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에드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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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리버풀 FC의 '''現''' 스포팅 디렉터.
리버풀에 2011년 분석 부서 총괄로 입성했으며, 2016년 디렉터 자리까지 승진해 현재 구단의 장기적인 플랜을 총괄하고 있는 보드진의 주요 인물이다. 특히 감독이자 이적시장 최종 결정권을 쥔 위르겐 클롭의 주요 협력자로 유명한데, 이적시장에서 수완이 상당한 협상가이자 또 다른 최종 결정권을 쥔 총괄로서 맹활약하고 있다.[1]
2. 경력
영국 사우스햄튼에서 태어난 에드워즈는 당시 챔피언쉽 팀이었던 피터보로 유나이티드 아카데미에서 풀백 자리에서 축구선수로의 꿈을 키웠지만 성인 무대에 데뷔하지 못한 채 방출되었고, 이후 셰필드 대학교에 입학해 경영정보학을 전공해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졸업했다. 학력을 따는 와중에도 아마추어 레벨에서 축구를 했다고 한다. 이후 2003년 해리 레드냅이 이끌던 포츠머스 FC에 입성해 당시 프리미어리그에 새로 도입되었던 분석 회사의 시스템인 프로존 (Prozone)을 활용하는 애널리스트로 구단 스태프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분석가로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던 에드워즈는 빠르게 권력을 확보하고 자신의 부서를 넓혀 포츠머스 분석 부서의 총괄로 임명받게 된다.
이후 2009년 에드워즈는 포츠머스를 떠나 해리 레드냅의 추천으로 토트넘 핫스퍼에 경기 분석 스태프로 임명되었으며,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도 분석 부서의 입지를 넓히는 등 활약했다. 참고로 당시 토트넘의 단장은 리버풀 팬들이라면 다 알만한 대미언 코몰리로, 이 때 에드워즈는 코몰리와 친분을 맺었다. 에드워즈는 토트넘의 전면적인 체질 개선을 요청했지만 CEO인 다니엘 레비가 수용하지 않자 불만을 품었다.
2.1. 리버풀 FC
2.1.1. 위르겐 클롭 부임 이전
2010년 리버풀을 인수한 보스턴 레드삭스의 구단주 존 헨리는 야구계에서 유명한 General Manager(단장)인 빌리 빈[2] 의 절친이자 축구에서 빌리 빈의 머니볼을 접목하려 노력했던 대미언 코몰리를 단장으로 선임, 이때 코몰리의 오른팔이었던 에드워즈도 마침 토트넘에 불만이 있던 차라 미련 없이 런던에서 떠나 2011년 리버풀로 입성하게 되었다.
그의 첫 직책은 포츠머스 - 토트넘 시절과 마찬가지로 Head of Performance and Analysis, 즉 분석 부서 총괄이었는데, 이 직책을 맡아 멜우드와 커크비에서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는 체제를 혁신적으로 바꿔냈다. 이후 코몰리가 11-12 시즌을 끝으로 사임한 후 이안 에어 CEO 체제로 바꾸고 브랜던 로저스 감독을 선임한 FSG 보드진 하에서 에드워즈는 분석가로서의 능력과 안목을 인정받아 Technical Performance Director로 승진, 그 악명높은 '''이적 위원회'''의 6인 중 한 명으로 발탁된다. 이 때 로저스와 에드워즈는 선수 영입 과정에서 계속해서 갈등을 겪었고, 이 당시 리버풀의 영입작은 다니엘 스터리지나 필리페 쿠티뉴처럼 성공작도 있었지만, 오사마 아사이디, 누리 샤힌[3] , 이아고 아스파스, 마리오 발로텔리, 라자르 마르코비치 등 처참한 실패작이 더 많았기 때문에 보드진이 많은 비판을 받던 때였다.
