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청춘이다/비판 및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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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명
2. 금수저 김난도
2.1. 김난도 교수의 이력
2.2. 일반화하기 힘든 경험
2.3. 시련은 나의 힘
2.4. 일단 기차에 올라타라
2.5. 공개적인 논란과 비판
4. 베이비 붐 이전 세대들의 평가
5. 관련 어록
6. 관련 문서


1. 설명


'''"아프면 환자지, 야! 뭐가 청춘이야? 뭐가 청춘이야, 이 아! 뭐가 청춘이야! 이 야!"'''

유병재, SNL 코리아 인턴전쟁 스케치 中[1]

'''아프니까 청춘이란 말은 쉽지, 청춘이 아프면 그 다음은 어디일지'''

데프콘, 아프지마 청춘 中

'''"힐링은 미봉책입니다. 제일 싫어하는 말이 힐링이에요. 자기 맨얼굴을 봐야 해요. 그러기 위해 냉정하게 얘기해 줘야 해요. 어떻게 할래, 라고 깊게 얘기해 주는 건 힐링 같은 위로랑 다르죠. 우리 사회가 그런 게 많아요. 본질적인 걸 못 가르치고 미봉하는 게 많죠."'''[2]

철학자 강신주

이 책은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소비자아동학부 김난도 교수가 쓴 수필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20대용 '''자기계발서'''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직접 김난도의 말을 들어보자.

"한번도 관료제가 견고한 조직생활을 해본 적이 없었지. 하다못해 군대도 학교였다니까? 그렇게 거의 25년을 학생으로 살다가, 어느 날 다시 교수로 위치로 바꾼 것이 다라니까? 복 받은 삶이지만, 어려운 점도 있어. 나를 내치는 상사가 없는 대신, 스스로를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게 내 삶이었거든. '''그래서 늘 힘들었어.'''

작가와 출판사가 책 제목을 너무 공격적으로 지은 점도 있고, 내용 자체도 개인의 의지와 인내만을 강요하는 전형적인 자기개발서인 탓에 실제로 고생하며 살다가 명성을 듣고서 읽어본 독자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이에 대한 반론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제목에서 유래된 '''오해'''처럼 김난도 교수는 이 책에서 "청춘은 어떤 종류의 아픔이라도 아픈 게 정상이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나는 이렇게 해서 성공했는데, 너는 왜 성공 못하냐? 게으른 놈들!" 같은 노골적인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 실제 책의 내용을 보면 다소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으나 대체로 매우 흔한(?) 자기개발서 중 하나에 불과한 수준이다. 사실 의외로 '책 자체만 놓고 보면' 읽어볼 만한 내용이라는 평을 받는다. 사실 제목이 너무 병맛이 넘쳐서 그렇지, 내용 자체는 독자들을 상대로 훈수두려 한다기보단 '''20대들의 고충과 상처를 공감하고, 그들을 위로해주고 토닥여주는 내용에 가깝다.''' 사실 이 책이 이렇게까지 욕을 쳐먹은 건 책 자체가 문제라기보단 흙수저가 쓸 내용을 금수저가 썼다는 사실 때문에 충격받은 독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목을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정한 것에서, 청춘의 아픔을 어떻게든 정당화시키려는 의도가 없다고는 볼 수 없기에, 반론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2. 금수저 김난도



2.1. 김난도 교수의 이력


김난도 교수가 아무리 옳은 말을 했다 하더라도,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고통을 당연히 겪어야 할 것으로 이야기한다면, 위에서처럼 가진 자가 없는 자를 조롱하는 느낌이 들 것이다.
김난도 교수의 부친은 검사 생활을 오랫동안 하던 엘리트 법조인이었다. 김난도 교수는 이러한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부유층이 드물었던 1950~60년대에 고위공직자나 법조인은 현재의 부유층과 맞먹는 위상을 가졌다.[3] 또한 그는 마포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이 고등학교는 85년 강서구로 옮기기 전까지 마포구 도화동에 위치하여 74년 고교평준화 이후 여의도 아파트단지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대거 입학하며 수많은 학생들이 명문대에 진학했던 학교이다. 그런 환경에서 공부하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고 '''행정고시'''를 공부하다 수차례 낙방하다가, 해외에서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4] 행정학 대학원에 유학하고 돌아왔다.[5] [6]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 박사는 한국의 어지간한 대학에서 자리를 구하기 쉬웠지만,[7][8] 엄청난 명예가 따르는 서울대학교 교수직에만 관심이 있었는지 다른 대학 쪽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원하던 교수는 바로 되지 못하고 강사 생활을 했다. 그러나 서울대학교에서 자신의 전공과 맞는 행정대학원에서 쉽게 자리가 나지 않았다. 참고로 서울대학교에는 다른 대학과는 달리 학부에서 행정학과가 없다. 서울대학교에서 행정 관련 전공은 행정대학원에만 설치되어 있다.
이에 김난도 교수는 자신의 박사 전공인 행정학 하다못해 학사 전공인 법학과는 거리가 있는 가정대학의 '''소비자아동학 교수직'''에 자리가 나자 여기에 임용되었다. 고3 수험생으로 비유하자면, 김난도 교수가 가정대의 소비자아동학과에 임용된 것은 그냥 명문대에 가기 위해 비인기학과에 간 것과 다름이 없다.
자신의 학문적 깊이에 대해서 책 내에서 자기합리화도 해보고, 셀프디스를 해보기도 했다.

... 이를테면 학문적 이민이었다.

