에 따라 3개의 특화사단을 지정했는데, 이 중 제5사단이[11] 1968년 1월 23일부로 공수사단으로 전환됐던 과거가 있다. 특전사에서 공수 위탁교육을 받고 자체 공수교육대도 보유했지만 1년여 만에 다시 일반보병사단으로 회귀하였다.
2020년 국방개혁으로 인해 12월 1일부로 예하 연대들이 여단으로 변경되었다.

3. 신병교육대



제5보병사단 신병교육대 (열쇠신병교육대)
第五步兵師團 新兵敎育隊
The 5th Infantry Division recruit training center

위치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 궁평리 291-3
제35보병여단에서 3대대를 전환해 운용하는 곳이다.


4. 예하부대



국방개혁 2.0 기본계획에 의거, 상비사단과 지역방위사단이 개편돼 예하 연대들 역시 2020년부로 여단급으로 격상되었다.

4.1. 사단 직할대


  • 본부근무대
  • 수색대대 (비마)
  • 전차대대 (번개)
  • 공병대대 (황소)
  • 정비대대(참수리)
  • 보급수송대대
  • 정보통신대대
  • 화생방지원대
  • 의무근무대
  • 군사경찰대
  • 방공중대
  • 보충중대

4.2. 제27보병여단 표범(GOP)


  • 여단본부
  • 군수지원대대
  • 1대대 진격
  • 2대대 철권
  • 3대대 통일


4.3. 제35보병여단 사자


  • 여단본부
  • 군수지원대대
  • 1대대 비사
  • 2대대 철권 - 구: 동막골 2신교대
  • 3대대 추사(신병교육대)


4.4. 제36보병여단 독수리 (GOP)


[image]
  • 여단본부
  • 군수지원대대
  • 1대대 진격
  • 2대대 철권
  • 3대대 용틀임(통일)


4.5. 포병여단 백곰


  • 여단본부
    • 본부포대
    • 표적획득포대
  • 제195포병대대 고대산 - 155mm 견인포, 산악포병
  • 제196포병대대 황룡 - 105mm 견인포
  • 제205포병대대 백호 - 105mm 견인포
  • 제988포병대대 절골 - K9 자주포


5. 출신인물



5.1. 사단장


볼드체는 대장 진급이 된 사단장.
역대 제5보병사단장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예) 소장

사단장

00대
백선엽
예) 대장
군영 00기
합동참모의장, 육군참모총장, 제1야전군사령관
교통부장관
00대
박정희
예) 대장
육사 2기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위원장
대통령
00대
채명신
예) 중장
육사 5기
제2작전사령관

00대
권혁순
예) 대장
육사 34기
제3야전군사령관

00대
박삼득
예) 중장
육사 36기
국방대학교 총장
국가보훈처장
00대
최병로
예) 중장
육사 38기
육군사관학교장

00대
정진경
중장
육사 42기
육군사관학교장

00대
전유광
소장
육사 44기
777사령관

00대
이상철
소장
학군 28기
사단장


5.2. 장교/부사관



5.3. 병



6. 기타



6.1. 사단가



1절.
아름다운 내 조국의 완전 통일 위하여
물불을 가림없이 한데 뭉쳐 싸운다
가평 춘천 탈환전 피의 능선 가칠봉
청사에 아로새긴 전공세운 5사단
후렴.
조국의 깃발 아래 민족의 이름으로
새세기 선봉에서 용감히 싸워 나가는
백전백승 열쇠부대 우리 5사단
(멸공의 횃불과 도입부 가사가 유사해서
음을 틀리는 고문관들이 종종 있다)
2절.
슬기로운 내 겨례의 자유 평화 위하여
화랑의 높은 기개 온몸 바쳐 싸운다
삼각봉과 백암산 치열한 전투에
달려든 붉은 적을 무찔러친 5사단
후렴.
조국의 깃발 아래 민족의 이름으로
새세기 선봉에서 용감히 싸워 나가는
백전백승 열쇠부대 우리 5사단

6.2. 안보관광


열쇠전망대라고 하여 군, 관이 뜻을 모아 1998년 4월 건립한 안보관광지가 민통선 안에 위치해 있다. 연천군과 육군 제5사단이 공동관리하고 있고 실질적인 운영은 사단 전방대대가 맡아서 하고 있다. 민간인도 민통선 출입시간때에 맞추어 간단한 신원확인을 한 후에 방문할 수 있다. 다른 민통선 지역과 마찬가지로 자전거나 이륜차, 혹은 도보로는 입장이 불가하며, 또한 기상악화 혹은 관리부대 여건상 예고없이 출입 통제 또는 강제퇴거 될 수 있다. 실제 들어갈 때 2번에 걸쳐서 신분조회를 하고 들어간다.
뭔가 북한의 도발이 일어나면 유명인사들이 많이 찾는다. 군사시설내에 위치한 관계로 사진 촬영은 전망대 앞 전방 기념사진만 허용되며 브리핑하는 관리병에게 물어보고 사진을 찍어야 한다. 잘못하면 관리병은 정훈장교한테 털린다. 진짜 비무장지대를 보고 싶다면 한번쯤 와볼 만한 곳. 통일전망대같이 관광객이 우글거리는 곳도 아니고, 말 그대로의 온대 원시림이 펼쳐져 있는 곳이다.
여기에는 T-본 능선 전적비가 있는데, 이는 1952년 미군 1개 소대가 중공군 1개 중대를 맞아 격퇴하여 당시 미군 소대장이었던 넬리 중위가 전사한 부하 8명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다. 휴전 이후 잊어졌다가 1977년 비무장지대 수색 중 발견하여 전시 중이다.

