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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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 문서는 동아시아의 한류에 대하여 서술한다.
2. 중국의 한류: 합한족
중국은 앞서 말한대로 한류라는 단어를 탄생시킨 한류의 진앙지다. H.O.T.나 NRG같이 이전까지 중화권에서 보기 힘들었던 '파워풀한 랩과 역동적인 댄스'를 선보인 댄스 아이돌이 중화권의 젊은층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사회적 현상으로 대두되었다. H.O.T.의 해체 소식을 듣고 중국 각지에서 중국 청소년들이 대규모 집회를 벌인 것은 유명하다.
이러한 한류 열풍은 대중문화에도 큰 영향을 끼쳐 중국과 대만 등지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아래 사진과 같이 한국의 아이돌 댄스그룹을 모방한 그룹이 속속 등장하기도 할 정도다.
중국에서 한류가 유행하게 된 배경으로는 보통 냉전 종식 후 유입된 급속한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따른 서구지향적 문화 소비 욕구의 증가를 꼽는다.[1] 이같은 추세에 따라 서구 문화에 대한 욕구가 커졌는데, 미국 문화로 대표되는 서구 문화는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 거부감을 주었고, 당시 아시아를 지배하던 일본 문화는 반일 감정이 컸다. 또한 홍콩 문화는 서서히 스러져가고 있었다. 이때 '서구 문화를 동양적 정서로 가공한' 한국 문화가 적합하다고 생각되어 유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구적이고 세련된' 생활 양식에다가 장유유서 등의 유교적 요소가 적절히 조합된 한국 문화(주로 드라마)는 중국인들에게 친숙했고, 수용에도 거부감이 적었다. 미국이나 일본 문화에 비해 소비 비용이 상당히 저렴한 것도 유행에 한몫을 했다.
한편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에 따라 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커졌고 중국 정부의 산아 제한 정책 때문에 아이를 한명만 가지는 가정이 많아졌다. 이로 인해 '소황제'라고 불리는, 고소비를 일삼는 아이들이 늘어남으로써 한류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런 부류들은 '오렌지족'이라고 불렸는데, 또래들 사이에서 돋보이기 위해 한국 문화와 한국제 물건들을 구입하였고, 이게 붐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당시 10대 아이들에게는 중국 문화에 비해 한국 문화가 역동적이고 화려하면서도 일탈적이지는 않은, '적당히 반항적'이었기 때문에 선택되었다는 이야기다.
아직까지 유효한 점이라면, 중국은 여전히 공산당이 통제하는 사회주의 국가라는 것이다. 황금시간대 중국 TV에는 한국, 일본처럼 연예인들이 나와서 웃고 떠드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많은 TV 프로가 감동적인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 퀴즈쇼 같은 공익적인 요소를 강조한 것들이고 예능은 장기자랑 대회나 특이한 사람들이 출연하는 쇼 같은 것들이 전부다.[2] 이유는 공산당이 방송국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법 복제 문제와 더불어 중국에서 문화 컨텐츠 창작자들이 제대로 활동하기가 힘든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과 일본처럼 시청률에 목매서 지나치게 자극적인 프로그램이 난무하는 것도 문제지만, 중국처럼 장중하고 감동적인 프로그램만 허용되는 것도 문제다.
예전에는 중국에서 한국 예능, 드라마를 합법적으로 빨리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 불법 다운로드로 보곤 했다. 한국 지상파 방송의 예능 방송은 방송 후 이틀이 지나기 전에 전문적인 자막 제작자들의 손에 깔끔한 자막이 달려서 동영상 사이트에 좌악 풀렸다. 바이두같은 대형 공공 검색 엔진에 링크까지 달려 있어 아무 문제 없이 최신 한국 방송을 검색해서 볼 수 있었다. 굉장히 편리해서 한국인들도 중국 사이트를 통해 볼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 인터넷 스트리밍 시장이 워낙 발달해서 대부분 합법적으로 계약하고 업로드하는 추세다.[3]
2013년 2월 23일, 강원대학교 김종섭 교수는 '2013년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중국내 한류가 한국화장품의 구매 의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는 중국내 한류의 영향으로 중국 여대생중 상당수가 화장품 구입비의 87%를 한국산 화장품 소비에 사용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한국과 교류가 많은 동부 해안가 지역일수록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주장했다. 김종섭 교수는 '''"한류에 힘입어 한국산 화장품의 품질 이미지가 개선되면서 구매 의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을 했다.