오랜 고민 끝에 나는, 어제나 오늘 보다는 '내일'에 나의 명운을 걸어보기로 했다. 앞으로 우리나라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정부보다는 민간 주도로 국가경제 운용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고, 그렇다면 기업과 소비자에게로 파워가 넘어갈 텐데, 기업을 연구하는 경영학은 이미 많이들 하니까 소비자를 연구하는 소비자학이 전망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 누군가 "그러니까 김 교수는 제대로 깊이 있게 연구한 게 하나도 없군요."라고 할 것만 같다.

그래도 변명은 조금 할 수 있다. 적어도 나는 기성의 성취에 안주하지 않았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사회가 나에게 필요로 하는 일을 찾아 올인해 왔다고 말이다. 어제와 오늘에 안주하지 않고 '내일'이 이끄는 삶, 남들이 좋다는 주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 일'이라고 여겨지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 그것이 내 인생의 지향이었다고 말이다. '내일'이 이끄는 삶, '내 일'이 이끄는 삶을 살았다는 그런 자부심이 없었다면, 그대에게 내 중구난방의 연구 이력을 밑천 삼아 조언을 해주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이렇게 직장으로 서울대 교수를 고집해서 무려 1년간 강사 생활을 하면서 교수 임용에 계속 실패한 것을 매우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늘날은 기본적으로 졸업 후 강사나 포스트닥 생활을 수년 간 하면서 연구-강의 경력 후에 임용되는 게 일반적인 대학 교수계의 모습이다. 그런데 김난도는 요즘보다 훨씬 적은 1년 남짓 강사 생활을 한 것을 고통이라고 적어 놓았으니 연봉 수백만원의 강사 경력을 수년 동안 거친 후에도 정규직을 잡지 못한 시간강사들의 입장에서는 김 교수의 이런 말은 그냥 배부른 소리이자 망언으로 들릴 뿐인 것.

게다가 병역은 꼴랑 '''6개월'''짜리 석사장교로 끝냈다. 군사정권의 은혜를 제대로 받은 것이다. 군사정권 당시 해외 유학 중인 대학생은 방위 소위로 6개월 복무로 군생활을 끝낼 수 있었다. 김난도 교수가 해외 유학을 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2010년대야 해외 유학 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지만 '''당시는 80년대'''로, 유학은커녕 해외 여행조차 활성화 되지 않았던 시대[9][10]임을 감안해야 한다! 또한 80년대의 현역병의 복무기간은 약간의 변동이 있지만 육군의 경우 최소 30개월, 가장 긴 공군의 경우 35개월이었다.[11]
따라서 이런 이력을 소유하고 있는 김난도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제법 햇빛 찬란한 길만을 걸어온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니 이런 사람이 '''"나도 나름대로 이런 저런 일이 있었으니, 청춘들도 힘 내시게나"'''라고 해 봐야 설득력이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저자가 호암교수회관 관장으로 재직 중에 회관 노동자들의 '''비정규직화'''에 앞장섰던 전적이 있어서 "이런 청춘의 현실을 만드는 데 한 몫 하지 않았냐?"는 비판도 받고 있다.

2.2. 일반화하기 힘든 경험


이 책은 김난도 교수의 입장에서 쓰인 '''수필'''이다. 김난도 교수의 개인의 경험을 모든 평범한 대학생에게 투영할 수는 없는 법으로, 평범한 대학생이 보기에는 김난도 교수의 이력은 그저 한 지식인 엘리트의 전형적인 이력에 속할 뿐이다.
그 좋다는 '''서울대학교'''를 나와서 병역도 '''6개월 석사장교'''로 해결하고 행정고시에 떨어지고도 집안 재력덕분에 유학갔다와서 결국 1년만에 서울대 '''교수'''라는 직위에 오르게 된, 탄탄대로를 걸어온 전형적인 기득권층에 속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 '나도 힘들었으니 너희들도 힘내라'는 식으로 다독여 주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되며 위로가 되는지는 미지수다. 그리고 힘들었다는 증언을 사실이라는 전제로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그 정도 환경을 가진 금수저도 힘들다'''는 절망적인 메시지로 다가올 수도 있다.
모두가 다 아파야 시련을 다 이겨낼 수 있나 이지만, 무조건 모두가 다 이겨내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의지력만으로도 해낼 수없는게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기득권층의 조언이라고 다 쓸모없고 전혀 와 닿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이를테면 재벌의 상징인 정주영이나 신격호를 떠올려보자. 이런 사람들과 김난도 교수의 결정적인 차이는 적어도 이 사람들은 진짜 사회 하층 출신으로 정말 맨땅에 헤딩해서 성공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정주영의 젊을 적 생고생은 유명하고, 신격호도 일본 식민지 출신이자 무일푼인 조선인이 일본에서 성공한 예이다. 그들이 겪은 실패? 고작 엘리트 법조인 집안 도련님의 행시 실패 따위는 명함도 내밀기 힘든 참혹한 실패를 수 차례나 겪었다. 공장에 불이 나서 쫄딱 망했다든지, '''폭격을 맞았다든지'''[12] 등, 둘 다 가난한 집에서 가출해 서울, 도쿄라는 거친 대도시에서 청춘 때 부모의 도움 하나 없이 죽을 만큼 고생했던 사람들이란 것.
김난도 교수 자신은 1,000명이 넘는 청춘들과 만나고 소통하며 블로그, 싸이월드 등의 사이트도 활용했다지만 아픈 청춘들이 겪는 인생을 말로만 들었지, '''직접적으로 조금도 겪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 실상을 알았다고 하기는 어렵다. 방에 앉아서 책으로 읽으면서 배운 사람과 현장에서 뛰어보고 겪은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현실적으로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13]
대다수의 평범한 대학생 입장에서 김난도 교수의 인생에서 좌절이라고 말할 수 있을 사건이라고 볼 만한 것은 백번 양보해서 봐 줘도 '''행정고시 합격에 실패한 것'''밖에 없다. 그 시간강사 생활조차도 일반 대학생에게는 어려운 소리이며, 행정고시를 준비한다는 것 자체도 이미 대다수의 평범한 대학생에게는 그야말로 먼나라 이야기다. 그러니까 행정고시 실패로 좌절감을 맛봤다는 소리는 평범한 대학생에겐 배부른 소리로 들리는 걸 떠나 비아냥으로 보일 가능성까지 있다. 애초에 2016년 기준 7급 공무원 시험도 3수는 기본으로 생각한다. 예나 지금이나 행정고시나 그에 준하는 인기 공기업 시험은 3수해서 붙으면 '정말 엄청 대단하구나' 평가를 받는다. 남들은 다 몇 번씩 떨어지는 그거 한두 번 떨어지는게 뭐 그리 큰 아픔인가? 물론 한두 번 떨어진 것도 안 아픈 건 아니지만 적어도 네다섯 번 떨어진 사람들 앞에서 할 얘기는 아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힘들어 했다는 점은 잘 알겠으나, 가난하게 산 사람들과 더더욱 힘들게 살았던 사람들에게 다 공감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2.3. 시련은 나의 힘