이렇게 에드워즈가 이적 위원회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지만[4] 2015년 8월에는 기술 위원장으로 승진해 로저스 체제 말기부터 권력이 축소한 CEO 이안 에어와 대비되어 더더욱 큰 권력을 쥐게 되었고 승진 2달 전부터 에어의 곁에서 협상 건을 도왔다. 또한 이적 위원회에서의 실망스러운 모습과는 대비되게 리버풀의 스카우팅 시스템을 혁신적으로 개선했고 여전히 분석 부서에서 총괄을 담당하며 프리미어리그 팀들이 도입한 리서치 부서를 직접 도입하는 등 리버풀 구단이 계속 트렌드를 따라갈 수 있도록 도왔다.
2.1.2. 위르겐 클롭 부임 이후
브랜던 로저스가 15-16 시즌에도 부진을 면치 못하자 리버풀의 보드진이 후계자를 찾는 과정에서 에드워즈는 스카우팅 네트워크로 클롭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확보[5] , 이후 그가 리버풀에서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다른 후보자들을 후계자 리스트에서 모조리 지운 뒤 구단에 클롭의 부임을 적극 추천했다.
그의 숨은 노력에 힘입어 2015년 10월 8일 로저스 감독이 경질된 뒤 3일 후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명장으로 거듭난 클롭 감독이 시즌 도중 감독에게 영입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 FSG에게 영입 최종 결정권을 이어받고 리버풀에 부임했다. 클롭의 부임 이후 그의 요청에 따라 이적 위원회는 폐지되었고 선수 영입 과정은 더더욱 합리적으로 변했으며[6] 에드워즈는 계속해서 FSG의 회장인 마이클 고든과 위르겐 클롭에게 능력을 인정받아[7] 2016년 11월 스포팅 디렉터, 사실상 단장으로 임명되며 16-17 시즌이 끝나고 팀을 떠나는 것이 확정된 이안 에어 CEO의 임무 중 한 부분을 맡게 되었다.[8] 리버풀 공신력 3대장[9] 중 한 명인 폴 조이스의 기사에 따르면 스포팅 디렉터로서 에드워즈의 임무는 감독과 보드진 사이의 다리 역할을 맡음과 동시에 스카우팅, 의료, 리서치, 경기 분석 등이 수립된 장기 플랜 수립으로, 사실상 이 시점부터 리버풀의 실세 중 한 명이 되었다고 보면 된다.
당시 37세라는 젊은 나이였고 코몰리, 에어와는 달리 무명에 가까웠던 인물이라 초짜라는 의심의 꼬리표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는데 어쨌든 17-18 시즌부터 클롭과 함께 리버풀의 이적시장을 총괄하게 되었다. 초반에 빠르게 첼시 FC의 포워드이자 복권인 도미닉 솔랑케, AS 로마에서 리그 탑클래스 윙어로 거듭난 모하메드 살라[10] 를 영입했으나, 사우스햄튼 FC의 센터백 버질 반 다이크 영입 시도 과정에서 선수와의 협상만 완료해놓고 정작 사우스햄튼에게는 공식적인 오퍼도 넣지 않아, 이에 화가 난 사우스햄튼이 반 다이크 판매 불가를 선언하였고 리버풀을 사전 접촉 혐의로 제소해버리며 반 다이크 영입은 순식간에 멀어져버렸다. 이로 인해 에드워즈는 "왜 클롭이 선수 다 설득시킨 마당에 초를 쳐서 이 사단을 냈냐"는 리버풀 팬들의 비판을 받아야 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에드워즈의 협상 미숙이라기엔 사우스햄튼이 흔히 일어나는 선수 사전 접촉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 것도 있다.[11] 거기에 이후 클롭과 에드워즈는 대체 타겟을 찾기는 커녕 계속해서 반 다이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고, 16-17 시즌 분데스리가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였던 RB 라이프치히의 나비 케이타에게만 눈길을 들이며 판매 불가 타겟들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 보강할 생각이 있긴 하냐며 손가락질을 받았다. 하지만 헐 시티에서 앤드루 로버트슨을 데려온 것 외엔 결국 조용히 흘러가나 했던 이적시장 마지막 주에 에드워즈의 끈질긴 협상 끝에 탑 타겟 중 하나였던 케이타를 1년 후인 2018년 여름에 데려온다는 합의를 끌어냈고, 클롭 감독이 계속 관심을 표출한 바 있는 아스날 FC의 알렉스 옥슬레이드체임벌린을 영입했다. 여기에 성사는 되지 않았지만 시즌 시작 직전에 이적 요청을 한 필리페 쿠티뉴의 혹시나 모를 데드라인 데이 이탈에 대비한 토마스 르마의 스카우팅 및 예비 협상까지, 광란의 데드라인 위크를 보내며 어느 정도 반 다이크 건의 실책을 만회했다.