그런데 2016년 한국에 THAAD가 설치되는 것이 확정되자, 중국 정부 측에서 칼을 대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가 아예 대놓고 한한령을 선포하고 한국 연예인을 출연금지 시키는 등. 한류에 제한을 걸기 시작한 것.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2017년 1월 기준으로 아시아 및 대양주 지역 한류 동호인이 4010만여 명으로 53% 늘었다. #
2.1. 중국 한류의 역사
한국 드라마는 <질투>, <여명의 눈동자>가 최초로 1993년 지역방송을 통해서 방송되었다. 최초의 인기작은 1996년 중국중앙방송(CCTV)에서 방영된 <사랑이 뭐길래>다. 이 드라마는 1997년 6월부터 중국 전역에서 방송되면서 중국 국내에서 방영된 외국 드라마로는 사상 최초로 시청률 1위(16.6%)를 기록했다. 그 후 1998년 <별은 내 가슴에>, <해바라기>, <안녕 내사랑>이 방영되면서 주연인 안재욱은 한류스타로 발돋음했다.
K-POP의 경우, 처음에는 인기 드라마의 주연 배우가 부른 곡이 인기를 끌었다. 대표적으로 안재욱이 부른 <별은 내 가슴에>의 OST 'Forever'가 엄청난 히트를 쳤다. 그 후 1세대 아이돌 그룹 S.E.S., 베이비복스, 신화, H.O.T., NRG 등이 연달아 해외 진출에 성공을 하면서 중국에서 K-POP이 유행하는 현상의 초석을 놓았다.
이렇게 초석을 다져놓은 후 1.5~2세대 아이돌이 2000년대 중반에도 중국으로 진출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여러 KPOP 가수들이 일본 시장으로 진출도 많이 해서 좀 갈리긴 했지만 장나라는 '''천후'''라고 불릴 정도로 인기를 누렸으며, 슈퍼주니어도 중국에서 최상급 인기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한동안 중국 내의 한류는 다소 정체를 보였다가, 한국과 중국을 동시에 공략한 마케팅으로 성공을 거둔 EXO와 김수현과 전지현 주연의 별에서 온 그대로 인해 다시 한 번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태양의 후예도 별그대 이상의 파급력을 보여주며 송중기, 송혜교를 중국 최고 인기배우로 만들었다.
한한령 이후로는 사실상 침체기에 접어들고 있다. 사드이슈와 같은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중국내 한국에 대한 반감이 매우 거세졌고, 중국 방송계에서 아예 한국과 관련된 컨텐츠와 연예인들을 자체 검열함에 따라 사실상 일반적인 루트로 한류를 접하기는 매우 어려워졌다. 게다가 그 빈자리는 자국 아이돌들과 드라마들이 대체함에 따라 더 이상 새로운 수요가 나올 기미가 보이질 않고 있다. 설령 한류가수들을 방송에 불러도 중국이나 한국 외 타국가 케이팝 가수를 부른다. 다만, 방탄소년단의 컴백을 중국 인터넷사이트에서 중계하였는데 실시간 시청자 수가 600만(!)명을 기록하고, 송중기,송혜교의 이혼 관련 소식에 웨이보 조회수가 12억(!!) 건을 기록하는 등, 아직 암암리에 한류 컨텐츠를 즐기는 중국인들은 많아보인다.
또한 중국인들의 한국 컨텐츠에 대한 여전한 관심을 나타내는 증거가 최근 자주 일어나는 한류스타들에 대한 억지스러운 정치적 공세이다. 16세 소녀가 자국의 국기를 흔들었다고 대만독립파로 몰리는가 하면, 중국의 흔한 성씨인 '마오'라는 예명을 붙히려 한다고 최고지도자를 모욕했다고 주장하고,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연합국 사람들을 추모했다고 중국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반발한다. 이러한 논란들의 공통점은, 현지에서도 꽤나 큰 파장이 있었고, 대부분이 사실상 중국 공산당의 나팔수라 할 수 있는 중국언론들에 의해 시작되거나 확산되었다는 것인데, 논란의 억지스러움을 떠나 중국 당국이 한류 컨텐츠의 영향력에 상당히 민감해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중국에서도 듣보잡의 발언이 이슈가 될리는 없는 만큼, 논란이 일었다는 것은 그 인물들의 중국 내 영향력이 상당함을 반증하기도 한다.