김난도 교수는 겨우 '''25세에 아버지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약 1년 사이에 모두 세상을''' 떠나는 상황을 겪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은 맏아들이라 상주 노릇도 계속 했어야 했다고 한다. 본인 입장에서도 젊은 시절 나름대로 시련과 상심을 겪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김난도 교수는 책에서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누군가 젊은 시절의 내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지금의 성숙한 내가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웃기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성숙, 그런 거 안 해도 좋으니까 '''그런 어려움은 절대 다시 겪고 싶지 않다.''' 그런 시련일랑 나중에 조금 더 어른이 되어, 그런 종류의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때가 됐을 때, 그때 맞아도 충분하니까.

이와 같은 서술에 대해 여전히 의지드립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흔히 가지기 쉬운 '''오해'''처럼 김난도 교수가 "청춘이니까 아픈 게 당연하다"라는 투박한 견해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점은 확인이 가능하다. 그에 대해서 '''웃기지 말라'''고 서술하고 있기 때문. 다만 한 사람의 사상에 대해 평가할 때, 그 사람 스스로가 "나는 의지주의자가 아니다"라고 선언했다고 해도 그 사람의 다른 언행들이 대체로 의지주의적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면 단편적인 선언만으로 평가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또한 그 사람의 언행과 저서가 사회 대중에 미친 영향을 평가할 때는 더더욱, 그 사람 자신의 주장에 대해서 검증 내지 비판하는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위의 말을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김난도는 '''조부모가 자신이 20대가 될 때까지 생존해 있었다는 말이 된다.''' 평균수명이 많이 늘어난 지금도 손자가 20대가 될때까지 조부모가 모두 생존해 있는 경우가 적은 편인데, 하물며 80년대라면 더 말해 무엇할까? 자기 또래들 중에는 태어났을 때 이미 조부모가 저세상 사람이라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자라왔던 사람들도 많다. 심지어 60년대 초반생이라면 유아사망률이 굉장히 높던 시절에 태어나 어린 시절 동생들의 초상을 치뤄야 했었던 사람들도 많은데, 성인이 되어서 집안 어른들이 돌아가신 것이 슬픈 일일지언정 힘들었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

2.4. 일단 기차에 올라타라


그리고 현실감각이 좀 떨어지는 부분도 있다. 바로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라도 일단 취직해라"'''라는 요지의 주장이 있다는 점이다. 먼저 다음과 같이 일단 반대편 주장부터 지지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주로 '젊은이들이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면 얼마든지 취직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중략)

하지만 나는 이런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의 기성세대는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되지 않던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당시에는 굶어죽지 않으려고 일을 했다. (중략) 하지만 지금의 젊은이들은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에 태어난 세대다. 일자리, 삶에 대한 기대 수준이 기성세대와 완전히 다르다. 굶어 죽을까 걱정돼 일을 하는 친구는 거의 없다. 행복한 현재의 삶과 꿈을 펼칠 수 있는 비전을 위해 직장을 고른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이대며 무작정 '눈높이를 낮추라'고 호통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추가적으로 김난도 교수는 일자리가 없는 것은 사회적 문제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이 없어서 문제이기는 하나, 문제 인식까지는 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괜찮은 직장'에 대한 경쟁이 사상 최악으로 치열해진 것이 문제다. 대학 졸업자는 과거보다 크게 늘어났는데 고용없는 성장은 지속되고, 기성세대의 기득권 사수가 누적되면서 사회가 제공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는 정체를 거듭하고 있다. (중략)

그렇다. '''20대의 취업이 어려운 건 사회적 문제'''다. 젊은이들 개개인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중략) 그 출발이 중소기업이라고 주저하지 말라. 중소기업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특히 창업을 고려하고 있다면, 규모에 관계없이 반드시 업무 경험을 쌓으라고 권하고 싶다.