7. 사건사고


  • 심규환 상병 사망 은폐 사건
1987년 8월 20일, 육군 제5사단 35연대 4대대 소속 심규환(당시 22세) 상병이 총상으로 목숨을 잃은 일이 있었는데 육군에서 사망 사건을 은폐한 일이 있었다. 해당 기사: ###
  • 철책 사건
2004년에서 2005년까지 두 번이나 철책이 뚫리는 바람에 수많은 간부들이 보직해임 당하는 일이 있었다. 특히 2005년 철책사건은 철책을 넘어 내려온 탈북자가 하필이면 마을 이장에게 발견되고 언론에 대서특필된 바람에 사단 간부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국군기무사령부에서 근무 태도 불량 여부를 집중 조사하느라 부대 전체가 개박살 나기도 했다. 인근 사단에도 국지도발 실상황이 걸려서 고생했다.[12] 이 사건 이후 무인 감시 시스템이 대폭 강화되었다 한다.[13] 아무튼 이런 일로 인해 인근 다른 사단에게 적이 오면 문 열어주는 열쇠라서 열쇠 부대냐?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최근 신교대의 정신교육에서 정신을 차리지 않고 방심하면 큰일난다고 하면서 이 사건을 언급한다. 그리고 그 사건에 대한 동영상을 만들어 전 사단 예하 부대 정신교육 때 교육시키고 상기시킨다.
  • 2016년도 제5사단 관할 민통선 제3초소에 초소장 아무개 중사가 총기 난사 후 소총으로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 위와 비슷한 시기 아무개 소령이 직접 운전으로 레토나를 몰고가 권총으로 자살하여 발견된 일이 있었다.
  • 2016년 말에는 수색대대 탐지소대 인원이 DMZ내 작전 중 수류탄으로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 2017년 9월 195포병대대에서 병사 한 명이 군대부적응 및 조울증으로 인해 자살했다.

7.1. 코로나-19 군부대 집단 감염 사건




8. 여담


박정희대한민국 대통령사단장으로 재직한 적이 있었는데, 재임하던 기간에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당시에 인근 지역구 제4대 국회의원으로 정치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 흥미로운 부분. 199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열쇠전망대를 방문하여 기념비와 "전망대 언덕의 포장도로"를 남기고 갔다. 2012년 초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도 다녀갔다.
2011년 10월 14일, 난데없이 네이버 검색어 1위로 올라섰다. 이유는 (정지훈)가 이곳으로 입대해서...[14] 비는 제1신병교육대에서 조교임무를 수행하다가 국방홍보원 홍보지원대(연예병사)로 옮겼다. 당시 비의 조교임무는 의무실로 식사 배달 및 식사배식이었으나 몇몇 훈련병들의 호들갑(ex.월드스타가 나에게 밥을 주다니! 시전)으로 훈련병들 앞에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5사단에서 훈련병 시절 및 조교시절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었던 걸로 추정된다.
성유리이훈이 주연한 MBC군대 소재 드라마 막상막하의 배경이 5사단이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연출로 욕을 많이 먹었다. 탄피로 내기를 한다든지, 말년병장이랍시고 위병소를 무단으로 뛰쳐나간다든지... 당시 드라마를 위해 드라마에 출연한 대대가 공지 훈련을 두 번 뛰었다는 카더라가 있다. 1화, 2화의 경우 사단 차원에서 취침 시간 이후 시청을 허락해줬지만, 드라마상의 막장 행각으로 이후부터 시청이 금지된 대대도 있다.
2014년 초부터 전 스타크래프트 1 프로게이머 신상문이 복무한 것으로 확인됐다. 복무했던 부대는 35연대 제1대대. 참고로 이 대대는 근처 장병들과 민간인들이 '슈퍼땅개'라고 부를 만큼 훈련이 많다. 철책을 만지지 않는 예비 연대이기 때문. 대대막사가 최신식으로 사단 내에서 가장 훌륭한 편이고 1960년대에 지어진 막사에 사는 다른 부대의 아저씨들이 행군 도중 지나가거나 중간 휴식을 취할 때면 캠퍼스라고 부를 정도지만, 정작 당사자 부대원들은 훈련 뛰느라고 막사를 쓸틈이 없다고 할 정도.
2015년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인 최모씨의 출신부대이기도 하다.
경기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좀 덜할 것 같지만, 사실 정말 춥다. 말이 경기도지 바로 옆이 철원군이다. 대광리 일대에서 철원 정도는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간다. 게다가 중부원점이 관내에 있는데, 바꿔 말하면 바다가 멀다는 뜻이다. 즉 대륙성 기후. 겨울에 GOP로 휴가 복귀할 경우, 부대가 가까워 질수록 기온이 뚝뚝 떨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마음이 추운 게 아니라 정말로 기온 차이가 심하다. GOP 초소는 산 중턱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잘 알겠지만 해발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온은 떨어진다. 4-5월에 GOP에 있으면 하루에 4계절을 경험할 수 있다. 따뜻한 봄 볕과 함께 아침 먹고 취침했다가, 뜨거운 여름 태양 아래에서 작업 하고, 선선한 가을 바람과 함께 투입했다가, 차가운 칼 바람 맞으면서 철수한다.
북한 영화인 명령 027호에서 등장인물들이 국군으로 위장하기 위해 입은 군복에 이 부대의 부대마크가 있다.
사단 담당 구역의 맞은편에는 북한군 5사단이 위치하고 있다. 12년 당시 사단장의 발언에 따르면 사단장실에는 적 5사단장의 사진이 걸려있으며, 이를 보며 전시에 상대가 어떻게 행동할지 고민한다고 한다.
2596부대가 2016년 영화 신과 함께 촬영 예정지였다. 당시 촬영지로 적합하다 판단되어 부대에 접촉이 온 듯한데, 부대 내 여건상 무산되었다.
이곳 27연대 관할인 화살머리 고지에서 유해발굴작전이 진행중이다.