3. 대만의 한류
대만의 한류 현상은 상당히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처럼 권위주의 국가라 서구 문화에 대해 국가가 제재를 가하는 것도 아니고, 반일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동남아시아처럼 '잘사는 나라에 대한 동경'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2018년 기준으로는 한국과 대만의 경제는 이견없이 한국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지만, 한류가 시작된 2000년대 초반의 대만은 한국과 대등하거나 좀 더 앞서있는 나라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또한 그 격차는 그다지 크지 않아, 일본에서 겨울연가가 유행한 배경인 '쇼와시대의 향수'(과거의 향수)를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대만은 자본주의 국가라서 서구 문명도 곧바로 들어오고, 같은 중화권이라는 요인 때문에 당시 유행하던 홍콩 문화도 이미 인기를 얻고 있었다. 또 '일본의 문화 식민지'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일본 문화가 깊숙이 침투한 상태였다. 대만과 중국에서는 한류 팬들을 하한쭈(哈韓族)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대만에서 일본 문화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하르쭈(哈日族)으로 부른 것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홍콩 문화가 점점 몰락하기 시작하고, 일본 문화는 식상해졌다. 중국과 동남아시아는 아직 제대로 된 문화 컨텐츠를 생산하기 어려운 실정에서 오로지 헐리우드로 대표되는 서구권 문화만이 기세를 떨쳤다. 이 때 마침 아시아권에 맞는 유교 문화와 서구 문화를 적절하게 결합한 한국 문화가 들어오면서 한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케이블 및 위성 TV, 인터넷 등이 보급되면서 급속도로 퍼지게 되었다.
한편, 한국의 경제 성장과 그에 따른 국가 경쟁력의 강화도 크게 기여했다. 예를 들면, 2000년 대만 총통 선거 당시 민진당 후보 진영은 캠페인 송으로 클론의 노래를 앞세웠다. 그 이유는 대만보다 앞서 민주화가 되고 정권교체를 이룩한 한국을 모델화하기 위해서였다. 2004년 입법위원 선거 때도 한복을 입고 유세를 한 야당의 여성 후보가 당선되었는데, 대만의 불안과 방황하는 병을 고쳐야 한다는 의미에서 대장금의 이미지를 부각시킬 의도였다고 한다. 과거 1990년대 시절 한국의 민주당에서 조순 서울특별시장과 이해찬이 판관 포청천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격세지감이다.[4]
하지만, 한류 유행에 따른 반작용도 있었다. 타이베이 연예인 노동조합은 2005년 말 한류 현상으로 인해 자신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 주장하고, 수입 제한 등의 조치를 통해서 생존권을 보호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5] 게다가, 대만에서는 2011년 1월 들어서 외국 음악이나 드라마 방송 비율을 현행 최대 '''80%'''에서 60%로 제한하는 법안이 제정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중이다.
2016년 7월 12일 방영한 방송에서 "대만 사람이 아니라면 어느 나라 사람이 되고 싶은가?"로 조사한 결과 137명이 2위로 뽑은 일본, 싱가폴을 압도적으로 제치고 336명이 한국을 선택했다.
3.1. 대만 한류의 역사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를 통해 차인표, 송승헌 등 한국 배우들이 대만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 뒤를 이어 <토마토>, <MR.Q>, <웨딩드레스> 등이 케이블 TV를 통해 방송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 드라마가 대만에 소개되었다. <별은 내가슴에>, <해피투게더>, <안녕 내사랑> 등의 드라마는 일본 드라마에 익숙해져 있던 대만 시청자들에게 신선함을 느끼게 했다. 그 후 2000년대 중반 이후에 방영된 드라마 <불꽃>은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게 했고, 차인표와 이영애의 인기가 급상승해 팬클럽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 중 가장 히트한 드라마는 2001년 2월 빠따(八大) TV를 통해 방송한 가을동화다. 빠따 TV는 대만에 한국 드라마를 소개하는 중심지 역할을 한 방송국으로, 당시 일본 드라마들이 점령하고 있던 대만 채널에 변화를 주기 위해 한국 드라마를 들여왔다고 한다. 이후 적시에 VCD를 출시하고, 이영애 등의 유명한 배우들을 초청해 이벤트를 개최함으로써 한류 확산에 큰 공헌을 한다. 빠따 TV의 시청률이 괜찮게 나오자 다른 방송국에서도 한국 드라마를 들여오게 된다.