김난도 교수는 '''조직은 당신의 잠재력보다 경력을 본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많은 직장인들은 입을 모아 '''"말이 쉽지, 그게 말이나 되냐?"'''는 평가를 내린다. 대표적인 반박은 중소기업에 취직해서 대기업으로 옮겨가는 것은 말처럼 '''절대로 간단하지 않다'''는 것으로, 현실적으로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의 이직은 물론이고 중소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의 단순 이직 조차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님을 생각해 보면 빈말이 전혀 아니다.[14] 그리고 이런 부분에서의 전문성은 당연히 김난도 교수보다는 현장에서 직접 일하는 직장인이나 이직 경험이 있는 직장인이 더 높을 것이다. 김난도 교수는 '''중소기업에 들어가 보지도, 이직을 해 보지도, 하다못해 대기업이라도 들어가서 일해 본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한때 '잭 웰치'의 'WINNER'(위대한 승리)라는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된 적이 있는데, 이 사람의 행적에는 논란이 있지만 그 책의 내용에 비판을 가할 지언정 의문을 품는 의견은 많지 않다. 직접 경영 현장에서 명성을 잃고 쇠퇴의 길을 걷는 상황이었던 GE를 살려 놓고 그 경험과 실적을 바탕으로 자신이 했던 경영 전략을 풀어 쓴 책이기 때문이다. 현실을 지적해 시류와 다른 주장을 하거나 합리화려면 확실한 현장검증이나 주변검증을 하든지 아니면 자신만의 특별한 경력이 있든지 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심지어 잭 웰치도 자신의 책에서 '강연회에서 이런 의견을 들었다.', '사장에게서 어떤 의문을 들었다.' 식으로 현장의 목소리를 삽입하고 그에 대해 논하면서 설득력을 추가하고 있다.
하다못해 김난도 교수의 이력에서 '기업 인사담당팀'같은 직책을 맡은 적이라도 있었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현실은 그래도 나 같이 그런 면을 고려했던 담당관도 있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여튼 김난도 교수는 이에 대해 '선택의 문제'라는 애매한 답을 내리며 '''차악의 선택을 해야 하는 문제'''로 규정한다. 여기에 중소기업이나 대기업이나 '''회사생활에 대한 아픔'''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중소기업에서 경험을 하고 원하던 직장에 원서를 내면 회사 입장에서 사회 초년에 치러야 할 학습비용이 들지 않고, 부지런하고 열정이 있다는 증거로 삼을 것이라는 주장으로 마무리를 한다.
결국 '''현실적인 이직의 어려움에 대해서 확답은 피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적어도 대기업 인사관력보직과 같은 연관직을 맡아본 경험이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냉정히 말해 '''추측성 뜬구름 잡는 개소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의 현실을 깊이 관통하는 문제는 현장에서 뛰어본 사람들도 명확하게 규명하기 위해 몇 년씩 머리 싸매고, 채용담당관이나 기업의 경영주들이 해결 못 할 골치아픈 문제로 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김난도 교수에게 '''답을 제공할 능력은 애초부터 없었다.'''
김난도 교수는 중소기업의 현실이 열악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단서를 달기는 했으나, '''그가 직접 경험해 본 게 아니니''' 그의 발언의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은 막을 수가 없다. 2014년 말 언론에서 회자되고 있는 열정 페이라는 말을 떠올려보면 그의 주장은 무작정 따라가야 하는 제안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중소기업은 고사하고 강소기업, 중견기업의 머리 희끗희끗한 '''사장 급조차''' 새파란 대기업 사원들에게 꼬리 낮추는게 이쪽 바닥이다. 하물며 중소기업 신입사원과 대기업, 공기업 신입사원의 차이는 얼마나 날 것이며, 그들과 5급 공무원 신입의 격차는 거기서 또 얼마나 벌어지겠는가? 같은 나이, 같은 학벌이라도 서 있는 위치에 따라 갑질과 후려치기의 대상이 된다는 말이다. 뱀대가리보다 용꼬리가 낫다는 말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며, 이것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필드에 있는 사람들이다. 애초에 봉급, '''권력'''부터 다를 뿐더러[15] 나중에 경력직으로 이직을 하든, 창업을 하든 한번 불리한 길을 택하면 엄청난 재능과 피나는 노력, 타고난 운이 없는 한, 계속 약자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것 다 떠나서 9급 공무원이 4급 되기 쉬운지, 5급이 4급 되기 쉬운지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대형사고라도 친 것이 아니면 5급은 보통 4급이 되지만, 9급은 마지노선을 보통 6, 5급으로 본다. 역대급 엘리트라는 평을 받아야 5급 이상을 넘볼 수 있다. 취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9급에서 시작해 교육부 차관까지 올라간 이기우, 광주광역시 행정부시장(1급)까지 올라가고 끝내 인사수석비서관까지 한 김완기[16]같은 엘리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건 돌연변이, 개천용, [17]등의 예외로 봐야지, 9급에서 시작해도 3급 충분히 가능하다는 식으로 경향성이 있는 것마냥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일단 기차에 올라타라'는 말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정주영의 선례를 따라 초등학교만 나오고 창업해서 현대그룹이라도 설립하라는 말이며, 노무현고졸로 사시 패스해서 대한민국 대통령까지 되었으니, 대통령이 꿈이라면 일단 고졸하고 공시에 목매란 타란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눈을 낮춰 중소기업에 들어가서 경력쌓고 성공하라는 말은 극소수 밑바닥 출신 개천용의 사례를 다수의 경향성으로 일반화시키는 위험한 말이다. 더 간단히 말하자면, ''''천재? 물론 있죠. 하지만 너는 아니에요.''''
또한, IT업계에서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기술 수집용 식민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만약 IT 중소기업에 입사한다면? 그렇게 되면 기껏해서 겨우 개발한 기술을 대기업에 빼앗기거나 그나마 좋은 마이크로소프트 혹은 애플에게 기술을 넘겨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한국의 기업보다 외국의 기업에서는 기술에 대한 댓가를 높게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착취해가는 삼성전자의 천지인 자판 소송사건이다.