그리고 시즌이 시작되자 여름에 영입된 로버트슨, 살라, 체임벌린이 모두 좋은 활약을 펼쳐 에드워즈에 대한 평가가 올라가게 되었고, 거기에 겨울 이적시장에는 드디어 반 다이크 영입까지 성공시키며 여름 이적시장에서 이루고자 했던 모든 것을 이뤘다. 이 과정에서도 수비수 이적료 레코드인 7500만 파운드의 비싼 가격 때문에 고민하던 클롭을 설득시켜 영입을 추진한 게 바로 에드워즈.
이후 18-19 시즌 여름 이적시장에도 파비뉴, 제르단 샤키리, 알리송 베케르 영입의 중심에 서며 자신의 협상 능력을 입증했다. 특히 알리송의 영입은 지난 시즌 이미 살라를 3600만 파운드라는 퍼포먼스 대비 엄청난 헐값에 리버풀로 보내주며 손해를 본 로마가 협상 상대였기 때문에 난이도가 높은 영입이었지만 끈질기게 회의를 거친 끝에 과감하게 당시 골키퍼 이적료 레코드였던 6200만 유로를 지불하고 영입해 리버풀의 최대 약점을 메꿨다.[12] 또한 파비뉴 영입에서도 뒤에 언급할 특유의 엠바고와 신속한 일처리로 깔끔하게 영입, 리버풀의 또 다른 필수 보강 요소였던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를 완벽히 채웠으며 제르단 샤키리는 스토크 시티가 강등되자 발동된 1300만 파운드의 바이아웃 조항을 활용해 월드컵 이전부터 물밑 작업을 수행, 껌값에 스위스 국가대표의 에이스를 영입하며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13]
2019년 여름에는 큰 영입없이 유망주들과 백업 골키퍼인 아드리안 산미겔만이 합류하였는데, 겨울 이적시장에서 RB 잘츠부르크의 미나미노 타쿠미를 바이아웃 가격인 725만 파운드라는 매우 저렴한 가격에 영입했다. 마이클 에드워즈는 나비 케이타를 RB 라이프치히에서 영입하던 당시부터 라이프치히, 잘츠부르크 등의 레드불 그룹과 좋은 관계를 맺게 되었고, 그 덕에 리버풀이 미나미노의 바이아웃 가격이 고작 £7.25m이라는 정보를 다른 팀들보다도 앞서서 전해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에 리버풀은 11월부터 일찍 미나미노를 데려오기 위한 절차를 시작하였고 12월 중순에 영입을 확정지었다.
이렇게 클롭 + 에드워즈의 합작으로 3년만에 리버풀은 스쿼드 퀄리티를 대폭 상승시켜 암흑기에서 빠져나와 중흥기로 접어들었으며, 매우 건강한 재정 상태[14] 를 유지하면서도 순식간에 팀을 우승권으로 올려놓은 에드워즈의 공로는 매우 크다. 거기에 살라, 피르미누, 마네, 헨더슨, 고메즈, 마팁, 밀너 등 주축 선수들의 재계약까지 총괄하는 사람이라 리버풀의 현재 성공에 막대한 지분을 차지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20-21 시즌 여름 이적시장에선 코로나 사태로 재정적으로 위축된 상황에서도 월드 클래스 선수인 티아고 알칸타라를 기본금 20M£ + 옵션 5M£ '''4년 할부'''로 데려오는데 성공했다. 심지어 첫 해에도 5M밖에 지불하지 않는다. 거기에 디오구 조타를 41M£ + 4M£로 영입하며 공격진 백업을 충원했고, 이 선수도 할부로 영입하며 첫 해에는 4M£ 밖에 내지 않는다는 유력 언론의 기사가 있으며, 데얀 로브렌의 방출로 받은 이적료를 코스타스 치미카스 영입에 활용하며 가장 큰 골칫거리였던 레프트백 백업도 보강했다.