그렇게 들어온 <가을동화>는 대만 TV매체 및 프로그램을 통틀어 시청률 1위를 기록한다. 주연인 송승헌과 송혜교의 인기가 급상승했으며 팬들이 드라마 촬영지 방문을 중심으로 한국 단체 관광단을 구성하는 경우도 많았다.(<동아시아의 한류>(신윤환,이한우 편저, 전예원, 2006) P53). 이후 대히트작 <대장금>, <겨울연가> 등도 연달아 히트하면서 드라마 한류는 연장되었고, 드라마가 식상하게 될 쯤 아이돌로 재편성된 K-POP이 상륙하면서 한류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가요 분야에서는 김완선과 장호철이 일찍부터 활발한 활동을 벌여 한국 가요를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해왔다. 이후 대만의 대형 음반회사인 'Rock Records'에서 대만 가수들의 한국어 번안곡을 유행시키면서 한국 가요가 활성화되었다. 1990년대 말에는 클론이 <꿍타리 샤바라>를 히트시켰는데, 1998년 3월에 가진 공연을 성공리에 마치고 음반도 40만장이나 팔았다. 클론의 뒤를 이어 S.E.S., 디바, 유승준 등이 인기를 끌었고 이 추세는 H.O.T.에 이르러 정점에 이르렀다.
퍼포먼스 중심의 한국의 댄스 그룹은 이전까지 홍콩 4대 천왕의 발라드만이 주류였던 대만 가요계에도 큰 영향을 끼쳐, ENERGY, K ONE, S.H.E, SUPER 7, 나지상, 반위백처럼 한국 스타일을 모방한 그룹도 속속 생겨나게 되었다. 또한 자작곡이 드문 대만 가요계에서는 이전까지 자주 사용되어오던 일본 번안곡 대신 한국 가요를 번안(혹은 표절)하는 케이스가 많아졌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 음악을 많이 커버했던 대표적인 대만 가수는 서회옥이 있다.[6]
위의 동영상을 보면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바로 2001년 신화의 Hey,Come on을 번안한 ENERY의 Come on의 뮤직비디오. 곡만 번안한 게 아니라 뮤직비디오까지 신화의 Hey,Come on과 흡사하다. Energy는 그룹 기획 단계부터 신화를 벤치마킹했다고 한다. 멤버 나지상은 YG엔터테인먼트에서 댄스 트레이닝을 받기도 했다.
4. 일본의 한류
문서가 길어져서 분리되었다. 일본의 한류 링크를 참고하자.
5. 몽골의 한류
사실 몽골 - 한국 간의 관계는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원나라는 고려의 풍습을 상당부분 받아들였고 고려에서도 몽골 문화가 유행해 고려양과 몽골풍이라는 단어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하지만 원나라가 망한 이후에는 두 나라 사이에 명, 청이 들어서서 직접적인 교류가 없었고, 20세기가 들어선 이후에는 몽골이 사회주의 국가였던 탓에 정식 수교를 맺은 1990년까지 별다른 교류가 없었다.
1990년 정식 수교를 한 이후 두 나라의 교류는 급성장했다. 이후 <모래시계>로 시작된 <장미와 콩나물>, <첫사랑> 등의 드라마가 히트를 치면서 한류 붐이 크게 일어났다. 특이한 점은 몽골 사회가 외국 문화에 대해 배타적인 성향을 띄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는 1950년대에 중국이 수도인 울란바타르로 자국인 노동자를 대거 이주시켜 울란바타르를 중국화하려는 시도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 시도는 좌절되었지만 그 트라우마가 아직도 남아서 문화 정체성을 지키려는 의식이 매우 강하다고 한다. (<동아시아의 한류>(신윤환,이한우 편저, 전예원, 2006, 104p).
이런데도 한류가 유행하게 된 것은 역시 '잘 사는 나라에 대한 동경'이 크다. 몽골 내에서 한국인은 러시아인, 중국인 다음으로 많다. 즉 잘 살고, 중국이나 러시아처럼 나쁜 기억도 없고, 문화 컨텐츠의 질도 높으니 유행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한국 드라마의 히트는 한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유목민족 특성상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몽골에서도 김치 같은 음식이 팔리고, 기타 한국 음식들도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몽골인들은 매운 걸 엄청 못 먹는다. 하지만, 한국 음식은 맵고 뜨거운 자극적인 음식이 대부분이다. 다만, 몽골인들도 자극적인 입맛을 좋아한다고 한다. 한국 음식과는 비교도 안 되게 짠 음식을 먹기도 한다.