2.5. 공개적인 논란과 비판


영화 화차의 감독인 변영주도 비슷한 논지로 이 책과 김난도 교수를 강하게 비판했는데, 표현이 좀 거칠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다만, 신문기사는 완곡한 표현으로 바뀐 채 서술되어 있다. #

Q: 20대에 느꼈던 벽이 오히려 지금의 변영주 감독을 있게 한 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하나? 그런 면에서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류의 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A: '''"일단 기본적으로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책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정말 X같다고 생각한다.''' '''X쓰레기라는 생각을 한다.''' 지들이 애들을 저렇게 힘들게 만들어 놓고서, 심지어 처방전이라고 써서 그것을 돈을 받아먹나? 내용과 상관없이 애들한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무가지로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걸 팔아먹나? 아픈 애들이라며? 아니면 보건소 가격으로 해 주던가? 20대들에게 처방전이라고 하면서 무엇인가 주는 그 어떤 책도 팔 생각은 없다. 이 세상에서 제일 못된 선생은 애들한테 함정의 위치를 알려주는 선생이다. 걷다 보면 누구나 함정에 빠지기 십상인데, 그것을 알려준다는 것은 되게 치사한 자기 위안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해야 될 일은 그 친구들이 '''함정에 빠졌을 때 충분히 그 함정을 즐기고 다시 나올 수 있도록 위에서 손을 내밀고 사다리를 내려주는 일'''이지, "거기 함정이다."라고 하거나 "야, 그건 빠진 것도 아니야. 내가 옛날에 빠졌던 것은 더 깊었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영화가 하고 싶어서 막 어쩔 줄 몰라 하는 것과 대기업에 취직하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것 중에 더 훌륭한 선택은 없다. 누구나 자기의 선택이 있는 거다. 다만, 행복할 자신은 있으시냐고 묻고 싶을 뿐이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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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환자지 그게 청춘이냐?''' - 네티즌 공통된 반응

이에 대해서 김난도 교수는 '''"제가 청춘을 힘들게 하는 현실을 만들었나요? 모욕감으로 한숨도 잘 수가 없네요."'''라는 트윗으로 빈축을 샀다. "겨우 그 정도로 아프시다니 청춘이신가 봐요?", "이제 999번만 더 흔들리시면 됩니다."라는 조롱은 덤이다. 변영주 감독과의 설전 이후 트위터 계정은 유지하고 있지만 비공개로 전환해놓은 상태다.
이에 진중권 교수도 상대적으로 가벼운 비판에 동참을 하기도 했다. 참고로 진중권과 김난도는 서울대학교 동기이다.
대중강론 및 저술을 중시하는 철학자 강신주 역시 이 책과 김난도 교수 및 "힐링"을 주제로 한 자기개발서류 전반을 종종 비판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면 왜 아픈지를 알려줘서 안 아프게 만들어야 되는데 그저 계속 청춘이니까 아프라고만 얘기하는 책이라고 하기도 했다. 강신주의 확신에 찬 직설, 불편한가요?
소설가 김영하2014년, 힐링캠프에 출연하여 김난도 교수와 같은 부류의 힐링타령에 대해 그런 거 없다며 사치일 뿐이라며 일침을 놓았다. 요즘 한국인들이 살기 힘든 이유에 대해 말했다. 김영하 작가는 그 이전부터 '''"힐링이라는 말에 미쳐돌아가는 세태를 우려하며 오히려 냉혹한 현실을 마주보게 하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말했던 인물 중에 하나다. 이외에도 이것을 개선하려면 현실을 마주보고 나서 무엇을 해야하는가 고민하는 것이 지금 해야할 진짜 힐링이 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여러차례 해왔다.
배우 박철민은 <최화정의 파워 타임>에 출연해 "아프니까 청춘이다? 쓰레기 같은 말.. 아프면 환자다"라고 말했다. 후에 비정상회담에 출연해서 "쓰레기 발언은 좀 과격했다"며 한발 물러섰다.
다행히 김난도 교수도 자신에게 몰아친 사회의 비판적 목소리에 나름대로 느끼는 바가 있었는지, 근래에 출간하는 책[19]이나 강연[20] 등에서는 사회적 책임과 정치 등의 개인을 넘어선 구조적 개혁을 중시하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미 자신의 책 때문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게 씌인 것을 생각하면 다소 늦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강연하고 다니면서 본인의 잘못을 하나도 인정하지 않는 이영석보다는 훨씬 낫다.[21]
유시민 작가는 김난도 교수를 향해서 촌철살인을 날렸다.

조금 의외였습니다. 남은 잘 위로하면서 정작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은 모르네!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 유시민. 표현의 기술

글쎄요, 김난도 교수. 베스트셀러에 올라 서점가에서 꾸준히 팔리고 있는 책과 본인이 세간>에 회자되는 데 자유로울 수 없을 텐데, 그저 책 많이 팔려 인세 늘어나는 데만 함박웃음 짓고 계셨나요? 그간 책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말씀하셔 놓곤 자신은 단 한 번도 아파하려 하지 않고 흔들리려 하지 않으시네요. 아직 청춘이고 어른이 안 되셔서 그런가? 아니면 자긴 이미 어른이니까 한 번도 아프고 흔들려선 안 된다는 건가요?