20-21 시즌 겨울 이적시장에서는 FSG가 배짱으로 그동안 계속해왔던 소극적인 이적시장 운영을 유지하고 센터백 영입의 필요성을 무시하면서 데드라인 데이까지 발이 묶여있다가, 유일하게 남아있던 시니어 센터백인 마팁이 토트넘 전 시즌 아웃 급 부상을 끊으며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여러 선수들을 물색했다. 결국 단기성 방파제 카드 및 보험성 영입으로 2부리거인 벤 데이비스와 장기적으로 바라본 관점에서 오랫동안 리버풀과 링크되어 있던 오잔 카박을 영입했다. 긴박한 상황에서 두 명의 영입을 실행한 것도 대단한데, 에드워즈는 더 나아가 리버풀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으로 두 영입을 끝마치며 팬들의 찬사를 받았다. 벤 데이비스의 경우 프레스턴의 초기 요구가인 400만 파운드를 총액 160만 파운드[15] 로 깎아 영입했으며, 카박의 경우 먼저 협상에 들어간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따돌리고 영입한 것도 모자라 샬케의 요구인 선임대 후 3,000만 파운드 가격의 필수 영입 옵션을 선임대 후 '''1,800만 파운드''' 가격의 '''선택 영입 옵션'''으로 바꿔내는 기적을 선사했다. 샬케의 역대급 부진에 더불어 카박의 이번 시즌 폼이 워낙 좋지 않아 필사적으로 가격을 깎고 선택 영입으로 전환한 듯 하며, 리버풀은 이로서 카박이 설령 실패하더라도 여름에 울며 겨자먹기로 비싼 돈을 지불하고 영입해야 하는 큰 리스크를 짊어지지 않게 되었다.
3. 특징
그의 주 무기는 '''뛰어난 안목, 엠바고와 옵션 등을 활용한 영리한 협상 및 이적시장 운영, 끈질긴 설득력, 사기꾼 수준의 장사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에드워즈는 매우 건설적인 토론을 즐겨하는 성격이라고 하며, 항상 클롭 및 고든과 소통하고 자신이 하는 많은 일들의 정보를 취합하고 조합하는데 특출난 능력이 있다고 한다. 이런 스카우팅 및 최종 결정 과정을 거쳐 그는 영입 타겟들을 정하고 협상에 나선다. 이런 그의 특징이 그의 뛰어난 안목의 뒷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협상가로서 에드워즈의 특징은 한 푼이라도 덜 쓰려고 했던 전임 이안 에어와 달리[16] 온갖 옵션을 포함시키며 상대 구단의 요구액을 적당선에서 맞춰주는 영리한 협상가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특징은 철저한 엠바고와 신속함인데, 동네방네 소문 다내며 영입을 추진했던 과거 리버풀과 달리 정말 조용히, 이적 루머를 최대한 없애고 물밑 협상을 진행하는 데에 탁월하다.[17] 그 때문에 콥들은 이적시장에 소식이 없어서 지루해 하다가 카페나 뉴스를 들어가보니 그 어떤 빌드업도 없이 BBC와 3대장이 떠서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한 차례 영입에 실패했던 반 다이크의 경우 겨울 이적시장 3주 전 쯤 에드워즈는 이미 클롭과 구단을 설득했던 것으로 보이며, 겨울 이적시장이 공식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인 12월 30일, 맨체스터 시티의 하이재킹을 우려해 소리소문 없이 빠르게 영국 남쪽으로 메디컬 스태프들을 보내 본머스에서 메디컬을 마친 뒤 영입해버렸다. 이후 밝혀진 얘기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또한 반 다이크에게 관심이 있어 하이재킹을 시도했지만 그들이 사우스햄튼에게 연락했을 때는 이미 반 다이크가 리버풀로 향한 뒤였다. 18-19 시즌에도 이런 면모는 돋보였는데 파비뉴는 이적설이 전혀 없다가 시즌 종료 4일 후에 3시간 간격으로 갑자기 모하메드 부합시, 리버풀 3대장, BBC가 뜨더니 순식간에 영입되었다. 거기에 끈질김도 그의 특징 중 하나. 이 끈질김으로 리버풀은 완강한 태도를 보이던 라이프치히와 사우스햄튼을 결국 설득해 케이타와 반 다이크를 영입하는 데에 성공했다.