2003년 7월 25일에는 베이비복스가 울란바타르 시의 나담 체육관에서 공연하였는데, 70만 울란바타르 시민 중 35.000여명이 공연장으로 몰리기도 했다. 이 공연에는 바가반디 전 대통령도 초대되었다. ( <동아시아의 한류>(신윤환, 이한우 편저, 전예원, 2006, 110p).
농업공무원으로 몽골과 국제교류를 담당하는 분들의 증언으로 삼겹살을 즐겨먹는 것도 한류 영향이다라는 설명이 있다. 이는 매우 특수한 것인데, 몽골을 둘러싼 중러가 대표적인 돼지고기 소비가 두드러진 나라라는 점과 몽골이 유목국가의 대표라 할 정도로 세계사에 잘 알려질 상황이라 할 현실에서 물이 많이 들어가는 동물 사육도 힘들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류에 속한다는 말이 사실이라 생각할만 하다.
6. 북한의 한류
북한에서는 한류 문화 자체가 불법이라 심하면 정치범수용소행은 총살당할 수도 있다. 90~2000년대부터 소수가 접하던 한류가 처벌 강화에도 확산 중이다. 80년대 이전 북한 매체를 접하면 처벌받는 것 이상이며, 현재 국제적으로 가장 심하게 한류를 처벌한다. 2020년 12월에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 제정되어, 한국 말투를 쓰는 사람도 감옥에 넣을 수 있게 되었고, 단속을 못한 간부도 처벌하며, 유괴나 강간보다 한국 영상물 시청의 처벌이 더 강하다. 2015년 형법만 해도 불법 마약 사용보다 한국 영상물 시청을 강하게 처벌했다. '''다만 암암리에는 엄청 퍼져 있다. 보위원(비밀경찰)이나 인민보안원(경찰)에게 뇌물만 주면 장땡이다.''' 이들이 한류를 단속하며 정경유착으로 한류를 유포하기도 한다. 국경도시가 가장 한류가 성하고, 평양도 심하나 드러내기 힘들다. 물류 유통이 활발한 도시에 한류가 많이 퍼진다. 탈북자들이 유튜브를 많이 하지만 보통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에 북한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라 정치적으로 덜 깨이고 시장화도 더디었던 다소 옛날 북한을 전하는데, 2020년경 기준 청소년들은 극심한 단속에도 절반 이상이 영화·음악 등 남한 문화에 '감염'돼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류가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
문화 산업은 기본이고 패션, 화장품, 심지어는 말투와 예식장 결혼식 문화까지 유행할 정도로 한류의 영향력과 침투력이 막강하다. 하지만 이걸 들키면 목숨이 위험하기에 북한 주민들은 단속 위험을 느끼면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고 다닌다. 이렇게 한류 매체를 접하면서 북한 주민들은 한국의 자유를 느끼고, 한류가 심하게 퍼진 함경도의 국경 지대에서는 북한 체제의 막장성을 알게 되면서 자국 혐오나 탈북으로 이어지는 사례들이 흔하다. 이러다보니 웃지못할 일도 생기는데 북한의 체제선전 방송을 '씩씩한 방송'이라고 에둘러 표현하는데다, 남한 비방 강연회같은 자리에서는 아예 꾸벅꾸벅 조는 일까지도 생긴다는 전언이다.
다만 '민주주의'의 의의는 정치에 관심이 적으면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내륙 쪽에서는 남한의 경제성장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모르는 경우도 많고, 우리도 저정도를 금방 따라잡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자 한국 문화 수준이 너무 높다며 자국의 전망에 염세적으로 변한 사람도 있다. 너무 중독성이 심해 불건전한 문화로 여기는 계층도 존재한다고 한다. 다만 이런 문명화의 원리에 대한 호기심에 따른 수요도 생겨나는 추세라고 한다.
당연히 이런 현상이 북한 정권에 득이 될 리 없으므로 김정은의 주도하에 강경하게 단속하는 중이다. 109상무, 727상무, 114상무라는 이름이 다르나 목적은 같은 조직들이 활동 중이다. # 그냥 가정집을 불시에 쳐들어가기도 한다. 이에 북한 일부 지방에선 "파리보다 파리채가 더 많다"는 말이 유행한다.