- 유시민. 표현의 기술 (티스토리 블로거의 글 재인용)


3. 논란에도 불구하고 흥행한 이유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에 올라온 '김 교수님을 위한 변명'
사실 김 교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이토록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된 것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억울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널리 회자되고 예상외로 엄청나게 팔려서 그렇지, 당시에 거의 장르의 하나로 형성되어 있던 트렌드성 자기계발서였다. 아마 김난도 교수 본인도 이 책을 쓸 당시 용돈벌이나 하자 이 정도로 적당히 생각해서 썼을 것이지 이게 자신의 전체적인 명성이나 이미지를 이렇게까지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물건이 될 것, 비판의 중심에 설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당시에 통했던 도서 시장의 장르적 관습과 상업성을 매우 잘 지켜서 쓰인 책이었다.
첫째로, 이러한 책을 쓰려면 우선 '성공한 사람'이어야만 한다. 대중적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며 자수성가한 사람이어야만 자기계발서를 쓸 자격이 있으니까. 그런데 당시 돌던 반기업정서로 인해 상기된 것처럼 기업인들은 이런 책을 써도 팔리지도 않았고 의미도 없었다. 고로 출판사 입장에서 나름대로 자기계발서를 쓰는 동시에 반감을 갖게 하지 않을 만한 인물로 김난도 교수가 선택받은 것이다. 둘째로, 당시에는 지금처럼 사회 양극화나 세대간 갈등이 심하지 않았던 시대였다. 청년실업 등의 문제가 슬슬 조짐을 보이고는 있으나 지금처럼 명확히 담론화되어 구조적인 문제로 진단이 끝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실업하거나 좌절에 빠져 있는 청년 세대는 자신들을 정당화해줄 이론적 근거조차 없어 요즘 세대보다 오히려 더 큰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소위 말하는 꼰대들의 훈계조가 아니라, 과거에는 이렇게 실패한 사람들도 결국 성공했으니 기운을 차리라는 식의 격려로 접근한 것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한마디로 '''시대를 잘 타고 출판되었다.''' 이 책은 2010년에 출판되었는데, 당시 자기계발서 분야에서 이 책은 군계일학이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우후죽순 자기계발서가 나왔는데, 주로 개인의 노력에 대한 강조와 언젠가는 보상을 받는다는 논리가 주로 이루었다. 그러나 이 책은 힘든시대를 사는 젊은이를 위한 가르침, 힐링을 준다는 뉘앙스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약 1-2년간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무명이던 김난도의 이름을 유명하게 만들었다.
또 책은 하나의 주제를 담고 있어야 하는데 이 책의 주제는 '''힐링'''을 주제로 한 책이며, 그런 점에서 상당히 탁월한 수작이라고 볼 수 있다. 먼저 독해가 쉽다. 자기계발서의 대부분이 자기자랑인 것에 비해, 이 책은 자기자랑을 최소화하고 있으며, 언젠가 성취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책이 한창 잘 팔린 후, 이 책에 대한 평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22] 그는 책에서 사회제도의 개선의 필요성을 이야기 했으나 지금 당장 개선할 수 없으니 그냥 포기하자는 뉘앙스로 저술했다. 그리고 헬조선이나 수저계급론, 노오력 같은 용어의 유행 등, 한국사회에서 더이상 개인이 아무리 열심히 발버둥쳐도 사회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극복될 수 없음이 증명되었고, 결국 개인은 사회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영원히 고통받는다는 것이 확연해졌기에 이러한 책의 가치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거기에 작가는 아직도 개인의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23]
변영주 감독의 비판이 2012년 하반기에 있었고, 이 사건이 기폭제가 된 건지 이 즈음부터 비판 여론이 늘어난 것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그때까지는 이 책을 좋게 봐준 사람이 대부분이라서, 비판하는 사람은 적었으나 이름을 제법 날리는 사람이 대놓고 비판한 뒤부터, 이 책을 비판하는 여론이 고개를 들었다.[24] 또한 이 책은 어찌됐건 듣기 그럴듯한 소리만 가득하기 때문에 저자의 실제 이력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시점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 책의 가장 큰 문제가 '''아파본 적도 없는 사람이 아픈 사람들에게 충고하는 것''' 때문이다.
즉 현재 고착화된 청년실업, 세대간 갈등, 성장 저하 등등의 문제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이전, 산업화 시대의 성공신화를 찬미하기만 하던 자기계발서에서 21세기 현대적인 자기계발서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던 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큰 상업적 성공으로 인해 이 책이 그런 구시대적인 인식을 전적으로 대표하고 상징하는 양 낙인찍혀서 이렇게까지 크게 비판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 베이비 붐 이전 세대들의 평가


이 항목은 1920 ~ 40년대에 세상에 나신 우리 할아버지 세대들의 반응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위 2항목은 사실 젊은 세대들의 평이 반영된 것이 대부분인지라, 베이비 붐 이전의 세상을 살았던 분들의 반응을 한 번쯤은 살펴봐야만, 다양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 사실 이들이 내리는 평가를 제대로 듣기는 매우 어렵다. 이미 숨을 거둔 분들도 많고, 언론에서 제대로 다루어도 목소리가 들릴 일이 적다. 다만, 일제강점기6.25 전쟁을 모두 겪고도 살아남은 사람들이라서, 정신력(깡)만큼은 누구보다도 굳세다.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다룰 때에는, 단순한 세평보다도 값이 있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서점에 들러 베스트셀러인 김난도의 에세이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군데군데 선 거름으로 읽었다. 그러나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강력한 안티테제가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우리의 청춘은 죽음이었다'는 관념의 덩어리였다. 우리의 청춘은 아프다는 감미로운 말로는 대표하지 못한다. 전쟁의 시기였기 때문에 우리의 청춘은 바로 죽음이었던 것이다. ...중략... '70, 80년대 독재와 가난에 시달렸지만은 그러나 그때는 기회가 있었다. 한참 성장하던 참이라 아무리 술 먹고 연애하고 데모를 해도 다들 취직은 했었다. 독재와 함께 싸운다는 공동체의식도 있었고 그러나 요즘 20대는 철저하게 파편화되어 버렸다.' 이런 상황을 어떤 말로도 위안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60년 전의 전설같은 이야기가 위안이 되겠는가. 마치 억지로 역사책이나 읽어보라는 무책임하고 실속없는 충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철저하게 실패한 시대를 살아남은 우리에게 오늘 그 실패한 이야기가 정답고 다정하게 살아나듯이 오늘 청춘의 아픈 이야기는 어느 날 아름다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따라서 아픈 오늘을 사는 청춘들에게 청춘이 죽음이었다는 사실이 야담으로라도 연결되었으면 한다. - 범대순(1930~2014) / 전남대 명예교수·영문학자.[25]