에드워즈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인터뷰를 극구 거부하고 자신의 얼굴을 공석에서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리버풀 이적시장의 주역이라 어느 정도 이름이 언급될 만 한데도 구글링해보면 생일이 언제인지 조차 정보가 없으며, 기사들은 모두 리버풀 구단 내부 기자들이 정보와 주변 취재를 기반으로 쓴 기사들이다. 거기에 테크니컬 디렉터로 임명되기 전에는 구단 프로필 조차 없었다고 한다. 사실 에드워즈의 근본은 애널리스트이자 스카우터이며, 신분을 숨기고 선수들과 구단들을 염탐해 정보를 취득하는 걸 중시하기 때문에 구글에 자신의 사진이 떠돌아다니기 시작하자 화를 냈다고 한다(...). 현재 스포팅 디렉터가 됐음에도 공석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를 거부한다는 점은 자신의 근본에 충실하다는 점.
이안 에어 체제에 비해 리버풀은 확실히 과감한 투자를 하게 되었지만 재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는 수준인데, 왜냐하면 에드워즈가 첼시의 마리나 그라노브스카이아 이사를 능가하는 그야말로 '''판매의 대가'''이기 때문이다. 리버풀 팬들과 타 팀 팬들 사이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이거 총 들고 협상하는 거 아니냐?"'''고 할 정도로 판매하는 선수들의 퀄리티 대비 몸값을 어마어마하게 높게 책정하고, 그걸 또 뽑아낸다. 결코 과장이 아니라 거의 사기꾼 수준으로 판매에 도가 튼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아래는 그가 중심이 되어 리버풀에서 정리한 선수들 및 이적료 목록.
- 16-17 시즌 여름 이적시장
리버풀은 이 시기에 대거 체질 개선에 들어갔는데, 이때부터 대부분의 협상을 담당한 에드워즈가 싹수가 전혀 안보였던 조던 아이브를 AFC 본머스로 이적시키며 무려 1500만 파운드나 챙겼다. 거기에 3200만 파운드를 투자해 영입했지만 먹튀로 전락한 크리스티안 벤테케를 크리스탈 팰리스에 옵션 포함 3150만 파운드에 넘겨 사실상 원금 회수에 성공했다. 벤테케는 이후 한 시즌 잘하는 가 싶더니 이내 먹튀가 되어버렸다. 그에 더해 계약 기간이 1년 남았던 조 앨런을 1300만 파운드에 스토크 시티로 판매했다. 1군에서 성장할 가능성이 없었던 안드레 위즈덤, 브래드 스미스, 세르히 카뇨스도 각각 450만 파운드[18] 로 더비 카운티, 600만 파운드[19] 로 AFC 본머스, 250만 파운드로 노리치 시티에 처분했다.
- 16-17 시즌 도중 & 17-18 시즌 여름 이적시장
클롭과 불화를 겪으며 전력 외가 된 마마두 사코를 시즌 도중 크리스탈 팰리스로 임대보냈고, 사코는 그곳에서 후반기 활약한 뒤 여름 이적시장 무려 옵션 포함 2600만 파운드를 남겨주며 1100만 파운드의 순이익을 발생시킨 채 완전 이적했다. 이에 더해 17-18 시즌 여름이적시장에 전 시즌 처분된 위즈덤, 스미스 & 카뇨스와 마찬가지로 1군에서 성장할 가능성이 없었던 케빈 스튜어트를 옵션 포함 800만 파운드로 헐 시티에 처분했다. 그는 2017년 여름 헐 시티에서 리버풀로 적을 옮긴 뒤 리버풀 역사상 최고의 가성비 영입 중 하나이자, 21세기 리버풀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거듭난[20] 앤드루 로버트슨의 이적료인 850만 파운드와 50만 파운드 차이밖에 나지 않아 사실상 트레이드 카드에 가까웠다. 거기에 디보크 오리기를 VfL 볼프스부르크에 1시즌 빌려주는 대가로 무려 600만 파운드를 뜯어냈다. 오리기는 거기서 먹튀급 활약. 그런데 그 다음 시즌 리버풀에 복귀한 오리기는...