북한에선 인터넷이 불가능하므로 대부분의 매체(방송, 영화, 음악)들은 암시장 같은 곳에서 CD 형식으로 사는 게 보통이었고, 2010년대 중반 이후에는 USB, SD카드가 보통이다. 외장하드를 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 당연하겠지만 그 USB들의 대부분은 불법 복제 중국산이기 때문에 한국 회사들에게 직접적인 수익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시장 경제의 확산[7] 과 뇌물의 성행[8] 으로 인해 북한 내 한류는 더 깊숙이, 더 넓게 침투되고 있다. 거기에 북한 고위층에서는 아예 한국산 물건들을 밀수(....)해서 쓰고 있으며[9] ,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권력을 이용해 구해 보고 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는 판이며, 단속기관이 여기에 빠지기도 한다고 한다. 돈을 버는 방식도 한국식이 효율적이라 경제력이 높은 계층은 이런 정보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2020년 경에는 북한 관련 뉴스에서 김정은이 아예 이것까지 단속하려고 해서 불만이 심하다고 한다.
한류를 단속하는 정부에 맞서는 주민들의 대처도 지능적으로 진화한다. 탈북자 유튜브, 기자들의 취재에 언급된 내용만 적으면 다음과 같다. #
- 위급한 순간 SD카드를 먹어버린다.
- 주민들 속에서도 연좌제에 의한 단속과 통제에 대비하여 절대적으로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타인과의 공유는 금기시하는 것이 원칙이다.
- 한류 컨텐츠를 암시하는 암호를 쓴다. 아랫동네 것 없냐는 말부터, 이것이 외부 세계에 알려지자 '이 옷 말고 다른 옷이 없어요?'라고 물어보기도 한다고 한다.
- 스텔스 USB라는 것이 있어 특별한 조작을 거치지 않으면 내용물을 볼 수 없다.
- 단속용 전자기기, 보기 위한 전자기기가 분리되어 있다.
- 사투리가 서울말과 비교적 비슷한 지방인 평안도, 황해도에서는 한국 말투(서울말)를 섞어 쓰며 자신의 말투라고 주장한다.
7. 종주국: 한국의 경우
소위 '''외국 반응'''을 전달할 때 온갖 종류의 뻥튀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붐'이니 '열풍'이니 '정복'이니 하는 말초적인 용어를 사용한 감각적 여론몰이가 상당수의 한류 관련 보도에서 발견된다. 정작 현지의 한류 팬들은 이런 용어에 대해 상당히 좋지 않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냥 자기네가 가수 좋아하는 건데, '정복'이니 뭐니 하는 용어는 불쾌하다는 반응.
한국 언론은 한류 외의 보도에서도 원래 그렇게 해왔다고는 하지만 외국의 상황과 관련된 기사는... 그러다가 걸리면 그 나라에서 까일 수가 있으며, 까여도 할 말이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SM타운 프랑스 공연이 있으며, 2011년 5월경에는 다수 언론에서 나는 가수다의 조작된 일본 반응을 확인도 않고 그대로 보도하여 개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7.1. 빛과 어둠
한류 장사가 돈이 된다는 것이 알려지자 숟가락 얹기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방송국 주도로 한국 가수들의 합동 콘서트가 연이어 치뤄지면서 문제가 되었고, 슬슬 '''공무원들이 K-POP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2011년 8월 MBC 주최의 니가타 K-POP콘서트, 11월 12일 주최되고 12월 4일 방영된 호주 한류콘서트 등에서 엔딩곡으로 아리랑을 부르는 등, '국익'이니 '한국의 위상'이니 하는 국가주의적 접근 경향도 강해지고 있다. '''일본 넷 우익 들이 한류의 실체라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외치고 있던 바로 그 방향.''' 춤추고 노래하는 것 말고 배운게 없는 애들과 국가브랜드를 무방비로 '하나의 패키지' 안에 묶어 판다면, 언젠가는 연환계에 빠져 다같이 망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심지어는'''이런 기사까지 나오고 있다.'''
거기다가 해외 한류 콘서트 참여를 종용하는(그리고 참여를 못할 시 은근히 패널티를 먹이는 등의 횡포를 부리고 있는) 지상파의 가수 휘두르기로 인해 가수 본인들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이 가고 있는 상황. 콘서트 입장료 역시 대부분 10~30만원 가량의 터무니없는 수준이며, 콘서트의 편성 등 질적인 부분에서 과연 그만큼의 값어치를 하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선이 많은 편이다. 이런 식으로 한류콘서트라는 미명 하에 분별없이 질 낮은 콘서트만 열어대다 보면 K-POP의 이미지 자체에 타격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참조 : '''무분별한 한류공연, K-POP 망친다.''' 한류에 1970~80년대 식 국수주의를 들이대 국위 선양이니, 한국의 위엄이니 하며 어거지로 밀어주고 한류가 그닥 영향력이 없는 유럽에서 마치 엄청나게 흥한 것처럼 포장해대고 정계나 언론에서 마구 억지로 밀어제끼는 행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한국이 애국주의가 아니면 못사는 나라도 아니니만큼 한류에 대한 이성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한류는 빛좋은 개살구?