[1] 앞서 1993~4년경과 1996년에 구호를 "단결! 하면 된다!"로 바꾸었다가 도로 단결로 바꾼 바 있다.[2] 70년대에도 5분대기조가 시행되고 있었다고 한다.[3] 다만 5사단은 원래 5군단 편제였다.[4] 90년대 중반까지 6군단 예하였다가 6군단이 현재의 7군단처럼 기계화군단으로 개편하려 했을 때 잠시 5군단 예하에 있었으나 6군단의 개편이 백지화되면서 90년대 후반에 5사단이 6군단으로 다시 돌아왔다.[5] 러시아군 경력자로 러시아군 - 백군 - 폴란드군에 복무하였고 제1차세계대전, 적백내전에 참가한 군인이다[6] 당시 참모총장이었던 채병덕은 전쟁 발발 소식을 듣자 5사단 예하 연대들을 전부 쪼개서 온 전선에 축차 투입 하는 바람에 사단장조차 자기 부대가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파악 안 되는 사태가 발생.[7] 다만 이후 낙동강 전선에서 "우리가 다수인데 왜 13연대입니까"는 장병들과 이를 수렴한 연대장의 건의로 단대호가 환원되었다.[8] 그래서 혹 특정한 이유로 인해 사단 및 예하부대를 방문하게 될 경우 부대 내부에 사단 역사를 써놓은 벽이 있을텐데, 보면 이 10월 8일을 사단 창설일로 적은 곳도 있다.[9] 피의 능선 전투란 종군기자들이 신문에 Bloody Ridge라는 이름으로 보도하면서부터 생겨난 이름으로, 강원도 양구에 위치한 983고지·940고지·773고지에서 벌어진 전투를 일컫는 것이다. 이 고지를 탈환하기 위하여 미군 제2보병사단과 배속된 국군 5사단 36연대가 북한군 12, 24사단과 쟁탈전을 벌였고, 여기에 국군 7사단 대전차대대가 가세하는 난전 끝에 한미 양군 1개 연대 규모와, 북한군 1개 사단 규모의 사상자를 내고 한미 연합군이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이 전투는 6.25 전쟁 사상 단일전투에서 최대의 성과를 올린 전투로서, 당시 이 승전보를 접한 이승만 대통령은 5사단에 천하무적 사단이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다.[10] 1951년 6월 23일 휴전회담이 제기된 이후 처음으로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확보할 목적으로, 미 제19군단장이 양구 북방의 가칠봉 일대에 5사단을 투입하여 고지를 점령하게 한 작전이었다. 당시 북한군은 27사단과 12사단의 2개 사단 규모의 병력을 투입하여 반격에 나섰으나, 40여 일의 치열한 격전 끝에 결국 5사단의 승리로 전투가 끝났다.[11] 나머지 두 사단은 2사단11사단으로서, 2사단은 산악사단으로, 11사단은 상륙사단으로 전환됐었다.[a] 현재 신병교육대 조교로 복무 중.[12] 심지어 양주에 위치한 국군양주병원에도 국지도발 실상황이 걸리는 바람에 새벽부터 판초우의에 군장 내용물 죄다 짊어지고 증가초소로 튀어 올라가고 실탄이 불출되는 난리통을 겪었으니 다른 전투부대들 상황은 안 봐도 블루레이 수준.[13] 전군 최초 무인 감시 시스템이 도입된 이유도 철책이 두 번이나 뚫렸기 때문이다.[14] 그 덕인지 당시 육군 사단 중 가장 많은 보온팩을 보급받은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