- 17-18 시즌 여름 & 겨울 이적시장 쿠티뉴 사가
17-18 시즌 여름 이적시장부터 시작된 필리페 쿠티뉴 사가에서 클롭 감독의 반대[21] 로 7200만 파운드부터 1억 파운드 언저리까지 제시액을 올리고 스페인 언론을 활용해 특유의 흔들기까지 시전하며 끈질기게 리버풀을 몰아세운 FC 바르셀로나를 완강하게 쳐내며 그들이 더더욱 급해지게 만든 뒤, 겨울 이적시장에 무려 옵션 포함 1억 4200만 파운드라는 엄청난 거액을 받아내었다. 네이마르, 킬리앙 음바페의 뒤를 잇는 축구사 역대 이적료 3위. 클롭 또한 쿠티뉴가 시즌 도입 직전 이적 요청을 하는 과정에서 팀원들에게 도와달라는 제스처를 하고 등부상을 조작한 뒤 브라질 대표팀에서 말짱하게 뛰며 피해자 코스프레까지 하다 오는 엄청난 태업 경력까지 쌓으며 라커룸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든 그를 판매하는 데에 더 이상 반대를 하지 않았고, 이 둘은 쿠티뉴를 이 미친 액수로 판매한 후 환호했다고... 이 어마어마한 돈으로 버질 판데이크 + 여름 이적시장 + 나비 케이타의 구입액을 완전히 메꾸고[22] 이후 파비뉴/알리송 등의 중견/대형 급 영입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거기에 2020년까지 바르셀로나가 리버풀 선수를 영입하고자 한다면 합의되는 이적료에 1억 파운드를 얹어야 하는 조항까지 만들어 리버풀은 바르셀로나의 리빌딩 시기를 교묘하게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쿠티뉴는 리버풀의 에이스였지만, 이후 쿠티뉴가 바르셀로나에서 계륵으로 전락하고, 그 금액으로 커버하고 추가 영입한 선수들이 어떤 활약을 펼치는지, 또 그 선수들의 활약으로 리버풀이 어떤 클럽으로 성장했는지를 본 축구팬들이라면 에드워즈, 클롭을 비롯한 리버풀 보드진 및 구단과 바르셀로나 중 이 거래에서 누가 승자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 18-19 시즌 여름 & 겨울 이적시장
3옵션 키퍼인 대니 워드를 무려 1250만 파운드로 레스터 시티에 판매하며 사기꾼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었고, 겨울 이적시장에는 27경기 출장해 1골밖에 기록하지 못한 도미닉 솔랑케를 AFC 본머스에 1900만 파운드 + 옵션으로 팔아제끼는 대단한 판매 역량을 뽐냈다.
- 19-20 시즌 여름 & 겨울 이적시장
한동안 대형 거래가 오갔던 이전 시즌들에 비해서, 해당 시즌은 전반적으로 조용한 이적 시장을 보냈다. 그래도 그 와중에 임대를 전전하던 라이언 켄트를 지난 시즌 활약했던 레인저스 FC로 750만 파운드에 완전 이적시켰고, 장기부상으로 고생하다 폼이 떨어지며 전력 외 자원이 된 대니 잉스를 사우스햄튼 FC에 1년 임대 + 19-20 시즌 2000만 파운드의 의무 이적 조항을 삽입해 보냈다.