하지만 이렇게 비판하는 여론이 옳다고 단정하는 것도 위험하긴 하다. 한국 언론의 비참한(...) 신뢰도로 인해 일단 한류를 과장이라고 단정하고 보는 경우가 많은데 '''한류는 결코 일각의 주장만으로 무시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단지 한류의 성격이 기본적으로 인터넷 기반이라 오프라인의 반응과 온라인의 반응이 상이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대중화의 정도가 기준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말하자면 문화 표면에 드러나기 힘든 마니아. 단적으로 말하자면 오덕의 문화라는 것이다. 한국의 덕력과 마찬가지로, 결코 무시할 수준은 아닌데도 온라인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알아차리기 힘들 뿐이다. 10 ~ 20대 젊은층 사이에서 일본 애니 덕후가 많이 퍼져있지만 그렇다고 그걸 전국민적 열풍으로 보기 힘들듯이 말이다. 한류열풍사랑 카페나 일부 무개념 기자들처럼 추앙만 하는 것도 좋지 않지만 한류의 영향력을 억지로 축소해가면서 무조건 비판만 하는 것도 정신승리법적인 접근이 될 수 있으니 자제해야 할 것이다.
자국 가요시장의 발전으로 인해 K-POP의 영향력의 축소는 피할 수 없겠으나 K-POP의 해외 인기 자체가 사라진 것처럼 말하는 것은 과장이 크다. 오히려 2010년대 후반 기준으로 위 시장에서 K-POP은 이전보다 더 커졌으면 커졌고 절대로 줄어들지도 않았다. 일본 애니메이션과 만화가 수출되어서 많은 나라에 의해 모방이 된지 수십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일본 애니메이션의 아성을 뛰어넘을 만한 세력이 잘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10][11] 베트남의 이 그룹이나 카자흐스탄의 이 그룹을 봐도 상당히 많이 비슷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반대로 홍콩의 느와르 영화와 같이 될 수도 있다. 1980년대 시절 홍콩 느와르 영화는 한국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현재의 한류가 대만이나 동남아에 끼치는 영향까지는 아니었지만, 당시 정보통신기술과 시대배경을 따졌을 때 충분히 영향력이 컸었다고 불릴 만할 정도였다. 그런 홍콩 영화의 현재 위상과 과거의 위상을 생각해보면 괴리가 너무 심하며 한류가 홍콩 꼴을 면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전혀 없다.
7.2. K-POP 그룹의 국제화
한국 가요가 외국에, 특히 동아시아 권역에서 인기를 끌자 그걸 노려 아예 아이돌 그룹 멤버를 외국인으로 뽑는 트렌드가 생겼다.
엄격하게 유래를 따지자면 한국 가수 중 첫 번째 외국인 멤버는 1990년대 중반에 활동한 룰라의 로메오가 있긴 하지만 [12] 정식 멤버라기보다는 객원이라 확실히 단정 짓기 힘들다. 한국 바깥 동아시아 국가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한국 가수가 된 경우는 2005년에 데뷔한 슈퍼주니어의 한경이라 볼 수 있는데 당시만 해도 중국인이 한국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한다는 게 상당히 이질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2PM과 f(x)를 필두로 미스에이, EXO, GOT7, 트와이스, NCT, 블랙핑크, (여자)아이들 등등 외국인 멤버가 있는 아이돌 그룹들이 많이 데뷔했다.
하지만 아이돌 시장의 국제화에도 어둠은 있어서, 특히 SM엔터테인먼트 쪽 가수들이 계약 해지 및 탈퇴 문제로 잡음이 있었고 민감하기 짝이 없는 동북아시아 정치지형이라 중국이나 일본이 한국에게 외교적으로 손해가 되는 정책을 피면 그 국적의 멤버들이 대신 욕을 처먹는다.[13][14] 역으로 남중국해와 관련해서 중국인 아이돌 가수들이 선수를 쳤다 욕을 먹은 케이스도 있었고. 이러한 K-POP 그룹이 국가간 외교적 문제에 중심으로 나타난 대표적인 사례인 '''TWICE 쯔위 청천백일만지홍기 논란'''을 참고하면 좋다.