60년대의 아날로그 규칙이 2000년대의 디지털 사회에 통용되지 않듯이, 근대적 사회에 가까웠던 60년대의 사회상과 현대사회의 전형인 00년대의 한국사회상을 일 대 일로 대응시키기는 힘들다. 학자금 대출만 보아도 알 수가 있는 문제인데, 나라가 빠르게 커갔던 70년대에는 금융업이 상대적으로 미흡하여 일반 서민들이 잘 정비된 대출 서비스를 이용하기는 힘들었지만, 일단 대출로 밑천이 마련되면 고속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높은 상환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계층 상승까지도 기대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의 침체된 경제성장과 계층 상승을 통한 소득의 폭발적 증대 가능성이 거의 없어진 경직된 사회구조 하에서는 이미 사회에 진출한 기성세대조차 원금을 상환하기도 벅차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마디로 빚이 성장의 기회가 아닌 생존을 위한 차악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

5. 관련 어록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플 땐 왜 아픈지 알고 왜 아파야 하냐고 묻는 게 청춘이지"''' - 제리케이 3집 <현실, 적> 수록곡 <해커스와 시크릿> 中

'''"아프니까 청춘은, 누가 만든 개소립니까?"''' - 노라조 디지털 싱글 <치이고 박히고 무능상사> 中

'''"청춘, 아프면 병원을 가야지. 나이를 먹으면 고치기 힘들어"''' - BUMZU[26]