- 20-21 시즌 여름 이적시장
폼 저하로 센터백 4옵션으로 전락한 데얀 로브렌을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옵션 포함 1100만 파운드에 판매하였으며, 네코 윌리엄스의 가파른 성장으로 벤치에서도 입지가 좁아진 라이트백 유망주 키야나 후버르를 옵션 포함 1350만 파운드에 울버햄튼 원더러스 FC로 팔아제꼈다. 그동안 후버르가 컵 대회에 종종 나왔으나, 리그 출전 경기는 전무했던 것을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금액으로 판매한 셈. 게다가 화룡점정으로 1부 리그에서의 경험이 거의 없는 스트라이커 유망주 리안 브루스터를 무려 2350만 파운드에 셀온 15%와 3년 바이백 조항까지 달아서 셰필드 유나이티드 FC에 판매하는 그야말로 미친 협상력을 과시하였다. 당시 골가뭄으로 고전하던 셰필드가 다가오는 이적 시장 마감과 브루스터를 향한 중하위권 팀들의 많은 관심으로 조급해지자, 결국 이를 활용하여 셰필드의 클럽 레코드까지 끌어내는데 성공했다.[23] 여담으로 브루스터를 판매한 금액으로 얼마 전 영입했던 월드 클래스 미드필더 티아고 알칸타라의 투자 금액 옵션 포함 2500만 파운드를 거의 한 번에 해결했다.
[1] 멜우드에 있는 사무실 역시 클롭의 사무실 바로 옆에 있다.[2] 2002년 레드삭스에서 빈을 데려오려 했지만 실패했다. 이후 데려온 게 현재 레드삭스의 86년 짜리 밤비노의 저주를 깨는 2004년, 2007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끈 '''테오 엡스타인'''.[3] 에드워즈 당시 테크니컬 퍼포먼스 디렉터가 추진한 2개의 영입이다. 사실 이 중 샤힌은 로저스가 잘못된 기용을 해서 빛을 못 본 케이스였다.[4] 2015년 6월 이안 에어를 도와 호베르투 피르미누 협상 건을 성사시키긴 했다.[5] 감독으로서의 면모 뿐만 아니라 그가 친한 사람, 그의 평소 성격, 생활 패턴까지 치밀하게 조사했다. 그에 대해 쌓은 데이터로 작성한 리포트는 무려 60 페이지.[6] 많은 사람들이 클롭이 영입 전권을 부여받고 이적시장에서 자신의 안목과 결정만으로 사실상의 독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전혀 아니다. FSG 또한 클롭이 해당 선수를 원했을 시 투자가 꺼려진다면 거부할 권한이 있다. 즉, 일방적이었던 로저스 시절과 달리 매우 건설적이고 협력적인 관계가 구축된 것. 그래서 클롭과 에드워즈 현 단장 사이의 토론과 상의에서 많은 것이 결정된다. 메이저리그의 구단 시스템과 어느 정도 유사하다. 감독인 클롭은 에드워즈와 함께 영입 타겟을 정하고 승인하며, 단장인 에드워즈는 정한 타겟과 협상과 계약을 맡는다. 클롭은 리버풀 보드진의 이런 제안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왜냐하면 전 소속팀인 도르트문트에서도 한스-요아힘 바츠케 회장, 미하엘 초어크 단장과 비슷한 방식으로 협력해 이적 시장을 진행해 왔기 때문.[7] 16-17 시즌 여름 이적시장에 더욱 많은 협상 건을 맡았고, 이 때 많은 선수들을 비싼 가격에 책정하고 팔아넘겨 넷스펜딩에서 무려 400만 파운드의 흑자를 기록하면서 자신의 장사력을 톡톡히 증명했다.[8] 이안 에어는 CEO로서 재무, 스폰서, 마케팅 등 경영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협상과 이적 위원회 총괄 등 단장 역할까지 한꺼번에 맡고 있어서 과부하가 심한 상황이었고, 이 중 협상과 이적, 즉 축구 내적인 부분은 에드워즈가, 재무, 스폰서, 마케팅 등 축구 외적인 부분은 Electronic Arts에서 일하던 피터 무어 신임 CEO가 맡게 되었다.[9] 멜리사 레디, 폴 조이스, 제임스 피어스[10] 원래 클롭은 레버쿠젠의 율리안 브란트 영입을 원했으나, 브란트는 당시 1년 후의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의식하여 주전이 보장된 레버쿠젠에 잔류하였다. 