8. 관련 서적
- 동아시아의 한류 - 신윤환,이한우 외 지음
- 동아시아의 오늘과 내일 - 최원식 백영서 외 2 명
- 한류 문화와 동북아 공동체 - 최혜실
- 중국의 한류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장수현
- 중국은 왜 한류를 수용하나 - 장수현
- 한류 한국과 일본의 드라마 전쟁 - 박장순
- 일본 한류 한국과 일본에서 보다 - 주영하 이토 아비토 외 3 명
- 문화한류로 본 중국과 일본 - 박영환
9. 관련 문서
[1] 문화대혁명 시기(1966~1976)에만 하더라도 부(富)의 추구는 자본주의적 성향으로 비판받으며 범죄 행위로 간주되었지만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부의 추구는 성공의 상징으로 여겨져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마땅히 추구해야 할 가치가 되었다. 지금도 이건 마찬가지여서, 중국인들에게 있어 돈은 다른 목적(삶의 질 향상, 과시 등) 때문이 아니라 돈 그 자체가 목적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기들도 이 문제점을 잘 알고 있어서 중국 인터넷에서는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내용의 자기반성 글이 많이 돌아다닌다.[2] 출처는 <한국이 싫다>(정광호 지음, 매일경제신문사, 2009) 다만 이 책은 2009년작이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달라졌을 수도 있다.[3] 이걸 모르고 ''한류 좋다는 중국애들 어차피 다 불법으로 보는 거 아니냐?''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다 과거의 이야기다.[4] <동아시아의 한류>(신윤환,이한우 편저, 전예원, 2006) P61[5] <동아시아의 한류>(신윤환,이한우 편저, 전예원, 2006) P68[6] 대표적인 곡으로는 핑클의 내 남자친구에게, 클론의 도시탈출, 지누션의 말해줘가 있다. 하지만, 이것 말고도 정말 많다.[7] 장마당이 들어섰다는 것 자체가 북한 경제가 이미 시장 경제체제로 변환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게다가 이는 현재진행형일 뿐 아니라 아예 진화중이기까지 하다. 사유재산이 인정되지 않는 북한의 정치적 환경과 체제붕괴를 막기 위해 강압적인 정책으로 억제하고 있는 북한의 현실로 인해 노골적이지만 않을 뿐이지 북한 주민들의 생활양식과 경제활동은 점점 자본주의화 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8] 단속에 걸리더라도 뇌물만 주면 용서되기 때문(...). 이 때문에 부유층이 더 한류를 즐기기 쉽고, 못사는 계층은 한류의 일부만 접하거나 뇌물을 줄 때 물건을 준다.[9] 탈북민들에 따르면 집안에 적어도 '아랫동네' 제품 한두개 정도는 있어야 잘사는구나란 말을 듣는다고 한다. 여기에 혼수로 쿠쿠 압력밥솥, 한국산 화장품, 그리고 한국산 한복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정도라고.[10] 하지만 이건 있다. 세계3대 애니메이션 제작국으로 유명한 일본에서도 2000년대 이후부터 예술성이나 작품성이 아닌 상업성만 강조한 작품들이 제작되면서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의 암흑기로 평가를 받고 있다. 산업 규모는 여전히 크지만 질적으로 크게 하향됐다. 자세한 것은 일본 애니메이션/역사참조.[11] 또한 한국 입장에서 굳이 서브컬쳐인 일본 애니메이션을 목표로 해야 할 이유는 없으며, 애니메이션이라는 특수 분야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12] 로메오는 독일 국적의 흑인이다.[13] 우주소녀의 성소가 2016년 마리텔에 출연하자 댓글창에서 많은 수의 THAAD 드립과 남중국해 드립이 나왔다. 성소는 당시 '''미성년자'''에 해당하는 나이였다. 그리고 그런 정치 이야기는 한 적이 없다.[14] 반대로 자국에서 비난받는 경우도 있다. 아직 정식 진출하기도 전이지만,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서 트와이스의 모모는 '''족발을 좋아하는 바보같은 이미지'''란 이유로 나라 망신이나 시킨다며 비방하는 경우가 있었다. 어처구니없게도 그 이유가 족발과 '''쪽바리'''의 어감이 비슷해서라는데, 이건 그냥 먹는 것으로 트집잡는 행동이라 한심한 행태다. 한국 속담에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도 있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