미니앨범 <24> 수록곡 <스물넷 때가 타> 中

'''"아프니까 청춘이면 병원비는 누가 내?"''' - Ugly Duck 싱글 <Whatever> 中

'''"아프니까 청춘이란 말은 쉽지, 청춘이 아프면 다음은 어디일지"''' - 데프콘 <아프지 마 청춘> 中


6. 관련 문서


[1] 사실 유병재가 만든 말은 아니고 인터넷에서 떠돌던 문구를 인용한 것이다. 물론, 유병재가 사용함으로써 더 대중적으로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정면으로 논파하는 용도로 퍼진 문구가 되었다.[2] 다만 강신주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힐링만이 아니라 힐링캠프 류의 건전한(?) 힐링도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비슷한 논지의 말을 힐링캠프에 출연해서 한 적이 있다. 덧붙여 이런 논지보다 약하지만 힐링캠프보다 강한, 중도파적 입장이라면 법륜의 즉문즉설을 예로 들 수 있겠다.[3] 이때는 독재정권 시절이다. 고위공직자, 법조인은 민주화된 지금도 상당한 사회적 권력을 가진 직종인데, 정부의 힘이 막강했던 독재, 군부독재정권시절에는 어땠는지를 곰곰히 생각해 보자.[4] 흔히 남가주대학교라고 불리는 그곳이다. 금수저대학이라고 유명.[5] 박사과정 유학은 학교에서 수업료와 보험료를 전액 지원하고 매달 2백만원 이상의 생활비 또한 월급 개념으로 지원받는게 정상적인 유학이라 박사과정을 해외에서 마쳤다고 그게 금수저의 증거는 아니다. [6] 인문계 박사과정은 수업료, 보험료, 월급을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김난도 교수의 전공을 생각해보자. 더불어, 이공계 박사과정은 수업료/보험료 및 월급을 지원받는 것이 일반적이나, 그조차도 사실 모든 경우에 해당하지는 않으므로 섣부른 추정은 금물이다. [7] 당연히 일반 직장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인서울 중상위 대학이나 지방 거점 국립대의 경우 놀고 먹고 하면서 소위 말하는 '''캠퍼스의 낭만'''을 즐길 대로 즐기다 졸업이 코앞으로 닥칠 즈음 과실이나 교수실에 널려있는 추천서에 이름만 적으면 대기업에, 대기업은 아니더라도 최소 중견기업에는 취직할 수 있던 시대였다. '''"할 게 없어서 7급, 선생을 하냐??"'''는 말이 당연시되던 시대다. 일부러 졸업을 미뤄서 스펙을 쌓고 쌓는 오늘날의 대학가 풍속도를 이 때의 풍속도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들 정도. 이로 인한 세대갈등 역시 상당한데, '''86세대86세대 책임론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고도 경제 성장기에 따 먹을 만큼 따 먹고 누린 세대가 왜 외환위기를 전후한 경제침체가 눈에 보이는 현재의 청년실업은 '니들 노오력 부족'으로 취급하냐는 것이 이러한 세대갈등의 근본적 원인이자 골자다. 말할 것도 없이 386세대 대기업 사원의 스펙과 현 대기업 '준비' 일반대학생의 스펙은 안드로메다 급으로 차이가 난다.[8] 당시의 취업 분위기를 몇자 첨언한다면 일단 기업체에서 학점, 스펙 거의 안 봤다. 당시 학내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시국사건으로 동맹휴업이 밥먹듯이 일어나다 보니 평균 학점이 낮았고 당시의 기성세대는 불의를 참지 못하고 항거하는 학생들에게 뭔가 부채의식을 느끼는 분위기라서(이는 87년 항쟁 당시 넥타이부대의 시위로 발현) 오히려 스펙이 높은 학생을 '공부만 하고 시국에는 관심 없는 이기주의자'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그 때문에 취업시장에서 전공, 학점, 스펙보다 출신 대학이 어디인지에 주목하여 뽑을 수밖에.) 하지만 그렇다고 동맹휴업 때 종로에서 짱돌을 던졌는지 당구장에서 다마를 쳤는지를 면접관이 알 방법은 없다. 상위권 몇개 대학의 경우는 대기업 면접관들이 자사 취업을 통사정할 정도였고 이를 위해 취업철이면 학교 앞 맥주집 같은 것을 빌려서 비공식적으로 입사원서를 돌렸고 여기서 접수하면 최종면접까지는 프리패스였다. 스펙을 쌓고 쌓고 쌓아도 대기업 입사가 바늘구멍인 지금의 취업시장과 비교하면 격세지감. 심지어 4학년 2학기 성적표에 F가 떠서 졸업을 못한 채 졸업예정자(?)로 취업을 해도 기업 인사과 차원에서 한 학기 정도는 눈 감아줄 정도였다. 현 대기업 부장급들 프로필을 보면 1월 입사자가 그해 가을에 졸업한 예도 제법 된다. 이러한 취업관행은 80년대보다는 못하지만 90년대 중반까지도 이어졌었다. 외환위기 전까지. 현재 김영란법 때문에 취업계조차 맘대로 못 내는 상황과 비교하면 이 당시 학생들은 매우 큰 특혜를 받은 것이다. [9] 해외여행이 자율화된 게 1989년이다. 그 전에는 일반인은 특별한 이유 없이 단수여권조차 만들지 못했으며, 국가에서 밀어주는 사업 때문에 해외출장을 가는데도 안기부 등에 수많은 서류를 제출하고 신원조회를 받고 기관에 가서 반공교육을 받고 등등의 절차를 거쳐야 했을 정도다. 자율화가 된 이후에도 1990년대 중반까지 군미필 20대 초반 남자들은 여권 만들기가 아주 까다로웠다.[10] 여권연장의 경우도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미필남성의 유학생의 경우 만 18세 이후에는 학생비자기간만큼만 가능했다.(심지어 1년씩 연장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도장찍어줌) 또한 보증인이 필요하는 등 여러모로 복잡했다.[11] 자료 출처[12] 심지어 이것때문 자살도 결심했을 정도였다.[13] 다만, 인문학에서는 간접 경험을 통해 직접 겪지 않은 것을 분석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국화와 칼. 물론 이 책이 21세기 청춘들에 대해 면밀한 분석이 이루어졌는지는 각자가 알아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라고 쳐도 아픈 청춘에 대해 '''간접 경험을 통해 분석한 사람'''이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당사자들에게 충고와 조언을 하고 있는 코미디같은 상황이 된다.[14] 괜히 중소기업 중에서도 최악인 중소기업은 좆소라 부르고, 중소기업 중에서도 좋은 중소기업은 좋소기업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좆소에서 좋소 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15] 한국 문과 톱이라는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해서 잘 나간다는 삼성 대졸자 공채 정규직 사원이 되었다 쳐도, 동기 5급 앞에서는 상대가 될 수 없다.[16] 기사만 봐도 알 수 있듯 조영래 인권변호사와 깊은 관계를 맺었었다고 한다.[17] 뛰어난 인재들도 높은 자리까지 못가는 경우가 허다한걸 고려하면 운도 성공에 있어 중요한 요소다.운만으로 성공했다는게 아니라 운도 있어야 된다는 얘기. 관운이란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18] 욕설도 문제지만, 사실 여기서 말하는 '함정'에 대한 어휘에도 좀 문제가 있다. 즐길수 있는 함정, 즉 극복할만하고 오히려 도움이 될수도 있는 경험은 보통 함정이라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로 피해가야 하는 함정을 알려주는 선생은 좋은 선생이 맞다. 물론 이 인터뷰를 한 사람은, 모두가 뻔히 아는 점을 지적해서 자기만족하는 것을 비판하는 논지겠지만...[19] 매년 출간하는 트렌드 시리즈[20] KBS 명견만리 등등[21] 실제 KBS 명견만리 강연 다녀온 위키니트의 경험에 따르면 상당히 분석을 잘 하였고 사회문제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22] 중국에서는 2012년 인위통 소이규청춘 (아프니까 청춘이다)이 나와 중국 아마존닷컴에서 16주 연속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2016년에는 2편도 냈다.[23] 학자란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상황에 따라 변화를 인정하고 고쳐나가야 한다. 이황과 기대승의 논쟁에서만 봐도 이황은 끝없이 자기 주장의 모순점을 인정하고 끝없이 개선해 나갔다.[24] 사실 이런 현상은 당연하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성향이 있어서, 자기가 좋게 보지 않았더라도 좋게 보는 의견이 많으면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실제로 노엘 노이만이 이러한 현상을 '침묵의 나선 효과'라고 정리한 이론이 있을 정도.[25] 조지훈 시인의 제자로 80대까지 '''현역'''으로 활동한 노익장 시인이기도 하다. 원문은 좀더 여유롭고 익살스럽다.원문.[26] 참고로 마포고등학교 동문이다.