한편 대체 타겟을 찾던 클롭은 에드워즈의 설득을 듣고 살라로 선회했다. 향후 살라가 리버풀에서 월드클래스로 거듭나자 이 일화가 조명을 받았고, 이는 에드워즈에 대한 콥들의 평가가 180도 바뀌는 결정적인 일화가 되었다.[11] 결국 리버풀은 모양 빠지게 사과문까지 쓰며 꽁무니를 빼야 했다.[12] 이 이적료 기록은 얼마 후 케파 아리사발라가가 더 비싼 금액으로 첼시에 합류하며 깨졌다.[13] 이 여름에 나빌 페키르 영입 또한 가시권까지 갔었고 또 다른 에드워즈의 작품이 될 수 있었지만 오피셜 직전에 틀어졌다. 원래는 메디컬 테스트가 이유였다고 알려졌었으나, 당시 페키르의 에이전트에 의하면 불안요소는 있었어도 일단 메디컬 테스트는 성공했는데, 사인하기로 한 날 페키르의 처남이 뜬금없이 변호사와 같이 나타나 자신이 에이전트인 양 행동하며 에이전트 수수료를 요구하였고 이에 페키르 역시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자 화가 난 리버풀이 이적을 취소하였다고.[14] 2016년부터 2018년 여름까지 3억 9000만 파운드를 지출하는 큼지막한 투자를 했음에도 판매액은 2650만 파운드로 상승했고 넷 스펜딩은 1억 2500만 파운드이다. 같은 시기 맨유의 넷 스펜딩이 3억 파운드, 맨시티가 3억 5800만 파운드, 아스날이 1억 4000만 파운드. 이런 뒷배경에는 그의 장사력이 있다.[15] 50만 파운드 선지불 + 110만 파운드 옵션. 옵션 중에는 데이비스의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차출이라는 현실성이 매우 낮은 항목도 있다.[16] 이 때문에 토비 알더베이럴트, 크리스티안 에릭센, 헨리크 미키타리안, 윌리안, 예브헨 코노플리얀카, 델레 알리 등 수많은 선수들을 놓쳤다.[17] 이 부분은 여름 이적시장 반 다이크 영입 실패 이후 더욱 도드라지고 있다. 당시에는 엠바고가 현재만큼 철저하진 않았다.[18] 옵션 포함[19] 옵션 포함[20] 과장이 전혀 아닌 게 로버트슨은 18-19 시즌 리그에서 11도움을 올리며 같은 시즌 12도움을 기록한 알렉산더아놀드에 이어 에버튼의 앤디 힌치클리프, 레이턴 베인스와 함께 EPL 역대 수비수 단일 시즌 최다 어시스트 2위 기록 타이를 이뤘고 2019 PFA 올해의 팀에도 선정되었다. 로버트슨의 등장 전까지 21세기 리버풀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평가되었던 욘 아르네 리세의 아성은 뛰어넘었다고 보는 게 옳다.[21] 클롭의 플랜에서 쿠티뉴는 핵심이었고, 당시 쿠티뉴 - 헨더슨 or 새로운 피보테 - 케이타의 중원을 구축할 계획이었다. 거기에 아무리 클롭이 선수가 원한다면 바짓가랑이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타입은 아니라지만 애초에 쿠티뉴가 이적 요청을 한 시기가 시즌 시작 직전이었다.[22] 사실 이마저도 라힘 스털링, 루이스 수아레스를 팔아내며 받아낸 이적료 중 잔여금과 에드워즈의 16-17 시즌 여름 이적시장에 보여준 판매 역량으로 어느 정도는 커버가 된 상황이었다. 16-17 시즌에 넷스팬딩은 흑자였으며(...) 17-18 시즌 직전에도 사코를 팔아넘기며 2600만 파운드를 챙겼기 때문.[23] 비록 브루스터가 팀에서 큰 기대를 해왔던 유망주지만, 한동안 장기 부상을 당하며 꽤나 고생하였고 현 리버풀 공격진인 마누라 라인이 워낙 입지가 굳건하였기에 성장을 위해서라도 사실상 이적은 불가피하였다. 또 3년 바이백 조항까지 생각하면, 이적 후 브루스터가 꾸준한 출장 기회를 부여받아 잘 성장하는 것 역시 좋기에 리버풀의 입장에서는 잃은 것 하나 없는 장사인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